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버려진 왕비, 천재로 재탄생: Bab 121 - Bab 130

204 Bab

제121화

상황이 너무 갑작스러워서, 진의댁은 매우 놀라 그동안 가장해 오던 온순하고 자애로운 모습도 잊은 채, 원한 서린 눈으로 백진아를 노려보았다.백비아는 배를 감싸 쥐고 있었고, 그녀의 작은 얼굴은 순식간에 새하얘져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에 독기가 스쳤지만, 곧바로 눈물을 글썽이며 울먹이기 시작했다.“언니, 제가 대체 뭘 잘못했나요…? 어찌 언니께서 신분도 잊고 저를 때리신 겁니까?”백진아는 냉소했다.“내가 널 때렸다니? 발로 찼지!”그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앞으로 다가가 백비아의 몸을 향해 마구 발길질을 퍼부었다.“악! 으악!”백비아는 머리를 감싸고 바닥에 몸을 웅크린 채 비명을 질렀다.“진아야!”진의댁은 백진아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막아섰다.“진아야, 비아가 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러는 것이냐?”원래의 백진아도 똑똑하지 않고 제멋대로이며 성질이 급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진의댁과 백비아는 종종 백진아를 부추겨 서출인 남동생, 여동생들을 때리게 하곤 했었다.하지만 오늘 백진아가 백비아를 때릴 줄은 감히 상상도 못 했다.백진아는 지금 상황에 원래의 주인처럼 오만하고 기세등등한 성격을 제대로 연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바로 손을 뒤로 빼더니, 진의댁 뺨을 세게 후려쳤다.‘짝!’크고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마당 전체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진의댁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화끈거리는 뺨을 감싸 쥐며 눈물을 글썽였다.“진아야, 대체 왜 우리를 때리는 것이냐? 부인께서 뭐라 하셨든, 난 진심으로 너를 아끼는 사람이다. 그동안 함께 지냈는데도, 정녕 내 마음을 모르는 것이냐?”그녀는 최근 백진아가 백우씨와 가까워진 것을 보며, 분명 백우씨가 뭔가 이간질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래서 백진아가 갑자기 이렇게 매섭게 구는 거라 여긴 것이다.백진아는 냉소했다.’이 와중에도 이간질해? 이 정도로는 부족하지.’그녀는 반대쪽 뺨도 한 번 더 후려쳤다. 이제야 좌우 대칭이 맞았다.그리고 나서야 백진아는 백우씨가 얼굴은 때리지 말라고 당부했던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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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화

진의댁은 딸에게 멸시당하자, 가슴이 찔린 듯 아파왔다. 그녀는 이내 울먹이며 말했다.“너…”그러다 진의댁이 갑자기 배에서 심한 고통을 느낀듯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그녀는 백비아를 놓아버리고 황급히 뒷간으로 뛰어 들어갔다. 곧이어 안에서 설사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심각한 설사로 진의댁은 속바지를 추스를 힘도 없을 정도였다. 그녀는 탈수 상태가 될 때까지 고통을 참아내고, 결국 다리가 풀려 침상에서 내려오지도 못했다.의원을 불러 쓴 약을 몇 첩이나 먹였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뭐라도 먹기만 하면 바로 설사를 쏟아내니, 하루 종일 뒷간에서 지내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녀가 겨우 회복되었을 때쯤, 얼굴에 남은 백진아의 손자국도 마침내 가라앉아 있었다.백진아는 이전의 행지원에서 지내게 되며, 수많은 하녀와 노파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여유로운 삶을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끼니마다 공간의 영천수로 끓인 인삼탕, 은이 연자탕 같은 보양식을 준비해 정원으로 가져가 백우씨와 백경유와 함께 먹었기에, 두 사람과의 관계도 훨씬 가까워져 있었다.그녀는 틈만 나면 그 공간 안에서 바쁘게 지냈고, 어느새 공간 창고에는 과일과 채소가 산처럼 쌓이게 되었다. 그 양이면 본인과 백우씨, 백경유가 1년은 먹고도 남을 정도였다.단지 지금 계절엔 그 과일과 채소를 떳떳하게 꺼낼 수 없어, 기회를 찾지 못하면 홀로 몰래 먹을 수밖에 없었다.다행히 공간에 보관된 물건들은 시간이 지나도 전혀 상하지 않았고, 언제 꺼내도 갓 따온 것처럼 신선하고 윤기마저 흘렀다.백진아는 몇 번의 채소 수확을 마치고 나서는 온전히 약초만 심었다. 금화가 꾸준히 늘긴 했지만, 2급으로 올리기엔 아직 한참 멀었다.금화를 벌려면 약초만 심어선 부족했기에, 결국엔 사람을 치료해야 했다. 그래서 그녀는 의원을 열거나, 의원에 가서 진료를 볼지 고민 중이었다.황제가 다시 불러 치료를 명하지 않는 걸 보면, 어의와 고지행이 이미 그녀의 침술과 안마법을 익힌 듯했다.연천능 역시 사람을 보내지 않았다. 그래서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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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화

