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나는 그의 형의 신부가 되었다의 모든 챕터: 챕터 981 - 챕터 990

1013 챕터

제981화

다음 날이 되자 모든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제은이 뭔가 일을 벌인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이건과 수범은 더는 제은의 일에 지나치게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팀원들과 함께 내내 전시장에 붙어 각종 기계를 손보고, 동선을 맞추고, 진행 순서를 다시 확인했다.이미 예고는 나갔고 여러 게임 크리에이터들이 사전 테스트도 마친 상태였지만, 이렇게 대중 앞에서 공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건도 수범도 조금은 긴장한 채, 내일 벌어질 수 있는 모든 변수를 머릿속에 넣고 사전에 점검했다. 어떻게든 완벽에 가깝게 해내고 싶었다.오후 4시가 되어서야 둘은 함께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갔다. 이건은 고개를 숙인 채 각종 메시지를 확인하면서 밥을 먹고 있었다.수범이 그 핸드폰을 빼앗아 갔다.“밥 먹는 데 집중해.”이건은 예전에 술을 마시다가 위출혈까지 겪은 적이 있었다. 젊다고 버틸 수는 있어도, 수범은 원래 잔소리가 많은 성격이라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준비는 거의 다 끝났잖아. 이제 내일만 기다리면 돼. 지금 이 몇 분으로 뭔가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이건은 애초에 수범 말을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줘.”이건은 무표정할 때면 시선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보통 사람들은 이건이 화가 났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꼭 그런 건 아니었다. 원래부터 그런 인상을 타고난 쪽에 가까웠다.수범은 핸드폰을 바로 등 뒤로 숨겼다.“밥부터 먹어.”그때 수범의 시야 끝에 누군가의 모습이 스쳤다. 표정이 확 달라진 수범은 곧장 시선을 거두고, 이건에게 눈짓을 보냈다.“강제은 왔어.”이건의 미간이 살짝 움직였다. 그래도 수범처럼 반응이 크지는 않았다. 이건은 테이블 위에 놓인 밥과 국, 반찬들을 내려다보며 계속 차분하게 식사를 이어 갔다.“신경 쓰지 말고 밥 먹어.”수범은 그 말에 심장이 조금 가라앉는 걸 느꼈다. 수범이 불안해서 허둥댈 때마다 이건은 늘 침착했다. 그 침착함은 수범의 마음까지 빠르게 진정시키곤 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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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2화

제은은 수범을 보며 머릿속으로 슬슬 그려 보고 있었다. 언젠가는 이건도 저렇게 자기 말에 고분고분 따르는 모습으로 바뀔 것을 기대했다.“그러게, 진짜 우연이다. 같이 밥 먹을까?”수범은 제은의 부드러운 표정을 한 번 보고, 여태껏 제은을 투명인간 취급하고 있는 이건을 한 번 더 봤다. 속은 마치 털실 뭉치를 쥐어뜯은 것처럼 어지러웠다.그래도 수범은 금세 반응했다. 제은이 먼저 말을 꺼냈는데, 수범이 거절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지금 제은의 태도도 겉보기엔 나쁘지 않았다. 여기서 거절하면 분위기가 너무 대놓고 틀어질 게 뻔했다. 수범은 그렇게까지 모양 빠지는 짓은 못 하는 사람이었다.“그럼, 당연히 되지. 어서 앉아.”수범은 곧바로 서빙 직원을 불러 메뉴를 다시 주문했다.제은은 아주 태연하게 이건을 마주 보고 앉았다. 앉은 뒤로는 줄곧 이건만 바라봤다.제은은 믿지 않았다. 이건이 끝까지 자기만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옅게 웃는 낯이었지만 공기는 팽팽했다.건민은 전에는 이런 상황이 꽤 귀찮다고 여겼는데, 지금은 제법 흥미진진했다. 제은이 이건 같은 고집 센 상대를 어떻게 꺾어 낼지 건민도 무척 궁금했다. 건민이 보기엔, 이건은 예전까지 제은이 건드리던 부류와 전혀 달랐다.건민은 놀이하듯 들뜬 기분으로 제은 옆에 앉았고, 영미도 건민을 따라 자리에 앉았다.수범은 서빙 직원에게 메뉴판을 받아 제은에게 건넸다.제은은 메뉴판을 펼쳐 대충 훑더니 열몇 가지 음식을 가볍게 주문했다.서빙 직원이 물러나자 제은은 이건을 흘끗 봤다. 이건은 이미 젓가락을 내려놓은 채 물을 마시고 있었다.“너무 많이 시킨 거 아니지?”제은이 수범에게 물었다.수범은 아는 게 많아도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아니었다.“먹고 싶은 거 있으면 그냥 시켜.”“하하, 그렇게까지 조심스러워할 필요 없어. 오늘은 내가 살게.”제은은 아주 통 크게 말했다.수범은 제은이 먹은 음식값을 계산하게 둘 리 없었다.“그럴 필요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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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3화

