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후, 나는 그의 형의 신부가 되었다: Chapter 91 - Chapter 100

100 Chapters

제91화

하준은 세진을 흘긋 쳐다봤다.세진은 곧바로 가득 따라놓은 레드와인 잔을 들고 와서, 제은에게 조심스럽게 내밀었다.세진의 얼굴엔 살랑이는 미소가 어렸다. 매너까지 갖춘 표정이었다.하지만 제은은 그런 세진이, 하준 못지않게 무서웠다.제은은 거의 반사적으로 와인잔을 받았다.그리고 다시 하준을 바라봤다.하준과 눈이 마주친 순간, 딱 1초.제은은 겁에 질려 황급히 눈을 돌렸다.“저... 저 잘못했어요... 큰오빠...”목소리는 바르르 떨렸다.“내가 직접 해야겠어?”하준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제은은 이를 악물더니, 결국 들고 있던 와인잔을 들어 자신의 비싼 분홍색 드레스 위에 그대로 들이부었다.촤악-와인이 쏟아지는 소리가 정적을 갈랐다.제은은 그제야 조심스럽게 와인잔을 세진에게 돌려주었다.그 손끝에는, ‘제발 받아주세요’라는 말이 써 있을 듯 공손함이 깃들어 있었다.세진이 잔을 받아들자, 제은은 하준을 향해 눈물기 머금은 억지웃음을 지었다.“큰오빠... 먼저... 가볼게요.”분명 그렇게 말했는데도, 하준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다.‘진짜 무서워... 나 이제 못 버티겠어...’제은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대로 등을 돌려 뛰기 시작했다.영미는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다가, 급히 경호원 하나에게 외투를 달라고 해선 제은에게 달려가 걸쳐주었다.그렇게 두 사람은, 쫓기듯 차에 올라탔다.쿵!문이 닫히고, 곧바로 잠겼다.가속페달이 눌리며 차는 한 블럭을 달려가서야 멈췄다.운전석 쪽에서 영미가 물었다.“제헌 오빠한테 말할까?”제은은 하준 얘기만 나와도 벌벌 떨었다.예전엔 제은이 괜히 과장하는 줄 알았던 영미도, 이제는 달랐다.‘와, 진짜구나. 그냥 눈빛만으로도 애 말 못 하게 만들 줄이야.’하준은 말보다 분위기로 누르는 사람이었다.그 앞에선 핑계 하나 댈 용기도 나지 않았다.‘근데... 이람 언니는 도대체...’영미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어떻게 저런 사람이랑 같이 지낼 수 있지? 강철 심장인가?’제은의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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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화

“조이람, 너 퇴사할 때까지 기다릴 거야.”제은은 씩 웃으며 문을 나섰다.조이람이 퇴사하고 나면 하준은 조이람의 상사가 아니게 된다.그렇다면 굳이 이람을 감싸줄 이유도 없을 터.그걸 아는 제은은 이제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하지만 영미는 복잡한 표정으로 혼잣말했다.‘예전의 이람 언니는 그냥 안 따졌던 거고... 지금은 따지는 거야.’‘근데 제은이 이람 언니랑 맞붙어서 이길 수 있을까?’‘솔직히... 글렀지.’...제은이 나가고, 이람은 바로 하준에게 고개를 숙였다.“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서 대표님.”방금 그 순간, 이람은 정말 손이 올라갈 뻔했다. 그랬다면 제헌은 분명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다.심지어 일이 강수철 회장님 귀에라도 들어간다면, 정당성은커녕, 오히려 이람이 몰매를 맞았을 수도 있었다.‘아까는... 감정이 너무 앞섰어. 진짜 위험했어.’이람은 다시 한번 정중히 말했다.“정말 감사합니다.”하준은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옆에 있던 세진이 조용히 덧붙였다.“괜찮아요. 강제은 씨가 맞을 짓을 했죠.”하준은 고개를 살짝 돌려 이람을 바라봤다.고요한 눈빛.드레스 위로 와인이 흥건히 번져 있었지만, 이람의 표정에는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처음부터, 익숙하다는 듯 담담했다.‘조이람... 원래 이런 대접 받고 살았던 건가?’‘강제헌은 그걸 알기나 할까?’그 순간, 이람의 시선이 하준을 향해 돌아왔다.하준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제은이가 말로만 사과해봤자 의미 없어요. 그래서 내가 직접 사과하라고는 안 시켰어요.”제은이 아무리 잘못했어도, 그 아이는 어쨌든 하준의 여동생이었다.그래서 이람에게는 한마디라도 더 설명해두고 싶었다.“그 마음만으로도 충분합니다.”이람은 고개를 숙였다. 사과보다, 저렇게 와인을 스스로 뒤집어쓴 모습이 오히려 속이 풀릴 정도였다.하지만 하준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이 정도에 겁먹고 눌려 있으면, 강제헌의 아내라는 자리가 무색하네요. 강제은 같은 애한테 왜 쩔쩔매요?”이람은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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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화

