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Chapter 1221 - Chapter 1230

1602 Chapters

제1221화

최수빈은 몸이 아직도 조금 휘청거렸지만 정신만큼은 또렷했다.주민혁의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온기를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고 망설이는 눈빛 또한 보아낼 수 있었으며 가슴 깊은 곳에서 점점 거세게 뛰는 자신의 심장 소리까지 또렷하게 들려왔다.“지금 민혁 씨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요.”최수빈은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속눈썹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물기가 맺혀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고집스럽게 흔들림이 없었다.술기운에 평소 절제하던 태도가 풀리면서 오랫동안 마음속에 눌러 담아왔던 의문들이 결국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주민혁은 그녀의 팔을 붙잡은 손에 힘을 조금 더 주었다.고개를 숙여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 위로 가로등 불빛이 스쳐 밝아졌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했고 그 눈빛은 마치 짙게 번진 먹물처럼 깊고 무거웠다.“네가 무사하길 바라고 있어.”짧은 한마디였지만 낮고 단호한 목소리였다.최수빈은 잠시 멍해지더니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그동안 두 사람은 오해가 있었던 탓에 거리를 두기도 했었고 서로 날을 세운 적도 많았었다. 그래서 이렇게 직설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해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것도 그저 ‘네가 무사하길 바란다’는 말로 말이다.마음속에 쌓여 있던 서러움과 불안이 그 한마디에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곧 최수빈이 입을 열어 무언가 더 말하려 하는데 주민혁이 먼저 얘기를 꺼냈다.“가서 푹 쉬어.”여전히 부드러운 목소리였지만 더 이상 이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지 않다는 뜻이 분명했다.그가 회피하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최수빈은 더이상 억지로 붙잡지 않았다.서두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지 않은가. 두 사람 사이에 쌓인 감정은 너무 많았고 이는 천천히 풀어가야 할 문제였다.차는 조용히 별장 단지 안으로 들어가 최수빈의 집 앞에 멈췄다.그렇게 최수빈을 부축한 채 차에서 내려 막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주민혁은 약상자를 들고 나가려던 진용휘와 마주쳤다.두 사람을 본 진용휘는 잠시 멈칫하더니 곧 정중히 고
Read more

제1222화

아주 조용히 내뱉은 한마디였지만 그 안에는 묵직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율이는 멍하니 굳었고 최수빈 역시 순간 할 말을 잃었다.고개를 돌려 주민혁을 바라보는 최수빈의 눈에는 놀란 기색이 가득했다.이런 순간에, 주민혁이 율이에게 이런 말을 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율이의 눈이 순식간에 반짝거렸다. 가슴속에서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밀려왔다.잠시 숨을 고른 뒤, 율이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아빠, 제 방 보여드릴게요. 보여주고 싶은 장난감이 엄청 많아요.”“그래.”주민혁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율이가 잡아끄는 손에 이끌려 아이의 방으로 향했다.그런 두 사람의 뒷모습에 마음이 따듯해진 최수빈은 다시 몸을 일으켜 비틀거리며 욕실로 향했다.세면을 마친 뒤, 어지럼증은 조금 가라앉았지만 머리는 여전히 무거웠다.주민혁과 율이가 방에서 나왔을 때, 최수빈은 창백한 얼굴로 침실 문 앞에 서 있었다.“엄마, 얼른 가서 자요.”율이는 달려와 최수빈의 손을 잡고 침실로 이끌었다.주민혁도 따라 들어와 최수빈이 침대에 눕는 것을 지켜본 뒤, 이불을 덮어주고 나서야 조용히 말했다.“푹 쉬어. 난 이제 가볼게.”“네.”최수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눈을 바라봤다.“고마워요.”주민혁은 가볍게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다음 율이를 데리고 조용히 침실을 나와 문을 닫았다.율이는 주민혁을 올려다보며 조용히 물었다.“아빠, 내일도 와요?”“응.”주민혁이 고개를 끄덕였다.“내일 또 보자.”“네!”율이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뒤, 떠나는 주민혁의 모습을 끝까지 바라봤다.주민혁이 차를 몰고 별장 단지를 빠져나갈 즈음에는 이미 밤이 무척 깊어진 뒤였다.창밖의 어두운 풍경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속에는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오늘 밤, 그는 드디어 율이에게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았고 마침내 최수빈에게도 자신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전할 수 있었다.하지만 최수빈이 과거의 일들을 내려놓고 다시 자신을 받아들일
Read more

