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los capítulos de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Capítulo 871 - Capítulo 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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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1화

주민혁은 한참 만에야 천천히 몸을 돌렸다. 충혈된 눈에는 갈등하는 기색과 고통이 가득했고 그 표정만으로도 마음속이 얼마나 복잡한지 드러났다.그는 최수빈의 붉어진 눈가를 바라봤다. 흔들리지 않는 눈빛과 그 안에 담긴 걱정을 마주하는 순간, 마음을 지탱하던 방어선이 조금씩 무너져 내렸다.여태 자신이 해 온 ‘보호’라는 것이 어쩌면 처음부터 잘못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스쳤다.“나...”주민혁은 입을 열었지만 떨리는 숨만 새어 나왔을 뿐 끝내 거절의 말은 하지 못했다. 최수빈의 말이 맞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혼자서 모든 걸 짊어지고 가다 보면 언젠가는 무너질 수밖에 없고 그가 무너지는 순간이야말로 최수빈과 주예린에게는 가장 위험한 때였다.주민혁의 표정이 흔들리는 걸 본 최수빈은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더 몰아붙이지 않았고 대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당장 대답하지 않아도 돼요. 다만 예린이가 민혁 씨를 바라보던 눈빛을 한 번만 더 떠올려 줘요. 그리고 우리 사이에 다른 가능성은 정말 없는지 생각해 봐 줬으면 해요. 부부도 아니고 적도 아닌... 서로 기대 설 수 있는 가족으로요.”그녀는 문 쪽으로 돌아섰다. 이윽고 손잡이를 잡아당기다가 다시 한번 주민혁을 돌아보며 덧붙였다.“예린이랑 집에서 기다릴게요. 어떤 결정을 하든 상관없어요. 다만 민혁 씨가 안전하다는 것만은 우리한테 알려줘요.”그렇게 문이 조용히 닫히더니 방 안에는 주민혁 혼자만이 남았다.그는 천천히 소파에 몸을 맡기고 두 손을 머리칼 속에 깊이 묻었다. 가슴속에서는 여러 복잡한 감정들이 거세게 뒤엉켰다.최수빈은 문을 나서며 일부러 두어 초를 멈칫했다.그러나 뒤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붙잡는 말도, 질문도 없이 주민혁의 기척이 서서히 멀어지는 것만 느껴졌다.마음 한쪽이 갑자기 텅 빈 듯한 기분에 그녀는 주먹을 꽉 쥐었다.단호한 거절, 시선마저 의도적으로 멀리 두는 태도, 이러한 주민혁의 거리 두기는 너무도 익숙했다.위험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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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2화

“살려달라고요?”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최수빈은 미간을 더 깊게 찌푸렸다.“무슨 일이에요? 주선웅 씨가 또 무슨 짓을 한 거예요? 아니면 몸이 안 좋은 건가요?”려운의 목소리가 갑자기 낮아졌다. 침통해 보이는 기색이 숨길 수 없이 드러났고 눈가 역시 서서히 붉어졌다.“그런 게 아닙니다. 주 대표님은... 애초에 제대로 살아갈 생각이 없으셨어요. 구 원사님께서 사고를 당한 이후로는 모든 책임을 혼자 짊어졌었죠. 자신이 지켜드리지 못했고 주선웅 씨를 막지 못했다고요. 그 뒤로 주씨 가문의 수습되지 않은 문제들, 그리고 수빈 씨와 예린이의 일까지 겹치면서 우울증이 점점 심해졌습니다. 몇 번이나... 포기하려는 생각까지 했고요.”망치로 얻어맞은 듯, 최수빈의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강지원에게서 주민혁의 병에 대해 듣기는 했지만 그가 살려는 의지조차 없는 상태까지 왔다는 말은 처음이었다.미세하게 떨리는 손끝으로 그녀는 가방을 꼭 움켜쥐었다.“그래서 저랑 예린이를 계속 밀어낸 거군요. 우리가 약점이 될까 봐?”“맞습니다.”려운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울컥한 듯이 말을 이어갔다.“밀어낸 게 아니라 감히 다가가지 못한 겁니다. 자기 안의 어두운 감정이 수빈 씨와 아이에게 전해질까 봐 두려웠고 무엇보다 주선웅 씨가 그걸 빌미로 삼을까 봐 겁이 나신 거죠. 