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이혼 후, 나는 그의 형의 신부가 되었다: Bab 81 - Bab 90

100 Bab

제81화

영미도 제은을 말릴 수 없었다.이람은 제은이 다가오는 걸 옆눈으로 확인하고는,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몸을 돌려 자리를 피하려 했지만, 제은이 한발 먼저 다가왔다.이람 옆에 붙어들며 낮은 목소리로, 그러나 날카롭게 속삭였다.“유리 언니가 우리 오빠랑 같이 오늘 만찬에 참석한다는 거, 알고 있었어요?”“내가 알려줄까요? 우리 오빠가 유리 언니한테 몇십억짜리 보석이랑 드레스 해줬대요. 새언니, 마음 단단히 먹어요.”“연회장에서 혹시 무너져내리면 곤란하잖아요. 그래도 난 인정해요. 언니가 혼자 와서 그런 꼴 당할 용기를 내다니? 대단하긴 해요.”이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말이 없는 이람을 보며, 제은의 눈빛이 확실히 만족스러워졌다.자신은 이람의 약점을 제대로 찔렀다는 걸 스스로도 알았다.그리고 그 눈엔 노골적인 조롱이 담겨 있었다.“새언니, 나 사실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에요. 근데 새언니가 먼저 건드렸잖아요? 그러니까 이건 그냥 정당방위예요.”“이따가 우리 오빠가 유리 언니한테 얼마나 잘해주는지 눈앞에서 지켜보는 기분... 진짜 어떨까요?”“너무너무 궁금해요. 자존심 내려놓고 직접 망가지는 기분이란 거, 어떠냐고 묻고 싶은데요.”제은은 이람의 반응 따윈 기다릴 생각 없다는 듯 고개를 숙여 핸드폰 화면을 확인했다.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들어 이람을 향해, 평소처럼 애교 섞인 표정으로 무해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리 오빠, 이제 입구 도착했대요. 드디어, 내 관전 타임이네요?”제은은 턱을 당당히 들어 올린 채로 그 자리를 벗어났다.이람은 가만히 그 자리에 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우세진이 다가왔다.그는 조용히 물었다.“이람 씨, 괜찮으세요?”세진은 물론 제은을 잘 알고 있었다.무슨 말을 나눴는지까지는 몰라도, 제은의 표정만으로도 충분했다.그건 누가 봐도 누군가를 자극하기 위해 만든 표정이었다.세진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이람은 고개를 돌렸다.이람의 키는 173. 거기에 굽 5센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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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화

그래서 이람은 자기 마음속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았다.‘과연, 강제헌은 진심으로 이혼을 원한 걸까?’‘아니야. 그 사람은 말로만 이혼한다고 했어.’‘그걸 무기 삼아 날 겁주는 거지.’‘행동으로 보여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차라리 악의적으로 보자면, 제헌은 단 한 순간도 이혼을 진심으로 고려한 적이 없었다.오히려 ‘이혼’이라는 단어를 이용해 이람의 감정과 관심을 쥐락펴락하는 걸 즐기고 있었다.그렇게 매번 정서적으로 흔들리며, 이람은 자신의 기준을 한 칸, 또 한 칸씩 무너뜨렸다.그 끝에 이람은 제헌을 지금 이 지점까지 받아들이고 있었다.깨닫고 나서 돌아보니, 예전의 자신이 너무 낯설고 안타까웠다.‘사랑하지 않는 건 죄가 아니야.’‘근데, 상처 주는 건 분명히 잘못이야.’어제 레스토랑에서, 제헌은 유리가 조금이라도 상처받는 걸 참지 못해 바로 민서를 향해 보복했다.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행동했고, 보호했고, 아낌없이 드러냈다.그 순간, 이람은 스스로에게 물었었다.‘사랑했던 남자가 다른 여자한테 그렇게 다정한 모습을 보일 때, 어떤 기분이지?’그때 이람의 대답은 이랬다.‘아무렇지 않아. 이젠 정말 상관없어.’하지만 지금의 이람은 그 어제의 자신에게 공감할 수 없었다.‘난 아직 다 못 넘겼어. 