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나는 그의 형의 신부가 되었다의 모든 챕터: 챕터 961 - 챕터 970

1013 챕터

제961화

하준은 그날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꼭 돌아가서 결말을 바꿔 버리고 싶었다.그 일은 하준이 평생 품고 살아갈 후회였다.“네가 물에 빠졌고, 나도 이미 너를 구하러 바다로 들어갔어. 그런데도 나는 제헌이 너를 배 위로 끌어 올리는 걸 눈앞에서 봤어.”“네가 제헌이랑 같이 떠나는 것도 봤고. 그렇게 몇 년을 그냥 흘려보냈어.”하준의 목소리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숨마저 깊어졌다. 말끝마다 쉽게 지워지지 않는 아쉬움이 배어 나왔다.“분명 내가 먼저 너를 발견했는데, 강제헌은 운도 좋았지.”이람의 눈물은 이미 눈가를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람은 그대로 하준 품으로 세차게 파고들었다.제헌이 없었어도 이람은 무사했을 것이다. 하준과 더 빨리 만났을지도 모른다.어쩌면 제헌을 사랑하게 된 일 자체가 없었을지도 몰랐다. 고작 그때 몇 분, 아니 일 이 분 차이로 모든 게 어긋나 버린 거였다.이람은 하준의 잘록한 허리를 힘껏 끌어안았다.“정말 너무하네요. 그때 왜 조금 더 빨리 오지 않았어요?!”하준은 이람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버틸 수가 없었다. 하준도 똑같이 힘을 줘서 이람을 안았다. 낮고 잠긴 목소리로 이람을 달랬다.“미안해. 내가 좀 더 빨리 움직여야 했어.”이람의 감정은 거칠게 흔들리고 있었다. 목이 메어서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하준의 큰 손이 이람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하준은 계속 말했다.“그날 나는 늘 보던 자리에서 네가 안 보여서 찾으러 갔어. 그런데 이미 제헌이 너를 구한 뒤였지.”“그때 나는 정말 어리석었어. 좋아한다는 게 뭔지도 몰랐으니까. 그냥 너를 알 기회를 놓쳤다는 게 아쉽기만 했어.”하준은 잠시 숨을 골랐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그날 이후로 나는 너를 다시는 볼 수 없었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잊게 될 줄 알았지. 그런데 생각보다 자주 네가 떠올랐어.”“그러다 강제헌의 결혼식에서 다시 너를 봤고, 바로 그날 나는 해외로 나가기로 결심했어.”그때 이람이 하준을 처음 마주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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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2화

이람은 하준의 고백을 들으면서 이미 견딜 수 없었다.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분명 기쁜 일이 맞는데도, 하준이 자기를 알게 된 처음부터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기쁘지만은 않았다.아팠다.안타까웠고, 얄궂은 운명 앞에서 마음이 저렸다.하준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이렇게 힘든데, 그 시간을 혼자 묵묵히 지나온 하준은 얼마나 오래 아픔과 아쉬움을 안고 살아왔을지 감히 짐작하기도 어려웠다.그러니 하준이 제헌을 질투한다고 말할 때 왜 그렇게까지 흔들렸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이람이 하준이었다면, 아마 미칠 만큼 질투했을지도 모른다.이람은 하준이 안쓰러웠고, 동시에 자기 자신도 안쓰러웠다. 그때 제헌이 끼어들지만 않았더라면, 이람은 분명 하준을 더 일찍 만났을 것이다. 그 시절의 두 사람은 지금처럼 단단하고 익숙한 사람들은 아니었을 테니, 어쩌면 또 다른 엇갈림이 생겼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그런 어긋남이, 제헌과 함께하며 치러야 했던 대가보다 더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좋은 쪽으로만 생각한다면, 두 사람은 그때부터 곧장 서로의 곁을 지키며 무난하게 걸어왔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보면 정말 여러 해를 빙 돌아온 셈이었다.그러니 어떻게 이람의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 있겠는가?어떻게 아쉽지 않을 수 있겠는가?그런데도 바로 지금 이때만큼은 이람은 몹시 행복했다. 끝내 두 사람이 다시 서로에게 닿았고, 무엇보다 이 마음이 세상에 하나뿐인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이람은 시간이라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다듬고, 그 안에서만 생겨나는 특별한 결을 만들어 낸다는 걸 처음으로 또렷하게 느꼈다. 그 사실이 이람의 마음을 깊이 건드렸다.오늘 하준이 이렇게까지 단정하게 차려입고, 조심스럽게 이 순간을 준비한 것도 오직 이람에게 제대로 고백하기 위해서였다.이람은 하준의 이 오래된 고백이 너무 좋았다.처음에는 이람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준이 더는 기다리지 않았다. 직접 다가와, 이람이 모르고 있던 지난 시간을 전부 꺼내 놓았다.이 방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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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3화

