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간신은 오늘도 나를 죽이려 한다: Chapter 21 - Chapter 30

100 Chapters

제21화

아마도 그 암살자들조차 오늘의 작전이 뭔가 수월치 않다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계속해서 싸워봤자 전멸은 시간문제였다. 바로 그때 암살자 두목이 무심히 눈길을 돌리다 한쪽에서 상황을 관전 중인 여수아를 발견했다.‘저 여인이 재상의 정혼녀였나?’그는 단숨에 몸을 날려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여수아는 그의 의도를 눈치채자마자 잽싸게 휘장을 넘겨 도망쳤다. 그녀는 이 혼란 속에서 소휘의 덤이 되어 죽을 순 없는 일이었다.하지만 암살자 두목의 속도가 더 빨랐다. 휘장을 막 벗어나려던 그녀의 앞을 순식간에 가로막았다. 지금 자신의 상태로는 정면으로 맞설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저항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날렵하게 그녀를 제압해 차디찬 칼날을 그녀의 목덜미에 바짝 들이댄 채로 휘장 밖으로 끌고 나왔다.“그 자가 널 얼마나 아끼는지 보자고.”암살자 두목이 냉정하게 외치며 맞은편의 소휘를 향해 소리쳤다.“이 여인을 살리고 싶다면 당장 항복하거라!”여수아는 속으로 비웃었다. 그녀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들고 말했다.“그 사람이 나 때문에 손을 멈출 거라 생각하느냐? 아까는 나를 방패로 썼던 자이다. 내 목숨 따위는 그 사람에게 그리 대단한 게 아니란 말이다.”하지만 그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 여수아의 말대로 소휘는 방금 적 하나를 제압한 뒤 냉담하게 여수아를 스쳐보기만 하고 다시 다음 적을 향해 발을 옮겼다.그녀는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보았느냐? 날 인질로 삼아봤자 소용없단 말이다. 네 부하들이 다 죽을 때까지 기다릴 셈인가?”그 말에 격분한 암살자 두목은 칼끝을 다시 여수아의 목에 깊숙이 들이밀었다. 차가운 칼날이 살갗을 간신히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들어 목이 긁히지 않도록 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무고한 자는 죽이지 말 것, 그것이 ‘희무하’ 문주께서 너희에게 내린 첫 가르침 아니었더냐?”그 한 마디에 암살자 두목의 몸이 흠칫 떨렸다. 그 이름을 아는 자는 극소수였다.희무하.무회문 문주의 본명이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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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멀찍이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청악군주의 얼굴은 순식간에 새하얘졌다. 원래는 이 혼란한 틈을 타 그 천한 계집을 ‘실수로’ 죽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 계집은 계속해서 감쪽같이 몸을 숨겼고 겨우 모습을 드러낸 순간에 쏜 검마저 비켜나가버렸다. 거기다 그녀가 보낸 하인은 소휘에게 즉사 당하기까지 했다.다행인지 불행인지, 이제 소휘의 손에는 흉기가 없었다. 여수아는 그 점에서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가 자신 앞으로 다가와 우뚝 서있자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괜찮사옵니까?”소휘는 몸을 굽혔다. 핏물을 뒤집어쓴 몸에서는 짙고 묵직한 살기와 철 냄새가 풍겼다. 그는 여수아의 손목을 움켜쥐고 낮게 말했다.“기민하게 잘 앉았더군.”“다리가 풀렸을 뿐이옵니다.”소휘는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저었다.“그 말, 못 믿겠는데.”그러고는 그녀를 가뿐히 끌어올렸다. 여수아는 몸을 내맡기듯 그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이 온몸에 흐르는 짐승 같은 냄새가 그의 본래 향까지 덮어버렸으니 이제는 체면도 신경 쓸 게 없었다. 어차피 정혼자가 아니었나? 이런 자리에서 애틋함을 보이는 게 뭐 그리 대수랴.소휘는 잠시 멈칫했다. 