제1223화

“네, 엄마 조심해서 다녀오세요.”율이는 고개를 끄덕였다가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다시 물었다.“엄마, 아빠랑 같이 가는 거예요?”최수빈은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응, 맞아.”“와, 잘됐다!”율이는 너무 기쁜 나머지 폴짝 뛰었다.“엄마, 아빠랑 꼭 사이좋게 지내야 해요. 전 아빠가 정말 좋거든요.”이에 마음이 뭉클해진 최수빈은 딸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알았어. 그러도록 할게.”그렇게 최수빈은 아래로 내려가 려운의 차에 올랐다.차는 조용히 도로를 달렸다.최수빈은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창밖의 거리를 바라보았지만 마음속은 기대와 불안함으로 가득했다.이번 병원행이 두 사람 관계의 전환점이 될지, 아니면 예전처럼 또 보이지 않는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채 그대로 머무르게 될지 알 수 없었다.차는 곧 병원 앞에 도착했고 려운은 차를 세운 뒤, 말했다.“수빈 씨, 대표님은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제가 모시고 올라갈게요.”최수빈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려운을 따라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강지안의 진료실은 3층에 있었다.입구에 다다르자, 두 사람의 눈에 복도에 서 있던 주민혁이 들어왔다.몸에 꼭 맞게 재단된 짙은 색 정장을 입은 그는 자세가 반듯했고 그 모습에 지나가던 간호사들이 힐끗힐끗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최수빈을 보자 주민혁은 순간 눈빛이 밝아지더니 곧장 그녀에게 다가갔다.“왔어? 머리는 좀 괜찮아졌어?”“많이 나아졌어요.”최수빈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시선은 어딘가 머뭇거리고 있었다.“들어가자. 지안이가 안에서 기다리고 있어.”주민혁은 이렇게 말하며 진료실 문을 열었다.안에서 책상 앞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던 강지안은 두 사람이 들어오자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왔어? 얼른 앉아.”최수빈과 주민혁은 소파에 나란히 앉았고 려운은 분위기를 살피더니 조용히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아주었다.“수빈 씨, 요즘 또 제대로 못 쉬었죠? 얼굴빛이 많이 안 좋아 보여요.”강지안은 그녀를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Read more

제1224화

최수빈은 마음 한구석이 가볍게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시큰거리면서도 묘하게 따뜻했다.그녀는 담담한 주민혁의 옆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어젯밤 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네가 무사하길 바라고 있어.”그 마음은 한때의 말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처음부터 그는 진심으로 최수빈을 걱정하고 있던 것이었다.“그럼 민혁 씨는요?”최수빈은 흔들리던 마음을 가다듬고 조심스레 물었다.“민혁 씨의 병세는 어떤데요? 여태 계속 치료받고 있었던 거예요?”주민혁의 눈빛이 살짝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녀의 질문을 피하지는 않았다.“조금 있으면 지안이가 치료를 진행할 거야.”잠시 말을 멈췄다가 주민혁은 한층 낮아진 목소리로 덧붙였다.“중증 우울증 때문에 전기경련치료를 받고 있어.”최수빈은 숨이 턱 막혀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전기경련치료라고요? 그건 너무...”말끝을 다 맺지도 못한 채, 그녀의 눈빛에는 걱정하는 기색이 선명하게 떠올랐다.그 치료가 몸에 얼마나 큰 부담을 주는지, 얼마나 힘든 과정인지도 그녀는 알고 있었다.“난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안정적인 사람이 아니야.”주민혁은 마치 남의 일을 말하듯 조용히 말했다.“가끔은 부정적인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와. 나도 도저히 눌러지지 않을 때가 있어. 그래서 치료를 계속 받고 있어. 이건... 네가 꼭 알았으면 해.”더는 그녀에게 숨기고 싶지 않았다. 이미 두 사람 사이에 쌓인 오해와 서로 거리를 두던 시간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그때 강지안이 치료 동의서를 들고 다가왔다.“들어가도 돼, 주민혁. 치료실 준비 끝났어.”주민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최수빈을 바라보았다.“나 들어갈게. 넌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돼.”최수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를 따라 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강지안은 그런 그녀를 한번 바라봤지만 굳이 말리지는 않고 대신 조용히 말했다.“밖에 관찰창이 있어요. 거기서 기다리시면 됩니다.”치료실 문이 조용히 열렸다. 안은 깔끔했지만 차갑
Read more

