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같은 남정네!상왕부가 파산이라도 했단 말인가? 방 하나 더 잡을 돈도 아낄만큼?서인경은 육승과 안포가 쫓아올 거라는 짐작은 했으나 정작 연기준이 몸소 나타날 줄은 예상치 못했다.이튿날 아침, 두 사람이 계단을 내려서자 마당 한편에 세 개의 머리가 맞붙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평이, 육승과 안포 세 사람이서 서로 귓속말을 나누고 있었다.육승과 안포는 죄책감 때문인지 아니면 평이의 키를 맞춰주려는 것인지 허리를 잔뜩 굽히고 있었다. 반면, 평이는 등허리를 곧추세우고 마치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린 듯 목소리에 힘을 주어 호령했다.“경고해두겠어요. 저는 마마 곁에서 가장 총애 받는 사람입니다. 마마께서는 제 말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시죠. 그러니 만약 귀군들께서 앞으로도 마마 곁에 남고 싶다면 예전에 제가 했던 말들은 모두 잊으세요. 누구 하나 연풍 귀군 앞에서 입을 놀린다면 가만두지 않겠어요!”육승은 순순히 몸을 굽혀주었으나 그의 말투에는 성가신 기색이 역력했다.“알았다니까. 오늘만 벌써 팔백 번은 들은 것 같네.”하지만 안포는 부드럽게 말하며 그녀를 달래주었다.“평이 누님, 안심하세요. 전 기억력이 나빠서요. 누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벌써 까맣게 잊었습니다!”평이는 흐뭇하게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역시 안포 귀군께서는 눈치가 있으시군요.”그때, 계단 위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세 사람이 일제히 고개를 들어 보니, 연기준과 서인경이 내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급히 몸을 꼿꼿이 세우며 일제히 인사했다.“어르신, 마님, 아침 인사 올리옵니다!”그들은 경성을 떠나며 서로 호칭을 다르게 부르기로 결정했다.연기준은 무심히 고개를 끄덕였고 서인경은 환하게 웃으며 대꾸했다.“좋구나, 연기도 잘하고 몸놀림도 재빠르니 역시 내 상공(相公:주로 아내가 남편을 부르는 말로 사용됩니다)께서 데려온 사람들이구나.”평이는 또랑또랑한 콧소리를 내며 ‘흥’ 하고 거들었다. 그 한마디가 서인경의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내 주는 듯싶었다.육승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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