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 무렵, 마차가 드디어 경성에 도착했다. 서인경은 저무는 햇살을 밟으며 상왕부의 대문 앞에 발을 내렸다. 그러나 고개를 들자마자 서인경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문 앞에 기다리는 이들은 단순히 왕부의 인원들뿐만이 아니었다.태황태후와 황제, 그리고 황후.궁중의 위엄스러운 의장대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서인경은 그들이 무슨 의도로 나왔는지 헤아리기도 전에 연기준의 손에 이끌려 무릎을 꿇었다.“태황태후, 폐하, 황후께 삼가 문안 드리옵니다!”“어서, 어서…”황제가 갓 두 마디를 뗐을 때 목소리가 뚝 멎었다. 마치 누군가에 의해 가로막힌 듯했다. 곧이어, 태황태후의 날 선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대담한 상왕비! 감히 상왕을 꾀어내어 출경케 하고 역병의 위험 속으로 끌어들이다니! 네 죄를 아느냐!”서인경은 억울해 눈앞이 아찔해졌다. 대체 어떻게 이 모든 것이 자신이 꾀어낸 탓이란 말인가? 분명, 그 사내가 스스로 쫓아온 것인데!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눈을 굴리며 속으로만 울분을 삭였다. 입술은 꾹 닫문 채 눈동자만 하늘로 치켜뜨고 있었다.연기준은 곧장 허리를 펴고 목소리를 높였다.“태황태후께서 오해하셨사옵니다. 본왕이 실종된 어린아이들의 사건을 추적하기 위해 왕비를 동행시켜 눈을 속인 것이옵니다. 왕비가 본왕을 꾀어낸 것이 아니라 본왕이 왕비를 꾀어낸 것이옵니다.”그의 노골적인 두둔에 태황태후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변했다.“준아, 너는 어찌하여 번번이 왕비로 인해 화를 당하고도 여전히 그 여인을 감싸는 것이냐! 대체 왕비가 너에게 어떤 미혹의 술을 먹인 것이냐!”황제는 상황이 험악해지자 급히 나섰다.“황조모, 진노를 거두소서! 이번 일은 분명 짐이 아우를 명해 출경시킨 바 있습니다. 그러니 상왕비와는 무관합니다. 설사 죄를 묻는다 하여도, 남편을 지극히 모시지 못한 죄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상왕비를 폐문 반성케 하고 보증문을 써서 이후 상왕을 잘 보살필 것을 약속하게 하는 정도로 끝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서인경은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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