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준은 잠시 눈을 감고 깊이 생각하다가 낮은 목소리로 명했다.“서 노장군은 지금 자신의 처지를 누구보다도 잘 안다. 이 상황에서 대로를 당당히 걸을 리 없어. 모든 인원을 풀 거라. 길가의 산림과 깊은 계곡, 그 어느 곳도 빠뜨리지 말고 수색하도록.”연풍이 고개 숙여 답했다.“예.”그때 서인경이 덧붙였다.“서가군에서 사람을 더 뽑아 몰래 내보내세요. 그들은 할아버지를 긴 시간 동안 모셨고 전장에서 호흡을 맞춘 지 오래니 이런 상황에서 서로를 더 쉽게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연기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고 연풍은 곧장 몸을 돌려 명을 수행하러 나갔다.서인경은 서회윤이 아직 살아있다는 기쁨에 잠시 넋을 잃은 채 있다가 뒤늦게에야 봉한설이 따라오지 않은 걸 알아차렸다.그 아이는 왕부에 들어온 지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에게 금세 호감을 샀고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있었다. 그래서 서인경은 그다지 염려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더 급한 일이 있었으니까.방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녀는 곧장 평이에게 가위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순순히 따랐다.“왕비 마마, 무엇을 하시려는 것이옵니까? 노비가 도와드리겠사옵니다.”서인경은 품속에서 작은 충천포를 꺼내어 평이의 손에서 가위를 받아들었다.“아니, 괜찮다. 내가 직접 하마.”호기심을 감추지 못한 평이는 곁에 앉아 지켜보았다.서인경은 조심스레 충천포의 윗부분을 잘라내고 그 안의 잿빛 가루를 종이에 모았다. 코끝을 스치는 기묘하고도 익숙한 냄새가 번졌다.“왕비 마마, 이게 대체 무엇이옵니까?”서인경은 순간 멈칫했다. 그 냄새는 그녀의 어린 시절, 매년 정초부터 정월 대보름까지 늘 풍기던 익숙한 향기였다. 서인경은 작은 종잇장 위에 재를 모아들고 툇마루 계단으로 가져갔다. 불씨통을 열고 불꽃을 가루 가까이 가져다 대는 순간, 칙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눈앞에서 번쩍 불빛이 터졌다.평이는 놀라 비명을 지르며 서인경을 끌어안았다.“왕비 마마, 조심하세요!”번쩍이는 불꽃이 종이를 태우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