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후, 나는 그의 형의 신부가 되었다: Chapter 31 - Chapter 40

100 Chapters

제31화

“그런 날이 진짜 온다면, 차라리 콱 혀 깨물고 죽는 편이 낫겠어!”“어쨌든 오빠가 알아서 해. 지금 새언니가 계속 그 모양이라면, 그냥 새언니를 바꿔버리는 게 나아.”“내 눈엔 오빠는 진짜 완벽 그 자체야. 오빠한테 어울리는 여자는 세상에 없어. 굳이 고르라면... 유리 언니 정도?”“하지만 애초에 새언니 같은 사람 없었으면 좋았을 텐데. 지금 할아버님께서 새언니를 마음에 들어 하셔서, 다른 사람으로 바꾸는 건 곤란하잖아.”“내 생각엔, 유리 언니가 유학 가기 전에 오빠랑 사귀기라도 했으면 좋았을 거야. 근데 그냥 친구 사이였다고? 진짜? 그게 말이 돼? 그게 아니었으면, 지금 새언니가 할아버님을 백 번 구했다고 해도 그런 기회는 없었을걸!”“어쨌든 새언니는 오빠랑 안 어울려!”이람은 일찍 씻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지만, 좀처럼 잠에 들지 못했다.서재와 침실 사이에 있는 문은 방음이 잘되지 않았다.제은의 불만 가득한 목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그 말들이, 전부 이람의 귀에 들어왔다.이람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다.그런데, 제헌의 목소리가 들렸다.“나도 알아.”“그럼, 오빠도 새언니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네. 나도 하루빨리 새 새언니 생기길 빌어야지.”“응.”제헌이 덧붙였다.“가는 길 운전 조심해.”“알았어.”제은은 그렇게 떠났다.이람은 이불을 뒤집어썼다. 젖은 눈가를 감추기 위해 이불에 얼굴을 묻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옆자리가 살짝 꺼지며 침대가 흔들렸다.이람은 자는 둥 마는 둥 뒤척이다 깼다. 그리고 슬며시 눈을 뜨니, 제헌이 누워 있었지만, 아직 자지는 않고 있었다.그는 핸드폰을 들고 누군가와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었다.상대방이 보낸 음성 메시지를 귀에 대고 듣는 제헌.고요한 방 안에 핸드폰 수신부의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그 목소리, 이람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하유리였다.이람은 자는 척 몸을 뒤척이며 침대 가장자리로 등을 돌렸다.시계를 힐끔 보니, 새벽 2시.‘저녁에 차 기다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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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화

캄캄하고, 춥고, 혼자라는 사실이 온몸을 짓눌렀다.이람은 이 상황 자체를 강하게 거부했다.차창 밖을 잠깐 바라보다가, 남자의 냉랭한 눈빛을 마주한 순간,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입을 열었다.“저... 몇백 미터만 가면 되는데 그냥 데려다줄 순 없어요?”‘왜 꼭 지금 내려야 하는 거야?!’제헌의 시선은 싸늘했다.“시간 낭비야.”“그럼... 시내까지만이라도...”이람은 큰 걸 바라는 게 아니었다.정말이지, 지금은 혼자 내리는 게 너무 무서웠다.“방향이 달라.”제헌은 더 이상 참을 여유조차 없어 보였다.“내려.”그 말에 이람은 제헌의 눈 안에서 단호함, 그리고 거절할 수 없는 압박을 읽었다.무시할 수 없는, 강제적인 기류가 분명했다.오늘 산 아래에서 제헌은 분명히 늦었다.하지만 유리와 관련된 일이 생기자, 단 1초도 주저하지 않았다.방금까지만 해도, 이람을 혼자 두는 게 강 회장의 눈에 걸릴까 싶어 걱정하는 눈치였던 제헌은, 밖으로 나오자 그런 걱정조차 하지 않았다.‘애초에 기대 같은 건 안 했지만, 이건 좀 너무하잖아.’이람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게 오히려 더 쓰라렸다.아무리 그냥 친구라도, 이 정도까지는 하지 않을 것이다.결혼 초기, 이람은 제헌이 조금 두려웠다.3년을 같이 지내면서, 그 두려움은 사라졌다고 믿었다.그런데 지금, 제헌의 눈에서 느껴지는 그 무언의 압박은, 묘한 공포로 되살아났다.제헌은 평소엔 이람에게 냉담했지만, 어릴 때부터 철저히 가정교육을 받은 사람답게, 예의 바르고 점잖은 사람이었다.‘강제헌이 지금 이 상황에서 만약 하유리를 위해서라면...’‘내가 말 안 듣는다고 화를 내고... 손까지 쓰는 건... 아니겠지?’그런 생각이 스치자, 이람은 제은처럼 ‘안 내리면 어쩔 건데요?’ 같은 말을 감히 하지 못했다.자신만 초라해질 뿐이었다.이람은 꽉 다문 입술로 울컥 차오르는 감정을 꾹 누르며, 문을 열고 조용히 차에서 내렸다.내릴 때, 이람은 무표정하게 제헌을 바라봤다.만약 제헌이 단 한 번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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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화