재원은 순간 멈춰 섰다.그러더니 이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연훈의 팔을 끌어 잡았다.“가자.”앞서 걷던 재원은 몇 걸음 가지도 않아 다시 돌아왔다.그리고는 세진의 팔까지 확 잡아챘다.“눈치 좀 챙기자, 응?”불쾌할 정도로 정색한 목소리였다.세진은 말이 없었다.‘유 대표님처럼 눈치 빠른 사람도 드물지...’‘근데 아쉽게도 엮을 사람은 잘못 보셨네요.’이람은 하준을 향해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무슨 상황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하준은 짧게 말했다.“일단 타요.”이람은 별말 없이 하준의 벤틀리 조수석에 올랐다.운전기사는 앞서 출발한 연훈의 차량을 따라 천천히 차를 몰았다.그런데 갑자기, 하준의 낮고 단호한 목소리가 났다.“기사님, 잠깐 세워주세요.”차는 곧바로 갓길에 멈춰섰다.이람은 백미러를 통해 하준과 눈이 마주쳤다.하준은 고개를 약간 돌려 말했다.“내려요.”이람은 곧바로 차에서 내렸다.운전석 쪽으로 걸어가자, 하준이 천천히 창문을 내렸다.이람은 여전히 상황을 이해 못 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사실 지금도, 하준이 무슨 생각으로 움직이는지 도무지 읽히지 않았다.그때, 차분하고 낮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업무 중 생긴 손해는 회사가 책임져요. 백화점 가서 새 옷 사요.”그리고는, 블랙카드 한 장이 건네졌다.“비밀번호는 111111.”‘겨우 옷 한 벌인데... 이걸 왜 받지?’이람은 거절하려 했지만, 하준의 눈을 마주친 순간 그만 얼어붙었다.검은 눈동자. 깊고 단단해서, 무심한 듯했지만 미묘한 압박감이 느껴졌다.‘안 받으면 안 될 것 같은 눈인데...’결국 조심스럽게 그의 손에서 카드를 받았다.“감사합니다.”짧게 인사한 뒤 이람은 백화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하지만 몇 걸음 가지 않아 다시 돌아섰다.“서 대표님. 정장... 여기요.”그녀는 조심스럽게 하준의 외투를 내밀었다.그러자 하준은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더러워졌잖아요.”‘서하준... 결벽증 있구나.’이람은 더 이상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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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화

