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간신은 오늘도 나를 죽이려 한다: Bab 71 - Bab 80

100 Bab

제71화

황제는 비록 중년의 사내였지만 또래의 사내들에 비해 훨씬 잘 관리된 외모를 지녔고 처세에는 노련함과 무게가 실려 있었다. 위풍당당한 기세에 천하를 거느린다는 황제의 신분까지 더해지니 여인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것도 결코 이상할 게 없었다.여수아는 아여를 슬쩍 바라보더니 조용히 말했다.“자기가 진정 원하는 게 뭔지 알기 전까진 마음부터 다잡아야 하옵니다.”아여는 그 말에 살짝 웃어 보였다.“걱정 마십시오, 아가씨. 전 제 출신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만에 하나 제가 정신을 놓고 달려든다면 그분은 손쉽게 저를 짓밟을 수도 있겠지요.”여수아가 그녀를 곁에 두는 이유도 바로 이 명민함 때문이었다.“이 궁 안에 들어와 성상과 마주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이미 제게는 과분한 일이옵니다. 불필요한 마찰은 피하는 게 상책이지요.”여수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다면 앞으로도 조심하십시오.”잠시 후 아여가 조심스레 물었다.“오늘 나리께서 밖에서 아가씨와 함께 계셨다지요. 혹 무슨 말씀을 나누셨사옵니까?”여수아는 덤덤하게 대답했다.“그 간신은 앙심이 깊은 사람이니 대놓고 욕할 수도 없고...”아여가 웃으며 말했다.“또 욕하셨사옵니까?”여수아는 그녀를 흘끗 보며 대답했다.“욕 빼고 할 수 있는 말이 없사옵니다.”그러다 아여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사실, 하룻밤 정만 나누는 거라면 폐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 있지요.”여수아가 그 말을 잘랐다.“그만하십시오.”아여는 입을 다물고 얌전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네.”황제에게는 삼궁육원이 있고 아름다운 여인을 마다할 이유도 없지만 아여는 뼈저리게 느낀 바가 하나 있었다. 그분이 원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고운 여인이라고 해도 소용없었다. 오히려 나대다가는 되려 그 손에 꺾이기 십상이다.그날 밤, 황제는 후궁에서 머물렀고 덕분에 여수아와 아여는 따뜻한 온화전에서 한결 여유롭게 있을 수 있었다.아여가 머리를 감고 나와보니 여수아는 여전히 말끔한 궁녀 복장을 하고 있었다. 잠자리에 들 기색은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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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누군가 고함을 지르자 사방의 경비들이 일제히 놀라 달려들기 시작했다.높은 곳에서 날듯이 내려오는 병사의 몸놀림을 본 순간 여수아는 단박에 알아챘다. 저들은 단순한 금위군이 아니었다. 분명 대내에서 선발된 실력자들, 무공 고수들이었다. 이런 자들에게 발목이 잡히는 순간 그녀에게 돌아올 결과는 하나뿐이었다. 죽음.여수아는 미련 없이 몸을 틀어 재빨리 유진원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고요하던 황궁의 밤이 마치 고요한 호수 위에 돌을 던진 듯 순식간에 뒤흔들렸다.어전에 있던 금위군 전원이 출동해 유진원에 침입한 자를 찾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유진원은 철통같은 경비가 둘러싸고 있었고 고수들까지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파리 한 마리도 날아들기 힘든 곳이었다.이제 와 생각해 보니 간신이 그녀에게 유진원의 위치며 장보루의 개수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애초에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감히 그곳을 넘본다면 목숨을 잃는 건 피할 수 없다는 것을.뒤쫓는 발소리는 좀처럼 줄어들 기색이 없었다. 여수아는 바로 호숫가로 달려가더니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물로 들어갔다. 그녀는 호수 속으로 뛰어든 것이 아니라 물소리 하나 크게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고 재빠르게 몸을 담갔다. 