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los capítulos de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Capítulo 1601 - Capítulo 1610

1620 Capítulos

제1601화

“응.”소예지가 나직이 대답했다.가는 내내 그녀는 고개를 돌린 채 창밖만 바라봤다. 마음속은 온갖 감정이 뒤섞여 어지러웠다.다행히 학교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주차장에 도착하자 아이들을 데리러 온 고급 승용차와 밴들이 곳곳에 늘어서 있었다.“예지야.”고이한이 불쑥 그녀를 불렀다.간신히 가라앉혔던 소예지의 심장이 다시 쿵 하고 요동쳤다.고이한은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MD와의 협력, 한번 생각해 보면 안 될까?”거의 부탁하는 듯한 말투였다.이어 그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억지로 강요하진 않을게. 그냥... 더는 나를 완전히 밀어내지만 않았으면 좋겠어. 하슬이 아빠로서든 사업 파트너로서든.”물론 거기에 다른 관계 하나를 더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소예지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복잡하게 얽혀 있던 머릿속이 차츰 정리되며 이성이 돌아왔다.연구자로서는 더 좋은 환경과 기회가 생기면 놓치지 말고 붙잡아야 했다. 원한다고 아무나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아니었으니까.하지만 소예지는 잘 알고 있었다.어떤 선택을 하든 자신의 사적인 감정을 완전히 지워 낼 수는 없다는 걸.“좋아.”소예지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MD랑 협력할게. 내일 회의에도 갈게.”그제야 고이한은 안도한 듯 미소를 지었다.“응, 좋아.”잠시 후 두 사람은 고하슬을 데리러 갔다가 업계에서 알고 지내던 지인 몇몇과 마주쳤다.그들 역시 두 사람이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나란히 딸의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을 보자 다들 뭔가 안다는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고하슬은 예상대로 잔뜩 신이 나 있었다.“아빠, 엄마! 둘 다 나 데리러 왔네요! 나 진짜 신나요!”“앞으로도 시간 될 때마다 아빠랑 엄마가 같이 데리러 올게.”고이한이 딸에게 말했다.“네, 좋아요!”고하슬은 작은 책가방을 메고 깡충깡충 뛰어다녔다. 그러면서도 말투는 제법 의젓해 어느새 다 큰 아이 같은 티가 났다.소예지는 저도 모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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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02화

짧은 한 글자였지만 어른이라면 누구나 알아들을 만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하물며 한때 부부였던 두 사람은 말할 것도 없었다.딸이 태어난 뒤로 이 말은 두 사람이 밤마다 종종 주고받던 질문이었다.소예지가 묻지 않으면 고이한이 물었다.그때 또다시 소리 없이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고이한이 덧붙인 말이었다.[다른 뜻은 없어. 그냥 물어본 거니까 오해하지 마.]소예지는 몇 초간 화면 위에 손가락을 멈춘 채 망설이다가 답장을 보냈다.[아직.]그러자 거의 곧바로 답장이 돌아왔다.[잠깐 나올래?]소예지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음표 하나만 보냈다.[?][우리 집 거실.]남자는 꽤 직설적이었다.곧이어 고이한이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가볍게 한잔하면서 내일 MD랑 협력할 일도 좀 얘기하자.]소예지는 단번에 그의 속셈을 알아챘다.이제 열여덟도 아니고 스물여덟이었다. 이런 수법에 넘어갈 나이는 진작 지났다.[한잔하는 건 괜찮은데 일 얘기는 됐어. 자기 전까지 일 얘기하고 싶진 않아.]소예지가 답장을 보내자 이번에도 곧바로 답이 왔다.[알았어. 일 얘기는 안 할게.]소예지는 휴대폰 화면을 가만히 바라봤다.테라스에는 서늘한 밤바람이 불어와 뺨과 귓가를 스쳤다. 머릿속에서는 이성과 감정이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벌였다.‘갈까, 말까?’결국 소예지는 휴대폰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방으로 들어가 니트 카디건을 하나 걸친 뒤 방을 나섰다.1층으로 내려오니 집 안은 고요했다. 양희순도 아마 잠자리에 든 모양이었다.소예지는 두 집을 이어 주는 문을 밀어 열었다.맞은편 거실에는 이미 불이 켜져 있었다. 환하게 밝힌 조명은 아니었다. 간접 조명만 켜 둔 탓에 거실에는 은은하고 어스름한 분위기가 감돌았다.공기 중에는 옅은 술 향과 희미한 삼나무 향이 뒤섞여 있었다.고이한은 오픈형 주방의 아일랜드 앞에 서서 와인 한 병을 따고 있었다. 옆에는 유리로 된 와인잔 두 개가 놓여 있었다.그 역시 편안한 차림이었다. 짙은 색 면 소재 상의에 긴 바지를 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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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03화

