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Bab 381 - Bab 390

604 Bab

제381화

“나이에 비해 실력이 대단하네.”주예린은 삼촌의 칭찬을 듣자 얼굴이 빨갛게 물든 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삼촌, 과찬이에요. 민준이도 정말 잘했어요.”지민준은 배시시 웃으며 주예린 옆으로 쏙 다가갔다.“그 칭찬은 좀 과하잖아. 괜히 내가 진짜 잘하는 사람 된 기분이 들어.”지규원은 자기 아들이 이렇게 적극적인 걸 보고 의외라는 듯 눈썹을 살짝 올렸다.지민준은 낯선 아이들과 노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눈앞의 이 여자아이는 예외였다.“지 대표님!”지규원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갑자기 누군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지규원의 말을 끊었다.멀리서 지규원을 발견한 조윤미는 흥분이 가득 번지는 표정을 한 채 서둘러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 지창 그룹 조윤미예요.”지규원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조윤미를 바라볼 뿐, 손은 내밀지 않았다.주민혁과 박하린도 그때 함께 다가왔다.조윤미의 손은 허공에 그대로 어색하게 멈춰버렸다.지규원은 아이를 데리고 있는 세 사람을 바라보며 물었다.“주 대표님, 여긴 무슨 일로 오셨죠?”“아들을 데리고 대회에 참가하러 왔습니다.”주민혁은 표정이 담담하긴 하지만 예의만큼은 지키며 간단하게 대답했다.주예린은 그 말을 들으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지만 고개를 들고 주민혁을 바라보지 않았다.그 말이 끝나자마자 주민혁의 전화벨이 울렸다.업무에 관련된 전화라는 걸 알아채자 주민혁은 휴대폰을 들어 보이며 자리를 옮겼다.한편, 지민준은 조윤미를 보는 순간 얼굴이 차갑게 굳어버렸다.“아빠, 저 나쁜 할머니랑 말하지 마세요.”지민준의 표정은 여전히 차가웠다.“저 할머니는 시비를 가릴 줄도 몰라요. 자기 손자 잘못이나 감싸며 예린이 자기 손자 걸 베꼈다고 누명을 씌웠단 말이에요.”지규원은 손을 들어 아들의 뒤통수를 가볍게 감싸며 진정하라는 신호를 보냈다.그러자 지민준은 코웃음을 치더니 곧바로 입을 닫아버렸다.박하린은 그 모습을 보고 순간 멍해졌다.박하린 역시 지규원을 알고 있었지만 지민준이 지규원의 아들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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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2화

