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후, 나는 그의 형의 신부가 되었다: Chapter 71 - Chapter 80

100 Chapters

제71화

이람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하지만, 직접 귀로 듣는 건, 또 다른 감정이었다.‘사람이 싫은 상대는 안 보면 괜찮다가도, 한 번 마주치면...’ ‘단 1초의 불쾌함으로도 기분이 틀어지지.’그래서 제헌을 다시 마주칠 때마다, 이람은 어김없이 마음 한구석을 다치는 기분이었다.하지만 오늘은 그 상처조차 느껴지지 않았다.아니, 느껴지긴 했지만 아주 미세하게.‘별로 아프지 않네. 그냥... 아무렇지도 않아.’진짜 아무렇지 않았다.제헌을 보며, 단 한 톨의 기대도, 미련도, 원망도 들지 않았다.무감각. 감정의 진공 상태....화장실에서 나오는 순간, 제헌의 시야에 이람이 들어왔다.처음엔 말없이 시선을 두다, 전화를 마친 제헌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이람을 봤다.표정은 평소처럼 무심했고, 하지만 눈빛만은 조금 달랐다.흘긋 보는 수준이 아니라, 제대로... 이람을 ‘살폈다’.이람은 오늘, 달라 보였다.하얀 정장 차림.어디 브랜드인지 도무지 감이 안 오는데, 원단도 좋고 핏도 잘 맞는다.깔끔하고, 단정하면서도 어딘가 차갑고 날이 서 있었다.‘예전엔 안 저랬는데...’그 변화가 제헌에겐 꽤나 불편했다.“여긴 왜 왔어?”제헌이 먼저 말을 꺼냈다.차갑고, 건조하게.이람은 당연히 진실을 말할 생각이 없었다.이 자리에 온 건 민서 때문이었다.그리고 민서는 유리의 자존심을 밟아줬다.그건 곧 이람을 대신한 응징이었다.만약 제헌이 이 사실을 안다면?민서를 단순히 ‘견제’하는 수준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그가 사랑하는 여자를 누가 건드렸다고 느끼는 순간, 그 결과는 계약 몇 개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그건 동시에, 제헌이 이람을 얼마나 무시하는지에 대한 증거이기도 했다.‘내 가족, 내 친구, 내가 가진 어떤 것도...’‘이 사람은 단 한 번도 신경 써준 적이 없었어.’그 생각에 이람은 담담하게 답했다.“밥 먹으러 왔어. 여기 말고는 마땅한 데가 없어서.”제헌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하지만 곧 아무렇지 않게 표정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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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유리야, 진민서가 나 잘랐어. 뭐, 나도 솔직히 더 다니고 싶진 않았으니까 괜찮아. 근데 너 오늘 갑자기 여기까지 온 거면 아직 근처겠네? 점심이나 같이 먹자. 오랜만에 얘기도 좀 하고.]유리는 불쾌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장정호 따위가 나랑 점심을? 추억팔이는 무슨.’도규가 유리의 굳은 표정을 보고 물었다.“왜 그래?”“스팸 문자야.”유리는 대답하자마자 장정호를 차단했다....제헌과 마주치는 걸 피하기 위해, 이람과 민서는 함께 식사하고 조금 기다렸다가 시간차를 두고 나왔다.이람은 민서가 술을 마신 것이 걱정되어 민서를 집까지 데려다주려 했다.“괜찮아. 남자친구가 데리러 와.”민서는 담담하게 말했다.이람은 민서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냥 잠깐 사귀는 사이야. 사귄 첫날에 6개월만 만나자고 합의했거든. 그래서 굳이 너한테 말 안 했지. 근데 계산해보니까, 이제 진짜 몇 주 안 남았네.”민서가 말했다.이람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그럼... 세진 씨랑은?”민서는 흥미롭다는 듯 이람을 바라봤다.“너 혹시 우리 이어줄 생각이야?”“아니, 그냥 궁금해서.”이람이 어색하게 웃었다.민서는 혀를 찼다. 그러곤 이람의 궁금증을 풀어주듯 말했다.“세진이랑은 아무 일 없어. 진짜 아무것도. 근데 걔가 나 좋아하게 되고, 6개월짜리 연애도 괜찮다고 하면... 뭐, 한 번쯤은? 지금의 우세진, 옛날보다 훨씬 귀엽거든. 꽤 마음에 들어.”민서는 장기 연애는 싫어하지만, 단순한 육체관계도 싫어했다. 연애하면 정말 연인처럼 지냈다. 같이 밥 먹고, 같이 자고, 같이 산책도 하고. 