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los capítulos de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Capítulo 1571 - Capítulo 1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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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71화

이서연은 차분한 표정의 소예지를 바라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둘은 동갑이었지만 소예지는 그동안 너무 많은 일을 겪어왔다.학창 시절 소예지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그때는 맑고 예뻤고 세상 풍파 한 번 겪어보지 않은 사람처럼 순수했다.그런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했다면 분명 누구보다 뜨겁고 한결같이 사랑했을 텐데 결국 이혼까지 겪으며 마음에 깊은 상처가 남고 말았다.그래서일까, 지금의 소예지는 결혼을 바라보는 시선부터가 예전과 달랐다.감정에 휩쓸리기보다 이성적으로 현실적인 부분까지 하나하나 따져보려 했고 그렇게 예전보다 단단해진 모습을 볼 때마다 이서연은 마음 한구석이 아렸다.고이한이 정말 소예지를 사랑한다면 혼인신고를 했는지 안 했는지가 그렇게까지 중요한 일일까 싶었다.어차피 소예지의 삶은 단순했다. 일과 딸이 전부였고 누구와도 애매하게 얽히지 않았으며 누군가에게 기대어 살지도 않았다.무엇보다 소예지는 결혼 여부로 자기 가치를 증명해야 할 사람이 아니었고 설령 다시 결혼하지 않는다 해도 혼자서 충분히 잘 살아갈 사람이었다.두 사람은 업무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누다 헤어졌고 소예지는 자리로 돌아와 다시 자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그때 고이한에게서 메시지가 왔다.[하슬이 데리고 사무실에 왔어. 당신도 올래? 저녁 같이 먹자.]소예지가 답장을 보냈다.[응. 다섯 시 반쯤 갈게.][그래, 기다릴게.]저녁에는 셋이 고이한의 회사 근처 한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으며 곧 있을 고하슬의 개학 이야기를 나눴다.고하슬은 학교 갈 생각에 잔뜩 들떠 있었다.“엄마, 아빠가 학교 가기 전에 반딧불이 보러 데려가 준대요. 엄마도 우리랑 같이 가요!”오후에 아빠와 나눈 이야기가 생각났는지 고하슬이 불쑥 말을 꺼내자 소예지가 놀란 눈으로 고이한을 바라봤다.고이한도 고개를 들어 소예지와 눈을 맞추더니 부드럽게 웃었다.“하슬이가 반딧불이 다시 잡아보고 싶다고 하도 졸라서 생태공원에 한번 데려가려고.”소예지가 딸을 바라보며 말했다.“가고 싶으면 얼른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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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72화

고이한은 그제야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 딸을 바라보며 다정하게 웃었다.“듣고 있어.”식사를 마친 뒤 고이한은 소예지의 차를 운전해 두 사람을 집까지 데려다줬다. 그날 밤에는 고수경에게 전화가 왔다. 벌써 여행 준비를 시작한 모양이었다.소예지도 가기로 한 곳을 따로 찾아봤다. 깊은 산속에 자리 잡은 고급 휴양 시설로 주로 부유층이 휴가나 휴식을 위해 찾는 곳이었다.자연환경도 잘 보존되어 있었고 차로는 약 200킬로미터 거리였다.일정은 금세 정해졌다. 금요일 오후에 출발해 월요일 오전에 돌아오기로 했고 소예지도 그에 맞춰 일을 정리해 두었다.금요일 오후, 일행이 탄 차량 여섯 대가 조용히 도심을 빠져나와 외곽 산길로 향했다. 가는 내내 고하슬은 신이 난 새처럼 창가에 붙어 바깥 풍경을 구경했고 궁금한 것도 어찌나 많은지 쉴 새 없이 질문을 쏟아냈다.고이한은 그런 딸의 질문에 하나하나 귀찮은 기색 없이 대답해 줬다.소예지는 할머니와 같은 차를 탔다.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며 창밖 풍경을 감상했고 최현숙도 오랜만의 나들이가 무척 즐거운 눈치였다.약 200킬로미터를 달려 세 시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산길로 들어서자 공기부터 확연히 달라졌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울창한 나무가 빼곡했고 산 전체가 짙은 녹음으로 뒤덮여 있었다.