“네.”이람은 무심코 그렇게 대답했다.하준은 다시 말했다.“무서울 거면, 다음엔 하지 마요.”“네. 서 대표님을 더 이상 이용하지 않겠습니다.”이람은 아주 진지하고 솔직했다.하준은 잠시 말이 막혔다.목소리는 평온했고, 응답은 자연스러웠다.어디를 봐서 겁먹은 사람 같다는 건지.‘진심이야, 아니면 뻔뻔한 거야.’하준은 굳이 더 말하지 않았다. 말해봤자 스스로 피곤할 것 같았다....그날 밤, 이람은 하준과 함께 2차 모임 장소로 이동했다.럭셔리 비즈니스 멤버십 라운지.고급 포커 테이블이 놓인 프라이빗 룸이었다.“아니 그래서 혼자 데려간 거야? 알고 보니 옷 사러 같이 간 거였어?”재원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그리고 시선을 이람에게로 옮겼다.“이람 씨가 직접 말해봐요. 우리 서 대표님, 체면도 챙기고 마음도 챙기고, 얼마나 스윗한 사람인지...”하준은 그 말에 일절 반응하지 않았다. 관심 없다는 듯, 조용히 시선을 돌렸다.이람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주머니에서 블랙카드를 꺼내 조용히 건넸다.하준은 아무 말 없이 그것을 받아 들고, 포커 테이블 옆 블랙 소파에 느긋하게 앉았다.차 안에서보다 훨씬 여유로운 모습이었다.예전 하준의 사무실에 갔을 때도, 그는 항상 책상보다 소파에 앉아 있었다.그 모습에서 이미 눈치챘었다.하준은 격식을 챙기기보다, 상황에 따라 편안하게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걸.그리고 지금.이람은 다시 확신했다.‘친구들이랑 있을 땐 더 자연스럽네.’‘기질은 차가워 보여도, 사람 자체가 차가운 건 아니야.’‘그래서 오해받을 수도 있겠어.’“봤지, 연훈아? 너 아까 뭐라 그랬지? 서 대표님이 돈 냈을 리가 없다고? 한 벌 옷 가지고 뭐. 우리 서 대표님이 이람 씨한테 그 정도도 못 써?”연훈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얇은 웃음만 지었다.‘이람 씨는 선이 있는 사람이야.’‘돈 안 받는 건, 그저 그 정도의 감각이 있다는 뜻이지.’굳이 설명할 필요 없다고 느낀 연훈은 말을 돌리듯 조용히 물었다.“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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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화

“이람 씨, 진짜예요. 저번에도 서 대표님이 겨우 한 판 이겼거든요? 근데 우리 셋이 그다음에 한 판씩 크게 이겨서 서 대표님이 힘들게 딴 거 전부 뺏겼어요. 결국엔 마이너스 됐죠.”재원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그 말투엔 약간의 놀림과, 은근한 통쾌함이 섞여 있었다.이람은 조용히 하준을 바라봤다.그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말이 없다는 건... 진짜라는 뜻이었다.“계속하죠.”이람이 담담하게 말했다.“우린 봐주는 거 없어요.”연훈이 단호하게 선언했다.세진도 고개를 끄덕였다.“오늘은 우리 셋 다, 젠틀한 척 안 할 거니까 그리 아세요.”재원은 옆에서 분위기를 띄웠다.하준이 드물게 이람에게 목표치를 줬다는 게 신기한 듯, 그 자체를 재미 삼아 즐기고 있었다.‘솔직히 이람 씨가 계속 지면 더 오래 놀 수 있잖아.’그게 재원의 솔직한 계산이었다.세 사람의 도발적인 분위기 속에서, 이람은 오히려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괜찮아요.”재원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가 이어졌다.“어머, 어머! 서 대표님! 조 비서님이 저희한테 도전장 던졌는데요? 오늘은 우리 셋 중 누구한테 거시겠어요? 조 비서님? 아님 우리 셋?”하준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하지 않았다.아예 관심이 없다는 듯.그러자 이번엔 연훈이 살짝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이람 씨, 미안하지만... 난 안 져줄 거예요.”세진도 곧바로 분위기에 합류했다.“나도. 오늘만큼은 선 긋고 갑시다.”이람은 잠시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는 예전엔 오로지 익스트림 스포츠에서만 느끼던 그 짜릿한 긴장감이 다시 떠오르는 걸 느꼈다.‘승부욕이 생기면... 아무 생각도 안 들어.’‘그게 나한테 제일 좋은 상태야.’그 순간, 이람의 머릿속엔 오직 하나만 있었다.‘이겨야 해.’그 감정은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좋았다.마치 현실의 모든 소음이 사라지는 듯한 집중.이람은 카드를 섞는 세진의 손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괜찮아요. 덤벼요.”하지만 첫판이 끝난 뒤, 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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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화

