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나는 그의 형의 신부가 되었다의 모든 챕터: 챕터 971 - 챕터 980

1013 챕터

제971화

천재가 한 번 손을 대면, 그건 다른 차원의 결과가 나오는 일이었다.유리는 완패했다. 무대 위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이람을 바라보다가, 끝내 눈물을 흘렸다. 천재 앞에서는 아무리 애를 써도 쉽게 자존심을 세울 수가 없었다.사람들 맨 뒤쪽에는 내내 한 줄기 시선이 머물러 있었다. 부드럽고도 깊게 집중된 시선이었다. 하준은 무대 위의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깊은 눈에는 감탄과 자부심이 가득했다.이람이 마지막 기능 소개까지 마쳤을 때, 현장은 터질 듯한 박수로 가득 찼다. 이람은 맨 마지막 줄에 선 남자와 멀리서 눈을 맞췄다. 둘만의 방식으로 이 순간을 축하하고, 또 기억하고 있었다.하준은 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 말했다.“축하해, 내 사랑.”이람이 이끈 기술팀 사람들은 하나둘 울음을 터뜨렸다. 서로 끌어안고 울었다. 꼬박 일 년 동안 쏟아부은 고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그제야 몸으로 실감하는 듯했다.민서는 일에 몰두하는 이람에게 완전히 넋이 나가 있었다. 일할 때 드러나는 이람의 재능은 주변 사람들을 압도했다. 민서는 끝내 제자리에서 펄쩍 뛰며 소리까지 질렀다....한편, 맨 뒷자리 구석에는 제헌도 서 있었다. 스포트라이트 한가운데 선 이람을 바라보는 제헌의 가슴은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팠다. 저 여자가 바로 자신의 오만과 무심함 때문에 놓쳐 버린 사람이었다. 그 후회와 고통은 어떤 말로도 다 설명할 수 없었다.아마 상담 치료를 받는 데다, 불안과 흥분을 가라앉히는 약도 먹고 있었고, 부모의 사과와 인정, 곁에 있어 주는 시간까지 겹친 덕분일 것이다. 지금 제헌은 예전처럼 모든 걸 부숴 버리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이지는 않았다.그 대신 마음 한가운데가 텅 비어 있었다.지후도 현장에 같이 와 있었다. 지후는 제헌이 처음으로 제대로 마음을 준 여자가 가장 빛나는 시간을 맞는 모습을 눈에 담았다. 이람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잘됐다는 마음도 있었다. 물론 제헌이 괜히 흔들려서 무슨 짓이라도 할까 봐 옆에서 지켜보는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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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2화

이람이 글로벌 AI 테크 행사에 참석할 때, 이건도 함께 갔다. 누나를 응원하기 위해서였다.새벽 한 시까지 이어진 축하 연회가 끝난 뒤, 이건은 하준이 이람을 데리고 호텔로 돌아가는 것까지 제 눈으로 확인하자 비로소 안심했다. 그제야 곧바로 공항으로 향했다.이동하는 길에 이람에게서 메시지가 왔다.[도착하면 꼭 연락해.]이건은 미간을 찌푸렸다. 올해 스물두 살이나 됐는데, 세 살배기도 아니고 어디 갈 때마다 도착했다고 보고해야 하나 싶었다.이건은 이람에게 답장하지 않았다.비행기에 오르기 직전, 전화가 울렸다. 하준이었다.이건의 미간이 더 깊어졌다. 잠깐 망설이다가 결국 전화받았다.이건은 먼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준은 쓸데없는 말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왔다.[누나가 보낸 메시지에는 바로 답해. 안 그러면 누나가 걱정하잖아.]이건은 비웃듯 말했다.“나랑 누나는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랐어. 누나랑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까지 서 대표가 끼어들 일은 아니지.”[네가 누나 메시지에 답 안 하면, 내가 너한테 전화할 거야. 나랑 얘기하는 게 편해, 누나랑 얘기하는 게 편해?]하준은 한 번도 이건에게 화를 낸 적은 없었다. 그런데도 차분하게 눌러앉는 말투와 기세만으로 이건을 한 수 접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이건의 표정은 더없이 험악해졌다. 탁!그대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탑승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유럽 출장이라 장거리 비행이 예정돼 있었다. 결국 이건은 이람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알았어.]그러고도 참지 못하고 한마디를 더 붙였다.[우리 일은 서 대표한테 말하지 마.]다른 남자가 자기 누나를 데려간 것만으로도 못마땅한데, 이람이 자기 얘기까지 하준에게 전했다면 더 짜증 날 수밖에 없었다.‘대체 누가 누구 편이야.’얼마 지나지 않아 이람의 답장이 왔다.[무슨 얘기? 난 서 대표한테 아무 말도 안 했어.]이건은 입을 다물었다.[서 대표가 너한테 뭐라고 했는데?][아무 말도 아니야. 됐고, 도착하면 연락할게. 나 애 취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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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3화

