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Chapter 391 - Chapter 400

604 Chapters

제391화

최수빈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변호사를 소개해 드릴게요. 모든 문제는 저랑 상의하면 돼요.”“이혼할 수 없는 건 아니야. 다만 저 사람과의 이혼은 절차가 번거로울 뿐이야.”이혜정은 머리가 살짝 아프기 시작한 듯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말했다.“우린 같이 산 지 오래됐어. 그래서 재산 분할이 복잡해. 이미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거든?”이혜정은 최수빈이 요즘 너무 바빠서 밥 먹을 시간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굳이 딸에게 계속 폐를 끼치고 싶진 않았다.최수빈이 자기 남편 문제를 겨우 처리했는데 이제 엄마의 혼인 문제에 휘말리니 속이 더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이건 내가 혼자 처리할게. 정말 안 되겠다 싶으면 다시 너랑 의논할게.”최수빈은 여전히 엄마를 설득했다.“엄마, 제가 이제 돌아가서 변호사 연락처를 보내줄게요. 이런 일은 미루면 미룰수록 고통과 리스크만 늘어날 뿐이에요.”둘은 한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주예린의 하교 시간이 되어서야 최수빈은 딸을 데리러 유치원에 갔다.그러다가 마침 유치원 앞에 서 있던 박하린을 마주쳤다.검은 옷에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오토바이를 탄 박하린은 아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아이들은 이런 멋진 것들을 좋아하기 마련이었다.주시후는 나오자마자 멋진 엄마를 발견하고는 기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해 눈을 반짝이며 뛰어갔다.“박하린 씨가 아이를 데리러 오셨네요?”어떤 학부모가 박하린을 발견하고 말을 건넸다.박하린은 자주 주시후를 만나러 왔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연스레 박하린을 주시후의 친모로 여겼다.박하린은 선글라스를 벗고 미소를 지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박하린 씨, 혹시 소문을 들으셨어요? 딸이 주씨 가문 핏줄이 아니라고 하던데요?”어떤 학부모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들은 소문을 그대로 털어놨다.박하린은 그 말에 순간 멈칫하더니 최수빈을 힐끗 보며 입을 열었다.“그건 다 근거 없는 소문일 뿐이에요.”유치원에서 나오던 주예린은 두 사람의 대화를 우연히 듣고는 미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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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2화

박하린은 주민혁이 최수빈을 얼마나 견제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최수빈이 정말 용기가 있었으면 진작에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이제 와서 으름장을 놓는 건 그냥 더는 참을 수 없어서 경고 한마디를 던지는 수준일 뿐이었다.이런 건 결국 입으로만 떠드는 거였기에 박하린은 최수빈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흘려들었다.어차피 최수빈이 지금까지 박하린에게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타격을 준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박하린은 최수빈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피식 코웃음을 치고는 오토바이에 올라타 주시후를 태우고 그대로 사라졌다.주예린은 박하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최수빈은 시선을 내려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앞으로 저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듣지도 말고 믿지도 마.”주예린은 엄마의 말을 들으며 눈을 깜빡이며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순순히 대답했다.혹시라도 딸이 그 소문을 알게 되면 상처받을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했던 최수빈은 천천히 숨을 고르고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육민성은 팀을 이끌고 사막으로 극한 환경 테스트를 떠났다.그 덕분에 요 며칠 동안 회사에는 최수빈이 혼자 남아 온갖 일을 도맡아 처리했고 여러 업무도 깔끔하게 정리되었다.육민성과 함께한 시간 동안 최수빈도 점점 회사를 관리하는 법을 제대로 터득해 갔다.회사 직원들 역시 최수빈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랐다.특히 기술자들은 자기보다 실력이 뛰어난 사람만 인정하는 법이었다.점심 무렵, 최수빈은 원금영의 전화를 받았다.“수빈아, 요즘 많이 바쁘지?”원금영은 시간만 나면 최수빈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던지라 최수빈은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이제 최수빈에게 남은 어르신이라곤 원금영뿐이었다.그래서 최수빈은 원금영과의 시간을 그 어느 때보다 더 소중히 여겼다.원금영과 단둘이 식사할 때면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했고 외할머니가 곁에 계시던 그때처럼 따뜻했다.최수빈은 모니터의 데이터를 보며 대답했다.“괜찮아요, 그렇게 힘들진 않아요.”“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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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3화

