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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시간을 거슬러: Chapter 291 - Chapter 300

465 Chapters

제291화

사람들 앞에서 누군가는 대놓고 말했다.“이 약재상은 바로 맹국공 부인의 어머님, 즉 제가의 산업이 아니었나? 맹국공의 인맥 덕에 세운 가게지!”또 다른 이가 소리쳤다.“맹국공이 이런 더러운 장사를 하게 놔두다니! 틀림없이 중간에서 뜯어가는 거겠지!”“관아에 고발해야 한다! 제가와 맹 가를 철저히 조사해야 해! 맹국공이 또 무슨 나쁜 짓을 지시했는지 밝혀야지!”순식간에 화살은 맹국공부를 향했다. 분위기는 이미 누군가에 의해 조종당하는 듯 몰이의 기세가 점점 커졌다. 제혁이 가장 두려워한 일이 바로 이거였다. 그는 나서서 해명하려 했으나 서인경이 손을 뻗어 단단히 막았다.“백부께서 직접 나서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변명할수록 의심만 커질 뿐이에요. 여기는 제가 맡겠습니다. 백부께서는 약재를 달이는 데 더 신경 써 주세요. 약이 하루빨리 달여져야 합니다.”서인경의 흔들림 없는 단호한 눈빛에 제혁은 그녀를 믿기로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좋습니다. 이 일은 마마께서 맡아주세요.”21세기에서 의술을 펼치던 시절, 서인경이 가장 싫어했던 게 있었다. 바로 의료 분쟁을 일으키는 행패꾼들.그들은 치료 시간을 가로막고 의사를 궁지에 몰아넣으며 온갖 더러운 꼬리표를 씌웠다.제혁과 대화를 끝낸 후 서인경은 성난 기세로 날뛰는 모자 앞에 다가섰다.“누군가 관아에 고발해야 한다고 했지요. 좋습니다. 이 일, 아예 관청에 맡겨 처리하도록 하지요. 안포, 형부를 불러오거라.”형부는 곧 황제의 직속.적어도 지금까지는 황제가 정직하고 곧은 사람이라는 걸 서인경은 믿고 있었다. 황제가 무슨 이유로 단 가를 감싸며 무고한 이를 해치게끔 놔두겠는가?안포 역시 그녀의 뜻을 알아차리고 곧장 사람을 보냈다.그러나 늙은 여인은 무슨 관청이 어디를 맡는지조차 몰랐다. 다만 관아에 고발한다는 말에 얼굴빛이 확 변했다.“무슨 관아에 고발한단 말이냐! 고발할 게 뭐 있다고! 너희들이야말로 왕법을 눈 아래 두지 않는 자들이다! 이 파렴치한 상인들아! 내 손녀를 죽인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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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2화

아이를 살리겠다는 마음으로 가득했던 부인은, 서인경이 건네준 해독 환약을 삼킨 뒤 아이가 더는 경련하지 않는 것을 보고 안도했다. 지금 그녀가 믿을 수 있는 건 오직 서인경뿐이었다. 그래서 서인경의 물음에 부인은 숨김없이 진실을 말했다.“집에 돌아가 약을 먹이고 또 하나 먹인 것이 있는데... 그건 시어머니께서 주신 탕후루였습니다.”“이 악녀! 헛소리를 지껄이지 말거라!”남자는 고함을 지르더니 손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그러자 안포가 재빨리 몸을 날려 부인 앞을 가로막고 그의 손목을 단단히 움켜쥐었다.“네 딸이 죽어가는데 너는 눈물 한 방울조차 흘리지 않더니 이제 와서 욕을 하며 아이의 친모까지 때리려 드는구나. 너 정말 그 아이의 친부가 맞기는 한 것이냐!”남자는 손목에서 밀려오는 고통을 느끼자 수치와 분노로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는 악다구니를 치며 안포에게 달려들었다.“네놈이 뭔데! 내가 내 여자를 패는데 네놈이 뭔 상관이냐!”안포는 비웃듯 손을 홱 내젓더니 가볍게 몸을 튕겨내듯 그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상관없을 수도 있지. 하지만 난 남자가 여자를 패는 꼴은 그냥 못 본다.”남자는 마치 그제야 꼬투리를 잡은 듯 손가락을 안포와 부인에게 들이대며 소리쳤다.“오호라! 어쩐지 이 년이 요즘 집에 붙어 있질 않더니 다 이유가 있었구먼! 밖에서 남정네랑 붙어먹느라 그런 거였지! 이 더러운 년, 아들 하나 낳지도 못하더니 이젠 바람까지 피워? 이걸 그냥 확! 아악!”안포의 손바닥이 번개처럼 다시 한번 그의 얼굴을 후려쳤다.“입이 그렇게 더럽다면 차라리 그 입을 박살 내주마!”“아들아! 감히 내 아들을 치다니! 내가 가만있을 줄 알았느냐!”노파가 악을 쓰며 달려들려는 순간, 서인경이 눈빛을 보냈다. 그러자 두 명의 호위가 앞으로 나서 그녀의 길을 가로막았다.서인경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근처의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보듯 담담하게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평소에는 장난스럽기만 했던 안포였는데 막상 중요한 순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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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3화