이람의 눈에서 눈물이 멈출 줄을 모르고 계속 흘러내렸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아파서 우는 게 아니었다. 이람은 행복해서, 웃으면서 울고 있었다.“조단비 말을 들을 걸 그랬어요. 이렇게 빨리 대답해 주지 말라고 했는데...”그 말은 이미 답이 정해졌다는 뜻이었다.얼어붙었던 시간이 다시 녹아 흐르기 시작했다. 하준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바라고 바라던 것을 끝내 손에 넣었을 때의 기쁨이 어떤 것인지, 하준은 그제야 온전히 실감했다.“당신은 진짜 마음이 약해.”하준은 손끝으로 이람의 눈물을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나도 그렇게 생각해요.”이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준과 함께 있으면 도무지 자기 마음을 생각대로 지킬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빨리 무너지는 것도, 결국은 이람의 본능 같은 것이었다.하준은 이람을 바라보며 말했다.“잘 생각해야 해. 이번에 다시 나랑 시작하면, 앞으로 당신이 아무리 헤어지자고 해도 그렇게 쉽게 끝낼 수는 없어.”이람은 눈가가 젖은 채로 하준을 올려다봤다.“지금 나한테 고백한 거 아니었어요? 내가 좋다고 했는데, 왜 이제 와서 다시 잘 생각하라고 해요?”“미리 말은 해 둬야 하니까.”“그건 내 쪽 문제가 아니에요. 결국은 하준 씨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거죠. 하준 씨가 잘 못하면, 나는 또 헤어지자고 할 거예요.”하준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분명히 알아들었다. 이람은 이미 하준을 선택했다. 하준만 흔들리지 않으면, 이람이 먼저 놓지 않겠다는 뜻이었다.그 사실이 하준에게는 말로 다 못 할 만큼 벅찬 감동이었다. 이렇게까지 단단하게 선택받고 있다는 감각은 하준을 몹시 행복하게 했다.“이람아.”하준은 다시 이람을 깊이 끌어안았다.이람은 하준의 가슴에 귀를 기댄 채, 단단하고 힘 있게 뛰는 심장 소리를 들었다. 그 박동 속에 담긴 감정까지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그래서 이람은 더 묻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대답했다.“여기 있어요.”하준이 다시 불렀다.“이람아.”“여기 있어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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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4화