이건은 제은이 한참 동안 기세를 부리는 모습을 보고 있다가 시선을 거뒀다. 그 뒤 수범을 한 번 흘겨보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수범은 그 눈빛이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들었다. 곧장 핸드폰을 이건에게 건넸다.이건은 자기 핸드폰을 받아 들었다. 길고 반듯한 손가락이 기기를 감싸 쥔 채, 손끝으로 테이블을 가볍게 짚고 자리에서 일어섰다.수범의 시선도 이건의 움직임을 따라 올라갔다.“가자.”이건은 온몸이 옅고 차가운 기운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목소리도 담백하고 싸늘했다. 제은이 던진 온갖 시비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는 듯,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관심이 없었다.수범은 속으로 생각했다.‘내 친구 진짜 폼 잡는다. 근데 진짜 멋있네.’수범도 여기 남아서 수작 부리러 온 게 뻔한 재벌가 아가씨와 밥을 먹을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같은 부류도 아니고, 말을 섞어 봤자 통할 리도 없었다. 게다가 이 식사 자리는 핑계에 가까웠다. 남아 있으면 제은이 제멋대로 비웃고 긁어 대는 꼴만 더 봐야 했다. 그런 걸 누가 버티겠나 싶었다.수범은 맞서기는 어려워도 피하는 건 할 수 있었다.다행히 이건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딱히 마음이 불편해 보이지도 않았다. 수범은 바로 이건의 흐름에 맞춰 움직였다.자리에서 일어난 뒤, 제은과 건민, 영미를 향해 겉으로만 적당히 인사를 하고 먼저 가 보겠다고 말했다. 이어 서빙 직원을 불러 이 자리 계산을 하겠다고 했다.제은만큼 돈이 많지는 않아도, 겨우 밥 한 끼 값쯤은 수범에게도 부담이 아니었다.수범은 지갑까지 꺼냈다. 현금도 내놓으려는 참이었다.그때 눈앞으로 손 하나가 뻗어 나와 수범이 꺼낸 돈을 눌렀다.이건이 서빙 직원을 향해 차갑게 말했다.“한 테이블 아니에요.”수범은 놀라서 이건을 쳐다봤다.돈도 안 쓰겠다는 뜻이었다.건민은 주먹으로 입가를 괸 채 웃기 시작했다.이건은 진짜 멘탈이 셌다.온몸으로 제은 일행을 쓰레기 취급하는 것 같았다.같은 남자 입장에서 봐도, 건민은 이건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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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4화