부인은 눈물을 꾹 참고 딸아이를 데리고 제약방을 다녀온 그날의 모든 세세한 과정을 말했다.“제 딸은 몸이 약해서 날씨만 추워지면 곧잘 감기에 걸립니다. 예전에도 이 약방에 몇 차례 왔었는데 그때마다 약을 받아 가면 금세 차도가 있었지요. 어제도 늘 그렇듯 아이를 데리고 약을 지으러 왔습니다. 집에 돌아와 약을 달이는 동안 아이는 방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 시어머니께서는 밖에서 사 오셨다는 탕후루 하나를 아이에게 주었습니다. 평소에 딸이라는 이유로 한 번도 물건을 사주신 적 없는 분인데 이번에는 웬일로 간식을 사 오셨더군요. 저는 그저 아이가 요즘 말을 잘 들어서 혹시나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신 건가 했습니다만…”“이 망할 년! 헛소리하지 말거라! 내가 언제 탕후루 같은 걸 준 적이 있더냐! 본래부터 그런 건 사 준 적이 없다!”부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노파는 돌연 날뛰며 고함을 질렀다. 앞을 가로막은 호위가 아니었다면 금세라도 달려들어 멱살을 잡았을 기세였다. 부인의 말은 그 스스로도 약에 문제가 없다고 믿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문제는 기묘하게 나타난 탕후루에 있었다. 노파는 잠시 기가 막힌 듯 할 말을 잃었으나 곧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부인은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앉아 있던 자리에서 곧장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눈가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으나 그 얼굴빛은 오히려 굳세게 빛났다. 어미는 강하다는 말처럼 친딸이 생사의 경계에 놓인 순간, 그녀는 그간 억눌렀던 두려움 따위는 모두 벗어던진 것 같았다.“대인께 아룁니다. 제 목숨을 걸고 맹세하건대 제 말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습니다. 시어머니께서는 단 한 번도 아이에게 웃음을 보인 적 없었습니다. 한데 어제는 느닷없이 탕후루를 쥐여주셨어요. 아이는 너무 기뻐서 한 입만 베어물고 고이 베갯머리 곁에 두었습니다. 저희 집은 바로 옆 골목에 있으니 원하신다면 당장 사람을 보내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부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인경은 곧장 눈빛으로 안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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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4화