아시잖아요. 주선웅 씨는 구 원사님에게도 손을 댔고 주 대표님의 교통사고까지 꾸민 사람입니다. 만약 수빈 씨와 예린이를 노리기라도 한다면, 그땐 정말...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그래서 주 대표님은 차라리 미움을 받는 쪽을 택했습니다. 두 분을 위험에 끌어들이느니 본인이 악역이 되겠다는 거였죠.”려운은 잠시 말을 멈췄다.“지난번 예린이의 입학식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거 주 대표님이 문구점 세 군데를 돌아다니면서 준비하셨어요. 직접 전해 주고 싶어 했지만 끝내 못 나서고 학교 앞에 몰래 두고 오라고만 하셨습니다. 아이에게는 절대 자기가 줬다는 걸 알리지 말라면서요. 그때 제가 제멋대로 그 물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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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3화

최수빈에게서 약속을 듣는 순간, 려운의 잔뜩 굳어 있던 어깨가 눈에 띄게 풀렸다. 목소리에도 기쁜 기색이 묻어났다.“고마워요, 수빈 씨. 앞으로 주 대표님 상황이든 주선웅 씨 쪽 움직임이든,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바로 알려드릴게요. 필요하신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 주세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전부 돕겠습니다.”최수빈은 고개만 끄덕였을 뿐 더 말을 보태지 않았고 그대로 돌아서서 택시에 올라탔다.차창 너머로 호텔이 점점 멀어지자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주민혁과의 대화창을 열었다. 화면 위에서 손끝이 한참을 맴돌았다.그러다 결국 휴대폰을 다시 넣었다.‘어떤 일들은 서두른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 그 사람 역시 스스로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거야.’...이튿날 아침 해온시 항공우주 연구원 건물이 막 분주해지기 시작할 무렵, 최수빈은 서류 가방을 들고 로비로 들어섰다.사무실 앞에 이르자 육강민이 길을 막아서더니 손에 든, 깔끔하게 포장된 김밥을 환하게 웃으며 내밀었다.“수빈 씨, 좋은 아침이에요. 아래에 김밥 파는 곳이 있는데 맛있더라고요. 그래서 일부러 사 왔어요.”최수빈은 걸음을 멈추고 정중하게 손을 저었다.“고맙지만 이미 집에서 먹고 와서요. 강민 씨가 드세요.”그러자 김밥을 내밀던 육강민의 손이 허공에서 멈추었다. 얼굴에 있던 웃음도 한결 옅어지며 그가 조심스레 떠보듯 말했다.“혹시... 저랑 거리를 두시는 건가요? 지난번 회의실에서 주 회장님이랑 따로 이야기해서요?”최수빈은 의문스러워하는 그의 눈빛을 보고 가볍게 웃었다. 그러고는 부드럽지만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오해예요. 정말 먹고 온 거예요. 할 일도 많아서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그녀는 육강민을 지나쳐 사무실로 들어가 문을 조용히 닫았다.문밖에서는 몇몇 동료들이 모여 낮은 목소리로 수군거리고 있었다.“봤어요? 강민 씨가 수빈 씨한테 아침 식사 가져다줬다가 또 거절당한 거.”“그 얘기 몰라요? 플라잉 테크 쪽에서 들었는데 수빈 씨랑 주 회장님이 예전에 부부였대요.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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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4화