그때 그녀의 속삭임이 귓가를 스쳤다.“무사하셔서 다행이옵니다. 방금… 전, 나리를 다시는 못 보는 줄 알고...”그는 여태껏 어떤 여자에게도 이런 식으로 안겨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처음도 아닌 듯 너무나도 당연하게 그를 안고 있었다. 하인과 수하들은 그 모습에 모두 못 본척하며 고개를 돌렸다. 소휘는 그녀의 어깨를 한 손으로 감싸안고는 고개를 숙여 귓가에 속삭였다.“말해 보거라. 아까 그 자가 칼을 네 목에 들이댔는데 왜 널 그냥 놔준 것이지?”그녀는 태연히 말했다.“저를 가지고 나리를 협박하는 게 통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나 봅니다. 실제로도 효과가 없었잖습니까. 나리께서 저를 원하지 않으신다면 정혼도 여기서 끝내는 게 좋을 듯 하옵니다.”소휘는 조용히 그녀의 머리칼을 쓸어내리며 부드럽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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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소휘가 다시 입을 열었다.“적어도 내가 그들에게 얼마짜리 목숨인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니냐?”여수아는 속으로 생각했다. 높은 자리에 앉은 권신들은 모두 하나같이 이렇게 비틀린 성정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자기 몸값이 얼마쯤 되는지 정작 본인은 모르기라도 한 것일까?그 사이 곤이는 처벌받을 겨를도 없이 바삐 움직였다. 소휘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곧장 부하들을 이끌고 다시 추격에 나섰다. 소휘는 뒷마당 쪽으로 걸음을 옮기다가 몸을 돌려 여수아를 바라보았다.눈꼬리를 살짝 치켜올린 그의 눈빛은 피로 얼룩진 보랏빛 도포와 어우러져 더욱 도드라졌다. 선혈은 꽃처럼 도포에 퍼졌고 그 선홍은 마치 만개한 모란 같았다. 화려하고, 음험하고, 무서울 만큼 아름다웠다. 그의 얼굴은 분명 온화했지만 그 안에 담긴 정과 광기는 사람을 숨 막히게 했다.“그대는 별로 놀라지 않은 모양이지?”여수아는 덤덤하게 답했다.“놀랐사옵니다.”“그런데 어째서 다른 여인들처럼 울거나 토하지 않는 것인가?”꼭 그렇게 해야 놀란 걸로 쳐주는 것일까? 지금 이 남자의 모습이야말로 공포의 상징인데.“시골에서는 닭이나 오리 잡는 걸 자주 봐서 별 감흥이 없사옵니다. 그냥 죽은 닭이나 오리라고 생각하면 되니까요.”소휘는 그녀를 한참 바라보다 말없이 돌아섰다.여수아는 자신이 묵는 별당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옷자락에 튄 핏자국을 씻어냈다. 그러고는 조용히 낮잠을 청했다.저녁 무렵, 마 씨가 다급히 달려오며 소리쳤다.“아가씨, 재상 나리께서 돌아오셨사옵니다. 같이 저녁을 들자고 하십니다.”그 말에 여수아는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오늘처럼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일을 겪고 나니 아직도 가슴이 떨려서 밥은커녕 물도 잘 안 넘어가는구나. 내가 이 몰골로 나가서 나리의 식욕까지 떨어뜨리면 곤란하겠지?”그녀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다시 입을 열었다.“그냥 이렇게 전해주거라. 아가씨께서 너무 놀라서 지금은 쉬고 있다고. 그러니 식사 자리는 사양한다고 말이다.”마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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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그날 밤, 혼례 소식은 삽시간에 온 재상부로 퍼져나갔다.자객이 재상부를 습격하였고 그 혼란 속에서 재상과 여 아가씨가 함께 생사의 고비를 넘긴 끝에 재상이 크게 감동을 받아 열흘 뒤 혼례를 치르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이었다. 다음날 아침, 재상부는 마치 전쟁이라도 치를 듯 분주하게 혼례 준비에 돌입했다.한편, 궁정 회의 자리에서 황제 역시 전날의 자객 사건을 전해 듣고는 곧장 캐물었다.“상공, 무탈한 것이냐? 자객은 잡았느냐?”소휘는 조용히 답했다.“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범인은 체포하여 오늘 중으로 대리시에 송치할 예정이옵니다.”