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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시간을 거슬러: Chapter 391 - Chapter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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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1화

서가군의 귀속은 본래 진국 내부의 정사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 일이 야랑국과 얽히자 사안의 무게가 전혀 달라졌다. 황제의 눈빛에는 억누르지 못한 노기가 서려 있었다.“누구든 감히 서가군을 넘본다면 모두 죽어야 마땅하다!”황후와 대황자의 낯빛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그들은 애초에 단지 숙귀비를 병상에 눕혀 무력하게 만들려 한 것뿐이었다.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일이 결국 야랑국과의 연루로 번져 버릴 줄은.서인경 또한 이 모든 상황이 기이하다고 여겨졌다. 아무리 그들이 어리석다 하여도 이렇게 중대한 순간에 타국의 그림자를 끌어들일 리 없었다. 대내의 싸움은 황제가 묵인할 수 있는 일이다. 밑에서 피 터지게 다투어야 하늘 위에 앉은 황제의 자리가 오히려 더 공고해지니까. 그러나 외국의 손길이 스며든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는 단순한 내분이 아니라 내응과 외세가 맞물려 조정을 전복하려는 음모가 될 수도 있었다.서인경은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밤중의 연회 한복판, 세상사와 무관하다는 듯 담담히 음식 맛을 보는 이는 단 두 사람뿐. 하나는 연기준, 다른 하나는 언제나 국정을 외면하던 서왕이었다.황제의 안색은 잿빛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야랑국 사신을 물린 뒤 그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서가군이 이미 수 일째 주인을 잃은 용처럼 흩어져 있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오늘은 야랑국, 내일은 또 어느 세력이 불순한 마음을 품을지 모른다.”그 말은 곧바로 이 자리에 있는 모두를 향한 의심이었다. 궁중의 공기마저 얼어붙으며 일순간 대전은 숨죽인 정적만 감돌았다. 그 누구도 먼저 입을 떼지 못했다.황제는 가장 태연한 두 사람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서왕, 상왕. 너희 두 사람의 견해는 어떠하냐?”술에 절은 서왕은 한 손에 들린 구운 닭 다리를 뜯고 있다가 불시에 이름이 불리자 멍한 눈으로 황제를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서왕비가 닭 다리를 빼앗으며 속삭였다.“폐하께서 묻고 계시잖아요. 서가군을 어찌할 거냐고.”한참을 헤매던 눈이 겨우 제자리를 찾은 서왕은 허둥지둥 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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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2화

황제는 마음속으로 은근히 흡족해하였다. 연기준의 말은 마치 그의 가슴속 갈증을 정확히 적셔 주듯, 한 자 한 자 모두 그의 뜻을 대변하고 있었다.“서가군은 서 노장군 평생의 심혈이니 짓밟아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다. 그러므로 가장 알맞은 인물은 숙귀비다. 그녀가 회복되는 대로 서가군을 맡기도록 하겠다.”“폐하, 아니 되옵니다! 이는 조정의 옛 제도와 어긋나옵니다.”황후의 안색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그녀는 후궁이 군권을 잡는 일만은 결코 허락할 수 없었다. 황제의 시선이 곧장 날카롭게 그녀에게로 쏠렸다.“오늘의 일, 숙귀비가 가장 무고하다. 서가군을 그녀에게 주는 것은 그녀가 부당하게 입은 고초에 대한 위로이기도 하다. 누군가 이의 있다면 짐은 오늘의 독살 사건을 끝까지 추궁하여 숙귀비의 결백을 밝혀낼 것이다.”황제의 말은 분명했다. 서가군을 숙귀비에게 넘기지 않겠다면 오늘의 음모를 샅샅이 뒤집겠다는 뜻이었다. 황후는 입술을 깨물며 끝까지 버티고자 했으나 진가이가 나서며 그녀를 말렸다.