조윤미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지 대표님, 이번 일은 제 판단 미스였어요. 오로지 공정과 정의만 생각하다 보니 억울한 아이를 위해 나선다는 생각만 하게 된 것 같아요. 세상에는 편법으로 올라가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제가 그런 사람들을 정말 혐오하거든요. 그래서 순간적으로 좀 흥분했나 봐요.”조윤미는 얼굴을 찌푸리며 지규원을 바라봤다.“게다가 아이 말만 전적으로 믿을 수도 없죠. 아이들은 늘 사실을 과장해서 말하잖아요.”지규원은 그 말에 눈썹을 살짝 꿈틀거렸다.“우리 아들을 제가 더 잘 알아요, 아니면 조윤미 씨가 더 잘 알아요? 사실을 과장했는지 아닌지는 제가 판단합니다.”박하린은 옆에서 눈을 천천히 감았다.“엄마, 이제 그만 말해요.”박하린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프로젝트 협력을 진심으로 원하는 태도를 보였다.“저희 지창 그룹은 진심으로 지우 그룹과의 협업을 원해요. 프로젝트 기획서는 곧 지우 그룹 본사로 전달될 예정이에요. 지 대표님께서 검토 후 결정해 주시기 바랍니다.”그 말이 끝나자마자 이혜정이 바로 도착했다.“외할머니!”주예린은 외할머니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달려갔다.이혜정은 얼른 무릎을 굽혀 워낙 애교가 많은 주예린을 받아 안았다.“우리 귀염둥이, 오늘 1등 했다며? 외할머니가 축하해 주러 왔어. 오늘 저녁에는 뭐 먹고 싶어? 외할머니가 다 해줄게. 예린이 갖고 싶던 블라인드 박스 세트도 사줄게.”“정말요?”주예린은 외할머니 품에서 두 팔을 흔들며 환호했다.“그럼, 당연하지.”이혜정은 주예린의 등을 다정히 토닥이고는 내려놓았다.그러곤 시선을 돌려 눈앞의 지규원을 바라봤다.“지 대표님.”이혜정이 곧장 지규원에게 걸어가자 지규원은 이혜정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동비의 이혜정이에요. 예전에 정부 회의에서 뵌 적이 있죠.”지규원은 손을 내밀어 악수하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기억납니다. 귀사의 AI 의료 프로젝트는 굉장히 선구적이었죠.”두 사람은 간단히 인사를 나누며 서로의 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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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3화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조윤미와 박하린의 얼굴이 얼음처럼 굳어버렸다.이 정도로 선을 그어 말했으니 두 사람이 굳이 더 이상 이곳에 남아 있을 명분도 체면도 없었다.이때, 이혜정이 조윤미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조 대표님 실력이야 이미 다들 아는 바 아닌가요? 주 대표님이 투자까지 해주시니 사업이 승승장구일 텐데, 고작 이 한 건을 놓치는 게 그렇게 심각할 일은 아니겠죠?”그 말은 조윤미의 아픈 곳을 정확히 찔러버린 칼과도 같았고 조윤미의 얼굴빛도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그동안 아무 말 없이 있던 최수빈은 여전히 조용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최수빈은 철저한 방관자가 되어 이 모든 일이 좋은 구경거리라도 되는 듯 냉랭하게 바라볼 뿐이었다.최수빈의 태연한 태도를 보자 박하린의 속은 더 뒤틀렸다.그때, 전화 통화를 마친 주민혁이 돌아왔다.두 사람의 싸늘한 표정을 보자 주민혁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얘기가 잘 안됐나 보네.”“아빠...”지금껏 어른들의 눈치만 보며 한마디도 못 하던 주시후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입을 뗐다.“그래.”지규원은 얼른 시선을 내려 주시후를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태연하게 웃었다.“주 대표님은 참으로 훌륭하신 분인데 자녀 교육은 좀 더 신경 쓰셔야겠네요.”지규원의 말투는 나긋했지만 안에 담긴 의미는 명확했다.그러곤 이내 최수빈에게 시선을 돌렸다.“반면 이분은 정말 훌륭한 딸을 두셨죠. 우리 아버지도 칭찬이 끊이질 않더군요. 직접 제자로 들이고 싶다고 하시던데요.”박하린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버렸다.지철수는 학계의 거목으로 항공우주 업계의 엔지니어를 절반 이상 배양한 업계의 전설로 불리는 인물이었다.박하린도 지철수를 주시후의 스승으로 모시려고 여러 번 접촉했었지만 결국 그 인연은 성사하지 못했다.그런데 이제는 그 모든 가능성이 단번에 끊겨버렸다.박하린은 가슴이 답답하게 조여왔다.아까 무대 위에서 조윤미의 무리한 행동을 막지 못한 게 결국 독이 되었고 이젠 주시후의 미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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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4화