그 감정이 슬픔은 아니야.’‘지금 남은 건... 분명히 분노야.’제헌이 다른 여자를 사랑해서 아픈 게 아니라 이람은 제헌에게 의도적으로 상처받았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었다.가장 웃긴 건, 그 분노를 어디에도 풀 데가 없다는 점이었다.‘내가 겪은 하나하나를 들고 가서 따져볼 수도 있어.’‘강제헌한테 왜 그랬냐고 물을 수도 있지.’‘하지만 분명, 강제헌은 수십 가지의 핑계를 댈 거야.’‘그리고 결국엔 나한테 이렇게 말하겠지.’‘왜 또 시작했냐고. 도대체 왜 이렇게 집착하냐고, 정신 좀 차리라고...’이람이 제헌에게 듣고 싶은 말은 단 한 마디였다.‘미안해’라는 말. 단 한 번이라도...하지만 제헌은, 절대 그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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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세진도 알고 있었다.이람이 감정을 스스로 잘 다스리는 사람이라는 걸.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자꾸만 눈길이 갔다.그런데 이람은, 오히려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려 그쪽을 바라보고 있었다.거리낌도, 회피도 없이 담담하게.처음 이혼했을 땐, 이람이 제헌과 마주치기만 해도 가슴이 쪼그라들고, 만나는 것 자체가 상처였다.그런 이람이었기에, 제헌을 피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녀는 조금씩 바뀌었다. 이젠 마음가짐 자체가 달랐다.‘어차피 이혼했다고 평생 안 볼 수 있는 건 아니니까.’‘가정법원도 같이 가야 하고, 이런 자리에서 마주칠 일도 있겠지.’‘그 정도도 못 견디면, 그건 좀 우스운 일일지도 몰라.’이람의 시선이 머무른 곳엔 익숙한 얼굴들이 있었다.강제헌, 고지후, 정도규.세 사람 모두 키가 훤칠하고, 정장 차림에 각기 다른 분위기를 풍기며 등장했다.무대 위 조명을 등에 진 것처럼, 시선이 절로 따라갈 만큼 눈에 띄었다.그 뒤를 따르는 허기성 또한 말끔한 슈트 차림이었지만, 이람은 그에게 시선을 줄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제헌과 도규 사이에는 한 여자가 있었다.하유리.유리는 온몸을 빛내는 듯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수천 개의 크리스털이 촘촘히 박힌 화려한 의상에 보석 액세서리까지 더해지자, 그 존재감은 단연 압도적이었다.멀리서 보기만 해도 단번에 눈에 들어오는 고급스러운 아우라였다.‘강제은이 말했던 몇십억짜리 풀 세트, 다 저거였구나.’그건 단지 제헌의 정성이 아니었다.이람의 이모, 심혜영의 손길도 함께한 결과라는 걸 이람은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람은 이미 오래전에 받아들였다.그 누구보다 먼저 체념했고, 빨리 내려놓았다.유리를 향한 제헌의 시선도, 그 곁에 선 사람들이 뿜어내는 분위기도... 이람은 그저 한 번 시선을 머물렀을 뿐, 곧 차갑게 눈길을 거뒀다.세진은 그런 이람의 반응을 곁에서 확인했다.별다른 감정이 실리지 않은 무심한 시선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진은 한 발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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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멀리서 하얀 드레스를 입은 이람이 유리의 눈에 들어왔다.유리는 본능적으로 시선을 피하려고 했지만, 끝내 외면하지 못했다.솔직히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비록 이람이 입고 있는 드레스는 유리 본인이 절대 선택하지 않을 디자인이었고, 브랜드조차 그리 대단해 보이지는 않았지만...군더더기 없이 매끈하게 떨어지는 슬림핏의 하얀 드레스는, 이람의 차갑고 담백한 분위기를 오히려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그리고 중간 길이의 검은 머리는 단정하게 올려 묶였고, 뒤통수에 꽂힌 검은 나무 머리꽂이 하나.