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시간을 거슬러: Bab 841 - Bab 850

1121 Bab

제841화

열다섯 째 황자는 말을 마치자마자 자리를 떠났다. 뒤따르던 내시가 걸음을 맞춰오자 열셋 째 황자는 들고 있던 상소문 뭉치를 그에게 넘겼다.“방금 한 말 무슨 뜻이냐? 정말로 아홉 째 황숙께서 나를 높이 보신 적이 있었단 말이냐?”그 내시는 어려서부터 열셋 째 황자를 곁에서 모셔온 사람이었다. 그는 당연히 주군이 뜻을 이루길 바랐다.“열다섯 째 황자께서 그렇게 말할 정도면 헛말은 아닐 겁니다. 왕야께서는 본래 사람을 쉽게 칭찬하시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주군께서 그분의 인정을 받으셨다면 다른 대신들의 지지를 얻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이미 들끓고 있던 열셋 째 황자의 마음이 그 말에 더욱 치솟았다. 최근 들어 자신을 향해 쏟아지던 온갖 찬사, 달라진 사람들의 시선과 어느새 조심스레 허리를 굽히며 공손히 대하던 태도들이 머릿속을 스쳤다.마치 이미 내정된 태자라도 된 듯한 분위기였다. 이제 단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그는 더 이상 예전처럼 아무렇게나 다뤄지는 미천한 황자가 아니게 된다.그 생각에, 열셋 째 황자의 발걸음은 저도 모르게 가벼워졌다.“모레가 내각 이 대인 부인의 회갑이라지. 모후께서 내게 남기신 백금에 비취를 박은 목걸이를 찾아오너라. 그날 본황자가 가서 축하 인사에 쓰겠다.”내시가 잠시 망설였다.“그 목걸이는 마마께서 전하께 남기신 유일한 귀중품입니다. 정말 내놓으실 생각이십니까?”열셋 째 황자는 한 치의 주저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큰일을 이루려면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아무리 귀한 물건이라도 쓰임이 있어야 값어치가 있는 법이다. 훗날에 그런 물건쯤은 얼마든지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그는 이미 자신의 미래를 향해 계산을 시작하고 있었다.한편, 열다섯 째 황자는 어서재에서 물러나자마자 아까까지 보였던 풀이 죽은 기색을 말끔히 거두었다. 그의 얼굴에는 거리감 어린 담담함만이 남아 있었다.한여름이라 어화원에는 꽃들이 한창 피어있었다. 안상재와 흔귀인은 오래도록 처소에만 머물러 답답했던 차에 마침 이날 바람을 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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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2화

열다섯째 황자가 숨 가쁘게 달려왔다.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거친 숨이 가슴을 들쑤셨다.“사촌 누님은 단은설에게 끌려갔어요!”운 유모는 순간 굳어졌다가 급히 그의 뒤를 한 번 훑어보았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 곧바로 그를 전각 안으로 끌어들여 문을 닫았다.신 황귀비 역시 표정을 굳혔다.“그 말을 누가 네게 해주더냐?”열다섯 째 황자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방금 어화원에서 안상재 마마와 흔귀인 마마를 만났습니다. 그분들이 말하길 상왕부에 변고가 있었던 그날 밤, 단은설 궁의 사람들이 직접 사촌 누님을 데리고 가는 걸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날 밤, 사촌 누님은 궁을 나갔을 리도 없고 상왕부로 돌아갔을 리도 없습니다. 분명 아직 단은설의 궁 안에 있을 거예요.”“안상재와 흔귀인이라고?”신 황귀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그 둘은 아이를 가진 뒤로 꼭 필요한 문안 외에는 처소 문도 잘나서지 않는다. 어찌하여 일부러 어화원에서 너와 마주쳤단 말이냐?”운 유모가 말을 이었다.“그 두 사람은 늘 조심스럽고 후궁들 가운데서도 드물게 얌전한 이들입니다. 예전엔 태의도 그들의 궁에 잘 들르지 않았는데 인경이 몇 번 찾아가 맥을 짚어주고 안태약도 제법 남겨두고 갔지요. 아마도 뭔가를 눈치채고 일부러 소식을 전하러 나온 것일 겁니다.”신 황귀비는 평소 후궁들과 왕래가 많지 않아 그 둘의 이름만 들었지 얼굴조차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운 유모의 말을 듣고서야 조금 마음이 놓였다.“악의가 있는 이들이 아니라면 다행이군요. 혹시 다른 속셈이 있어 일부러 열다섯 째 황자에게 이런 말을 흘린 건 아닐까 염려했어요.”운 유모는 작게 웃었다.“속셈이 있다 한들 그건 자기 자리와 아이를 위한 것이겠지요. 전면에는 큰 황자와 열셋 째 황자가 있고 후궁 쪽엔 단은설이라는 눈에 띄는 인물이 있으니 우리에게까지 손을 뻗칠 형편은 아닙니다.”두 사람이 생각보다 태연히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열다섯 째 황자는 오히려 어리둥절해졌다.“두 분은 전혀 놀라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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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3화