박하린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후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바닥에 주저앉았다.지금 박하린의 머릿속은 그야말로 뒤죽박죽이었다.지금 상황은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주시후의 인재 교육은 흐름이 끊겼고 회사 프로젝트는 어중간하게 막혀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이럴 때 큰 프로젝트를 제대로 대박 터뜨려서 자금 회전을 시켜야 하는데 단 하나의 연결 고리가 빠져 모든 프로젝트가 제자리에 멈춰 있었다.지창 그룹은 위태롭기 그지없고 넥스트 테크는 이제 막 걸음마 단계라 수익도 아직 불안정했다.조윤미는 그런 딸의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미간을 찌푸렸다.“도대체 왜 그래? 민혁이 도와주지 않겠다고 했어?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잖아. 그 애가 도와주지 않으면 내가 진서령한테 부탁할게.”조윤미의 절친인 진서령이 이런 상황에서 모른 척하며 발을 뺄 리 없었다.그 말에 박하린이 고개를 들었다.“엄마, 남자한테 기대는 건 결국 믿을 게 못 돼요. 능력 있고 실력 있으면 직접 부딪혀야죠. 정말 더는 어쩔 수 없을 때가 아니면 민혁 오빠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요.”박하린은 자기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능력도 부족한 사람처럼 보이기 싫었다.게다가 박하린은 남자에게 의지하고 싶지도 않았고 오히려 주민혁의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고 싶었다.“민혁 오빠가 절 끝까지 책임져줄 거라고는 해도...”박하린은 엄마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모든 일을 민혁 오빠가 대신 해결해 준다면 결국 전 민혁 오빠의 인상속에 무능한 사람으로 남게 될 거잖아요?”조윤미는 말문이 막혔다.“네가 그렇게 유능하다면 지창 그룹이 왜 네 프로젝트에 그렇게 많은 돈을 쏟았겠어?”박하린은 그 말에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왜 이런 상황에서조차 엄마가 싸움을 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제가 없었으면 민혁 오빠가 지창 그룹에 2천억을 투자했겠어요? 그 돈이 없었으면 엄마가 뭘 도울 수 있었겠어요? 우리는 가족이에요. 익은 밥 먹고 선소리하는 짓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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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5화

이혜정은 고개를 약간 돌려 최수빈을 흘끗 바라봤다.하지만 최수빈의 얼굴에는 아무런 동요도 없었고 담담한 표정 그대로였다.그걸 확인한 이혜정은 비로소 찌푸렸던 미간을 조금 풀었다.괜히 박하린의 이름이 나와 최수빈이 심기가 불편해할까 봐 걱정했기 때문이다.지규원 같은 사람이 박하린의 이름을 들어봤을 정도라면 주민혁이 얼마나 열심히 박하린의 앞길을 닦아줬는지 알 수 있었다.하지만 그렇게 길을 넓혀줬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최수빈은 제대로 걸어가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아무래도 실력만큼은 그 엘리트라는 이미지와 맞지 않는 모양이네요.”지규원의 시선이 최수빈에게 향했다.“최수빈 씨는 넥스트 테크를 강적이라 생각하나요?”그러자 최수빈이 고개를 들어 부드럽게 대답했다.“우린 모두 같은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죠. 경쟁이라고 여길 건 없어요.”사실 최수빈은 본래부터 넥스트 테크를 경쟁 상대로 여긴 적이 없었다.이제 막 시작한 회사가 대기업의 기틀을 다지려면 결국 시간이 필요했다.이 업계의 프로젝트나 실적이란 건 말로만 해서 성사하는 게 아니었다.다만 박하린은 사사건건 천공연구원을 자기 기준선이자 경쟁상대로 삼고 있었다.“최수빈 씨는 그릇이 참으로 큰 사람이네요.”지규원은 흥미롭게 최수빈을 바라봤다.“솔직하게 말하자면 우리 아버지가 최수빈 씨를 알아요.”그 말에 최수빈은 살짝 놀란 듯 고개를 갸웃했다.기억을 아무리 더듬어봐도 오늘 이 자리 전에는 지철수를 만난 적이 없었다.최수빈은 이내 침착하게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그렇다면 영광이네요. 다만 제가 업무가 너무 많아서 그런지 그분을 잘 기억하지 못하겠네요.”지규원의 입꼬리가 올라갔고 눈빛에는 은근한 호감이 스쳤다.“말씀도 참 잘하시네요.”지규원은 천천히 대화를 이어갔다.“예전에 우리 아버지가 511연구원에서 멀리서 최수빈 씨를 본 적이 있다고 하시더군요. 한재준 교수가 양성한 제자들은 다들 실력이 대단하다면서요. 그땐 아버지가 다른 일로 바빠서 인사도 못 했다고 하더라고요.”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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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6화

