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Chapter 351 - Chapter 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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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1화

그 순간, 고이한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통유리창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윤하준 쪽에서 당신한테 연구 기금을 줬다면서?”예고 없이 내던진 그의 말에 소예지는 잠시 멍해졌지만 곧 차분하게 대답했다.“그건 업무와는 무관한 일이잖아.”고이한은 천천히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눈을 가늘게 뜬 그의 시선엔 날카로운 의중이 서려 있었다.“내가 듣기론, 지 여사님 연구소가 문 닫으면서 남은 자금이라던데.”소예지는 손에 쥐고 있던 펜을 무심코 꽉 쥐었다. 역시, 고이한은 모든 걸 알고 있었다.지유선이 남긴 돈은 의료 연구 기준으로 보면 그다지 큰 액수는 아니었다. 특히 지금 그녀가 다루고 있는 분야는 후속 비용만 해도 천문학적이라 끝도 없이 자금이 소모되는 늪 같았다.지금까지 고이한이 이 연구에 투입한 금액만 보더라도 이미 20조 원에 달했다.소예지가 애초에 이 실험실을 세운 건 오직 연구 그 자체를 위해서였고 팀원도 장비도 그리고 그녀의 열정과 시간과 모든 노력이 이곳에 집중돼 있었기에 쉽게 내줄 수도 포기할 수도 없었다.무엇보다 그녀의 연구는 고이한의 전폭적인 투자가 있어야 가능한 분야였고 그걸 따져보면 지금 이 상황은 단순한 감정싸움으로 끊어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고이한은 현재 국내에서 가장 큰 개인 의료 연구 기관을 운영하며 가장 많은 자금을 운용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유리창 너머 도시는 찬란한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지만 사무실 안 공기는 얼어붙은 듯 정적에 잠겨 있었다.“당신이 날 신뢰하지 못하겠다면 협력을 종료해도 상관없어.”소예지는 조용히 일어서며 냉랭한 눈빛을 고이한에게 던졌다.“하지만 내 직업윤리를 의심하진 말아 줘.”그녀는 실험 보고서를 품에 안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연구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싶다면 그렇게 해. 하지만 하나 확실히 말해두지. 이 프로젝트에서 필요한 정밀도와 정확도를 구현할 수 있는 곳은 전 세계에서 우리 실험실 하나뿐이야. 이 연구를 이만큼 이해하고 있는 사람도 나밖에 없고.”그 말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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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2화

소예지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걸 억누르지 못하고 문을 꽝 닫으며 집을 나서버렸다.방금 전 고이한의 그 얄미운 웃음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설마 아직도 내가 자기를 신경 쓴다고 생각하는 건가? 질투라도 하는 줄 아는 거야?’그렇다면 이 남자, 착각도 정도가 심했다.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이한은 여전히 아주 쉽게 그녀의 감정을 뒤흔들 수 있는 사람이었다.딸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생기자, 소예지는 다시 예전처럼 자연스럽게 일에 몰두할 수 있었고 어느새 시간은 훌쩍 흘러 있었다.정신없이 실험을 마친 뒤 보호안경을 벗었을 때, 시계는 벌써 밤 아홉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그제야 놀란 그녀는 부랴부랴 실험실을 정리하고 퇴근 준비를 했다.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들려온 건, 딸의 해맑은 웃음소리와 고이한의 낮은 말소리였다.그의 곁에 꼭 붙어 있던 젤리는 소예지를 보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반갑게 달려왔다.“엄마!”고하슬은 눈을 반짝이며 품에 안겼고 오늘 하루가 얼마나 즐거웠는지 그 표정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사모님, 식사는 하셨어요? 뭐라도 만들어 드릴까요?”양희순이 다정하게 물었다.배가 고팠던 소예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국수 좀 끓여 주세요.”“네, 알겠습니다. 하슬이도 먹을래?”“네! 나도 엄마랑 같이 먹을래요!”고하슬의 얼굴엔 환한 웃음이 번졌다.그제야 고이한이 소파에서 천천히 일어나 말했다.“하슬아, 아빠는 이만 가볼게. 다음에 또 놀자.”그 말에 고하슬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아빠 가지 마!”작고 포동포동한 손으로 그의 다리를 꼭 안은 딸은 아직 키가 작아 그의 다리에 겨우 매달릴 수 있을 정도였다.그 모습을 본 소예지의 이마엔 깊은 주름이 살짝 잡혔다.‘역시 오래 같이 있게 하면 안 돼. 이러다 정이라도 붙으면 어쩌려고...’그녀는 조용히 무릎을 굽히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딸의 작은 손을 살며시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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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3화