하준의 시선은 이미 오래전에 이람에게서 떨어져 있었다.대신 손가락으로 테이블 위 푸짐하게 쌓인 음식들을 가리켰다.“식사하죠.”재원이 눈치를 채고 먼저 입을 열었다.“이람 씨도 같이 먹어요.”이람은 무심한 듯 앉아 있는 하준의 얼굴을 살폈다.표정도 없고, 말도 없다.‘뭘 생각하는지 도통 모르겠네.’그래도 별말 없는 걸 보니, 아까 그 얘기는 일단 넘어간 것 같았다.이람은 테이블 위 음식을 바라보다 조용히 말했다.“전 먼저 가보겠습니다. 식사는 편히 하세요.”갑작스러운 말에 재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벌써 가요? 약속 있어요?”이람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재원이 하준을 팔꿈치로 툭 치며 말했다.“서 대표님? 이람 씨 가지 말고 밥 먹고 가라고 해.”그 말에 하준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이람 씨는 하준이 말만 듣는단 말이지.’재원은 슬며시 웃었다.이람은 자리에 일어서며 예의 바르게 말했다.“다들 편히 드세요. 오늘은 감사했습니다.”그에 맞춰 재원도 따라 일어났다.“아유, 뭐가 그렇게까지 감사해요. 솔직히 제가 나섰어도 강제은을 혼쭐낼 수 있었는데, 우리 하준이 더 적격이니까 양보한 거고요. 아무튼 밥은 먹고 가요.”이람은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내일 뵐게요.”‘아, 내일 테니스 약속 있었지?’재원은 그제야 기억났고, 더는 붙잡지 않았다.“그러면 제가 바래다줄게요.”재원은 원래 그런 식으로 사람 챙기는 데 익숙한 남자였다.“아니에요. 금방 택시 부르면 되니까요.”“이 밤에 택시 위험해요. 제가 데려다줄게요.”‘남자들이 너무 다정한 것도 귀찮다니까...’이람이 어떻게 거절할지 고민하는 순간, 하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그리고 말도 없이 먼저 문 쪽으로 향했다.재원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어? 어디 가?”하준은 짧게 대답했다.“심심해서. 들어가려고.”‘뭐야, 방금 음식 시켜놓고 왜 갑자기 나가?’하준이 조용히 문을 열고 나가자, 이람도 세 사람에게 가볍게 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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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화

하준은 신발을 갈아 신지 않았다.그걸 본 이람은 다시 집에 가서 덧신을 챙겨올 생각을 접었다.이 집엔 벌써 두 번이나 온 적이 있었다.그때마다 방 안은 먼지 하나 없이 깔끔했다.아마 매일 가사도우미가 안팎으로 꼼꼼히 청소하는 듯했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예전엔 이람 혼자였고, 오늘은 하준도 같이 있었다.‘묘하게 낯설어... 근데 또, 못 견딜 정도는 아니고.’이람은 가장 먼저 하준의 정장이 담긴 종이백을 조심스레 내려놓고, 손에 들고 있던 야식 봉투를 식탁 위로 옮겼다.자연스럽게 포장을 풀고, 반찬들을 정리했다. 마치 늘 하던 일처럼 익숙한 동작이었다.하준은 손을 씻고 돌아와 식탁 맞은편에 앉았다.그걸 본 이람은 조용히 말했다.“대표님, 맛있게 드세요. 전 이만 가볼게요. 안녕히 주무세요.”딱 그 정도 인사였지만, 그 순간 하준의 목소리가 가볍게 걸렸다.“이렇게 많은데, 나 혼자 못 먹어요.”이람이 일부러 양을 절반으로 줄이긴 했지만, 하준이 아까 시킨 양 자체가 워낙 넉넉했기에 결국 지금 이 양도 두 사람 분량 이상은 됐다.‘그냥 가고 싶은데...’이람은 잠깐 머뭇거렸다. 거절해도 이상하지는 않았지만, 괜히 너무 여러 번 사양하면 무례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다.‘어차피 밥 한 끼잖아.’하준은 이미 젓가락을 들었고, 더는 이람에게 관심이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이람은 말없이 맞은편 자리에 앉아 준비된 일회용 젓가락을 뜯었다.자선 만찬 때 거의 먹지 못했고, 그 이후로는 정신없이 집중한 업무가 이어졌다.이람도 꽤나 배가 고팠다. 한 입 두 입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두 사람은 다 말이 없었지만, 이상하게 어색하지 않았다.심지어 이람은 편안했다.그 반면 하준은 음식들을 하나하나 건드리며 입에 맞지 않는 것들은 피했다.‘입맛에 안 맞는 건가?’이람은 기억력이 좋은 편이었다.방금 시킨 메뉴 대부분은 하준이 전에 시킨 것과 같았다.자신이 잘못 기억했을 리는 없었다.그럼 남은 것들은 유재원이나 다른 사람들 입맛에 맞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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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화

