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Chapter 41 - Chapter 50

100 Chapters

제41화

이서연은 속으로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역시 재벌들의 세계에는 보통 상식 따윈 통하지 않는구나.’슬쩍 고이한 쪽을 바라보니 또렷한 이목구비와 곧은 키,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까지... 정말 어느 여자가 봐도 끌리는 남자였다.이런 남자를 만약 붙잡을 수 있다면 어느 여자라도 절대 쉽게 포기할 리 없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연구실 창립식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여러 언론에서 일제히 이 소식을 보도하기 시작했다.그날 오후, 경제지와 뉴스 헤드라인에도 고신 그룹 연구소 창립 관련 기사가 대서특필되었다.소예지는 운전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고수경의 메시지를 받았다.오늘은 자신이 하슬이를 데리러 간다는 내용이었다.[하슬이 곧 데리러 왔어요.]소예지가 답장을 보냈다.[일찍 들어왔으면 좋겠어요.][알겠어요.]고수경은 약간 불만이 섞인 말투로 메시지를 보냈고 소예지는 집에서 딸을 기다리기로 했다.오후 다섯 시쯤, 소예지는 다시 고수경에게 문자를 보냈다.그러자 고수경은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하슬이는 친구랑 아직 노는 중이에요.]알고 보니 또다시 고하슬과 이안이 함께 마트에 간 모양이었다.소예지는 윤하준도 같이 있다는 걸 짐작했고 다행히 오늘은 심유빈이 함께 있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여섯 시 반이 다 되어 고수경은 한껏 신난 얼굴로 선물까지 한 아름 안은 고하슬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엄마, 이것 좀 봐. 오늘 새로 산 거야! 윤하준 삼촌이 사줬어!”소예지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왜 또 윤하준 씨가 이런 걸 사주게 한 거지?’옆에서 고수경도 기분이 한껏 좋아 보였다.사실 조카 등하교를 도맡으니 매일 윤하준을 볼 수 있었고 오늘은 그와 함께 마트도 구경했다.거기다 윤하준의 조카도 자신을 무척 따르는 듯해 언젠가는 둘이 함께 놀러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그런 상상을 하며 들떠 있던 고수경은 뒷문이 열리는 소리에 돌아봤고 고이한이 정장을 입고 들어오고 있었다.“오빠 왔어? 오늘 이렇게 차려입고 어디 중요한
Read more

제42화

고수경은 진심으로 당황했다.“하슬아, 하슬아, 고모가 잘못했어. 네 엄마한테도 사과할게. 미안해. 정말 미안해.”고하슬은 고모가 이렇게까지 낮은 자세로 사과할 줄은 몰랐던지 동그란 눈을 깜박이더니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고수경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속으로는 원망을 모두 소예지 탓으로 돌렸다.원래부터 고수경은 소예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며칠 전에는 물에 빠지는 일까지 생겨서 더 미워졌다.그래서 이번 일도 고수경은 분명 소예지가 뒤에서 고하슬을 부추겼을 거라고 생각했다.‘오빠가 얼른 새언니를 바꿔줬으면 좋겠어. 만약 유빈 언니가 우리 새언니였다면 얼마나 좋을까...’아무도 2층 난간 옆에 조용히 서 있는 소예지를 눈치채지 못했다.소예지는 고하슬이 자신을 그렇게 지켜주는 모습에 뭉클했지만 한편으론 고수경이 딸을 이용해 윤하준에게 접근하려는 게 못내 불안했다.‘정작 하슬이에게 마음을 두지 않은 사람한테 하슬이를 맡기는 건 정말 걱정되는 일이다...’그날 밤, 고수경은 고하슬을 자기 방으로 부르며 같이 자자고 했지만 고하슬은 가지 않고 소예지 방으로 가서 엄마와 함께 잠들었다....다음 날 아침, 고수경은 이른 시간부터 거실 소파에 앉아 완벽하게 화장한 채로 고하슬을 기다렸다.“하슬아, 오늘은 고모가 학교에 데려다줄게.”하지만 고하슬은 단호하게 대답했다.“싫어요. 엄마가 데려다줘야 해요.”“에이... 한 번만 고모랑 같이 가자. 고모는 하슬이를 너무 사랑하는데?”고수경이 애교를 부렸지만 그때 고이한이 말했다.“오늘은 내가 데려다줄 거야.”고하슬은 그제야 소예지의 손을 놓고 아빠 손을 꼭 잡았고 고수경도 자연스럽게 따라나섰다.고이한이 고하슬을 데려간다고 하니 소예지는 그나마 안심이 됐다....아침 아홉 시, 소예지는 윤혁의 연구팀과 함께 새로 지어진 대형 실험기지 현장을 둘러보러 나섰다.정부에서 새로 지원해 준 이 산업단지는 앞으로 실험기지로 쓰일 예정이었다.윤혁이 설명했다.“지금 실험기지 설계도 작업 중이고 장비 리스
Read more