휴양지는 한옥의 멋을 살린 전통 정원 형태로 꾸며져 주변 자연과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졌고 고풍스러우면서도 웅장한 분위기가 옛 대갓집을 떠올리게 했다.관리인은 미리 나와 기다리고 있다가 일행을 반갑게 맞으며 독채 두 동으로 안내했다.“정말 예쁘구나. 건물도 고풍스럽고 아주 멋져.”평소 고풍스러운 물건을 좋아하는 최현숙은 이번 여행지가 무척 마음에 든 눈치였다.숙소를 나누려 하자 고하슬이 기다렸다는 듯 큰 소리로 말했다.“나는 아빠, 엄마랑 같은 집에서 잘래요!”고수경은 조카가 그 말을 해주기만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바로 받아쳤다.“그래, 그럼 나는 할머니랑 엄마 모시고 옆에서 잘게. 이렇게 정하면 되겠네!”소예지도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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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73화

방 안이 조용해지자 소예지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몸을 숙여 남은 옷을 정리한 뒤 옷장에 하나씩 걸어 넣었다.정원에서는 고하슬이 고수경과 잔디밭에서 비눗방울을 불며 놀고 있었다. 고이한도 공 하나를 들고 다가갔다. 넓게 펼쳐진 잔디밭은 어른들이 아이와 함께 뛰어놀기에 딱 좋았다.딸의 웃음소리를 들은 소예지는 발코니로 나가 난간에 기대 아래를 내려다봤다. 고이한은 딸과 즐겁게 공을 차며 놀고 있었다. 다정하게 어울리는 부녀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별장 2층에서 바람을 쐬며 경치를 구경하던 최현숙과 진가영도 아래층의 부녀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저녁은 리조트 내 식당에서 먹었다. 창밖에는 물이 흐르는 정원이 꾸며져 있었고 음식도 정갈하고 맛있었다. 식사 내내 분위기도 편안하고 화기애애했다.저녁을 먹은 뒤 가족들은 산책을 하며 별장으로 돌아갔다. 달빛 아래 펼쳐진 리조트는 낮과는 또 다른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곳곳에 등불이 켜져 있었고 풀벌레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걷던 고하슬이 갑자기 잔디밭에서 작게 반짝이는 반딧불이를 발견하고 신이 나 달려갔다.“아빠, 여기 진짜 반딧불이 있어요!”하지만 잔디밭 위를 날아다니는 건 한두 마리뿐이었고 그마저도 금세 자취를 감췄다. 고하슬이 아쉬운 얼굴로 코를 훌쩍였다.“어디 갔지?”고이한은 딸 앞에 쪼그려 앉아 머리를 쓰다듬었다.“반딧불이는 여기 오래 머물지 않아. 내일 저녁에 리조트 뒤쪽 풀밭으로 가자. 거기 가면 훨씬 많아.”“오늘 밤에 가면 안 돼요?”“오늘은 너무 늦었잖아. 다들 피곤하니까 푹 자고 내일 가는 건 어때?”고이한이 다정하게 달래자 고하슬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그렇게 해요.”별장 앞에 도착하자 최현숙이 당부했다.“다들 일찍 쉬어. 내일 또 놀러 다녀야지.”“오빠, 예지 언니. 잘 자요.”고수경은 손을 흔들며 어머니와 할머니를 모시고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소예지와 고이한은 고하슬과 함께 100미터쯤 떨어진 다른 별장으로 향했다.별장에 돌아왔지만 고하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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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74화

소예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고이한이 손을 잡도록 내버려뒀다. 분위기가 좋아서인지 굳이 이 순간의 평온함을 깨고 싶지 않았다.맞잡은 손을 타고 고이한의 체온이 전해졌다. 뜨겁다 싶을 만큼 따뜻한 온기였다. 시간마저 멈춘 듯 고요했다.그렇게 2분쯤 지났을 때, 소예지가 손가락을 살짝 움직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 하슬이 씻겨야 해.”그제야 고이한이 천천히 손을 놓았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은 듯 손끝으로 소예지의 매끈한 손등을 가볍게 쓸고 지나가며 낮게 웃었다.“그래.”두 사람은 앞뒤로 거실에 돌아왔다. 고하슬도 시간이 늦었다는 걸 아는지 더 놀겠다고 조르지 않고 고이한에게 손을 흔들었다.“아빠, 그럼 나 엄마랑 올라갈게요!”