이 일은 분명 그녀의 친아들에게조차 숨겨졌던 일이었다.열다섯 째 황자는 위로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마음이 더 가라앉았다.“알겠습니다. 사촌 누님의 뜻대로 움직이겠습니다. 괜한 변수를 만들지 않을 테니 이만 물러가겠습니다.”열다섯 째 황자는 고개를 숙인 채 밖으로 나갔다.운 유모는 이런 아들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 본능적으로 따라 나서려 했지만 신 황귀비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그만 두세요. 아이로 남고 싶지 않아 하는 겁니다. 자기 생각과 판단이 생겼다는 건 오히려 좋은 일입니다. 걱정 마세요. 스스로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뿐이에요. 이 정도도 감당하지 못한다면 그다음에 하려는 일은 애초에 마음에서 접는 게 맞겠지요.”열다섯 째 황자가 품고 있는 생각을 운 유모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그 말을 듣자 오히려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그녀는 그동안 아들에게 단 한 번도 자리를 다투는 욕심을 품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아무 걱정 없이 서 가와 자신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유롭게 자라나는 황자로 살기를 바랐을 뿐이었다. 그러나 결국 그 생각 자체가 너무 순진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황실에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삶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서인경과 단은설은 결국 거래에 합의했다.그 이후로 서인경의 처지는 눈에 띄게 나아졌다. 황제가 없는 동안에는 최소한 끼니를 굶지 않아도 되었고 밀실 안에는 기름등이 몇 개 더 놓였다.단은설을 위한 약환을 만들기에는 이제야 여건이 갖춰진 셈이었다.서인경은 그 틈을 타 손목에 채워진 쇠사슬을 풀어달라고 요청했다.“약을 갈아내는 건 힘이 많이 드는 일이야. 이걸 찬 채로는 너무 느려.”단은설은 반신반의한 얼굴이었다.“그 틈을 타 도망칠 생각은 아니겠지? 헛된 꿈은 꾸지 마!”서인경은 어이가 없다는 듯 숨을 내쉬었다.“네 처소를 나간다 해도 후궁을 벗어날 수는 없어. 정 걱정된다면 풀지 않아도 돼. 다만 보시다시피 손목이 다 까져서 조금만 일해도 오래 쉬어야 해. 언제 약이 완성될지는 장담 못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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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4화