여자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비켜 줄래?”그제야 여자가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옆으로 물러섰다.“죄, 죄송해요!”‘아, 어떡해... 저런 미남이 남자를 좋아한다니. 너무 슬프잖아!’이건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걸어갔다.이번 출장은 이건에게 무척 중요했다. 회사가 개발한 대형 게임이 곧 전 세계 동시 출시를 앞두고 있었고, 그 전에 글로벌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먼저 공개될 예정이었다. 이미 수많은 게임 팬들이 이건과 수범의 회사가 만든 게임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이번 행사에는 직접 시연해 보려는 사람도 많이 몰릴 예정이라, 회사 전체가 예민할 정도로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있었다.수범과 팀원들은 이건보다 먼저 행사장에 도착해 있었다.이건이 수범과 팀원들을 찾아가는 길에는, 현지에서 붙은 운전기사가 길을 잘못 들어 엉뚱한 곳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시간이 더 걸렸다.이건의 얼굴에 짜증이 가득했다. 게다가 이쪽은 택시를 다시 잡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결국 이건은 온몸에 예술 하는 사람 특유의 분위기가 묻어나는 여자 한 명과 같이 택시에 합승하게 됐다.택시에서 내릴 때, 이건은 서류 한 부를 떨어뜨렸다. 그 여자가 그걸 발견하고는 운전기사에게 다시 따라가 달라고 해서 이건에게 전해줬다.이건은 그 여자를 한 번 보고 짧게 말했다.“고마워요.”그렇게 해서 겨우 수범과 합류했다.“야, 너 굼벵이냐? 왜 이렇게 늦어!”수범이 참지 못하고 바로 빈정댔다.이건은 코웃음을 쳤다.“네가 차라도 보내 줬으면 이렇게 오래 안 돌았어.”둘은 워낙 오래된 친구라 이렇게 서로 한마디씩 쏘아붙이는 게 익숙했다.다만 이번 출장은 회사에 너무 중요한 일정이었다. 수범은 더 이상 이건과 말씨름을 하지 않았다. 대신 들뜬 기색과 긴장한 기색이 뒤섞인 채 말했다.“이틀 뒤면 시작인데, 그날 우리 부스에 시연하러 오는 사람 한 명도 없으면 어떡하냐.”이건과 수범의 게임 회사 무한차원이 개발한 ‘산해’는 이미 한참 전부터 소식이 알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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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4화