어둑한 밤.이람은 하준의 그림자에 완전히 가려졌다.그림자 속 숨 막힐 듯한 정적.그리고 다음 순간, 따뜻한 온기를 머금은 외투가 이람의 어깨를 감쌌다.그 옷에서는 은은한 향이 났다.맑고 차가운 우디 계열의 향.추운 겨울, 눈 속에 홀로 서 있는 전나무를 떠올리게 하는 향이었다.외투를 벗어준 덕분에, 남자에게 남은 건 얇디얇은 검은 셔츠 한 장뿐.소매에 달린 다이아몬드 커프스단추가 가냘픈 불빛을 받아 차갑게 반짝였다.그 모습이, 마치 서하준이라는 사람 자체처럼, 한 번만 더 쳐다봐도 본능적으로 거리를 두게 되는 분위기였다.민서 앞에서도 한 번도 눈물을 보인 적 없던 이람이, 하준에게 우는 모습을 들켜버렸다.‘창피해... 너무 엉망이야.’하지만 이람은 허둥지둥 눈물을 닦지는 않았다.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하준을 바라보았다.볼을 타고 내린 눈물 자국이 노란 현관 등 불빛에 반짝였다.하준은 이람에게 있어, 겨우 몇 마디 나눠본 게 전부인, 어렵고 불편해서 피하게 되는 존재였다.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래서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 게, 이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반응이었다.잠시 정적이 몇 초쯤 흘렀을까...“운전은 할 줄 알아요?”하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이람은 고개를 끄덕였다.하준은 무심하게 차 키를 던졌다.이람은 반사적으로 손에 받아냈다. 고개를 들어보니, 하준은 이미 벤틀리 뒷문을 열고 몸을 숙여 타고 있었다.그가 옆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 이람은 아까 외투에서 풍기던 그 차가운 향을 다시 느꼈다.뜻은 분명했다.즉, 운전해서 집까지 데려다달라는 뜻.두 사람이 딱히 친하지도 않고, 뭔가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그저 아무런 설명 없이 갑자기 운전대를 맡기는 이 상황.이람은 어깨에 걸친 외투를 내려다봤다.그리고 손에 쥐어진 차 키도.‘진짜, 너무 춥긴 하니까...’그녀는 외투를 돌려줄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팔을 깊숙이 집어넣고, 허리끈을 조심스레 매고, 긴 소매를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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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이람은 집에 들어가기 전, 자신과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남자를 돌아보며 정중히 인사했다.“안녕히 주무세요.”하준은 이미 문을 열어둔 상태였지만, 들어가지 않고, 문 앞에 서서 무표정하게 인사를 건네는 이람을 바라보고 있었다.이람은 이미 차 키를 돌려줬다.‘뭐지, 아직 할 말이 남은 건가? 아니면 내가 다시 한번 고맙다고 해야 하나?’잠시 정적이 흐른 뒤, 이람은 서둘러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단정하게 접었다.하준은 그런 이람의 손동작을 조용히 지켜보다가 말했다.“던져요.”이람은 던지지 않았다. 대신 조심스럽게 다가가, 외투를 그의 눈앞에 내밀었다.“고맙습니다.”하준은 외투를 받자마자, 아무런 대꾸도 없이 돌아서서 문을 쾅 닫았다.냉정하고, 무심하고, 사람 기분 하나 안 살피는 스타일.딱 서하준다웠다.하지만 이유야 어찌 됐든, 오늘 밤 하준의 배려에 대해선 이람은 진심으로 감사했다.설사 하준이 자신 같은 사람을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다 해도.‘정말 고마웠어... 서 대표님은 기억도 안 하겠지만.’...하준은 외투를 들고 들어갔다.그 옷엔 이미 은은하게 여자 향이 배어 있었다.평소 청결에 예민한 하준은 수백만 원짜리 외투라도, 망설임 없이 쓰레기통에 넣어버렸다.그는 물 한 잔을 따라 마시며 테이블에 두었던 핸드폰을 들어, 우세진이 보낸 음성 메시지를 재생했다.그리고 물을 넘기는 동안, 이어폰도 없이 조용히 그 메시지를 들었다.[서 대표님, 남 실장님께서 보내주신 자료 중 하나, 보고드릴 게 있어요. 조이람 씨, 대표님 비서 맞으시죠?]...이람은 집에 돌아와 감기약을 챙겨 먹고, 바로 침대에 누웠다.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린 채 그대로 잠이 들었다.다음 날, 월요일 아침.이람은 자신이 분명 쓰러질 줄 알았지만, 약발이 강했던 건지 의외로 멀쩡하게 일어났다.오늘은 SY그룹의 대표가 해외 출장 후 복귀하는 날이었다.회사 전체가 들뜬 분위기였다.다만, 이람의 옆자리에 앉는 동료 임지영이 휴가를 내면서 그 업무가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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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화

