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람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하지만, 직접 귀로 듣는 건, 또 다른 감정이었다.‘사람이 싫은 상대는 안 보면 괜찮다가도, 한 번 마주치면...’ ‘단 1초의 불쾌함으로도 기분이 틀어지지.’그래서 제헌을 다시 마주칠 때마다, 이람은 어김없이 마음 한구석을 다치는 기분이었다.하지만 오늘은 그 상처조차 느껴지지 않았다.아니, 느껴지긴 했지만 아주 미세하게.‘별로 아프지 않네. 그냥... 아무렇지도 않아.’진짜 아무렇지 않았다.제헌을 보며, 단 한 톨의 기대도, 미련도, 원망도 들지 않았다.무감각. 감정의 진공 상태....화장실에서 나오는 순간, 제헌의 시야에 이람이 들어왔다.처음엔 말없이 시선을 두다, 전화를 마친 제헌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이람을 봤다.표정은 평소처럼 무심했고, 하지만 눈빛만은 조금 달랐다.흘긋 보는 수준이 아니라, 제대로... 이람을 ‘살폈다’.이람은 오늘, 달라 보였다.하얀 정장 차림.어디 브랜드인지 도무지 감이 안 오는데, 원단도 좋고 핏도 잘 맞는다.깔끔하고, 단정하면서도 어딘가 차갑고 날이 서 있었다.‘예전엔 안 저랬는데...’그 변화가 제헌에겐 꽤나 불편했다.“여긴 왜 왔어?”제헌이 먼저 말을 꺼냈다.차갑고, 건조하게.이람은 당연히 진실을 말할 생각이 없었다.이 자리에 온 건 민서 때문이었다.그리고 민서는 유리의 자존심을 밟아줬다.그건 곧 이람을 대신한 응징이었다.만약 제헌이 이 사실을 안다면?민서를 단순히 ‘견제’하는 수준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그가 사랑하는 여자를 누가 건드렸다고 느끼는 순간, 그 결과는 계약 몇 개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그건 동시에, 제헌이 이람을 얼마나 무시하는지에 대한 증거이기도 했다.‘내 가족, 내 친구, 내가 가진 어떤 것도...’‘이 사람은 단 한 번도 신경 써준 적이 없었어.’그 생각에 이람은 담담하게 답했다.“밥 먹으러 왔어. 여기 말고는 마땅한 데가 없어서.”제헌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하지만 곧 아무렇지 않게 표정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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