이 계산표는 작업량이 엄청났기에 누가 봐도 그를 돌려보내기 위한 것이었다.육강민은 서류를 받아 들고 일에 몰두한 최수빈의 옆모습을 잠시 바라봤다. 이것이 분명한 거절이라는 걸 알아차린 그는 더 말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끝내겠습니다.”이 말을 끝으로 육강민이 돌아서서 나가자 사무실에는 다시 조용한 공기만 흘렀다.최수빈은 그가 나가는 모습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때, 휴대폰이 진동했다. 려운에게서 온 메시지였다.[수빈 씨, 주 대표님 모레 아침 비행기로 은산시로 돌아갑니다. 어젯밤에도 베란다에서 반나절을 보내셨어요. 상태가 썩 좋지 않아 보여서... 돌아가시면 또 혼자서 생각에 빠지실까 걱정됩니다.]메시지를 읽은 최수빈의 손끝이 살짝 오그라들었다.어제 려운이 했던 말들, 그리고 주민혁의 눈에 서려 있던 고통과 절망이 떠올라 가슴 한쪽이 저릿해졌다.잠시 망설이다가 그녀는 주민혁과의 대화창을 열었다. 그리고 몇 줄의 문장을 천천히 입력했다.[모레 떠난다면서요. 오늘 저녁 시간 괜찮으면 같이 밥 한 끼 먹을까요? 그냥... 배웅이라고 생각해요.]전송 버튼을 누르는 순간, 심장박동이 이유 없이 빨라졌다. 그가 응할지, 이 저녁 식사가 무슨 의미를 가질지는 알 수 없었다.그래도 떠나기 전에 한 번은 제대로 이야기해야 했다. 그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걸 전하고 싶은 것이었다.메시지를 보낸 뒤 한 10분쯤 지나서야 답장이 왔다. 단 두 글자였다.“그래.”그 ‘그래’라는 답장을 보는 순간, 최수빈은 팽팽하게 긴장되어있던 신경이 풀리는 것 같았다.그리고 곧바로 려운에게 답장을 보냈다.[오늘 저녁에 주 대표님이랑 식사할 거예요. 주선웅 씨 쪽 움직임만 좀 살펴봐 주세요. 문제 생기지 않게.]려운의 답장은 금세 도착했다.[알겠습니다. 사람 붙여 둘게요. 식사 중에 방해받는 일은 없을 겁니다.]일을 정리하고 다시 펜을 들었지만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오늘 저녁이 어떤 결말로 이어질지, 자신과 주민혁의 앞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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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5화

최수빈은 찻잔을 들어 한 모금 천천히 마신 뒤, 먼저 침묵을 깼다.“모레면 떠난다면서요? 은산시 쪽 일이 많이 급해요?”“응. 형 어머니 쪽에서 새로운 움직임이 있어서 직접 가서 정리해야 해.”주민혁의 목소리는 낮고 잔잔했지만 짙은 피로가 묻어 있었다.“려운이 내 상태에 대해 말한 거지? 이렇게 자리를 만든 것도 날 설득하려는 거고.”최수빈은 찻잔을 내려놓고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눈빛에는 숨기려는 기색이 없었다.“설득하려는 게 아니에요. 어떤 결정을 하든, 나랑 예린이는 민혁 씨의 편이라는 걸 말해 주고 싶었어요. 다만 예전처럼 혼자서 다 떠안고 우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건... 이제 그만했으면 해요. 구 원사님의 누명도, 주선웅 씨의 음모도, 민혁 씨 혼자 감당할 일이 아니에요. 우리는 함께 마주할 수 있어요.”그녀의 결연한 눈빛에 주민혁의 마음이 복잡하게 흔들렸다.멀어지게 하고 싶었다. 위험에서 떼어 놓고 싶었다. 하지만 거절의 말은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주민혁은 최수빈이 더 이상 예전처럼 그의 뒤를 따르기만 하던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는 스스로를 지킬 힘도, 진실을 알 권리도 갖춘 사람이었다.그때, 종업원이 요리를 들고 들어오며 긴 침묵을 깨트렸다.테이블 위에 익숙한 음식들이 차려지자 주민혁의 가슴이 살짝 저려 왔다. 그녀는 아직도 그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기억하고 있던 것이었다.식사는 조용히 이어졌다.최수빈은 더 이상 결정을 재촉하지 않았고 대신에 주예린의 학교 이야기, 항공우주 연구원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 이야기를 가볍게 꺼냈다.주민혁은 말없이 듣다가 가끔 짧게 응답할 뿐이었다. 눈가에 내려앉아 있던 피로도 조금씩 옅어지는 듯했다.식사를 마친 뒤, 그는 최수빈을 집까지 데려다주었다.차가 아파트 앞에 멈추자 최수빈은 안전벨트를 풀고 바로 내리는 대신 그를 돌아보았다.“민혁 씨, 민혁 씨가 뭘 걱정하는지 알아요. 하지만 나를 믿어 줘요. 그리고 민혁 씨 자신도.”주민혁은 그녀의 눈을 바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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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6화