딸의 명예가 걸린 일이었기에 최수빈은 절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주민혁은 그윽한 눈빛으로 최수빈을 바라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주민혁이 아직 그 소문을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최수빈은 일단 주민혁에게 경고를 주기로 했다.발 없는 소문이 천리를 간다고 언젠가는 주민혁이 반드시 듣게 될 것이다.상류층 사회에서 떠도는 소문은 순식간에 퍼지기 마련이었다.최수빈은 말을 마치자마자 주민혁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돌아섰다.이런 자리에서 주민혁을 마주친 것만으로도 이미 기분이 더러웠기에 최수빈은 더는 불필요한 말 한마디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최수빈과 이혜정은 지규원과의 협상을 순조롭게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올랐다.주예린은 눈이 반달처럼 휘어져 있었는데 딱 봐도 기분이 한껏 좋아 보였다.“민준이랑 노는 게 그렇게 좋아?”최수빈이 묻자 주예린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민준 오빠가 저한테 진짜 잘해줘요.”지민준은 주시후보다 훨씬 더 부드럽게 주예린을 대했다.오늘이 되어서야 주예린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차이가 정말 크다는 걸 직감했다.예전에는 오직 시후 오빠 한 사람만 따랐고 시후 오빠의 마음에 들고 아빠의 사랑을 얻기 위해 애썼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엄마 말대로 진짜 주예린을 좋아해 주는 사람이라면 주예린이 어떤 모습이어도 다 받아들일 거라는 생각을 깨닫게 되었다.얼굴에 해맑은 미소가 번지는 주예린을 보며 최수빈도 한결 시름이 놓였다.이젠 딸이 조금씩 자라나 예전처럼 망설이는 모습만 보이고 밤마다 울지도 않았다.주예린의 눈물은 대부분 아빠 때문이었기에 최수빈은 그저 곁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위로의 말들은 늘 공허했고 결국 아이 스스로 모든 외로움과 고통을 견뎌야 했다.하지만 지금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주예린은 아빠와 오빠가 없는 새 생활에 적응했고 익숙해졌다.다음 날 아침.최수빈은 천공연구원에 도착해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점검했다.육민성이 사람을 데리고 출장 중이라 최수빈이 직접 진척을 확인하러 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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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7화

지금 상황이 아무리 좋지 않아도 박하린의 고집만큼은 여전했고 자신심도 하늘을 찔렀다.그 말을 들은 최수빈은 피식 웃었다.“진짜 대단하네요.”최수빈은 천천히 일어나 비꼬는 눈빛으로 최수빈을 바라봤다.“도움을 청하면서 이렇게 뻔뻔하게 말하는 것도 재주긴 하죠.”넥스트 테크와의 협력이 정말 이득이라면 굳이 이렇게 인맥을 돌릴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그런데 직접 찾아와 부탁까지 하다니, 누가 봐도 사정이 급한 건 뻔했다.“지금처럼 그렇게 잘난 척하지만 않아도 내기 계약이 발동되었을 때, 제가 좀 봐줄 수도 있었는데 말이죠.”말투는 담담했지만 최수빈의 그 말 한마디가 박하린을 숨 막히게 했다.박하린의 가슴이 거칠게 오르내리더니 차갑게 최수빈을 노려보며 간신히 태연한 표정을 유지했다.“박하린 씨는 별로 진심이 없으신 것 같네요. 그럼 이만 가시죠.”박하린은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코웃음을 치며 뒤돌아섰다.천공과의 협력은 원했지만 절대 최수빈에게 머리를 숙일 수는 없었다.박하린은 오늘 협상 자리에서 최수빈을 마주칠 줄은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최수빈은 닭털 하나 쥐고 영전이라도 받은 듯 굴더니 이젠 진짜 자기가 대단한 줄 아는 모양이었다.사실 꼭 천공연구원과 손잡지 않아도 별문제는 없었다.박하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하이힐을 꾹꾹 밟으며 자리를 떠났다.회사 밖으로 나오자 박하린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민혁 오빠...”그러고는 방금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다 털어놨다.“진짜 어이없어. 육민성은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최수빈 따위가 뭔데 감히 나를, 아니, 넥스트 테크를 거절해?”박하린은 하소연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었다.한편, 사무실에서 서류를 검토 중이던 주민혁은 휴대폰을 스피커폰으로 켜둔 채, 묵묵히 박하린의 말을 듣고 있었다.그리고 담담하게 본질만 짚었다.“지금 협력할 상대를 못 구한 거야?”그게 박하린이 지금 마주친 참혹한 현실이었다.“응.”박하린은 기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오빠, 방법이 좀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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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8화