이쯤 되자 이람은 하준과의 나이 차이와 체격 차이 때문에 하준에게서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그 낯선 감각은 두려움과 함께 설명하기 어려운 전율이 느껴졌다. 이렇게까지 다급하고, 이성을 잃은 듯한 하준의 모습에 이람은 온몸의 피가 뜨겁게 끓어오르는 기분이 들었다.하준에게 붙들리자마자 이람은 그대로 힘이 풀려 하준 품에 기대고 말았다.하준은 이람의 허리를 받친 채 금세 침대 앞으로 데려갔다. 이람을 제 아래에 두고 몸을 낮추는 동안, 힘이 들어간 팔에는 근육선이 선명하게 도드라졌다. 등 쪽으로 이어지는 근육이 만들어낸 단단한 선과 깊게 팬 윤곽까지, 전부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눈앞의 서하준이라는 남자는 너무도 강인했고, 수컷다운 기세로 가득했다. 이람은 그 체격 차이에서 오는 압도감에 숨이 막히는 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상할 만큼 깊이 채워지는 기분을 느꼈다.예전처럼 천천히 시간을 들일 여유는 없었다. 하준은 금세 이람의 상태를 읽어 냈다.하준의 눈은 짙게 가라앉아 있었다.“이람아.”이름을 불리는 것만으로도 이람의 몸은 바짝 굳었다.본능적인 두려움과 망설임이 동시에 올라와, 이람은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려 했다.그런데 곧 하준의 손이 이람 허리를 단단히 받쳤다.그 손길은 뜨겁게 눌러 오는 것 같아서, 이람은 하준을 더 밀어 낼 수가 없었다....하준은 이람을 안은 채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람은 버티듯 하준의 허리 쪽을 꼭 붙잡았고, 팔도 힘주어 움켜쥐었다.이람은 끊어질 듯한 목소리로 천천히 해 달라고, 조금만 더 다정하게 해 달라고 말했지만, 그런 부탁은 하준에게 그다지 통하지 않는 듯했다. 어느새 이람은 다시 침대에 눕혀져 있었고, 힘겹게 나오는 이람의 부탁은 오히려 하준의 마음만 더 흔드는 것 같았다.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몇 번이나 자세가 바뀌었는지도 이람은 제대로 헤아릴 수 없었다....따뜻한 물줄기가 몸 위로 쏟아졌다. 하준은 이람의 뒤에 서 있었고, 이람은 벽을 짚은 손에 힘을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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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5화

이람은 하준의 불순한 속내가 뻔히 느껴지는 말을 듣고 바로 받아쳤다.“아직 안 배불러요.”“그래?”하준은 웃었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아침을 떠먹여 줬다. 큰 그릇에 담긴 영양죽은 어느새 바닥이 보일 만큼 줄어 있었다.“이제 너무 배불러요.”이람은 바로 투덜거렸다.“어젯밤보다 더 배부른 것 같아요. 다음부터는 그렇게 마음 가는 대로 못 하게 할 거예요!”하준은 아무래도 실속을 잔뜩 챙긴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람이 화난 척 경고하는 모습마저 너무 사랑스럽게만 보였다. 하준은 죽그릇을 내려놓고 이람의 뺨을 가볍게 쓸었다. 마치 너무 아끼는 작은 인형을 바라보는 사람처럼 다정한 손길이었다.“지금은 좀 괜찮아?”“배가 너무 불러서 힘들어요.”“내가 좀 문질러 줄게.”이람은 바로 경계했다.“이상한 생각 하시면 안 돼요.”하준이 태연하게 답했다.“생각은 나지. 그래도 지금은 안 그럴 거야.”이람은 진심으로 놀랐다.“진짜요?”하준은 아주 점잖은 얼굴로 말했다.“밤까지 아껴 두려고. 그래야 더 오래 볼 수 있으니까.”이람은 그대로 하준에게 달려들었다. 하준 품으로 몸을 덮치듯 안겼고, 그대로 하준 허리 위에 걸터앉았다. 위아래가 완전히 바뀐 자세였다.“오늘 밤에는 딱 한 번만이에요.”하준은 예상외로 아주 쉽게 대답했다.“그래.”오히려 이람이 더 의심스러워졌다.“어떡하죠. 이제 나는 하준 씨 말을 못 믿겠어요.”하준은 이람의 허리를 받쳐 줬다. 흔들리지 않게, 편하게 앉으라는 뜻이었다.그런데 그 자세가 문제였다. 이람은 금세 어젯밤의 무모했던 시간이 떠올랐다.하준은 끝까지 제일 태연한 얼굴이었다.“못 믿겠으면, 네가 느끼는 대로 하면 돼. 오늘 밤에 기분 좋고 더 괜찮으면 한 번 더 하고, 아니면 안 하고.”하준은 정말 오랜만에 이렇게 번듯한 말투로 포장된 능청을 곁들였다. 어이가 없어서 이를 드러내며 웃다가, 그대로 하준 품에 다시 몸을 던졌다. 마음껏 불을 붙여 놓고 나서 정작 본인은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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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6화

