All Chapters of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Chapter 291 - Chapter 300

604 Chapters

제291화

“우리 업계 일이라는 게 워낙 지루하고 고된 편이라 평생의 반려자는 꼭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고르고 싶어요. 집안 배경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아요.”심종연이 입을 열었다.“여자의 집안이 내 체면을 높여줄 필요는 없습니다.”많은 재벌가의 결혼은 서로의 이익을 맞바꾸는 것일 뿐, 감정 따위는 없다.길고도 따분한 인생에 이미 일만으로도 충분히 지쳐 있는데 게다가 집안의 짐까지 짊어져야 한다.만약 배우자조차 마음대로 고를 수 없다면 그 인생이야말로 참으로 비극일 것이다.최수빈이 잠시 멈칫했다.심종연은 확실히 자신만의 깊은 생각을 갖고 있고 가치관도 바르고 예의를 중시하는 사람이었다.송미연이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맞는 말이에요. 저도 나이 들었다고 엄마가 자꾸 결혼하라고 닦달해서 진절머리가 나거든요.”심종연이 가볍게 웃었다.“육 대표님은 여자 친구가 없는 거로 알아요. 그럼 수빈 씨는요?”그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온천을 즐기며 눈을 감고 있던 최수빈이 순간 멍해졌다.눈을 뜨자 수증기가 가득한 공간 속에서 시선마저 흐려졌다.심종연은 그녀가 대답하지 않자 부드럽게 덧붙였다.“괜찮습니다. 불편하다면 굳이 말씀 안 하셔도 됩니다. 제가 실례했네요.”사실 이런 화제는 송미연이 먼저 꺼낸 것이었고 심종연도 답했으니 그녀도 숨길 건 없었다.“이혼했어요.”주민혁과의 결혼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은 아니었다.이혼 조항에 비밀로 붙일 것이 많았지만 이혼한 사실 자체가 비밀은 아니었다.심종연은 한동안 침묵하다가 담담하게 말했다.“불행한 결혼을 끝내는 건 결코 나쁜 일이 아닙니다.”그들 같은 사람은 결혼이라는 관계를 비교적 냉철하게 바라본다.결혼은 이익 때문일 수도, 사랑 때문일 수도 있다.하지만 이혼은 분명 앞으로 더 나은 삶을 위해 하는 선택이다.최수빈은 심종연과 대화를 나누며 확실히 편안함을 느꼈다.그는 말할 때마다 경계와 예절을 지켜 불편함이 전혀 없었다.잠시 후 송미연은 온천을 즐기다 간단한 음식을 먹으러 옆쪽 스낵 코너로 갔다.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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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2화

최수빈은 텅 빈 물가를 둘러보다가 자신의 수건이 사라진 걸 깨달았다.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아마 송미연이 나갈 때 무심코 챙겨간 게 아닐까 생각했다.비는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그냥 온천에서 나와 발걸음을 옮겼다.흰색 수영복은 비에 젖어 금세 비쳤다. 막 온천에 몸을 담갔다가 차가운 빗줄기를 맞으니 온기가 빠져나가며 몸이 점점 시려왔다.순간, 그녀는 뒤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들려오는 발소리를 느꼈다.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옆에서 스쳐 오는 서늘한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주민혁이었다. 그의 시선과 마주한 순간, 최수빈은 그에게서 느껴지는 싸늘한 기운에 알 수 없는 거리감을 느꼈다.하여 미묘하게 얼굴을 굳히며 가슴 앞을 가렸다.“뭐예요, 무슨 일 있어요?”주민혁은 별다른 내색 없이 외투를 그녀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외투에는 그의 체온이 남아 있었다.온천물에 젖은 옷이 너무 비치는 탓에 최수빈도 괜히 사람들 눈에 띄는 게 싫어 거절하지 않았다.그의 오른손 상처는 아직 다 아물지 않아 온천에 들어오지도 못했을 터였다.그런데도 자리를 뜨지 않고 서 있는 그의 모습에 최수빈은 더욱 눈살을 찌푸렸다.‘애지중지하는 여자 친구 두고 왜 여기 와서 괜히 존재감이나 드러내는 거지?’빗방울이 우산 위에 부딪히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좁은 우산 속, 최수빈은 숨조차 가볍게 죽였다.남자의 깊은 눈동자가 그녀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러더니 자연스레 그녀의 손을 잡아 살짝 쥐었다.“춥지?”빗소리에 묻혀 주민혁의 목소리는 한층 차갑고 희미하게 들렸다.순간 소름이 돋은 최수빈은 잽싸게 손을 빼내며 차갑게 노려봤다.“정신 나갔어요? 뭐 하는 짓이에요.”주민혁은 전혀 개의치 않고 한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어두운 눈빛으로 말했다.“곧 단오잖아. 감기 들지 말고. 할머니가 본가로 오라셔.”우산을 받쳐 든 그는 담담하게 덧붙였다.“어디 가? 태워다 줄게.”“필요 없어요.”최수빈은 우산 밖으로 걸어 나갔다.주민혁은 막지 않았다.그때 송미연이 우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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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3화