추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역시나 얼굴이 살짝 붉어져 있었다.이 아이도 분명 공왕의 팬 같았다.백진아가 물었다.“추월도 공왕 전하를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이냐?”그러자 추월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마음에 둔다기보다는… 공왕 전하께서 신선 같은 모습이라 하여, 그저 멀리서라도 한번 뵙고 싶을 뿐입니다.”아이돌을 멀리서라도 보고 싶어 군중 속에 몰려드는 팬들과 똑같은 심정이었다.백진아가 지내고 있는 행지원은 정원 오동원과 아주 가까워, 바로 도착할 수 있었다.마당에 들어서자 묘하게 억압된 듯한 정적이 감돌았다.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백진아는 발걸음을 재촉해 방 안으로 들어갔는데, 연천능과 공왕이 좌우로 앉아 느긋하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공왕이 방문했다더니… 왜 연천능도 와 있는 거지?’백우씨는 아래쪽 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두 사람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백진아가 들어오자, 백우씨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몸이 안 좋다더니, 좀 괜찮아졌느냐?”백진아는 바로 상황 파악을 하고, 이내 연기 모드로 돌입했다. 그녀는 이마를 누르며 비틀거리기 시작했다.“아이고… 아직도 조금 어지럽습니다.”그리고 그녀는 풀썩 연탑 위에 앉았다.백우씨는 당황함을 감출 수 없었다. 어찌 이렇게 멍청한 딸을 낳았단 말인가? 연기가 너무 어설프지 않은가?백우씨는 공왕에게 진지하게 말했다.“아시다시피, 능왕비의 몸이 좋지 않아 외출은 어렵습니다. 진료를 원하시면… 이 자리에서 맥을 짚는 게 어떠실지요.”공왕은 온화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그럼, 폐 좀 끼치겠습니다.”그러고는 눈처럼 새하얀 손목을 내밀었다.백진아는 일어나 그의 맥을 짚으려 했다. 사실 의원도 환자가 직접 오기만 하면 되는데, 굳이 찾아갈 필요가 없지 않은가?그런데 갑자기 연천능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공왕숙의 병은 하루이틀 된 것도 아니니, 급할 것 없습니다. 오늘 진아의 몸이 아프니, 수고시키지 말고, 다른 날로 미루지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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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화