목덜미에 살짝 흘러내린 몇 가닥의 머리카락이 단정함 속의 여유처럼 느껴졌고, 옅은 투명한 메이크업은 화려한 자선 만찬장에서 오히려 눈에 띄었다.‘딱 봐도, 콘셉트 잡고 나온 티가 나지.’유리는 괜히 언짢아졌다. 뭔가 특별한 사람처럼 꾸민 듯한 그 분위기, 자연스러운 듯 보이지만 철저하게 계산된 느낌이 너무 거슬렸다.‘무슨... 자기 혼자만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처럼 행동하네.’더 짜증 났던 건, 그 옆에 있는 남자였다.훤칠한 키에 말끔한 인상, 적당히 따뜻하고 절제된 눈빛, 겉으로 보기엔 전형적인 ‘좋은 사람’ 같았다.유리는 입꼬리를 비틀며 생각했다.이순심에게 몇만 원짜리 저가 화장품 몇 개 쥐여주고 얻은 정보에 따르면, 이람은 집에서 사실상 제헌의 ‘가사도우미’나 마찬가지였다.심지어 1년 내내 같은 집에서 살면서도, 제대로 부부관계도 없다고 했다.‘능력도 없고, 사회성도 없는 애가 어떻게 저런 남자를 알아?’‘회사 사람이겠지. 아니면 그냥, 아는 정도겠지.’‘설마 진심으로 마음 쓰는 사이는 아니겠지.’그렇게 스스로 정리하고는, 유리는 더 이상 이람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시선을 천천히 다른 곳으로 돌렸다.정도규는 애초에 이람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그리고 얼마 전 만났을 때, 이람이 보여준 차가운 태도는 그마저도 없던 호감을 완전히 걷어냈다.게다가, 유리를 따라 한 듯한 스타일링.그건 도규가 가장 싫어하는 종류의 ‘흉내내기’였다.‘티도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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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화

황 대표는 이미 여러 경로로 알아본 상태였다.서하준의 수석비서 우세진, 성격 좋기로 유명했고, 실제로도 웬만한 말엔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 사람이라고 들었다.‘기분 나쁜 티도 안 내고, 말실수도 웃으면서 넘기는 사람이라며?’그런데 자신이 한마디 한 것뿐인데, 분위기가 달라졌다.“서 대표님 곧 도착하십니다. 황 대표님은 먼저 자리로 돌아가시죠.”세진의 목소리는 단정하지만, 확실히 이전보다 차가워져 있었다.황 대표는 말문이 막혔다.사회생활 20년 차, 눈치로 먹고산다는 황 대표도 이 정도로 뚜렷하게 ‘선을 긋는’ 반응은 당황스러웠다.‘내가 뭐 잘못 말했나? 방금 그 말, 그냥 살짝 넘겨짚고 농담한 건데...?’이마에서 식은땀이 슬슬 흐르기 시작했다.세진의 표정은 단호했고, 그 여유로운 미소는 온데간데없었다.황 대표는 얼떨결에 이람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혹시 이쪽에서 분위기를 풀어줄까 싶어서.하지만 이람의 표정은 말 그대로 ‘무표정’이었다.시선은 황 대표 쪽에 머물러 있었지만, 아무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눈.‘아니, 이분은 더 무섭잖아?’그제야 황 대표는 깨달았다.조이람... 서 대표가 직접 나서서 건배를 막아줄 만큼 신경 쓰는 인물.괜히 잘못 건드렸다가 무슨 말이 어디서 새어나갈지 모르는 사람.‘큰일 날 뻔했네... 진짜.’황 대표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조용히 한발 물러섰다.공기가 싸늘하게 식은 순간, 갑자기 연회장 중앙홀 입구에서 사람들의 웅성임이 커졌다.“SY그룹의 대표님 오셨습니다!”누군가 흥분 섞인 목소리로 외쳤고, 대기하던 하객들 모두 본능적으로 시선을 문 쪽으로 돌렸다.제헌을 포함한 주요 인물들도 일제히 고개를 들어 입구를 바라봤다.SY그룹.국내 5대 대기업 중 하나.대표이사의 모습은 좀처럼 외부에 드러나지 않았고, 그런 만큼 사람들의 호기심은 더욱 증폭되어 있었다.그 타이밍에, 루미에르 팰리스 자선 만찬의 총괄 책임자이자, 예씨 가문의 장녀인 예미안이 모습을 드러냈다.품위 있는 걸음과 단정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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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유리는 슬쩍 허리를 폈다. 