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Chapter 51 - Chapter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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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화

오늘 밤은 아버지 소영욱의 회사 창립 기념 파티가 열리는 날이지만 소예지는 초대받은 손님 명단에 없었다.“조심하세요. 손 다칠 수 있어요.”소예지는 바닥에 깨진 유리잔을 줍는 직원에게 걱정스럽게 말했다.당황하던 직원은 그녀의 따뜻한 말에 잠시 마음이 놓였고 마침 다른 직원들도 달려와 함께 유리 조각을 치우기 시작했다.소예지가 고개를 들어보니 멀리서 고이한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뒤에는 심유빈이 와인을 든 채 따라오고 있었고 얄미운 표정으로 마치 재미있는 구경이라도 하겠다는 듯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설마 소예지가 이한 오빠를 따라 이 파티까지 쫓아온 거야? 하, 정말 오빠의 마음을 얻으려고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네.’소예지는 고이한이 다가오는 걸 보자 손에 들고 있던 주스를 직원의 쟁반에 올려놓고 자리를 뜨려 했지만 세 걸음도 채 가지 못해 손목이 그의 손에 붙잡혔다.“여긴 왜 온 거야?”고이한이 물었다.소예지는 손을 빼내려 하며 담담하게 말했다.“이거 놔.”“할 말 있으면 전화하면 되잖아.”고이한의 말투는 무심했지만 왜 이런 데까지 따라왔냐는 질책이 담겨 있었다.소예지는 돌아서서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난 친구랑 같이 온 거야. 이한 씨한테 영향 안 줄 테니까 이한 씨도 날 신경 쓰지 마.”“할 말 있으면 집에서 해. 김 비서가 밑에서 대기 중이니까 집까지 데려다 줄 거야.”고이한은 그녀를 조용히 내보내고 싶었다.애인과 아내가 같은 자리에 있다는 건 특히나 이런 상류층 파티에선 위험한 일이었다. 혹시라도 소예지가 감정적으로 행동한다면 자신의 체면에 흠집이 날 수도 있으니까.그런데 소예지가 막 떠나려던 찰나, 심유빈이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오빠, 예지 씨도 온 김에 좀 즐기다 가게 해.”심유빈은 ‘사모님’이나 ‘언니’ 같은 호칭을 일부러 쓰지 않았는데 소예지의 정체가 이 자리에 알려지는 걸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소예지는 굳이 심유빈의 말에 반응하지 않고 인파 사이로 윤혁의 모습을 찾았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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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화

고이한은 뒤돌아서 고집스럽게 등을 돌린 소예지의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이내 이 회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예지는 윤혁이 아직 바쁜 걸 보고는 더 이상 방해하지 않기로 하고 먼저 연회장을 나왔다. 잠시 후, 고이한과 심유빈이 이 회장을 배웅하며 그녀 뒤쪽으로 함께 걸어왔다.소예지는 자연스럽게 한 발짝 옆으로 비켜섰고 그 순간 이 회장이 말했다.“이한아, 실험실은 국가가 밀어주는 핵심 프로젝트라 걱정했었는데 너한테 맡기니 마음이 놓이는구나.”“염려하지 마세요, 회장님. 실험실은 제가 잘 챙기겠습니다.”고이한이 겸손하게 대답했다.심유빈은 소예지가 이 상황을 함께 보고 있다는 걸 알자 입꼬리를 슬며시 올렸다.엘리베이터 문이 ‘띠링’ 소리를 내며 열리자 고이한은 이 회장을 먼저 안으로 안내했다. 소예지는 다음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물러섰지만 고이한이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지 않게 손을 대고 그녀를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타.”소예지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무표정하게 안으로 발을 들였다.1층에 도착하자 심유빈이 잽싸게 이 회장을 부축해 엘리베이터에서 나왔고 곧 이 회장의 비서가 다가와 말했다.“회장님, 차는 저쪽에 있습니다.”고이한과 심유빈은 함께 이 회장을 차에 태워 보냈고 소예지는 그 옆에서 휴대폰을 꺼내 택시 부르는 앱을 켜 차를 호출했다.