고이한은 소예지의 시선을 예민하게 알아챘다.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눈빛은 깃털처럼 그의 마음을 살며시 스치고 지나갔다. 노골적인 유혹보다 훨씬 더 심장을 뛰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었다.와인잔을 쥔 고이한의 손가락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마치 그녀에게 거절이라도 당할 사람처럼 긴장됐다.“무슨 생각 해?”고이한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소예지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하게 대답했다.“그때 내가 당신을 만나지 않았으면 지금쯤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순간 무언가가 고이한의 심장을 꽉 움켜쥐는 듯했다.‘후회하는 건가.’‘나를 만난 걸 후회하는 걸까.’소예지는 와인잔을 내려다보며 그 시절을 떠올렸다.“사실 그해 여름에 아빠가 교류 연수를 위해 경주로 가라고 했고 나도 이미 가겠다고 했었어. 그날 내가 아빠 대신 자료를 전해 주러 가지 않았다면 병원 복도에서 우리가 부딪칠 일도 없었겠지. 어쩌면 평생 만날 일도 없었을 거야.”고이한의 호흡이 순간 멎었다.그해 여름 두 사람이 만나지 않았다면 소예지가 어떤 삶을 살았을지는 어렵지 않게 그려졌다.무사히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와 박사 과정을 밟았을 것이다.‘그리고 강준석을 만났겠지.’어쩌면 강준석과 결혼했을지도 몰랐다.아니면 국립과학원에 들어가 임현욱을 만났을 수도 있었다.그랬다면 두 사람의 인생은 완전히 다른 궤도를 달렸을 것이다.당시 고이한은 해외 연구소에 투자하는 정도에 그쳤을 테고 소예지가 진행하던 최첨단 의학 연구 프로젝트를 보지 않았다면 애초에 의학 분야에 투자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그렇다면 두 사람의 인생이 교차할 가능성은 아예 없었다.물론 그녀의 존재를 알게 될 수는 있었다.의학 학술대회에 참석한 그녀를 보고 소예지라는 사람이 있다는 정도는 알게 됐을 것이다.하지만 두 사람은 분명 스쳐 지나가는 사이로 끝났을 것이다.고이한의 목울대가 천천히 움직였다.그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당신 인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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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04화