최수빈은 정말 이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할머니가 계속 고집을 부리면 그걸 거절하기도 쉽지 않았다.최수빈은 손을 들어 미간을 살짝 문지르며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그 짧은 침묵이 이어지자 전화 너머의 할머니가 눈살을 찌푸렸다.“수빈아, 너랑 주민혁 일에 대해서는 나도 많이 들었어.”원금영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네가 나한테 굳이 이 얘기를 꺼내지 않는 이유도 잘 알아. 내가 이런 일 때문에 걱정하는 게 싫어서겠지. 하지만 네가 속상해하는 걸 보면 내 마음이 편할 수 없어. 민혁이 그 박하린한테 회사를 차려줬다며? 너 이 일을 알고도 나한테 말하지 않았지? 그런 일을 당하고도 꾹 참고 있는 게 얼마나 억울하겠어. 네가 그 회사를 원한다면 얼마든지 되찾을 권리가 있어. 나는 항상 네 편이야.”최수빈은 원금영의 말에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주민혁이 박하린에게 회사를 세워준 건 이제 자기와 아무 상관 없는 일이었다.둘은 이미 깨끗하게 이혼했고 각자의 길을 가는 중이었다.최수빈은 지금도 할 일이 산더미인데 그런 하찮은 일 때문에 발목 잡히고 싶지 않았다.511연구원 개발이 초반 성과를 내면 국가 회의 보고까지 해야 했다.그 일만으로도 최수빈은 이미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괜찮아요, 할머니. 그런 일들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속상한 일이 있으면 꼭 말씀드릴게요.”“그래, 그럼 주상 그룹 기념행사는 네가 맡아 줘. 그래도 넌 우리 가문의 며느리잖아. 남한테 맡기면 난 불안해서 도저히 못 견디겠어.”올해는 주상 그룹의 100주년이었기에 성대하게 치러야 하는 큰일이었다.전화를 끊고 나서 최수빈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지난번에도 최수빈이 모든 걸 기획하고 준비하느라 피나는 노력을 들였다.행사는 비록 완벽하게 끝났지만 끝나자마자 최수빈은 큰 병에 걸렸다.하지만 주민혁은 바쁘다는 핑계만 대고 단 한 번도 병문안을 오지 않았다.힘만 들고 보람 없는 일은 이제 더 이상 하기 싫었다.하지만 이전의 기획안을 그대로 쓰면 딱히 어려운 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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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4화