그런데 그 순간 심유빈이 갑자기 ‘아야’ 하고 소리를 내며 고이한 쪽으로 몸을 기울였고 고이한은 반사적으로 그녀의 어깨를 팔로 감싸며 물었다.“괜찮아?”“발목을 살짝 삐끗했어. 괜찮아.”심유빈은 입술을 깨물며 대답했고 그러다 마치 그제야 소예지를 발견한 듯 말했다.“예지 씨, 아직 시간이 이른데 올라가서 한 잔 더 할래요?”소예지는 차갑게 그녀를 흘겨보며 대답 대신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기사님 도착하셨어요? 네, 금방 나갈게요.”통화를 끝낸 소예지는 휴대폰을 들고 발길을 옮기려 했는데 그 순간 고이한이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도착하면 문자해.”소예지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그를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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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응, 내 생각에도 이혼 소송으로 바로 들어가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아.”박시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소송으로 판결 나면 한 달 동안의 숙려기간도 건너뛸 수 있잖아.”소예지는 머리가 아픈 듯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문제는 증거를 모으기가 쉽지 않아. 이한 씨가 워낙 조심스러워서... 게다가 나도 한 동안 이한 씨의 휴대폰을 안 봤어.”“봐야지!”박시온은 단호했다.“그 남자 폰 안에 분명히 심유빈이랑 주고받은 메시지들이 있을 거야. 아마 큰 금액 송금 내역도 있을 거고. 그런 게 다 외도를 입증하는 데 결정적인 증거야.”소예지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우리 지금 거의 석 달째 말도 안 하고 지내는 중이야.”“그럼 둘이서 눈도 제대로 안 마주치고 사는 거네?”박시온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소예지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응.”“예지야, 진짜 방법 좀 생각해 봐. 꼭 그 둘이 주고받은 메시지 캡처해서 확보해야 해. 그게 법정에서 제일 센 증거야.”박시온의 말은 현실적이었다.문제는 그의 휴대폰을 확인하려면 일단 고이한과의 관계를 조금이라도 풀어야 하는데 만약 그러다가 ‘부부 생활’로 연결되기라도 하면 상상만 해도 소름이었다.“일단 해볼게.”소예지는 다시 미간을 꾹 누르며 중얼거렸다.그날 밤, 둘은 인생 얘기를 조금 나누다가 각자 방으로 들어가 잤고 다음 날 아침, 간단히 아침 식사를 마친 소예지는 집으로 돌아왔다.양희순이 현관에서 그녀를 맞으며 말했다.“사모님, 오셨어요.”“네.”소예지는 담담하게 대답했다.“대표님도 집에 계세요.”양희순이 덧붙였다.소예지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때 2층에서 강아지가 짖는 소리가 들리더니 젤리가 계단에서 퉁퉁 내려와 소예지에게 달려왔다. 젤리가 꼬리를 신나게 흔들며 그녀의 주변을 빙빙 도는 모습에 소예지는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고하슬이 강아지를 키우겠다고 했을 때 결사반대하던 그녀였지만 이젠 완전히 ‘반려견 찬양파’로 전향했다.기분이 엉망인 날에 반갑게 달려와 주는 존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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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소예지가 고개를 끄덕였다.“둘이 무슨 얘기를 나눴는데?”고이한이 의외로 관심을 보이며 물었고 소예지는 덤덤하게 대답했다.“별거 아니었어.”고이한은 미간을 살짝 찡그리더니 더 묻지 않았다.그는 국을 다 마시고 나서 양희순이 떠준 밥 한 그릇을 받아 들고 먹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다리 밑에 웅크리고 있던 젤리를 불렀다. 젤리는 알아서 밥그릇을 물고 와서는 틈틈이 주인의 손에서 떨어지는 음식을 만끽하고 있었다.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소예지는 머릿속으로 예전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전에 내가 이한 씨의 휴대폰을 어떻게 가져왔더라?’