제43화

알고 보니 그 남자는 바로 심유빈의 아버지였다.그동안 소예지가 이해하지 못했던 일들이 한순간에 퍼즐처럼 맞춰졌다.고이한이 연구소 프로젝트에 깊이 관여하게 된 것도 결국 심유빈의 아버지인 그가 정보를 흘렸기 때문임을 직감했다.고이한이 이 연구소의 최대 투자자라면 누구에게 어떤 프로젝트가 넘어가는지는 결국 그의 말 한마디에 달린 셈이었다.“죄송합니다. 제가 자기소개를 깜빡했네요. 저는 안영수라고 하고 현재 성양 그룹 프로젝트 총괄입니다. 길이 막혀서 늦었습니다. 벌주로 한 잔 마시겠습니다.”“안 대표님, 너무 겸손하십니다. 일단 앉으셔서 음식부터 드세요. 술부터 드시면 속이 상하겠어요.”윤혁이 서둘러 일어서며 말렸다.‘심유빈의 아버지가 성이 안 씨라고? 그렇다면 심유빈은 정실부인이 아닌 혼외에서 태어난 딸인 걸까? 안영수 정도의 재력이면 해외에서 애인과 사생아를 두고 살아도 전혀 이상할 게 없지.’소예지는 속으로 생각했다.안영수는 소예지를 전혀 알아보지 못한 듯했고 건배할 때도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았고 소예지 역시 최대한 눈에 띄지 않으려 애썼다.식사가 무르익는 동안 소예지는 슬쩍 휴대폰으로 성양 그룹 관련 뉴스를 검색했다.가장 최근 뉴스에선 성양 그룹이 여러 병원에 의해 고소당했다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병원 측은 성양 그룹이 공급한 의료기기 중 결함 제품이 많았다며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소예지는 조심스럽게 안영수의 표정을 살폈다. 겉으론 인자하고 품위 있어 보였지만 윤혁이 중요한 질문을 꺼낼 때마다 그의 눈빛에는 계산적인 속내가 번뜩였다.안영수는 전형적인 사업가였다.“윤 팀장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회사는 이미 해외 여러 우수 의료기기 회사와 직접 협력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공급하는 제품의 품질은 저희가 100% 책임지겠습니다.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모두 저희가 책임질 겁니다.”저녁 식사 후 소예지는 이서연을 집에 바래다주었다.차에 타자 이서연이 넌지시 물었다.“예지야, 네 남편은 무슨 일 하세요?”“사업해.”“어떤
Read more