이혜정의 목소리는 매우 다급했다.평소에는 어떤 일이 생겨도 침착함을 잃지 않던 사람이었다.그런 엄마가 이렇게 급하게 전화를 걸어올 정도면 분명 큰일이 터진 거였다.전화를 끊자마자 최수빈은 재빨리 병원 쪽으로 향했다.하지만 복도 모퉁이를 돌다가 급히 뛰어가던 탓에 누군가와 정면으로 부딪쳤다.“죄송해요.”최수빈은 급히 사과하고 그대로 뛰어가려 했다.“최수빈 씨? 무슨 일 있으세요? 제가 도와드릴 일이라도 있나요?”익숙한 목소리에 최수빈은 멈춰 서서 고개를 돌렸다.“권 선생님?”아마도 급한 마음에 의사를 보기만 하면 뭐든 기대게 되는 심정이었다.최수빈은 간단하게 외삼촌의 상태를 설명했다.“잘됐네요, 마침 제가 그쪽 전문입니다.”권우진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금방 해외에서 돌아오면서 새 치료 기술을 들여왔거든요. 괜찮으시다면 같이 가서 한번 볼까요?”최수빈은 굳이 이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의사는 결국 사람을 살리려는 존재였기 때문이다.둘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암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혈압까지 겹쳐서 통증이 오를 때마다 혈압이 폭등해 생명이 위태로워질 정도였다.최수빈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 외삼촌은 막 응급실에서 나오는 중이었다.이혜정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고 다리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엄마.”최수빈은 그런 엄마를 끌어안으며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괜찮아요, 외삼촌은 복이 많으신 분이에요. 다 잘될 거예요.”그 말은 엄마를 위로하려는 말이었지만 어쩌면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권우진이 다가와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런 병은 해외에서 이미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습니다. 다만 특효제나 표적치료제가 좀 구하기 어렵긴 해요.”그 말을 들은 이혜정의 눈빛이 번쩍였다.“정말 방법이 있나요, 의사 선생님? 돈이 얼마든 상관없어요. 꼭 살려주세요.”권우진은 입술을 살짝 다물고 최수빈을 바라봤다.“어머님과 상의해 보세요. 결정하시면 주치의를 바꾸는 것도 가능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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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5화

권우진은 커피를 한 모금 가볍게 마셨다.“별일 아니에요. 그냥 지나가는 손을 덜었을 뿐이죠.”권우진은 손에 들고 있던 태블릿을 내밀며 말했다.“여기 이 자료가 전부예요. 제가 전부 보내드릴게요. 어머님이랑 상의하신 다음에 결정되면 다시 연락 주세요. 이 치료 방안대로 하면 당장은 버틸 수 있을 겁니다. 이식 대기 기간을 벌 수 있죠.”최수빈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연락처를 하나 추가하죠. 자료는 그쪽으로 보내주세요.”둘 사이는 꽤 원만하게 이야기가 오갔다.최수빈은 권우진에 대한 인상이 나쁘지 않았다.권우진은 차분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동요하지 않는 스타일이었는데 아마 의사로서 타고난 성격일 것이다.권우진이 일어서며 말했다.“병원에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어서요. 저는 먼저 올라가 볼게요. 어머님이 오시면 천천히 상의하세요.”권우진이 떠난 뒤, 최수빈은 휴대폰에 도착한 자료를 다시 한번 꼼꼼히 훑어보았다.그리고 추가로 검색도 해봤는데 이 방법은 해외에서 이미 꽤 성숙한 치료법이었다.하지만 적용 대상이 많지 않았고 치료비가 너무 비싸 아무나 받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임상 사례도 많지 않았지만 분명 효과는 있었다.최수빈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엄마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대신 문 쪽에서 낯익은 두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주민혁과 박하린이었다.문 쪽을 향한 최수빈의 시선이 주민혁과 딱 마주쳤는데 그 눈빛은 여전히 차갑고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박하린 역시 최수빈을 발견하곤 일부러 주민혁의 손을 끌며 다가왔다.“참 우연이네요.”박하린은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에 앉았다.최수빈이 시선을 올려 주민혁을 바라보며 말했다.“주민혁 씨도 앉아요.”최수빈은 이 상황이 우습기만 했다.아까 전화로는 바쁘다며 기념일 행사 기획 대화를 단칼에 잘라놓고 지금은 박하린이랑 다정하게 카페를 다니고 있었다.최수빈은 이렇게까지 우연이라면 그냥 한 번쯤 얘기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주민혁은 별다른 말 없이 바로 박하린 옆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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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6화