제은은 식당 출구 쪽을 한 번 바라봤다.“일단 밥부터 먹자.”배를 채워야 머리도 돌아간다. 무엇보다 이건은 이람이라는 여신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었다. 그게 아니었으면 제은은 진작 이건을 끝장냈을 것이다. 제은은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이건이 제은 앞에서 한 번도 아니고 자꾸만 차가운 낯을 들이밀고, 아무 감정도 없는 듯 고개를 빳빳이 세운 채 제은을 없는 사람 취급하는 꼴을.이건을 한 번 마주칠 때마다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화가 자꾸만 눌리고 쌓였다. 정말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 재주가 있었다.제은의 성격이 더러운 건 맞았다. 그렇다고 이건의 성격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온몸에 가시를 바짝 세운 것 같은 저 인간이 회사를 여기까지 끌고 온 건, 아마 절친 수범이 바깥에서 온갖 굽실거림을 대신해 준 덕이 클 거라고 제은은 생각했다.제은은 반드시 이건에게 한 번은 제대로 된 대가를 치르게 할 생각이었다. 이제는 이건의 그 싸늘한 얼굴을 더 보고 있을 인내심이 거의 바닥났다.이건 얼굴에는 제은이 보고 싶어 하는 표정이 떠야 했다. 이를테면 분노라든가, 고통이라든가. 그래야 맞았다....다음 날, 이건과 수범은 하루 종일 정신없이 움직였다. 인터뷰도 여럿 소화했고, 많은 게임 유저들과 직접 부딪히며 반응을 살폈다. 평도 좋았다. 공개 이후 한동안은 이건과 수범 모두 바빠질 수밖에 없었다. 참석할 각종 자리도 늘어날 테고, 기술적인 허점도 다시 짚어야 했고, 부족한 부분을 계속 보완해야 했다.물론 저녁에는 동료들과 함께 뒤풀이 자리도 빠질 수 없었다.이건은 술을 조금 마셨다. 취할 정도는 아니었다. 중간에 화장실에 들렀다가, 다시 나오던 길에 머리가 둔하게 쑤셨다. 눈앞이 까맣게 꺼지더니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다시 눈을 떴을 때, 이건의 몸은 밧줄에 묶여 있었다. 손발은 저릿했고, 온몸이 차가웠다. 이건은 고개를 몇 번 흔든 끝에 겨우 눈을 제대로 떴다. 주위는 새까맸다.게다가 이건은 마치 쓰레기처럼 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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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5화

이건은 그곳을 빠져나오면서도 수범과 빠르게 통화하며 대응 방향을 맞춰 갔다. 얘기가 끝났을 때쯤, 이건은 호텔 정문 앞까지 걸어 나와 있었다.오늘 입고 있던 수트는 이미 구김이 잔뜩 가 있었다. 핸드폰을 내린 이건은 바닥에 쌓인 눈을 내려다봤다. 눈빛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제은이 이렇게까지 판을 짰다면, 자기 쪽은 이미 완전히 정리해 뒀을 게 뻔했다. 흔적 같은 건 남겨 두지 않았을 것이다. 이건이 누구한테 말해 봤자, 손에 쥔 증거가 없었다.제은은 또 모르는 척, 아무것도 아닌 척 넘어가는 데도 능했다. 막상 일을 크게 따지기 시작하면, 제은 쪽이 오히려 더 억울한 사람처럼 굴 가능성이 컸다.이건은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을 줬다. 손등의 마디가 불거졌다. 눈길은 서늘하다 못해 차갑게 식어 있었다. 몇 초쯤 그대로 서 있던 이건은 다시 핸드폰을 들어 화면을 오래 넘겨 봤다. 한참 뒤에야 손이 멈췄다.손끝이 화면을 눌렀다. 통화가 연결됐다....클럽.제은은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룸 안에는 분위기를 띄워 주는 잘생긴 남자들과 예쁜 여자들도 몇 명 섞여 있었다. 전화가 걸려 왔을 때, 제은은 의외라는 생각과 그렇지 않다는 생각을 동시에 했다.‘조이건이 벌써 나한테 전화했네?’제은은 짧게 웃고는 주변이 조용해지라는 뜻으로 손짓했다. 그 뒤 전화를 받았다.[어디야?]이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정이라고는 조금도 실리지 않은, 차갑기만 한 목소리였다.제은 역시 이건이 싫었다.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미간이 살짝 모였다. 그래도 기분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어때, 마음에 들어?”[어디냐고?!]이건은 제은 말에는 답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 사람 자체가 그렇듯, 말투도 차갑고 제멋대로였다. 저런 상황에서도 한마디 부드럽게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제은은 싸늘하게 웃었다.“나한테 따지러 오게? 좋아, 와. 주소 보내 줄게.”제은은 그렇게 말하며 술잔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궁금한 듯 물었다.“근데 내가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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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6화