문무백관은 저마다 속내를 감추며 그의 말을 들었다. 도망쳤다는 그 자객의 두목이 결국 다시 잡혔단 말인가? 조사라도 진행되면 누가 그를 사주했는지 만천하에 드러날 것이다. 그날 오전, 소휘는 직접 포로를 대리시로 보냈다. 잡혀 온 자는 머리카락이 헝클어지고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어올라 있었다.대리시 쪽에서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포로를 직접 인계한 곤이에게 물었다.“이 지경이면 인상도 구분이 안 될 텐데 어찌 심문을 한단 말이냐?”곤이는 태연히 대답했다.“나리를 해치려 한 자옵니다. 그 자리에서 죽이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지요. 얼굴은 곧 가라앉을 테니 며칠 뒤에 심문하시는 게 어떠하옵니까?”그 자객은 간신히 정신을 붙잡고 있었다. 그는 대리시쪽 사람을 보고는 알 수 없는 소리를 내었다. 이미 약으로 혀를 마비시킨 것일까? 아니면 독으로 아예 벙어리를 만든 것일까?이렇듯 입 막음은 자객 세계에서는 흔한 일이었다.그러나 대리시경은 며칠이나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그는 밤이 오자 바로 자객에게 고문을 가했다. 며칠 동안 대리시에는 음울한 기운이 감돌았다. 언제 어디서 폭발할지 모르는 불씨를 끌어안고 있는 셈이었다. 일부 관원들은 눈치를 보며 몸을 사렸고 또 어떤 이들은 조용히 손을 써 대리시에 불의의 사고라도 생기게 하려 꾀를 썼다.소휘는 겉으로 이 일에 더는 관여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보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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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생각해 보나 마나였다. 비록 그가 무회문의 두목을 잡지는 못했지만 소휘의 성격상 자신을 해하려 든 자들을 무사히 넘길 리 없었다. 그처럼 원한을 많이 사고 주변 사람을 모두 적으로 돌리는 자와 혼인을 한다면 그건 복이 아니라 화에 가까웠다. 누구든 기회만 생기면 소휘를 죽이려 드니 그 사람과 함께 있는다면 자신의 목숨도 부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며칠 동안 여수아는 자주 앞뜰을 배회했다. 정문 앞에는 훈련이 잘 된 호위들이 지키고 있었다.그러던 어느 날, 밤이 막 내리려는 시간이었다. 여수아는 드디어 정문 앞에 경계가 사라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문 앞에는 등불 두 개만 덩그러니 켜져 있었고 주변은 텅 비어 있었다. 그녀는 곧장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어디로 들어왔으면 나갈 때도 똑같이 나가면 되지. 이런 위험한 약혼자는 누가 데려가든 알아서 하고 나는 벗어날 것이다. 짐 따위는 챙길 겨를이 없다. 그저 이 문만 벗어나면 자유일 테니. 좋아, 이제 몇 걸음만 나아가면 탈출이다. 여수아는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 아무도 따라오지 않는 것을 본 그녀는 문밖으로 한 발 내디뎠다. 그 순간 강한 향이 그녀의 코끝을 찔렀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듯한 느낌에 그녀는 급히 몸을 돌렸고 누군가와 정면으로 부딪쳤다. 고개를 들어 확인해 보니 그 사람은 소휘였다.숨결이 닿을 정도로 거리가 가까워지자 여수아는 반사적으로 숨을 참았다.“어디 가는 길이냐?”“그냥 바람 좀 쐬려 하옵니다.”“이 시간에 나간다는 건 도망치려는 건가?”그는 단번에 그녀의 속마음을 꿰뚫었다. 하지만 그녀는 인정할 수 없었다.“그럴 리가 있겠사옵니까? 설마 제가 도망칠까 봐 겁나신 것이옵니까?”그녀를 바라보는 소휘의 눈빛은 다정하면서도 깊었다.“나가고 싶다면 나와 함께 가자고 해도 된다.”여수아는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거절했다.“괜찮사옵니다.”소휘는 눈을 내리깔며 그녀의 허리에 매달린 향낭을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렸다.