“모후, 숙귀비께서 폐하의 근심을 덜어 드린다 하니 저희는 마땅히 기뻐해야지요. 후궁의 잡무는 걱정 마시옵소서. 만약 모후를 도와 뒷궁궐을 다스릴 빈비가 없다면 첩신이 모후의 분부를 받들면 되지 않겠사옵니까?”그 말은 곧 황후를 위한 퇴로였다. 황후 또한 체면을 아는 사람이라 더는 물고 늘어질 수 없어 속으로 분을 삼킨 채 일단 고개를 숙였다.이리하여 서가군의 귀속은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그러나 서인경의 가슴은 여전히 불편하기만 했다. 황제의 눈빛을 보건대 그는 이미 오늘의 독살 음모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충분히 짐작하고 있는 듯했다. 어쩌면 그전부터 누군가 숙귀비에게 손을 쓸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하지만 그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결국 모른체했다. 오늘은 다행히도 신속한 구원으로 무사했으나 단 한순간이라도 늦었더라면 혹은 약간의 오차만 있었더라면 숙귀비는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그 남자는 바로 그녀의 고모가 옛날 장검을 내려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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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3화

“오늘… 나와 함께 상왕부로 돌아가지 않겠느냐?”서인경이 낮은 목소리로 권했으나 열다섯 째 황자는 고개를 저었다.“저는 궁에 남겠습니다. 어머니 곁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있고 싶습니다.”두 사람은 손을 꼭 맞잡은 채 막 대전을 나서려는데 뒤에서 따라잡은 유모가 길을 가로막았다.“상왕비, 태황태후께서 염려하시길, 열다섯 째 황자께서 혼자 침궁으로 돌아가면 돌봐줄 이가 없을까 봐 걱정된다 하십니다. 그래서 특별히 노비를 보내시어 모셔가라 하셨지요. 이제 열다섯 째 황자는 태황태후 곁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서인경의 손끝이 떨리며 아이의 손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오늘 일이 갑작스럽게 일어나 열다섯 째 황자의 물건을 하나도 준비하지 못했다. 네가 태황태후에게 청해 주거라. 내일은 내가 직접 데리고 가겠다고.”그러나 유모의 태도는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단호했다. 이미 태황태후의 뜻을 받들고 있는 눈치였다.“태황태후의 침궁에는 필요한 것이 모두 갖춰져 있습니다. 그러니 황자께서 부족함을 겪지는 않으실 겁니다. 혹여 모자란 게 있더라도 내일 태황태후께서 사람을 보내 가져오라 하면 됩니다. 상왕비께서는 안심하시지요. 그리고 시각이 이미 늦었으니 태황태후께서 상왕과 상왕비 두 분을 궁 밖으로 배웅해 드리라 분부하셨습니다.”분명한 거절. 서인경은 속이 막혀 답답했다. 정말이지 벼슬이 높으면 그 한마디로 사람을 짓누를 수 있는 법이었다.열다섯 째 황자는 오히려 이해심 깊게 서인경의 팔을 토닥이며 자기 손을 그녀의 손바닥에서 조심스레 빼냈다.“누님 걱정하지 마세요. 조모께서 저를 잘 보살펴 주실 겁니다. 저도 오랜만에 뵙고 싶습니다. 조모 곁에 있고 싶어요.”서인경은 아이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낮게 속삭였다.“좋다. 무슨 일이 있으면 반드시 사람을 보내 내게 전하거라.”열다섯 째 황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유모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서인경은 아쉬움에 발길을 떼지 못한 채 아이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텅 빈 궁벽만이 남자 그녀는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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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4화