제1225화

최수빈의 따뜻한 손바닥이 자신의 차가운 손등을 덮는 순간, 주민혁의 몸은 미세하게 굳었다.그는 거의 반사적으로 손가락을 오므려 그녀의 손을 제 손안에 단단히 감쌌다.뜨거운 온기가 깊게 스며들어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번져 갔다. 팽팽하게 조여 있던 신경도 그제야 조금씩 풀려내렸다.최수빈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부드러운 미소와 다정한 눈빛을 한 채 말했다.“다 괜찮아질 거예요.”화려한 말은 없이, 그저 짧고 단순한 한 마디였다.주민혁은 눈웃음을 머금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조금씩 마음이 가라앉는 걸 느꼈다.최수빈은 그에게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들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그녀가 자신에게 이렇게 웃어주는 일은 드물었다.“앞으로는 매번 같이 와줄게요.”최수빈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의견을 묻는 것이 아닌, 이미 결정을 내린 사람의 말투였다.그러자 주민혁은 최수빈의 손을 쥔 채 잠시 멈칫하더니 손끝의 힘이 아주 조금 느슨해졌다.“억지로 그럴 필요는 없어.”치료가 얼마나 괴로운지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녀까지 이런 고통을 함께 견디게 하고 싶지 않았다. 동정이나 책임감 때문에 스스로 무리하도록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하지만 곧 최수빈이 고개를 들어 주민혁을 똑바로 바라봤다.“그게 왜 억지예요? 난 민혁 씨가 아니에요. 마음은 다 드러나면서도 꼭 아닌 척,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아니라고요.”그녀는 주민혁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그는 늘 자신의 감정을 전부 가슴속에 감춘 채, 가까워지고 싶어 하면서도 이런저런 이유를 핑계 삼아 일부러 한 걸음씩 물러났다.주민혁의 목젖이 천천히 한 번 움직였다. 입술을 달싹였지만 막상 무슨 말로 반박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최수빈의 말은 마치 열쇠 같았다.겹겹이 둘러친 주민혁의 가면을 너무도 쉽게 열어젖혔고 그를 더는 숨을 곳 없는 자리로 끌어냈다.그래서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최수빈의 손을 쥔 손에 조금 더 힘을 줄 뿐이었다. 마치 한
Read more

제1226화

최수빈은 미안해하는 주민혁의 표정을 바라보다가 가슴 한쪽이 저릿하게 아려오는 걸 느꼈다.이 관계가 자신을 괴롭히는 동시에, 주민혁에게도 또 다른 고통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두 사람 사이에는 과거의 상처가 가로막고 있었고 현실의 벽도 여전히 견고했다.누구 하나 완전히 이득을 보는 일도 없고, 그렇다고 누구 하나 미련 없이 내려놓을 수도 없는 관계였다.“일단 우리 사이의 감정은 잠시 내려놓고 생각해 봐요.”최수빈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속에 뒤엉킨 감정을 억눌렀다. 그리고 한층 더 단호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적어도... 율이한테는 제대로 된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지 않겠어요?”율이는 아무 잘못이 없다.어른들 사이의 복잡한 감정 때문에 아빠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자라선 안 되고 불완전한 가정 속에서 크도록 내버려 둘 수도 없었다.그건 최수빈이 오랫동안 놓지 못한 생각이었고 결국 더 이상 주민혁을 피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주민혁은 순간 고개를 번쩍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그리고 곧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그는 알고 있었다.최수빈이 이 말을 꺼낸 건 율이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라는 걸. 딸에게 못다 한 것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말이다.주민혁은 그녀를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할 말은 많았지만 어디서부터 꺼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가슴 깊숙이 쌓여 있던 죄책감과 그리움, 사랑과 갈등이 뒤엉켜 입 밖으로 꺼낼 틈조차 주지 않았다.“할 말 있으면 해요.”최수빈이 그가 망설인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먼저 입을 열었다. 차분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였다.그러자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복잡한 시선으로 최수빈을 바라보던 주민혁은 한참이 지나서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아무리 생각해도... 뭘 해도 너랑 애한테 미안한 것 같아.”그때, 주민혁은 최수빈을 지켜주지 못했다. 그녀가 감당해야 했던 수많은 상처를 막아주지 못했다. 또한 율이의 곁에도 있어 주
Read more