제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수범은 처음에는 이건 이 자식이 워낙 곧고 고집 센 성격이라 또 여자 쪽을 열받게 했겠거니 싶어서 조금 고소해한 적도 있었다.그런데 제은이 어떤 성격인지 제대로 알고 난 뒤부터, 수범은 더 이상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건의 편을 들게 됐다. 제발 제은이 이건한테서 좀 멀어졌으면 싶었다.그래도 수범이 제은을 처음 봤을 때, 그것도 또래 여자애로 마주했을 때, 외모만 놓고 보면 정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제은은 이목구비가 또렷한 달걀형 얼굴, 어딘가 응석받이 같은 결도 있고 서늘한 기운도 있었고, 무엇보다 너무 예뻤다. 저렇게까지 예쁜 여자는 처음 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특히 제은은 세상을 다 자기 발밑에 두고 내려다보듯, 타고난 오만이 밴 눈빛이 강렬했다. 온몸에서 금지옥엽으로 자란 사람 특유의 기세가 흘렀다.수범은 제은 앞에 서면 자기가 거의 납작 엎드려야 하는 양아치쯤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게다가 제은 집안은 배경도 너무 셌다. 신분 차이가 너무 컸다. 수범으로서는 그저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다.객관적으로 봐도, 수범이나 이건이 정면으로 상대할 수 없는 존재였다.그런데 그런 제은이 먼저 이건을 건드렸다. 사람까지 붙여서 자기 절친을 패놓고도 분이 안 풀렸는지 또 찾아와 시비를 걸었다. 그걸 보고 있으니 수범은 진심으로 간담이 서늘해졌다.수범은 제은이 혹시라도 자기들 회사를 건드릴까 봐 그게 제일 무서웠다. 온갖 인허가나 행정 절차에서 발목을 잡을 수도 있었고, 제은 쪽에는 대관 업무 파트도 있었다. 게다가 예전에 제헌이 하필이면 경쟁사, 그러니까 그 개자식 하명 쪽 회사에 투자금을 넣은 적도 있었다. 만약 제은까지 하명네 회사에 힘을 실어 주면, 자기들은 정말 다시 큰 싸움을 해야 했다.다행히 시간이 꽤 흐르는 동안, 제은은 어느 정도 마음을 접은 듯 보였다. 적어도 자기들 쪽에 대놓고 손을 대지는 않았다.그래서 수범도 조금은 숨통이 트였다. 하루하루 마음속으로만 빌었다.‘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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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5화

“이건아, 너 진짜 그렇게 해야 해. 우리 회사 생각도 좀 해. 우리 회사는 여기서 한 번 휘청이면 끝장이야. 너는 제은이 절대 건드리면 안 돼. 그냥 우리가 입 다물고 있는 수밖에 없어!”이건은 술을 한 모금 넘겼다. 날카로운 목울대가 위아래로 길게 움직였다. 긴 검지와 엄지가 유리잔 가장자리를 느슨하게 집고 있었다.“강제은 같은 인간은 보통 사람 기준으로 설명이 안 돼. 내가 가만히 서서 숨만 쉬어도, 강제은 눈에는 그게 잘못이야.”수범은 입꼬리를 한 번 씰룩였다. 말문이 막힌 얼굴로 잔을 들어 이건의 잔에 부딪쳤다.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한숨처럼 말했다.“마셔. 재수 없는 기운 좀 털어 버리자.”이건은 잔을 들어 단숨에 비웠다.이건도 정말 그 재수 없는 기운을 털어내고 싶었다.수범은 원래도 겁이 많은 편이었지만, 제은 앞에서는 유독 더 몸이 굳었다. 그래서 잔 하나를 비우자마자 곧장 이건을 끌고 일어났다. 더 늦기 전에 호텔로 들어가 얌전히 있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그런데 그 뒤로 수범은 그 선택을 몹시 후회하게 됐다.운전기사가 호텔로 차를 몰고 돌아가던 길이었다. 사람이 드문 샛길을 지나는데, 여자 한 명이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달려가고 있었다.이건과 수범은 성격은 달라도 둘 다 위험한 상황을 지나치지 못하는 부류였다.예전에 할머니 한 분이 에스컬레이터를 타다가 뒤로 넘어질 뻔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이건은 거의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손으로 난간을 짚고 옆쪽 역방향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몸을 넘겨서, 그대로 할머니를 받아 냈다.너무 급하게 몸을 던진 탓에 이건 손바닥에 붉은 상처가 오래 남았었다.그러니 지금 같은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늘 먼저 뛰어드는 쪽도 이건이었다.하필 더 기막힌 건, 앞에서 도망치고 있는 그 여자가 낮에 이건과 같은 택시를 탔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이었다. 떨어진 서류를 챙겨서 굳이 따라와 건네줬던, 그 예술가 같은 분위기의 여자였다.이건은 곧장 운전기사에게 말했다.“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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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6화