상황을 단번에 파악한 이람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제가 그렇게 쉽게 강제헌의 동선을 알고, 실시간 일정을 파악할 수 있었다면...”그녀는 한 템포 쉬고, 기성을 똑바로 바라보며 날카롭게 덧붙였다.“허 비서님, 그건 본인 직무 태만부터 먼저 반성할 문제 아닐까요?”대표이사의 일정은 보안상 철저히 관리되어야 하고, 그걸 책임지는 건 바로 비서실장과 수석비서의 역할이었다.기성은 이미, 이람이 며칠 전, 제헌이 유리 생일을 챙겨주는 장면을 직접 목격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날 이후 일주일 넘게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만 봐도, 이람이 그 일을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하지만 이람이 이 자리에서 그렇게 날을 세우며 말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그런데도 기성의 표정엔 짜증만 가득했다.‘사모님이 조용히 좀 있으면 안 되나?’‘예전처럼 서로 불편하지 않게, 각자 할 일만 하면 되잖아.’그는 경비원들에게 손짓했다.즉, 계속 끌어내라는 신호였다.이람은 아직 전날의 일도 감정 정리가 안 된 상태였다.그런데 오늘 또 이런 식으로 아무 이유 없이 모욕당하니,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이를 악물고 참던 이람은 결국 참지 못하고 외쳤다.“도와주세요!”행사장엔 사람들이 많았다.대부분 테크 업계 관계자들이었고, 예상치 못한 외침에 고개를 돌린 이들이 많았다.‘저 사람 누구지...?’시선을 돌린 이들은 이람의 얼굴을 보고 한 번 놀라고,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더더욱 당황한 눈치였다.“무슨 일이에요?”기성은 당황했다. 존재감조차 없던 이람이 이 자리에서 이렇게 소리를 지를 줄은 전혀 예상 못 했기 때문이었다.‘미쳤나?’이람은 한 번 소리친 걸로 멈출 생각이 없었다.입을 열려던 순간, 기성은 급히 손짓해 경비원들에게 멈추라고 했다.소란은 의외로 효과가 있었다.기성은 빠르게 다가오며 낮고 무겁게 말했다.“사모님, 이렇게 공개된 자리에서 고함치고 싶은 건 마음대로 하시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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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화