자연스러운 척, 자세를 바르게 고쳐 앉으면서도 주변 사람들의 기류가 미묘하게 달라진 걸 감지했다.‘왜 다들 조용해졌지?’유리는 옆에 앉은 제헌을 힐끔 바라봤다.평소에도 차가운 인상이었지만, 지금은 그보다 한층 더 싸늘했다.표정만 봐도 누구를 향해 있는 감정인지 알 수 있었다.‘서하준?’분위기를 확인한 유리는 도규에게 조심스레 물었다.그러자 도규가 작게 말했다.“서하준, 제헌이 형이야.”그 순간, 유리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형이라고? 강제헌이 그런 얘기 단 한 번도 한 적 없는데?’잠깐의 침묵 뒤에 도규가 덧붙였다.“이복형제. 둘 사이, 엄청 안 좋아.”그 말에 유리는 멍하니 하준을 바라보았다.그리고 이해됐다. 제헌이 왜 저렇게 냉랭했는지, 왜 분위기가 얼어붙었는지.유리는 아쉽다는 눈빛으로 하준을 한 번 더 훑었다.‘아무리 훌륭한 남자라도, 내 손에 들어오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야.’‘손에 잡을 수 없는 남자는 의미 없어.’유리는 그런 여자였다. 멀리서 감탄하는 대신, 직접 손에 넣을 수 있는 사람만이 의미 있었다.그리고 지금 강제헌은 이미 H시 정점에 가까운 인물이었다.외모, 배경, 능력, 자산.그를 넘어설 수 있는 남자는 많지 않다.오늘 같은 자선 만찬 자리에서도,제헌과 나란히 선 자신을 보는 시선은 분명했다.남녀 모두가 선망하는 시선.유리는 그 시선을 즐겼다.‘특히 조이람. 딱 한 번 나랑 눈 마주치더니, 바로 못 본 척 고개 돌리더라.’‘날 앞에 두고, 고개 들 자신도 없겠지.’유리는 자신의 위치에 대해 확신하고 있었다.‘게다가, 저런 남자일수록 눈 높아.’‘서하준 같은 사람은, 어지간한 여자들 눈에도 안 들어오겠지.’‘접근하는 여자마다 다 철벽치겠지.’‘내가 안 되는 거면, 다른 여자들도 다 안 돼.’‘그게 바로 레벨이 다른 사람이라는 증거야.’그렇게 생각하며 시선을 거두려던 순간, 유리는 멈칫했다.그 시야에 이람이 보였다.이람이 등받이에 기대 있던 자세를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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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기성은 말 그대로 충격을 받았다.이람이 우세진 비서와 함께 일하는 줄 알았는데, 하준의 공식 비서라니.‘이게 무슨 상황이야?’‘이건... 강 대표님한테 정면으로 따귀 때린 거잖아?’‘사모님, 미쳤나? 진짜 미친 거 아냐?’기성은 얼굴이 벌게질 만큼 굳은 채, 본능적으로 제헌을 바라봤다.제헌은 차가운 시선을 거두고는 말없이 연회장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다행이야. 애초에 대표님은 사모님한테 아무 감정 없으니까.’‘그게 천만다행이지.’기성은 이람 쪽을 돌아보며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3년이나 한집 살면서도 대표님 마음 하나 못 잡은 이유가 있지.’‘이 정도로 눈치 없고, 멍청하면 답도 없어.’유리는 이람과 하준 사이, 약 50cm 남짓한 거리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너무 가까워.’유리는 본능적으로 불쾌했다.‘조이람, 설마... 서하준 비서 됐다고 해서 유혹이라도 해보겠다는 거야?’‘아니면 강제헌 질투 유발용?’‘진짜 비열하다. 역겹고, 가소롭고. 수준도 없이...’도규는 처음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그저 멀찍이서,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하지만 자신의 아버지가 하준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넬 때, 심지어 이람과도 악수를 나누는 모습을 보자, 도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그보다 더 기가 막힌 건, 이람이 태연하게 악수를 받아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진짜 얼굴에 철판 깔았네. 