박하린이 말을 건넸다.“심 대표님이 정말 잘 챙겨주나 봐요. 이렇게 고급 호텔까지 잡아주고.”최수빈은 말없이 몸을 살짝 옆으로 비켜섰다. 마치 전염병이라도 본 듯, 노골적인 혐오감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애써 가릴 생각조차 없었다.“그게 무슨 태도예요?”박하린이 눈을 좁혔다.“아무리 두 사람이 이혼했다고 해도 굳이 원수처럼 굴 필요는 없잖아요? 왜 그렇게 한 맺힌 사람처럼 구는 거예요? 기본적인 예의는 있어야죠.”최수빈은 이제 그녀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조차 역겨웠다.일 때문이라면 참고 넘어가지만 사적인 자리에서까지 불쾌하게 만든다면 더는 참을 수 없었다.하여 그녀는 고개를 살짝 돌려 박하린을 쳐다보며 차갑게 말했다.“박하린 씨, 알아두세요. 예라는 건 상대가 대화할 의사가 있을 때 지켜지는 겁니다. 상대가 원치 않는데 억지로 들러붙는 건 무례한 거죠.”그러고는 시선을 곁눈질로 옆에 있던 주민혁에게 옮겼다.“게다가 내가 이혼하고도 전남편이랑 계속 연락하는 사이였으면, 하린 씨는 정말 기분 좋을 것 같아요?”박하린의 눈빛이 순간 굳었다.최수빈은 오히려 가볍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예 다른 엘리베이터 쪽으로 몸을 돌렸다.같은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조차 역겨웠다.박하린은 그녀의 뒷모습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바라봤다.그러고는 주민혁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민혁 오빠, 우리 둘은 떳떳하잖아. 그런데 왜 수빈 씨 말투는 마치 우리 사이에 뭐라도 있는 것처럼 들리게 하지? 화 안 나?”목젖을 살짝 움직이더니 주민혁은 최수빈에게 향하던 시선을 거두고 담담히 답했다.“떳떳한데, 화낼 게 뭐 있어?”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말투는 괜히 느긋하게 이어져 듣는 이로 하여금 쓸데없는 상상을 불러일으켰다.박하린은 잠시 멈칫했다.그제야 그의 말에 숨어 있는 뜻을 깨달았다.화를 내지 않는다는 건, 곧 이런 오해 섞인 분위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뜻.즉, 그녀와의 관계를 전혀 꺼리지 않는다는 의미였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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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4화