“그래, 올라가.”고이한은 다정한 미소로 딸을 바라봤다. 자신은 거실에 조금 더 머물 생각이었다.소예지는 고하슬을 씻겨준 뒤 자신도 샤워를 하고 나왔다. 침대로 돌아와 보니 고하슬은 어느새 혼자 잠들어 있었고 소예지도 그 옆에 누워 딸을 품에 안은 채 함께 잠들었다.다음 날 아침, 소예지는 고하슬에게 편한 옷을 입혀줬다.긴 바지에 자외선을 막아줄 긴소매 상의를 입히고 머리를 앙증맞게 하나로 묶어주자 고하슬은 할머니를 찾겠다며 거실을 나섰다.소예지는 정원에 서서 딸이 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고수경이 밖으로 나와 고하슬을 맞아주는 것까지 확인한 뒤에야 거실로 돌아왔다.아침 식사는 숙소로 가져다주기로 되어 있었다. 소예지가 위층으로 올라가려는데 마침 2층 객실 문이 열리며 고이한이 나왔다.회색 운동복 차림에 머리도 아직 조금 헝클어져 있어 평소와는 달리 편안하고 활동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하슬이는 할머니한테 갔어.”소예지는 그렇게 말하고 지나가려 했다.고이한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산책할래?”사실 방으로 돌아가 봐야 휴대폰을 확인하고 메일 몇 통을 처리하는 정도였다. 급한 일도 아니었다. 이런 산속에서 여유롭게 걸어볼 기회도 흔치 않았기에 소예지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잠깐만 기다려.”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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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75화

소예지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얼굴이 확 달아오르자 황급히 고이한의 옷을 붙잡고 있던 손을 놓고 품에서 물러나려 했다.하지만 고이한은 바로 팔을 풀지 않았다. 소예지가 제대로 균형을 잡고 선 것을 확인한 뒤에야 천천히 놓아줬다.“조심해. 여기 잔디밭에 움푹 파인 곳이 있네.”고이한은 낮은 목소리로 당부하며 붉어진 소예지의 얼굴을 바라봤다.“많이 놀랐어?”소예지는 몇 걸음 떨어졌지만 심장은 여전히 빠르게 뛰고 있었다.“괜찮아... 고마워.”마음도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옆에 선 고이한이 남몰래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건 보지 못했다. 방금 전의 짧은 포옹이 못내 아쉬운 눈치였다.“조금만 더 걷자.”고이한은 이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응.”소예지도 산책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그 뒤로는 괜히 또 고이한에게 신세 지는 일이 없도록 발밑을 꼼꼼히 살피며 걸었다.두 사람은 조금 더 걸어 전망이 탁 트인 곳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팔각정이 하나 세워져 있었고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 사이로 아침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올라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냈다.소예지도 몇 초 동안 넋을 놓고 바라봤다.이윽고 정자 안에 놓인 의자에 앉자 고이한도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긴 몸을 느긋하게 기대고 두 다리를 편 채 앉아 있는 모습이 무척 여유로워 보였고 바람에 흐트러진 머리카락 아래로 선명한 이목구비가 드러나 평소보다 한층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느껴졌다.소예지는 자연스럽게 고이한에게 시선이 갔다. 그도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계속되는 시선이 부담스러워진 소예지가 얼굴을 돌리며 물었다.“왜 자꾸 쳐다봐?”“예뻐서.”고이한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소예지는 괜히 심기가 불편해져 툭 내뱉었다.“예뻐도 이제 당신이랑은 상관없잖아.”고이한이 웃음을 터뜨렸다. 상체를 살짝 앞으로 기울인 채 뜨거운 눈빛으로 소예지를 바라봤다.“왜 상관없어? 다시 당신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하고 있는데.”소예지는 고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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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76화