수범은 진짜로 머릿속이 하얘졌다. 일부러 일찍 자리를 뜬 것도 제은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원래대로라면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한밤중에 어떤 여자가 누군가에게 쫓기며 달아나는 걸 목격했다. 그걸 보고도 못 본 척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따라붙은 건데, 정작 사람을 쫓고 있는 쪽이 제은이었다. 재벌가 아가씨, 바로 강제은.정말 복권이라도 당첨된 기분이었다.대체 무슨 원한이 얼마나 깊어야 F국까지 쫓아와서 밤중에 저렇게 사람을 패는지 알 수가 없었다.그저 제은이 지독하게 뒤끝 있는 사람이라는 것만은 더 확실해졌다. 한 번 제은에게 찍히면, 쉽게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수범은 불안했다. 고작 이틀 뒤면 게임 시연회가 열렸다. 회사가 처음으로 게임을 공식적으로 선보이는 자리였고, 그날은 무척 바쁠 게 분명했다. 언론도 많이 몰려나와 취재할 예정이었다. 그런 때에 무슨 사고도 나면 안 됐다. 하필 지금 같은 때, 수범이 가장 엮이고 싶지 않은 상대가 바로 제은이었다.수범은 곧장 이건 앞으로 나섰다. 키는 185, 이건보다 3센티 작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가릴 수 있었다. 수범은 그렇게 울며 겨자 먹기로 이건을 막아선 채 제은에게 말했다.“미안해, 미안해. 다 오해야. 강제은 씨, 우리 그냥 지나가던 길이었어. 방해 안 할게. 하던 일 계속해.”말을 끝낸 수범은 바로 이건을 끌고 가려고 했다. 그런데 수범이 몸을 돌렸는데도 이건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수범은 미친 듯이 눈짓을 보냈다. 목소리도 바늘 끝만 하게 낮췄다.“야, 가자. 왜 서 있어? 아까 그렇게 하기로 했잖아.”이건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바로 입을 열 기색도 없었다.바닥에 쓰러져 있던 연나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외쳤다.“살려주세요! 강제은이 저를 죽이려고 해요! 살려주세요!”연나는 하준과 연훈에게 국외로 내보내졌다. 3년 동안은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다. 그녀는 예술 계열을 전공했으니 F국에 와서 공부를 이어 가는 모양새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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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7화

연나를 다시 때리고 나서도 제은은 이건을 향해 턱을 살짝 치켜들었다. ‘그래서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하고 대놓고 묻는 얼굴이었다.연나는 비명을 질렀다.“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너무 날카롭고 새된 목소리였다. 제은은 지금 이건 쪽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아직 연나를 향한 분노가 다 가라앉지 않았다.그래도 연나는 지금 제은의 손안에 있었다.제은은 화에 사로잡혀 이성을 놓친 상태가 아니었다. 오히려 아주 즐겁게, 밀린 분노를 하나씩 해소하고 있었다.“부연나, 너도 진짜 대단하긴 해. 내 얼굴을 피범벅으로 만든 사람은 네가 처음이거든. 물론 먼저 때린 건 나였지. 그래도 네가 나한테 그렇게까지 하면 안 되는 거 아니야?”어쩔 수 없었다. 제은은 원래 그런 인간이었다. 눈에 거슬리거나, 제은을 건드린 사람은 반드시 손을 봐 줘야 성미가 풀렸다. 그런데 상대가 감히 반격까지 했다면 제은은 더 신이 났다.이건은 예전에 제은에게 얻어맞았을 때, 이미 제은의 최악으로 비뚤어진 성정을 똑똑히 본 적이 있었다.이건은 이를 악물고 앞으로 걸어갔다.제은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경호원이 이미 이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표정 하나 없는 얼굴로 이건을 내려다봤다. 사냥감을 훑듯 차갑게 보는 눈이었다. 경고도 아주 담백했다.“움직이지 마.”이건도 키 188이면 작은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경호원의 체격이나 몸에서 풍기는 살기에는 도저히 미치지 못했다.지금 이건이 움직이면, 제은 속에 타오르는 불에 기름만 들이붓는 꼴이었다.제은은 그대로 연나를 몇 번 더 세게 걷어찼다.이건은 옆에 늘어뜨린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고, 안색은 갈수록 나빠졌다.수범은 제3자로서 상황이 너무 잘 보였다. 제은은 대놓고 이건을 도발하고 있었다. 이건은 사람을 구하겠다는 마음으로 뛰어든 건데, 앞에는 전투력 넘치는 경호원이 버티고 서 있었다. 이건과 수범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수범은 그저 이건의 팔을 붙들 수밖에 없었다.이건은 분노를 억누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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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8화