화사독? 심장질환?서인경은 고개를 저었다. 이런 병증에 대해 그녀는 사실 익숙하지 않았다. 고대는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기계 하나 없어 상태를 측정할 수도 없으니 결국은 맥을 짚고 어머니가 남긴 의서를 펼쳐 연구할 수밖에 없었다.상왕부 앞.마차가 상왕부 대문 앞에 멈춰 섰다. 서인경이 막 내리려는 순간, 문 앞에 서 있던 낯익은 그림자가 시야에 들어왔다.“단은설?”서인경은 발걸음을 멈추고 문가에 선 호위를 향해 물었다.“그녀가 이곳에는 무슨 일이지?”단은설은 뒤돌아보고는 서인경을 외면하고 그녀 뒤에 선 연기준에게 다가갔다.“왕야, 오늘은 보름달의 밤입니다. 저는 한설의 병세가 걱정되어 일찍 장원으로 갔습니다. 한데 그 아이가 이미 왕부로 옮겨졌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제발 저도 안으로 들여보내 주십시오. 제가 곁에 없으면 그 아이는 분명 고통스러워할 겁니다.”말끝에는 의도된 애매함이 배어 있었다. 마치 이혼한 부부가 특별한 날에 아이를 보겠다며 집 앞에서 간청하는 모양새였다.그러나 서인경은 이제 더 이상 예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그녀는 사람을 한번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의 의도를 꿰뚫을 수 있었다. 단은설이 바라던 오해의 장면 따윈 만들어 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서인경은 단정하게 발걸음을 옮겨 대문을 거침없이 넘어섰다.뒤돌아본 순간, 담장 밖에 남겨진 채 속수무책인 단은설의 얼굴은 참을 수 없는 분노로 굳어 있었다. 그녀는 손가락마저 비틀릴 정도로 세차게 움켜쥐며 치를 떨었다.상왕부 안쪽깊은 밤, 등불이 환히 타오르는 안채에서는 종종걸음을 치는 하인들이 연신 쟁반을 들고 드나들고 있었다.서인경은 가까이 다가가 고개를 숙여 쟁반을 확인했다. 그러자 그녀의 안색은 순식간에 창백하게 변해버렸다. 쟁반마다 담겨 나오는 것은 새까맣게 변한 피였다. 연기준이 묘사한 그대로, 화사독이 발작할 때 토하는 그 흑혈이었다.서인경은 곧장 치마폭을 거두고 안으로 뛰어들었다.침상 앞에서 호청은 진땀을 뻘뻘 흘리며 전신의 힘을 쏟아 침을 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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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5화

서인경은 호청이 꽂아 두었던 은침을 뽑아내고 다시금 맥을 짚어 침혈을 바꿔 놓았다. 잠시 뒤, 봉한설의 얼굴빛에 서서히 붉은 기운이 돌기 시작했고 입가를 더럽히던 검은 피도 멎었다. 서인경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상태를 살피다가 조심스레 물었다.“이런 증세는 언제부터였느냐? 원인이 뭐였는지 기억하느냐?”상왕부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봉한설은 자신의 몸 상태를 숨기지 못하리라 짐작하고 있었다. 딱히 숨길 이유도 없었기에 그녀는 담담히 사실을 내뱉었다.“저는 집안 내력으로 심장병이 있습니다. 본래부터 몸이 약했는데 다섯 살 때 화사독에 중독됐습니다. 병과 독이 서로 부딪치니 지금처럼 된 것이지요.”연기준이 말했던 것과 똑같았다. 유전병이라는 말에 서인경은 문득 다른 한 사람을 떠올렸다. 바로 막효연의 어머니.그녀는 발작 당시 봉한설의 모습을 다시금 떠올리며 어떤 생각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쳐 올랐다. 그러나 그녀는 곧 스스로 부정했다.제혁이 말했듯 어족은 세 대에 한 번씩 선천적 심장병을 안고 태어나는 아이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봉한설의 나이를 보면 막효연의 어머니와는 기껏해야 한 세대 차이일 뿐. 세 대 간격과는 맞지 않았다. 그렇다면 봉한설의 병은 어족의 혈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평범한 심장병일 가능성이 컸다.‘뜻밖에도 이 고대에도 심장병 환자가 꽤 많구나.’서인경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다시 맥을 짚은 뒤 물음을 이어갔다.“그 화사독이란 건 도대체 어떤 것이냐?”그러자 봉한설의 눈동자 어딘가가 어둑하게 빛났다.“전장에서 쓰이던 독입니다. 숲 속의 장기와 함께 풀어놓으면 적군이 아무리 많아도 전부 몰살당하지요. 결국에는 숲을 벗어나지도 못합니다.”서인경은 손끝이 떨리며 믿기지 않는 듯 소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넌 그때 고작 다섯 살이었다. 어찌하여 전장에 있었던 것이냐? 너의 부모님은 누구시기에?”봉한설은 자신이 너무 많은 말을 흘린 것을 깨닫고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일부러 전장에 간 건 아닙니다. 저랑 어머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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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6화