그날은 정말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길에서 제헌을 마주쳤고, 제헌에게 뒤를 밟혔다. 그때 이람은 하준을 본 줄로 착각했다. 반가운 마음에 급히 쫓아갔는데, 막상 돌아보니 제헌이었다. 기대가 한순간에 꺼진 데다, 가장 보기 싫은 사람까지 마주한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끔찍했다.이람은 그때 일을 하준에게 다 털어놓았다.“하준 씨는 모를 거예요. 그때 내가 얼마나 그 사람이 하준 씨이길 바랐는지요.”그 말을 듣는 순간 하준의 표정이 바로 굳었다.이람은 하준이 미안해하거나, 자기 일처럼 아파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일부러 뒤에 있었던 괜찮았던 일도 이어서 말했다.“그래도 이제는 다 지난 일이니까 지금은 괜찮아요.”이람은 호텔에서 받았던 꽃다발과 카드도 떠올렸다.“아, 맞다. 내가 호텔로 돌아갔더니 직원분이 내가 좋아하는 장미꽃다발이랑 카드를 같이 가져다줬어요. 카드에는 ‘Happy Birthday. May you fall like starlight into the galaxy, and always shine.’ 이렇게 적혀 있었고요.”그 얘기를 꺼내자 이람 얼굴에는 다시 웃음이 번졌다.“호텔이 정말 세심했어요. 영문으로 적힌 문구였는데 글씨체도 너무 예뻤어요. 일부러 글씨 잘 쓰는 분한테 부탁한 것 같더라고요. 내가 그 필체를 너무 좋아해서 그 카드를 아직도 가지고 있어요.”이람은 그날을 떠올리며 천천히 덧붙였다.“그날 강제헌을 마주쳐서 기분이 엉망이긴 했는데, 그래도 그 카드랑 꽃다발 덕분에 마지막에는 참 좋았어요.”이람은 자기 마음을 전부 설명해 두면 하준도 안심할 줄 알았다. 그런데도 하준의 안색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하준은 이람의 손을 더 꽉 잡았다.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유난히 또렷했다.“미안해. 그날은 내가 당신 곁에 있어야 했어.”하준 얼굴에는 미안함이 선명했다.이람은 눈을 조금 크게 떴다.“그 말은... 그날 하준 씨도 시어도에 있었다는 뜻이에요?”하준은 어린 여자친구의 눈을 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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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7화

하준이 지금 와서 이 이야기를 꺼내는 건 어쩐지 생색내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몰래 남겨 두는 방식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차라리 직접 이람 앞에 나타나서 이람이 기뻐하는 얼굴을 보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그래서 하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그 침묵이야말로 사실상 인정과 다르지 않았다.이람은 너무 기뻤다. 그대로 몸을 일으켜 하준을 와락 끌어안았다. 따뜻한 품 안으로 더 파고들 듯 몸을 바짝 붙였다.“역시 나를 기쁘게 해 주는 사람은 하준 씨밖에 없어요. 그날 하준 씨가 내 앞에 나타나진 않았어도, 결국 저는 하준 씨 덕분에 제 생일에 위로받았잖아요.”하준의 어린 여자친구는 품에 안기면 향기롭고 말랑했다. 그렇게 가까이 끌어안고 있으면 마음속 비어 있던 곳이 가득 차는 기분이 들었다. 이람이 이렇게 자기 마음을 알아주고 헤아려 주는 여자친구라서 하준은 정말 좋았다. 좋다는 마음이 너무 커져서 가슴이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하준은 이람을 더 단단히 끌어안았다. 고개를 숙여 이람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 다른 한 손으로는 이람의 뒤통수를 조심스럽게 감쌌다.이람과 이렇게 닿아 있지 않으면, 자기 안에 가득한 마음을 전할 방법이 없다는 듯 바짝 다가선 키스였다.키스가 끝났을 때는 둘 다 숨이 조금 가빠져 있었다.하준은 이람의 예쁜 눈을 바라봤다. 남자의 손가락을 이람의 머리카락 사이로 넣어 천천히 쓸어내렸다.“자기야, 사랑해.”지금 이람과 다시 함께하고 있는 지금도, 하준은 여전히 이람에게서 위로받고 있었다. 이람의 온기가 하준에게 전해지고 있었다.하준은 이렇게 많은 좋은 것들을 이람에게서 받았다. 그래서 더더욱 이람을 잘 돌보고 싶었다. 바람을 막아 주고, 비를 대신 맞아 주고, 이람의 일상에 걱정이 조금이라도 덜 스미게 하고 싶었다. 자기 앞에서는 마음껏 웃고, 편하게 숨 쉬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하고 싶었다. 하준도 이제는 이람을 따뜻하게 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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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8화