향낭에서 풍기는 향은 지나치게 짙었고 약혼하던 날도 그녀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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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여수아가 눈을 떴을 때, 눈앞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몸은 웅크려야 겨우 누울 수 있을 정도로 좁은 공간이었다. 손발은 묶여 있었고 입엔 천까지 물려 있었기에 손을 쓸 수 없었다.이곳은 상자다.자신이 지금 상자 안에 처박혀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그녀는 처음부터 일이 순탄치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이 상자 안에 갇혀 있는 편이 소휘와 나란히 절을 올리는 것보다 훨씬 안전할 테니. 답답해질 즈음이면 그녀는 머리로 뚜껑을 밀어 환기를 시켰다.그 시각 앞마당에서 혼례 시각이 가까워오자 마 씨와 유모들이 여수아의 방으로 돌아와보았고 그제야 신부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한편 소휘는 이날 붉은 혼례 예복을 갖춰 입고 검은 머리를 붉은 비단 끈으로 묶은 채 문을 나섰다. 그 모습은 말 그대로 단정하고 치명적이었다. 워낙 빼어난 외모다 보니 도성의 처녀들 절반쯤은 모두 그를 흠모하고 있었으나 가까이 다가가지는 못했다. 그는 너무도 위험한 사람이었다.이번 연회에는 여성 손님들이 지난번보다 눈에 띄게 줄었다. 그래도 청악군주는 기어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사교계 규수들 사이에서 중심 같은 존재였기에 그녀가 오면 다른 아가씨들도 너나없이 따라왔다. 신부가 사라졌다는 소식에 아가씨들은 입을 가리며 즐거운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보십시오. 시골 계집 따위가 무슨 재상의 부인 노릇을 하겠다고.”하지만 소휘가 이 일을 가만히 넘길 리 없었다. 실종된 건 어디까지나 그의 신부였으니. 그는 곧바로 명을 내려 재상부 안을 샅샅이 뒤지게 했다. 뒤뜰부터 앞마당까지, 골목 하나하나를 훑었지만 아무런 소득도 없었다. 그때 곤이가 다급히 다가와 소휘에게 고했다.“주인 어르신, 찾을 수 있는 곳은 전부 뒤졌사옵니다. 오직 한 곳. 혼례 물자로 들여온 상자들만은 아직 열어보지 않았사옵니다.”소휘는 시선을 돌려 측랑 아래 붉은색으로 칠해진 상자들이 줄지어 쌓인 곳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는 길일을 위해 마련한 예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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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곤이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묵묵히 여수아가 들어 있는 상자 위에 또 다른 상자를 내려놓았다. 그 순간부터 그녀는 숨조차 제대로 쉬기 어려워졌다.전에 소휘가 했던 말들은 모두 빈말이었다. 혼인? 애초에 그런 뜻은 없었다. 다만 누군가가 그와의 혼례를 막겠다고 직접 나서주니 그는 그것을 구실 삼아 남의 손을 빌려 그녀를 제거하려 했을 뿐이었다.그 기이하고도 잔인한 심리를 여수아는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그녀가 스스로 떠나는 건 용납하지 못했다.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그녀를 내치는 방식이어야만 했다. 상자들을 모두 확인한 소휘는 시큰둥하게 말끝을 흐렸다.“어쩌면 청악의 말대로 그녀가 겁이 나서 몰래 달아난 걸지도 모르겠구나.”하객들은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아니, 혼례라고 해서 선물까지 보냈는데 이게 뭐란 말이오? 축하가 아니라 허탕을 쳤구먼.”혼례는 무산됐고 그저 헛된 축하만 남아있었다. 비록 신부를 맞이하는 예식은 치를 수 없었지만 이미 사람들이 모여들었기에 재상부에서는 식사를 제공했다.한편, 측랑 아래 쌓인 상자들을 정리하던 하인들이 여수아가 있는 상자를 들어 올렸다.상자는 꽤 오랫동안 옮겨졌고 그녀는 희미하게나마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그리고 마침내, 누군가 다시금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그녀는 그제야 크게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주위를 살펴보니 이곳은 재상부의 후문 너머에 있는 조용한 뒷골목이었다.