이 정도면 역대급이야.’도규는 입 안에 모기라도 들어간 듯 불쾌해졌다. 더 이상 보고 있으면 기분만 상할 것 같아 제헌과 함께 자리를 떴다.지후는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이람이 하준의 ‘공식 수행 비서’라는 걸 확인한 후였다.그렇게 시선을 거두는 순간, 재원이 지후를 흘긋 쳐다봤다.지후는 아무 반응 없이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돌아섰다.재원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그깟 어릴 때 일 가지고, 아직도 삐졌나 보지.”그 말을 들은 부연훈이 귀를 쫑긋 세웠다.“지금 누구 얘기야?”“맨날 내가 괴롭혀서 울던 우리 외사촌 동생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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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지금, 무너진 쪽은 강제은이었다.“SY그룹 대표 진짜 잘생겼다...”옆자리에서 영미가 감탄하듯 중얼거리는 소리에 제은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그러자 눈앞에 비친 제은의 얼굴은, 푸르스름하게 질려 있었다. 마치 숨이 멎은 사람처럼.“야, 너 왜 그래?”영미가 당황해 묻자, 제은은 영미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그리고 손에 힘이 들어간 건, 그만큼 두려웠다는 증거였다.“누가 너 이렇게 놀래켰어?”제은은 입술을 떨며, 겨우 입을 열었다.“서... 서하준.”그 이름을 꺼내는 데도 혀가 꼬일 만큼 진심으로 당황한 듯했다.“헐, 너 서 대표님 알아?”영미는 평소부터 잘생긴 남자에게 약한 ‘금사빠’였다.그런 서하준이 누구냐고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그런데 제은의 대답은 너무 충격적이었다.“응. 서하준... 우리 큰오빠야.”그 말과 동시에, 제은의 안색은 더욱 창백해졌다.‘차라리 모르는 사람이었으면 좋았을 텐데...’‘하필 그 서하준이라니. 진짜 끔찍해.’영미는 말이 막혔다.순간, 입술을 달싹였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제은은 괜히 불안해져서 목소리를 높였다.“진짜야! 안 믿기겠지만, 같은 아버지야. 이복이긴 해도.”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영미의 모습을 보자 제은이 성질을 냈다.“야, 왜 말을 안 해? 사람 민망하게!”영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나... 너 좀 부러워졌어.”“흥, 넌 원래 늘 나 부러워했잖아.”“아니, 이번엔 진짜. 너 도대체 뭐냐... J시 명문가 황태자에, H시 상류층 정점 오빠까지. 네가 끝판왕인데?”‘이러니까 강제은이 저렇게 세상을 누비지... 누가 감히 건들겠냐.’하지만 정작 제은은 이를 꽉 물며 고개를 저었다.“서하준... 그런 큰오빠는 필요 없어. 너나 오빠라 부르든가, 난 질색이야.”그 무렵, 자선 만찬은 본격적인 메인 행사로 접어들었다.자선이란 말 그대로, 기부를 위한 밤.예미안이 몇 년 전 시작한 ‘여학생을 위한 산간 지역 고등학교 설립 프로젝트’가 이번 자선 만찬의 핵심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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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유리와 이람은 테이블이 달랐지만, 바로 옆자리인 덕분에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대화가 다 들렸다.유리는 민서를 본 순간부터 무의식적으로 대화를 엿듣기 시작했다.그때, 우세진이 말했다.“오래된 동창이에요.”유리는 순간 시선이 날카로워졌지만, 곁눈질로 확인한 이람과 민서 사이엔 별다른 눈빛 교환조차 없었다.이람은 하준의 옆자리에 조용히 앉아, 필요한 정보 외엔 입을 닫고 있었다.‘내가 괜한 상상을 한 건가?’