소예지는 드레스숍의 휴게실 소파에 조용히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해가 서서히 지기 시작한 오후 여섯 시 무렵,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 연회장으로 향했다.도착하자마자 차를 발렛에게 맡긴 뒤, 소예지는 굽이 높은 하이힐을 신고 대리석 로비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우아한 롱드레스는 그녀의 군더더기 없는 실루엣을 더욱 도드라지게 했고 허리까지 흘러내린 윤기 나는 긴 생머리는 오히려 그녀 특유의 차분하고 고요한 분위기를 한층 더 부각시켜주었다.그녀가 한 걸음씩 로비를 지나칠 때마다 하늘하늘한 드레스 자락은 바람을 타듯 리듬 있게 흔들렸고 그녀의 움직임과 함께 자연스럽게 흩날렸다.막 로비에 들어서던 순간, 소파에 앉아 있던 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불렀다.“소예지 씨.”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 선 윤하준이 눈에 들어왔다.그를 발견한 소예지는 살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윤하준 씨? 여기서 뭐 하고 있어요?”“예지 씨를 기다리고 있었죠.”그는 대답을 전혀 숨기지 않았고 그녀와 함께 연회장에 들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소예지는 그 솔직함에 미소를 머금고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그럼 같이 올라가요.”윤하준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그의 시선은 소예지를 향한 순간 잠시 멈춰 있었고 그 눈빛 속엔 짧지만 분명하게 감탄이 스쳤다.오늘의 소예지는 평소 연구실에 있던 냉철한 과학자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그녀는 마치 스포트라이트 아래 선 여배우처럼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오늘 정말 달라 보여요.”소예지는 담담하게 웃었다.“고마워요. 그냥 옷만 갈아입은 건데요, 뭐.”잠시 후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은 함께 연회장으로 향했다.문이 열리는 순간, 화려한 샹들리에 불빛이 쏟아지듯 그들 위로 내려앉았고 연회장 안의 수많은 시선이 자연스레 그들을 향해 쏠렸다.“저 여자가 바로 고이한 전 부인이래.”“소문보다 훨씬 예쁘잖아.”“들었어? 최근에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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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4화

그때였다.심유빈이 조용히 포크를 들어 푸아그라 한 조각을 집어 고이한의 접시에 내려놓았다.그 순간, 윤하준은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바로 옆에 앉은 소예지에게 정갈하게 플레이팅된 작은 요리를 건넸다.“예지 씨 입맛에 잘 맞을 거예요.”“고마워요.”소예지는 가볍게 미소 지으며 그 접시를 받아 들었다.그리고 맞은편에서 계속 느껴지는 묘한 시선을 의식적으로 무시한 채 고개를 돌렸다.바로 그때, 이 회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건배사를 시작했다.“오늘 이 자리는 각계각층의 전문가 여러분을 초대한 영광스러운 자리입니다. 함께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박수가 쏟아졌고 그 뒤를 이어 유쾌한 대화와 함께 본격적인 만찬이 이어졌다.이따금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건배를 주고받았고 특히 고이한 주변에는 유독 많은 이들이 건배를 청하며 몰려들었다.그중 한 손님은 심유빈과 고이한의 관계를 잘 모르는 듯, 은근한 호기심을 담아 물었다.“이분은 혹시 앞으로 고 대표님의 아내 되실 분인가요?”심유빈은 입가에 가볍게 미소를 띤 채 턱을 괴고 도도한 눈빛으로 고이한을 바라보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고이한은 얇게 웃으며 짧게 답했다.“친한 친구입니다.”그 말에 심유빈은 수줍은 듯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하지만 그 미소 하나로도 이 자리에 있는 이들 모두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친구’라는 단어 속에 담긴 함축적 인정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전해졌기 때문이다.그 장면은 소예지의 눈에도 고스란히 들어왔다.그리고 오늘 그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심유빈의 아랫배는 평평했다.즉, 그녀는 임신하지 않았다.아니, 어쩌면 한때 아이를 가졌지만 끝내 지켜내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그 순간, 심유빈이 와인을 들어 한 모금 마시려 했고 고이한은 아무렇지 않게 팔을 뻗어 그녀의 손에서 잔을 빼앗았다.그리고는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과일 주스를 그녀 앞에 내려놓았다.심유빈은 불만을 억누르듯 입술을 깨물더니 얌전히 빨대를 물고 주스를 마시기 시작했다.그리고 그녀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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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5화