이건의 왼손에는 벗어든 수트 재킷이 쥐어져 있었다. 몸에는 검은색 슬랙스와 흰 셔츠만 남아 있었고, 그 위로 그림자에 잠긴 눈까지 더해져 이건은 몹시 음험해 보였다.저렇게 문 앞에 서 있는 것만 봐도, 같이 놀러 온 게 아니라 시비를 끝내러 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건한테서 퍼져 나오는 살벌한 기운은 방 안을 꽉 채울 만큼 짙었다. 제은은 말이 없었고, 다른 사람들도 눈치를 보며 자연스럽게 입을 다물었다.이건의 시선은 금방 제은을 찾아냈다. 이건은 한 걸음 내디뎌 방 안으로 들어왔다. 어둑한 조명이 이건의 얼굴 전체를 비추자, 조각처럼 깊게 잡힌 골격이 더 도드라졌다. 그 때문인지 이건의 모습은 더 차갑고 냉혹해 보였다.제은은 이건이 나타났을 때 한 번 힐끗 봤다가 바로 시선을 거뒀다. 그러고는 술잔을 들어 천천히 마셨다. 누구를 봐도 하찮게 여길 것 같은, 오만한 아가씨 같은 태도였다.이건은 곧장 제은 앞으로 걸어갔다.건민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아차리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이건을 막아섰다.그런데 건민이 막 손을 뻗는 순간, 이건이 먼저 손을 써서 건민을 거칠게 밀쳐 냈다.건민은 이건이 저렇게까지 세게 나올 줄은 몰랐다. 미처 대비하지 못한 채 뒤로 휘청이며 몇 걸음이나 밀려났다.방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건민은 표정이 확 굳더니 낮게 욕을 내뱉었다.“씨X.”사람들한테 다 나가라고 했다. 원래 저 사람들은 불려 와서 분위기만 맞춰 주는 쪽이었고, 하나같이 제은 눈 밖에 나는 건 싫었으니 곧장 우르르 빠져나갔다.다만 저 사람들은 제은이 성질을 내며 남을 몰아붙이는 모습은 본 적 있어도, 오늘 같은 분위기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다들 속으로는 엄청 궁금해하고 있었다.그렇게 사람이 다 빠지고 나자, 룸 안에는 제은과 건민, 영미, 그리고 눈을 맞으며 여기까지 온 이건만 남았다.사람들이 나간 뒤에야 제은은 이건을 똑바로 봤다.제은의 머릿속에는 그동안 이건이 자기 신경을 거슬리게 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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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7화

제은은 분명 이 일을 벌인 장본인이면서도, 표정만 보면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같았다. 말투에도 이건을 걱정해 주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서 더 사람을 긁었고, 더 모욕적이었다.건민은 그런 제은의 뻔뻔함을 이미 수도 없이 봐 왔다. 제은은 원래 저런 식을 좋아했다.상처가 없으면 굳이 만들어 내고, 상처가 생기면 거길 더 세게 후벼 판다. 상대가 아파하는 걸 지켜보면서 기분이 풀리는 타입이었다.물론 제은은 자기 돈으로는 이건의 허름한 게임 따위 전혀 눈에 넣지 않았다. 제은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건드렸으면 건드린 거지, 그게 뭐 대수냐는 식이었다. 속으로도 진심으로 그렇게 여겼다.하지만 이번 게임은 이건이 여러 해를 갈아 넣으며 붙잡아 온 일이었다. 이건이 몰두해 온 일이고, 이건의 꿈이기도 했다. 이건은 거기에 정말 많은 걸 쏟아부었다. 그 과정이 얼마나 험했는지는 아마 이건과 수범만 제대로 알 것이다. 곧 전 세계 출시를 앞둔 시점이라 작은 문제 하나조차 허용할 수 없었다. 팀 전체가 바짝 긴장한 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건 이건 혼자만의 결과물이 아니었다. 다 같이 매달려 얻어 낸 결실이었다.그런데 이건이 목숨처럼 여기고 있는 건, 제은 눈에는 그저 쓰레기에 불과했다.이건은 눈을 내리깔았다. 눈썹뼈가 뚜렷해서, 내려앉은 눈은 더 짙은 그늘에 잠겼다. 온몸도 더 차갑게 가라앉아 보였다. 이건은 제은을 보며 말했다.“더 있어?”제은은 전에는 이건이 마치 하찮은 걸 보듯 자기를 내려다보는 눈이 싫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좋았다. 이건이 화가 나 있었으니까. 일부러 무시하는 게 아니라, 제은 때문에 더는 어쩌지 못해서 자기 발로 여기까지 왔으니까.그 생각만 해도 속이 시원했다. 제은은 고개를 기울이며 기분 좋게 웃었다.“너희가 수습부터 하고 나면 말해 줄게.”이건이 차갑게 웃었다.“강제은, 아직도 남은 게 있다는 거지?”“당연하지. 겨우 이 정도로 시작하면 재미없잖아.”제은은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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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8화