유준산은 받아든 기름종이를 펼쳐보았다. 안에는 이미 설탕이 반쯤 녹아내려 끈적끈적했다. 그러나 분명히 탕후루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들어 있었다. 그는 그것을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곁의 아전을 향해 명했다.“근처의 세 약방에서 서로 다른 의원들을 불러오거라. 그들이 함께 검증하게 하겠다.”아전은 즉각 대답하더니 곧장 문밖으로 달려 나갔다.유준산은 바닥에 엎드려 있는 사내를 흘깃 바라본 후 안포에게 물었다.“저자는 누구냐?”“탕후루를 찾던 중 마주친 자입니다. 물건을 빼앗아 증거를 없애려 했습니다.”유준산의 얼굴이 단단히 굳어졌다.“너는 누구냐? 고개를 들 거라!”사내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무릎을 꿇고 사시나무 떨 듯 몸을 떨었다. 유준산이 눈빛을 보내자 아전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거칠게 사내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억지로 얼굴을 들어 올렸다.서인경이 가까이서 바라보니 그는 피부가 거무죽죽하고 마른 체구의 사내였다. 어디선가 본 듯한, 낯설지 않은 얼굴이었다.유준산이 다가서서 직접 추궁했다.“너는 누구냐? 누가 널 사주해 어린아이를 해치게 했느냐?”사내는 고개를 억지로 치켜들린 채 굽히지 않고 버티며 대답했다.“시킨 자는 없습니다! 저는 본래 이 집 안주인과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였지요. 이 여자가 그 계집아이 때문에 저와 함께 떠나길 거부해 부득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그 말이 떨어지자 현장은 한순간에 술렁였다. 수많은 시선이 날카로운 칼날처럼 부인에게 꽂혔다. 부인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허튼소리입니다. 저는 저자를 전혀 모릅니다!”그러자 노파와 사내가 즉각 고개를 번쩍 들며 기세를 회복했다. 그들은 부인의 얼굴을 가리키며 잔혹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들었지 않았습니까! 바로 저 여자가 정숙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녀의 사통이 딸아이를 해친 것이지 우리와는 상관없습니다!”“그래! 제 몸을 주체 못 해 자식까지 해친 년! 이제 와선 죄를 우리에게 뒤집어씌우려 하다니.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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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5화

“당신이 아무리 상왕비라 해도 우리 집안의 가정사는 마마께서 간섭할 바 아닙니다! 이년이 밖에서 난봉꾼을 끌어들여 내 친딸까지 죽일 뻔하지 않았습니까! 오늘 제가 반드시 이년을 죽이고야 말겠습니다!”사내가 또다시 달려들려는 찰나, 안포가 날랜 걸음으로 나서며 그의 앞길을 막아섰다.서인경은 안포를 사이에 둔 채 사내와 눈을 마주했다. 그녀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너희 집안의 일에는 본왕비가 관심 없다. 그러나 저 사내가 사람의 목숨을 해치고 약방의 명예까지 더럽혔다. 그 일만큼은 본왕비가 반드시 관여해야겠다.”사내는 콧김을 거칠게 내뿜으며 비웃었다.“제가 알기로 이 약방은 제씨 가문의 것입니다. 당신이 왕비라 한들 무슨 상관이 있단 말입니까?”서인경은 목소리를 낮추되 단호하게 응수했다.“잘 들어라. 이 약방에 내 자본이 들어갔다. 투자가 무엇인지 아느냐? 내가 돈을 댔으니 나는 이 약방의 주인 중 하나다. 이제 말해 보거라. 내가 관여해야 마땅한 것이냐? 아니면 외면해야 마땅한 것이냐?”서인경과 제약방의 관계가 이때 처음으로 세상에 드러났다. 사내는 얼이 빠진 듯 굳어 섰고 구경꾼들 또한 숨을 삼키며 일제히 침묵했다. 심지어 형부상서(刑部尚书) 유준산마저도 의외라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가 과거 단가와 가까이 지내더니 어찌하여 지금은 단가의 원수나 다름없는 제약방의 편을 드는 것인가? 그 속내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그러나 그는 원칙을 따랐다. 권세가 앞에서 섣불리 입을 놀려 화를 자초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유준산은 그저 묵묵히 사태를 지켜보며 한마디 말도 보태지 않았다. 오직 눈앞의 사건 해결에만 집중할 뿐이었다.그때, 아전이 다른 약방에서 불러온 세 명의 의원을 데리고 들어왔다. 공교롭게도 그 가운데는 아직 젊은 여의 한 명도 있었다. 유준산은 손에 쥔 탕후루를 두 명의 남 의원에게 건네며 명했다.“그대들은 이 탕후루에 독이 들었는지를 살펴보거라. 그리고 그 독이 어린 계집아이가 중독된 것과 동일한지를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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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6화