박하린은 그 말을 듣고 지금의 최수빈이 그나마 자기 분수를 아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예전처럼 제 주제도 모르고 나대던 모습은 없었고 이제야 자신이 주민혁의 마음속에서 어떤 위치인지 깨달은 모양이었다.주민혁은 묵묵히 최수빈을 바라보며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그 틈을 타서 박하린이 먼저 선수를 쳤다.“오빠, 나 해외에서도 기념행사를 몇 번 맡아봤잖아. 이번 일은 그냥 나한테 맡겨. 예쁘고 멋지게 해낼 자신이 있어.”박하린은 어쨌든 주씨 가문과 인연이 있으니 이런 행사 정도는 맡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주민혁은 여전히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고 대신 최수빈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이미 정하신 것 같네요. 그럼 그렇게 하세요.”말을 끝내고 몸을 돌려 나가려는 순간, 주민혁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할머니가 네게 맡긴 거라면 그대로 진행해. 내가 할머니의 결정을 바꾸는 건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야.”최수빈의 발걸음이 그 자리에 멈췄다.그러고는 눈썹을 찌푸리며 주민혁을 바라보자 주민혁은 담담하게 시선을 내리깔며 말했다.“의견이 있으면 직접 할머니께 말씀드려.”그 한마디로 모든 뜻이 드러났다.할머니와 최수빈의 관계는 주민혁과는 상관없는 그저 둘만의 일이라 주민혁은 더 이상 나서고 싶지도 않다는 것이었다.박하린의 표정이 순간 굳어버렸다.그 말은 곧 자신이 했던 제안을 정면으로 거절하겠다는 뜻이었고 하필이면 최수빈 앞에서 거절한다는 뜻이기도 했다.박하린은 이 기념행사를 계기로 인맥을 넓히려 했는데 단번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최수빈은 그 말에 별다른 반응이 없이 침묵을 지키다가 이내 자리를 떴다.최수빈이 나간 뒤, 박하린이 부드럽게 말문을 열었다.“오빠, 사실 난 할머니가 너무 고생하신다고 생각해. 이제 연세도 있으신데 이런 일까지 신경 쓰실 필요는 없잖아. 이런 나이에는 그냥 편히 쉬면서 행복하게 삶을 즐겨야죠. 주씨 가문의 일은 오빠가 직접 다 처리하는 게 맞다고 봐요.”주민혁은 느릿하게 박하린을 바라봤다.“우리 할머니가 계시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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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7화

최수빈은 심지어 잘못 들은 게 아닌지 자기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최수빈의 목소리에 비웃음이 가득했다.“주민혁 씨, 지금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요?”질투란 아직 좋아하는 마음이 남아 있을 때 생기는 감정인데 주민혁에게 아무런 강정도 남아있지 않은 최수빈은 애초에 질투라는 감정이 생길 수 없었다.정말이지 주민혁의 자기도취는 너무 과분한 것 같았다.“흠.”주민혁은 살짝 콧소리를 내더니 곧이어 여유로운 말투로 말했다.“그럼 내가 착각한 거네. 네가 원하는 대로 해.”그 말이 끝나자마자 최수빈이 대답하기도 전에 주민혁이 전화를 끊었다.겉보기에는 의견을 묻는 통화였지만 실상은 최수빈을 자극하고 비아냥대려는 짓이었다.결국 결과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바로 최수빈이 독립적으로 기획하는 것이었다.그 마지막 한마디는 주민혁이 자기는 대범하고 관대한 사람인 척하는 포장에 불과했다.최수빈은 냉랭하게 웃으며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봤다.그러고는 속으로 이제 주민혁과는 정말 다시는 엮일 필요가 없다는 걸 확신했다.최수빈은 생각을 바로 실행에 옮겨 주민혁의 번호를 그대로 차단했다.앞으로 주씨 가문과의 일은 원금영과 연락하면 충분했다....한편, 주민혁이 전화를 끊기 직전, 진승우와 박하린이 자료를 들고 사무실로 들어왔다.진승우가 코웃음을 치며 험담하기 시작했다.“최수빈은 요즘 성질이 점점 세지는 것 같던데요? 육민성이 대놓고 오냐오냐하더니 이번에는 또 심종연까지 엮어서 아주 난리를 부리던데요? 도대체 사업을 하는 건지 남자들을 꼬시는 게 목적인지 분간할 수 없을 지경이에요.”박하린은 바로 인상을 찌푸렸다.“여자를 그렇게 몰아붙이는 건 좀 지나치지 않아요? 최수빈이 좀 선 넘은 행동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여자잖아요. 여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명예예요.”박하린은 그렇게 말하면서 조용히 의자에 앉아 있는 주민혁을 바라봤다.“근데 민혁 오빠, 요즘 동비가 넥스트 테크의 자원을 빼앗은 건 오빠도 잘 알잖아. 최수빈이랑 지규원이 어떻게 연결된 건지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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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8화