어느새 날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잔디밭 곳곳에서는 반딧불이가 작은 빛을 깜빡이며 날아다녔고 그 모습을 발견한 고하슬이 신이 나서 외쳤다.“엄마, 보여요! 엄청 많아요!”딸이 좋아하는 모습을 본 소예지도 웃었다.“그럼 우리도 가보자.”직원의 안내를 받아 일행은 오솔길을 따라 잔디밭 안으로 들어갔다. 고하슬이 고이한의 손을 잡아끌었다.“아빠, 나 잡는 거 도와줘요.”“그래.”고이한은 딸과 함께 반딧불이를 잡기 시작했고 소예지와 고수경도 각자 유리병을 하나씩 들었다. 오늘 밤은 유리병 안에서 반짝이는 반딧불이를 마음껏 구경하고 내일 아침이 되면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기로 했다.30분 가까이 반딧불이를 잡다 보니 어느새 유리병마다 제법 많은 빛이 담겼다. 숙소로 돌아가는 동안에도 고하슬은 유리병을 품에 꼭 안은 채 연신 싱글벙글 웃었다.밤이 되자 고하슬은 침대 곁에 놓아둔 유리병에서 반짝이는 불빛을 한참 구경하다 행복한 얼굴로 잠들었다.하지만 소예지는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낮에 잤던 낮잠 때문인지 눈이 말똥말똥했고 저녁 내내 돌아다닌 데다 물도 제대로 마시지 않아서인지 목까지 말라왔다. 결국 소예지는 물을 마시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거실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별생각 없이 물을 가지러 가던 소예지는 소파에 앉아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어두운 조명 아래 고이한이 잠옷 차림으로 앉아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고이한도 아직 잠들지 못한 모양이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고이한이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당신도 아직 안 잤어?”“물 마시러 내려왔어.”소예지가 정수기 쪽으로 향하자 고이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얇고 편안한 잠옷을 입은 소예지는 살짝 흐트러진 긴 머리를 등 뒤로 늘어뜨리고 있었다. 은은한 조명 아래 가느다란 허리와 하얀 피부가 더욱 도드라져 평소보다 한층 부드러운 분위기를 풍겼다.정수기 앞에 도착하자 뒤에서 인기척이 가까워졌다. 소예지가 고개를 돌리니 어느새 다가온 고이한과 눈이 마주쳤고 깊은 눈동자 속에는 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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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77화

다음 날 아침, 소예지는 잔디밭에서 고하슬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내일 아침이면 서울로 돌아가야 했고 이틀 뒤에는 고하슬도 학교에 첫 등교를 해야 했다.여행 마지막 날은 휴양지 안에서 여유롭게 보냈다. 아쉬움이 남기는 했지만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일행은 예정대로 짐을 챙겨 서울로 출발했다.오후가 되어서야 집에 도착한 소예지는 조금 지친 몸으로 고하슬을 데리고 들어갔다. 이제 여행의 들뜬 기분도 가라앉히고 입학 준비를 해야 할 때였다.이후 이틀 동안 소예지는 과목별 담당 교사들의 연락처를 추가하는 등 고하슬의 입학 준비로 바쁘게 지냈다.사흘째 되는 날, 고하슬을 고씨 집안 본가에 데려다준 뒤 고이한은 소예지에게 새로 단장한 집을 함께 확인해 보자고 했다.집은 구조를 크게 손대지 않고 인테리어와 가구를 새로 들이는 데 중점을 뒀다. 자재도 모두 좋은 것으로 엄선했고 전체적인 분위기는 소예지의 취향에 맞춰 깔끔하고 우아하면서도 집다운 따뜻함이 느껴지도록 꾸며져 있었다.소예지는 완전히 달라진 거실에 서서 곳곳을 찬찬히 살펴봤다. 아직은 조금 휑한 느낌이 있었지만, 앞으로 딸과 함께 하나씩 채워가다 보면 훨씬 따뜻한 집이 될 것 같았다.“어때? 마음에 들어?”옆에 서 있던 고이한이 부드럽게 물었다.소예지가 고개를 끄덕였다.“응. 마음에 들어. 이번에 당신이 고생 많았어.”소예지가 돌아보자 고이한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고생은 무슨. 