이람은 요양원에 외할머니를 보러 갔다. 외할머니의 상태는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이람 혼자가 아니었다. 하준을 함께 데리고 갔다.이람은 외할머니에게 하준을 자기 남자친구로 소개했다. 외할머니가 그 말을 제대로 알아들으셨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외할머니가 하준을 무척 마음에 들어 하신다는 건 분명히 느껴졌다.이람은 심혜영도 올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심혜영 역시 하준을 보게 됐다.심혜영은 이람과 하준이 헤어지기 전부터, 이람이 이혼한 뒤 어떤 연애를 하고 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처음에 심혜영은 믿지 않았다. 그래도 이람이 누구와 만나든, 심혜영이 나설 일은 아니었다. 예전에 심혜영이 했던 일들은 이람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그래서 심혜영에게는 그 문제에 이렇다 저렇다 말할 자격도 없었다.게다가 나이를 먹으면서 심혜영의 마음가짐도 많이 달라졌다. 언니가 떠난 지 이미 오래라는 사실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됐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조카인 이람과 이건이 늘 안쓰러웠다. 그러니 당연히 이람이 잘 지내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지금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을 직접 보고 나니, 심혜영은 이람이 정말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당연히 이건의 이야기도 나왔다. 심혜영은 이건에게도 여자친구를 좀 사귀어 보라고 했다.이건도 그 자리에서 심혜영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이람과 하준이 손깍지를 낀 채 서 있는 모습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봤다. 이건은 누나가 하준과 다시 만난 뒤에, 하준과 한 차례 따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하준은 왜 예전에 헤어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건에게 설명했다. 자기한테 무엇이 부족했고, 어디서 잘못했는지도 솔직하게 짚었다. 또 앞으로는 이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까지 분명하게 말해, 이건이 안심할 수 있게 하려고 했다.하지만 이건 눈에는 하준이 아무리 그럴듯하게 말을 늘어놓아도 결국 누나를 데려간 남자일 뿐이었다. 하준이든 제헌이든, 이건은 둘 다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늘 어딘가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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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9화

