บททั้งหมดของ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บทที่ 1611 - บทที่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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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11화

고이한의 기억이 맞다면 당시 두 사람의 관계는 상당히 냉랭했다.심지어 그 무렵 소예지는 고이한이 딸을 만나는 것까지 제한하려고 했었다. 그러니 고이한은 한 달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고 별것 아닌 일에도 신경이 곤두서곤 했다.그런 시기에 있었던 일을 소예지가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기분 좋았다.“소 박사님도 한가할 때는 내 소식을 좀 알아보나 보네.”고이한이 입꼬리를 올리며 웃자 소예지는 곧바로 부인했다.“나 그렇게 한가하지 않아.”하지만 고이한의 웃음은 오히려 더욱 짙어졌다.“괜찮아. 내 얘기는 마음껏 알아봐도 돼. 직접 듣고 싶으면 언제든 나한테 물어보고.”소예지는 그의 말에 피식 웃었다.“나 정말 바빠. 당신 소문에는 관심 없어.”“그럼 내가 해고한 엔지니어팀이 그 뒤에 어디로 갔는지는 안 궁금해?”소예지는 관심 없다고 대답하려다가 문득 호기심이 생겨 그를 바라봤다.“어디로 갔는데?”“내 경쟁사로 갔어. 당시 핵심 설계도까지 들고.”고이한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그 일로 우리 법무팀이 상대 회사랑 반년 동안 소송전을 벌였지.”그러고는 눈을 가늘게 뜨며 소예지를 바라봤다. 눈빛에 장난기가 살짝 어렸다.“내가 졌는지 이겼는지도 궁금해?”음식을 집던 소예지의 손이 멈췄다.뻔히 자신이 궁금해할 걸 알고 일부러 말을 끊은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미 호기심이 생겨 버린 이상 안 물어볼 수도 없었다.“졌어?”고이한의 눈에 자신감 어린 웃음이 스쳤다.“이겼어. 그것도 아주 깔끔하게.”소예지는 그 말을 듣고 잠시 할 말을 잃었다.물론 그녀는 사업가가 아니었다. 온갖 계산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업계의 생리에도 익숙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런 세계에 거부감을 느낄 때도 있었다.하지만 적어도 이곳이 고이한이 살아가는 세계라는 것만큼은 알고 있었다.수많은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한 번의 잘못된 판단만으로도 막대한 손실을 입을 수 있는 냉혹한 세계였다.그런 곳에서 지금의 자리를 지켜 온 고이한이 새삼 낯설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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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12화

소예지는 조금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이래도 되나? 난 이 회장님 가족이랑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닌데...”“난 당신이 나랑 같이 갔으면 좋겠어.”고이한은 진지하면서도 기대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슬쩍 덧붙였다.“혼자 가면 좀 심심하잖아.”지난 3년 동안 두 사람이 함께 연회에 참석한 적이 몇 번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소예지는 고이한을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두 사람 사이에는 늘 냉랭한 기류가 흘렀다.그러니 이번만큼은 달랐으면 했다.소예지와 나란히 공식 석상에 서는 모습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고이한은 은근히 기대가 됐다.바로 그때 소예지의 휴대폰이 울렸다.화면을 확인해 보니 이서연에게 걸려 온 전화였다. 문득 초대장과 관련된 전화일 것 같은 예감이 들어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서연아.”“예지야, 내가 방금 프런트에서 네 택배 받아 왔는데 봉투가 하나 있어. 아무래도 초대장 같은데 가져다줄까?”“그냥 뜯어서 확인해 줘.”잠시 후 봉투를 열어 본 이서연이 역시 이 회장님 부부의 결혼 50주년 기념식 초대장이 맞다고 알려 주었다.