이번 대회에는 참가팀도 많고 인원도 상당했다.사실 박하린은 소피아를 제외하면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최수빈이 어느 팀에 속했는지조차 관심 없었다.어차피 자기 손에 밟히러 온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주민혁은 잠시 깊은 눈빛으로 최수빈을 바라보다가 곧 아무 일 없다는 듯 시선을 거두었다.“민혁 오빠, 수빈 씨도 이번 대회 참가하는 거야?”“그럴지도.”박하린은 눈살을 미세하게 찌푸렸다.“이런 대회는 장난으로 오는 자리가 아니야. 설마 망신당하러 온 건가? 그건 개인 망신이 아니라 국제적인 망신이잖아.”그러고는 덧붙였다.“아는 심사위원 없어? 그냥 못 나오게 하는 게 낫겠어. 이런 건 대회에 대한 모독이잖아.”진승우는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정말... 끼어드는 게 습관이 됐나 봐요. 이런 규모의 대회까지 와서 발을 담그려 하다니.”그는 비웃듯 말하며, 또 한편으로는 최수빈이 조금 딱하다고 여겼다.“어찌 됐건 하린 씨에 비하면 턱도 없죠. 안간힘 쓰면서 자기 이력이라도 채워보려는 모양인데... 그럼 뭐해요? 하린 씨 발끝에도 못 미치는걸.”“형, 저 사람이 여기서 망신을 사면 그건 곧 우리나라 전체의 얼굴에 먹칠하는 거예요.”박하린은 입술을 살짝 다물었다가 풀며 말했다.“민혁 오빠, 난 수빈 씨를 일부러 겨냥하는 게 아니야. 그렇게 속 좁은 사람도 아니고, 예전에도 별다른 원한 없었어. 하지만 명예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잖아.”주민혁의 눈빛은 깊고 알 수 없었다.마침 물을 가지러 지나가던 송미연이 대화를 고스란히 듣고는 콱 쏘아붙였다.“그렇게 잘났으면 그쪽들이 직접 심사하죠?”“당신...!”박하린은 심호흡을 내쉬며 송미연을 똑바로 보았다.“정말 그쪽 친구를 위한다면 빨리 말려서 나가게 해요. 여기는 육 대표님의 회사도 아니고 누가 억지로 길을 열어줄 자리도 아니에요. 괜히 창피당하지 말라고요.”그 순간 육민성이 성큼 다가왔다. 목소리는 차가웠다.“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더니... 내가 이걸 실제로 보네요.”주민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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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5화

박하린은 미묘하게 눈살을 찌푸렸다.“진 대표님 말이 틀린 건 아니에요.”심종연은 고개를 돌려 주민혁을 보았다.“이분이 여자 친구인가요?”주민혁의 깊은 눈빛은 차갑고 담담했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심종연은 가볍게 웃으며 그 침묵을 곧 동의로 받아들였다.“안목이... 꽤 달라지셨네요.”그의 말투는 늘 점잖고 품위 있었지만 다른 속내를 갖고 하는 말이라는 것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박하린은 그 말이 귀에 거슬렸지만 티 내지 않고 조용히 미간만 좁혔다.그들은 곧 자리를 떠났다.박하린은 여전히 의아했다.‘왜 심종연은 최수빈을 저토록 신경 쓰는 걸까?’진승우가 나직이 중얼거렸다.“아마 육민성이 옆에서 귀에다 속삭였겠죠. 최수빈이 대단하다고요. 심 대표님은 그 진짜 속사정은 모르니까 그대로 믿은 거고요.”그는 코웃음을 치며 덧붙였다.“육민성은 업계에서 워낙 명성이 있으니 그 사람이 하는 말이라면 심 대표님도 신뢰할 수밖에요. 다만, 정작 그 육민성이 여자 문제로 이성을 잃는 사람이라... 괜히 심 대표님까지 실망하지 않으시길 바랄 뿐이죠.”박하린은 대수롭지 않게 흘려넘겼다.어차피 그녀는 최수빈을 전혀 위협으로 여기지 않았다.결과는 결국 실력으로 드러나는 법이니 말이다.그녀가 보기에 최수빈은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고 있었다.육민성이 다리를 놓아 주니 이제는 그 힘에 취해 국제 우주 정착 설계 대회 같은 거대한 무대에도 감히 얼굴을 내민 것이었다.‘정말 이 자리를 장난처럼 여기는 걸까?’대회 시작까지는 아직 두 시간이 남아 있었다.참가자들은 제각기 모여 준비와 토론을 하고 업계의 거물들도 속속 도착해 현장은 열기로 가득했다.주민혁은 박하린에게 물 한 잔을 건넸다.박하린은 환하게 미소 지으며 받았다.“고마워, 민혁 오빠.”마침 비즈니스 관계로 알던 사람이 다가와 농담처럼 물었다.“주 대표님, 박하린 씨 대회 응원차 특별히 오신 겁니까?”주민혁의 존재감은 업계에서 무시할 수 없었다.그가 있는 곳이 곧 모든 시선의 중심이었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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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6화

