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Chapter 371 - Chapter 380

604 Chapters

제371화

주예린은 주먹을 꼭 쥔 채 결심한 듯 말했다.“괜찮아요. 설령 주시후가 이번 대회에 참가하더라도 전 반드시 걔를 이기고 1등을 해서 엄마의 체면을 세워드릴 거예요.”최수빈은 그런 딸을 바라보다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우리 예린이는 엄마 눈에 언제나 가장 착하고 멋진 딸이야. 1등이랑은 상관없단다. 어떤 결과든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면 그걸로 충분해. 성적은 중요하지 않아.”그녀에게 딸의 행복과 건강보다 중요한 건 없었다. 이런 대회는 그저 주예린의 취미일 뿐, 아이가 즐거워한다면 그걸로 족했다.그때, 뒤쪽에서 박하린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우리 시후!”주시후는 엄마를 보자마자 두 눈을 반짝이며 달려갔다.“엄마!”최수빈은 살짝 몸을 비켜 아이가 지나가도록 했다.주시후는 곧장 박하린의 품으로 뛰어들었다.“엄마가 올 줄 알았어요! 잠시 후에 제가 1등 해서 엄마 자랑스럽게 해드릴게요!”그러자 박하린은 눈썹을 살짝 올리며 웃었다.“그래? 그럼 엄마는 시후가 1등 하는 거 기다릴게.”“똑똑하고 멋진 사람이 제 엄마잖아요. 전 분명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아서 절대 실망시켜드리지 않을 거예요.”그는 옆에 서 있는 주민혁을 힐끗 바라보고 덧붙였다.“아빠도 멋지고 훌륭하시니까 저도 아빠 유전자를 물려받았죠.”주민혁은 미소를 지으며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래, 잘 해봐.”그렇게 그들의 다정한 모습을 바라보던 주예린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손끝에 힘이 들어갔다.‘아빠가 좋아하는 건 똑똑하고 뛰어난 사람이잖아. 그렇다면 나도 될 수 있어. 주시후보다 더 잘하면 되잖아.’하지만 주민혁은 언제나 주예린에게만 차가웠다.‘언제부터였을까. 아빠가 날 미워한 게...’최수빈은 딸의 얼굴에서 미묘한 변화를 읽고 조용히 말했다.“예린아, 지나간 일은 이제 그만 놓아주자.”“알아요, 엄마.”주예린은 고개를 들며 대답했다.“하지만 그래도... 슬프고 속상한 마음까지 바로 사라지지는 않아요.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언젠간 괜찮아질 거예요.”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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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2화

주최 측 관계자가 조윤미의 말을 듣자 무심코 최수빈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위아래로 훑어보는 눈빛에는 잠시 놀란 기색이 스쳤다. 아무래도 그녀의 또렷하고 고운 외모가 눈에 띄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내 그는 시선을 거두며 물었다.“이분은... 친구분이신가요?”조윤미는 가볍게 웃으며 주시후를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우리 손주를 돌보던 예전 도우미예요.”그제야 주최 측 인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한 듯 말했다.“아, 그러시군요. 참 인심도 좋으시네요. 옛날 도우미분도 챙기시고.”조윤미는 입꼬리를 씩 올리며 거만하게 최수빈을 흘끗 쳐다봤다.“주최 측에서도 괜찮다잖아요. 우리랑 같이 앉지 그래요?”마치 ‘너 같은 사람이 이런 자리에 앉을 수 있겠어?’라는 뉘앙스였다.최수빈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 눈빛은 차갑게 빛났다.“사양할게요. 전 남 밑에 붙어서 기어오르는 건 배워본 적이 없어서요. 그런 재주는 여사님이 더 익숙하시잖아요. 그 솜씨, 계속 본인만 쓰시길 바랍니다.”말이 끝나자마자 최수빈은 주예린의 손을 잡고 자리를 떠났다.이 말은 곧장 박하린의 얼굴빛을 굳게 만들었다. 겉으로든 속으로든 그녀와 어머니를 모두 깎아내린 셈이었다.“민혁 오빠.”박하린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말했다.“지난번 할머니 일 이후로, 수빈 씨가 아직도 나한테 오해가 있는 것 같아. 우리가 무슨 기생충이라도 되는 듯이 말하잖아. 우리가 언제 남한테 빌붙어서 기어올랐다 그러는 거지? 나랑 오빠는 어릴 때부터 친구였잖아.”주민혁은 고개를 살짝 돌려 그녀를 보았다.“최수빈이 어떻게 생각하든 네가 그렇게 신경 쓸 일이야?”목소리는 담담했고 감정이 묻어나지 않았다.박하린은 순간 아무 말도 못 하고 멈칫했다.“그건 아니지만...”그녀는 이마를 찌푸리며 낮게 말했다.“그래도 너무 사람을 무시하잖아.”주민혁은 느긋하게 소매를 정리하며 담담히 말했다.“사람마다 품격이 있지. 스스로 지킬 줄 알아야 하는 거야. 억지로 섞이면 오히려 품격이 떨어질 수도 있지.”주최 측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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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3화

