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을 봐 온 것이냐?”연기준이 고개를 들고 물었을 때, 서인경은 양손 가득한 짐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는 지친 듯 침상에 털썩 앉아 손을 내저었다.“평이야, 아까 그 목도리, 얼른 찾아보거라!”평이가 짐을 뒤적이더니 금세 회색빛의 보송보송한 털목도리 하나를 꺼냈다.서인경은 그것을 받아 들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연기준의 앞에 섰다.“고개 숙여 보세요.”그가 미소 섞인 눈으로 고개를 살짝 숙이자 서인경은 능숙하게 목도리를 그의 목에 두르고 두어 번 감아 정리해 주었다. 그러고는 한 걸음 물러서서 뿌듯하게 바라보았다.“흠, 잘 어울리네. 이게 바로 패션이지!”“…뭐라고?”“좋아 보인단 뜻입니다.”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면서 다시 짐을 뒤적였다. 이번에는 같은 색의 털로 된 손목 보호대를 꺼내더니 그의 손목에 끼워 보았다.“자, 이건 어떻습니까?”연기준은 책을 내려놓고 꼼지락거리는 그녀를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담담히 말했다.“이건 조금 촌스럽군. 본왕은 검은색을 더 좋아한다.”“쳇, 젊은 나이에 맨날 검정, 흰색뿐이라니. 재미없습니다.”서인경은 투덜거리면서도 꿋꿋이 손목에 그것을 채워 주었다.“그래도 상공의 성격을 생각해서 회색을 골랐습니다. 그게 아니었으면 분홍색으로 씌워 줬을 겁니다.”연기준은 자신이 분홍색 목도리와 손목 보호대를 찬 모습을 잠시 상상하고는 이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 상상은 차라리 지워 버리는 게 나았다.어느새 육승, 평이와 온조는 조용히 방을 빠져나갔고 안에는 두 사람만 남아 있었다. 서인경은 오늘 산 물건들을 하나씩 정리하며 그날 있었던 일들을 마치 자잘한 수다처럼 쏟아냈다.“내일은 흑시가 열리니까 저희는 동성 막씨 집에 묵기로 했습니다. 효연이 말로 어머니께서 병환으로 조용히 지내셔서 뒷마당은 아주 한적하다더군요. 그곳에서 숨어 지내면 저희 신분도 감출 수 있기에 딱 좋습니다.”연기준은 그녀가 입에 올린 이름을 곱씹었다. 막효연이라… 어디선가 들어 본 적이 있는 듯한데.“그 막효연이라는 자 혼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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