너무 사람 마음을 꿰뚫어 보는 이 앞에서는 마치 옷 한 벌 걸치지 않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심종연이 어깨에 조심스레 숄을 걸쳐주자 최수빈은 감사 인사를 건넸다.이 장면은 고스란히 남이준의 시야에 들어왔다.남자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그제야 이해가 갔다.그가 그토록 정성을 들여 작성한 협력 제안서가 천공 연구원에게 거절당한 이유를 말이다.이미 적합한 인맥을 확보하고 있었으니 자신들을 거절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심종연과 연결 고리를 맺었다면 성안 측을 내칠 이유는 충분했다.“뭘 그렇게 보고 있어요?”이때 진승우가 다가와 그의 시선을 따라가더니 똑같이 그 장면을 목격했다.“어쩐지 심 대표님이 최수빈 편을 들어주더라니... 남자들이란 다 똑같죠. 보니까, 심 대표님도 최수빈한테 홀린 모양이네요.”그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세상에서 얼굴이 소용없다 말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최수빈은 바로 이 얼굴 하나로 원래는 발 디딜 수 없는 세계에 들어온 것이었다.육민성조차 심종연을 현혹시켜 버렸다.사실 그들은 심종연과 깊은 교류가 없었다. 비슷한 업계 회사라 해도 대부분 경쟁 관계였으니 말이다.그에 대한 모든 평판은 그저 소문으로만 들은 것이었다.그런데 막상 눈으로 확인해 보니 결국 평범한 남자와 다를 바가 없었다.모두 똑같이 여자의 미색을 뿌리치지 못하는 본능에 사로잡힌 존재일 뿐.진승우는 곧장 주민혁 곁으로 걸어갔다.주민혁은 고개를 숙이고 업무 관련 메시지를 확인하던 중이었다.그는 툭 앉으며 말했다.“방금 형 전처가 다른 남자랑 다정하게 있는 걸 또 봤어요. 인정해야겠어요. 남자 꼬시는 재주 하나는 끝내주더라니까요?”하지만 주민혁은 살며시 눈썹을 찌푸린 채 시선조차 들지 않았다.이런 이야기에 관심 없다는 듯 묵묵부답이었다.진승우는 잔소리를 멈추지 않았다.“너 참 한가한가 보다? 왜 맨날 최수빈만 쳐다봐?”주민혁이 고개를 들어 단호하게 말했다.“조용히 해.”진승우는 순간 멈칫하더니 금세 입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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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7화

모든 팀이 일제히 분주해지며 회의에 돌입해 설계를 시작했다.이 단계에서는 서로 마주할 수 없고 각자 팀 내에서만 설계 작업이 진행된다.중간에 휴식 시간이 있긴 했지만 대회장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휴식을 택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현장에 온 대부분은 문제 주제를 확인하고 참가자들을 만나며 인맥을 쌓는 데 목적이 있었다.극한 설계가 끝난 뒤에는 PPT 발표가 가장 중요한 관문이었다.제안서를 제출한 뒤 심사위원 앞에서 직접 답변해야 했고 상위 두 팀이 화국을 대표해 아시아 대회에 나갈 자격을 얻는다.대회는 한창 진행 중이었고 점심 무렵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팀 대기실 문을 열고 나온 박하린의 얼굴은 한결 편안해 보였다.“보니까 이 대회가 너한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네.”박하린은 미소 지었다.“이런 대회는 팀워크만 잘 맞으면 금방 설계가 나와. 하지만 주최 측 요구에 맞춰 세밀하게 최적화해야 높은 순위를 받을 수 있지. 이런 대회는 해외에서 많이 참여해봤으니까 자신 있어.”게다가 주민혁이 꾸린 팀 역시 매우 우수했다.박하린은 주민혁을 보며 물었다.“민혁 오빠, 지난번 지역 대회에서 소피아가 팀 내 개인 최고상을 받았잖아. 이번에도 노던아이 팀에 참가할까?”사실 그녀는 소문으로만 들은 그 인물을 직접 만나보고 싶었다.주민혁은 담담히 말했다.“꼭 나온다는 보장은 없어.”박하린은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확실히 이번에는 참가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아마 지난번은 단순히 얼굴을 비춘 정도였겠지. 511연구원 소속인 노던아이 팀을 잠깐 도운 셈이고.’박하린은 노던아이 팀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지난번도 소피아가 아니었다면 1등은 분명 자신이었을 거라 확신했다.“그때 나랑 협업할 수도 있다고 했잖아. 그런데 정작 그 대단한 사람의 정체가 어떤지...”그녀는 뛰어난 인재와 협업하길 원했고 소피아가 정말 전설처럼 떠도는 소문만큼 대단한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진승우가 그들의 대화를 듣고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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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8화

