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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시간을 거슬러: Chapter 191 - Chapter 200

209 Chapters

제191화

안포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사옵니다. 약재를 구하러 오는 자들도 많지요. 귀중한 물건이든,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든 무엇이든 바꿀 수 있사옵니다.”서인경은 들을수록 흥미로워졌다. 그녀의 눈빛 속에 반짝이는 건 분명 금전의 빛이었다. 연기준 역시 그녀의 속내를 간파하고는 미묘하게 눈꼬리를 올렸다.“다시 나가서 어떤 약재가 수요 있는지 살펴보거라. 그들과 연락해 다리를 놓아 줘. 혹시 내게 있는 것과 맞아떨어지면 우리가 큰돈을 벌 수도 있지 않겠느냐? 그때는 오십 대 오십, 반씩 나누면 되지.”안포는 혼비백산하며 손사래를 쳤다.“아니 옵니다. 전혀 아니 옵니다. 분배 따위는 필요 없사옵니다! 소인은 왕비마마를 목숨 바쳐 섬기는 거면 돼옵니다."갑자기 무슨 장사 타령인가? 게다가 오십 대 오십이라니!연기준이 그녀를 흘깃 바라보며 물었다.“너한테 무슨 약재가 있다고?”서인경은 일찌감치 준비한 대답을 군더더기 없이 내뱉었다.“지금 저는 제 씨 가문의 처방전을 쥔 대주주입니다. 없는 게 뭐가 있겠습니까?”연기준은 코웃음을 흘렸다.“허, 한데 어떤 약재는 돈이 아니라 목숨을 앗아가기도 한다. 자칫하다 제 씨 집안을 송두리째 무덤에 넣고 싶으냐?”서인경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렇지! 도팔천이 길러온 것들은 모두 희귀종이거나 이미 멸종되었다고 알려진 것들이었다. 만약 그걸 꺼내 쓴다면 거슬러 추적당하는 건 시간문제…그녀는 힘없이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그럼 안 되겠네…”그러나 상대가 홍소단으로 유월비설을 바꾸려 한다는 소식을 떠올리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녀의 약왕곡에는 홍소단이 없었다.대신 어머니께서 남긴 의서에서 본 적이 있다. 심장병을 다스리는 귀한 약이라 했던가? 만약 홍소단이 없다면 다른 약재로 그 효능을 대신할 수는 없는 걸까?서인경은 두 생애 동안 읽었던 의서의 조각들을 애써 더듬었다. 연기준은 그녀가 홍소단을 갖고 있지 않다는 걸 한눈에 알아채곤 가볍게 말했다.“물러가거라.”안포가 물러나자 서인경은 평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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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2화

서인경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진묵염은 다정스레 막효연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미소를 띠며 서인경과 연기준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엽 씨 마님, 엽 도련님. 지하흑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착각일까? 서인경은 “엽 도련님”이라는 호칭과 연기준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묘한 뉘앙스가 실려 있음을 감지했다.연기준은 언제나 그렇듯 낯선 이에게 웃음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서인경이 대신 예를 표했다.“친히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폐를 끼쳤습니다.”막효연은 서인경에게 팔짱을 끼고 그녀를 안으로 이끌었다.“여긴 처음 온 것이니 산책하면서 둘러보는 게 좋네. 우리 집도 성문에서 멀지 않다네.”서인경은 뒤돌아보며 속삭였다.“상궁, 먼저 마차 안에서 기다리세요. 도착하면 부를 테니.”어찌 되었는 병약한 인물 설정은 철저히 지켜야 했다.연기준은 때맞추어 두어 차례 기침을 하더니 천천히 마차로 발길을 돌렸다. 그 순간, 진묵염이 서둘러 팔을 뻗어 그의 팔꿈치를 붙잡았다.“엽 도련님, 몸이 불편하시잖습니까? 엽 도련님, 천천히. 엽 도련님, 다치면 곤란합니다.”연신 세 번 “엽 도련님”이라 부르는 진묵염의 태도는 자못 뿌듯하면서도 어딘지 속을 뒤집는 듯했다.그러나 연기준은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온몸의 무게를 고스란히 그의 어깨에 실었다.“저는 몸이 불편하니 성주께서 부디 수고해 주시길.”불시에 덮쳐온 무게에 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진묵염은 거의 연기준을 부축하다 못해 떠맡으며 마차 안으로 그를 밀어 넣다시피 했다.서인경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어째서인지, 두 사람 사이에서 묘한 기류가 흘러나왔다. 브로맨스처럼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인 걸까? 그녀는 지금껏 연기준이 남자와 저렇게 가까이 닿은 것을 본 적이 없었다.일행이 성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가장 넓은 한가운데에 우뚝 선 것은 높이 두 장, 너비 열 장에 달하는 거대한 공시판이었다.허나 이 시각, 공시판은 새하얗게 비어 있었다.서인경은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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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3화