주예린과 이렇게까지 가까운 스킨십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주민혁은 순간 몸이 굳어 입술을 한 번 다물었다가 조심스럽게 주예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그래.”최수빈은 천천히 다가와 필통에서 은색 만년필 하나를 꺼내 주민혁에게 내밀었다.“이거 가져가요. 평소에 서류 처리할 때 쓰기 좋을 거예요.”이 만년필은 전날, 그녀가 일부러 문구점에 들러 고른 것이었다.주민혁은 그 만년필을 내려다보다가 차가운 금속 외관을 손끝으로 살짝 건드렸다.“고마워.”낮고 차분한 목소리였다.“예린이 아직 어리니까 시간 나면 전화도 자주 해주고요.”그러다 최수빈은 주민혁을 바라보며 티 나지 않게 당부의 말을 덧붙였다.“은산시 쪽 일도... 혼자서 너무 무리하지 말고 조심해요.”주민혁은 고개를 끄덕인 뒤, 시선을 다시 주예린에게로 옮겼다. 목소리는 한층 더 부드러워져 있었다.“예린아, 공부 열심히 하고 엄마 말 잘 들어. 알겠지?”“네!”주예린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반짝이는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더니 살짝 응석 섞인 목소리로 덧붙였다.“아빠, 그럼 나중에 놀이공원 같이 가요. 네? 다른 친구들 아빠들처럼 회전목마도 타고 솜사탕도 같이 먹어요.”그 말을 듣는 순간, 최수빈은 괜히 가슴 한켠이 저려왔다. 눈가도 서서히 뜨거워졌다.주예린이 아빠와 놀이공원에 가길 얼마나 오래 기다려왔는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주민혁은 침을 꿀꺽 삼켰다. 목소리가 갑자기 잠겨 나왔다.기대에 찬 딸의 눈빛을 마주한 채 그는 차마 거절의 말을 꺼낼 수 없어 결국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약속할게. 일 다 정리하고 나면 꼭 돌아와서 같이 놀이공원 가자.”“와, 진짜요?”주예린은 신이 나서 박수를 치며 그의 품에 얼굴을 더 바짝 비볐다.그때, 공항 방송에서 탑승 안내가 흘러나왔다.주민혁은 주예린을 안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게 최수빈에게 아이를 넘겨주었다. 그리고 두 모녀를 다시 한번 바라봤다. 마치 이 장면을 마음속에 깊이 새기려는 듯했다.“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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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7화

“주... 주민혁? 네가 왜 여기에...?”손희경의 목소리는 눈에 띄게 떨리고 있었다.교외에 숨어 지내면 아무도 찾지 못할 거라 믿었는데 주민혁이 이렇게 갑자기 들이닥칠 줄은 상상도 못 한 모양이었다.더더욱 믿기 힘든 건 그가 아직 살아 있었다는 사실이었다.주민혁은 별장 안으로 천천히 들어섰다. 호화롭지만 어지럽게 널린 거실을 훑어본 뒤, 온기라고는 전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이모, 오랜만이네요. 설마 했는데... 아직 살아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너... 너 뭘 하려는 거야?”손희경은 몇 걸음 뒤로 물러나 벽에 등을 바짝 붙였다. 잠옷 자락을 움켜쥔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미리 말해두는데 선웅이가 절대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형이요?”주민혁은 피식 비웃으며 한 걸음, 또 한 걸음 다가왔다. 눈빛에는 얼음처럼 차가운 분노가 서려 있었다.“자기 앞가림도 못 하는 처지에 이모를 지켜줄 수 있을까요?”그러다 더욱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모, 당시 죽은 척 빠져나가 주씨 가문 자산의 절반을 해외로 빼돌리고 이제는 형이랑 손잡고 다시 돌아와 권력을 차지하려고 했죠? 그런데 제가 그걸 순순히 두고 볼 것 같습니까?”손희경의 몸이 더 심하게 떨렸다. 눈에는 겁에 질린 기색이 그대로 드러났다.주민혁이 어떤 사람인지 그녀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예전에 주씨 가문 어른들의 압박 속에서도 끝내 버텨낸 그였기에 그런 사람 손에 떨어졌다면 결말이 좋을 리 없었다.“아... 아니야! 난 그런 적 없어!”손희경은 애써 침착한 척했지만 목소리 속의 두려움은 숨길 수 없었다.“그 자산은 다 내가 받아야 할 몫이었어! 선웅이가 받아야 할 몫도 있었는데 네가 다 빼앗아 간 거잖아!”“빼앗아요?”주민혁의 눈빛이 한층 더 차갑게 가라앉았다.“그때 이모가 형이랑 손잡지 않았다면 구 선생님이 그런 일을 당했을까요? 두 사람이 증거를 조작하지 않았다면 우리 엄마가 주씨 가문에서 쫓겨날 이유가 있었을까요?”그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렷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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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8화