최수빈은 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1등이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야. 이런 대회는 참여하는 게 더 의미 있단다.”그러자 주예린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그건 안 돼요. 엄마는 나갈 때마다 다 1등이잖아요. 저도 꼭 1등 해야 해요. 엄마 얼굴에 먹칠하기 싫어요. 특히 오늘은 주시후도 있잖아요.”아이의 눈빛에는 또래답지 않은 강한 승부욕이 깃들어 있었다.최수빈은 어이없으면서도 사랑스럽다는 듯 미소 지으며 아이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아직 어린데, 승부욕이 벌써 이렇게 강해서야.”...곧 대회가 시작되었고 아이들은 각자 자리에 앉아 시험 준비를 했다.1차는 필기시험, 2차는 물리 실험이었다.필기시험에서 주시후와 주예린이 같은 줄에 나란히 앉았고 지민준은 맨 앞자리에 있었다.무대 아래 관객석에는 조윤미와 박하린이 앉아 있었다.“시후야, 화이팅!”“엄마, 아빠, 저 꼭 1등 할게요!”주시후가 외치자 주민혁은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그 모습을 본 주예린은 순간 아빠를 흘깃 쳐다봤다.주민혁은 시선을 돌려 아이를 잠시 바라보았는데 여전히 부드러운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주예린은 입술을 꼭 다물고 시선을 재빨리 엄마 쪽으로 돌렸다.그러자 최수빈은 조용히 손으로 ‘화이팅’ 제스처를 해 보였다.대회가 시작되자 아이들은 모두 펜을 쥐고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최수빈은 객석에서 딸이 문제를 푸는 모습을 눈으로 따라가고 있었다.그때 누군가가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실례하겠네. 혹시 아까 민준이에게 휴대폰을 빌려준 분이신가?”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 정중하게 서 있었다. 나이는 일흔 후반쯤 되어 보였다.“네, 맞아요.”최수빈이 부드럽게 대답했다.“별일 아니에요.”그녀는 그 일로 굳이 보호자가 직접 찾아올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노인은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다.“민준이가 그러더군. 한 이모가 도와주셨으니까 꼭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한다고. 요즘 아이가 예의에 대해 많이 예민하네. 자기 나름의 규칙을 어기면 불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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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4화