구정우는 국가급 원사로 한재준과도 거의 대등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었다.주민혁은 인맥이 넓었고 예전에도 이 업계에서 수석 엔지니어로 활약하던 사람이다.당시에도 여러 거물들이 서로 모셔 가려 할 만큼 손꼽히는 인재였다.구정우가 박하린을 바라보며 말했다.“성적과 학력이 모두 우수하군요. 민혁 씨가 소개한 사람이라면 틀림없겠죠.”...한편, 최수빈 쪽.간단히 식사를 마친 뒤, 육민성이 커피 한 잔을 건넸다.“주민혁이 박하린을 데리고 이번 대회 심사위원을 만나러 갔어.”송미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요? 그게 무슨 뜻이에요? 대회 뒷거래라도 하려는 거예요? 점수 더 받으려고요?”최수빈은 담담히 말했다.“이 정도 규모의 대회라면 심사위원을 매수하는 건 불가능해.”송미연이 손을 내저으며 반박했다.“돈으로는 안 되겠지만 환심은 살 수 있잖아! 심사위원도 사람이니까 표면적으로는 공정해도 무의식적으로 더 호감을 가질 수밖에 없지. 점수가 비슷하다면 당연히 박하린 팀 쪽에 더 기울겠지.”최수빈은 그런 말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박하린이 스스로 해외파 엘리트라 자부하고 대단한 성과들을 쌓았다고 해도 최수빈의 눈에는 결국 남자의 힘을 빌려 오르는 사람일 뿐이었다.그녀가 각종 과학계 최고 인사들을 만날 수 있는 건 본래라면 불가능한 일이다.실력으로 대단히 돋보여야만 거물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데 박하린 같은 사람은 화국에 셀 수 없이 많았다.그런데도 주민혁이라는 인맥이 그녀 앞길을 닦아주고 회사를 세워주니, 당연히 승승장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국내 심사위원은 구정우 원사님 한 분뿐이야. 내가 알기로 그분은 가장 공정하고 엄정하신 분이야. 절대 뒷거래 같은 건 하지 않아. 아마 다른 얘기를 나누려 만난 걸 거야.”다만 이런 민감한 시기에 심사위원을 만나는 게 다른 팀들에게 알려진다면 불만이 생길 건 뻔했다.육민성이 분석했다.“맞아. 구 원사님은 자기 발등 찍을 일은 안 하지. 게다가 공개적으로 식사하는데 무슨 문제겠어. 정말 뭔가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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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9화