고이한은 손을 뻗어 소예지를 제 품으로 끌어당기더니 단단히 끌어안았다.소예지의 몸이 그의 품 안에서 살짝 굳었다.머리 위로 고이한의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그해 여름에 우리가 만나지 않았더라도 난 결국 당신을 사랑하게 됐을 거야.”소예지는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곧바로 고이한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의 눈에는 조금도 감추지 않은 진심과 집착에 가까울 만큼 확고한 믿음이 담겨 있었다.“왜 그렇게 확신해?”소예지가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고이한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몸을 살짝 떨어뜨렸다. 이윽고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당신한테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어. 나를 끌어당길 만큼 강렬한 무언가가. 그해 여름에 당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의학계 어딘가에서 당신을 알게 됐을 거야.”“그리고... 당신을 쫓아다니고 당신 연구에 투자하면서 어떻게든 내 존재를 각인시켰겠지.”고이한의 목소리가 고요한 거실에 낮게 울려 퍼졌다. 마치 이미 정해진 운명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그의 손끝이 소예지의 귓가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넘겼다.“어떤 시간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만나든 당신은 자석처럼 날 끌어당겼을 거야.”이어 고이한은 고개를 숙여 소예지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살며시 맞댔다.두 사람의 숨결이 뒤섞였다.그가 마치 선언하듯 말했다.“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식으로 만났든 당신을 향한 내 마음은 필연이야. 시간도 장소도 만나는 방식도... 전부 달라질 수 있어. 하지만 당신만큼은 내가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답이야.”고이한의 입술이 소예지의 이마에 가볍게 내려앉았다.소예지의 심장이 제멋대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얼굴까지 화끈하게 달아올랐다.그녀는 바로 눈앞에 있는 고이한의 눈을 바라봤다.그 안에는 조금도 숨기지 않은 뜨겁고 솔직한 감정이 일렁이고 있었다.“그러니까 다시는 ‘우리가 만나지 않았더라면’ 같은 말 하지 마.”고이한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지만 못내 서운한 기색까지는 감추지 못했다.“우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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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05화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도 누군가에게 마음을 내어 줄 수 있다는 것.어쩌면 그것이 소예지가 이제야 알게 된 또 다른 사랑의 모습인지도 몰랐다.소예지는 이미 스스로 충분히 완전한 사람이었다. 굳이 외부에서 무언가를 채워 넣을 필요도 없었다.그럼에도 그녀의 마음은 어느새 고이한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다음 날 아침 일찍 세수를 마친 고하슬은 곧장 고이한이 있는 집으로 달려갔다.“아빠, 나 학교 데려다주세요.”얼마 지나지 않아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고이한이 들어와 고하슬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양희순은 문 앞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웃었다.“고 선생님, 오늘 정말 일찍 일어나셨네요!”그러고는 뒤를 돌아 소예지를 한번 바라봤다.“사모님, 아침 차려 드릴게요. 이따 장어요리도 좀 준비할까요?”소예지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설마 어젯밤 내가 고이한 집에 갔던 걸 아주머니가 들은 건가.’‘그래서 뭔가 오해하신 건가.’“그냥 평소처럼 아침만 차려 주세요. 먹고 출근할게요.”소예지가 말했다.양희순은 더 캐묻지 않고 웃으며 대답했다.“네. 그럼 아침 준비할게요. 고 선생님 것도 같이 해 두면 돌아오실 때 바로 드실 수 있겠네요.”“네.”소예지는 대답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위층으로 올라가 침실을 정리했다.학교까지는 차로 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이한은 딸을 학교에 데려다준 뒤 별장으로 돌아와 마침 양희순이 차려 둔 아침을 먹었다.아침을 먹고 나갈 준비까지 마치니 어느새 오전 아홉 시였다.소예지가 차를 몰고 나가려 하자 고이한이 다가와 자연스럽게 조수석 문을 열었다.“같이 MD에 가. 운전하기 싫어.”핑계를 댈 생각조차 없다는 듯 당당한 태도였다.소예지는 별말 하지 않았다.그러자 고이한은 곧바로 조수석에 올라탔다.“어젯밤 잘 잤어?”“응, 잘 잤어.”실제로 소예지는 푹 잤다.“나도.”고이한이 대답했다.소예지가 그에게 말했다.“내가 한의사한테 부탁해서 당신 먹을 한약을 지어 놨어. 오늘 집으로 배송될 거야.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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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06화

엘리베이터가 위로 올라가는 동안 소예지의 뒤에는 고이한이 묵묵히 서 있었다.침착하고 흔들림 없는 그의 존재감은 마치 말없이 든든하게 버티고 선 커다란 산 같았다.띵.가벼운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회의실에는 이미 MD의 핵심 임원 몇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긴 회의 테이블 앞에 도착하자 고이한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옆자리 의자를 빼 주었다.“여기 앉아.”소예지가 잠시 머뭇거리자 주현우도 웃으며 권했다.“소 박사님, 앉으시죠.”그러자 사람들의 시선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소예지에게 향했다.오늘 모인 사람들은 전략적 협력 사업을 논의한다는 연락을 받고 이 자리에 왔지만 사실상 큰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저 형식적인 절차를 밟고 세부 사항을 조율하기 위해 모인 것이나 다름없었다.소예지가 고이한을 바라보자 그는 이미 자리에 앉은 채 다시 한번 옆자리를 가리켰다.결국 소예지도 그의 뜻대로 자리에 앉았다.고이한이 먼저 입을 열었다.“오늘 다들 모이시라고 한 건 한 가지 사안 때문입니다. 소예지 박사 프로젝트와 MD 간의 전략적 협력에 관한 일입니다. 기본 협약과 세부 사항은 추후 담당자끼리 구체적으로 협의해 진행하도록 하죠.”MD 측 임원들은 잇따라 고개를 끄덕였다.그때 주현우가 준비해 온 서류를 꺼내 소예지에게 건넸다.“계약서 한번 검토해 보시죠. 별다른 문제가 없으면 믿을 만한 분을 보내 주셔도 됩니다. 세부 사항은 저희와 따로 조율하시면 됩니다.”소예지는 서류를 받아 든 뒤 미소를 지었다.“죄송하지만 잠시 자리 좀 비켜 주시겠어요? 고 대표님과 이 문제를 따로 얘기하고 싶어서요.”주현우가 잠시 멈칫했다.다른 사람들도 상황을 눈치채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나갔다.사람들이 모두 나간 뒤에도 소예지는 손에 든 서류를 펼치지 않았다.그저 고개를 들어 옆에 앉은 고이한을 차분히 바라봤다.“이번 협력, 당신이 개인적으로 밀어붙인 거지?”단도직입적인 질문이었다.고이한은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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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07화