제1227화

한 번 고개를 든 생각은 덩굴처럼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을 만큼 온몸을 휘감자 주민혁은 그대로 급브레이크를 밟았다.결국 차는 길가에 멈춰 섰고 엔진 소리도 뚝 끊겼다.짙어지는 밤기운 속에서 어두운 조명 아래 비친 그의 얼굴은 유난히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주민혁은 곧바로 려운에게 전화를 걸었다.“당장 대학 병원으로 가서 수빈이의 유산 기록이랑 입원 자료 전부 확인해. 최대한 빨리.”전화기 너머의 려운은 잠시 어리둥절해졌지만 이유를 묻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알겠습니다, 대표님. 지금 바로 처리하겠습니다.”전화를 끊은 주민혁은 다시 차에 시동을 걸고 곧장 대학 병원으로 향했다.그때의 그는, 그저 최수빈이 육민성과 행복하게 살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만 매달려 있었다.최수빈과 육민성을 바라볼 때마다 속이 쓰리고 괴로웠지만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그 아이에 대해서는 감히 깊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그렇게 어느덧 차는 병원 주차장에 멈춰 섰고 주민혁은 차 안에 앉은 채 기다렸다. 손끝은 차갑게 식어 있었지만 심장은 이상할 정도로 거세게 뛰고 있었다.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함은 점점 더 심해졌다. 진실을 알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그 진실이 두려웠다.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려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대표님, 자료 찾았습니다. 지금 가져다드릴까요?”“차로 바로 가져와.”몇 분 뒤, 려운은 서류 뭉치를 들고 급히 걸어오더니 조수석 문을 열어 올라타고 서류를 건넸다.“대표님, 이건 수빈 씨의 입원 기록이랑 유산 관련 자료입니다. 필요한 내용은 전부 여기에 있어요.”주민혁은 아무 말 없이 서류를 받아 들었다.그러고는 깊게 숨을 들이쉰 뒤, 천천히 첫 장을 넘겼다.입원 날짜, 진단 결과, 수술 기록...적혀 있는 글자 하나하나가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고 그 모든 문장이 묵직한 쇠망치처럼 그의 가슴을 세게 내리쳤다.기록에는 분명하게 적혀 있었다.최수빈의 임신 시점은 누군가의 계략으로 약을 먹고 주민혁과 관
Read more

제1228화

격렬한 기침이 쏟아지자 주민혁은 그대로 몸이 떨렸다.가슴 안쪽에서는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고 숨을 쉴 때마다 뜨겁게 타들어 가는 듯 아팠다.한참 뒤 그가 천천히 손을 내렸을 때, 가로등 불빛 아래로 손바닥에 선명한 핏방울 몇 개가 묻어 있는 것이 보였다.“대표님!”놀란 려운은 급히 차에서 뛰어내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주민혁을 붙잡았다.“괜찮으세요? 얼른 병원으로 가셔야 합니다!”이렇게 피를 토하는 일이 처음은 아니었다.우울증이 심해지기 전부터 주민혁은 오랜 세월 마음고생을 하며 심맥까지 상한 탓에 종종 각혈 증세를 보이곤 했다.생각이 너무 많았고 짊어진 짐도 너무 무거웠다. 그는 단 한 순간도 진짜로 마음을 놓고 살아본 적이 없었다.그 감정들은 돌덩이처럼 가슴 위에 쌓여 갔고 그렇게 하루하루 버티다 결국 몸까지 무너져 내린 것이었다.주민혁은 손을 들어 려운을 만류하고는 있는 힘을 다해 몸을 바로 세웠다. 목소리는 갈라져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괜찮아. 안 가도 돼.”그러고는 천천히 다시 차 안으로 들어가 좌석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어둠 속에서도 주민혁의 얼굴은 종잇장처럼 창백했고 미간은 깊게 찌푸려져 있었다.“난... 정말 사람도 아니다.”한참 만에 그가 낮게 입을 열었다. 고요한 물 위에 미세한 파문 하나가 번지듯, 담담한 말이었다.아는 것과, 끝까지 파고들어 확인하는 건 전혀 다른 일이었다.려운은 옆에서 멍하니 주민혁을 바라보며 입술만 달싹거릴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는 알 수 없었다.오랫동안 주민혁의 곁을 지키며, 그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얼마나 상상도 못 할 압박을 견뎌왔는지 잘 알고 있었다.또 최수빈과 율이를 향한 마음이 얼마나 깊은지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어떤 잘못은 한 번 저지르고 나면 결코 되돌릴 수 없는 법이었다.그리고 주민혁의 집착과 죄책감은 결국 그를 더 깊은 고통 속으로 끌고 들어갈 뿐이었다.“대표님...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습니다.”려운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조심
Read more