’어쩐지 유여매와 한통속이 되어 나를 해치려고 했으니. 알고 보니 사랑에 미쳐 그런 짓을 한 거구나?!’백비아은 몸을 부여잡고 일어서서, 그들의 뒷모습이 봄꽃이 흐드러진 오솔길 저 끝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야 독기가 서린 눈빛을 거둬들였다.“공왕 전하를 배웅하라!”백우씨의 목소리에 백비아는 잠시 멈칫했다. 그녀는 곧바로 무서운 표정을 지우고,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띤 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때마침, 달빛 같은 은색 비단 도포를 걸친 공왕이 마치 그림 속 신선 같은 모습으로 걸어오고 있었다.백비아는 이내 부끄러운 듯한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예를 올렸다.“소녀, 공왕 전하께 예를 올립니다.”공왕은 그녀 앞에 와서 걸음을 멈추고, 부드럽게 말했다.“예를 면하게.”“감사합니다, 전하!”백비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정한 눈빛으로 공왕을 바라보았다.공왕은 온화하게 미소를 짓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그녀 곁을 지나갔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은은한 용연향이 퍼졌다.백비아는 그의 미소에 마음이 두근거렸고, 눈빛에 기쁨이 피어올랐다.공왕 전하가 웃어주었다니? 그는 자신을 좋아하는 게 분명하다!너무나 잘됐다!비록 능왕비는 못 되어도, 공왕비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집안의 다른 아가씨들도 소식을 듣고 달려와, 오동원 입구에서 공왕을 가로막다시피 했다. 다들 눈을 반짝이며 공왕에게 조심스레 예를 올렸다.그러자 공왕은 걸음을 멈추고, 온화한 미소로 “예를 면하라.”라고 말한 뒤 다시 걸음을 옮겼다.그 말 한마디에 아가씨들의 얼굴은 금세 빨개졌고, 당장이라도 비명을 지를 기세였다.백진아는 연천능의 널찍한 마차 안에 앉아, 그를 경계하는듯 노려보며 물었다.“무슨 일로 저를 찾으십니까? 상처를 꿰맨 실이라도 없애라 부르셨습니까?”연천능은 차갑게 말했다.“사람을 구하거라.”고지행이 신의라 불리는 만큼, 실을 제거하는 것 정도는 할 줄 알았다.백진아는 머리를 옆으로 툭 기울이더니, 마차에 기대앉았다.“아이고,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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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화

백진아는 지난번 연천능을 따라 성 밖으로 나가 사람을 구하러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정말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었다.연천능은 여전히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마차에 기대어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그 모습에 백진아는 입을 삐죽이며 그를 향해 주먹을 휘둘러 보이다가, 결국 함께 마차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며칠 동안 계속 점심때마다 자던 탓에, 그녀는 졸음이 밀려와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눈을 떴을 때, 마차는 이미 어느 산 아래에 멈춰 있었다.백진아는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목을 움츠렸다. 밖은 바람이 몹시 셌고, 방금 깨어서인지 유난히 더 춥게 느껴졌다.연천능은 말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산 위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워낙 걸음이 빠른 탓에 백진아는 그 뒤를 따라 작은 걸음으로 뛰다시피 쫓아갔다.속으로 원망이 가득해, 틈만 나면 그의 뒤통수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고, 발을 들어 그의 엉덩이를 걷어찰 듯 흉내만 냈다. 그런데 갑자기 연천능이 홱 뒤돌았다.백진아는 놀라서 튀어나온 발을 급히 걷으려다가, 허둥지둥하며 작은 돌을 밟고 말았다.‘탁’ 비명과 함께 백진아의 발목이 꺾였다!백진아는 울고 싶었다.이게 바로 얌전하지 않은 그녀가 받은 벌인가?연천능은 돌아보더니, 차갑고 오만하게 말했다.“꼴좋군.”백진아는 씩씩거리며 말했다.“저는 가지 않겠습니다…! 발목도 다쳤으니 그만 돌아가야겠어요!”연천능의 참을성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는 그녀의 허리를 잽싸게 끌어당겨, 강제로 품 안에 가두었다.순간 백진아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더니, 미친 듯이 빨라졌다. 그녀는 당황해서 정신이 혼미해졌다...그의 품은 너무나도 따뜻했다.그의 몸에서는 청아하고 맑은 대나무 향이 났고, 깨끗하고 중독성 있는 향기였다.백진아가 정신을 차리기 전, 연천능은 그녀를 안고 발끝을 디뎠다. 순간, 그는 경공으로 산 위로 훌쩍 날아올랐다.백진아는 그의 따뜻한 품에 기대어 허공을 날아갔다.한 번 경험했기에, 백진아는 이번에 전보다 훨씬 침착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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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화