서인경이 담담히 입을 열었다.“묻고 싶은 게 있으면 그냥 묻거라.”봉한설의 눈빛이 장난스레 번뜩였다.“왕비 마마, 예전에 늘 왕야와 싸우신 이유가… 혹시 제 이름이 단은설과 비슷해서 제가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라고 오해한 겁니까?”‘사생아’라는 세 글자가 튀어나오자 문밖에 있던 연기준의 관자놀이가 벌컥 뛰었다.서인경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대꾸했다.“내가 눈이 멀었겠느냐? 너는 이렇게 예쁜데.”봉한설은 다시 물었다.“한데 왕야도 못난 건 아니잖아요. 언니는 단은설이 저 같은 미모를 못 낳는다고 생각한 겁니까? 아니면 왕야가 저 같이 얌전한 딸을 못 낳는다고 생각한 겁니까?”서인경은 태연히 답했다.“둘 다 아니다. 그 둘은 너 같이 예쁘고 착한 아이를 절대 낳을 수 없어.”봉한설은 입술을 활짝 말아 올리며 웃음을 터뜨렸다.“왕비 마마, 정말 안목이 대단하시네요!”서로를 치켜세우며 주고받는 이 장사꾼 같은 대화를 연기준은 더 이상 들어줄 수가 없었다.그러거나 말거나 봉한설은 또 말을 이었다.“왕비 마마 뱃속의 아기가 태어나면 분명 왕비 마마처럼 곱고 또 저처럼 무공도 잘 할 겁니다.”서인경은 눈을 크게 뜨며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았다.“왜 하필 너처럼이냐?”봉한설는 당당하게 대답했다.“왜냐면 그 아이는 저랑 제일 친해질 테니까요. 제가 직접 나무 위에 데려가 새를 잡게 하고 강물에 뛰어들어 물고기를 잡게 할 겁니다. 제가 아는 건 전부 가르쳐 주고 심지어 친아버지와 머리싸움하는 법까지 가르칠 거예요. 그러면 그 아이는 분명히 저를 제일 좋아할 겁니다.”연기준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문을 거칠게 밀치고 들어와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본왕의 아이에게 네 손길은 필요 없다!”그러나 방 안의 광경을 본 순간 그는 발걸음이 멈췄다. 늘 발작이 올 때마다 반드시 단은설의 피를 수혈받아야 겨우 사흘 밤낮을 넘길 수 있었던 봉한설이었는데 지금은 두 뺨에 혈색이 돌고 침상 위에 앉아있었으며 그녀의 온몸에는 은침이 빽빽이 꽂혀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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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7화

한 그릇의 쓴 약이라 해도 아니 독약이라 할지라도 봉한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삼켰을 것이다. 그런 결심이 얼굴에 어려 있었기에 이번에는 서인경이 일일이 숟가락을 들어 줄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스스로 약그릇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단숨에 쭉 들이켰다.“이렇게 시원하게 약을 마시는 아이는 처음 본다. 정말 대견하고 씩씩해.”서인경의 말에는 꾸밈이 없었다. 본디 한약은 혀끝을 절여 울컥 눈물이 나올 만큼 쓰디쓴 법. 과거 의사로 일하던 시절, 서인경은 한설 또래 아이들이 약 한 모금을 넘기지 못해 부모가 눈물겹게 달래는 장면을 수도 없이 목격했었다. 그런데 이 아이는 고집을 부리거나 울며 떼를 쓰지도 않았다.서인경은 입에 발린 칭찬을 쏟아내며 엄지를 번쩍 치켜세우고 손뼉까지 쳐 주었다. 한설이 약그릇이 내려놓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작은 매실 과자를 아이의 입에 쏙 넣어주었다.“잘했다! 약을 잘 마시는 아이가 바로 장군감이 되는 것이다.”단은설는 달디단 과일 맛을 씹으면서도 얼굴을 찡그렸다.“전 벌써 열 살입니다. 이제 어린애가 아니라고요.”약을 이렇게 순순히 삼킨 건 처음이었기에 곁에서 지켜보던 연기준은 잠시 놀란 듯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입가에 희미한 웃음을 흘렸다. 