유준산은 손을 휘둘러 여의에게 어서 확인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는 하루빨리 독살 사건을 해결하고 싶었다. 이런 천박한 집안의 추문은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일이었으니 그가 관여할 수도, 관여하고 싶지도 않았다.여의가 한 발 앞으로 나서자 부인은 본능적으로 몸을 비켜섰다. 그녀의 얼굴에 드리워진 두려움은 이내 절망으로 바뀌었다. 아이의 목숨이 살아 돌아오며 한순간 환하게 빛났던 눈빛은 이미 사라져 버렸다. 부인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서인경 앞으로 다가오더니 다시금 무겁게 무릎을 꿇었다.짧디짧은 한 시진 동안, 서인경은 그녀의 얼굴에서 수많은 감정을 보았다.비통, 슬픔, 절망, 공포, 그리고 잠깐의 용기.그러나 지금, 그녀가 건네오는 시선 속에는 오직 고요한 평정만이 남아 있었다.부인은 힘겹게 입가에 미소를 걸었다. 찢어진 입술 끝에서는 다시 붉은 피가 스며 나왔다.“왕비 마마, 제 아이를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어지러운 때에도 저를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간청하옵건대, 제 아이를 거두어 주시어 밥 한술 먹이고 무사히 자라도록 지켜주시길… 그 아이의 목숨은 이제부터 왕비 마마의 것입니다. 훗날 아이가 자라면 부디 왕비 마마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말이 끝나자 그녀는 쾅 하고 이마를 땅에 찧었다. 서인경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혀 몸을 낮추며 다급히 설득했다.“부디 죽을 생각은 하지 말거라. 네 아이를 가장 잘 돌볼 수 있는 이는 바로 너다. 네가 죽으면 그 아이는 아비의 손에 맡겨져야 한다. 네 아이를 그들에게 안심하고 맡길 수 있겠느냐?”부인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그 집안은 차라리 우리 모녀가 함께 죽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새 여인을 맞아 아들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그들이 제 아이를 지켜 줄 리 없습니다.”그 목소리는 끝내 희망조차 잃어버린 듯, 깊은 절망에 젖어 있었다. 그녀는 돌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대문 밖에서 구경하던 군중을 향해 목청을 높였다.“저는 이 사내를 알지도 못합니다! 저는 단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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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7화

유준산 또한 잇따른 변고에 허둥지둥 마음을 다잡지 못했다. 그가 평소 다루던 사건이라 하면 언제나 황실과 권세가 얽힌 중대한 대사건들이었다. 이런 민간의 집안 분쟁은 그에게 익숙하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은 증거조차 부족하니 섣불리 옳고 그름을 가리기 어려웠다.바로 그때, 두 명의 남자 의원이 검증을 마치고 유준산 앞에 나아왔다.“대인, 이 탕후루에는 분명 독이 들어 있습니다. 아이의 체내에서 검출된 독과 완전히 일치합니다.”증거가 분명해지자 유준산은 손을 힘차게 내리쳤다.“독약은 틀림없이 아직 네 몸에 남아 있다. 수색하거라!”아전들이 즉시 달려들었다. 두 명은 사내를 억누르고 한 명은 그의 옷을 더듬어 뒤지기 시작했다. 사내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맞습니다, 독을 넣은 건 접니다! 제가 죄를 인정하겠습니다! 제가 당신들과 함께 가면 되지 않습니까! 당신들이 제 몸을 수색할 권리는 없습니다!”유준산의 목소리가 준엄히 울렸다.“어서 솔직히 말하거라. 독약이 남아 있는 것이냐? 어디서 구입한 것이냐? 자백하면 형을 감해줄 수도 있다.”그러나 사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아전이 그의 옷 가장 깊은 곳에서 작은 주머니 하나를 끄집어냈다. 아전은 그것을 만져 보더니, 곧장 유준산 앞에 바쳤다.“대인, 이 주머니 속에 단단한 물건이 있습니다.”유준산이 그것을 받아 들자 사내의 얼굴빛이 단박에 바뀌었다.“그건 제 물건입니다! 독과는 아무 상관이 없단 말입니다! 당신들이 무슨 권리로 제 것을 뒤지는 것입니까!”서인경은 곁눈질로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곧 유준산이 주머니를 열어 네모반듯한 패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 모양새는 분명히 서 가의 패와 닮아 있었으나 그 위에 새겨진 글자는 다름 아닌 단 자였다. 서인경의 입술이 서서히 말려 올라갔다. 가슴속의 무거운 돌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아직도 단가의 개가 아니라고 발뺌할 셈이냐? 이 패는 단가가 심복들에게 새로 내린 것으로 충복임을 증명하는 상징이다!”사내는 놀라움에서 곧 차분함으로 표정을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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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8화