“스읍…”발목에서 화끈한 통증이 올라왔다.방금 연천능의 그 강압적인 포옹에 정신이 홀려, 다친 발목을 확인하는 걸 잊고 말았던 것이었다!’남색은 정말 사람을 망친다! 남색은 정말 위험해!’백진아는 절뚝거리며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연천능은 이미 멀리 가버린 뒤였다.백진아는 주위를 둘러보며 커다란 바위를 하나 찾아 앉은 뒤, 신과 버선을 벗고 발목을 살폈다. 그녀의 발목은 벌써 빨갛게 부어오르고 있었고, 확실히 탈구된 게 맞았다.그때,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백진아는 경계하며 뒤를 돌아보았고, 연천능이 성큼성큼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의 손에는 상자 하나가 들려 있었다.백진아는 힐끗 그를 보며 물었다.“환자가 이곳에 있는 것입니까?”“그래.”연천능은 그녀의 말에 답하며, 손에 들린 상자를 열었다.그러자 곧바로 약 냄새가 퍼졌다. 백진아는 향을 맡자마자, 바로 접지른 곳에 바르는 약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이건… 그녀의 발목을 치료하려고 가져온 건가?‘흥! 그래도 양심은 있네!’연천능은 쭈그려 앉아 그녀의 고운 발을 보더니 잠시 멈칫했고, 곧바로 얼굴을 찌푸리며 불만 가득한 눈초리로 그녀를 쏘아보았다.‘정말 못된 여자네… 어찌 이렇게 태연할 수가 있지? 발을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드러내다니…! 설마 남들 앞에서도 이럴 셈인가?’그의 눈빛에 담긴 분노와 질투 같은 감정을 느낀 백진아는 억울하기만 했다.‘아니, 내가 뭘 잘못했다고? 혹시… 약을 발라주기 싫은 건가?’그럴 수도 있었다. 능왕의 신분에 굳이 다른 사람에게 약까지 발라줄 필요는 없지 않은가?백진아는 이내 손을 내밀며 말했다.“어서 약을 주시지요. 제가 직접 바를 테니.”하지만 그의 싸늘한 시선은 서서히 아래로 향했고, 그녀의 하얗고 고운 발에 멈췄다.“뭐… 뭐예요?”약을 건네주지 않는 그를 보며, 백진아는 그의 속내를 알 수 없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그의 시선을 따라 내려다본 순간, 그녀는 자신이 발을 그대로 드러내놓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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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화

백진아는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는 각오로 발가락을 까딱거리며 태연하게 행동했다.‘그까짓 발 한 번 보여주는 게 뭐? 발목에 약 좀 발라주는 게 뭐 어때서? 난 비키니 입고 바닷가도 가는 사람이잖아? 전문적인 추나와 마사지까지 했던 사람인데, 무서울 게 뭐 있어?’하지만 능왕의 눈빛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그는 갑자기 백진아의 발을 꽉 잡고, 힘껏 ‘탁’하고 당겼다.“악!”백진아는 비명을 질렀다.“지금 무슨 짓입니까!”관절을 맞추는 것이 아픈 거 알았지만, 그렇다고 말 한마디 없이 확 당기다니?연천능의 얼굴은 더 차갑게 굳어졌다.그는 한 손으로 그녀의 발을 받치고, 다른 손으로 약을 거칠게 발목에 발라댔다. 약은 아주 차고 시원했고, 백진아는 화끈거리던 통증이 바로 가라앉는 걸 느꼈다.그녀가 안도의 숨을 막 내쉬려던 순간, 연천능은 또다시 힘을 줘 약을 문질렀다.“앗! 아픕니다!”그녀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추나가 조금 아픈 건 맞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 남자가… 일부러 하는 짓이 분명했다!연천능이 차갑게 말했다.“계속 나를 욕할 셈이냐?”‘나쁜 자식!’백진아는 속으로 욕설을 퍼부으며 그를 매섭게 노려봤다. 연천능도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그의 차갑고 조소 섞인 눈빛과, 그녀의 분노 가득한 눈빛이 부딪혔다. 둘은 마치 원수처럼 서로를 노려보며 시선을 떼지 않았다.그 둘은 누가 먼저 눈을 깜빡이는지 내기하는 듯,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았다.주위는 숨 막히도록 고요했고, 시간이 멈춘 듯했다. 연천능은 자신이 손을 멈춘 것도 몰랐고, 백진아 역시 발목이 더 이상 아프지 않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바로 그때.“스승님! 아직 안 오셨습니까?”동굴 깊은 곳에서 고지행의 목소리가 울렸다.둘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고, 재빨리 서로의 시선을 피했다.다급히 고개를 든 백진아는 동굴 천장에 이름 모를 벌레 두 마리가 열심히 번식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게 뭐야!’백진아는 얼굴이 더욱 활활 달아오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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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화