진승우는 주민혁을 바라보며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미모라는 건 희귀한 자원이 아니죠. 이 정도 자리까지 올라온 사람들이 미모 하나만 보고 전부를 쏟는 바보는 아니잖아요. 아무리 예뻐도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죠. 육민성 같은 멍청이는 세상에 하나면 충분해요.”주민혁이 살짝 눈썹을 올리며 진승우를 바라봤다.진승우는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그래서 결국 최수빈이 육민성이란 나무에 기어올랐기 때문에 최상위 인사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 있었고 이 바닥에 제대로 입문할 수 있게 됐죠. 최수빈의 뒤에는 천공연구원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고 천공이라는 회사 입장에서도 이건 절대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닐 겁니다.”결론부터 말하자면 최수빈은 기댈 나무를 정확하게 잘 고른 셈이었다.주민혁이 최수빈에게 더 이상 마음이 없다는 걸 알아채자 최수빈은 괜히 더 붙잡을 필요가 없다고 여기고 미련 없이 등을 돌려 바로 이혼에 합의했다.그러고는 바로 육민성이라는 호구를 붙잡은 거였다.박하린도 미간을 찌푸리며 진승우의 분석을 조용히 들었고 진승우의 분석이 꽤 그럴듯하다고 느꼈다.그렇지 않고서야 최수빈 같은 여자가 아직도 이 바닥의 최상층에 남아 있을 리가 없었다.주민혁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시선은 노트북의 데이터에 고정돼 있었다.진승우가 말을 끝내자 주민혁은 그제야 시선을 올리며 한마디를 던졌다.“그게 중요한 일이야?”놀라울 만큼 평온한 목소리에 진승우는 입을 다물었다.진승우는 주민혁이 최수빈을 좋아하지도 않고 최수빈의 일에 흥미도 없다는 걸 까먹고 있었다.“화제를 바꾸죠.”진승우는 가져온 자료를 탁자 위에 올렸다.“이건 운상이랑 넥스트 테크가 최근 협력 중인 프로젝트 기획서입니다. 신소재 에너지 쪽 자원 경쟁이 이미 생활 속으로 스며들고 있어요. 우리의 첨단기술 제품들도 이 분야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하린 씨가 관련 논문을 참고해서 이미 구상한 아이디어가 있는데 제가 봐도 굉장히 시대를 앞서가고 있어요. 업계 기준으로 보면 거의 넘사벽 수준이라고 봐도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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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9화