“진짜? 강 대표님이 사모님이랑 같이 나왔어?”“그러니까! 나 직접 봤어. 완전히 그림 같았어. 듣기로는 사모님이 강 대표님의 고등학교 동창이라던데? 캠퍼스 커플에서 결혼까지, 진짜 드라마도 아니고...”“그리고 그 사모님이 그냥 예쁜 사람인 줄 알았는데, AI 연구하는 박사래. 얼마 전에 귀국하셨다더라.”“어쩐지, 강 대표님이 평소에 행사나 모임에 항상 혼자 나오셨잖아. 이제 보니, 사모님이 해외에 계셨던 거네.”“맞아. 너 그 현장에서 못 봤지? 강 대표님이 사모님 챙기는 눈빛이, 와... 진짜 감출 수가 없더라.”“누가 봐도 자랑하고 싶은 눈치였어. 남자는 누구나 사랑하는 여자가 있으면 자랑하고 싶잖아. 하물며 사모님 같은 인재면, 더 말할 것도 없지.”“...”그 말들에 이람의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자랑하고 싶어?’그건 늘 이람이 부러워하던 말이었다.이람은 그동안 회사 동료인 지영의 남편이 그저 흔치 않은 좋은 남편이라고 생각해 왔다.세상 모든 남편이 그런 식으로 아내를 사랑하진 않는다고.강제헌 같은 사람은, 설령 누군가를 사랑하더라도 그렇게까지 표현하지는 못할 거라고 계속 그렇게 믿어 왔다.하지만 지금, 그 믿음이 흔들렸다.‘결국... 나 혼자 착각이었네.’사랑하는 사람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 감정은, 어쩌면 가장 단순한 감정이었다.그걸 하지 않았다는 건... 애초에 그 마음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했다.이람은 고개를 숙이고, 한껏 무거워진 마음을 조용히 삼켰다.‘그만 생각하자. 지금은 맡은 일부터 끝내야 해.’잠시 후, 이람은 다시 정신을 다잡고 발걸음을 옮겼다.행사장 한편, 한 테크놀로지 회사가 자사 로봇의 성능을 시연하고 있었다.로봇이 앞뒤로 움직이고, 뒤로 공중제비를 도는 모습까지 구현된 걸 보며 참관객들의 감탄이 이어졌다.직원이 로봇에게 일부러 발길질하자, 로봇은 비틀거리면서도 중심을 잡고 넘어지지 않았다.참관객들에게 직접 체험해 보라는 말에, 누군가 무심코 너무 센 힘으로 로봇을 밀었다.그 로봇은 한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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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화

유리는 이람에게 잠깐 흥미를 보이는 듯하더니, 금세 시선을 거두고 자신 옆에 서 있는 키 큰 남자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그제야 이람의 눈에 들어온 남자는 정도규였다.정도규는 정홍도 회장의 막내아들이었다.지후나 유리처럼 고등학교 때부터 제헌과 알고 지낸 사이는 아니었다.그는 제헌과 같은 재계 서클 안에서 비즈니스로 엮이며 연이 닿은 인물이었다.이람은 순간 씁쓸해졌다.‘나는... 강제헌의 세상에 들어가 본 적도 없었지.’결혼 후에도, 제헌은 단 한 번도 이람을 자기 인맥이나 모임에 데려간 적이 없었다.지후만이 유일하게 집에 몇 번 온 적이 있었을 뿐.정도규처럼 ‘그들만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이람에게 그저 몇 번 인사만 한 얼굴이었다.그런데 하유리는 귀국한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벌써 정도규와 다정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이람은 시선을 조용히 거두고, 옆에 있는 지후를 바라봤다.아직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는데, 지후가 먼저 이람의 손에 들린 서류를 가리켰다.“그럼... 방해하지 않을게요.”이람은 지후의 말이 정말 고마웠다. 도망칠 수 있는 적당한 명분을 만들어 줬으니까.“응, 고마워요.”짧게 답한 이람은 더 머뭇거리지 않고 그대로 돌아섰다. 발걸음은 조용했지만, 허리를 곧게 편 등에는 어딘지 모를 단호함이 서려 있었다.지후는 이람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제헌 쪽으로 걸어갔다.“제헌이 형...”지후는 무언가 말하려다 머뭇거렸다.하지만 제헌은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다. 그는 관심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며, 옆에 선 유리에게 말을 건넸다.“저쪽도 좀 둘러볼까?”유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응.”그녀는 먼저 두 걸음을 옮기다가 멈춰서 지후를 돌아봤다. 입가엔 장난기 어린 미소가 떠올랐다.“지후야, 조이람 씨랑 꽤 친해 보이던데?”지후는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누나가 말한 거, 내가 형수님 도와드린 거 말이죠? 그땐 형수님인 줄 몰랐어요.”그리고는 자신도 웃긴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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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화