한 복면의 사내가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모닥불 옆에서 엄지손가락 굵기의 나뭇가지를 하나 집어 건넸다.“고맙네.”백진아는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담담히 말하며 나뭇가지를 받아서 들었다.그녀에게 복면의 사내는 그냥 ‘보조’ 같은 존재였기에, 고맙다는 말도 무의식적인 예의일 뿐,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하지만 연천능과 고지행은 눈을 크게 뜨고 서로를 바라봤다.오만하고 고집 세고 성질 사나운 백진아가… 다른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니?그런데 곧이어 더 놀라운 장면이 이어졌다.백진아는 나뭇가지를 잘라 작은 조각을 만들고, 조 마마의 턱을 잡고 어떤 방법을 썼는지 입을 억지로 벌렸다. 그리고 작은 나뭇가지를 입 벌린 틈에 끼우더니, 힘껏 젖혀 입을 강제로 열었다.그다음, 고지행이 들고 있던 약그릇을 받아 그 나뭇가지를 따라 약을 조 마마의 입속으로 그대로 흘려보냈다.고지행은 본능적으로 입을 감쌌다.너무 단순하고도 거친 방법이 아닌가?백진아는 약을 먹인 뒤, 약상자에서 가위, 외상약, 붕대 등을 꺼내 조 마마의 상처를 치료해 주려고 했다. 상대가 여인이었기에, 그녀의 몸에 남은 상처들은 치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연천능과 고지행은 오해를 피하기 위해 멀리 떨어진 채로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그런데 이때, 복면 쓴 사내가 물통 하나를 들고 와 백진아 옆에 놓고는, 다른 복면 사내들처럼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물러났다.그들은 조 마마의 몸을 보지 않으려 일부러 시선을 내리깔고 있었다.하지만 백진아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조 마마에게 조금이라도 이상한 짓을 하면, 이들 모두가 즉시 자신을 공격할 거라는 사실을.조 마마의 몸에는 수많은 상처가 있었다. 채찍 자국도 있고, 뜨거운 것에 덴 흔적도 있었다. 분명 고문을 당한 것이다.백진아는 물통의 물로 상처를 씻고, 알코올 소독을 한 뒤, 약을 바르고 붕대로 정성스럽게 감아주었다. 모든 응급 처치를 끝낸 후, 그녀는 은침을 꺼내 조 마마를 깨웠다.조 마마는 눈을 뜨자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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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화