호수 위는 고요했고 잔물결만 은은하게 퍼져나갔다.금위군이 뒤따라 도착했을 때는 그 잔물결조차 거의 사라져 버린 뒤였다. 여수아는 수면 아래 육지에서 몇 장쯤 떨어진 곳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 이상 나아가면 발각될 가능성이 컸기에 그녀는 어느 정도 거리까지만 헤엄쳐 나가 숨을 죽였다. 마침 바람이 불어 잔물결이 일었고 물결 위에 흐려진 달빛과 흔들리는 수면은 그녀에게 완벽한 은신처가 되어주었다.육지에는 횃불이 밝게 타오르고 있었고 누군가 걸어오는 기척이 들렸다. 자색 예복에 검은 부츠, 마치 산책하듯 느긋한 걸음이었지만 그 발걸음엔 결코 가볍지 않은 기운이 담겨 있었다.여수아는 청력이 좋아 수면 아래에서도 몇 장 거리 너머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이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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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화

바로 그 순간, 여수아는 소휘를 보자마자 단박에 알아차렸다.그는 아까 호수 건너편에서 이미 그녀의 존재를 눈치챈 것이 분명했다. 그는 그녀가 도망쳐 숨어들 곳까지 내다보고 먼저 이곳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물고기가 낚였군. 지져 먹을까, 아니면 튀겨 먹을까?”그자의 손에 붙잡혀선 안 된다. 여수아는 즉시 한 걸음 뒤로 물러났고 곧장 몸을 돌려 다른 쪽으로 피하려 했다. 그러자 그가 한층 부드러운 목소리로 덧붙였다.“오늘 여기서 빠져나간다면 다시는 육지에 발 디딜 생각은 하지 말거라.”그 말에 여수아의 걸음이 멈췄다. 망설인 끝에 그녀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소휘는 마치 연정이라도 품은 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스스로 내게 잡히든가. 그게 아니면 물속에서 썩든가. 둘 중 하나를 고르거라.”정말이지 그를 만난 이후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여수아는 순간 억울함에 목이 메었다. 도대체 몇 생을 재수 없이 살아야 이런 못된 약혼자를 만나게 되는 걸까?매번 꼬이는 일 뒤에는 빠짐없이 이 인간이 있었다. 소휘는 그녀가 분해서 얼굴이 초록빛이 도는 것을 보며 아주 유쾌하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여수아는 혼자 열 받기 억울해졌다. 그녀는 호수의 물을 거세게 퍼올려 그의 얼굴에 냅다 뿌렸다. 그가 당황한 사이에 이 자리를 빠져나가려 했지만 그녀는 소휘의 손바닥 안에 있었다.그는 여수아에게 도망치려는 틈조차 주지 않고 재빨리 그녀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물결이 찰랑이며 출렁였고 그녀의 몸은 그대로 수면 위로 끌려 나왔다. 온몸이 물에 흠뻑 젖은 여수아에 의해 그의 옷도 점차 젖어들어갔다. 그래서였을까? 소휘의 눈빛이 갑자기 차갑게 식어버렸다.여수아는 도망칠 길도 없이 그대로 그에게 몰려 산의 어두운 동굴 안으로 내몰렸다. 습기 어린 그의 기운이 가까이서 덮쳐왔다. 좁은 동굴 속 두 사람의 호흡이 벽에 부딪혀 메아리처럼 퍼졌다.여자의 숨결과 남자의 기척이 엉켜 붙으며 동굴 안은 묘한 열기로 가득 찼다.“재상 나리, 송구하옵니다.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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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여수아는 조용히 숨을 고르며 귀를 기울였다.금위군의 발소리는 이미 산에서 몇 장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닿아 있었다. 그녀는 낮은 숨결로 대답했다.“그렇사옵니다.”소휘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끝에서는 뭔가 음험한 기색이 스쳤다.“어디가 어떻게 불편한 것이냐?”여수아는 대답을 망설이다 이내 담담하게 말했다.“저는… 독활에 과민반응이 있사옵니다.”“과민반응?”그는 가볍게 되물었다.“독활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체질이옵니다.”그가 흥미를 담은 어조로 다시 물었다.“증상은?”여수아는 눈을 치켜뜨며 그를 매섭게 노려봤다. 