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los capítulos de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Capítulo 1591 - Capítulo 1600

1620 Capítulos

제1591화

소예지가 고개를 들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눈빛에는 처음 부모가 되었을 때의 기쁨과 애정이 가득했다.영상을 다 보고 난 소예지는 코끝이 찡해지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고이한과 이혼한 지도 벌써 3년이 흘렀다. 그동안 지난 영상들을 좀처럼 다시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괜히 옛일이 떠올라 마음이 아플까 두려웠다.하지만 고요한 가을 오후에 다시 본 영상은 아픔뿐 아니라 그리움도 함께 불러왔다. 어떤 기억은 완전히 잊힌 적이 없었다. 그저 마음 깊은 곳에 묻혀 있다가 때가 되면 다시 모습을 드러낼 뿐이었다.“뭘 보고 있어?”갑자기 머리 위에서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소예지는 깜짝 놀라 휴대폰 화면을 끄고 고개를 들었다.“왜 돌아왔어?”“하슬이가 목마르대서 물 가져다주려고.”고이한은 빠르게 꺼진 휴대폰을 한번 바라봤지만 더 묻지 않고 다시 딸에게 돌아갔다.고이한이 떠난 뒤 소예지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더는 영상을 보지 않았다.영상 속 일들은 기억 속에 모두 남아 있었다. 떠올리고 싶지 않았을 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선명하게 기억해 낼 수 있었다.멀지 않은 곳에서는 두 아이와 젤리가 함께 뛰어놀고 있었고 두 남자는 곁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고파진 아이들이 먹을 것을 찾으러 돌아왔다. 소예지는 아이들을 챙겼고, 고이한과 윤하준도 함께 돌아왔다.두 사람은 일 이야기를 나누다가 하종호의 근황도 이야기했다. 하종호는 이제 생후 6개월 된 아이를 돌보는 전업 아빠가 되어 있었다. 아이가 생기고 나니 친구들과 만날 시간도 눈에 띄게 줄었다.오후 3시 반이 되어서야 두 아이는 아쉬워하며 헤어졌다. 돌아오는 길에 한참 재잘거리던 고하슬은 결국 소예지의 품에서 잠이 들었다.이제 정말 초등학교 생활이 시작될 참이었다.한편 윤하준이 이안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이안이 뒷좌석에서 고개를 내밀며 물었다.“삼촌은 언제 외숙모 만들어줄 거예요? 예지 이모처럼 다정한 사람이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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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92화

저녁이 되자 양희순은 기분 좋게 세 사람의 식사를 준비했다. 고이한도 이제는 완전히 제집처럼 드나들었고 양희순은 차를 마실 때 쓰라고 전용 컵까지 따로 마련해 두었다.저녁에 한숨 푹 잔 고하슬은 다시 기운이 넘쳤다.소예지는 조금 피곤해 2층 작은 거실에서 책을 읽었고 고하슬은 젤리를 데리고 아빠를 찾아갔다. 소예지도 굳이 말리지 않았다.그러다 밤 10시가 다 되도록 딸이 돌아오지 않자 결국 옆집으로 찾으러 갔다.고이한의 2층 놀이방에서는 고하슬이 인형을 가지고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다. 고이한은 옆 매트에 느긋하게 앉아 긴 다리를 편 채 작은 장난감 하나를 들고 딸의 놀이에 맞춰주고 있었다.“엄마 왔어요? 빨리 와서 우리랑 같이 놀아요!”고하슬이 반갑게 손짓했다.밤공기가 제법 서늘해진 탓에 소예지는 얇은 니트 카디건을 걸치고 있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는 자연스럽게 풀어둔 상태였다.고이한의 눈빛이 금세 짙어졌다.소예지가 딸에게 말했다.“너무 늦었어. 오늘은 그만 놀고 자자.”“나 잠 안 와요. 더 놀고 싶어요.”오후에 낮잠을 잔 고하슬은 아직 기운이 넘쳤다.소예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그럼 20분만 더 놀고 자러 가는 거야. 알았지?”“네. 대신 엄마도 여기서 같이 놀아야 해요.”소예지는 딸 옆에 다리를 포개고 앉았다.“그래. 엄마도 같이 놀게.”고하슬은 다시 소꿉놀이에 빠져들었고 소예지는 턱을 괸 채 가끔 필요한 장난감을 건네주었다.맞은편에서는 뜨거운 시선이 계속 따라붙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도 고이한의 존재감이 너무 선명했다.소예지는 결국 불편함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 한번 노려봤다. 하지만 고이한은 피하기는커녕 웃음이 더 짙어졌다. 눈에는 다정함이 가득했다.아예 자세까지 바꿔 한쪽 무릎을 세우고 팔꿈치를 올린 채 대놓고 소예지를 바라봤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다는 듯한 눈빛이었다.소예지는 얼굴이 뜨거워져 결국 고개를 숙이고 딸의 놀이에만 집중했다.고하슬은 자기만의 놀이에 푹 빠져 인형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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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93화