막효연이 직접 길잡이가 되어 나서니 일행들은 정작 한 푼도 쓰지 않고 이리저리 구경만 하며 곧장 막부로 향했다.멀리 누각 위, 라채월은 아래를 굽어보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독이 스며 있는 듯 서늘한 기운이 흘렀다.“저 여자가 바로 막효연과 한패가 되어 은정을 곤경에 빠뜨린 그년이냐?”창가로 바짝 다가선 것은 어제까지 라은정 곁에 붙어 있던 시녀였다. 그녀는 고개를 내밀어 확인하고는 대답했다.“예, 마님. 틀림없이 그 여인이옵니다.”라채월이 더 이상 창밖을 보지 않고 몸을 돌리자 시녀가 재빨리 창을 닫아버렸다. “마님, 마님께서 나서신다는 걸 알면 아가씨께서는 분명 기뻐하실 것이옵니다.”그러자 라채월은 그녀를 흘겨보았다.“쓸데없는 말이 많구나!”시녀는 서둘러 고개를 떨구었다.“송구하옵니다, 마님. 잘못했사옵니다.”라채월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다른 질문을 던졌다.“탐문해 보았느냐? 올해 막수한이 그 병약한 자를 위해 구한 약이 무엇이더냐?”시녀가 곧장 답했다.“홍소단이라 하옵니다.”순간, 라채월의 동공이 굳어졌다. 쥐고 있던 찻잔이 움켜쥔 손아귀에서 미세하게 떨렸다. 잠시 후, 그녀의 눈에 잠깐 번뜩이던 빛은 이내 꺼져 내렸다.“그 병약한 자의 병세가 다시 깊어진 것이구나. 막수한, 그 사내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버티려는군.”시녀는 뜻을 알지 못한 채 아첨하는 얼굴로 웃었다.“막 씨 부인께서 세상을 떠나면 마님께서야말로 원하시는 바를 이루실 것이옵니다.”순간, 라채월의 눈빛이 차갑게 날카로워졌다.곧이어 찻잔이 바닥에 부딪히며 산산이 부서졌다. “말해 보거라. 내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시녀는 기겁하여 무릎을 꿇었다. 그녀는 자신이 어디서 말실수를 했는지 알 수 없어 온몸을 떨며 대답하지 못했다.라채월은 느긋하게 걸음을 옮겨 그녀 앞에 섰다.“네 생각엔, 내가 그 병약한 자의 죽음을 바란다고 여기는 것이냐? 너는 아직도 내가 막수한을 그리워한다고 생각하나 보지?”시녀는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려왔다.“노비가 잘못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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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4화