서인경은 비록 고대 장신구의 세부 종류에는 밝지 않았지만 손에 쥔 이것이 상질의 비취라는 사실만큼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색은 선명하면서도 탁함이 없었고 결은 곱고 윤택해 손바닥에 닿는 감촉이 부드러웠다. 초승달 모양의 가장자리는 매끄럽게 다듬어져 있어 쥐었을 때 손에 꼭 맞아떨어졌다.옥패 한가운데에는 문양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포효하며 달려드는 호랑이의 형상이었다.후궁의 여인들이 옥을 몸에 지닐 때는 대개 꽃이나 풀, 새나 물고기 같은 무늬를 택한다. 호랑이를 달고 다니는 여인은 없었다.이건…서인경의 머릿속에 번뜩이는 기억 하나가 스쳤다. 그녀는 예전에 조부의 서재에서 이 옥패의 문양과 매우 흡사한 물건을 본 적이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구리로 만들어졌고 그 위에 ‘서’ 자가 새겨져 있었다는 점뿐이었다.서가군을 움직일 수 있는 호부였다. 서인경은 손에 든 옥패를 내려다보았다.설마, 이것도 호부인가?만약 그렇다면 이것은 어떤 군을 움직이는 호부란 말인가?전생과 현생의 기억을 모두 더해도 진국에 이런 호부가 더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진국의 군권은 크게 두 갈래였다. 하나는 호부에 따르는 군대, 다른 하나는 사람에게 충성하는 군대였다.전자는 황제의 병권이다. 호부는 순금으로 만들어졌으며 황권의 절대성을 상징한다.이 호부는 언제나 황제의 손에 있었고 출정할 때 황제가 대장군을 임명하면 그에게 조병과 지휘의 권한이 주어진다. 하지만 장수가 밖에서 변심의 기미를 보일 경우, 황제는 호부 하나로 즉시 그 직을 파할 수 있었다.이 군대는 오직 호부를 가진 자에게만 충성한다. 호부가 탈취되거나 황위가 뒤바뀌는 순간, 그들은 즉시 칼끝을 돌린다.그래서 호부는 역대 황제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신물이었다. 가장 은밀하고 안전한 곳에 보관되며 대장군을 책봉할 때에만 잠시 세상에 드러났다.또 하나는 예전의 서가군이었다.서 가에 호부가 있기는 했으나 서가군은 오직 서 가 사람의 명만 들었다. 호부가 다른 이의 손에 들어가도 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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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5화

황제는 잠시 생각하다가 젓가락을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아직도 오늘 일로 화가 풀리지 않았느냐?”단은설은 눈길을 내리깔았다.“감히 그러지 않습니다.”말은 그렇게 했지만 끝내 황제와 시선을 마주치지는 않았다. 그러자 그는 단은설의 손을 잡아당겨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혔다. 눈치 빠른 태감은 곧장 뜻을 알아차리고 시중들던 궁인들을 이끌고 물러났다.식전에는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황제의 목소리에는 달래는 기색이 짙게 묻어 있었다.“짐은 전조에 약점을 잡힐 수 없다. 짐이 방탕하여 정사를 돌보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면 전조 대신들은 짐을 직접 공격하지는 않겠지만 그 화살을 너에게로 돌릴 것이다. 그렇다면 본보기를 삼아 너를 치겠지. 그때는 짐도 널 지켜줄 수 없다. 이번 일은 네가 떠안아야 했다. 짐이 꾸짖고 황후가 벌을 내린 것도 다 전조의 입을 막기 위함이다. 그래야 그들이 더 이상 떠들지 않을 테니까. 사랑하는 비여, 짐의 고심을 이해하겠느냐.”황제는 좀처럼 보기 드물게 말을 낮추었다. 그 말들은 마치 단은설을 보호하기 위한 듯 정당해 보였고 쉽게 반박할 수 없었다.단은설은 속으로 냉소를 삼키며 한발 물러섰다.“이해합니다. 신첩이 폐하의 총애를 받는 몸이니 폐하의 근심을 나누는 것이 당연하지요. 신첩이 조금 억울함을 당하는 건 대수롭지 않습니다. 다만 신첩은 분명 무고했습니다.”황제는 이미 준비해 둔 듯 오른편에 놓인 함을 열었다.“이번에 네가 억울했다는 것을 짐도 안다. 그러니 이것을 너에게 내리겠다. 짐이 너에게 진 빚을 대신하는 셈이다. 마음에 드느냐?”단은설은 고개를 돌려 보았다. 그 안에는 희귀한 자옥 비취 비녀 하나가 들어 있었다.이는 금수 대장공주가 이번에 요동에서 돌아오며 진국에 바친 예물이었다. 천금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단 세 자루뿐이었다. 그것은 태황태후와 황후가 하나씩 나눠 가졌고 마지막 한 자루를 두고 후궁들은 모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그랬던 비취가 오늘은 그녀에게 온 것이다.황제가 이렇게 보상과 회유의 뜻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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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6화