위층도 가보자. 특히 안방이랑 하슬이 방은 직접 봐야지.”소예지는 고이한을 따라 위층으로 올라갔다. 먼저 둘러본 고하슬의 방은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파란색을 중심으로 꾸며져 있었고 한쪽에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 수 있는 놀이 공간도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하슬이가 정말 좋아하겠다.”딸의 방을 둘러보는 소예지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다음으로 안방에 들어섰다. 커다란 통유리창으로 햇살이 가득 들어왔고 아이보리색 커튼과 연한 회색 카펫이 어우러져 밝고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냈다.벽에 걸린 그림도 공간과 자연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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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78화

고이한은 생수 두 병을 가져와 한 병의 뚜껑을 열어 소예지에게 건넸다. 소예지는 물을 받아 한 모금 마셨다.“언제쯤 이사 올 생각이야?”고이한도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물었다.소예지는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오늘 저녁부터 짐 정리하고 내일이나 모레쯤 옮길까 해.”고하슬의 입학이 코앞이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는 이곳까지 차로 30분 정도 걸려 매일 아이를 등하교시키기에는 불편했다.“그래. 당신은 짐만 정리해. 이사는 내가 알아서 할게. 나도 이참에 같이 들어오면 되니까.”“응.”소예지는 고개를 끄덕인 뒤 손목시계를 확인했다.“이제 돌아가자.”고이한은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조금만 더 있다 가면 안 될까? 나랑 좀 더 있어 줘.”낮게 들려온 말에 소예지는 잠시 멈칫했다. 그 한마디로 두 사람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감돌았다.소예지는 생수병을 쥔 손에 자신도 모르게 힘을 줬다. 가슴 한구석이 조여드는 듯하면서도 묘하게 시큰해졌다.고이한이 진심으로 지난 일을 후회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자신에게 다가올 때마다 얼마나 조심스러워하는지도, 작은 기대조차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모습도 느껴졌다. 자신을 위해 해준 일도, 아버지를 위해 해준 일도, 고하슬을 위해 해준 일도 떠올랐다.고이한이 정말 달라지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다.“고이한.”소예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고요한 거실이라 나지막한 목소리도 또렷하게 들렸다.“나... 이제는 지난 일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 보려고 해. 당신이랑 같이 하슬이한테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도 있어. 하지만...”소예지는 고개를 돌려 고이한과 눈을 맞췄다.“나한테는 시간이 필요해. 몇 달로 끝날 일이 아닐 수도 있어. 1년, 2년... 어쩌면 그보다 훨씬 오래 걸릴 수도 있고. 당신이 그걸 받아들일 수 없다면 우리는 그냥... 각자의 길을 가도 돼.”솔직한 만큼 냉정한 말이었다. 고이한에게 어떤 희망도 약속하지 않은 채 오랜 시간을 기다릴 수 있겠느냐고 묻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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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79화