단, 딱 6개월만.이건 조금 전 대화에서 이람이 처음 들은 얘기였다.이람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역시, 넌 나만 사랑하지.”민서는 이람에게 손키스를 날리더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사랑은 외로운 마음... 너의 미소를 이해 못 하고...”이람은 할 말을 잃고 고개를 저었다.“진짜 못 말려.”민서의 남자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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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화

이순심이 매장 직원에게 물어본 결과는 전혀 예상 밖이었다.이람이 가져간 정장은 제헌의 것이 아니라고 했다.‘그러면 누구 거야? 설마 다른 남자? 그럼 이건... 바람이잖아?!’순간 이순심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하지만 곧 스스로를 다잡았다.‘아니야,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내가 사모님이 어떤 사람인지 모를까 봐? 그런 짓 할 사람이 아닌데.’이순심은 계속 이람 곁에서 봐온 사람이었다.세상 모두가 바람피워도 이람은 아닐 것이다.이순심은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정리했다.‘아마... 사모님이 강 대표님 몰래 정장 맞췄겠지.’‘그동안 그렇게 혼자 소란 떨더니, 강 대표님은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잖아.’‘그러니 이제 체면도 구겨졌겠다, 사모님이 먼저 선물 핑계로 명분 만들려는 거지.’이순심은 다시 눈을 굴렸다.‘하지만 헛수고야. 강 대표님은 사모님이 주는 건 손끝 하나 안 대잖아.’‘그 비싼 맞춤 정장도 결국 옷장에 먼지만 쌓이겠지.’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음속에 쐐기를 박았다.‘누굴 탓해. 다 사모님이 자초한 일이지.’‘이제 와서 선물 하나로 용서받으려 해도, 강 대표님이 그럴 분은 아니야.’...이람은 하준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결벽증 수준의 깔끔함은 절대 간과할 수 없었다.그래서 집에 들러 신발 커버를 챙긴 뒤, 하준의 집으로 향했다.현관문 앞에서 익숙하게 ‘111111’ 비밀번호를 눌렀다.삑- 전자음이 울리고, 자동문이 스르륵 열렸다.문을 열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탁 트인 거실, 거대한 통유리 창으로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흰 대리석 테이블은 빛이 반사될 만큼 반질반질했다.이람은 조심스럽게 시계와 정장이 담긴 박스를 놓았다.그리고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뒤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누가 있어?’이람이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니, 누군가 핸드폰을 들고 서 있었다.유재원이었다.놀랄 일은 아니었다.재원은 하준의 친구였고, H시에 들를 때마다 하준의 집에 머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그런 의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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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이람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덤덤히 말했다.“유 대표님, 전 아직 업무 중이라서요. 회사로 돌아가 봐야 해요.”말을 끝내자마자 이람은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재원은 그 자리에 멈춰 선 채,‘와, 진짜... 이렇게까지 차가울 일인가?’“잠깐만요.”재원은 이람이 방금 힐끗 봤던 진열장 앞으로 다가갔다. 손가락으로 컵 하나를 가리키며 넌지시 물었다.“이거, 이람 씨가 준 거 맞죠? 폴라리스.”