서인경의 팔을 붙잡고 뜰 안으로 이끌며 막효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우리 어머니는 몸이 약하셔서 매일 남들보다 오래 주무시네. 그러니 괘념치 말게. 결코 손님을 마다하시는 건 아니니.”서인경이 조심스레 물었다.“어머님은 어떤 병이신 겐가?”그 이야기를 꺼내자 막효연의 얼굴에 어쩔 수 없는 그늘이 드리웠다.“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온 병이네. 수많은 의원을 불렀지만 모두 고개만 저을 뿐이었지. 걱정 말게. 우리는 동원에 살고 어머니는 서원에 계시니 서로 방해될 일은 없을 것이네.”서인경은 잠자코 들으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기회가 된다면 자신이 직접 살펴보리라. 벗으로 여겨주는 정성에 자신도 미약하나마 힘이 되고 싶었다. 뒤에서는 평이와 온조가 마차를 몰고 후문으로 들어와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서인경의 뒤를 따라오는 이는 진묵염과 연기준.막수한의 시선은 줄곧 연기준에게 머물러 있었다.비록 두 사람은 한마디 말도 섞지 않았으나 진묵염과 연기준 사이에 오가는 눈빛은 마치 오래된 벗처럼 은밀한 기류를 풍기고 있었다. 그 광경에 막수한은 의구심이 들었다.정오 무렵, 모든 정리가 끝나자 그는 사람을 시켜 진묵염을 서재로 불렀다.사위로 삼을 인물이라 무척 마음에 들었기에 굳이 돌려 말하지 않았다.“그 상인 부부와는 아는 사이냐?”진묵염은 숨김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걱정을 하시는지 압니다. 효연의 곁에 나쁜 이가 있을까 근심하는 것이겠지요. 삼촌께서는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 두 사람의 신분은 아직 밝힐 수 없으나 제 목숨을 걸고 맹세합니다. 효연이를 해칠 자들은 아닙니다.”막수한의 눈매가 가늘어졌다.“그들이 지하흑시에 온 까닭은 따로 있겠지?”잠시 머뭇거리던 진묵염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습니다.”거기까지였다. 그는 더 이상의 설명은 보태지 않았다.막수한은 더 캐물어도 소용없음을 알고 단 하나의 부탁만을 남겼다.“내게 원하는 건 단 하나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효연이만은 지켜라.”진묵염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걱정 마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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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5화

연기준은 숨길 생각조차 없어 담담히 입을 열었다.“진묵염은 본왕의 사람이다.”서인경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지만 정작 그의 입을 통해 들으니 적잖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상공께서 사대 성주 중 한 명을 손에 넣을 수 있다니...”연기준은 그녀를 흘겨보며 한마디 했다.“말을 가리거라. 손에 넣은 것이 아니라 정복한 것이다.”서인경은 믿을 수 있었다. 그는 선제가 친히 봉한 상왕, 무력뿐만 아니라 인심까지 거머쥔 자였다. 전생의 끝자락에서조차 그는 새 황제가 가장 신임하는 예리한 칼날이 되었었다. 그럼에도 서인경은 못마땅하다는 듯 눈을 흘겼다.“흥.”연기준은 눈썹을 들어 올리며 묘한 미소를 띠었다.“그 ‘흥’은 본왕이 부러워서 내는 소리인 것이냐?”그러더니 곧 스스로 대답까지 덧붙였다.“부러워해도 소용없다. 이것은 인격적 매력이니.”서인경은 속으로 그의 머리를 한 대 갈겨버리고 싶었다.그때 육승이 들어와 소식을 전했다.“왕야, 연풍이 급보를 보내왔사옵니다. 대황자께서 이월 초이에 혼인을 올린다 하옵니다. 다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원래 정비 자리는 사라지고 단여월과 진가이가 나란히 측비로 책봉되었다고 하옵니다. 폐하께서 명하시길 왕야와 왕비마마께서는 반드시 참석하라 하셨사옵니다.”연기준은 무표정했으나 서인경의 눈빛은 반짝거렸다.“저 진가이, 수법이 보통이 아니네.”연기준은 그제야 흥미를 보이며 물었다.“무슨 뜻이냐?”서인경은 손가락을 꼽으며 말했다.“첫 수에서 언니의 혼처를 가로채더니 이번에는 머리 위에 있던 정비마저 끌어내려 스스로와 같은 자리에 앉히다니... 하여간 대단합니다.”연기준은 다시 물었다.“어찌 두 일이 모두 그녀의 짓이라 확신하는 거지? 진가이에게 그만한 수가 있단 말인가?”서인경은 단호하게 말했다.“직감입니다.”궁중에서 일어난 그날의 일들, 아무리 곱씹어도 수상쩍었다. 분명 자신을 해하려 한 건 단은설이었으나 그 틈을 파고들어 또 다른 손을 뻗은 이가 있었다. 그 결과 가장 많은 이득을 챙긴 사람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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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6화