생각해 보니 대놓고 뺏은 적도 있었고 애교 부리며 달라고 한 적도 있었고 배달을 주문한다는 핑계로 폰을 잠깐 쓰자고 한 적도 있었다. 심지어 딸 고하슬에게 슬쩍 가져오라고 시킨 적도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둘이 싸우고 냉전 들어간 지도 벌써 석 달, 아니, 거의 넉 달째였다. 이런 상태에서 고이한의 폰을 가져올 방법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결국 방법은 하나뿐인데 둘 사이의 분위기가 좀 풀려야 한다. 하지만 그러자면 먼저 그녀가 화해의 뜻을 보여야 하는데 그 말인즉슨 그녀가 먼저 고개를 숙여야 하고 나아가 부부관계까지 요구받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하슬이를 데리고 나가서 저녁이나 먹자고 해야겠다.’소예지는 결국 고하슬에게 몰래 고이한의 휴대폰을 가져오게 하기로 결심했다.“오늘 저녁에 하슬이 데리고 외식하자.”그녀가 말하자 고이한이 대답했다.“하슬이 오늘 집에 안 와.”소예지는 눈을 크게 떴다.“내일 학교 가야 하잖아!”“엄마가 데려다줄 거야.”그녀가 뭔가 말하려던 찰나, 고이한이 먼저 입을 열었다.“오늘 저녁 우리 둘이 외식하자.”소예지는 그 말에 잠시 얼어붙었다.고이한 역시 화해할 생각이 있는 듯했고 그게 느껴지자 그녀는 괜히 마음이 복잡해졌다.소예지는 고이한이 이혼을 하지 않는 데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짐작했다. 첫째는 자신이 버리긴 아깝고 갖고 있자니 별로 매력 없는 애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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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고이한이 무심하게 말했다.“회사 일에 관한 거야.”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소예지는 이를 악물었다.‘일 관련 전화인데 왜 굳이 나를 피하는 거야?’고이한이 저렇게 서둘러 전화를 받으러 나가는 건 딱 심유빈이 전화했을 때뿐이다.소예지는 갑자기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증거를 얻겠다고 내가 이렇게까지 굽히고 비위를 맞춰줘야 해?’그러면서 그녀의 머릿속에 다른 생각이 스쳤다.‘굳이 분위기 좋게 관계를 풀 필요가 있을까? 차라리 그냥 한 판 시원하게 싸우는 게 더 낫지 않을까?’소예지는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이한을 쏘아보며 차갑게 말했다.“나 갑자기 입맛 떨어졌어. 이만 갈게.”그 말만 남기고 소예지는 뒤도 안 돌아보고 레스토랑을 빠져나갔다.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아탄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고 화면에 ‘고이한’이라는 이름이 떴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그녀는 집으로 가는 대신 곧장 박시온의 집으로 향했다.“뭐? 이혼 얘기하려다가 또 심유빈 때문에 엎어졌다고?”박시온은 그녀의 말을 듣고 바로 흥분했다.“아니야. 그냥 분위기 푸는 척하면서 이한 씨의 휴대폰을 좀 어떻게 해보려고 했는데 하필 심유빈 씨가 열이 났대. 무슨 코로나바이러스 비슷한 거 걸린 것 같더라고.”“그래서 고이한이 엄청 걱정했겠네?”박시온이 콧방귀를 뀌며 물었다.“전화를 붙들고 한참을 달래더라. 말투도 어린애를 달래는 것 같았어. 아니, 하슬이를 달래는 것보다 더 정성스럽게 달래는 것 같더라니까.”소예지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과장이 아니라 조금 전 고이한의 말투는 딱 고하슬한테 하는 말투 그대로였다.“진짜 못된 놈, 쓰레기, 쓸모없는 놈이네!”박시온이 소예지 대신 분노를 토해냈다.소예지는 차 한 모금 마시고 한숨을 천천히 내쉬었다.박시온이 다시 말했다.“네가 고생해서 만든 신약으로 그 불륜녀까지 살려야 한다는 게 진짜 열받지 않아?”다음 날 아침, 소예지는 선생님에게 연락해 고하슬이 학교에 잘 갔는지 물었고 선생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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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화