“이 계약서는 보지 않을게. 그래도 이번에 당신이 보여 준 마음은 정말 고마워.”소예지가 단호하게 말했다.고이한은 미간을 찌푸렸다. 반박하려던 말이 입가까지 올라왔지만 결국 도로 삼켰다.그는 고개를 들어 소예지를 가만히 바라봤다.그녀는 햇빛을 등지고 서 있었지만 두 눈만큼은 유난히 밝게 빛났다.홧김에 내린 결정도 괜한 고집도 아니었다.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내린 냉정하고 분명한 판단이었다.그 순간 고이한은 어쩌면 자신이 정말 잘못 생각했을지도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그는 그저 소예지가 조금이라도 편한 길을 걷게 해 주고 싶었다.하지만 이제는 그녀가 직접 걸어야 할 길도 있었고 스스로 넘어야 할 고비도 있었다.그래야 자신의 힘으로 얻어 낸 결실에 더 큰 성취감을 느끼고 그만큼 당당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테니까.그런 생각이 들자 고이한의 마음속에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아쉬움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건 소예지를 향한 감탄과 뿌듯함이었다.고이한은 낮게 웃었다. 웃음에는 다정한 기색이 살짝 묻어났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예지에게 다가갔지만 소예지는 물러서지 않았다.고이한이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내가 생각이 짧았어. 당신한테 가장 좋은 걸 주고 싶다는 생각만 했지. 정작 당신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는 물어보지도 않았네.”그의 손가락이 맞닿자 소예지는 순간 움찔했지만 손을 뿌리치지는 않았다.고이한은 잠시 그녀의 손을 잡고 있다가 이내 놓아주었다.“당신 뜻대로 할게. 이 계약서는 주 대표한테 회수하라고 할게.”그렇게 협력에 관한 이야기는 일단락됐다.고이한이 시간을 확인한 뒤 물었다.“시간도 벌써 이렇게 됐는데 점심 같이 먹을래?”“좋아. 내가 살게.”소예지도 흔쾌히 대답했다.“그런데 점심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네. 나 잠깐 들를 데가 있는데 같이 가 줄래?”고이한이 불쑥 부탁했다.“어디 가는데?”소예지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시험 주행장.”고이한이 대답하고는 덧붙였다.“회사에서 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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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08화

소예지는 조용히 옆에 서서 기다렸다.차량 점검을 마친 고이한은 정장 재킷을 벗고 셔츠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러자 탄탄한 팔뚝 위로 선명한 핏줄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그때 직원 한 명이 다가와 안전 헬멧을 건넸다. 고이한은 헬멧을 받아 쓰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소예지를 한번 바라봤고 그 순간 그녀의 심장이 이유 없이 덜컥 내려앉았다.‘시승이라고 해 봐야 그냥 평범하게 한번 몰아보는 것 아니었나?’엔지니어가 운전석 문을 열어 주자 고이한이 차에 올라탔다. 조수석에는 설명을 맡을 수석 엔지니어가 함께 탔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안전 구역으로 물러났다.이윽고 시동이 걸리자 낮게 깔린 모터 구동음과 함께 금방이라도 튀어 나갈 듯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아무래도 평범한 시승은 아닌 모양인데.’소예지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옆에 있던 주현우가 말했다.“고 대표님이 한계 성능까지 테스트하시려나 봅니다.”한쪽에 서 있던 엔지니어도 긴장과 흥분이 뒤섞인 목소리로 설명을 덧붙였다.“이 차량에는 최근 개발한 트랙 모드가 적용됐습니다. 출력이나 섀시 반응이 일반 모드보다 훨씬 민감하고 강력합니다.”소예지는 아무 말 없이 차량을 바라봤다.천천히 주차 구역을 빠져나온 차는 직선 구간에 들어서자 순식간에 속도를 높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차체를 미끄러뜨리듯 날카롭게 방향을 틀어 곧장 급차선 변경 시험 구간으로 진입했다.높은 관람대에 서 있는 소예지에게도 차량의 폭발적인 움직임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런데 그토록 빠른 속도에도 차체는 놀라울 정도로 안정적으로 제어되고 있었고 짙은 회색의 차량은 마치 한 줄기 섬광처럼 코스 위를 빠르게 가로질렀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예지의 심장도 덩달아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어느새 주먹을 꽉 쥔 손에는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고 손바닥에는 옅은 땀까지 배어 나왔다.고이한이 레이싱하듯 차를 모는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멀리서 지켜보고 있을 뿐인데도 마치 자신이 함께 차에 타고 있는 것처럼 가슴이 조마조마했다.위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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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09화