최수빈은 딸의 목소리를 듣자 마음이 다 녹아내렸다.“응, 다 잘 되고 있어. 집에서는 할아버지 말씀 잘 듣고 있지?”주예린이 발랄하게 대답했다.“엄청 착하게 굴었어요. 할아버지도 저를 무척 좋아하시고 놀이공원에도 데려가 주셨어요. 오늘 막 돌아왔어요.”최수빈은 부드럽게 웃었다.“놀 땐 조심해야 해. 그동안 할아버지께 뭘 배우고 있니?”주예린은 요즘 배우고 있는 수업과 프로젝트를 하나하나 엄마에게 이야기해 주었다.최수빈은 순간 멈칫하며 놀랐다.배움 속도가 너무 빨라 벌써 수학 기초는 중학교 과정까지 나아간 수준이었다.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전화는 한재준에게 넘어갔다.자연스럽게 대화는 딸의 학업으로 이어졌다.한재준은 말했다.“예린이는 참 영리해. 너 어릴 때보다 더 재능이 뛰어나다. 특히 기억력이 아주 좋아서 배운 걸 잘 활용해.”물론 지금은 나이가 어려 깊은 이해까지는 어렵다.배운 것을 응용한다 해도 아직은 어린아이 수준에 한정될 뿐이었다.하지만 나이가 더 들면 그 가능성은 가늠할 수 없을 터였다.최수빈은 잘 알고 있었다.딸이 타고난 기억력은 분명 특별한 재능이라는 것을.만약 그것을 응용할 줄도 알게 된다면 정말 놀라운 인물이 될 수 있었다.다만 아직은 나이가 어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알지 못했다.혹시 자신과 같은 길을 잇게 된다면 대단한 성과를 낼지도 몰랐다.한재준은 거의 나라의 미래를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너무 일찍부터 걱정하지 마라. 아직은 너무 어리다. 크고 나서 봐야 알지. 어떤 재능은 잠깐 피었다 지는 경우도 있으니까.”주예린이 놀라운 기억력을 지녔다 해도 학습이 위로 갈수록 점점 힘들어질 수 있다.아이의 한계가 어디까지일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딸 이야기를 마친 뒤, 한재준은 대회 관련 몇 가지를 물었고 통화를 끝내니 벌써 오후 다섯 시였다.그 순간 육민성에게서 전화가 또 걸려왔다.오늘 저녁에 심종연이 마련한 자리가 있는데 업계의 중요한 인물들이 모이는 자리라 했다.국제 우주 정착 설계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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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0화

두 사람은 겉으로는 잘 모르는 듯하면서도 또 제법 가까운 사이처럼 보였다.그러나 최수빈은 그사이의 분위기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그녀는 심종연을 따라 차에 올라탔다.차 안에는 이미 송미연과 육민성이 타고 있었다.송미연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아까 내가 직접 마중 나가겠다 했는데 심 대표님이 직접 가는 게 더 성의 있는 일이라고 해서 그냥 차에서 기다렸어. 내가 안 간 거 섭섭하게 생각하지는 않지?”“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겠어.”송미연은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심종연이 최수빈을 대하는 태도가 예사롭지 않음을 이미 느낀 터였다.사실 너무 눈에 띄게 드러나는 편이었다.“보니까 주민혁이랑 같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던데, 우연히 마주친 거야?”최수빈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며 담담히 대답했다.“같은 호텔에 묵고 있으니 마주치는 건 당연하지.”심종연은 그녀의 옆얼굴을 바라봤다.겉으로는 드러나는 감정이 거의 없었지만 미세한 기류 정도는 읽어낼 수 있었다.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수빈 씨와 주 대표님 사이에 뭔 특별히 깊은 인연이 있습니까?”최수빈은 잠시 멈칫했다.차 안에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데 능한 이가 있다는 걸 깜빡 잊은 것이다.그녀는 시선을 창밖에서 거두고 심종연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차분히 대답했다.“아니요, 단지 업무상으로 함께한 관계일 뿐이에요.”이때 송미연이 끼어들었다.“심 대표님, 그럼 대표님도 주 대표님과 좀 가까워 보이던데... 그날 온천에서도 여쭤보고 싶었어요. 두 분 사이에도 무슨 인연이 있는 거죠?”심종연은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별건 없어요. 예전에 같은 팀에서 함께 일한 적이 있을 뿐이고 그 후에는 각자의 길을 간 거죠.”“그래요?”송미연이 눈을 반짝이며 캐물었다.“그럼 대표님이 보시기에 주민혁은 어떤 남자인가요? 연애는 많이 했는지, 혹시 사생활에 흠은 없는지?”심종연은 미간을 살짝 올리며 물었다.“설마 그분을 좋아합니까?”“풉...”송미연은 순간 피식 웃으며 기침을 했다.“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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