소예지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밥은 제때 챙겨 먹을게요. 요즘은 그냥 입맛이 없네요.”“날이 점점 더워지니 그럴 만도 하지.”최현숙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바로 그때였다.“엄마, 나 왔어요!”아래층에서 힘이 빠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수경이 밖에서 막 돌아온 참이었다.그 소리에 소예지의 미간이 잠시 찌푸려졌고 그녀는 곧장 최현숙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할머니, 다음에 시간 될 때 다시 인사드릴게요.”“벌써 가려는 거니?”최현숙은 아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물었다.한편, 아래층에 있던 가정부가 고수경에게 소예지가 와 있다는 사실을 전했고 그 말을 들은 고수경은 얼굴이 단숨에 굳더니 쿵쿵대며 2층으로 올라왔다.2층 거실, 소예지가 최현숙과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고수경의 표정엔 불쾌함이 짙게 드리워졌다.“예지야, 조금만 더 있다 가렴. 어쩌면 이한이 곧 올지도 모르잖니.”최현숙은 무심코 그렇게 말했지만 그 한마디에 소예지의 표정은 서서히 싸늘하게 식어갔다.“아뇨, 할머니. 이만 가볼게요.”그때 고수경이 코웃음을 치며 중얼거렸다.“마치 오빠가 당신 얼굴을 그렇게까지 보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말하시네요.”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휴대폰에서 알림음이 울렸고 고수경은 화면을 들여다보더니 피식 웃음을 흘렸다.“할머니, 오빠 오늘 집에 안 들어온대요.”“또 출장 갔니?”“그게 아니라 유빈 언니가 좀 아프대요. 그래서 오빠가 유빈 언니네 집에서 돌봐주고 있대요.”고수경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사실 메시지 내용에는 ‘병원에 있다’고 적혀 있었지만 굳이 ‘집에서 간호 중’이라고 말한 데에는 다른 의도가 숨어 있었다.어쨌든 남녀가 한집에 단둘이 있다 보면 무슨 일이든 생길 수 있는 거니까.최현숙의 얼굴은 금세 어두워졌다.“아니, 그 애는 하루에도 몇 번을 아프다는 거니? 이한이도 일하느라 바쁠 텐데 그 아이까지 챙기느라...”“할머니, 그런 거까지 걱정 마세요. 어차피 오빠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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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6화

소예지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고수경으로 인해 뒤숭숭해졌던 마음을 털어내고 곧장 샤워를 마쳤다. 그리고 잠시 숨을 고른 뒤, 익숙한 손길로 메일함을 열어 확인하기 시작했다.그녀는 두 개의 이메일 계정을 사용하고 있었다.하나는 실험실 관련 업무용이었고 다른 하나는 회사의 전반적인 운영 상황을 확인하는 용도였다.매주 정해진 시간이면 임재석은 빠짐없이 회사 상황을 정리한 요약 보고서를 보내왔다.처음엔 상업적 운영이라는 개념조차 제대로 몰랐던 소예지이었지만 임재석은 보고서를 아주 세밀하게 정리해 주었고 덕분에 그녀는 점차 회사의 기본 구조와 운영 방식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복잡했던 표들도 이제는 그녀가 스스로 읽고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메일을 모두 확인하고 나니 어느덧 시계는 밤 11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이가 곁에 없는 이 시간, 소예지는 평소처럼 잠자리에 들기 위해 유도용 오디오를 틀어두었다. 그녀는 자주 명문대 교수들의 강연을 구매해 이어폰으로 들으며 잠들곤 했고 잔잔한 목소리의 강의는 어느새 그녀를 깊은 잠으로 이끌어주곤 했다.다음 날 아침, 실험실에 도착하자마자 양정화가 그녀를 먼저 찾아왔다.“수연 대학교 의대에서 이번 주 토요일 오후에 강연 요청이 들어왔어,”양정화가 말했다.“원래는 이 교수님이 가시기로 했는데 마침 해외 일정이 잡혀서 못 가게 됐거든. 처음엔 강연 자체를 취소하려고 했는데 총장님이 직접 전화를 주셨어. 혹시 너 시간 괜찮냐고.”갑작스러운 제안에 소예지는 잠시 멍해 있자 양정화는 웃으며 덧붙였다.“봐봐, 총장님이 직접 전화해서 너를 초청하셨다니까!”소예지는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준비해 갈게요.”“그래, 이제는 이런 무대도 너 혼자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라 믿어. 당일엔 이서연도 같이 보내서 도와주게 할게.”“네, 감사합니다.”수연대에서의 초청 강연은 그녀에게 있어 분명한 영광이었다.금요일 오후, 소예지는 반나절 일정을 비우고 벨모아 호텔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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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7화