“고 대표님, 지인분이 아프신가요?”“네!”고이한은 짧게 대답하더니 곁눈질로 강준석 품 안의 흰 가운을 입은 사람의 뒷모습을 힐끔 보고는 황급히 병실로 다시 들어갔다.강준석은 소예지의 어깨를 감싸안은 채 조용히 마지막 병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는 그녀를 슬쩍 쳐다보았는데 소예지는 의외로 평온한 표정이었다.‘정말 한시도 안 떨어지고 심유빈 씨 옆에 붙어있네.’이때 강준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괜찮아?”“응. 괜찮아.”소예지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병동에서 환자 상태에 대한 기본적인 확인을 마친 두 사람은 실험실로 돌아왔고 감염 원인을 찾기 위해 환자 샘플 분석을 계속 이어갔다.오후 4시 20분, 소예지는 부리나케 학교 정문으로 들어섰고 멀리서 고하슬이 이안과 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윤하준은 한쪽에서 다정하게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하준 씨, 또 번거롭게 해드렸네요.”소예지는 미안한 듯 다가갔다.“괜찮습니다.”윤하준은 잔잔하게 웃었다.“엄마!”이때 고하슬이 환하게 웃으며 달려와 소예지의 품에 안겼고 그녀는 딸을 꼭 안아주었다.그러다 문득 옆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이안과 눈이 마주쳤는데 왠지 그리움 섞인 조심스러운 눈빛이라 소예지는 마음이 아렸다. 이안이 어떤 사정으로 윤하준과 함께 살게 됐는지 자세히는 몰라도 분명 엄마가 그리운 건 사실일 테니까.소예지는 무릎을 꿇고 이안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이안아, 오늘 우리 집 와서 같이 저녁 먹을래?”그 말에 이안의 눈이 반짝 빛났다.“정말요? 가고 싶어요!”윤하준은 살짝 놀란 듯하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찮겠어요? 귀찮게 해드리는 건 아닌지...”“아니에요, 전혀요. 8시 반쯤 데리러 오시면 될 거 같아요.”소예지가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그날 저녁, 소예지는 고하슬과 이안을 데리고 집에 돌아왔다.두 아이는 정원 잔디밭에서 젤리와 함께 신나게 뛰놀았고 소예지는 테라스 소파에 앉아 그 모습을 따뜻하게 지켜보며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찍었다.두 아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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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화

“심유빈 씨 어디가 안 좋으신가요?”강준석이 조심스럽게 물으며 심유빈의 차트를 들여다보았다.심유빈은 힘없이 웃으며 대답했다.“어쩌다가 바이러스에 감염됐어요.”“걱정하지 마세요. 이번엔 특효약이 있어서 곧 나을 거예요.”강준석이 안심시키듯 말했고 심유빈은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다.“이번 약은 이 박사님 팀에서 개발했다면서요? 혹시 박사님이 만드신 건가요?”그녀는 고이한을 통해 강준석이 의학계의 천재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하지만 강준석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에요. 다른 분이 개발했어요.”그러고는 슬쩍 고이한을 바라보았다. 마스크를 쓴 고이한은 며칠 밤을 지새운 듯 눈가에 피로가 역력했고 온 신경이 심유빈에게 집중된 모습이었다.“심유빈 씨, 푹 쉬세요.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강준석은 고이한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병실을 나섰다.소예지는 엘리베이터 근처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강준석은 그녀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왜 그래?”소예지가 웃으며 물었다.“이젠 확실하네. 고 대표님의 마음이 딴 사람한테 가 있어.”그는 단호하게 말했다.“완전 녹초더라고. 이틀 동안 잠도 안 자고 붙어있었던 것 같아.”소예지는 덤덤하게 말했다.“이제 그런 거 신경도 안 써.”강준석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그 사람은 아직도 네가 그 특효약을 만들었다는 걸 몰라?”“굳이 말할 필요가 없잖아.”소예지가 고개를 저었다.“내일 인터뷰 방송 나가면 다 알게 될걸.”