그러면서도 태연히 받아쳤다.“아직 사흘이나 남았다.”봉한설은 못마땅하다는 듯 입술을 쭉 내밀었다. 그제야 서인경은 사흘 뒤가 바로 이 아이의 생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서인경은 내색하지 않았으나 옆에 있던 평이가 먼저 눈을 크게 뜨며 탄성을 질렀다.“어머나, 열 번째 생일이라니! 큰일이구나. 그날 내가 직접 장수국수를 끓여줄게.”봉한설은 고개를 갸웃했다.“왜 열 번째 생일이 특별한 겁니까? 아홉 살이나 열한 살이랑 뭐가 다른데요?”평이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 대꾸했다.“둥근 숫자니까 그렇지! 어른들도 여든 살엔 큰 잔치를 열잖니. 우리가 열 살에 대수(大寿:노인들의 매 10주년 생일)를 치르겠다는데 뭐가 잘못 된 것이냐?”봉한설은 납득이 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리며 딱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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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8화

대황자의 고개가 휙 하고 옆으로 돌아갔다.“어머니, 무슨 뜻입니까?”황후의 눈에는 피로와 좌절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사마귀가 매미를 잡으려 하면 그 뒤에는 늘 참새가 있느니라. 폐하께서는 우리를 경계하고 계신다. 그러니 감히 서가군을 네 손에 쥐여주지 않으려는 것이지. 명심하거라, 장차 천하를 잇고자 한다면 오늘 이후로는 절대로 다른 사람이 눈치 채선 안 된다. 폐하께서는 네가 드러내는 야심을 가장 싫어한다. 그의 재위 중에는 그 누구도 눈에 띄어선 안 된다.”대황자의 얼굴에 서린 건 억울함과 분노였다.“아버지께서는 저에게 나라를 물려주려 하지 않는 다는 겁니까? 그렇다면 고작 갓 털도 나지 않은 열다섯 째 황자에게 주려는 것입니까?”황후는 낮게 숨을 고르며 입을 열었다.“그 선택은 폐하의 마음속에서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본궁이 아는 건 단 하나. 폐하는 외척이 권력을 잡는 걸 가장 꺼려 하신다. 숙귀비가 아무리 영특하다 한들 그녀가 강해질수록 오히려 더 큰 의심을 살 뿐이다.”그 말을 듣자 대황자의 눈빛에 차츰 안도감이 스며들었다.“그렇다면 서가군을 맡게 된 것이 숙귀비에게 반드시 좋은 일만은 아니겠군요.”황후는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옳다. 결국 꽃이 누구 손에 가 닿을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일. 네 옆에 있는 사람들을 작은 실수로 잃어서는 안 된다.”그 말의 뜻은 분명했다. 대황자는 땅에 엎드린 진가이를 흘끗 보고는 다가가 그녀를 부축했다.“내가 너무 조급했구나. 가이, 네가 고생이 많았다.”진가이는 뜻밖의 은총에 눈시울이 붉어졌다.“저는 괜찮습니다. 오직 대황자께서 저를 믿어주신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그때, 문밖에서 내관 하나가 급히 들어와 아뢰었다.“아룁니다, 황후 마마, 대황자 전하. 방금 냉궁에서 미쳐 날뛰던 폐비 하나가 뛰쳐나와 열다섯 째 황자를 습격하려 하였사옵니다. 다행히 호위들이 제때에 막아내어 목숨은 건지셨사옵니다.”황후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감히 후궁에서 칼을 휘둘렀단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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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9화

깊은 밤, 사방은 적막했으나 진가이는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예정임의 온몸에서 몰아치는 것은 술기운이 아니라 날 선 광풍과 분노였다. 그의 기세는 사납고 손에는 여전히 주렴과 연지의 향이 묻어 있었지만 목소리에는 조금의 취기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루 종일 불안에 시달렸던 진가이였으나 막상 그가 자신 앞에 서자 오히려 마음은 가라앉았다. 이미 대비해 둔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오늘의 독약은… 진국의 폐하께서 바꿔치기한 것입니다. 