전화를 끊은 소예지는 고이한을 바라봤다.“이 회장님 부부 결혼 50주년 기념식 초대장 왔대.”고이한의 눈에 금세 웃음이 어렸다.“그럼 우리 같이 참석하면 되겠네.”이제 와서 굳이 거절할 이유도 없어진 소예지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그때 앞서가던 고하슬이 자전거를 끌고 계단 하나를 올라가려다 낑낑대고 있었다. 몇 번이나 자전거를 들어 올리려 했지만 어린아이의 힘으로는 쉽지 않았는지 결국 고개를 돌려 고이한에게 도움을 청했다.“아빠, 도와주세요.”하지만 고이한은 곧바로 다가가지 않았다.그 자리에 선 채 다정한 눈으로 딸을 바라보며 격려했다.“하슬아, 다시 한번 해 봐. 조금만 더 힘내면 할 수 있어.”고하슬은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더니 다시 자전거를 바라봤다. 이번에는 먼저 계단 위로 올라선 뒤 두 손으로 핸들을 단단히 붙잡고 온 힘을 다해 자전거를 끌어당겼다.앞바퀴가 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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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13화

소예지가 문을 열자 고하슬은 고이한의 침대를 트램펄린이라도 되는 양 신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고이한은 침대 머리맡에 기대 아이패드를 들고 있었는데 입가에는 딸의 장난을 한없이 받아 줄 듯한 느긋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하슬아, 이제 내려와. 너무 늦었어.”소예지가 난감한 표정으로 방 안으로 들어가자 한참을 뛰어다닌 고하슬이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말했다.“엄마, 아빠 침대 진짜 커요. 우리 오늘 다 같이 아빠 방에서 자면 안 돼요?”뜻밖의 제안에 순간 말문이 막힌 소예지는 대답 대신 딸에게 손을 내밀었다.“이리 와. 엄마가 안아 줄게.”그때 고이한도 아이패드를 내려놓고 고하슬을 번쩍 안아 들었다.“자, 엄마 말이 맞아. 이제 잘 시간이야. 내일 학교도 가야 하잖아.”“알겠어요.”고하슬은 아쉬운 듯 입술을 삐죽 내밀었지만 얌전히 대답했다.고이한은 딸을 침대 가장자리에 앉힌 뒤 작은 슬리퍼까지 직접 신겨 주었다.“아빠가 데려다줄게.”고하슬은 고개를 끄덕이고 아빠의 손을 잡은 채 앞장서 걸었고 소예지도 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갔다.고이한은 딸을 소예지의 안방까지 데려다준 뒤에야 돌아섰다.고하슬은 얌전히 침대에 올라가 그림책을 펼쳤지만 소예지는 책을 읽는 딸을 보며 말했다.“이제 자야지.”“엄마, 저 물 마시고 싶어요.”그 말에 소예지는 침대 옆 협탁을 바라봤다.평소에는 잠들기 전에 마실 물을 미리 준비해 두는데 오늘은 깜빡한 모양이었다. 결국 아래층까지 내려갔다 와야 했다.그런데 안방 문을 나선 순간, 어두운 복도에 아직 고이한이 서 있는 게 보였다.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소예지는 화들짝 놀라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하지만 미처 소리를 내기도 전에 고이한이 그녀를 끌어당겨 품에 단단히 안았다.익숙한 체취와 샤워 후 남은 은은한 비누 향이 훅 끼쳐 왔다.소예지는 본능적으로 몸을 빼내려 두 손으로 그의 가슴을 밀었지만 고이한은 오히려 그녀의 허리를 더욱 단단히 끌어안았다.그리고 곧바로 입술을 겹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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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14화