소예지는 고개를 돌리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아니.”하지만 고이한은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한번 물었다.“나 걱정했어?”진지하게 바라보는 눈빛에는 깊은 애정이 묻어 있었다.소예지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고개를 돌려 못마땅한 눈으로 그를 흘겨봤다. 화가 난 건 아니었다. 그저 어린애 같은 짓을 하는 고이한이 얄미울 뿐이었다.‘서른이나 먹은 남자가 아직도 열여덟 살이나 할 법한 유치한 장난을 치다니.’그 표정을 본 고이한은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시원하고 유쾌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그는 기분 좋은 얼굴로 엔지니어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고 대표님, 어떠셨습니까?”수석 엔지니어가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고이한은 금세 웃음을 거두고 업무에 집중했다. 조금 전까지 소예지에게 장난을 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진지한 태도로 이번 시험 주행에 대한 평가를 하나씩 내놓았다.소예지는 옆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었다. 차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기술적인 세부 사항을 두고 열띤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흥분만큼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오전 열한 시 반이 다 되어 갔다.주현우는 엔지니어들에게 함께 점심을 먹자고 제안했고 이야기를 마친 고이한도 소예지에게 다가왔다.“우리도 가자. 식당 예약해 뒀어.”입구에는 승합차 한 대가 기다리고 있었다.차에 올라탄 고이한은 습관처럼 옷깃을 느슨하게 풀고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활력이 넘치던 얼굴에는 어느새 옅은 피로가 묻어났다.한계까지 몰아붙이는 주행은 체력뿐 아니라 정신력도 크게 소모하는 일이었다.소예지는 고개를 돌려 그런 그를 바라보다가 조금 전 트랙 위에서 거침없이 질주하던 모습을 떠올렸다.‘남자들은 가끔 저렇게 미친 듯이 뭔가에 몰두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걸까.’얼마 후 고이한이 예약한 식당에 도착하자 소예지는 어딘가 낯익다는 느낌을 받았다.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난번 임현욱과 함께 왔던 프라이빗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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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10화

“당신 연구에 대해서는 내가 잘 모르지만 이번에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얘기해 줄래?”고이한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묻자 소예지의 눈빛도 금세 밝아졌다. 그녀는 찻잔을 내려놓고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입을 열었다.“우리 연구팀이 최근 동물 모델 실험에서 꽤 의미 있는 데이터를 얻었어. 내가 제안했던 방법의 유효성도 어느 정도 확인했고.”“앞으로 전임상 연구랑 초기 임상시험까지 순조롭게 진행되면 실제 환자에게서도 초기 치료 효과를 확인할 수 있을 거야.”고이한의 눈에 감탄이 스쳤다.“편 박사님한테 이번에 당신이 제시한 이론 얘기 들었어. 신경퇴행성 질환의 초기 진행 양상을 근본적으로 바꿀 가능성이 아주 크다더군. 심지어... 노벨상 후보에 오를 수도 있다고.”노벨상 후보.그 말을 들은 소예지는 입술을 살짝 다물었다.그 이름이 지닌 무게는 어떤 연구자라도 가슴을 뛰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단순히 개인에게 주어지는 명예가 아니라 평생을 바친 연구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인정이기도 했다.“나도 그런 가능성이 있었으면 좋겠어.”소예지가 고개를 들자 눈동자가 유난히 반짝였다.고이한은 순간 숨을 멈춘 듯 그녀를 바라봤다.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이야기할 때마다 저렇게 빛나는 모습이 새삼 눈부시게 느껴졌다.“난 당신이라면 할 수 있다고 믿어.”낮고 확신에 찬 목소리에 소예지가 그를 바라보자 고이한은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후보에 오르는 것만이 아니라... 진짜로 상을 받는 것까지.”조금의 의심도 없이 자신을 믿어 주는 고이한의 눈빛을 바라보자 소예지의 마음 한구석에 따뜻한 기운이 스며들었다.이번에는 그가 미리 닦아 놓은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아무 조건 없이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고 응원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웠다.“그래도 앞으로 넘어야 할 고비가 많아. 데이터도 반복해서 검증해야 하고 논문도 엄격한 동료 평가를 통과해야 해.”들뜬 마음을 가라앉힌 소예지가 현실적인 문제를 짚자 고이한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당신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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