진승우는 그 말에 순간 멈칫했다.지금의 주민혁은 감히 넘볼 수 없는 높은 자리에 있었고 반면 박하린은 주민혁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의 위치에 있지 않았다.그런데 이제 와서 주민혁에게 자기 일을 도와달라고 하니 그야말로 황당한 소리였다.“그게 무슨 말이죠? 형에게 하린 씨 밑에서 일하라는 말씀인가요?”진승우는 얄밉게 웃으며 장난을 던졌다.“안 되나요?”박하린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살짝 미소 지으며 주민혁을 바라봤다.“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친구가 좀 도와달라는 게 그렇게 큰 일인가?”주민혁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살짝 기대며 냉정하게 웃었다.“시간이 되면 도와줄 수도 있지.”“역시 내 친구야.”박하린이 유쾌하게 웃었다.“그 말만으로도 충분해. 네가 스승님이 돌아가신 뒤로 이쪽 일에서 손을 놓은 건 알아. 그러니 억지로 끌어들이진 않을게.”스승 얘기가 나왔지만 남자의 표정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그만 얘기하자.”박하린이 손을 휘저으며 화제를 돌렸다.“밥 먹으러 가자. 우리 프로젝트 계획서 진행도 같이 의논해 봐야지. 지금 우리 팀이 데이터를 분석하는 중이야.”박하린은 이 계획이 완성되면 업계의 모든 경쟁자를 추월할 거라고 확신했다.지금 남은 건 모델 구현과 투자 유치뿐이었다.그때가 되면 박하린이 감수했던 모든 손해는 전부 회수될 것이다.이 기술은 일단 넥스트 테크와 손잡고 AI 순찰 장비를 만드는 게 첫 단계였다.그 순찰 장비에 열 감지 기능을 탑재해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전송하고 환경에 완전히 녹아들어 소리 없이 움직일 수 있는 기술이 핵심 기술이었다.결론부터 말하면 이건 적에게 들키지 않고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장비였다.이 장비는 분명 국경 수비대의 부담을 크게 덜어줄 발명품이 될 것이다....퇴근 후, 최수빈은 외삼촌을 보러 병원으로 향했다.최수빈은 이미 권우진에게 모든 걸 맡기겠다고 결심을 내렸다.병원에 도착한 최수빈은 권우진과 함께 외삼촌의 상태를 상의했다.권우진은 이미 환자의 상태를 완벽히 파악하고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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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0화

순간 얼굴에 퍼진 통증이 바늘처럼 촘촘하게 번졌다.얼굴이 잔뜩 일그러진 진서령은 손바닥으로 뺨을 감싸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주민혁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눈썹만 살짝 찌푸린 채 최수빈을 바라봤다.“감히 날 때려?”진서령이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따귀를 날릴 기세를 보이자 권우진이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최수빈을 자기 뒤로 끌어당겼다.“여사님, 여긴 병원입니다. 폭행은 삼가시죠.”“제가 폭행했나요?”진서령이 싸늘하게 웃었다.“최수빈, 너 당장 나오지 못해? 이제는 남자까지 갈아탔구나. 이 남자가 네 새로운 보호자야?”그러고는 권우진을 힐끔 보며 말했다.“의사 양반, 제가 충고 하나 할게요. 이 여자는 절대 괜찮은 사람이 아니에요.”최수빈은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듯했지만 주씨 가문 사람들만이 최수빈의 본모습을 알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최수빈은 학력도 없고 교양도 없으며 실력도 없는 빈껍데기만 남은 여자였다.예전에는 진서령의 아들을 꼬셔서 억지로 주씨 가문에 들어오더니 이젠 본모습을 숨기지도 않고 밖에서 딴 남자랑 엮이고 있었다.최수빈은 앞으로 나서서 권우진에게 눈길을 주지 않고 곧장 주민혁을 쏘아봤다.“주민혁 씨 집안의 더럽게 복잡한 일은 주민혁 씨가 알아서 정리해요. 전 더 이상 주민혁 씨 비밀을 지켜줄 생각이 없어요.”최수빈은 그 말을 마치고 주민혁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은 채 바로 돌아서 떠나려 했다.“어딜 가? 내 뺨을 때려놓고 그냥 가겠다고? 설명은 해야 할 게 아니야? 오늘 제대로 해명하지 못하면 아무 곳도 갈 수 없어.”진서령의 호통에 최수빈은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냉랭하게 쏘아붙였다.“무슨 설명이요? 제가 뭘 잘못했는데요?”최수빈은 다시 시선을 주민혁의 얼굴에 집중했다.“제가 직접 주민혁 씨 어머님께 설명해 드릴까요?”그 말은 곧 둘이 이혼한 사실을 밝히겠다는 뜻이었다.이혼한 마당에 최수빈이 어떤 남자와 엮이든 그건 아무도 간섭할 일이 아니라는 선언이기도 했다.그 한마디에 주민혁은 반드시 반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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