도규는 이번만큼은 반드시 성과를 내기로 마음먹었다.지후가 하는 일은 VC, 즉 벤처 투자였다.도규는 굳이 캐묻지 않았다.그런데 문득, 얼마 전 별생각 없이 떠올렸던 한 장면이 기억났다.예전에 그는 이람에게 어디 출신이냐고 물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이람은 시우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졸업이라고 했다.‘시우대... 그건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최상위권인데.’‘그런데, 제헌은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걸까?’도규는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았다....이람은 조금 전 로봇 사고로 인한 어수선함을 머릿속에서 지워냈다.그리고 마침내 연회장 위치를 확인했다.SY그룹 부대표인 부연훈의 비서, 오하민이 그녀를 맞이했다.회의는 이미 끝났고, 대표와 부대표를 포함한 주요 인사들이 연회장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는 설명이었다.시간대가 점심 무렵이기도 했고, 그 자체가 흔한 비즈니스 식사 자리였다.이람은 하민을 따라 엘리베이터에 올랐다.행선지는 최상층, 프라이빗 룸이 있는 층이었다.사실 이람은 서류만 전달하고 곧장 나올 생각이었다.하지만 하민은 자연스럽게 말했다.“같이 식사하시죠. 자리 있어요.”대규모 접대 자리의 특성상, 대표나 부대표는 일부러 실무진을 여럿 데려와 자리를 채운다. 간혹, 분위기만 보고 밥을 얻어먹으러 오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그런 자리일수록, 한두 명 더 끼는 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그리고 그런 자리에선 운이 좋으면 잘 맞는 사업파트너를 만날 수도 있다.이람은 하민을 따라 조심스럽게 룸 안으로 들어섰다.최고급 룸답게, 가운데엔 지름경이 5,6미터는 족히 될 만큼 큰 원탁이 놓여 있었다.이미 대부분 자리가 찼고, 사람들의 대화와 웃음소리가 오갔다.이람의 눈이 순식간에 복잡해졌다.자신은 부연훈 부대표가 어디 앉아 있는지도 한눈에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대신, 문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는 정홍도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정 회장까지?’그녀는 잠깐 스쳐가는 생각도 정리할 틈 없이, 하민이 이끄는 대로 남은 두 자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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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화