다음 날 아침 일찍, 소예지는 딸을 고이한에게 맡기고 연구실로 향했다.점심 무렵에는 마침 근처에 볼일이 있다는 박시온과 약속을 잡아 함께 점심을 먹었다.오랜만에 마주 앉은 두 사람은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사적인 이야기를 나눴다.박시온은 최근 아이가 한바탕 아픈 바람에 며칠씩 밤을 새웠다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애 하나 키우는 게 엄마를 아주 갈아 넣는 일이야. 며칠 밤을 꼬박 새웠더니 이제는 오히려 잠을 제대로 못 자겠어.”소예지는 엄마가 된 뒤의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하루만 아이를 보지 못해도 몇 년은 못 본 것처럼 그립고 조금만 아프거나 불편해해도 온 신경이 아이에게 쏠리는 게 엄마 마음이었다.“조금 더 크면 괜찮아질 거야.”소예지가 위로하자 박시온은 턱을 괸 채 그녀를 바라봤다.“난 병원 가서 약이라도 받아야 할 것 같아. 요즘 생리도 좀 불규칙해졌어. 밤을 하도 새웠더니 주기까지 완전히 엉망이 됐다니까.”그 말을 들은 소예지도 긴 머리를 한번 쓸어 넘기며 말했다.“나도 요즘 스트레스를 좀 많이 받아서 일주일이나 늦어졌어. 그래도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닌 것 같고 일단 마음부터 좀 편하게 가져 보려고.”그 순간 박시온의 눈이 반짝였다.그녀는 소예지 쪽으로 슬쩍 몸을 기울이더니 짓궂은 얼굴로 말했다.“마음을 편하게 갖는다고? 그걸로 되겠어? 내 생각엔 너처럼 스트레스 때문에 생리 주기가 흐트러졌을 때는 훨씬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 있는데.”소예지가 의아하게 바라보자 박시온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남자 하나 만나서 제대로 스트레스 풀어.”물을 마시던 소예지는 하마터면 사레가 들릴 뻔했다.겨우 물을 삼킨 그녀가 어이없다는 듯 박시온을 흘겨봤다.“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나 헛소리하는 거 아니거든? 직접 해 보고 효과도 봤어.”박시온은 자기가 다 안다는 듯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그리고 소 박사님이 설마 모르겠어? 그런 관계를 가지면 기분도 좋아지고 스트레스도 풀리잖아. 천연 스트레스 해소제가 따로 없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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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15화

박시온이 또다시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어쩌면 기념식에서 술도 몇 잔 마시고 고이한이랑 집에 돌아와서 호르몬 조절도 좀 할 수 있겠네?”“박시온.”소예지는 절친의 짓궂은 농담에 또다시 얼굴이 붉어졌고 박시온은 그런 그녀를 보며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점심 식사를 마친 뒤 소예지는 연구실로 돌아갔다.오후에는 이지원을 데리고 정 박사의 연구실을 찾아가 연구 교류를 진행했고 저녁 여덟 시가 되어서야 모든 일을 마치고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왔다.저녁은 구내식당에서 이미 먹었기에 양희순에게 자신의 식사는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고 미리 말해 둔 상태였다.고이한에게서도 조금 뒤 전화가 걸려 왔다. 오늘 저녁은 고하슬을 데리고 고씨 본가에서 먹은 뒤 조금 늦게 돌아오겠다는 연락이었다.소예지가 집에 도착하자 양희순이 다가와 말했다.“고 선생님이 하슬이를 데리고 본가에 가셨어요.”“네, 알고 있어요.”소예지는 짧게 대답하고 곧장 위층으로 올라갔다.혼자 남은 양희순은 괜히 두 손을 비비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오늘 저녁엔 일찍 들어가도 되려나? 아예 내일 아침에 다시 올까?’밤 아홉 시쯤 되자 차고 쪽에서 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젤리는 익숙한 기척을 알아챘는지 꼬리를 흔들며 곧장 마중을 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하슬의 신이 난 목소리가 집 안까지 울려 퍼졌다.그 소리를 들은 양희순은 조금 전의 생각을 곧바로 접었다.‘됐네. 오늘은 그냥 있어야겠어.’고하슬이 집에 있는 이상 소예지와 고이한이 단둘이 시간을 보낼 일도 별로 없을 테니까.“엄마!”집에 들어서자마자 고하슬이 소예지를 찾았다.“엄마는 위층에서 쉬고 계셔.”양희순이 알려 주자 고하슬은 고이한의 손을 잡아당겼다.고이한의 다른 손에는 티라미수 상자가 들려 있었다.“아빠, 우리 위층에 엄마 보러 가요!”소예지도 두 사람이 탄 차가 들어오는 소리는 들었다. 하지만 한창 문서를 작성하고 있던 터라 하던 일을 멈추고 아래층까지 마중을 나가지는 않았다.잠시 후 2층 복도에서 발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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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16화