원금영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는 주민혁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고 짧은 침묵이 주민혁의 대답을 대신했다.“하린이 너랑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랐던지라 네가 도와주는 건 당연해. 하지만 그 정 때문에 수빈에게 상처를 주는 건 용납할 수 없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해?”원금영은 정원에서 가지치기하며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요즘 주민혁과 박하린의 관계가 너무 대놓고 드러나다 보니 좋지 않은 소문들이 결국 원금영의 귀에 들어왔다.평소에는 집안일 외에 별로 신경을 안 쓰던 사람이었지만 이번 일은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최수빈은 단 한 번도 이런 걸 직접 말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금영이 계속 모른 척할 수도 없었다.“넌 입만 열면 수빈이랑 이혼하기 싫다고 하잖아. 근데 네가 지금 하는 짓이 그 말이랑 모순되는 건 알아?”전화 너머에서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자 원금영은 가위를 내려놓고 더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난 지금 너랑 대화하고 있어.”“네.”주민혁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알겠습니다, 할머니.”“넌 그 박하린이랑 도대체 무슨 사이야?”요즘 두 사람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고 심지어 떠도는 소문까지 자세한 경위를 담아 퍼지고 있었다.“시후가 그 여자를 엄마라고 부른다는 소문도 말이 안 되는 일인데 이제는 예린이 주씨 가문 핏줄이 아니라는 소문까지 들리더구나.”원금영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이 소문을 네가 모를 리 없겠지. 알아서 깔끔하게 정리해. 네가 직접 수습하지 않으면 내가 직접 처리할 거야.”원금영의 말에 분명한 경고가 담겨 있었다....한편, 박하린 쪽.회사로 돌아온 박하린은 다시 프로젝트 개발에 몰두했다.넥스트 테크에는 여러 프로젝트 개발이 있었지만 결과를 내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수익이 나오려면 최소 석 달은 걸려야 했기에 지금 제일 급한 건 자금이었다.연구개발은 돈이 가장 많이 드는 일이었다.게다가 이전 두 번의 협력에서 큰 손해를 본 탓에 현재 자금이 완전히 막혀 있었다.박하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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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9화