제1229화

남자는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있었고 미간은 깊게 찌푸려져 있었다.그 모습을 보는 순간, 최수빈의 가슴속에는 복잡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차마 설명할 수 없는 먹먹함과 시큰거리는 기운까지 함께 번져왔다.‘민혁 씨가 여기서 밤을 새웠을 줄이야... 거기다 몸 상태가 그렇게까지 나빠졌다고?’최수빈은 차 곁에 서서 깊은 잠에 빠져 있으면서도 피로를 감추지 못하는 주민혁을 바라봤다.하지만 차마 깨우지는 못했다.곧 그녀는 려운에게 눈짓해 옆으로 물러나게 한 뒤, 조용히 입을 열었다.“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왜 피까지 토한 거예요. 그런데도 왜 여기서 밤을 새우고 있었던 거죠?”려운은 한숨을 내쉬며 차 안의 주민혁을 한 번 힐끗 바라봤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저도 자세한 사정까지는 잘 모릅니다. 다만 대표님이 요즘 계속 너무 가라앉아 계세요. 겉으로는 모든 일에 담담한 척하시고 아무것도 자신을 흔들 수 없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옆에서 오래 지켜본 사람으로서 느끼기엔 분명 상태가 이상합니다. 우울증이 가장 심했을 때보다도... 지금이 더 다운된 상태예요.”려운은 망설이는 듯하다가 결국 한층 더 낮아진 목소리로 진실을 꺼냈다.“아마... 대표님이 알게 되신 것 같습니다. 예전에 유산하신 그 아이가... 사실 대표님 아이였다는 걸요.”최수빈은 그대로 굳어버리며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손끝은 차갑게 식어갔고 수많은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들어 정신없이 뒤엉켰다.이미 다 지나간 일이라고, 이제는 놓아버렸다고 생각해 왔었다.그런데도 그 일이 다시 입 밖으로 꺼내지는 순간, 심장은 여전히 바늘에 찔리는 듯 아파왔다.그때, 차 안에 있던 주민혁이 천천히 눈을 떴다.바깥의 목소리에 잠이 깼는지, 밤새 한숨도 못 잔 탓에 더는 깊이 잠들 수 없었던 것인지 알 수 없었다.그의 시선이 차창 너머로 곧장 최수빈에게 닿았다. 짙고도 무거운 눈빛이었다.이러한 상황에 려운은 조용히 한발 물러났다. 두 사람만 남도록 눈치껏 자리를 비켜준
Read more

제1230화

하지만 최수빈은 주민혁은 원래 자신을 쉽게 용서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의 집착과 죄책감은 이미 오래전부터 마음 깊은 곳에 뿌리내렸고, 이제는 거대한 나무처럼 자라나 그를 빠져나오고 싶어도 쉽게 벗어날 수 없을 만큼 단단히 옭아매고 있었다.주민혁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최수빈을 바라봤다. 그리고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가끔은... 네가 날 좀 더 미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최수빈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가 이내 미간을 좁히며 쏘아붙였다.“설마 괴롭힘당하는 거 좋아하는 타입이에요? 내가 민혁 씨를 미워해야 속이 시원해요?”그런 생각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알고 있지만서도 주민혁은 반박하지 않았다.최수빈이 자신을 미워해 준다면, 어쩌면 마음속 죄책감이 조금은 덜어질지도 모르니 말이다.또한 상처받은 것으로 인해 생긴 감정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지금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담담하게 굴기보다, 차라리 자신을 원망하고 미워하는 편이 주민혁에게는 더 견딜 만했을지도 몰랐다.그러나 최수빈은 아니었다.그토록 많은 상처를 받았고, 모든 진실을 알게 된 뒤에도, 주민혁을 미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다독이고 위로하려 하고 있었다.그 다정함은 무딘 칼날 같았다.한 번에 깊게 베어내지는 않지만 몇 번이고 천천히 그의 심장을 저며 왔다.그래서 그는 더욱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말이라는 건 결국 너무도 무력한 것인지라 최수빈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다 지난 일이에요.”한참 뒤, 그녀가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때 일은 민혁 씨의 잘못만도 아니었고 나도 고집이 너무 셌어요. 우린 둘 다 너무 오래 과거에 묶여 있었어요. 이제는... 조금씩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 해요.”주민혁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내려놓을 수 없어. 난 아마 평생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거야.’최수빈도 알고 있었다. 주민혁이 이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건 하루아침에 될 일이 아니라는 걸.집착도 후회도 너무
Read more
PREV
1
...
121122123124125
...
161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