소예지가 얼떨떨해하는 사이 고하슬이 엄마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엄마도 아빠한테 잘 자라고 해야죠!”그제야 소예지는 딸이 조금 전 고이한에게 무슨 귓속말을 했는지 알아차렸다.딸의 손을 잡은 소예지는 옆에 선 고이한을 보지 않은 채 나지막이 말했다.“잘 자.”그러고는 고하슬을 데리고 돌아섰다.소예지의 집으로 돌아오자 고하슬이 고개를 들어 엄마를 바라봤다.“엄마, 나 기억나요. 예전에는 아빠가 매일 우리한테 잘 자라고 해주고 뽀뽀도 해줬잖아요.”딸이 예전 일을 떠올리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소예지는 조용히 대답했다.“응, 그랬지.”고하슬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폴짝폴짝 뛰더니 2층으로 올라가 양치를 하고 잘 준비를 했다.밤이 깊어지고, 고하슬은 소예지의 품에 누워 커다란 눈을 깜빡거렸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 떠올랐는지 엄마를 꼭 끌어안으며 서운한 목소리로 말했다.“엄마, 이제는 엄마랑 아빠가 다시는 헤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갑작스러운 딸의 한마디가 소예지의 가장 여린 곳을 건드렸다. 숨이 잠시 멎는 듯했다.소예지는 품 안의 딸을 조금 더 꼭 끌어안았다. 고하슬은 더 말하지 않고 엄마 품을 파고들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소예지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히려 잠이 달아난 건 소예지였다.이어폰을 끼고 휴대폰 앨범을 열어 오래된 사진들까지 거슬러 올라가던 손가락이 사진 한 장에서 멈췄다.눈으로 뒤덮인 풍경 속에서 고이한이 패딩을 벌려 소예지를 품 안에 꼭 감싸고 있는 사진이었다. 지나가던 사람에게 부탁해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사진 속 소예지는 털모자 아래로 두 눈을 초승달처럼 휘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고이한은 그런 소예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옆얼굴은 여전히 선이 뚜렷하고 차가운 인상이었지만 소예지를 바라보는 눈만큼은 놀랄 만큼 밝았다.감출 생각조차 없어 보이는 애정이 눈빛에 가득했고 입가에 걸린 미소는 주변의 눈마저 녹일 만큼 다정했다.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두 사람은 눈을 보러 겨울 풍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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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94화