진묵염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할 수 있는 말은 한마디도 빠뜨리지 않았고 할 수 없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그냥 쓸모없는 개소리 같았다. 그러나 묘한 것은 연기준은 그 말을 알아들었다는 것이다.“알았다. 꺼져라.”진묵염이 물러나자 서인경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저 사람, 지금 말장난하는 것입니까?”연기준은 태연히 몸을 일으켰다.“네가 기억해야 할 건 단 하나다. 넌 상인이며 남편을 지극히 아끼는 여인이지. 그 외의 모든 것은 본왕이 맡겠다.”서인경은 속으로 씁쓸히 웃었다. 분명 이 길을 나서자고 한 것도 자신이었고 이 남자를 이용하려 했던 것도 자신이었는데 정작 이 자리는 어느새 연기준의 무대가 되어 있었다. 이용하는 쪽이 아니라 이용당하는 것은 오히려 자신 같았다.그는 대체 무엇을 도모하고 있는 걸까?연기준이 막수한을 만나러 가자 서인경도 동행했다.그들이 뒷마당에 이르렀을 때, 막효연의 곁을 돌보던 시녀 소민이가 다가왔다.“엽 씨 부인, 저희 마님께서 막 깨어나셨사옵니다. 아가씨께서 시중을 들러 가셔서 조금 뒤에 부인을 찾아뵙겠다 하시옵니다.”서인경은 고개를 끄덕였다.“수고 많았다.”곧게 떠오른 한낮의 볕을 바라보며 그녀는 속으로 감탄했다. 이 시대에 집안의 안주인이 이렇게 늦도록 단잠을 잘 수 있다니. 참으로 복된 삶이로구나.연기준은 그녀의 속내를 꿰뚫은 듯 비스듬히 시선을 던졌다.“네겐 이미 허락된 것이니 괜히 남을 부러워하지 말거라.”서인경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내가 늦잠을 자는 날이면 언제나 이 개 같은 남자가 날 붙들고 놓아주지 않을 때뿐인데 무슨 낯짝으로 그런 말을!’앞마당에 이르니 막수한과 진묵염, 둘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늘 그렇듯 막수한은 정중했으나 이번에는 먼저 몸을 일으켜 그들을 맞이했다.“엽 도련님, 엽 씨 부인, 자리에 앉으세요.”서인경은 무슨 속셈인지 몰라 묵묵히 자리에 앉았다.연기준이 옆에서 먼저 예를 표했다.“고맙습니다.”막수한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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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7화

그토록 오래 공들여 쫓아왔건만 결국 손에 쥔 건 허무함이었다.서인경의 가슴은 한순간에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온조에게는 또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한단 말인가?요 며칠 동안 온조는 이 사건에 대하여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평이의 말로는 그녀가 몇 차례나 몰래 동생의 비녀를 꺼내 바라보았다고 했다. 바로 그 간절한 마음이 그녀를 숨 막히게 옥죄고 있었다.그때, 연기준이 입을 열었다.“막 성주께서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다른 방책이 있다는 말씀이겠지요?”막수한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유월비설 같은 약재를 만들기 위해서는 마지막 단계에서 반드시 금전초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복용자는 쉽게 통제 불능이 되지요. 이번 흑시에 금전초를 찾는 이가 있다더군요. 이미 사람들을 붙여 두었으니 소식이 오면 곧 전해주도록 하겠습니다.”연기준은 더 묻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섰다.“성주께서 이미 수를 놓아두셨으니 저희는 잠시 병력을 거두고 기약을 기다리면 되겠군요.”“자연히 그러하지요.”막수한은 조용히 응했다.한편, 서인경은 이러저러한 생각에 뒤엉켜 머리가 혼란스러웠다.금전초, 그리고 불태워 없어진 흔적들…그녀는 초점 없는 눈으로 연기준의 손에 이끌려 방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문턱을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그의 손을 홱 뿌리쳤다.“상공은 이 일을 오래전부터 조사하고 있었습니까? 막 성주조차 시체를 없앤다는 걸 아는데 그걸 상공께서 모를 리 없지 않습니까? 왜 숨긴 것입니까?”그러자 연기준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네 말은 본왕이 일부러 감춘 거란 뜻이냐?”서인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눈빛은 곧장 그것을 인정하고 있었다.연기준의 능력은 막수한보다 훨씬 뛰어나다. 그러니 그가 이 사실을 모를 리 없지 않겠는가?그 순간, 그녀는 아이들 몸에 새겨진 단 자가 떠올라 손바닥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러나 공포보다 앞선 것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실망이었다.만약 시체를 모조리 없애버린다면 그 글자를 본 사람은 없지 않은가?연기준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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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8화