그녀를 둘러싼 건 몇 명의 수행원 차림을 한 인물들이었고 그 중앙에는 맑은 눈과 고운 이목구비를 지닌 소녀가 몸을 굽히며 내려다보고 있었다.그녀는 바로 소휘의 의동생 청악군주였다.그녀는 여수아의 몰골을 보고는 흡족한 듯 입가를 올렸다. 손을 뻗어 그녀의 턱을 툭 잡아들고는 좌우로 살피며 말했다.“생각보다 얼굴이 제법 봐줄 만하구나. 이 얼굴로 내 오라버니를 유혹한 것이냐?”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걸려있었지만 말투는 싸늘했다.“안타깝군.”그녀는 목소리를 낮춰 속삭이듯 말했다.“그 사람은 너를 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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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마차는 마침내 궁 안에서 가장 이름 높은 청루, 조모관 앞에서 멈춰 섰다.전면과 후문에는 붉은 등롱이 주렁주렁 걸려 있었고 밤이 되면 그 붉은빛이 화려하게 거리를 물들이며 한 폭의 요염한 그림처럼 사람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명성과 화려함으로 이름난 곳이자 권세가들과 귀공자들이 밤마다 들락거리는 그런 곳이었다.수행하던 호위가 앞으로 나가 문을 두드리자 안쪽에서 한 하인이 나와 응했다.호위는 곧 광영저택의 패찰을 꺼내 들었다.하인은 익숙한 듯 허리를 깊이 숙이며 물었다.“지금은 아가씨들께서 모두 쉬고 계시는 시간대라... 귀한 분께서는 어떤 용무로 오셨는지요?”호위는 냉정하게 대답했다.“여기 사람 하나 팔러 왔다.”하인은 곧장 안으로 들어가 이곳을 관리하는 마담을 불러왔다. 청악군주는 마차 안에 앉은 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시종에게 명하여 상자를 들어다 놓게 했다.마담은 대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곧 상자 하나가 붉은 조명을 받으며 이곳에 들어왔고 호위가 상자의 뚜껑을 열자 그 안에는 붉은 혼례복을 입은 여인이 고요히 누워 있었다.그녀는 사람 보는 눈이 예리했다. 여수아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있었기에 얼굴이 제대로 드러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단아한 윤곽선과 뺨의 곡선 하나만으로도 단박에 이 여인이 상등 인물임을 알아보았다.그녀는 호위를 향해 말했다.“값을 부르시지요.”호위는 냉정하게 대답했다.“우리 주인의 조건은 단 하나뿐이다. 반드시 객을 받게 하거라.”마담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이곳에 들어온 이상, 손님을 받지 않는 계집이란 없으니 안심하십시오. 누구보다 많은 손님을 맞게 될 것이옵니다.”그러자 그때까지 가만히 누워 있던 여수아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 모습을 본 호위의 표정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그녀의 손에 묶여있던 매듭은 이미 풀린 상태였기 때문이다.여수아는 붉게 자국이 남은 손목을 주무르며 입속의 천 조각을 꺼내 뱉더니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마담은 그제야 그녀의 얼굴 전체를 똑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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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조모관의 뒤뜰에는 외부의 시선이 닿지 않는 별채가 따로 있었다. 평소에는 비워져 있었고 이곳의 기생들, 심지어 화류조차 감히 발붙일 수 없는 공간이었다.그중에서도 금슬원은 가장 고요하고 우아한 정원을 곁에 둔 독채였다.여수아는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곧 마담이 찾아와 그녀를 ‘낭자’라 부르던 호칭을 바꿔 “공자”라 칭하며 깍듯이 예를 다했다.마담은 매우 정중하게 그녀의 치수를 가늠해 옷을 맞춰오게 했고 여수아는 동경 앞에서 혼례용 머리 장식과 짙은 화장을 하나하나 지워내렸다.그녀가 혼례복을 입은 채 나타난 이유에 대해 마담은 감히 묻지 않았다.“공자의 스승 되시는 분은 평안하신지요?”여수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잘 계십니다. 