하지만 소휘는 그녀의 가는 허리를 휘감으며 등골을 타고 올라가는 손길이, 미지근한 땀기가 묻어나는 것을 느끼고 문득 허리를 숙여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눈이 붉어지고 숨이 거칠어지며 온몸에 힘이 빠지지. 전에 침상 위에서 그랬던 것처럼.”여수아는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내고 싶지 않았다. 그 기억은 구정물처럼 잊히지도 않고 씻기지도 않았다. 그는 목소리 끝을 살짝 올리며 비웃었다.“약 먹는 거랑 비슷하군.”여수아는 이를 꽉 물고 말했다.“저는 약 같은 거 먹은 적이 없사옵니다. 그러니 그게 어떤 느낌인지 모르옵니다.”말이 끝나자마자 바깥에서 들려오던 발소리가 멈추었다. 사방이 쥐 죽은 듯 고요해지자 그녀는 즉시 숨을 죽이고 더 이상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바깥에서 공손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재상나리께 아뢰옵니다. 호숫가를 따라 모두 수색하였으나 별다른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사옵니다.”여수아는 눈을 치켜떴다. 이 개자식... 금위군이 이곳으로 찾아와 그에게 보고한다는 건 이미 그가 사전에 지시했다는 뜻이었다.소휘는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이리 오너라, 이 지휘관.”“예, 재상 나리.”금위군 지휘관이 즉시 대답했다.“잡으려던 그 자는…”그 말이 끝나기도 전 여수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의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 그녀는 까치발을 들어 그의 입을 손으로 덮었다.소휘는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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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잠시 뒤, 소휘는 여수아의 입술에서 천천히 물러났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그의 허리를 꼭 끌어안으며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는 감정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남자인지 여자인지 확인은 했느냐?”이 지휘관은 난감한 듯 답했다.“유진원 측에서 자세히 말하진 않았사옵니다. 아마도 아직 실체를 보지 못한 듯 하옵니다.”“그렇다면…”소휘는 그녀의 붉게 물든 눈동자를 천천히 내려다보며 낮게 말했다.“다시 한번 철저히 수색하고 보고하도록.”“명 받들겠사옵니다.”이 지휘관이 몸을 돌려 떠나자 소휘는 다시금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여수아의 머릿속은 이미 흐릿해졌고 바깥에서는 지휘관의 음성과 병사들의 갑주 소리가 뒤섞여 퍼졌다. 그 소란 속에서 그녀의 들숨과 날숨은 더 이상 억누를 수 없는 혼란으로 변했다.그의 입술이 목덜미에 닿자 여수아는 숨을 삼키며 말했다.“물지 마십시오. 내일 궁복을 입어야 하옵니다.”그녀는 그가 들은 체도 안 할 거라 여겼지만 뜻밖에도 그는 순순히 그녀의 목덜미를 놓아주었다. 대신, 그녀의 어깨에 싸늘한 기운이 스쳤다. 어느 순간 그녀의 젖은 궁복은 한순간에 벗겨져 나갔다.금위군이 물러난 것을 확인한 여수아는 몸을 빼내려 했다. 병사들보다 더 끈질기고 위험한 적이 눈앞에 있으니.그러나 소휘는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의 시선은 여수아의 속옷 위로 옮겨졌고 이번에는 거침없이 손을 아래로 미끄러뜨렸다. 갑자기 밀려드는 고통에 여수아는 차가운 숨을 들이켰다. 그의 손가락은 단단했으며 손끝에는 얇은 굳은살이 있어 살에 닿는 느낌이 묘하게 소름 돋았다.그녀는 몸을 비틀며 저항했지만 오히려 그의 품에 더 바짝 붙잡혔다. 치맛자락이 거칠게 당겨질 때 여수아는 다급히 발로 그를 밀었다.“이런 데서 하긴 싫사옵니다.”소휘의 눈가가 얇게 붉어졌고 그는 낮고 거친 숨을 토해내며 입을 열었다.“나는 여기서가 더 좋다.”여수아는 도무지 그의 힘을 이길 수 없었다. 신발은 어느새 벗겨졌고 맨발은 그의 축축한 옷자락에 스쳤다.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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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화