소예지는 살짝 멈칫했다.원래부터 언론과는 가능한 한 거리를 두는 편이었기에 기자들을 마주친다는 말이 조금 신경 쓰였지만 굳이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알았어.”그때 주방 쪽에서 진한 한약 냄새가 풍겨 왔다.소예지는 고개를 돌려 주방을 바라보다가 다시 고이한에게 시선을 돌렸다.“아주머니한테 약 달여 달라고 했어?”“응. 한번 먹어 보려고.”고이한이 웃으며 대답하자 소예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약탕기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아 본 뒤 다시 거실로 돌아온 그녀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냄새만 맡아도 엄청 쓸 것 같은데.”소예지는 원래 한약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잖아.”고이한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귀여운 토끼 잠옷을 입은 고하슬이 뽀송하게 말린 머리로 계단을 쏜살같이 내려왔다. 그대로 고이한에게 달려가 품에 폭 안긴 고하슬이 신이 나서 말했다.“아빠, 저 깨끗하게 씻었어요!”고이한은 웃으며 딸을 받아 안고 머리카락에 코를 가까이 대 냄새를 맡아 봤다.“응, 좋은 냄새 나네.”그 모습을 바라보던 소예지는 문득 고하슬이 한 살 남짓이었을 때를 떠올렸다.그때의 고하슬은 통통한 작은 발을 고이한의 얼굴 앞으로 쑥 내밀고는 꼭 아빠가 냄새를 맡아 줘야 좋아하곤 했다.그랬던 아기가 어느새 훌쩍 자라 이제는 제법 어린아이 티가 났다.오랫동안 연구실에 파묻혀 지내서인지 요즘 들어 이런 평범한 일상에서 느껴지는 생생한 온기가 유난히 따뜻하게 다가왔다.세 사람이 거실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고 있자 양희순이 다 달인 한약 한 그릇을 들고 나왔다.“고 선생님, 약 다 됐어요.”진한 냄새가 퍼지자 고하슬은 얼른 작은 손으로 코를 막았다.“아빠, 이게 무슨 약이에요? 냄새가 너무 이상해요!”“한약이야. 조금 써.”“왜 이렇게 쓴 약을 먹어야 해요? 아빠, 어디 아파요?”고하슬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묻자 고이한은 웃으며 설명했다.“아니야. 아빠는 그냥 머리카락을 다시 검게 만들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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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17화

어느새 시간이 꽤 늦어졌다.소예지가 고이한에게 말했다.“이제 가서 일찍 쉬어.”“엄마, 저 아빠랑 더 놀고 싶어요.”고하슬은 아쉬운 듯 고이한의 손을 꼭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고이한은 딸 앞에 쪼그려 앉아 눈높이를 맞췄다.“그럼 아빠가 위층까지 데려다줄까?”“그럼 공룡 이야기 조금만 더 해 주실 거예요?”고하슬이 기다렸다는 듯 또 하나의 부탁을 꺼냈다.고이한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 소예지를 바라봤다.아무리 두 사람 사이가 가까워졌다고 해도 소예지의 안방은 함부로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그녀가 허락하지 않는 이상 딸을 핑계로 오래 머물 수도 없었다.그 시선을 알아차린 소예지가 먼저 말했다.“그럼 고하슬 데리고 당신 방에서 이야기해 줘. 난 아직 할 일이 좀 있어.”소예지는 굳이 딸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요즘 들어 고하슬이 원하는 것을 조금씩 들어주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최근에는 유독 아빠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 했지만 시간이 늦었다는 이유로 그때마다 그만 자라고 재촉했었다.오늘 밤만큼은 조금 더 놀게 해 줘도 괜찮을 것 같았다.“좋아요! 아빠, 우리 빨리 가요!”고하슬은 금세 신이 나서 고이한의 손을 잡아끌고 위층으로 올라갔다.양희순은 주변을 정리한 뒤 소예지에게 말했다.“그럼 사모님, 저는 먼저 쉬러 갈게요.”소예지는 고개를 끄덕이고 2층 서재로 올라갔다.사실 오늘 해야 할 일은 이미 모두 끝낸 상태였다.