유준산은 수많은 사건을 단칼에 판결해 온 인물이라 곧장 이번 사건의 가장 중요한 고리를 간파했다. 그는 아전을 불러 귓가에 몇 마디 짧게 일렀다.아전은 즉각 고개를 숙이더니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서인경은 여전히 바닥에 앉아 손가락을 꼽으며 오늘 하루의 사건들을 하나하나 짚어 나갔다.“처음에는 어린아이에게 독을 먹여 제약방이 사람을 죽게 했다고 누명을 씌웠지. 한데 아이가 살아나고 약방의 결백이 드러날 때 즈음에는 또 엉뚱한 사내를 불러내 아이 친모의 명예를 더럽히고 그녀가 기둥에 머리를 박아 자살하게 만들었다. 내 생각에는 너희 주인의 본래 목적은 제약방의 명성을 짓밟아 문을 닫게 만드는 것이었을 거다.하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여인의 명예를 더럽혀 사람들로 하여금 단순히 천박한 집안 싸움으로만 여기게 만들려 한 거지. 그래야 사업상의 경쟁이란 흔적이 사라지고 너희 주인에게 의심이 가지 않으니. 참으로 치밀하구나! 퇴로까지 모두 마련해 둔 걸 보니. 다만 안타깝게도 오늘은 운이 나빴지. 본왕비를 만나지 않았느냐!”무릎을 꿇고 있던 두 사내는 서로를 힐끗 바라보았다. 애초에 별것 아닌 잔심부름이라 금세 마무리할 일이라 여겼는데 사태가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내는 목을 뻣뻣이 세우며 여전히 부정했다.“상왕비가 무슨 말씀을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제가 그 여자의 몸의 특징까지 말할 수 있었는데 어찌 거짓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서인경은 고개를 돌려 기둥 뒤에 숨은 채 꼼짝도 못 하던 사내를 바라보았다.“그건 저 자에게 물어보아야겠지. 제 아내의 신체 특징을 다른 사내에게 제멋대로 흘린 네놈, 본왕비는 참으로 궁금하구나. 얼마나 큰 이익을 받았기에 그런 짓을 했느냐?”아까부터 눈치를 보던 남편은 갑자기 자기가 거론되자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아… 아뇨, 아무것도…”유준산은 냉혹하게 잘라 말했다.“생각을 잘 하고 대답하거라. 본관이 이미 너의 집에 사람을 보냈다. 네 말과 어긋나는 증거가 나온다면 허위 증거를 날조한 죄를 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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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9화