소예지가 조심스럽게 사과의 말을 꺼낸 그 순간, 강연장은 갑작스레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소예지 선생님, 진짜 강의 너무 좋았어요!”“선생님, 저희 두 시간 더 들어도 돼요!”앞줄에 앉아 있던 두 남학생의 익살스러운 외침에 소예지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고 그 웃는 얼굴을 본 청중들 사이에서도 감탄과 환호가 연달아 터져 나왔다.강연이 끝난 뒤, 여러 학생들이 몰려와 질문을 쏟아냈고 소예지는 하나하나 성실하게 대답해 주었다.그녀의 곁에서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서연은 어느새 감탄이 절로 나왔다.예전엔 소예지를 너무 얕봤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 만큼 그녀는 지금 누구보다 빛나고 있었다.소예지은 질문이 한 차례 끝난 뒤 강연 자료를 정리하고 있었고 그 순간 강연장 입구 쪽에서 묘한 소란이 일었다. 이서연이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쿡 찔렀다.“소예지, 저기 누가 왔는지 봐봐.”소예지이 고개를 들어 입구 쪽을 바라보는 순간, 예상치 못한 익숙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그곳에는 다름 아닌, 고이한이 서 있었다.‘저 남자가 여긴 왜...’잠시 당황한 기색이 스쳤지만 소예지는 곧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시선을 돌렸고 그대로 다시 고개를 숙이고 문서를 정리하며 마치 그를 본 적도 없다는 듯 태연하게 행동했다.하지만 고이한은 문 앞에 그대로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무대 위에서 환하게 빛나던 소예지만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그 눈빛에는 말로 다 담기지 않는 복잡한 감정이 얽혀 있었다.학생들 중 몇몇도 그를 알아봤고 용감한 이들이 조심스레 인사를 건넸다.고이한도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응대했지만, 그에게선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냉엄한 분위기가 풍겨 나왔다.“소예지, 이건 내가 마저 정리할게. 혹시 고 대표님, 너한테 할 말 있으신 거 아냐?”이서연이 소예지의 손에서 자료를 가져가며 조용히 물었다.하지만 소예지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저었다.“그런 거 아니야. 그 사람과는 더 이상 나눌 얘기 없어.”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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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8화

강준석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세 사람은 함께 2층의 별실로 올라갔다.이미 MD 측 인사들은 모두 자리에 앉아 있었고 수연대에서는 주임 한 명이 대표로 참석해 있었다.소예지는 고이한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뒤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그런데 마침 화장실에서 돌아오던 한 인물이 소예지를 보자마자 얼굴빛이 확 바뀌었다. 안채린이었다. 그녀가 자리를 비운 사이, 룸 안에는 낯익은 인물 두 명이 더 들어와 있었고 그중 하나는 그녀에게 있어 매우 불편한 존재, 바로 소예지였다.“채린아.”이서연이 먼저 인사를 건네자 안채린은 그녀 옆에 앉으며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너희 왜 여기 있어?”이서연은 주변을 의식하며 낮은 목소리로 소예지가 이 교수를 대신해 강연을 하러 왔다는 사실을 전했다.안채린의 얼굴에는 점점 그늘이 드리워졌다. 요즘은 MD에서 근무하느라 실험실 사정을 잘 몰랐는데 이 교수를 대신해 강연을 한 사람이 하필 소예지라는 사실이 그녀를 당황스럽게 만들었고 동시에 불쾌감이 밀려왔다.소예지가 이제는 이 교수의 자리를 대신할 만큼 영향력을 갖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자신과의 격차가 뚜렷하게 느껴진 것이다.안채린은 몇 가지 더 캐물었고 이서연은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답했다. 그러다 고이한이 직접 소예지를 찾아가 강연 후 식사 자리에 초대했다는 이야기를 듣자, 안채린의 마음속엔 알 수 없는 질투와 불편함이 더욱 짙어졌다.그때, 고이한이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섰고 그의 뒤로는 수연대 전규성 총장과 몇몇 교수진이 함께였다.고이한은 방 안을 차분히 둘러보더니 자연스럽게 소예지를 향해 시선을 멈췄다. 아주 짧은 찰나였지만 분명히 그녀에게 눈길이 머물렀다.그는 낮고 진중한 목소리로 MD의 주현우, 강준석을 소개한 뒤, 이어 소예지를 가리키며 덧붙였다.“이분은 저희 MD의 기술 자문인 소예지 씨입니다.”전규성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소예지를 바라보았다.“소예지 선생님, 오늘 강연 정말 훌륭했습니다! 우리 의과대학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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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9화