“따라오지 말고 남아서 지키거라.”연기준의 단호한 한마디에 육승과 안포는 곧장 발걸음을 멈추었다.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무공을 당해낼 자는 거의 없다는 것을. 그러니 그들이 진정으로 지켜야 할 대상은 서인경 곁에 있는 세 여인이었다.그중에서도 평이의 무공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기에 가장 중점적으로 보호해야 했다.온조와 평이가 방으로 들어가서 확인해 보니 서인경은 침상에 앉아 있었다.그녀의 얼굴에는 단순히 불쾌함만이 아니라 설명하기 힘든 쓸쓸함이 드리워져 있었다.온조는 용기를 내어 다가와 그녀의 곁에 앉았다.“마님, 제 생각에는… 도련님께서 이미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어떤 말은 함부로 내뱉으면 돌이키기 어렵습니다.”그러자 평이가 황급히 그녀를 밀쳤다.“쓸데없는 소리 마세요! 언니는 도대체 어느 편입니까?”온조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당연히 마님 편이지. 다만 부부 사이의 말은 한번 흘러나가면 주워 담을 수 없으니 그저 조심스레 말씀드린 것뿐이다.”그러나 평이는 언제나처럼 서인경의 완강한 옹호자였다.“언니는 아직 혼인도 안 했잖습니까! 뭘 안다고! 마님께서 하신 말씀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원래 그 단은설이 도련님에게 마음을 품고 있는데 도련님께서는 피하기는커녕 여전히 단 가를 두둔하셨지요. 이걸 누가 마음 편히 넘길 수 있겠습니까?”서인경은 두 사람의 말다툼에 오히려 더 마음이 복잡해졌다.“됐다. 그만하거라. 점심은 준비되었느냐?”그러자 평이가 얼른 대답했다.“준비 다 되었사옵니다. 막 씨 부인과 막 어르신은 서원에서 식사하셨고 지금은 방으로 돌아가셨사옵니다. 잠시 뒤에 막 아가씨께서 마님을 찾아오실 것이옵니다.”처음 방문한 집에서 노골적으로 감정을 드러내긴 어려웠다.서인경은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식탁에 앉았지만 막효연의 눈은 그녀의 마음을 단번에 꿰뚫었다.“혹시 남편분과 다툰 겐가?”서인경은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왜 그렇게 생각하는 겐가?”막효연은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했다.“그대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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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9화