무대 위 대형 스크린에 조윤미가 찍은 영상이 재생되었다.화면 속 주예린은 분명히 고개를 한 번 주시후 쪽으로 돌렸지만 그것이 답안을 본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주예린은 화면을 뚫어지게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사실 아이는 답안을 본 게 아니라 단지 그쪽 벽에 걸린 시계를 본 것이었다.하지만 아무도 주예린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그때, 맨 앞줄에 앉아 있던 지민준이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저는... 주예린이 부정행위를 했을 것 같지 않아요.”그 말을 들은 조윤미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너, 쟤에 대해 알아? 아는 사이도 아닌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해? 심사위원들도 아직 판단 안 내렸는데, 감히 어디서 끼어들어?”이에 눈썹을 잔뜩 찌푸리더니 지민준은 낮게 대답했다.“그럼 심사위원님들의 결정을 기다리죠. 하지만 만약 주예린이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게 밝혀지면 아줌마는 이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사과하셔야 해요.”조윤미는 비웃음을 지으며 팔짱을 꼈다.“사과? 네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저래라야?”“잘못을 지적했으면 그 결과도 책임지는 게 어른 아닌가요?”지민준은 단호하게 말했다.“증거 없이 남을 모함하고 나중에 아니면 외면하는 게 어른다운 일은 아니잖아요.”조윤미의 입가에 냉소가 번졌다.“흥, 꼬마가 어른을 가르치려 드네. 좋아, 만약 내가 주예린을 억울하게 몬 거라면 여기 있는 사람들 앞에서 직접 사과하지. 그럼 되겠어?”그녀는 여전히 자신만만했다.‘고작 애 하나가 뭘 안다고 나를 가르치려 들어?’ 하는 오만함이 눈빛에 그대로 드러났다.무대 아래, 박하린은 이 모든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보며 조용히 주민혁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민혁 오빠, 예린이는 원래 시후보다 성적이 좀 낮았지?”주민혁은 담담히 대답했다.“잘 모르겠는데.”그 뜻밖의 반응에 박하린은 잠시 멈칫했다.“내가 본 바로 예린이는 늘 시후보다 한 단계 정도 아래였어. 시후는 학교에서도 늘 1등이었고.”그녀는 잠시 말을 고르더니 그럴싸하게 결론을 내렸다.“그런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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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5화

최수빈은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고 박하린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저렇게 버틴다고? 딸에 대한 자신감도 지나치네. 그래, 그럼 끝까지 가보자고. 망신당해봐야 정신 차리지.’그때 최수빈이 냉소를 띠며 단호히 무대 위로 올라서더니 주예린을 등 뒤로 감싸 안으며 말했다.“엄마, 저 정말 안 베꼈어요. 문제 전부 제가 스스로 푼 거예요.”아이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눈빛은 진심이었다.열심히 공부하고 풀어낸 문제들인데 하루아침에 부정행위자로 몰리자 억울함과 분노가 한꺼번에 치밀었다.무엇보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내는 그 순간이 너무 괴로웠다.최수빈은 딸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었다.“엄마는 널 믿어.”그 말에 주예린의 눈가가 붉어졌다.최수빈은 고개를 들어 조윤미를 똑바로 바라봤다.“여사님 말대로라면 마지막 세 문제를 시후가 풀었던 걸 그대로 베꼈다는 거죠, 맞습니까?”“맞아요.”조윤미는 팔짱을 끼며 거만하게 대답했다.“그 세 문제는 이번 시험에서 제일 어려운 문제죠.”“좋아요.”최수빈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간단하죠. 주최 측에서 지금 두 아이의 시험지를 가져와서 바로 공개 채점합시다. 정말로 베낀 거라면 풀이 과정까지 완전히 같을 테니까요.”그녀의 말에 장내가 술렁였다.“이의 있나요?”조윤미는 코웃음을 쳤다.“부정행위자가 무슨 의견이 있겠어요. 난 자신 있어요.”그녀는 이미 주시후의 실력을 알고 있었다.아이의 물리 감각은 뛰어났고 평소 문제를 거의 틀리지 않았다. 그러니 이번에도 당연히 만점일 거라 확신했다.주시후는 팔짱을 낀 채 냉소적으로 말했다.“정말 뻔뻔하네. 전에도 내 거 베끼더니, 이번에도 또?”“나 안 그랬어!”주예린이 울먹이며 대꾸했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곧 심사위원들이 두 사람의 시험지를 꺼내어 대형 스크린에 띄우고 즉석 채점을 시작했다.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화면으로 쏠렸다.초반부 문제들은 두 아이 모두 정답이었으나 문제는 마지막 세 문제였다.주시후는 풀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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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6화