연기준은 정말 눈이 멀어도 단단히 멀었다. 그녀를 버리고 서인경 같은 냉정하고 무정한 여자를 택하다니. 지금의 몰락은 그에게 내려진 응보였다.그러나 단은설은 그 남자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조금의 통쾌함도 느끼지 못했다. 가슴속은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었고 억눌린 분노와 답답함에 숨이 막혔다.서인경이 손에 쥔 그것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면 황제 또한 그렇게까지 잔혹하게 연기준을 제거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서인경만 없었더라면 상왕비는 자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에게 몸을 의탁하며 자신의 피를 대가로 한때의 지위를 얻는 일도 없었을 테고 연기준 역시 죽지 않았겠지.결국 모든 화근은 서인경이었다.황제는 단은설의 속내를 알지 못했다. 다만 서인경이 한때 화이를 요구했던 일만은 알고 있었다. 최근 들어 황제는 자신의 몸이 점점 허약해진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단은설의 피가 주는 효험은 이제 눈에 띄게 옅어지고 있었다.“짐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겠다. 이틀만 더 주지. 그 안에 상왕비의 입을 열게 만들 수 있다면 짐은 다시 단 가에 황상의 자리를 내리겠다. 예전처럼 단 가를 받들어 주마.”그 말에 단은설의 마음이 흔들렸다. 전조에 단 가의 뒷받침이 있다면 지금처럼 고립될 일은 없을 터였다.잠시 침묵한 뒤, 황제는 결심하듯 말을 이었다.“숨만 붙어 있으면 된다. 그 외에는 네가 어떻게 하든 상관하지 않겠다.”그 허락을 받자 단은설의 입가에 미묘한 미소가 떠올랐다.“폐하께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으니 신첩은 반드시 그녀의 입을 열게 하겠습니다.”황제는 자신이 상왕의 잔여 세력을 완전히 장악했다고 여겼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궁 밖에서 전해진 소식은 그의 예상을 산산이 깨뜨렸다.맹은영이 새로 마련된 상왕부를 찾아가 대놓고 난리를 피웠고 유가영의 뱃속 아이가 연기준의 혈육이 아니라는 의혹을 제기했다는 것이었다.전갈을 올린 내시는 바닥에 엎드린 채, 목소리를 떨었다.“맹 아가씨께서 말씀하시길, 이는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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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7화

서인경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 나는 장생불사를 모른다고. 네가 일부러 폐하께 내가 화사독을 풀 수 있다고 말한 것 아니었어? 상왕비 자리에 오르지 못한 걸 마음에 품고 나와 연기준에게 앙심을 품은 탓에 일부러 그런 말을 흘려 황제로 하여금 상왕부를 치게 만든 거잖아. 다른 남자를 위해 폐하를 이용한 일인데 이 사실을 폐하께서 알게 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단은설의 표정이 미묘하게 흔들렸다.“헛소리하지 마. 네가 스스로 재주를 숨기지 못한 걸 왜 내 탓으로 돌리는 거야?”서인경은 코웃음을 쳤다. 몇 숟갈 남지 않은 밥을 서둘러 입에 넣고는 그릇을 단은설 앞으로 밀어놓았다. 그녀의 입가에는 무심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가두고 싶으면 가둬. 없는 데 나보고 뭐 어쩌라는 건데? 날 죽인다고 해서 내가 뭘 만들어낼 수는 없어. 난 어차피 기댈 곳 하나 없는 몸이야. 생사는 하늘에 맡겼지. 다만 폐하의 몸이 과연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그리고 네 피가 언제까지 쓸모가 있을지는 모르겠네.”단은설의 얼굴빛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녀는 성큼 다가와 서인경의 옷깃을 움켜쥐었다.“너, 뭘 알고 있는 거지?”서인경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알아야 할 것도, 알지 말아야 할 것도 다 알고 있어. 폐하의 몸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멀쩡하지 않아. 언젠가 정말로 그분이 쓰러지고 진상이 드러나는 날엔, 태황태후와 황후께서 절대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땐 황자를 낳기는커녕 목숨을 부지하는 것도 힘들 거야. 설령 폐하께서 조금 더 버틴다 해도 지금 네 몸으로 도대체 얼마나 더 피를 내줄 수 있겠어? 예전에 친구였던 정을 생각해서 말해주는 거야. 자신을 희생해 남을 살리는 짓은 하지 마. 토사구팽 당하는 수가 있어. 그런 일, 폐하께서 한두 번 저질렀던 것도 아니잖아.”단은설이 가장 두려워하던 말이 서인경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녀는 순간 사지가 저릿해지는 느낌을 받았다.전날 어서재에서 벌어진 일이 떠올랐다. 그때 황제는 얼마나 손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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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8화

