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인경이 군영에서 묵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하나, 이 몸으로 살아난 뒤 맞는 첫 번째 불면의 밤이었다.막사 밖,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순찰병들의 발소리.그 잔잔한 마찰음이 오히려 밤의 고요를 더 비워내 한없이 쓸쓸하고 공허하게 만들었다.서인경은 문득 짜증이 났다. 연기준 때문만이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화가 치밀었다.명색이 먼저 화리를 원한 것은 자신이었다. 화리한 후, 각자의 길을 가면 그뿐인데...그렇게 되면 그가 단은설과 백년해로 약조를 맺어도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데...그런데 왜 마음이 이렇게 요동치는 것일까? 어처구니없고 어리석기까지 한 심정의 기복이었다.게다가, 저 사내는 원래 몸 주인이 탐냈던 남자고 그녀가 억지로 쥐고자 한 인연이었다. 반면, 자신은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단 한 번도. 그저 원래 주인의의 껍데기를 잠시 빌려 산 것이니 그와 맺어진 부부 인연 또한 찰나의 허울일 뿐이었다.자신의 한 가지 소명은 서가를 지키는 것, 전생의 비극을 뒤집는 것. 그리고 자신이 버려지는 결말을 피하는 것, 그뿐이었다.그러니 먼저 버려야 했다. 미련을 남기지 말고 단호히 잘라야 했다.연기준이 마지막에 누구의 손을 잡고 살아가든 그건 더더욱 자신과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었다. 서인경은 스스로를 다독이듯 주문처럼 되뇌었다.“나는 그를 좋아하지 않아. 절대 좋아하지 않아…”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중얼거림 속에서 그간 연기준이 저질러온 만행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씹고 또 씹었다.“개 같은 남자.”그렇게 서인경은 온 밤 그를 욕하며 저주했다.근교의 장원.열댓 살의 소녀가 잠에서 덜 깬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하인에게서 연기준이 전날 밤 이곳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졸음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한설은 기쁨에 눈을 반짝이며 이불도 정리하지 않은 채 달려 나갔다.그때, 연기준은 막 아침을 들고 있었다. 멀리서부터 쿵쿵 울리는 경쾌한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곧이어 작은 그림자가 홱 식당으로 뛰어들어왔다.“지하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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