상황은 이미 명확해졌다.주예린이 주시후 걸 베꼈다니? 그렇다면 어째서 표절당하는 사람이 전부 틀리고 표절하는 쪽은 전부 맞았겠는가?주변에서는 웅성거림이 그칠 줄 몰랐고 조윤미의 얼굴은 점점 굳어갔다. 이 이상 소란을 피운다면 더 큰 망신만 당할 게 뻔했다.박하린의 말을 들은 조윤미의 표정이 굳었다.“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하는 거야?”박하린은 본능적으로 옆에 서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주민혁은 두 손을 뒤로 깍지 낀 채, 무표정하고 담담한 얼굴로 그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했다.그의 속마음을 박하린은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 감히 그를 믿고 나설 수도 없었다.박하린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굳은 얼굴로 단상 위로 걸어 올라가 어머니의 팔을 잡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엄마, 복수할 기회는 이번 하나뿐이 아니에요. 심사위원들은 이미 결론을 내렸고 엄마가 보여준 영상도 결정적인 증거는 아니잖아요.”그러고는 냉정하게 말을 이었다.“상대를 완전히 끝낼 수 있는 증거가 아니라면 반대로 역공당할 각오도 해야죠.”지금처럼 제대로 반박당하고 체면을 구긴 마당에 끝까지 버티고 사과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건 그저 승복할 줄 모르는 사람이란 걸 증명할 뿐이었다.조윤미는 분노로 이를 악물었다. 억울함을 삼키며 밑으로 떨어져 있던 손을 꽉 쥐었다.‘내가 분명히 봤는데...’“하지만 예린이가 그렇게 잘할 리가 없어. 너도 알잖니, 우리 시후는 학교에서 늘 1등이야. 그런 애가 주예린보다 떨어질 수가 없잖아?”“엄마 말뜻이 뭔지 다 알아요. 하지만 지금 눈앞의 결과가 사실이에요.”박하린의 목소리가 단호했다.“사과 안 하면 도대체 어떻게 마무리하실 건데요? 계속 이렇게 끌면 결국 우리만 더 민망해져요.”그녀의 얼굴에도 냉기가 돌았다. 조윤미에게 더는 고집부리지 말라고 타이르며 말했다.“나중에 명예를 되찾을 기회는 얼마든지 있어요. 굳이 이번 일에 목맬 필요 없어요.주예린은 이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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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7화

최수빈은 조윤미를 고요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눈빛에는 차가운 빛이 스쳤다.곧 그녀가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저는 심사위원단에게 제 딸의 명예를 바로잡아줄 것을 요구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대회에는 더 이상 참여할 의미가 없어요.”주예린이 받은 억울함, 오늘 이 자리에서 반드시 되찾아야 했다.박하린은 이를 악물고 최수빈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결심한 듯 미소를 지으며 사과의 말을 건넸다.“미안해요. 우리 엄마가 나이가 많으셔서 판단이 흐리셨어요. 엄마를 대신해 정식으로 사과드릴게요. 이번 일은 분명 예린이에 대한 오해였습니다. 예린이의 성적은 실력으로 얻은 당연한 결과예요.”그녀는 말을 마치고 최수빈과 주예린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조윤미는 속이 뒤틀렸다. 차마 삼키기 어려운 수치였다. 평생 이혜정과 겨뤄왔는데 이제는 자신의 딸이 이혜정의 딸과 손녀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니, 그보다 더한 굴욕이 있을까.무대 아래에서는 이 장면을 두고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이어졌다.그때 지민준이 팔짱을 낀 채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이런 식의 사과, 주예린 너는 만족해?”아이는 고개를 살짝 돌려 주예린을 바라봤다.“만약 마음에 안 든다면 우리 아빠더러 나서서 해결해달라 할 수도 있어.”지민준은 늘 옳고 그름이 분명했다.박하린이 이미 사과했으니 그 이상 물고 늘어질 이유도 없었다.게다가 물리 경시대회는 아직 계속돼야 했다.주예린이 입을 열었다.“난 더 이상 할 말 없어.”그러고는 시선을 주시후에게로 옮기며 차분하게 덧붙였다.“공부가 안되면 더 노력해야지. 남이 베낀 거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예전처럼 이제 너한테 양보하지 않을 거야. 늘 1등을 내주던 그때처럼은 하지 않을 거라고.”예전에는 늘 원금영이 말했었다.주시후는 주씨 가문의 얼굴이고 후계자니까 유치원에서도 뭐든 1등을 해야 한다고.그래서 주예린은 언제나 주시후에게 양보하며 착하고 어른스러운 아이 역할을 해야 했다.가끔은 주민혁의 눈에 들고 싶어 1등을 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 1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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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8화