만약 민서가 이람과 친분이 있었다면, 그 성격에 유리를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그렇다면 루센티스가 잃은 계약 몇 건으론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그때, 옆자리의 정도규가 폰을 집어 들고 잠시 화면을 들여다봤다. 정홍도 회장에게서 메시지가 온 것이다.[사람 하나 소개해줄게.][누군데요?][이따가 이쪽으로 와. 직접 얘기하지.]정홍도는 행사 초반에 민서를 봤을 때, 그녀가 루센티스 대표란 것까진 인지했지만, 이렇게까지 서하준과 가까운 사이는 미처 몰랐다.‘서하준 옆 테이블이라니, 장난 아닌데?’정홍도는 민서와 자기 아들을 연결시켜보고자 했다. 꼭 비즈니스가 아니어도, 업계 네트워크는 많을수록 좋다는 판단이었다.[네, 아버지.]도규는 짧게 답했다.무대 위에서는 예미안이 ‘여학생을 위한 산간지역 고등학교 설립 프로젝트’의 추진 현황을 설명 중이었다.“3년간 15곳이 설립됐으며, 앞으로 100곳까지 확대할 예정입니다. 교육의 질과 생활 환경 개선을 위한 지원도 이어집니다.”모든 소개가 끝난 후, 기부 순서가 이어졌다.강제성이 없지만, 기부 금액은 대부분 억 단위였다.기부자 명단이 스크린에 뜨자 장내가 조용해졌다.1위는 총 3명.예미안, 서하준, 강제헌.각자 예씨, 서씨, 강씨 가문의 이름을 걸고, 무려 200억을 기부했다.마지막은 단체 기념 촬영.물론 원하지 않는 사람은 미리 퇴장해도 됐다.하준은 그런 행사엔 관심이 없었다.민서 역시 먼저 자리를 뜨기로 했다. 그러다 조용히 하준 쪽으로 다가가 예의 있게 악수를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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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화

황 대표는 이람의 설명을 들은 뒤, 눈치를 살피며 다시 말을 꺼냈다.“강 대표님이 정말 사모님을 많이 아끼시더라고요. 직접 저런 분들께 소개도 시켜드리고... 지금 여기저기서 들리는 말이, 사모님이 무슨 프로젝트만 한다고 하면 강 대표님이 바로 자금 지원한다던데요?”그는 혀를 찼다.“에이, 역시 아내 아끼는 남자가 성공한다니까요. 반대로 못 챙기면 인생 꼬이고. 강 대표님은 대박 나실 분이네요.”그런데 옆에 있던 이람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황 대표는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조 비서님?”이람은 잔잔한 미소만 지은 채 말했다.“황 대표님, 그러면 업무 보시죠.”“아, 네... 네에...”황 대표는 혼자 머쓱해졌다.‘아니, 또 뭐 잘못 말한 거야? 왜 또 안 좋아지신 거지...?’하준 쪽 상황이 아직 정리되지 않아 여유가 생긴 이람은 물 한 잔을 챙기러 잠깐 자리를 떴다.그러다 문득, 한 무리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원로 예술가 양영근 선생을 발견했다.양영근은 국내 화단에서 손꼽히는 인물로, 예술계의 산증인 같은 존재였다.이람은 어린 시절 어머니 손에 이끌려 양영근의 한국화 수업을 들었던 적이 있었다.말하자면 제자였지만, 너무 오래전 일이라 지금의 양 선생은 기억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가서 인사라도 드릴까?’망설이던 순간, 갑자기 누군가가 손을 뻗어 이람을 반쯤 가려진 휴게실 쪽으로 끌어당겼다.끌려온 이람의 눈에 들어온 사람은,바로 강제은이었다.이람은 단번에 몸을 돌려 다시 걸어가려 했다.“새언니, 거기서 멈춰요!”이람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제은은 믿기지 않는 듯 이람의 등을 보며 서 있었다.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힐을 신은 채로 바닥을 꿍꿍 울리며 따라가기 시작했다.이람은 고양이처럼 행사장을 한 바퀴 돌았다.제은은 그 뒤를 쫓았다.사람들이 절반가량 빠져나간 시점까지도 그 추격은 계속되었다.‘이 정도면 인내심 하나는 대단하네.’이람은 결국 걸음을 멈췄다.제은은 이를 악물고 다가와 쏘아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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