예전 주민혁이 주씨 가문 어른들의 압박 속에서도 끝내 자리를 지켜내고 주선웅을 연달아 몰아붙여 밀어냈다는 사실만 봐도 그의 수완이 얼마나 매서운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지금처럼 주민혁의 손아귀에 떨어진 상황에서, 조금 전 그가 바로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면 그녀는 벌써 붙잡혀 감옥 신세가 됐을지도 몰랐다.손희경은 한참을 숨 고르고 나서 떨리는 손으로 겨우 소파 앞 테이블에 놓인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손가락이 심하게 떨려 몇 번이나 번호를 잘못 누른 끝에 겨우 주선웅에게 전화를 걸 수 있었다.“왜요, 엄마? 무슨 일이에요?”휴대폰 너머로 들려온 주선웅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묻어 있었다. 다른 일로 한창 바쁜 기색이 역력했다.“선웅아, 큰일이야! 주민혁이... 주민혁이 나를 찾아왔어!”손희경은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말을 쏟아냈다. 숨도 고르지 못한 채 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조금 전까지 이 별장 안에 있었어. 예전 일들을 캐묻더니 이제 다 정리하겠다고 했어! 제발 빨리 방법을 생각해 봐. 걔 절대 우리를 그냥 두지 않을 거야!”휴대폰 너머가 잠시 조용해졌다.잠깐의 침묵 끝에 주선웅의 목소리는 한층 낮아지고 서늘해졌다.“어떻게 걔가 엄마를 찾은 거죠? 분명히 말했잖아요. 별장에만 있으라고, 밖에 나가지도 말고 누구랑도 연락하지 말라고.”“난 정말 한 번도 나간 적 없어! 나도 어떻게 찾았는지 모르겠다고!”손희경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다급하게 말했다.“분명 뭔가 알아낸 거야. 아까 날 보던 눈빛이... 당장이라도 날 삼켜버릴 것 같았어. 선웅아, 빨리 좀 생각해 봐. 우리 계획... 우리 계획이 들통난 건 아니겠지?”주선웅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주민혁의 수단이 얼마나 집요한지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손희경에게까지 닿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이미 오래전부터 그들을 조사해 왔고 다만 타이밍을 재며 움직이지 않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엄마, 일단 침착해요.”주선웅의 목소리는 차분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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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9화

주민혁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은 그의 계획을 흐트러뜨렸지만 동시에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지체할수록 불리해지니 이제는 서둘러 움직여야 했다.그렇게 주선웅은 휴대폰을 들어 한 번호를 눌렀다.“저예요. 최수빈이랑 그 아이의 동선 좀 알아봐 줘요. 가능한 한 자세하게. 그리고 준비해 둬요. 주민혁이랑 제대로 한번 이야기할 생각이니까.”전화를 끊은 주선웅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밤임에도 창밖에는 차량 행렬이 멈추지 않고 빼곡히 이어지고 있었다....밤이 깊어졌다.주민혁이 자신의 별장으로 돌아와 막 자리에 앉았을 때, 려운이 서류 한 장을 들고 들어왔다.“대표님, 손희경 씨 쪽에는 이미 사람을 붙여 놨습니다. 통화를 끝낸 뒤로는 계속 별장 안에만 있었고 밖으로 나간 흔적은 없어요. 그리고 조금 전, 주선웅 씨가 별장으로 사람을 보냈고... 