이건은 제은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잠깐 말을 잇지 못한 채 멈칫했다가, 미간을 깊게 좁혔다.“너 같은 인간과는 애초에 말이 안 통해.”제은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그러니까 네 말은 내 머리에 든 게 없어서 대화가 안 된다는 거지?”수범은 다급하게 이건에게 눈짓을 보냈다.그런데 이건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받아쳤다.“잘 알고 있네.”제은은 진짜로 열이 올랐다. 표정이 몇 번이나 바뀌었다.수범은 제은이 당장 경호원을 시켜 자기들이든 이건이든 여기서 두들겨 패게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저 잔뜩 비뚤어진 아가씨는 갑자기 웃었다.“됐다. 오늘은 기분 좋으니까 너희랑 안 엮일래.”제은은 경호원의 이름을 불렀다.“비켜주세요.”경호원은 바로 몸을 물려 제은 뒤로 물러섰다.연나는 두 사람 사이에 있는 길 한복판에 그대로 쓰러져 있었다.밤은 깊었고, 가로등 불빛은 흐렸다. 이건의 얼굴도, 제은의 얼굴도 한쪽만 빛을 받고 나머지 반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둘 다 이목구비가 선명한 얼굴이라 명암이 더 또렷했다.찬바람이 불어와 제은의 머리카락을 흩뜨렸다.“난 이제 얘 안 건드려. 네가 데리고 가.”이건은 제은을 한 번 훑어봤다.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눈이었다. 그래도 곧 연나 쪽으로 걸어갔다. 바닥에 쓰러진 여자를 잡아 일으켜 세운 뒤, 한쪽 팔을 붙들어 몸을 받쳐 주며 물었다.“걸을 수 있어요?”연나는 온몸이 다 아팠다. 발끝에 힘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무게중심을 이건에게 기대어 걸었다.“못... 못 걷겠어요...”연나는 거의 숨을 몰아쉬듯 말했다.“고, 고마워요... 빨리... 빨리 절 좀 데리고 가주세요...”연나는 정말로 제은에게 혼이 빠질 만큼 질려 있었다.이건은 수범을 돌아봤다.“병원으로 가자.”그 말을 끝내고도 이건은 제은 쪽을 다시 쳐다보지도 않고, 완전히 없는 사람처럼 무시했다.수범은 급히 다가와 연나의 반대쪽 팔을 붙잡았다. 그래도 돌아서기 전에는 제은에게 꾸벅 인사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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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9화