공간 안의 의료 동이 전부 개방되어 있다면, 백진아는 어떻게든 해결할 방법이 있었다. 최악의 경우 인공 성대를 교체하면 그만이었다.하지만 지금 상황으로서는 어려웠다.백진아는 죽그릇을 내려놓고 조 마마를 한 번 바라본 뒤 말했다.“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혹시 글은 읽을 줄 아시나요? 손이 없다면 입이나 발로도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아니면 잘린 두 팔에 붓을 끼워 쓸 수도 있지요.”연천능이 말했다.“온갖 방법을 다 써봤지만, 글을 쓰지는 못하는 것 같구나.”그때 고지행이 다가와 말했다.“조 마마가 귀도 들리지 않고 말도 못 하는 건, 세월정미라는 독에 중독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로 입을 막기 위해 쓰는 독이지요. 한 번 중독되면 귀가 먹고 말을 못 하게 됩니다. 이 독만 없애면, 괜찮아질 것입니다. 다만 해독제에 들어가는 무지개 수정화라는 약재는 신비롭고 보기 드문 귀한 약재지요. 신의곡 사람들조차 실제로 본 적이 없습니다.”연천능이 물었다.“다른 방법은 없는 것이냐?”백진아가 말했다.“그럼, 좀 더 자세히 조 마마를 살펴봐야겠습니다.”연천능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하지만 백진아는 난감했다. 인후와 귀를 진찰하기 위한 기본 도구는 공간에서 꺼내야 했고, 혈액검사도 공간 안에서만 해야 했다.‘그런데… 어떻게 공간에 들어가지?’백진아는 눈을 굴리며 방법을 궁리했다. 연천능은 그녀의 표정을 보고 차갑게 경고했다.“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거라.”백진아는 그를 노려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머릿속에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고는 수줍은 척 손가락을 꼬며 말했다.“저, 저는 그저… 급한 볼일을 해결하고 싶었습니다.”“…”다들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능왕비가 이런 말을 낯선 사내들 앞에서 하시다니?연천능은 헛기침하더니, 동굴 안쪽을 보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저 안으로 가서 왼쪽으로 돌면, 작은 동굴이 하나 있다.”백진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의 약상자를 챙기러 갔다.조 마마의 상처를 치료하느라 사용한 도구를 아직 씻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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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화

이 약재는 현대에서는 이미 자취를 감춘 것이었다. 그녀도 그저 고독에 관한 자료를 조사하며 고서 약전에서 그림과 자세한 약리 설명만 간단하게 본 적이 있을 뿐이었다.백진아는 아쉬운 듯 한숨을 쉬고, 시스템에서 후두경, 설압자, 이경을 얻기 위해 많은 금화를 썼다. 후두경과 이경은 태양열 충전식으로 여러 번 사용할 수 있었고, 지금의 환경에도 유리했다.그동안 어렵게 모은 금화가 다시 연달아 줄어들자, 그녀는 마음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언제쯤 2층 자원을 열어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까?약상자를 들고나오자, 연천능과 고지행이 어색하게 시선을 피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백진아는 속으로 웃었다.‘참 재미있구나.’백진아는 조 마마 곁에 다가가서 그녀의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 후두경을 꺼내 목을 검사했다.고지행은 후두경을 보고 눈빛이 깊어졌다. 그는 이미 백진아의 약상자에 든 것을 모두 확인했었고, 이런 이상한 도구는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약상자도 그가 직접 제작한 것이었다. 분명 상자에는 숨겨진 공간 따위가 없었다.그는 호기심에 다가와 물었다.“이게 무엇입니까? 안에서 빛도 나는 것 같은데…! 어떤 걸 볼 수 있는 것입니까?”후두경은 눈에 붙여서 봐야 하는 장치라, 어느새 고지행의 머리가 백진아의 머리와 부딪힐 정도였다. 연천능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손을 뻗어 고지행의 목덜미를 잡고 그를 옆으로 밀어냈다.고지행은 억울한 듯 코를 만졌다. 사실은 더 가까이 가고 싶었지만, 연천능의 차가운 기운을 느껴, 그저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목 검사를 마친 후, 백진아는 이경으로 조 마마의 귀를 검사했다.그녀의 단정한 작은 얼굴에는 진지함이 가득했다.“확실히 독에 의한 겁니다. 독소로 인해 목에 혹이 생겨 목소리를 내기 어렵고, 귀도 역시 독으로 인해 괴사해 청력을 잃었습니다. 제 추측이 맞다면, 목도 괴사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전이나 이후에 해독제를 복용했을 수도 있습니다. 세월정미 독을 완전히 없앨 순 없었지만, 독의 효과를 억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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