혹시 이람이 인정만 한다면, 재원은 분명 자기 머릿속에서 제법 자극적인 드라마 한 편을 찍었을 것이다.하지만 이람은 단칼에 말했다.“아니에요.”“진짜 아니에요?”재원이 다시 물었고, 이람은 순간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러곤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유 대표님의 상상력, 정말 대단하시네요. 하지만 정말 아니에요.”그 말만 남기고 이람은 재차 등을 돌려 그대로 나갔다.이번엔 정말, 뒤도 안 돌아보고.재원은 조용히 닫히는 현관문을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씰룩였다.그는 슬쩍 진열장으로 다가가 ‘폴라리스’ 머그컵을 집어 들었다.컵 바닥을 살펴보니, 역시나 거기엔 ‘POLARIS’라는 각인이 선명했다.곧바로 다시 컵을 제자리에 올려놓았다.‘감각이 틀리진 않았어.’‘근데 얼굴에서는 티가 하나도 안 나네.’‘진짜 이람 씨, 무슨 고위 외교관이야?’‘표정 하나 안 흔들리네.’그 순간, 참지 못하고 하준에게 전화를 걸었다.[왜?]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꽤 싸늘했다.재원은 그 차가운 기운에 잠시 멈칫했지만, 본능적으로 물었다.“폴라리스, 진짜 이람 씨가 준 거 아니야?”한참 정적이 흐르고, 하준이 낮고 날카롭게 물었다.[너 지금 우리 집이냐?]재원은 슬쩍 웃으며 말했다.“응, 게다가 이람 씨도 봤어. 같은 집에서 마주쳤다니까? 내가 너랑 동거하냐고도 물어봤어.”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뚝!전화가 끊겼다.“뭐야??”재원은 어이없다는 듯 전화를 다시 걸어봤지만, ‘통화 중입니다’라는 멘트만 들려왔다.‘크, 진짜 여우 같은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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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제헌은 코웃음을 쳤다.이순심의 말이 너무도 어이가 없었다.“내 식욕 떨어뜨리지 말고.”단호하게 말한 뒤, 젓가락을 다시 들었다.이순심은 제헌의 싸늘한 표정에 더는 입을 열 수 없었다.“죄... 죄송합니다.”머리를 조아리고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솔직히, 이순심 본인도 그런 추측은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데...’이람은 원래부터 차가운 사람이었다.말투도, 눈빛도, 행동도 전부 딱딱하고 거리감이 있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제헌 앞에서는 그 얼음장이 서서히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제헌만 있으면, 이람은 조금씩 부드러워졌고, 눈빛에서도 따뜻함이 보였다.하지만 제헌이 없을 땐, 다시 차가운 원상복귀.특히 그 맑고도 냉정한 눈동자.이순심은 그 눈에 한 번만 딱 쏘이면 괜히 움츠러들었다.‘말 한마디도 함부로 못 하겠어. 딱 봐도 가까이하기 힘든 사람이야.’며칠 전 제헌과 함께 집에 들어온 유리와는 정반대였다.유리는 딱 봐도 좋은 집안에서 귀하게 자란 티가 났다.그런데 그런 유리가 또 의외로 밝고 상냥했다.첫 만남에, 이순심에게 고급 화장품 세트를 선물로 건넨 것도 기억에 남았다.그날 이후로, 이순심은 유리를 한껏 마음에 들어 했다.‘아휴! 하유리 씨가 사모님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사실 사모님은 대표님의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다 이유가 있지.’‘사모님은 너무 어려워. 인정머리 없고, 눈치도 없어.’물론, 딱 하나 고마웠던 게 있긴 하다.요즘은 이람이 집에 없으니 집안일이 전부 이순심 몫이 됐다.허리도 펴기 힘들 정도로 바쁜 날이 많았다.그때 이람이 챙겨둔 의료상자 덕분에 겨우 버틴다. 안에는 허리 통증에 붙이는 파스랑 약이 가지런히 들어 있었다.물론 그런 건 다 얼마 안 하는 것들이다.그런 거 없어도 이순심은 자기 돈으로 샀을 것이다.‘그래도 화장품 세트가 더 좋았지.’‘하유리 씨는 센스가 있잖아. 사모님은 그런 걸 몰라.’...제헌은 저녁을 마친 뒤,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샤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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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화