모든 프로젝트를 질질 끌면 결국 다른 회사에 추월당할 뿐이다.이 업계에는 인재가 넘쳐났기에 한 걸음 늦으면 끝까지 뒤처지기 때문에 박하린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조급했다.특히 천공연구원은 이 분야에서 박하린의 넥스트 테크와 절대적인 경쟁자였다.박하린은 잠시 생각하더니 살짝 눈썹을 찌푸리며 대답했다.“가능하다면 천억이 필요해. 그 자금으로 반드시 수익을 내고 회사를 업계의 최고 회사로 키울 거야.”지금 박하린에게 절실한 건 자금이었다.이건 단순히 잠깐 미루거나 잠시 보류라는 문제가 아니었다.문제는 주민혁이 천공연구원의 최수빈과 체결한 내기 계약 때문이었다.만약 프로젝트 전부를 미루게 된다면 내기 계약 조건이 발동되고 그 순간 회사 전체가 날아가게 될 것이다.박하린은 설령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도 주민혁이 결국 책임져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건 박하린이 원하는 방식이 아니었다.회사를 날려버리면 그건 곧 박하린이 최수빈보다 못하다는 증거였다.최수빈은 어쩌면 하늘의 총애를 받은 사람과도 같았다.그 두 협력사가 천공연구원과 계약했더라면 협력사가 연속으로 폭망할 때 천공연구원에 치명적인 타격을 줬을 것이다.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재앙이 전부 박하린에게 떨어졌다.그러니 박하린은 이 일이 단지 최수빈의 운이 좋았을 뿐이고 이게 하늘이 자기에게 주는 시련이라고 믿었다.이 고비만 잘 넘기면 앞길은 반드시 평탄할 것이고 꽃길만 걷게 될 것이다.“알았어.”주민혁은 고개를 숙인 채 서류에 사인했다.“내 계좌에 당장 쓸 현금이 부족하니까 신세계 그룹 재무부 쪽에서 협력 명목으로 자금을 지원하라고 시킬게.”그 말에 박하린은 겨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고마워.”“고맙긴 뭐가 고마워?”그 말에 박하린은 살짝 미소 지었다.사실 고맙다는 말이 조금 웃기긴 했다.이미 두 사람은 이런 관계인데 이 정도 일에 고맙다고 할 필요는 없었다.주민혁은 이미 박하린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쏟아붓고 있었고 박하린을 정점까지 올려놓기 위해 전력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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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0화

“내가 왜 양심이 없다는 거야?”최진식은 이혜정을 바라보며 싸늘하게 웃었다.“우리가 아직 이혼하지 않은 이상, 네가 쓰는 돈은 전부 부부 공동 재산이야. 나중에 이혼할 때 다 돌려받을 수 있어. 게다가 네가 지금 운영하는 회사도 내 지분이 있어. 이혼하고 싶으면 네 손에 있는 재산 중 절반을 내놓아야 해.”그 말에 최수빈은 헛웃음이 나왔다.부부의 정은 평생을 간다고 했는데 이 사람은 정말 염치도 자존심도 다 내다 버린 것 같았다.재산 분할 문제 때문에 엄마가 최진식과의 이혼을 계속 미루고 있었던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최진식은 절대 이혼할 생각이 없었고 재산을 분할할 생각도 없었다.지금은 동비가 잘 나가고 사업이 승승장구하고 있기에 최진식이 더더욱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엄마.”최수빈이 이혜정의 팔을 잡았다.“이런 사람이랑은 말 섞을 필요도 없어요. 이혼하고 싶으면 바로 소송을 걸어요.”“내가 널 몇 년을 키웠는데 이제 와서 집에 보탬은커녕 다른 사람 편이나 들고 있어?”최진식이 차갑게 쏘아붙였다.“잊지 마, 넌 성씨가 최씨야.”최수빈은 코웃음을 쳤다.세상에서 가장 우스운 게 바로 성씨였다.그건 그냥 이름 앞에 붙는 꼬리표일 뿐, 아무런 실질적인 의미도 없었다.같은 성을 가졌다고 같은 피를 나눈 것도, 같은 마음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주예린도 마찬가지였다.주예린은 주씨였지만 주씨 가문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주예린을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았다.최수빈이 아직 주예린의 성씨를 바꾸지 않은 건 이런 이유도 있었고 또 너무 바빴기 때문이기도 했다.하지만 천공의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 바로 성씨를 바꾸는 정식 절차를 밟을 생각이었다.“그 말은 법정에서 하시죠.”최수빈은 아빠에게 체면 따위를 남겨줄 생각은 없었다.어릴 때부터 최수빈과 최진식의 관계는 늘 냉랭했다.최진식은 항상 최수빈을 그냥 황금알이나 낳는 거위로만 여겼을 뿐이었다.최수빈이 주씨 가문에 들어가자 최진식은 환장할 정도로 좋아했다.주씨 가문이랑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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