이람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서하준은 자기 원칙이 확실한 사람이야.’‘자기 돈 아니면 절대 안 받지만, 자기 몫이라 생각하면 한 푼도 안 남기고 챙기지.’야식을 다 먹은 뒤, 이람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포장 용기를 정리하기 시작했다.하준이 소파에 기대앉은 채 말했다.“그냥 두세요. 그건 조 비서가 할 일이 아니에요. 정리하는 사람 따로 있습니다.”이람은 그 말이 나오기 전부터 이미 절반 이상 정리한 상태였다.하준이 결벽증이 있다는 걸 알기에 미리 손을 쓰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었다.‘어차피 여기까지 했는데...’결국 이람이 다 정리한 뒤, 쓰레기봉투와 하준의 외투를 들고 현관으로 향했다.“안녕히 주무세요.”짧게 인사한 뒤, 그녀는 문을 열고 조용히 나갔다....하준은 여전히 소파에 앉아 있었다.잠시 멍하니 있다가 아까 재원이 보낸 메시지를 열어봤다.[아까 내가 이람 씨 바래다준다고 했더니, 넌 야식 다 시켜놨다며 갑자기 심심하다고 나가더라? 그 ‘갑자기’ 좀 너무 갑작스러운 거 아냐? 솔직히 말해봐, 너 이람 씨 데려다주고 싶었던 거지?]하준의 답장은 짧았다.[응.][아, 이 여우 같은 놈. 내가 그럴 줄 알았어.]이어서 도착한 다음 메시지는 훨씬 길었다.[진짜 웃긴 건 뭔지 알아? 이람 씨가 아까 너한테 고맙다고 정중하게 인사했잖아. 근데 넌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있더라?][결국 내가 대신 대답해줬잖아. 넌 왜 그렇게 대답 하나도 안 하냐. 그러니까 너 혼자 사는 거야. 근데 또 그런 네가 갑자기 야식까지 시켜놓고, 뭐 하는 건데? 진심 뭐냐고.]하준의 답장은 여전히 간단했다.[아무 생각 없었어.]‘조이람 집이 옆이라서 그냥 데려다준 건데, 뭐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생각 없기는. 내일 이람 씨랑 테니스 약속한 거 알지? 근데 그 사람 테니스 처음이래.][초보자가 테니스 적응하는 거 얼마나 어려운지 너도 알잖아? 내가 가르칠게. 너는 옆에서 보기만 해.]하준은 타이핑을 멈췄다가, 한 박자 늦게 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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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화