숙귀비에게 서가군을 맡기려는 계책, 그 대가로 오늘의 결과는 애초에 정해져 있었던 것이지요.”예정임의 손이 더욱 거칠게 조여들었다. 숨이 막힐 만큼 강한 압박에 진가이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네 말이 사실이길 바란다. 감히 본 황자를 속인다면 내 손으로 네 목숨을 거둘 것이다.”숨이 턱 막히는 고통에 미간이 일그러졌으나 진가이는 억지로 입을 열었다.“제 목숨은 팔황자 손에 달려있는데 어찌 감히 거짓을 꾸미겠습니까? 게다가 오늘의 결말은…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흥? 재밌군.”예정임은 손의 힘을 풀며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렸다. 그의 눈에는 흥미로운 빛이 스쳤다. 허리에 감겼던 힘이 느슨해지자 진가이는 속으로 안도하며 곧바로 말을 이었다.“남궁열이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된 걸 보면 서회윤이 눈 덮인 산맥에서 이미 빠져나왔을지도 모릅니다.서가군은 결코 쉽게 길들여질 무리가 아닙니다. 설사 우리 손에 들어온다 해도 서회윤이 살아 돌아왔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순간, 그 군세는 뜨거운 불덩이처럼 우리 손을 태워버릴 것입니다.”“뭐라? 언제 들은 소식이냐.”예정임의 눈빛이 매섭게 가라앉았다. 진가이는 그간 남궁열과 주고받던 밀약을 고백했다. 사흘 이상 신호가 끊기면 곧 변을 당한 것이라 했는데 이번에는 이미 오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설령 강인한 남궁열이라 해도 설산 깊숙이 숨어 사는 일불락 어족 후예들을 상대할 수는 없었을 터였다.어족. 그 이름이 입에 오르자 진가이의 심장은 공포로 얼어붙었다.“팔황자, 하루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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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0화

그는 더는 참을 수도,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도 없었다. 열다섯 째 황자만이 아니라 다른 황자들도 하나둘씩 커가고 있었다. 게다가 연기준은 중군을 장악하고 있으면서도 단 한 번도 자신을 지지한 적이 없었다.고립무원의 불안감이 그의 가슴을 죄어왔다. 서재를 몇 바퀴고 맴돌던 그는 답답함에 숨이 막혀 결국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그러자 시위가 재빨리 그의 뒤를 좇았다.“대황자, 이 깊은 밤에 어디로 가시 옵니까?”대황자는 성가시다는 듯 손을 휘저으며 중얼거렸다.“가이를 보러 간다. 넌 따르지 말거라.”그는 곧장 화원을 지나 진가이의 안채로 향했다. 그때, 울창한 수풀 속에서 불쑥 한 여인이 튀어나왔다. 자신의 앞에 선명히 비친 얼굴을 보자 대황자의 눈은 단숨에 서릿발이 서렸다.“천한 것! 네 주제에 감히 뻔뻔하게 내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다니! 썩 꺼지지 않으면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목을 베겠다!”그 앞에 무릎을 꿇은 여인은 단여월이었다. 수척한 얼굴에 얇디얇은 옷차림, 마치 며칠째 잠을 이루지 못한 듯 초라한 행색이었다.“신첩에겐 대황자께서 황위를 쟁취할 방법이 있습니다. 부디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시옵소서!”대황자는 차갑게 그녀를 내려다보았다.“너 따위가? 감히 본 황자를 기만하기라도 한다면 그 끝은 더 비참할 것이다.”단여월의 눈빛은 확신으로 번뜩였다.“신첩에게는 정말 방법이 있습니다. 만약 제 말속에 조금의 거짓이 섞여 있다면 바로 이 자리에서 자결해 보이겠습니다.”대황자는 막막하던 시국 속에서 오히려 귀 기울이고 싶은 심정이 일었다.“…좋다. 말해 보거라.”단여월은 주위를 살피며 더욱 조심스레 속삭였다.“조심하세요. 듣는 귀가 있습니다. 대황자께서 제 안채로 와 주신다면 상세히 아뢰겠습니다.”잠시 망설이던 대황자는 이내 발걸음을 돌려 그녀의 뒤를 따랐다.텅 빈 안채.그곳에는 하인 하나 남지 않았다.단여월은 스스로 앞장서며 그를 맞이했고 방 안으로 인도하더니 닦아낸 의자 하나를 권했다.“대황자, 용서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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