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람의 가슴 깊은 곳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분노가 터져 나왔다.순간적으로 심혜영의 손목을 반사적으로 잡아 쥐었다.힘이 들어간 손끝에, 이람 자신도 놀랄 만큼 감정이 실려 있었다.“이모, 이모는 정말 하유리를... 많이 아끼시는 거군요.”이람의 눈빛 속에 번진 화염에, 심혜영이 잠시 말을 잃었다.이람은 언제나 똑똑하고, 얌전하고, 남의 말 잘 듣는 아이였다. 감정을 이렇게 격하게 드러내는 건... 심혜영도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이모가 하유리를 아끼고, 사랑하고, 신경 써주는 거 다 괜찮아요. 근데... 제발, 그걸 저한테까지 보여주진 마세요. 네?”뒷말은 거의 한 글자 한 글자 눌러 짚는 듯했다.이람이 이렇게까지 정중하고 또렷하게 부탁하는 건, 사실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충분히 들어줄 수 있는 이야기였다.그런데도, 심혜영은 잠깐 입술을 달싹이더니 말했다.“그건...”한마디로 끝맺지 못한 채, 애매하게 맴도는 말끝.대답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이람은 그 순간 모든 기운이 빠지는 걸 느꼈다.화가 났던 감정은 허공에 주먹을 휘두른 듯, 무언가에 순간 꺾여버렸다.그녀는 아무 말 없이 심혜영을 몇 초간 바라보다가,그대로 돌아섰다.말없이,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심혜영은 오늘 오랜만에 조카를 보러 온 길이었다.그냥 얼굴도 보고, 밥도 한 끼 같이 먹고,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기를 바랐는데...떠나는 이람의 뒷모습을 보며, 심혜영도 ‘붙잡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유리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대화는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심혜영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게다가 이람의 편을 들기엔, 유리의 시선이 따가웠다.자신이 이람을 더 챙기면, 유리가 서운해할 게 뻔했다.결국, 누구의 편도 들 수 없는 상황.그게 심혜영이었다....차에 올라탄 이람은, 시동도 걸지 않은 채 조용히 앉아 있었다.십 분쯤 지났을까... 방금 전의 격한 감정은 거짓말처럼 가라앉아 있었다.심혜영의 반응 하나로, 온몸에 불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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