[이건 그냥 가정이야. 현실에선 절대 성립되지 않는다고. 그러니까 굳이 현실적인 반박은 필요 없어. 나는 그냥 네 생각이 궁금해서 묻는 거야.]민서가 말을 이어갔다.[그리고, 서하준이랑 강제헌 사이에 어떤 혈연관계도 없다고 가정하자. 그런 상황에서 서하준이 너를 좋아한다면, 넌 어떨 것 같아?]현실과 분리된 상상은 결국 공상에 불과했다.이람은 그런 류의 ‘가정’들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다.‘하지만... 민서랑 이런저런 수다 떠는 건 괜찮지.’그래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그리고 이람은 꽤 진지하게 말했다.“일단 첫 번째 가정은, 서하준이 나를 좋아한다는 거고, 두 번째는, 서하준이 강제헌과 전혀 관련 없는 사람이라는 전제지? 그 두 가지가 모두 성립된다면...”“글쎄, 서하준 같은 사람을 거절할 여자는 많지 않을걸? 잘생겼지, 부자지, 몸매도 좋지. 여자로서 바라볼 수 있는 외적 조건은 다 갖췄으니까.”민서가 기대하듯 물었다.[그래서? 너의 결론은?]이람은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사람의 생각은 자기 경험에 따라 달라져. 민서야, 너도 알지? 내가 강제헌이랑 그 끔찍한 결혼을 겪고 나서, 가장 크게 바뀐 게 뭔 줄 알아?][연애관?]“맞아. 연애관이 완전히 바뀌었어. 친구는 괜찮아. 서로 좋은 감정 있으면 주고받으면 되지. 그런데 연애는, 이젠 난 철저한 ‘이기주의자’가 되려고 해.”“앞으로 내가 누굴 만나게 되더라도, 그 사람은 반드시 날 아끼고, 사랑하고, 보듬어줘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날 우선순위에 두는 사람이어야 하고. 그게 안 된다면, 그 사람은 나의 대상이 될 수 없어.”이람의 말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엔 단단한 확신이 있었다.“그러니까 네가 물은 그 가정, 서하준이 날 좋아한다고 해도, 나는 안 만난다고.”민서가 조용해졌다.이람은 말을 이었다.“같이 있은 시간은 짧지만... 내가 지금껏 느낀 바로는, 서하준이라는 사람은, 설령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해도... 자기보다 상대를 우선으로 두는 성격은 절대 아니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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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화

“그럼 뭐, 둘이 잘 되길 바라야지.”온라인의 여론이나 현실이나, 결국 한통속이라는 걸 이람은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놀랍지도 않았다.민서는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한편으론 이람이 별로 신경 안 쓰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고, 한편으론 강제헌과 하유리가 너무 역겨워서 화가 났다.‘그래도, 지금은 이람이가 중요하지.’‘쓸데없는 사람들의 말 때문에 또 상처받는 건 싫어.’민서는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고, 둘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후 전화를 끊었다.이람은 진심으로 강제헌과 하유리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하지만 무심코 핸드폰을 열어 실시간 검색어를 눌렀다.둘의 이름은 대충 훑고 지나갔다.스크롤을 맨 아래까지 내려봐도 ‘서하준’이라는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이 정도 규모의 자선 행사면 노출이 클수록 좋은데...’‘예씨 가문이라면 당연히 대대적으로 홍보했을 텐데...’하준처럼 생긴 사람이라면, 사진 한 장만 올라와도 단박에 실시간 검색어 1위감이다.그런데 온라인에는 사진 하나 없이 조용했다.‘자선 만찬에 그렇게 많은 기자들이 왔는데...’‘기사에 올라간 사진이나 영상도 다 검수된 거겠지.’‘결국 본인이 원치 않았다는 뜻이겠네.’하준은 원래부터 조용하고 절제된 사람이었다. 굳이 자신의 얼굴을 이용해서 이슈몰이를 할 사람은 아니었다.예씨 가문에서도 하준의 성향을 아는 만큼 억지로 노출을 시키지 않았을 것이다.반면 강제헌과 하유리가 검색어에 오른 건, 명백히 제헌의 ‘허락’ 아래 이루어진 결과일 것이다.‘진짜 온 세상에 알리고 싶을 정도로 사랑하나 보네.’‘그래, 그럼 나는... 마음으로라도 축하해 줘야지.’이람은 핸드폰을 끄고 조용히 일어났다.화장을 지우고 세수하며 마음도 같이 씻어냈다.강제은이 엉망으로 만든 드레스는 이미 버렸고, 새로 산 원피스는 벗어 세탁기에 넣었다.샤워를 마치고 나와 파자마로 갈아입은 이람은, 곧장 책상 앞에 앉았다.‘이제는 감정 낭비보단, 일이나 하자.’...재원과의 약속은 오후 세 시였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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