이람은 눈을 크게 뜨고 하준을 바라봤다. 믿기지 않는다는 감정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났다.‘왜 날 대신해서 술을?’단순한 예의도, 상황을 넘긴 것도 아니었다.그건 명백하게... 막아준 행동이었다.놀란 건 이람만이 아니었다.황 대표 역시 당황한 눈치였다. 처음엔 하준이 직접 잔을 받아준 걸 반가워했지만, 정작 눈이 마주친 순간, 몸이 잠시 굳었다.하준의 시선엔 분명한 선이 있었다.그 선을 넘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황 대표는 이내 분위기를 수습하려는 듯, 자신의 잔을 들고 따라 마신 뒤 가볍게 웃었다.“서 대표님께 드린 잔이었습니다.”그렇게 말하고 자리에 돌아갔다.하준의 일거수일투족은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의 관심의 대상이었다.그런 그가 직접 나서서 누군가를 보호하자, 자연히 이람은 누구도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사람들의 시선은 곧 이람에게 집중됐다.‘대체 누구지? 저 여자?’은근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고, 관심의 대부분은 둘 사이의 관계에 초점이 맞춰졌다.‘그냥 비서라고 하기엔... 너무 특별한 대응 아닌가?’이람은 당황한 와중에도 하준이 큰 도움을 줬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안 되지.’곧바로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걸며, 작은 대화를 유도했다.서너 마디가 오가자, 이람이 단순히 자리에 초대된 사람이 아닌 하준의 수석비서 우세진의 업무 공백으로 대신 온 ‘비서’라는 정보가 빠르게 퍼져 나갔다.잠시 피어오르던 스캔들은 그 자리에서 조용히 사라졌다.물론, 설령 이람이 해명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 서하준과 엮어서 뒷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없었다.‘서하준이야. 감히 누가 함부로 떠들겠어.’그런 가운데, 가장 놀란 사람은 따로 있었다.SY그룹 부대표이자 서하준의 오래된 친구, 부연훈.이람이 자리를 비운 틈, 연훈이 하준을 흘긋 보더니 낮게 말했다.“미쳤냐?”하준이 고개를 돌려 연훈을 한 번 쳐다봤다.연훈은 슬쩍 웃었다.“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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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화

운전기사가 조용히 차를 몰았다.이람은 조수석에 앉아 있었고, 뒷좌석에는 하준과 세진이 함께 타고 있었다.차 안이 조용해지자, 이람은 그제야 손바닥이 찌릿하게 아픈 걸 느꼈다.왼손을 펴보니, 엄지손가락과 그 밑 손바닥 부위의 상처가 가장 심했다.피부가 심하게 벗겨져 일부는 딱지가 졌지만, 곳곳에 아직 벌어진 상처에서 피가 스며 나오고 있었다.‘서류만 전달하고 바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가방도 없이 나와버린 탓에, 소독용 알코올도, 티슈 한 장도 없었다.‘이러다 감염되겠네. 근처 약국이라도...’이람은 조심스럽게 눈길을 창밖으로 옮겼지만, 차는 이미 출발했고, 이런 사소한 이유로 일행의 일정을 늦출 수는 없었다.그 순간, 하준의 낮고 단단한 목소리가 들렸다.“잠깐만 세워주세요.”운전기사는 바로 브레이크를 밟았다.이람은 순간 움찔했다.고개를 돌리자, 하준이 똑바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내려요. 상처부터 처리하고 와요.”예상치 못한 말에 이람은 잠시 말을 잃었다.‘봤구나...’그 말엔 대답 없이 바로 문을 열고 내렸다.걸음까지 아끼듯, 약국 방향으로 서둘렀다.잠시 뒤, 이람의 핸드폰에 메시지가 도착했다.발신자는 세진이었다.[상처부터 제대로 처리해요. 시간은 신경 쓰지 말고. 기다릴게요.]‘역시 민서 때문이지.’이람은 짧게 답장을 보냈다.[최대한 빨리 다녀올게요.]약국에서 약사는 이람의 손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피부가 심하게 벗겨진 부위에는 연고와 함께 밴드를 붙여주고, 작은 상처는 드라이 소독만 했다.“생각보다 심하진 않네요. 물만 조심하시면 금방 나을 거예요.”“감사합니다.”계산을 마치고 문을 나서던 순간, 이람은 정면에서 다가오던 사람들과 부딪쳤다.강제헌과 하유리.이람이 약국에서 상처를 소독하고 붕대를 감고 있는 동안, 제헌은 이미 계산대 앞에서 일회용 밴드와 포비돈 면봉을 구매하기 위해 들고 있었다.누가 봐도 유리를 위한 것이었다.‘정말 내가 맞혔네. 강제헌 어젯밤 그토록 다급하게 떠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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