수술한 지 벌써 2주 지났다.이람은 서서히 운동을 다시 시작하고 있었다.우선은 가볍게 조깅부터.지금 이람이 사는 집에는 꽤 괜찮은 홈트레이닝 룸이 마련돼 있다.러닝머신, 일립티컬, 스텝퍼, 그리고 근력 운동 기구까지 다 갖춰져 있었다.하지만 오늘은 뭔가 답답했다.‘실내 공간에 갇혀 있어서 그런가...?’이람은 아파트 단지 안으로 나와 뛰기 시작했다.단지 안은 녹지가 많고, 공기도 좋아 가볍게 뛰기엔 최적의 환경이었다.한 바퀴 조깅을 마친 이람은 속도를 늦춰 산책하듯 걷기 시작했다.그렇게 몇 걸음 걷다 보니, 멀리 두 사람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자연스레 속도를 늦췄다.‘무시하고 지나가기엔 좀 눈에 띄네.’앞에 있는 건 하준이었다. 새하얀 운동복 차림, 어깨엔 세로로 긴 하얀색 테니스 가방을 메고 있었다.그는 한 손은 주머니에 넣은 채 천천히 걷고 있었다.막 운동을 끝낸 듯, 머리카락 끝엔 약간의 땀이 맺혀 있었다.피부는 원래부터 하얘서 그런지, 땀을 흘려도 전혀 지저분한 느낌이 없었다.그 특유의 냉정한 분위기까지 더해져, 이상할 정도로 깔끔하고 단정해 보였다.그 옆엔 재원이 함께 걷고 있었다.마찬가지로 운동복 차림.재원이 계속 뭐라고 떠들어대고 있었고, 하준은 그 말에 간간히 짧게 반응할 뿐이었다.먼저 이람을 알아본 건 하준이었다.시선이 닿자, 이람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이람은 원래 낯선 사람과 불필요한 말을 섞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게다가 하준 같은 차가운 타입의 사람은 더더욱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하준 역시 고개만 가볍게 숙이고는, 아무 말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이람은 마음속으로 오늘 세 바퀴는 꼭 채워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딱 스쳐 지나치려는 그 순간.“조이람 씨.”하준이 입을 열었다.보기 드문 일이었다.이람은 놀라서 걸음을 멈췄다.“서 대표님?”하지만 정작 하준은 아무 말 없이, 재원을 싸늘한 눈빛으로 노려보기만 했다.재원은 하준의 그 시선을 받자, 한숨을 쉬더니 이람 앞으로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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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화

하준이 대놓고 사람들 앞에서 체면을 구겨놓은 탓에, 재원은 분을 삭이듯 말끝에 이를 악물었다.“진짜, 꺼지라고?”하준은 재원의 팔을 가볍게 치우고는 아무 말 없이 앞으로 걸어갔다.재원은 기어코 입술을 깨물었다.그는 최근 제헌에 대해 슬쩍 알아봤다.제헌은 전혀 이람을 좋아하지 않았고, 최근에는 오히려 ‘하' 씨 성을 가진 한 여자... 아무튼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여자랑 붙어 다니는 중이었다. ‘이람 씨가 더 하이엘에서 뛰는 거 보면, 강제헌은 이 근처 안 사는 거고...’‘하준이가 같은 단지 사는 거 보면, 완전 따로 사는 거잖아.’‘이혼까진 아니어도, 분위기 딱 봐도 냉랭하구만.’‘그렇다면 하준과 이람, 충분히 뭔가 생길 여지가 있다는 뜻 아닌가?’재원이 이토록 열심인 건 단순한 장난이 아니었다.하나는, 진심으로 두 사람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서였고, 다른 하나는, 하준의 어머니 서주연이 은근히 떠넘긴 ‘미션’ 때문이었다.“하준이 연애라도 좀 하게 만들어봐.”서주연은 아들의 연애에 대해 거의 체념 상태였다.하준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연애를 해본 적이 없었다.정확히는, 그럴 마음조차 없었다.IQ가 너무 높은 하준은 감정 소모 자체를 ‘비효율’로 간주한다.하준에게 연애는 의미 없는 시간 낭비였다.‘내가 애 낳고 육아할 때쯤, 하준은 여전히 혼자 일만 하고 있겠지.’