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준은 오늘 평소보다 조금 가벼운 분위기의 세미 정장을 입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타고난 귀티는 숨길 수가 없었다.평소 업무 자리에서는 하준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이람이 미리 파악하고 움직였고, 사소한 디테일까지 신경 쓰며 맞춰왔다.그런데 지금 이렇게 부드럽게 말하는 하준의 말투는 오히려 어색할 정도였다.“대표님, 필요하신 거 있으면 그냥 바로 말씀하시면 돼요.”하준이 고개를 젖히며 웃었다.“여긴 일하는 자리가 아니잖아요. 제가 이람 씨를 부릴 이유도 없고요.”이 말에 이람은 순간 멈칫했다.그리고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그럼... 제가 거절해도 돼요?”하준은 예상 밖이라는 듯 잠깐 놀랐다.“그럼요.”그리고 이람을 가만히 보았다.“그럼, 거절할 건가요?”진지하게 묻는 모습이 더 우스워서 이람은 말 대신 바로 움직였다.술과 음료가 정갈하게 배치된 테이블로 가서 레몬 슬라이스가 담긴 물 두 잔을 들고 왔다.하나는 하준에게 건넸다.하준은 잔을 받아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저는 조금만 마실 거라서요. 이람 씨는 술 마시지 말아요. 집에 갈 때 운전 좀 부탁해요.”이람은 굳이 거절하지 않았다.지후는 바로 옆에서 둘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지후의 눈에서는 더 이상 웃음기가 남아 있지 않았다.그는 하준을 잘 모르지만, 이람은 알고 있었다.이람이 보여주는 표정, 대화를 이어가는 방식, 작은 반응들...지후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이람 씨가 제헌 형을 좋아했을 때는 눈빛부터 달랐어. 빛나고, 살아있고...’지금 그 눈빛은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지후 보기엔 너무 이상했다.지후는 오늘 이 자리... 원래 계획이 있었다.그는 이람과 술을 한두 잔 나누고, 적당한 타이밍에 이람을 집까지 데려다 주고, 이람의 집 위치를 알고 나서 두 번째, 세 번째 기회를 만드는 것...그런 식으로 해도 이람이 불편해하지 않을 정도의 여유도 자신 있었다.그런데 이람이 하준과 함께 오고, 또 하준을 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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