소예지는 잠시 멈칫했다.고이한이 그런 소예지를 보며 살짝 웃었고 두 사람은 차례로 교장과 악수를 나눴다. 소예지도 굳이 오해를 바로잡지는 않았다.50대 초반인 교장은 미국 출신으로 현지 국제 초등학교에서 교장을 지낸 경력이 있어 교육 경험이 풍부했다.고하슬은 다정한 외국인 담임 선생님의 손을 잡고 교실로 향했다.소예지는 딸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한 뒤 멀어지는 뒷모습을 한참 바라봤다. 대견한 마음과 걱정이 뒤섞였다. 아무래도 처음 다니는 학교이다 보니 부모로서 걱정이 되는 건 당연했다.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지도 신경 쓰였고 처음으로 품을 떠나 학교생활을 시작한다는 생각에 마음 한편이 허전하기도 했다.딸을 교실까지 보낸 뒤 두 사람은 나란히 주차장으로 향했다.고이한이 먼저 물었다.“연구소까지 데려다줄까?”“괜찮아. 당신은 회사로 가.”소예지는 괜히 고이한의 시간을 뺏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연구소에 들어간 투자금이 사실 고이한의 돈이라는 걸 알게 된 뒤로는 그가 짊어진 부담도 적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알았어. 일단 집까지 데려다줄게. 운전 조심하고 이문혁이 뒤에서 따라갈 거야.”소예지의 마음이 따뜻해졌다.“고마워.”고이한은 잠시 후 다시 입을 열었다.“아까 교장 선생님이 오해한 건 신경 쓰지 마.”“응, 알았어.”고이한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사실 소예지의 반응을 떠보려고 일부러 꺼낸 말이었다. 그런데 정작 소예지는 ‘사모님'이라는 호칭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그럼... 오후에는 내가 하슬이 데리러 올게. 당신은 굳이 서둘러 돌아오지 않아도 돼.”고이한은 화제를 돌리며 다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부탁할게.”소예지가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고이한은 결국 참지 못했다.“다른 사람이 또 당신을 ‘사모님'이라고 부르면 싫어?”운전대를 잡은 손가락에 슬며시 힘이 들어갔다. 시선은 앞을 향하고 있었지만 곁눈질로는 소예지의 표정을 놓치지 않고 살폈다.차 안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고이한이 다시 화제를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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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95화

고이한은 일부러 몸을 기울여 소예지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거리낌 없이 파고드는 눈빛이 꽤나 짙었다.“내가 그 오해가 진짜가 되길 얼마나 바라는지 뻔히 알면서 일부러 그런 말로 약 올린 거야? 응?”마지막 한마디가 낮고 묘하게 사람을 간질였다.소예지는 다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고이한과 눈을 마주치기도 싫었고 속내를 들킨 게 민망하기도 했다.“운전해. 나 회의 가야 돼.”더는 이 이야기를 이어갈 생각이 없었다.“억지로 재촉하진 않을게.”고이한은 한마디 한마디 분명하게 말했다.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그래도 내 마음속에서 당신은 언제나 내 유일한 아내야.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아.”소예지가 홱 고개를 돌렸다. 다정하면서도 진지한 눈빛과 정면으로 마주치자 숨이 잠시 막혔다.고이한은 피하지 않았다. 솔직한 눈으로 소예지를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마침 소예지의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을 확인한 소예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부탁했다.“제발 출발해 줘. 나 진짜 시간 없어.”고이한은 할 말을 잃은 듯 잠시 입을 다물었지만 결국 얌전히 차를 출발시켰다.집까지는 차로 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금세 도착한 소예지가 차에서 내려 자신의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으려는데 어느새 고이한이 뒤까지 따라와 있었다.소예지가 고개를 들었다.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고이한이 몸을 숙여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마에 입을 맞췄다.“운전 조심해.”소예지가 얼떨떨하게 굳어 있는 사이, 고이한은 이미 자신의 차로 돌아가 그대로 떠났다.고신 그룹 본사 임원실이 있는 층.방유나는 서류를 품에 안고 연결 통로를 지나고 있었다. 일부러 평소보다 먼 길로 돌아가던 중, 뒤쪽에서 대표 전용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방유나는 품에 안은 서류를 저도 모르게 꽉 끌어안았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숨을 죽인 채 슬쩍 몸을 돌려 엘리베이터 쪽을 바라봤다.문이 완전히 열리고 고이한이 먼저 걸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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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96화