사람들이 모두 흩어진 뒤 소휘는 품에 안긴 여수아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평소와는 달리 어딘가 짙고 낯설었다. 그의 손끝은 그녀를 가로막고 있는 곳에 닿아 있었고 손가락으로 그 주변을 더듬었다. 그 자극에 여수아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그를 찢어버리고 싶었다.“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그가 부드럽게 말했지만 여수아는 이를 악물고 쏘아붙였다.“나리 따위에 적응 필요 없사옵니다.”소휘는 무심하게 되받았다.“그럼 다른 것에 적응하길 원하는 것인가?”그녀가 대꾸할 틈도 없이 그는 아주 진지하게 덧붙였다.“난 아직 입으로 해본 적이 없거든.”여수아는 기가 막혀 할 말을 잃었다.한참을 휘적거린 끝에 소휘는 천천히 손을 거두었다. 그리고 자신의 손가락을 내려다보더니 눈썹을 살짝 치켜들며 한쪽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의 눈빛은 난폭하면서도 뻔뻔했고 음울한 장난기까지 어렸다.“꽤 촉촉하군.”이 남자의 뻔뻔함은 정말로 어떤 악귀보다도 끈질기고 끔찍했다. 그녀는 억지로 심호흡하며 차갑게 말했다.“나리께서 이런 사람이라는 걸 다른 이들도 알고 있사옵니까?”하지만 이 작은 동굴은 그 둘의 숨결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 그녀가 아무리 숨을 들이쉬어도 공기 속에는 그 남자의 체취만 가득 묻어 있었기에 냉정을 되찾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다리에 힘이 풀린 그녀는 동굴 벽을 따라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소휘는 조용히 자신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겉옷을 주워 그녀의 몸을 감쌌다.“정말 배려심이 있어서 덮어주는 거라면 차라리 저를 호수에 던져버리시지요”소휘는 웃지도 않고 대꾸했다.“내가 그럴 만큼 착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냐?”그는 몸을 숙여 자신의 외투로 그녀를 둘둘 감싸 안은 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동굴 밖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 작은 동굴 안에는 그녀가 벗어던진 젖은 궁복과 신발만 남았다.여수아가 그의 품 안에 기대자 독활 냄새가 풍겨왔다. 그의 옷, 품, 목덜미… 모든 곳에서 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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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화

어젯밤 유진원에 도둑이 들었다는 소문은 이미 궁중 전역으로 퍼져 있었다. 그런데 여수아가 놀란 것은 악동이 전한 말 때문이었다. 도둑이 이미 잡혔다는 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강호의 악명 높은 대도라 했다.악동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감히 궁 안에 발을 들이다니요. 유진원이 어떤 곳인지 몰랐던 모양이옵니다. 그곳은 수비가 삼엄하기로는 손꼽히는 데다 남아 있던 인원들도 모두 대내 고수들인데 말이지요. 그 자의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어제는 운이 없었사옵니다. 마침 어제는 재상 나리께서 금위군을 직접 지휘하던 날이었으니... 그 양반 눈앞에서 말썽 피우고도 살아남은 자는 아직 존재하지 않사옵니다.”어쨌든 이번 일은 소휘 덕분에 무사히 넘겼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간악한 자의 손에 약점을 하나 내어준 셈이기도 했다. 정말 그가 아무 대가도 없이 도와준 걸까? 아니다, 웃기는 소리. 어젯밤 그녀가 치른 대가만 해도 적지 않았는데. 그 밤을 떠올리는 순간, 여수아의 얼굴은 어두워졌고 숨결이 다시금 거칠어졌다.이른 아침, 악동은 그녀에게 새 궁녀복과 신발 한 켤레를 들고 왔다. 여수아는 자신이 어떻게 돌아왔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중에 정신이 돌아온 후에야 아여에게서 그날의 일을 듣게 되었는데 그녀는 오직 그의 관복 한 벌에 몸이 싸인 채 안겨 돌아왔다고 했다.