강준석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연구소로 돌아온 두 사람은 회의실에서 이번 바이러스 사례에 대해 논의했고 각 팀에 샘플을 분배하며 협력을 요청했다.“이번 감염은 장남 저수지 근처 매곡마을에서 발생했습니다. 주요 증상은 심한 구토, 시야 흐림, 충혈, 혈색소 수치 상승, 고열, 보행 불가 등이에요.”안채린은 보고를 들은 뒤 입술을 꽉 깨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이번만큼은 소예지보다 먼저 원인을 찾아내고 말 거야. 절대 또 밀릴 수는 없어.’소예지는 자리에 앉은 채 조용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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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화

소예지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무슨 일이냐고? 그건 내가 할 말이야. 도대체 요 며칠 어디서 뭐 하고 있었어?”고이한은 피곤한 듯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병원에 있었어.”소예지는 화가 난 듯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이한 씨, 결혼 생활이 지긋지긋하면 그냥 끝내자. 이혼하자고.”고이한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바라봤다.“이혼하자고?”소예지는 이를 꽉 깨물고 단호하게 말했다.“그래. 이혼하자.”분명히 감정 섞인 투정이긴 했지만 그녀의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 바로 고이한이 이혼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 떠보려는 것이다.“소예지.”고이한이 낮은 목소리로 그녀를 부르더니 긴 팔을 뻗어 조명을 켰다.환한 불빛 아래, 그의 표정이 뚜렷하게 드러났고 충혈된 눈으로 소예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피곤함과 묘한 감정이 섞여 있었지만 소예지는 그가 당황하지조차 않았고 죄책감도 없다는 것을 느꼈다.‘그럼 그렇지. 어차피 오래전부터 언젠가는 들킬 걸 예상했던 거야.’“드디어 나랑 유빈이에 대해 얘기할 마음이 생긴 거야?”고이한의 눈빛엔 탐색과 경계의 기색이 담겨 있었고 소예지는 그의 말에 차갑게 웃었다.“내가 자리를 비켜주길 바라는 거지?”“네가 알고 싶은 거 전부 다 말해 줄 수 있어.”고이한은 놀랍도록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좋아. 그럼 일단 휴대폰부터 줘.”소예지는 바로 요구했다.그녀가 원하는 건 복잡한 감정도, 그들의 러브 스토리도 아니었고 오직 그들이 바람피운 증거뿐이었다.고이한은 눈썹을 찌푸렸는데 명백히 휴대폰을 주기 싫은 기색이었다. 그러자 소예지는 팔짱을 끼고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왜? 휴대폰 검사하는 게 싫어? 혹시 내가 보면 안 되는 비밀이라도 있는 거야?”고이한은 검은 눈동자에 알 수 없는 감정을 담고 그녀를 한참 바라보더니 휴대폰을 그녀 쪽으로 던졌다.“보고 싶으면 봐.”그가 태연한 척, 떳떳한 척하는 모습에 소예지는 오히려 당황해 살짝 얼어 있다가 재빨리 폰을 집어 들고 물었다.“비밀번호는?”“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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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화

소예지는 이를 악물었고 지금 생각해 보니 자신이 좀 어리석었던 것 같았다.고이한 같은 남자가 굳이 SNS로 몰래 감정 교류를 할 필요가 있을까? 심유빈이 보고 싶다고 전화 한 통만 하면 바로 달려가는 사람이 고이한이었다. 게다가 그동안 해외 출장이랍시고 비행기를 타기 바빴던 것도 다 그녀 때문이었을 것이다.직접 얼굴 보고 무슨 말인들 못 하겠나. 감미로운 말 한마디, 스킨십 하나, 그게 뭐 대단한 비밀이라고 기록으로 남기겠는가.소예지는 모든 노력이 허무하게 느껴졌고 멍하니 창밖의 어둑해진 저녁 하늘을 바라보다가 고이한의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억울하고 분한 그녀는 곧장 문을 열고 나가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서는 고이한의 휴대폰을 조용히 침대 머리맡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돌아서려는 순간 갑자기 한 손이 그녀의 손목을 세차게 잡아챘다.