‘친구로서 그건 못 보지... 진짜 안 되겠네.’하지만 재원도 안다. 성격상 너무 밀어붙이면, 하준이 진짜로 재원이랑 절교할 수 있다는 사실.그래서 천천히, 자연스럽게... 타이밍을 보는 게 핵심이다....결혼 이후로, 이람은 단 한 번도 대형 자선 만찬 같은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민서는 당연하다는 듯, 이람에게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부르겠다고 했지만, 이람은 정중하게 거절했다.“간단하게만 할게. 요즘 메이크업은 영상 찾아보면 다 나와.”이람의 손기술은 믿고 맡길 수준은 됐다.민서는 그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아 맞다,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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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민서는 이람의 말을 다 듣고 나자, 속이 다 풀리는 듯한 안도감을 느꼈다.‘와... 진짜 든든하다. 완전 대기업 회장님 백이 있으면 이런 기분일까?’불과 반달 전까지만 해도, 이람은 결혼이라는 굴레에 갇혀 괴로워하던 사람이었다.그땐 오히려 민서가 더 걱정하는 입장이었다.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반대다.“좋아, 자기야!”민서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더는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물론, 이람은 어디까지나 ‘비서’일 뿐이었다. 직접적으로 제헌과 맞붙을 위치도, 힘도 없었다.그러니 지금 이람이 할 수 있는 건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것’뿐이었다....시간이 슬슬 다 되어, 이람은 우세진과 합류해 행사장으로 향했다.하준은 당초 예정과 달리 재원과 동행하기로 해, 먼저 현장에 가 있는 상태였다.이번 자선 만찬은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상류 비즈니스 네트워크 행사로, ‘자선’은 명분일 뿐,실상은 인맥 구축이 목적인 전형적인 상류층 파티였다.행사 장소는 무려 2,000평 부지에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고풍스러운 저택, ‘루미에르 팰리스’.초청장을 받은 사람만 입장 가능하며, 엄격한 드레스 코드에 따라 남성은 턱시도, 여성은 정식 드레스에 완벽한 메이크업이 기본이었다.기자들과 미디어 관계자들도 대거 몰려들었지만, 공식 보도자료 외의 어떤 사진이나 영상도 사전 승인 없이는 외부 공개가 불가능했다.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자유롭게 네트워킹이 가능한 분위기였다.세진은 도착하자마자 어느 재계 인사에게 붙잡혀 가벼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이람은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였기에 이 틈을 타 뷔페 쪽으로 향했다.길게 놓인 테이블 위, 작은 디저트와 핑거푸드들이 정갈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돌았고, 한 입 베어 물자 깔끔한 단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그때,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가 옆에서 툭 하고 날아들었다.“새언니, 여기까지 오셨네요? 혹시 우리 오빠 초청장으로 따라 들어온 거예요?”조롱 가득한 목소리.이람이 고개를 돌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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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화