새 옷이 필요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옷을 건네주는 악동의 표정이 어딘가 얄미웠다. 그는 감탄하듯 말했다.“재상 나리는 참 대단하시옵니다. 옷을 그렇게까지 찢어버리시다니...”그러고는 말끝을 흐리며 충고까지 얹었다.“앞으로 따로 만날 일이 또 있으면… 재상 나리께 조심하시라 권해보십시오. 아무리 뜨겁게 정을 나눈다 해도 옷은 좀 아껴가며 벗기시라고요. 궁중에는 보는 눈이 많사옵니다. 혹시라도 나리께서 아가씨를 안고 들어오는 걸 누가 보기라도 한다면 곤란해질 테니까요.”여수아는 차갑게 쏘아붙였다.“널 환관으로 둔 게 참 아깝구나. 차라리 저잣거리에서 사람 주선이나 했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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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그날, 악동이는 아여를 찾아와 조용히 귀띔해 주었다.“방금 전에 상희궁 쪽 사람 하나가 저쪽에서 수상쩍게 기웃거리며 여길 훔쳐보고 있었사옵니다. 아마 육 아가씨께서 오늘도 폐하를 뵈러 갔는지 염탐하러 온 게 분명하옵니다.”아여는 문득 마음이 무거워졌다. 상 귀비는 눈빛 하나만으로도 사람을 움츠리게 하는 여인이었다. 만약 그녀와 정면으로 부딪힌다면 도무지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여수아를 바라보며 물었다.“아가씨… 전 어떻게 하면 좋겠사옵니까?”하지만 여수아가 답을 하기도 전에 아여는 스스로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사옵니다. 이런 일은 제가 더 익숙할 텐데 아가씨께 물어보다니... 스스로도 참 우습군요.”무대 위에서야 그 누구보다 화려했던 그녀였지만 현실 속 궁중 암투는 아무리 능수능란한 자가 온다고 해도 어찌할 바를 모를 때가 있었다.여수아는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다음부터는 폐하께서 거문고를 듣고 싶다 하실 때 외에는 가지 않아도 괜찮사옵니다. 상 귀비께서 부르신다 해도 분명히 말씀드리십시오. 폐하의 근심이 다 풀리면 우리는 이 궁을 떠날 거라고 말이옵니다.”아여는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아가씨는 참 담백하게도 말씀하시는군요. 그런데 세상 모든 이가 그리 단순하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특히 저희 같은 처지는 마음속으로는 거절하고 싶다 해도 입 밖으로 꺼낼 수조차 없는 게 현실이니까요.”마침 그때, 황제의 부름을 전하러 환관이 찾아왔다.“폐하께서 좀처럼 잠에 들지 못한다 하시옵니다. 육 아가씨의 거문고 소리를 들어야 편히 잠드실 수 있을 듯하니 함께 가시지요.”아여는 본능적으로 여수아를 돌아보았다. 며칠 사이 그녀는 완벽히 궁녀의 행세를 모방하고 있었다. 곁에서 묵묵히 기다리거나 멀찍이 물러나 시중드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때로는 한 시진 넘게 기다리는 일도 흔했다.여수아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아여는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처음부터 모든 걸 도와주고 있는 여수아에게 자꾸만 부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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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화

여수아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건 분명 자신을 따돌리고자 하는 수작이었다. 여기 남아 있는 것이 눈엣가시 같으니 저리 가라는 뜻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순순히 명을 따르며 후원 침소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황궁이라는 곳은 보는 눈이 많았다. 그러니 체면을 완전히 저버릴 수 없는 황제 입장에서 자신과 아여의 담화를 엿듣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다. 물론 어떤 짐승 같은 자는 체면 따위를 신경 쓰지 않겠지만 말이다.