소예지는 중심을 잃고 고이한의 품에 안기듯 쓰러졌다. 놀라서 고개를 드니 어둠 속에서 그의 충혈된 눈이 보였고 그 안에 감춰진 욕망이 숨김없이 드러나 있었다. 그의 뜨거운 손길이 옷을 뚫고 전해져 오자 소예지는 마치 바늘에 찔린 듯 온몸이 거부감으로 반응했다.그녀는 고이한의 손을 단호하게 뿌리치며 날카롭게 말했다.“건드리지 마.”그러나 고이한은 그녀의 허리를 감아 움직이지 못하게 막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아직도 안 풀렸어?”소예지는 과거의 자신은 얼마나 단순했는지 잠깐 잊고 있었다.그가 선물을 주면, 말 한마디만 다정하게 해주면,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기만 하면 그녀는 금방 화가 풀렸고 젤리보다도 더 밝게 그를 반겼었다.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소예지는 그의 품을 밀쳐내고 침대 앞에 서서 그를 차갑게 쳐다봤다.“이한 씨, 나 이제 그렇게 쉽게 넘어가지 않아.”그 말만 툭 던지고 그녀는 그대로 방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문을 닫은 뒤 소예지는 바로 박시온에게 전화를 걸었다.“시온아, 나 진짜 미치겠어. 어떻게 해야 해?”수화기 너머 박시온도 곤란한 듯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우리가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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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화

방 문을 밀고 들어가자 고하슬이 고이한의 품에 안긴 채 누워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두 부녀가 함께 자려는 듯했다.“하슬아, 오늘은 엄마랑 안 잘 거야?”소예지가 다정하게 물었다.그러자 고하슬은 아빠 쪽으로 한껏 몸을 파묻으며 말했다.“엄마, 우리 오늘 아빠랑 같이 자요! 엄마는 이쪽에 누워요.”소예지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엄마는 조금만 더 일하고 잘 거니까 하슬이는 아빠랑 먼저 자.”그 순간 고이한의 시선이 느껴졌는데 그의 눈빛은 깊고 어두웠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살짝 누그러졌던 분위기가 다시 싸늘하게 얼어붙는 듯했다.차가운 기류가 방 안에 퍼졌지만 소예지는 신경 쓰지 않았고 조용히 몸을 돌려 문을 열고 나와 자기 방으로 향했으며 문을 닫고 잠그는 것도 잊지 않았다.다음 날 아침.소예지는 강준석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는데 오늘 촬영이 있으니 메이크업을 꼭 하라는 내용이었다.그녀는 옷방으로 들어가 흰색 셔츠를 꺼내 입고 롱스커트를 매치했다. 그리고 긴 머리는 말끔히 올려 묶고 메이크업을 살짝 한 뒤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와! 엄마 오늘 진짜 예뻐요!”고하슬은 소예지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눈을 반짝였다.“칭찬해 줘서 고마워, 우리 딸. 엄마도 오늘 학교에 가야 하거든.”소예지가 웃으며 말했다.“진짜요?”고하슬은 신기해하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곧장 고이한에게 소리쳤다.“아빠, 엄마도 저처럼 학교에 간대요!”그러자 고이한은 눈을 가늘게 뜨며 미소를 지었다.“그래.”하지만 그가 고개를 들어 소예지를 바라보는 순간 그의 눈빛은 묘하게 흐려져 있었다.소예지는 고하슬을 등교시킨 뒤 곧장 자신의 학교 방향으로 향했다. 학교 정문에 도착했을 때 마침 강준석과 마주쳤고 둘은 인사를 나눈 후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이따 방송 촬영하는데 긴장 안 돼?”강준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소예지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선배처럼 잘생긴 사람이 같이 있어 주는데 내가 왜 긴장하겠어?”강준석은 피식 웃었고 부드러운 그 미소는 봄바람처럼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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