박하린은 잠시 멍하니 아들을 바라봤다.주시후가 먼저 입을 열었다.“요즘 들어 공부 성적이 너무 떨어지는 것 같아요. 어차피 앞길은 탄탄할 거라 굳이 성적으로 증명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남들보다 뒤처지고 싶진 않아요.”특히 주예린에게는 더더욱 말이다.예전에는 뭐든 자신이 1등이었고 언제나 주예린을 한참 뒤에 두곤 했다.그런데 이번에는 주예린에게 밀렸다. 그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쓰리고 자존심이 상했다.‘새엄마는 지금쯤 얼마나 우쭐해 하고 있을까?’그래서 아이는 다짐했다. 최수빈이 후회하게 만들겠다고.왜 그때 자신이 아닌 주예린을 데리고 갔는지, 평생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다고.그리고 자신이 주예린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걸 증명하겠다고.박하린은 아들을 다독였다.“그럼 엄마가 직접 도와줄게. 그러면 분명 주예린보다 훨씬 잘할 수 있을 거야. 아빠한테도 배워보면 되잖아. 아빠는 더 대단하시니까.”그녀는 부드럽게 웃으며 주시후를 주민혁 앞으로 데려갔다.“그렇지, 민혁 오빠?”주시후는 눈을 반짝이며 아빠를 올려다봤다.“정말이에요, 아빠?”그러자 주민혁은 시선을 내리고 미소를 지었다.“엄마가 더 대단하지.”그 장면을 무대 아래로 내려온 최수빈이 모두 목격했다.지민준이 그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돌려 주예린에게 물었다.“주예린, 너랑 주시후 이름이 많이 비슷한 것 같은데 혹시 남매야?”아이는 고개를 갸웃하며 덧붙였다.“만약 남매라면 왜 주시후는 너희 엄마한테 엄마라고 안 불러?”그 말에 박하린과 조윤미의 시선이 동시에 몰려왔다.최수빈은 미세하게 눈썹을 찌푸렸다.하지만 주예린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고 마치 예상한 질문이라도 되는 듯,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은 채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아니, 나랑 주시후는 남매가 아니야. 이름이 비슷한 건 그냥 우연이고.”아이의 눈매가 반달처럼 휘어졌다.하지만 지민준은 여전히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그럼 네 아빠는? 아빠 성도 주씨야?”주예린은 살짝 입술을 다물었다가 조용히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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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9화