“네, 부장님. 바로 준비하겠습니다.”방유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눈에는 들뜬 기색과 감추지 못한 욕심이 스쳤다.빠른 걸음으로 자료실로 향하면서도 가방에서 작은 거울을 꺼내 화장을 확인하는 걸 잊지 않았다.입사한 지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고이한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서류를 나눠주고 차를 준비하는 사소한 일이라도 고이한에게 얼굴을 익힐 수만 있다면 충분했다.자료실 유리창에 비친 모습을 보며 머리와 정장을 꼼꼼히 정돈했다. 어디 하나 흐트러진 곳 없이 가장 완벽한 모습으로 보이고 싶었다.유리창에 비친 얼굴은 젊고 아름다웠으며 생기가 넘쳤다. 다만 눈빛에는 욕심과 계산이 어려 있었다.방유나에게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고신 그룹 안에서 자신을 밀어줄 인맥이 있었다. 감히 고이한을 욕심낼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문득 이모가 고이한의 전처를 두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과학자면 어떻고 아무리 뛰어난 여자면 또 어떤가. 고씨 집안의 대를 이을 아이를 더 낳아줄 수 없다면 그게 가장 큰 약점이었다.남자란 결국 자신의 뒤를 이을 아들을 원하기 마련이었다. 특히 고이한처럼 막대한 부와 권력을 가진 남자라면 더더욱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그러니 자신은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기다렸다가 적당한 기회가 왔을 때 자신의 가치와 장점을 보여주기만 하면 됐다. 어쩌면 그것만으로 인생이 완전히 달라질지도 몰랐다.회의 시작을 앞두고 방유나는 자료를 안은 채 회의실로 들어갔다. 안에는 이미 십여 명의 임원이 자리를 잡고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상석만 비어 있었다.방유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지 않고 각 자리 앞에 회의 자료를 차례로 놓았다. 일 처리만큼은 능숙하고 빈틈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그때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김경환이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보고하는 소리가 이어졌다.방유나는 세차게 뛰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얼른 허리를 펴고 한쪽으로 물러나 고개를 살짝 숙였다.곧 회의실로 들어선 고이한에게서는 등장만으로도 분위기를 압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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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97화

“누구 지시인지 알 수 있을까요?”방유나는 용기를 내어 물었다.“윗선에서 내린 결정입니다.”“윗선이라면 정확히 누구 말씀인가요?”방유나는 재차 캐물었다. 이모부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는 만큼 아무나 제 보직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방유나 씨, 아마 고 대표님 지시일 겁니다. 일단 인사 조치에 따라주세요.”상대도 더는 돌려 말하지 않았다.방유나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고이한이 직접 다른 부서로 보내라고 했다고? 설마 오늘 내가 뭔가 잘못한 건가?’하지만 고이한 같은 사람이 자신이 누군지 기억이나 할까 싶었다. 그런 사람이 굳이 입사한 지 일주일밖에 안 된 직원을 당장 다른 자리로 보내라고 할 이유가 없었다.납득할 수 없었던 방유나는 결국 큰이모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를 받은 조미란도 깜짝 놀랐다.“뭐? 출근한 지 일주일밖에 안 됐는데 벌써 다른 부서로 보낸다고?”“이모, 이모부한테 한번 알아봐 달라고 하면 안 돼요? 이모부가 인사팀 부장님이랑 친하시잖아요. 왜 그런 건지 좀 물어봐 주세요. 저 지금 자리 마음에 들어요.”방유나가 부탁했다.애초에 조미란이 방유나를 고신 그룹에 넣어준 것도 고이한과 이어주려는 속셈이 있었기 때문이다.“잠깐 기다려. 내가 지금 네 이모부한테 전화해서 알아볼게.”전화를 끊은 방유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사무실에 앉아 조금 전 회의실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씩 되짚어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실수한 건 없었다.5분쯤 지나 휴대폰이 울렸다. 조미란이었다.방유나는 황급히 전화를 받았다.“이모, 어떻게 됐어요?”조미란이 답답하다는 듯 한숨부터 내쉬었다.“네 이모부가 인사팀에 물어봤는데 고 대표 수행비서가 직접 전화해서 네 보직을 바꾸라고 했대.”“뭐라고요? 제가 뭘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저한테 이러는 거예요?”방유나의 목소리에 억울함이 가득 묻어났다.“너 때문은 아닌 것 같아. 고이한이 지난 1년 동안 여자 비서를 곁에 두지 않았대.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수행비서는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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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98화