고이한이 딸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시간을 조금 더 주기로 했으니 그동안 보고 싶었던 드라마나 볼 생각으로 스트리밍 앱을 켰다.원래 꽤 기대했던 작품이었다.그런데 막상 영상을 틀어 놓고도 이상하리만치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몇 분에 한 번씩 무심코 시간을 확인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밤 아홉 시 오십 분이었다.고하슬이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뒤부터 소예지는 아이의 수면 시간에 유난히 신경을 쓰고 있었다.늦어도 열 시 전에는 침대에 눕혀야 마음이 놓였다. 조금이라도 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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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18화

소예지는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일 다 끝났어? 오늘 저녁에 스미스 박사 연구팀이랑 식사하기로 했는데 당신도 같이 와.”소예지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알았어. 식당 주소 보내 줘. 나도 갈게.”스미스 박사는 소예지에게 스승이자 친구 같은 사람이었다.무엇보다 그가 오랜 시간 연구를 포기하지 않고 이어 온 덕분에 소예지는 혈액 질환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나아가 훗날 고하슬에게 같은 병이 발병할 가능성까지 차단할 길을 찾아낸 만큼 그와의 인연은 소예지에게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퇴근할 무렵에는 김경환이 연구실까지 찾아왔다.일부러 소예지를 데리러 온 것이었다.“소예지 씨, 고 대표님께서 요즘 많이 피곤하실 거라며 걱정하셔서 제가 모시러 왔습니다.”김경환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소예지도 굳이 마다하지 않았다.최근 눈을 지나치게 혹사한 탓에 운전하기 좋은 상태도 아니었다. 특히 퇴근 시간대처럼 차가 붐비는 때에는 직접 운전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김경환과 함께 식당에 도착해 룸으로 들어갔지만 정작 고이한은 중요한 회의가 길어지는 바람에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스미스 박사는 소예지를 보자 반갑게 맞이했고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연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한참 대화를 이어 가던 중 소예지는 문득 스미스 박사가 처음 D국 연구실을 맡았던 당시의 일을 떠올렸다.“박사님, 연구실에 계실 때 아버지가 찍힌 영상을 몇 개 봤어요.”소예지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기회가 된다면 그 연구실에 꼭 한번 가 보고 싶어요.”스미스 박사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그렇다면 고 대표가 결국 그 자료에 대한 접근 권한을 줬나 보군요. 제가 알기로 그 영상들은 모두 아버님께서 생전에 남기신 자료입니다. 당시의 연구 활동과 실험 과정도 상당 부분 기록되어 있죠.”잠시 옛일을 떠올리던 그의 표정에 깊은 존경심이 묻어났다.“아버님은 정말 존경받을 만한 분이셨습니다.”소예지는 잠시 침묵하다가 물었다.“예전에 박사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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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19화