“흥미나 적성은 키워가는 거야. 시후는 지금 이미 우수하고 이과 쪽에도 소질이 있으니 일단 배워보게 해. 정말 싫으면 그때 다른 방향으로 길러도 늦지 않아.”박하린은 잠시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게다가 시후는 미래의 후계자잖아. 태어날 때부터 수많은 책임을 짊어진 아이야. 뭘 좋아하고 싫어할 여유 따윈 없어.”지금부터라도 주시후를 제대로 길러야 했다. 후계자라 해도 능력이 부족하면 언제든 교체될 수 있으니 말이다.요즘 들어 주예린의 두드러진 성장이 그녀에게는 커다란 위협으로 다가왔다.결국 주예린도 주씨 가문의 ‘정통 혈통’이었다. 만약 최수빈이 훗날 그 딸을 앞세워 권력을 되찾으려 한다면?어쨌든 혈육인 이상 주예린 역시 상속권을 주장할 자격이 있었다.반면 주시후는 그런 부분에서 불리했다.그렇다면 주시후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압도적인 실력뿐이었다.곧 발걸음을 멈추더니 주민혁은 옆으로 고개를 돌려 박하린을 바라봤다.눈빛은 맑고 냉철했다. 잠시 침묵하던 그는 가볍게 웃으며 마치 먼 곳을 꿰뚫어 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주씨 가문의 짐은 누가 짊어지느냐가 아니라 누가 받아낼 수 있느냐에 달린 거야.바람이 부는 자리에서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방향키를 쥐게 되겠지.”박하린은 잠시 얼굴을 찡그렸다.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그 남자는 멀찍이 걸어가고 있었다.조윤미가 뒤따라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너무 분명한 말이잖아. 아들 잘 키우라는 뜻이지. 시후가 감당할 수 있다면 주씨 가문은 혈육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거야.”박하린은 고개를 숙여 주시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래요... 맞아요, 그 말이 옳아요. 우리 아들, 엄마가 꼭 훌륭하게 키워줄게.”주시후는 고개를 들어 엄마를 올려다봤다.무슨 뜻인지는 잘 몰랐지만 적어도 이 엄마가 자신을 존중해 준다는 걸 알았다.그 새엄마처럼 뭐든 간섭하거나 금지시키지 않았다.그래서 주시후는 이 엄마와 함께 있을 때 언제나 행복했다....물리 경시대회의 실험 라운드가 시작됐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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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0화

노인이 한 말은 사실 일리가 있었다.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정보의 벽’이었다.일반 사람들은 알 수도 없는 수많은 통로와 기회가 존재했고 그 차이가 곧 인생의 격차로 이어졌다.최수빈은 미소를 지으며 정중히 답했다.“감사합니다만, 저는 딸이 스스로 선택하길 바랍니다.”이미 한재준이 주예린을 제자로 받아 육성 중이었고 훗날에는 국가 공인 인증까지 받을 수 있었다.그러니 지금 다른 길을 모색하는 건 도의가 아니었다.사람들로 북적이는 대회장 한복판에서 노인은 그녀의 단호한 태도에 잠시 놀랐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제안을 받자마자 반색하며 고개를 숙였을 텐데 이 여자는 달랐다. 기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묘한 품격이 있었다.“할아버지!”그때 지민준이 경기장을 뛰쳐나와 작은 얼굴을 이리저리 돌리며 물었다.“아빠는요?”“밖에서 기다리고 있단다.”노인이 답했다.잠시 후 주예린도 천천히 걸어 나왔다.얼굴에는 자부심이 가득했고 눈빛은 또렷했다.“엄마, 저 잘했죠? 엄마랑 한 선생님 체면 안 구겼죠?”작은 소녀의 당찬 표정에 최수빈의 마음이 따뜻하게 풀렸다.“잘했어, 정말 자랑스러워.”노인은 고개를 약간 기울이며 그녀를 바라봤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나중에 어려운 일 생기면 언제든 연락하세. 내 이름은 지철수라 하네.”그 말을 듣자 최수빈의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렸다.은산시의 지씨 가문은 주씨 가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명문가이자 대대로 정계와 재계를 오가며 영향력을 행사해온 집안이었다.‘혹시 그 지씨 가문 사람인 건가?’곧바로 최수빈은 고개를 숙이며 공손히 답했다.“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그 사이, 두 아이는 옆에서 휴대폰을 꺼내 서로의 연락처를 교환하고 있었다.지민준은 흡족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앞으로 모르는 문제 나오면 너한테 물어봐야겠다. 나 너무 바보라고 생각하지 말기야.”주예린은 휴대폰을 넣으며 환하게 웃었다.“그럴 리가! 오늘 나 도와줘서 고마워.”멀지 않은 곳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주시후는 눈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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