돌아오는 길에 고이한은 음악을 틀었다. 두 사람은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았고 소예지도 머릿속으로 업무를 정리하느라 조용했다. 고이한은 그런 소예지를 방해하지 않았다.집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오후 5시쯤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던 고이한이 소예지에게 물었다.“저녁, 나도 같이 먹어도 돼?”소예지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그래.”고이한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엘리베이터에서 뒷걸음질로 빠져나왔다.집에 들어가자 양희순이 먼저 물었다.“사모님, 하슬이도 저녁 먹으러 오나요?”“하슬이는 오늘 본가에서 저녁 먹고 거기서 잘 거예요.”소예지는 대답하고 나서 덧붙였다.“오늘 저녁은 한 사람분 더 준비해 주세요.”양희순의 눈이 금세 반짝였다. 누가 올지 짐작한 듯 웃으며 물었다.“고 선생님도 올라와서 드시는 거예요?”소예지가 고개를 끄덕였다.“네.”“알겠어요. 바로 준비할게요.”양희순은 신이 나서 주방으로 향했다. 냉장고에 어떤 재료가 있는지 떠올리며 고이한이 좋아하는 음식까지 머릿속으로 하나씩 골랐다.소예지는 위층 서재로 올라갔다.저녁 7시쯤 되자 식사 준비는 거의 끝나 있었다. 찜 요리 하나만 마무리하면 됐다.양희순은 위층으로 올라가 소예지에게 말했다.“저녁 다 됐어요. 고 선생님 올라오시라고 할까요?”소예지는 시간을 확인한 뒤 휴대폰을 꺼내 고이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저녁 다 됐어. 올라와.][응.]답장은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왔다.그때 양희순이 갑자기 급한 일이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제가 오늘 집에 급히 가봐야 할 일이 있어서요. 식사하고 나면 그릇만 주방에 가져다 놓으세요. 내일 아침에 와서 제가 정리할게요.”소예지는 잠시 멈칫했다. 무슨 뜻인지 금세 알아차렸다. 자신과 고이한이 둘만 있을 수 있도록 일부러 자리를 비켜주려는 것이었다.“굳이 그러실 필요 없어요.”소예지가 곧바로 말하자 속내를 들킨 양희순이 조금 머쓱해했다. 그래도 마음을 바꿀 생각은 없는 듯 웃으며 말했다.“음식만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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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80화

고이한이 웃으며 대답했다.“그래. 밥 먹고 두 바퀴쯤 돌고 올게.”고이한은 생선구이에서 가장 고소한 부분을 발라 소예지의 그릇에 놓아줬다.소예지는 옆에 놓인 갈비찜을 바라보다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 결국 한 점을 집어 들고 고이한에게 말했다.“그릇 줘 봐.”팔을 뻗어도 고이한의 그릇까지 닿기 어려웠다. 고이한은 웃으며 그릇을 가까이 내밀어 소예지가 건네는 갈비찜을 받았다. 그러고는 소예지를 빤히 바라봤다.그 뜨거운 시선을 느끼자 소예지는 괜히 반찬을 집어줬나 싶어 퉁명스럽게 말했다.“밥 먹어. 나 쳐다보지 말고.”고이한은 순순히 시선을 내렸다. 하지만 입가에 걸린 미소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소예지가 한마디 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얌전히 말을 듣는 모습이었다.식사를 마친 뒤 소예지가 식탁을 정리하려 하자 고이한도 곧바로 손을 보탰다.“됐어. 당신은 젤리 데리고 나가. 내가 할게.”“같이 해.”고이한은 그대로 남아 정리를 도왔다. 소예지가 남은 음식을 정리하고 그릇을 식기세척기에 넣는 동안, 고이한은 조리대와 식탁을 닦았다.정리를 모두 마치고 나서야 고이한이 젤리를 불렀다.“젤리야, 가자. 아빠랑 산책하러 가자.”주방에서 나오던 소예지는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올 뻔했다.고이한이 웃음을 참는 소예지를 발견하고 눈을 가늘게 떴다.“왜? 당신은 젤리 엄마 아니야?”소예지는 할 말을 잃었다. 자신도 젤리를 자식처럼 아끼기는 했지만 굳이 스스로 엄마라고 부른 적은 없었다.“마음대로 해.”소예지는 굳이 따지고 들지 않았다. 젤리도 고이한이 좋은지 다가가 다리에 머리를 비볐다.고이한은 목줄을 챙겨 젤리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단지 안에서 30분 정도 젤리를 산책시킨 뒤 다시 올라왔다.초인종이 울렸을 때 소예지는 마침 거실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문을 열자 젤리가 먼저 안으로 들어왔다. 산책을 마쳤으니 고이한은 그대로 돌아가도 됐지만 문 앞을 떠나지 않았다.“물 한 잔만 마시고 가도 돼?”소예지가 속셈을 모를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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