방유나는 얼마 되지도 않는 개인 물품을 상자에 챙겼다. 얼굴은 내내 화끈거렸다.갑작스럽게 다른 부서로 발령받은 게 마치 자신이 고이한의 눈에 들지 않아 바로 치워진 사람이라도 된 것 같아 자존심이 상했다. 어릴 때부터 가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자란 방유나에게 이런 대접은 처음이었다.평범한 남자가 자신을 이렇게 대했다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고이한이라면 얘기가 달랐다.방유나는 상자를 품에 안고 착잡한 얼굴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머릿속에는 계속 큰이모가 했던 말이 맴돌았다.고이한은 여자 비서를 곁에 두지 않는다.‘대체 왜일까? 여직원을 쓰지 않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걸까?’‘아니면 소예지가 워낙 강한 성격이라 고이한에게 여자 비서를 두지 못하게 하는 걸까?’고이한 주변에 접근할 가능성이 있는 여자는 아예 곁에 두지 못하게 하는 건지도 몰랐다.문득 소예지에게 대체 어떤 매력이 있기에 딸까지 낳고 이미 이혼한 뒤에도 여전히 고이한의 삶에 이토록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하지만 큰이모에게 들은 얘기로는 분명 예전에 고이한이 먼저 소예지를 버렸다고 했다.방유나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다음에는 회사에서 고이한을 다시 마주칠 기회가 생기길 바랐다. 그의 눈에 한 번이라도 제대로 들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애쓴 게 모두 헛수고가 될 것이었다.연구소.소예지는 이지원과 휴게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이지원은 최근 독일에서 새로 개발된 뇌신경 활동 측정 장비 이야기를 꺼냈다. 현재 진행 중인 연구에 상당한 도움이 될 만한 장비였다.이지원이 안경을 추켜올리며 말했다.“나도 진 대표님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는 소식은 봤어. 그렇다고 우리 연구를 멈출 수는 없잖아. 내가 알아봤는데 관세에 사후 유지 비용까지 합치면 일단 200억 가까이는 잡아야 할 것 같아. 수입 절차도 까다로워서 별도 승인까지 받아야 하고.”소예지는 커피잔을 들던 손을 잠시 멈췄다.이 장비는 2년 전 처음 공개됐을 때부터 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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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99화