수빈 씨와 예린이의 동선도 조사했습니다.”눈빛이 단숨에 차가워지며 주민혁은 려운에게 낮은 목소리로 몇 마디를 건넸다.“알겠습니다, 대표님.”려운은 고개를 끄덕인 뒤 곧장 돌아섰다.이윽고 별장 안에는 다시 주민혁 혼자만 남았다.그는 어두워진 창밖을 바라보다가 최수빈이 선물해 준 만년필을 꺼냈다. 그러고는 손끝으로 자루에 새겨진 ‘J’ 라는 이니셜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가슴이 시큰거리는 것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려운은 주민혁의 별장을 나서자마자 차에 올라타 가장 먼저 최수빈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는 그녀가 줄곧 주민혁의 안위를 걱정해 왔다는 걸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 주선웅이 그녀와 주예린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한 이상, 반드시 미리 알려야 했다.신호음이 두어 번 울리고 나서 전화는 바로 연결됐다.“려 비서님, 무슨 일이에요?”막 일을 마친 듯한 최수빈의 목소리에는 피로가 묻어 있었다.“수빈 씨, 방금 확인된 소식인데 대표님께서 주선웅 씨의 모친인 손희경 씨를 찾아냈습니다. 그분은 죽지 않았고 지금까지 은산시 교외의 한 별장에 숨어 지내면서 주선웅 씨와 함께 주씨 가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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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0화

이 모든 조치를 마친 뒤에야 최수빈은 조금 숨을 돌릴 수 있었다.그렇게 막 짐을 정리하고 퇴근하려는데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화면에 떠오른 이름은 ‘심 대표님’이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보는 순간, 최수빈의 미간이 자연스레 좁혀졌다.심종연 역시 이번 프로젝트의 협력 담당자 중 한 명이었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철저히 업무에 한정돼 있었다.사적인 연락을 주고받을 일은 거의 없었고 더더욱 퇴근 시간에 전화가 올 이유는 없었다.‘이 시간에 왜 전화를 걸어오신 거지?’최수빈은 잠시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았다.“심 대표님, 안녕하세요. 혹시 업무 관련해서 연락 주신 건가요?”“수빈 씨, 안녕하세요.”심종연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차분한 것이 감정의 기복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업무라기보다는 요즘 다들 프로젝트 때문에 고생이 많잖아요. 잠깐 시간 되시면 야식 먹으면서 이야기 좀 나눌까 해서요.”최수빈은 즉각 경계했다. 심종연은 주선웅의 측근이었으니 말이다.그들은 오랜 기간 함께 일해 온 사이였고 두 사람의 관계가 각별하다는 건 업계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주선웅이 막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 이 시점에 심종연이 갑자기 야식을 핑계로 연락해 왔다?결코 단순한 제안일 리 없었다.무엇보다 그녀와 심종연 사이에는 일 말고는 나눌 이야기가 없었다.“죄송합니다, 심 대표님. 오늘은 좀 피곤해서요. 집에 가서 쉬어야 할 것 같아요.”최수빈은 정중한 말투를 유지했다.그러자 휴대폰 너머가 잠시 조용해지더니 이내 심종연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여전히 담담했지만 은근히 무언가를 유도하는 듯한 뉘앙스가 섞여 있었다.“그렇게 급하게 거절하실 필요는 없어요. 사실 오늘 연락드린 건... 선웅 씨에 관해 할 이야기가 있어서입니다. 아마 느끼셨을 거예요. 선웅 씨가 수빈 씨에게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걸요. 그와 관련해서 수빈 씨가 알아야 할 것들이 좀 있습니다. 제대로 한번 이야기를 나눠보는 게 수빈 씨에게도, 주 대표님에게도 좋을 거예요.”심장박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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