이건의 눈을 마주친 연나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 감정이 없어 보이던 이건의 눈이 갑자기 소름 끼칠 만큼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건이라는 사람 자체가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된 것 같았다. 축축하게 가라앉은 기운이 번져 나오는 듯했다. 달라진 건 오직 눈빛뿐인데도 그 변화가 너무 선명해서 연나의 온몸에 피가 식는 기분이 들었다.그렇게 3초쯤 이건에게 붙들려 있던 연나는 정신이 무너질 것 같아질 무렵에야 이건의 목소리를 들었다.“일단 병원부터 데려다줄게요.”이건은 직접 연나를 부축해 차에 태웠다.행동도, 손길도, 겉으로 보기에는 분명 남을 돕는 사람 같았다.그런데 눈만은 여전히 섬뜩할 만큼 차가웠다.연나는 그제야 깨달았다.‘조이건은 조이람보다 더 무서운 인간이야.’적어도 연나에게는 그랬다. 겉으로 보이던 모습과 전혀 다른 면이 드러났을 때 오는 이질감이 너무 견디기 힘들었다. 연나는 이런 부류의 사람을 한 번도 겪어 본 적이 없었다. 병원으로 가는 게 아니라 이건에게 납치당하는 것 같은 착각까지 들었다.연나의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올 것 같았다.“저, 저는...”이건이 연나를 봤다.“말하지 마세요.”연나는 그대로 입이 막혔다.젊고 잘생긴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없었다. 이건은 한 손으로 차 문 위를 짚고, 몸을 약간 굽혀 연나를 내려다봤다. 그러고는 연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낮게 말했다.“병원에는 데려다줄 거예요.”연나는 꼼짝도 못 했다.그 말을 마친 이건은 몸을 다시 세웠다. 이어 수범에게 반대편 차문으로 타라고 눈짓했다.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제은을 봤다. 얼굴에는 감정의 흔들림이 하나도 없었다.이건은 긴 팔을 뻗어 조수석 문을 열었다.그 짧은 동안에도 이건의 시선은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계속 제은과 눈을 맞춘 채, 팽팽하게 맞섰다. 소리 없는 대치였다.이건이 차에 올랐다.운전기사는 곧바로 차를 몰았다. 차는 빠르게 그 자리를 벗어났다.제은의 머릿속에 남은 건, 앞 유리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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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0화

이건은 제은을 전혀 겁내지 않는, 보기 드문 인간이었다. 제은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 이건 같은 인간만이, 제은을 저렇게까지 열받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 조이건이라는 이름은 하나의 대명사이자 밈처럼 굳어 버렸다.바로 그런 이유로, 이건은 비록 자기와 같은 무리 안에 속한 사람은 아니어도 이 바닥에서의 인지도만큼은 꽤 높았다.평소 같았으면 제은은 그런 놀림쯤이야 일일이 받아치지 않았을 것이다.그런데 오늘은 반응이 유난히 컸다. 당장 불이라도 뿜을 것처럼 날카롭게 쏘아붙였다.“닥쳐!”건민과 영미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곧장 표정을 고쳤다.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건민이 되물었다.“미친, 너 진짜 조이건 그 새끼 마주친 거야?”“영미야, 조이건이 여기서 뭐 하는지 당장 알아 와.”“알겠어.”영미는 바로 들고 있던 노트북을 켰다.건민은 예전에 직접 이건이 제헌에게 주먹을 날리는 걸 본 뒤로, 이건을 향한 적개심이 예전 같지는 않았다. 어디까지나 건민이 할 수 없는 일을 이건은 해냈으니까. 그래서 속으로는 꽤 대단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물론 제은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건민도 가만있지는 않고, 도와달라고 하면 나서긴 해야 했다. 건민은 기본적으로 게으른 편이라 몸 쓰는 걸 썩 좋아하지 않을 뿐이었다.그래도 긴 세월 쌓은 관계가 있었다. 건민은 언제나 제은의 편이었다. 제은이 뭘 하든 무조건 지지할 자신도 있었다.애초에 예전부터 건민은 이건의 그 건방진 태도가 정말 마음에 안 들었다. 그래서 제대로 판을 짜서 한번 꺾고 싶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때는 제은이 말렸다.지금에 와서는 제은도 아마 그때 손대지 않은 걸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이제는 서로의 입장과 관계가 얽혀 있어서 예전처럼 손쉽게 움직일 수도 없었다.영미는 이전에도 이건의 배경과 정보들을 이미 조사해 둔 적이 있었다. 거기에 이번 출장 일정은 회사 쪽 행사라 공개된 정보가 많았다. 그래서 금방 이건이 왜 이곳에 와 있는지, 무슨 일 때문에 온 건지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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