소예지는 다시 연구 이야기로 돌아왔다.“그 장비 정확한 가격부터 알아봐 줘. 도입하는 쪽으로 검토해 보자.”200억 원에 가까운 예산은 확실히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고이한이 투자한 거액의 자금이 있다고 해도 결코 가볍게 쓸 수 있는 돈은 아니었다. 투자금은 연구소 전체 운영과 이미 계획된 연구 과제에 쓰일 돈이라 여기에 갑자기 고가의 장비 구입 비용까지 추가하려면 자금 운용에 상당한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예지야, 이 장비는 우리 연구에 정말 중요해. 지금 막혀 있는 부분을 뚫을 핵심 장비라고 해도 될 정도야. 내가 직접 고 대표한테 얘기해 볼까?”소예지가 얼른 말렸다.“아니, 아직은 그러지 마. 그 사람도 매일 바빠. 연구소 일까지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아.”이지원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그럼 내가 가격이랑 도입 절차부터 자세히 알아볼게.”사실 소예지도 지금까지 고이한에게 받은 게 너무 많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더는 빚지고 싶지 않은 마음에 이 장비를 두고 계속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물론 결국에는 어떻게든 장비를 들여올 생각이었지만 문제는 어떤 자금으로 구입하느냐였다.오늘은 고하슬이 처음 학교에 간 날이었다. 소예지는 일을 하다가도 문득 딸이 학교에서 잘 지내고 있을지 궁금해졌다.다행히 담임 선생님이 학부모 단체방에 아이들의 사진을 틈틈이 올려주었고 소예지는 사진 속에서 즐겁게 지내는 딸의 모습을 찾아보며 조금이나마 마음을 놓았다.오후 회의를 마친 뒤 소예지는 고이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나도 맞춰서 돌아갈게. 같이 하슬이 데리러 가자.]딸의 첫 등교 날인 만큼 첫 하교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곧 답장이 왔다.[그래. 집에서 기다릴게.]오후 3시 반, 소예지는 평소보다 일찍 퇴근했다. 4시가 되자 고이한의 차도 집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은 지상 주차 공간을 함께 쓰고 있어 차가 들어오는 게 바로 보였다.소예지는 휴대폰만 챙겨 고이한의 차로 향했다. 차창이 내려가자 운전석에 느긋하게 기대앉은 고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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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00화

다만 소예지의 마음에는 아직 완전히 넘지 못한 벽이 남아 있었다.특히 두 사람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 가는 지금, 이해관계까지 지나치게 얽히면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더욱 혼란스러워질 것 같았다.더구나 일에 관한 문제만 나오면 고이한이 내미는 선택지는 늘 정답이 하나뿐인 것처럼 느껴졌다.고이한은 살짝 찌푸려진 소예지의 미간을 바라봤다. 차 안에 잠시 정적이 흐르다 고이한이 불쑥 물었다.“당신, MD와 협력하는 걸 받아들이면 나까지 받아들이는 것 같아서 그래?”소예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미 눈치챈 듯한 물음이었다.소예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언제부터였을까. 고이한은 끊임없이 자신의 자원과 인맥을 소예지에게 내어주었고 이제 와 돌아보니 지금까지 자신이 이룬 성과 곳곳에 그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고이한이 손을 뻗어 소예지의 무릎 위에 놓인 손을 가볍게 감쌌다. 따뜻하고 단단한 손길에 소예지는 살짝 놀랐지만 손을 빼지는 않았다.“소예지.”고이한의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또렷했다.“당신한테 사심이 있는 건 인정해. 그래도 난 당신이 더 높은 곳에 올라가 더 많은 인정과 박수를 받았으면 좋겠어. 그건 내가 당신한테 해줘야 할 일이기도 하고.”소예지가 고개를 들자 눈가가 살짝 뜨거워졌다. 두 사람 사이에서 누가 누구에게 빚을 졌는지는 이미 따질 수 없게 된 지 오래였다.굳이 처음부터 따지자면 고이한이 아버지의 연구소에 처음 투자했던 때부터 오히려 소씨 집안이 고이한에게 빚을 진 셈이었다.그때 고이한이 안전벨트를 풀고 몸을 기울여 다가왔다. 커다란 몸이 차창으로 들어오던 빛을 가리자 소예지는 저도 모르게 시트에 등을 붙였다.익숙한 체취가 가까워지더니 입술 위로 부드러운 감촉이 내려앉았다.아주 가벼운, 조심스럽게 반응을 살피는 듯한 절제된 입맞춤이었다.소예지의 속눈썹이 가늘게 떨렸다.지척에 있는 고이한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고이한은 눈을 감지 않은 채였고 깊은 눈동자 안에는 작은 소예지의 모습이 고스란히 비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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