이건의 손바닥이 한 번 지나가자, 룸 안에 있던 세 사람은 전부 얼어붙었다.방금 자세를 겨우 추스르고 이쪽으로 달려들려던 건민도, 그 장면을 보고는 그대로 멈춰 섰다.영미도 다르지 않았다. 예전에 제은이 분풀이하겠다며 이건을 찾아갔을 때, 이건은 주로 막아 내거나 되받아치는 쪽이었다. 나중에 제은의 손등이 긁혀 몇 바늘 꿰매기까지 했던 일도, 따지고 보면 제은이 일부러 넘어지면서 만든 상처에 가까웠다. 그래야 이건을 물고 늘어지기 쉬우니까.그래서 이건이 먼저 제은을 진짜로 때린 적은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그것도 뺨을 쳤다.영미는 제은이 지금 얼마나 놀라고 화가 났을지 감히 짐작도 하기 싫었다. 제은의 머릿속에는 애초에 이건한테 뺨을 맞는 전개 자체가 없었을 테니까.게다가 영미와 건민은 알고 있었다. 제은은 이건을 사람 대 사람으로 본 적이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래로 내려다봤다. 제은한테 이건은 그냥 심심풀이 놀잇감에 가까웠다. 예전에 제은이 흥미를 느꼈던 남자 연예인들보다 조금 더 다루기 까다로운 쪽일 뿐, 본질은 같았다. 손에 넣고 휘두르려는 마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그러니 제은의 기준에서는 개가 주인을 물면 안 됐다. 제은이 얼마나 심한 짓을 했든, 상대가 얼마나 깊게 다쳤든, 그건 상대가 참고 받아내야 하는 일이었다.그래서 제은 머릿속으로는 이건의 이 한 대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게 뻔했다.제은 반응은 건민과 영미가 예상한 그대로였다. 처음에는 놀랐다. 그다음에야 이건한테 뺨을 맞았다는 사실을 제대로 받아들였다. 그것도 얼굴을.남의 뺨을 치는 식의 모욕은 그걸 이건이 했다는 점에서 연나가 했던 복수와는 아예 결이 달랐다. 훨씬 모욕적이었고, 제은을 더 크게 뒤흔들었다.화가 너무 치밀어서 제은 얼굴에는 분노보다 웃음이 먼저 걸렸다.제은은 진짜 이건 때문에 웃음이 나왔다.제은은 한 손으로 뺨을 감싼 채 이건을 사납게 노려봤다. 그러다가 정말로 낮게 두 번 웃었다.길도 안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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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9화