“이제 상왕은 세상에 없고 세자 또한 함께 떠났다. 짐과 상왕은 친형제였으니 짐의 피를 대조하는 것도 다르지 않다.”황제가 이렇게 쉽게 받아들이자 오히려 맹국공의 마음에 의구심이 스며들었다. 그는 황제가 그동안 그 아이가 상왕의 혈육이라며 그렇게 장담했으니 대신들과 몇 차례는 실랑이를 벌일 줄로 여겼다.아래에 서 있던 대신들 또한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어딘가 석연치 않았다. 처음 유가영의 뱃속 아이를 인정한 이는 태황태후였고 그녀를 궁으로 들여 보살피게 한 이는 황후였으며 새 상왕부에 후한 은전을 내린 이는 바로 황제였다.황실의 최고 권력자 셋이 모두 나섰는데 그동안 그 아이의 혈통을 의심하는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누군가 한마디 꺼내자 황제는 별다른 망설임도 없이 곧장 받아들였다.게다가 친자 간의 피를 섞어 확인한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백부와 조카 사이에서 피를 대조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그러나 황제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상왕이 이미 세상을 떠난 이상 그 아이의 신분을 확인하려면 상왕과 가장 가까운 혈연과 대조하는 수밖에 없었다.무장들은 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어딘가 이상했지만 무엇이 문제인지 딱 집어 말할 수는 없었다. 그제야 모두들 새 상왕부를 성급히 두둔했던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황제 역시 그 미묘한 동요를 알아차렸고 마음이 점점 불쾌해졌다. 연기준의 죽음은 너무도 갑작스러웠고 그는 아직 이 무장들의 마음을 완전히 거두지 못한 상태였다. 이 상황에서 상왕의 유일한 혈맥마저 사라진다면 무장들이 우두머리를 잃은 채 황제에게 등을 돌릴지도 모른다.황제는 시선을 내려 맹국공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노기가 서려 있었다.“맹국공, 그대는 맹 가의 여식을 단속해야 할 것이다. 황실의 혈통이 걸린 문제라면 마땅히 신중해야 한다. 사사로이 짐이나 태황태후를 찾아올 수는 있어도 상왕부로 찾아가 난동을 부려 군심을 흔드는 것은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이지. 상왕비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그 여인의 말은 확인할 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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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9화