“그저 손 한번 내밀어 줬을 뿐이다. 나는 무엇보다도 이 약방이 억울하게 화를 입지 않기를 바라지. 그러니 그리 깊이 감사할 것도 없다. 빨리 회복해서 이후에는 반드시 네 어미의 말을 잘 따르거라.”부인의 머리에는 상처가, 얼굴에는 줄끈이 남긴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그녀는 아이를 품에서 내려놓더니 몸을 일으켜 쾅 하고 무릎을 꿇었다.“민녀의 고향 친족들은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여섯 해 전, 친척을 찾아 상경했으나 끝내 찾지 못하고 지금의 남편을 만났을 뿐입니다. 이 세상에 이제는 의지할 친척조차 없으니 간청하옵건대 왕비 마마께서 저희 모녀를 거두어 주소서. 무엇이든 시키시는 대로 하겠습니다.”서인경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아이고, 어서 일어나거라. 일어나서 다시 말하자.”바로 그때, 제혁이 다가왔다.“왕부는 일반적인 곳이 아니니, 들어가도 편안치 못할 것이다. 마침 내 약방에는 늘 여의가 없어 여인 환자가 찾아올 때마다 불편이 많았는데 차라리 이곳에 남아 의원을 거들어 주는 게 어떻겠느냐? 약방에서 매달 품삯을 내어줄 터이니 모녀가 살아가기에는 넉넉할 것이다.”서인경은 고개를 홱 돌리며 환하게 웃었다.“제 백부의 말씀이 옳습니다. 이리 하면 앞으로는 자립할 수 있어 누구의 구박도 받지 않을 것이지요. 게다가 아직 몸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으니 약방에 머물면 의원들이 돌봐 주기에도 편리할 것입니다.”부인은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돌려 제혁를 향해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대단히 감사합니다. 어르신께서 저를 거두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침상 위의 어린 소녀도 어미를 따라 무릎을 꿇었다.“방울이도 거두어 주셔서 감사합니다.”제혁은 평소 집안에 딸이 없어 맹은영을 제 친딸처럼 아끼곤 했다. 이제 약방에 또 한 명의 소녀가 들어오자 그는 눈길 가득 흐뭇한 빛을 감추지 못했다.“옳지, 옳지! 어서 일어나거라. 함께 뒷마당으로 가자꾸나.”부인은 서인경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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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0화

“상왕비라 했나?”예정임의 손이 순간 멈추었다.“오늘 본황자는 상왕만 보았다. 대전에는 몇몇 궁녀들뿐, 부인을 동반한 이는 하나도 없었지.”그의 어투에는 아쉬움이 묻어났다.시위는 예정임에게 차를 따라 올리며 무심히 말했다.“듣자 하니, 진국은 남권 제도라 하여 사신을 접대하는 자리에 여인이 참석할 수 없다 하옵니다. 다만 주군, 대장군의 당부를 잊지 마시길. 만약 주군의 속내가 대장군의 귀에 들어간다면 두고두고 꾸중을 들으실 것이옵니다.”예정임은 성가시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얼굴 가득 실망을 드러냈다.“그만, 그만! 더는 외삼촌 얘기는 꺼내지 말거라. 내가 스스로 오겠다 했는데 모후께서 굳이 외삼촌을 붙여 보냈단 말이다. 이래라저래라 참견뿐이지. 내가 분별도 못할까 두렵단 말이냐?”시위는 비웃듯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주군 말씀이 옳사옵니다.”예정임은 잠시 전의 화제를 떠올리며 물었다.“방금 네가 상왕비가 재미있다고 했지? 무슨 뜻이냐? 세세히 본황자에게 말해 보거라.”시위는 오늘 낮 제약방에서 목격한 일을 낱낱이 예정임에게 들려주었다.“지금 온 거리에 소문이 자자하옵니다. 단가는 장사를 두고 못된 수를 썼고 제약방은 상왕비가 뒷배가 되어 든든히 버티고 있지요. 더구나 제약방 주인은 맹국공 부인의 친정이기도 하니 앞으로 경성에서 단가와 제가는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될 듯하옵니다.”예정임은 듣는 둥 마는 둥, 시큰둥하게 중얼거렸다.“내 야랑국의 여인들이라면 어느 하나 용맹과 지략이 빠지지 않는다. 고작 판결 몇 번 한다고 대단할 게 무엇 있겠느냐! 차라리 본황자는 궁중의 궁녀들이 더 낫다. 겉보기에는 나약하고 연약하니 우리 나라 여인들과는 전혀 다른 맛이 있지 않겠느냐?”시위는 잠시 떠올렸다. 서인경의 그 얼굴을 직접 보았다면 주군도 결코 이런 말을 내뱉지는 않았으리라. 그러나 그는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비록 진국에 와 본 적은 없어도 그는 진국의 상왕이 어떤 존재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주군이 다른 사람을 다 건드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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