마침 그때 제은이 이람을 찾아왔다.예전에 연나에게 한바탕 심하게 얻어맞았던 일도 벌써 한 달이 되어가고 있었다. 제은 얼굴에 남아 있던 멍도 이제는 거의 다 사라졌다.제은은 자기 외모에 유난히 집착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제은의 내면에 자리한 자신감은 집안과 타고난 성정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애초에 제은은 열등감이나 민망함 같은 걸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그래도 이람을 만나러 가는데 흐트러진 모습으로 갈 수는 없었다. 제은은 아침부터 풀메이크업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단단히 착장했다. 명품 액세서리까지 화려하게 걸쳤다. 원래 얼굴이 화사하고 이목구비가 또렷한 데다 나이도 어려서, 보석이 튄다기보다 오히려 다 받아냈다.모우 엔터 직원들 대부분은 이제 제은이 누구인지 알아봤다. 그래도 제은이 나타날 때마다 한 번쯤은 다시 시선이 갔다. 늘 사람들의 시선을 붙드는 화려한 차림 때문이었다.제은도 나름 얌전한 척은 할 줄 알았다. 이람이 일을 마칠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가, 그제야 몰래 이람의 사무실로 들어갔다.제은은 보석 세트를 하나 들고 왔다.“언니, 지난번에 부연나한테서 저 구해주셨잖아요. 아직 제대로 감사 인사도 못 드렸어요. 이건 제가 드리는 선물이에요. 언니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요.”제은은 상자를 이람 앞쪽으로 밀어 두었다.“다이아몬드 팔찌예요.”이람은 정성스럽게 포장된 상자를 한번 보고, 다시 반짝이는 모습으로 돌아온 명문가 아가씨 제은을 바라보며 웃었다.“이렇게 신경 쓴다고?”“저는 언니한테 만 배는 더 신경 써요. 언니가 저한테 잘해 주시니까 저도 더 잘하고 싶고요!”제은은 말을 쉬지 않고 이었다.“저는 워낙 손재주가 없는 사람이에요. 손수 만든 공예품 같은 마음 들어간 선물은 도저히 못 하겠더라고요.”“그런 건 어디 내놔도 민망할 것 같아서요. 그래서 결국 돈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어요. 대신 디자인 고를 때는 진짜 엄청 신경 썼어요!”제은은 누군가 비위를 맞추려고 들면 정말 능숙했다.이람이 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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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0화

이람이 물었다.“강제헌 때문에 온 거야?”“아니에요, 아니에요. 선물과 오빠 일은 진짜 별개예요. 정말이에요!”이람은 손목에 찬 팔찌를 한 번 내려다봤다.“그래, 선물은 네 마음이라고 믿을게. 그럼 강제헌 얘기는?”제은은 어쩔 수 없이 뜨끔한 기색으로 고개를 숙였다.“언니, 아무리 그래도 강제헌이 제 오빠이긴 하잖아요. 지금은 언니한테 직접 연락도 못 하니까 저한테까지 와서 말하는 거고, 저는 그걸 아주 모르는 척하기가 어려워서요.”“그래서 그냥 오빠 말 한마디만 전해 드리려고 했어요... 그래도 제가 억지로 뭘 시키거나 그러진 않을 거예요.”“우리 오빠 불쌍하다고 편들 생각도 없고요. 사실 언니가 절대 안 만나 줄 거라는 생각도 하고 왔어요.”이람과 하준의 사이는 아주 안정적이었다. 다시 만나고 난 뒤 이어지는 달콤한 시간 속에서, 이람은 매일 기분 좋게 지내고 있었다. 일도 잘 풀리고 있었다. 지금의 하루하루는 이람이 오래 바라왔던 모습 그대로였다. 따뜻하고, 편안하고, 순조로웠다.그래서 제헌의 이야기를 들어도 이람은 아무렇지 않았다.그냥 흘려보내면 될 일이었다.“전해줘. 나는 그 사람 안 만나.”이람은 제헌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정리한 지 이미 오래였다. 사랑도 이미 다 끝났다. 아직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한 쪽은 제헌이지, 이람이 아니었다.예전에는 제헌이 집안의 힘을 믿고 이람을 밀어붙였기 때문에, 이람은 늘 수세에 몰렸다. 그런데 이제는 달랐다. 요즘 이람은 강씨 가문과 관련된 일은 하준에게 맡기는 걸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이를테면 일주일 전에도 그랬다. 하준은 모진과 모연을 데리고 모진과 모연의 조부모를 만나러 갔다. 당연히 강수철 회장도 함께였다. 그런 다음 하준은 아이들을 다시 데리고 돌아왔다. 일은 빈틈없이 정리되었다.이 일에 이람이 직접 나설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건 그 자체로 마음이 지치는 일이었다. 그래서 하준이 곁에 있다는 사실은 이람에게 단단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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