다만 나들이 중이셔서 저도 몇 해는 뵙지 못했사옵니다.”마담이 다시 물었다.“그럼 공자께서는 이번에 도청에 오신 건 어떤 일 때문이신지요? 어찌하여 광영군댁 사람들 손에 팔려오셨사옵니까?”여수아는 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말하자면 끝도 없사옵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누구에게 맡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이곳에 머물며 조용히 방도를 살펴야 할 것 같사옵니다.”이쯤 되면 차라리 청악군주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아무런 수고도 들이지 않고 조모관 깊숙이 잠입할 기회를 얻었으니 말이다. 여수아는 한참 생각하더니 다시 마담을 향해 부탁했다.“기회가 된다면 이곳을 드나드는 손님들 중에서 궁궐에 가장 자주 드나드는 인물이 누구인지 살펴봐 주십시오.”마담은 즉시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옵니다. 반드시 알아낼 테니 안심하십시오.”원래는 소휘라는 이름에 의지해 볼 생각이었다. 그는 조정의 재상이었기에 궁 안팎을 드나드는 일이 많았다. 만약 함께 연회에 참석하게 된다면 자연스레 궁 안으로 발을 들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었다. 하지만 그와 함께 하는 길은 험난하고 위험했다.마담이 물러간 후 여수아는 무거운 혼례복을 벗어내고 목욕통에 몸을 담갔다. 탕 속의 따뜻한 온기가 뭉쳐있던 근육을 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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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낮의 조모관은 유난히 조용하고 느긋했다. 영업을 쉬는 낮 시간 동안 아가씨들은 삼삼오오 모여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췄다. 그 외에도 거문고와 비파를 연주하거나 이야기꽃을 피우며 서로의 기예를 다듬었다.여수아가 이곳에 들면서부터 음률에 밝은 그녀에게 아가씨들은 하나같이 마음을 열었고 종종 그녀 곁에 모여 줄을 조율해 달라거나 악보를 봐달라며 조언을 청하곤 했다.그러던 어느 날 정, 광영군은 조모관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비록 낮에는 손님을 받지 않지만 그가 광영군이라 하니 딱히 막을 이유는 없었다. 마담도 마침 자리에 있었기에 곧장 응대하겠다고 전했다.그가 막 안으로 들어선 순간 대청의 왼편에서 아름다운 선율이 들려왔다. 그 속에서 아가씨 하나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공자, 공자! 제 연주 어떻사옵니까?”광영군는 그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거문고를 안고 웃음꽃을 피운 아가씨들 사이로 아름다운 여성이 보였다. 가녀린 어깨에 허리까지 흘러내린 푸른 머릿결. ‘공자’라 불리고 있으나 분명 여인의 뒷모습이었다.광영군은 일단 발걸음을 옮겨 대청 맞은편에 있던 마담을 찾아가 자신이 이곳에 들린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공자, 광영군께서 오셨사옵니다.”여수아는 눈을 깜빡이며 되물었다.“대낮에… 손님으로요?”마담은 손부채를 반쯤 내리며 웃었다.“아니옵니다. 공자를 찾아왔다 하시더군요.”여수아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저를? 대체 왜…”마담은 잠시 망설이다 말을 이었다.“공자의 몸값을 치르시겠다 하옵니다.”여수아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광영군이라면 분명 청악군주의 오라버니일 것이다.그렇다는건 결국 동생이 벌인 일을 수습하러 왔다는 뜻일 것이다.하지만 그는 소휘와도 가깝게 지내는 사이일 테니 더더욱 거리를 두는 것이 현명했다.“그렇군요. 저를 되찾고 싶다면 금 일천 냥을 가져오라고 하십시오.”마담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나갔다. 그녀는 매끄러운 걸음으로 광영군에게 다가가 말했다.“방금 공자께 여쭈어보았는데 다행히도 몸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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