제은이 말을 끝냈을 때, 이건은 이미 흠씬 얻어맞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숨은 거칠게 가빠졌고, 이건은 한동안 몸을 움직여 보다가 천천히 다시 일어났다. 제은을 바라보는 이건의 눈은 정말로 제은을 물어뜯을 듯했다.제은은 이건의 눈 안에서 짙은 감정을 읽었다. 맞았다. 혐오였다.제은은 그런 눈을 아주 잘 알았다. 제은도 자주 남을 그런 눈으로 봤으니까. 왜 그런 시선이 나오는지도 알고 있었다.제은의 가슴이 갑자기 꽉 조여 들었다.쥐고 있던 손도 바로 주먹으로 말렸다.‘씨X, 설마 내가 혐오하는 눈빛에 찔리는 쪽이었나?’이상한 일이었다. 제은을 싫어하는 사람은 많았다. 제은도 그걸 알고 있었고, 원래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왜 하필 이건한테서 받는 그 시선만은 견디기 어려운지, 제은도 그게 거슬렸다.사실 제은은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상대 앞에서는 어떻게 굴어야 상대가 기분 좋을지도 잘 알았다. 이람만 해도 처음에는 제은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래도 제은은 끈질기게 들이대고, 잔머리도 쓰고, 계속 맞춰 주면서 결국 이람이 자기랑 말을 몇 마디 더 하게 만들었다.그래서 제은은 곧 이유를 알아차렸다. 결국 이건이라는 사람이 다른 거였다.다른 사람들은 금방 타협했다. 자기한테 뭐가 이득인지 아니까. 모나지 않게 굴고, 겁먹고, 비겁하게 물러나는 사람들. 제은은 그런 부류를 질색했다.그런데 이건은 애초에 쉽게 꺾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건이 단단해 보이는 건, 결국 타고난 자존심 때문이기도 했다. 이건은 상대의 배경이나 위치를 계산하면서 둥글게 처신하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이건은 제은을 전혀 우러러보지 않았다.괜히 잘난 척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자기 가치관과 기준이 있는 사람이었다. 뭘 하든 진심으로 움직였다. 그래서 이건이 드러내는 혐오는 한때의 열받음이 아니었다. 욱해서 튀어나온 감정도 아니었다. 진심으로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온 혐오였다.제은은 태어날 때부터 가진 게 많았다. 집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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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0화

날카로운 이가 살을 파고들었다. 그 고통에 제은은 바로 눈물을 떨궜다.짧고 날카로운 제은의 외마디 비명이 들렸고, 그다음 이건은 제은의 경호원에게 거칠게 뜯겨 나갔다.‘씨X, 그래도 다쳤어!’‘조이건이 감히 뒤를 노리고 덤벼들다니.’제은은 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가 어깨를 감싼 채 몇 번 신음을 흘리는 사이, 조금 떨어진 곳으로 내던져진 이건은 손등으로 입가의 피를 문질러 닦더니 제은을 향해 차갑게 웃었다.그 장면은 눈을 세게 후벼 파는 것처럼 들이쳤다. 제은은 머리끝까지 열이 치솟았다. 지금 당장 이건을 죽여 버리고 싶을 만큼.분명 이건은 제은 쪽에서 두들겨 패서 바닥에 처박아 놨는데, 그런 상태에서도 물어뜯고 나왔다. 미친개는 미친개였다. 이건은 대체 어떻게 망설임도 없이 입부터 댈 수 있는지, 정말 어깨 살점을 뜯어 갈 듯 물어 버렸다.너무 아파서, 영미와 건민에게 부축받아 일어날 때 제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분해서 우는 게 아니었고, 그냥 아파서 흐르는 눈물이었다.너무 아팠다. 제은은 이런 식의 공격은 겪어 본 적이 없었다. 연나한테 뺨을 맞았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제은은 고개를 숙여 자기 어깨를 봤다. 피가 번진 붉은 이빨 자국이 선명했다. 꼭 누가 표식을 남긴 것 같았다. 제은은 약간의 완벽주의 성향이 있었다. 저 보기 흉한 상처를 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떨릴 만큼 화가 났다.분노가 너무 세서 영미가 옆에서 건네는 위로도 제은은 바로 고함으로 끊어 버렸다.“시끄러워!”영미는 제은 성격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바로 입을 다물고 옆에 붙어 섰다. 더 큰 일이 생기지 않기만 바랐다. 다만 영미는 제은 어깨를 한번 힐끗 봤고, 거기가 거의 짓이겨진 것처럼 보여 손에 힘을 줬다.영미는 제은이 조금 안쓰러웠고, 이건한테도 화가 났다.그러면서도 이건의 안에 있는 미친 기세에 놀랐다. 솔직히 말해, 이건에게는 좀 미친 구석이 있었다.건민도 제은이 다친 걸 보고 바로 낯빛이 차갑게 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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