소예지는 공손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정 교수에게 말했다.“그때는 단지 이론의 일부만 발표했을 뿐이에요.”정시후는 손을 내저으며 바삐 말을 이었다.“소예지 선생님, 꼭 시간 좀 내주세요! 저희 팀도 지금 선생님의 연구를 따라잡기 위해 열심히 진행 중이거든요.”소예지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저야말로 영광이죠.”그 뒤로 고이한이 대화를 이번 협력 건으로 자연스럽게 돌렸고 주현우가 그 흐름을 이어받아 MD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하지만 방금 전, 소예지가 여유롭고 당당하게 대화를 주도하던 그 모습은 이미 참석자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그 자리에 앉아 있던 안채린은 와인잔을 쥔 손가락에 잔뜩 힘이 들어간 채, 표정이 굳어 있었다.반면, 이서연은 긴장한 나머지 젓가락으로 음식조차 제대로 집지 못했다. 눈앞에 놓인 커다란 랍스터에도 전혀 손이 가지 않았다.그녀는 새삼 소예지가 이런 인물들 앞에서도 침착하고 위축되지 않는 모습에 감탄했다.‘역시 아버지가 과학자라는 게 이런 부분에서도 힘이 되는구나...’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오직 강준석만은 조용한 눈빛으로 옆에 앉은 고이한을 바라보고 있었다.겉보기엔 말없이 앉아 있는 듯했지만 고이한은 계속해서 소예지에게 귀중한 인맥들을 조심스럽고도 능숙하게 소개해 주고 있었다. 무심한 척하면서도 분명히 그녀를 위한 배려였다.그가 왜 그렇게까지 나서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의 모습만 봐도 소예지에게는 분명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었다.잠시 후, 소예지는 자리를 비우고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조금 뒤, 안채린 역시 뒤따라 일어섰다.화장실 안.소예지는 거울 앞에 서서 짧게 한숨을 내쉬고 정신을 가다듬고 있었다.그때, 등 뒤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기분 좋겠네? 고 대표가 저렇게 정성껏 네 인맥 깔아주는 거 보니까.”소예지는 천천히 돌아서서 차분한 눈빛으로 안채린을 바라봤다.“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네.”“참, 아닌 척은.”안채린은 비웃듯 입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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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0화

소예지가 다시 룸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는 한층 더 깊은 존경이 담겨 있었다.그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정 교수가 그녀의 논문이 지닌 학문적 가치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던 것이다.잠시 후, 안채린도 자리에 돌아왔다.표정은 어느 정도 평정심을 되찾은 듯했지만 눈동자 안에는 여전히 억누르지 못한 감정의 흔적이 어른거리고 있었다.저녁 식사는 오후 여섯 시에 시작해 여덟 시 반에 이르러서야 마무리됐다.고이한을 포함한 일행은 모두 자가용을 타고 왔고 여기서 A 시로 돌아가려면 대략 여섯 시간의 장거리 운전이 필요했다.이번 일정에는 총 세 대의 차량이 동원되었다.돌아갈 차량을 배정하던 순간, 고이한이 조용히 소예지를 바라봤고 소예지는 가볍게 웃으며 강준석에게 말했다.“강 선배, 나 선배 차 탈게요.”“나도.”안채린이 소예지와 이서연을 바라보며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그렇다면 내가 굳이 끼어들진 않을게. 난 고 대표님 차 타면 되겠네요.”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그 말에는 분명한 의도가 담겨 있었다.굳이 소예지와 같은 차를 타지 않겠다는 선 긋기이자 자신이 고이한과 더 가까운 사이라는 은근한 과시였다.모두 차량에 올라탄 뒤, 일행은 고속도로 입구를 향해 출발했다.소예지는 강준석의 조수석에 앉아 대화를 이어갔다.장거리 운전이 피로할 수 있으니 말동무라도 되어주려는 배려였다.강준석의 운전은 안정적이었고 소예지도 피곤했지만 졸음을 억누르며 의식적으로 대화를 계속 이어갔다.강준석 역시 지칠 법한 시간이었지만, 조수석에 앉아 있는 사람이 소예지다 보니 오히려 정신이 더 또렷해졌다.그렇게 달려 A 시에 도착한 건 새벽 두 시경이었다. 강준석은 먼저 이서연을 집에 데려다준 후, 소예지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었다.“강 선배, 조심히 가.”인사를 나눈 뒤, 소예지는 곧장 위층으로 올라가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다.그날은 아무 생각 없이 깊은 잠에 빠졌고 무려 오전 열 시가 되어서야 눈을 떴다.숙면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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