여수아가 회랑 위를 조용히 걷고 있을 때였다. 그녀는 뒤에서 누군가 따라오는 듯한 기척을 느꼈다. 고개를 돌리자 어둑한 측랑의 그림자 속에서 한 사람이 천천히 걸어 나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굳이 얼굴을 확인하지 않아도 그 모습과 걸음걸이만으로도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오늘 밤, 폐하께서 이곳에 계시옵니다. 감히 이렇게 대범하게 발을 들이다니요.”소휘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림자에 잘 녹아든 그의 모습은 한 폭의 수묵화처럼 고요했으나 그녀가 있는 자리에서는 그의 옆얼굴이 어렴풋이 드러나 있었다.“잠시 이야기나 하러 왔다.”여수아는 목소리를 조금 높이며 쏘아붙였다.“우리 사이에 할 얘기는 없어 보이는데...”“할 얘기는 많지. 그날 밤은 어땠느냐?”여수아가 입을 꾹 다물자 소휘는 천천히 물었다.“이 자리에서 이야기할 것이냐? 아니면 방 안으로 들어갈 것이냐?”여수아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지금 소리라도 질러서 사람들을 부르겠사옵니다. 당당한 재상께서 남의 뒤를 쫓아다닌다니... 큰일 날 일이지죠.”소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럼 질러보거라. 사람들에게 내가 얼마나 변태인지 확인해시켜 주자구나.”말문이 막힌 건 여수아 쪽이었다. 그녀가 방으로 들어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는 사이 소휘는 아무렇지 않게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마치 그 방이 원래 자신의 방인 양 당당하게 말이다. 잠시 후, 방 안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 보따리는 네 것이냐? 안에 뭐가 들었나 궁금해서.”여수아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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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곧이어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아가씨, 안에 계시옵니까? 육 아가씨의 겉옷은 제가 가지러 왔사옵니다.”낯익은 목소리에 여수아는 문 쪽을 향해 담담히 대답했다.“잠시만 기다리거라. 금방 나갈 것이다.”그녀는 돌아서서 아여의 비단 망토를 챙겨 문을 열었다. 문밖에는 악동이가 이미 대기하고 있었고 그녀가 나오자마자 손에 들린 겉옷을 냉큼 낚아챘다.“아가씨께서는 가시지 않아도 되옵니다. 제가 대신 가져다드리겠사옵니다.”악동이는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황상 앞에서 얼굴을 비출 기회이지 않습니까. 그럴 땐 저 같은 하인이 나서는 게 더 낫지요. 아가씨께서는 편히 쉬십시오.”여수아는 말문이 막혔다.“관복은 나중에 가지러 올 것이다.”지난번 그녀의 몸을 덮어주었던 관복은 아직도 이 방에 있었다. 여수아는 그때 그 옷을 불태워 버릴까 생각했었으나 아여가 말렸다.“조정 대신의 관복을 태우다니 그건 가볍지 않은 죄목이옵니다.”그럼 모서리에나 처박아 책상 다리 받침으로 쓰자고 제안했지만 그것 또한 제지당했다.“만에 하나 나리께서 그걸 발견하신다면 큰일이지 않사옵니까?”어처구니없는 여수아의 태도에 결국 아여가 직접 나섰다.“깨끗이 빨아서 때가 되면 다시 돌려드리는 게 좋겠사옵니다.”“저는 절대 그 자의 관복을 빨지 않을 것이옵니다.”여수아가 몸서리 치자 아여는 웃으며 받아넘겼다.“그럼 제가 하겠사옵니다.”그 관복은 감히 바깥에 널 수도 없었기에 아여는 방 안에서 조심스레 말린 후 곱게 개어 여수아에게 넘겨주었다. 그녀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어딘가에 툭 던져버렸다.소휘가 떠난 후 그녀는 방 안을 이리저리 뒤져보았다. 결국 방구석 어딘가에서 먼지가 덮인 그 옷자락을 발견하고 툭툭 털어냈다. 마음은 그리 찜찜하지 않았다. 어차피 지난번에는 그도 그녀의 짐을 아무렇게나 던져놓지 않았었나.황제가 한동안 머물다 떠난 뒤 아여가 방으로 돌아왔다. 씻고 눕기 전 아여는 여수아가 방문과 창문에 덫장쇠를 하나둘 더 잠그는 걸 보고는 웃으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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