제은에게 있어서 이람은, 늘 참는 사람이었다.기분이 꺼림칙한 날, 괜히 시비를 걸고 싶은 날, 제은은 종종 이람에게 짜증을 냈다.그럴 때마다 이람은 한 마디 반박도 없이 조용히 제은의 짜증을 다 받아줬다.가만히 듣고만 있다가, 제은이 다 쏟아낸 뒤에야 조용히 자리를 떴다.‘그게 조이람이었어.’‘언제 어디서든 내가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는 완벽한 스트레스 해소용 샌드백.’하지만 지금, 이람의 태도는 전혀 달랐다.눈빛부터 말투까지, 한 치의 감정도 섞이지 않은 단단한 벽.‘뭐야, 조이람 지금 뭐 하는 거야?’‘예전 같았으면, 우리 오빠 눈치 보느라 나한테 싹싹 빌었을 텐데?’‘이제는 내 표정도 못 읽고, 말대답까지 해?’순간, 강제은의 안에서 무언가 ‘딱’ 하고 끊어졌다. 분노와 충격이 뒤섞인 채 터져 나왔다.“강! 제! 은! 씨?! 지금 뭐라는 거예요?! 새언니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해요!”그 말에 이람은 마치 유치한 아기를 바라보듯, 무표정하게 제은을 가만히 내려다봤다.‘상대 안 하면 알아서 꺼지겠지...’하지만 제은은 그런 타입이 아니었다.기분이 상하면, 장소 불문하고 끝을 보는 사람.이람은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했다.‘곧 회의 있고, 민서 일도 처리해야 해.’‘지금 여기서 얘 끊어놓지 않으면 더 귀찮아질 거야.’그래서 입을 열었다.“그럼 강제은 씨도 생각 좀 해보세요. 평소에 나한테 무슨 카톡 보냈는지.”목소리는 차분했고, 억양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강제은 씨가 나한테 함부로 하면, 나도 굳이 잘할 이유는 없죠. 욕을 들어도 욕을 안 했던 건, 이런 쓸데없는 말싸움에 내 시간을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에요.”그리고 잠시 말을 멈췄다가, 마지막 한 문장을 또박또박 덧붙였다.“이제 나는 강제은 씨 오빠랑 이혼했어요. 그 말은, 그쪽 비위 맞춰야 할 이유도 없다는 뜻이에요. 차단은 내 선택이었고, 그게 불편하다면 그건 강제은 씨의 몫이에요. 이제 이해됐어요?”이람의 흔들림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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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늘 그랬듯, 영미가 강제은의 말에 몇 마디 맞장구쳐주자 제은의 감정은 눈에 띄게 가라앉았다.‘역시, 이럴 땐 부추기는 것보다 달래는 게 답이지.’이제야 말이 통할 타이밍이 왔다고 느낀 영미는 능청스럽게 분위기를 바꿨다.“근데 제은아, 사실 이렇게까지 열 받을 일은 아니잖아. 이러다 암 생기고, 피부 트러블 올라오면 누가 손해야.”“게다가 말이야, 우린 평소에 누가 우리한테 헛소리하면 그냥 뺨 한 대 날리고 끝냈잖아? 조이람은 그냥 차단만 한 거잖아. 실제로 상처 입힌 것도 아니고, 물론 친구로서 말하지만, 차단한 건 조이람 주제에 할 일은 좀 아니긴 해.”제은은 지금껏 단 한 번도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그런데...‘어? 내가 손해 본 건 없네?’영미의 말에,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스쳤다.‘그래... 누가 나한테 욕하면 무릎 꿇릴 때까지 사과받았고...’‘심하면 경찰까지 불렀는데... 조이람은 그냥 조용히 차단 정도잖아?’그 순간, 제은은 확실히 진정되었다.하지만 뭔가 이상했다.어딘가 껄끄러운 느낌이 들었다.그때, 영미를 향한 눈빛이 스르륵 싸늘하게 식었다.그리고 다가서며 낮게 물었다.“야, 조이람 좋아하냐?”그 말에 영미는 속으로 식은땀을 삼켰다.제은의 기준은 단순하지만, 확고했다.‘조이람 칭찬 금지’, 이게 제은의 인간관계에서 절대 넘어선 안 될 금기선이었다.이전에 이람이 혹시 해커일지도 모른다는 농담 한마디에, 그날 바로 뒷담까지 당했던 영미는, 이번엔 단단히 준비되어 있었다.“좋아하는 건 아니고, 그냥 네가 말한 거랑 좀 다른 모습이라서. 궁금하긴 하더라. 진짜 그게 다야.”그리고 재빨리 이어붙였다.“근데 제은아, 넌 내 친구야. 내가 누구한테 호감이 있든 말든, 나는 무조건 네 편이야. 그건 안 바뀌어.”“내가 조이람한테 좀 관심이 있다고 해서, 네 옆자리 뺏을 사람은 아니야. 그건 내 선 넘는 일이라고.”영미도 나름대로 ‘친구는 친구다’라는 선이었다. 제은은 비웃듯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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