그때 룸의 문이 열리고 고이한이 들어왔다.회의를 마치자마자 곧장 달려온 듯 흐트러짐 없는 정장 차림이었지만 미간에는 아직 가시지 않은 피로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미안해. 늦었어.”고이한은 짧게 사과한 뒤 소예지 곁으로 다가와 자연스럽게 의자를 빼 앉았다.뒤이어 김경환이 직원에게 음식을 내달라고 요청하러 나가자 고이한은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지 눈치챈 듯 소예지를 바라봤다.“내 얘기 하고 있었어?”웃으며 던진 말에 스미스 박사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맞습니다. 연구실 얘기를 좀 하고 있었습니다. 소 박사가 시간 되면 D국 연구실에 한번 가 보고 싶다고 하더군요.”고이한이 소예지를 바라봤다.“그럼 설 전에 고하슬 데리고 거기 가서 눈 구경도 하고 아버님이 쓰셨던 연구실도 둘러보면 되겠네요.”소예지가 순간 멈칫했다.“아버지 연구실이 아직도 남아 있어?”이번에는 옆에 있던 스미스 박사가 대신 대답했다.“그럼요. 예전 모습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아버님께서 남기신 연구 노트도 아주 많고요.”순간 소예지의 가슴 한구석이 꽉 조여 왔다.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연구실의 운영 방향도 달라졌으니 당시 쓰던 공간은 진작 정리됐거나 다른 용도로 바뀌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니.’소예지는 곧바로 고개를 돌려 고이한을 바라봤다. 정말 사실인지 확인하려는 듯한 눈빛이었다.고이한은 그런 그녀와 시선을 마주하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응, 아직 그대로 있어. 보고 싶으면 언제든 갈 수 있어.”소예지의 눈빛에 서서히 기대감이 어렸다.“좋아. 설 전에 D국에 한번 가자. 직접 보고 싶어.”저녁 식사가 거의 끝나 갈 무렵이 되어서야 스미스 박사는 오늘 자리를 마련한 진짜 이유를 밝혔다.이곳에서 진행하던 실험이 모두 마무리됐고 자신은 M국의 한 연구소에 초청을 받아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고 했다. 현재 함께하고 있는 연구팀 역시 모두 함께 이동할 예정이었다.그러니 오늘 저녁 식사는 사실상 송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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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0화

고이한이 조금 난감한 듯 말했다.“그때는 내가 따라가는 바람에 당신이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잖아.”소예지가 못마땅한 듯 받아쳤다.“눈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따라왔어?”고이한의 표정이 순간 단호해졌다. 평소 남들 앞에서는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강한 소유욕이 눈빛에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당신이 싫어해도 난 갔을 거야.”어차피 소예지에게 미움받을 일을 한 게 그때 한 번뿐인 것도 아니었다.그렇다고 고이한이 물러선 적도 없었다.다소 뻔뻔하기까지 한 대답에 소예지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혼한 뒤에도 그는 늘 그랬다.자신이 아무리 차갑게 대하고 일부러 거리를 두어도 고이한은 단 한 번도 자신과 고하슬의 삶에서 완전히 사라진 적이 없었다. 언제나 나름의 방법과 이유를 찾아 다시 그녀 앞에 나타났다.아무리 떼어 내려 해도 끝끝내 따라붙는 그림자처럼.“그때 내가 안 갔으면 당신, 윤하준이랑 사귀었을까?”고이한이 갑자기 조금은 심통 난 목소리로 물었다.소예지는 잠시 멈칫했다.그 말을 듣자 D국에서 함께 스키를 탔던 일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당시 중간에 윤하준이 합류하면서 두 아이가 함께 어울려 놀았고 자신과 윤하준은 고이한만 남겨 둔 채 따로 다른 곳에 놀러 가기도 했다.그때 일을 떠올리는 사이 고이한에게 붙잡힌 손바닥에 어느새 땀이 배어 나왔다.소예지가 슬쩍 손을 빼내려 했지만 고이한은 놓아줄 생각이 없는 듯 오히려 손에 힘을 더 주며 집요하게 물었다.“윤하준을 좋아한 적 있어? 그 사람이랑 만나 볼 생각도 했었어?”아무래도 그는 당시 스키장에서 있었던 일을 아직까지 마음에 담아 두고 있는 모양이었다. 심지어 자기를 혼자 남겨 두고 갔던 일에도 꽤 서운함이 남아 있는 듯했다.생각해 보니 그때 고이한은 소예지가 일부러 윤하준을 스키장으로 불렀다고 오해했다. 화가 난 나머지 이런 말까지 했었다.‘당신, 나랑 윤하준이랑 사이 틀어지게 만들 생각이야?’그때 정말 단단히 화가 났던 모양이었다.그래서 이제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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