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람의 두 번째 반응은 ‘어쩜 이렇게 딱 마주치냐’였다.보통 사람들은 혼자 쇼핑할 때, 아는 사람을 마주치는 것에 꽤나 불편함을 느낀다.오늘 하준은 정장 차림이 아니었다. 올블랙 스포츠웨어에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블랙 롱코트를 걸쳤다.전에 버렸던 그 브랜드의 코트와 같은 라인이지만, 길이만 달랐다.날카로운 이목구비는 여전히 잘생겼고, 그만큼 차가웠다.이미 마주쳤으니 이람도 모른 척 지나가는 건 도리가 아니었다.그녀는 약간의 거리감을 두고 먼저 입을 열었다.“대표님.”하준은 표정 하나 안 바뀐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그 눈빛에 이람은 순간적으로 한기 같은 걸 느꼈다. 더 이상 말은 하지 않고, 가볍게 고개만 끄덕인 후, 다시 계산대로 시선을 돌렸다.그 순간, 하준의 어깨가 재원의 손바닥에 가볍게 맞았다.“네 번째.”하준이 입을 열기 전, 재원은 벌써 컵을 내려놓고 자연스럽게 이람 쪽으로 다가갔다.그리고 계산하려던 이람의 앞을 슬쩍 가로막으며 익숙한 듯 인사했다.“안녕하세요, 유재원이라고 해요.”재원은 특별히 웃지 않아도 호감 가는 얼굴이었다. 눈매가 깊고, 입꼬리는 습관처럼 살짝 올라가 있었다.‘고지후랑 비슷한 느낌이네.’이람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지후도, 유재원도 사람 끄는 힘이 있는 타입.다만, 고지후는 더 정제된 분위기였고, 유재원은 좀 더 느긋하고 장난기 넘쳤다.딱 남쪽 사람과 북쪽 사람의 그 미묘한 차이.“안녕하세요. 조이람입니다.”이람이 간단히 대답하자, 재원이 곧바로 말을 이었다.“하준이 국내에 들어왔다는 소식 듣고, 제가 오늘 일부러 J시에서 날아왔어요. 오랜만에 좀 보려고요.”그러더니 재킷 안의 흰색 트레이닝 셔츠를 가리켰다.“보다시피, 오늘 오후에 같이 테니스 했거든요. 혹시 테니스 하세요? 시간 되면 우리 같이 한 판?”‘말 많다, 이 사람...’이람은 사실 테니스 칠 줄 알았다. 하지만 입에서는 정반대의 말이 나왔다.“아니요, 못 쳐요.”“오, 그럼 잘 됐네요. 하준이가 이람 씨 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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