맹국공부가 대체 얼마나 대단하다고.황제가 만약 맹국공부가 상왕부의 편에 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상왕부를 지키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맹국공부마저 함께 끌려 들어갈지도 모른다.그는 본래부터 마음속에 의심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대전에서 보인 황제의 반응을 보니 황제는 그 아이의 혈통을 너무도 확신하고 있었고 조금도 어긋날까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그 모습을 보고서야 맹국공은 오히려 서인경의 말을 더 믿게 되었다.맹국공은 얼굴을 굳힌 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 그를 불렀다.“맹국공.”고개를 돌리니 몇 명의 무장이 서 있었다. 그중 한 명인 유 장군이 두 손을 모아 예를 올렸다.“맹 아가씨께서 의리를 지켜 나서 주지 않으셨다면 저희는 아직도 아무것도 모른 채 속고 있었을 겁니다.”“그렇습니다. 저희는 모두 왕야를 따라 수년을 함께 싸운 사람들입니다. 한때 왕야의 자손을 평생 지켜 나라를 수호하겠다고 맹세까지 했습니다. 헌데 잘못된 이를 지키고 있었다면 훗날 저승에 가서 왕야를 뵐 면목이 없었을 겁니다.”맹국공은 표정을 가라앉혔다.“과찬이다. 황실의 혈통을 혼동하는 일은 중죄지. 상왕은 나라를 지킨 공신이니 소인배들이 그의 명성을 더럽히도록 둘 수는 없다. 이 일은 내 딸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말끝을 흐리자 유 장군이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다만… 이 일로 맹 아가씨께서 큰 곤욕을 치르셨습니다. 폐하께서야 흔쾌히 허락하셨지만 맹 아가씨께 내린 처분을 보면 폐하께서도 마음이 편치 않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맹국공께서는 폐하의 속내를 아십니까? 폐하께서는 정말로 그 아이의 혈통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으셨던 걸까요? 저희는 상왕부의 그 화재가 어딘가 수상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맹국공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수상하다니? 무슨 말이냐?”유 장군은 주변을 살펴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 한 걸음 다가와 목소리를 낮췄다.“상왕부는 경비가 삼엄했고 호위들 또한 모두 무예가 뛰어납니다. 헌데 불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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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0화

“설마 우리 왕야께서 이렇게 허망하게 죽은 겁니까? 진국에 서가군과 왕야께서 계시던 시절, 저희가 언제 이런 수모를 당해 본 적이 있습니까? 이건 정말… 너무도 치욕스럽습니다.”다른 한 무장은 얼굴 가득 비분함을 띠었지만 끝내 그것을 길게 토해 내지 못하고 깊은 탄식으로 삼켰다.“군대가 강해야 나라가 강해지는 법이지요. 두고 봅시다. 상왕도, 서가군도 사라진 지금, 이건 시작에 불과합니다. 더 큰 치욕이 아직 남아 있어요.”“들리는 말로는, 이번에 요동과의 화친 협상에서 요동이 진국의 두 성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답니다. 대신 요동의 두 금광을 주겠다고 했다지요. 헌데 그 금광들, 이미 다 파먹은 빈 껍데기라는 걸 우리가 모를 줄 아는 겁니까? 대놓고 속이려는 수작이죠. 예부의 고 대인께서 그 자리에서 분을 못 이기고 상을 뒤엎었다더군요. 헌데 폐하께서는 요동을 질책하기는커녕 오히려 고 대인의 관직을 파면해 버렸습니다.”“정말입니까?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데요.”“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폐하께서 소문이 퍼질까 두려워 예부 사람들 입을 전부 막았다고 합니다. 어제 제 아들과 고 대인의 장남이 술자리를 가졌는데 그분께서 술김에 말을 흘렸다고 하더군요. 그때서야 저도 일부를 알게 되었습니다.”“금수 대장공주께서 이십 년이나 친정을 찾지 않다가 하필 서가군이 몰락하고 왕야께서 야랑국에 사신으로 떠난 시점에 움직인 것부터가 수상하다고 느꼈습니다. 헌데 두 나라의 평화를 도모하기는커녕, 친정의 이익을 노리고 나섰다니… 참으로 가당치도 않은 일입니다.”“성조 선제께서 하늘에서 보고 계신다면, 관 뚜껑이 들썩일 노릇이겠지요.”“하아…”“하아…”두 무장은 연달아 한숨을 내쉬며 자리를 떠났다.그들이 떠난 뒤, 가산 뒤편에서 열다섯 째 황자가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었다. 멀어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의 눈빛에는 생각이 깊게 잠겨 있었다.어서재 안에서는 예정임이 하루아침에 감옥 신세에서 벗어나 귀빈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의 말투는 거리낌이 없고 태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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