막효연은 환히 웃으며 설명했다.“네 집마다 기인과 은사를 길러 두었네. 그들이 해마다 천하를 유람하며 큰돈을 들여 세상 드문 보물들을 모아오지.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름만 듣고 찾아오는 것이네. 꼭 필요한 게 있어서라기보다 이번에는 또 어떤 진귀한 물건이 나올까 궁금해서 말이지.”말인즉, 지하흑시는 거대한 중개소이자 보기 힘든 장터라는 것이다.물건의 주인이 정체를 드러내길 꺼리거나 그 가치를 알지 못할 때 흑시에서 대신 매매를 주관하는 것이었다.서인경은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만약 얻고자 하는 물건이 창고에 없다면?”막효연은 태연히 대답했다.“그땐 곧장 소문을 퍼뜨리네. 흑시가 중간다리가 되어 개인 간 은밀한 거래를 성사시키는 것이지.”서인경의 머릿속에 단번에 하나의 단어가 떠올랐다.중개인.중개가 있으면 사고파는 자 모두에게 한 겹 더 안전한 보험이 생기는 법이었다.그녀는 슬며시 웃으며 말을 꺼냈다.“사실 나도 평소 진귀한 약재를 모으는 게 취미네. 내게도 몇 알 있는데… 혹 이곳 시장에서 은밀히 팔아 약간의 은전을 챙길 수 있겠나?”그러자 막효연은 두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좋지! 내가 바로 우리 집 부관에게 데려다 드리겠네. 창고의 출납은 모두 그 자가 맡고 있으니.”그러나 서인경은 재빨리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절차가 아주 복잡한 건 아니겠지?”“이백 냥 이하는 간단하네. 부관이 감정만 해도 되니까. 오백 냥을 넘으면 네 성주가 함께 나와야 하지.”서인경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방금 전, 막수한이 자신들을 따로 불러냈을 때 막효연은 그 자리에 없었다.아마 딸을 지키기 위해 일부러 자리를 비우게 한 듯했다.서인경은 더 이상 그녀를 위험에 말려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고개를 숙이고 목소리를 낮췄다.“내 물건은 값이 비싸지 않으니 부관 혼자서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네. 다만 내 신분이 드러나길 원치 않으니 부관의 행방만 알려주게나. 나 혼자 찾아가면 되네.”막효연은 비록 세상 물정을 모르는 듯 보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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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0화

막 부관은 홀로 나타난 서인경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물었다.“아가씨, 금전초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서인경은 고개를 저으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그토록 귀한 것을 어찌 몸에 지니겠습니까? 지금 안전한 곳에 따로 두었습니다.”그러자 막 부관은 다시 물었다.“그렇다면, 그 금전초를 얼마에 팔고 싶습니까?”서인경은 머뭇거리더니 손가락 하나를 내밀었다.“어머니의 병이 위중하여 의원께서 치료비로 은자 백 냥이 필요하다 하셨습니다. 그저 백 냥만 주시면 내놓겠습니다.”세상 물정 모르는 듯한 태도에 막 부관은 절로 고개를 저었다.“아가씨, 그건 보물을 헐값에 버리는 격입니다. 네 성주께서 모두 감정한다면 최소 오백 냥은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 오늘 밤 개시대회가 끝나야 겨우 짬이 날 겁니다.”서인경은 애가 탄 듯 발을 동동 구르며 물었다.“어머니 병세가 급하니 저는 백 냥이면 충분합니다. 조금 더 서둘러 주실 수는 없겠습니까?”만약 여러 성주가 함께 나선다면 그녀의 신분은 더는 숨길 수 없을 터였다.잠시 고심하던 막 부관은 손가락으로 개시대회 쪽을 가리켰다.“저쪽에서 곧 경매가 시작됩니다. 단 한 시각만 주겠습니다. 그 안에 가져올 수 있겠습니까?”서인경은 고개를 끄덕였다.“가능합니다.”“그렇다면 2층 첫 번째 방으로 오세요. 거기서 저를 찾으면 됩니다.”“어르신의 성씨는…?”“성은 묻지 마세요. 다만 모두가 날 막 부관이라 부릅니다.”거래는 단순했다. 물건이 진짜라는 것만 확인하면 곧바로 은자와 바꿀 수 있었다.막 부관이 떠난 뒤, 서인경은 뒤를 돌아보며 나직이 불렀다.“나오거라.”어둠 속에서 육승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얼굴에는 근심이 어렸다.“마님께서 도련님과 의논도 없이 독단적으로 움직이시면 위험하옵니다.”서인경은 비웃듯 말했다.“그럼 도련님께 고자질하러 가면 되겠지. 한데 이미 시작한 일이다.”육승은 고개를 숙이며 낮게 답했다.“감히 그럴 수는 없사옵니다.”부관 곁에 누가 나타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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