제44화

다음 날 오후, 소예지는 박시온과 약속해 카페에서 만났다.박시온은 몇 장의 서류를 내밀며 말했다.“이게 내가 모은 성양 그룹 관련 소송 자료야. 요즘 큰 소송에 휘말렸더라. 세 군데 병원이 연합해 소송을 걸었는데 업계 평판도 상당히 안 좋은 편이야.”소예지는 박시온이 건네준 자료를 받아 들고 꼼꼼히 살펴봤다.“근데 왜 갑자기 안영수에 대해 알아보라고 한 거야?”“그 사람이 심유빈 아버지거든.”“진짜? 심유빈이 그런 재벌 아빠가 있었어?”소예지는 고개를 저으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정확히는... 심유빈은 안영수의 혼외 자식이야. 그리고 성양 그룹이 이번에 우리 연구실 장비를 가장 많이 공급하는 업체라서 그 회사가 어떤 곳인지 제대로 알아보고 싶었어.”박시온은 서류를 훑으며 중얼거렸다.“실력은 있을지 몰라도 최근 몇 년간 소송 기록만 봐도 절대 착한 기업은 아닌 것 같아. 병원까지 등쳐먹다니... 양심이 있으면 그럴 수가 있나.”그러더니 다시 한번 비웃듯 말했다.“그래도 심유빈은 진짜 대단하네. 고이한이 6조 원이나 투자한 건 결국 심유빈의 아버지를 살려주려고 그런 거네.”소예지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고이한은 심유빈 아버지 회사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정부가 직접 지원하는 국가 프로젝트라 그쪽의 눈치도 본 셈이었다. 정부와 애인 가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거나 다름없었다.박시온과 헤어진 뒤 곧 윤혁의 전화가 걸려 왔다.“논문 진도는 좀 어때?”“선배, 늦어도 월요일까지는 꼭 넘길게요.”“그래. 수고가 많네. 아, 그리고 나 대신 고 대표님께도 감사하다고 전해 줘.”“갑자기 왜요?”“오늘 우리 연구실 회계팀에서 말하기를 고신 그룹에서 첫 투자금 2조 원이 입금됐다고 하더라고.”“아, 네. 꼭 전할게요.”소예지가 웃으며 답했다.“그리고 연구실 일에 제가 참여하는 건 아직 남편한테 비밀로 해주세요.”“알지. 언젠가 크게 성공해서 네가 직접 말할 때까지 비밀 지켜줄게.”“맞아요. 남편에게 꼭 멋진 선물을 하고 싶
Read more

제45화

소예지는 잽싸게 일어나 방문을 잠갔다.다행히 고이한이 그녀 방을 두드리러 오지는 않았고 그제야 소예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다음 날 아침, 새 피아노가 집으로 배달되었다.소예지는 피아노를 꽃방에 두고 음을 맞춘 뒤 잠시 앉아 곡 하나를 연주했다.양희순이 흐뭇하게 바라보다 말했다.“사모님, 저는 음악은 잘 몰라도 정말 듣기 좋네요.”소예지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마침 고이한이 아래층으로 내려왔고 양희순이 조심스럽게 말했다.“대표님, 사모님, 아침 식사는 이미 준비됐어요.”소예지는 식탁에 앉았고 고이한이 갑자기 물었다.“점심에 시간 돼?”소예지는 대답하지 않고 그냥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고이한은 그녀의 무심한 눈빛을 잠시 바라보다가 커피잔을 들며 혼잣말처럼 말했다.“됐어.”소예지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아침을 먹었다.사실 그가 무슨 약속이 있든 최대한 핑계를 대거나 피할 수 있으면 무조건 거절할 생각이었다.무리하게 끌려 나가지 않는 한 더 이상 고이한의 인간관계나 사교 모임에 끼고 싶지 않았다.고이한이 집을 나서자 소예지는 다시 논문 마무리에 집중했다.자료를 찾아보고 원고를 다듬다 보니 점심이 되었고 탐정 이용으로부터 사진 몇 장이 도착했다.사진에는 고이한이 외국인 부부와 식사하는 장면이었고 그 곁에는 심유빈도 함께했다.모두 밝은 표정이었지만 소예지는 핸드폰을 옆에 놓고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드디어 논문의 마지막 문장을 쓰고 저장한 뒤에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원고를 꼼꼼히 확인한 뒤 논문을 윤혁에게 보냈다.그리고 메시지를 남겼다.[선배, 이 논문 꼭 실명으로 내야 해요?]윤혁이 답했다.[예지야, 이 논문은 국제 권위 학술지에 실릴 거라서 실명이 원칙이야.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소예지는 억지로 웃으며 답했다.[아니요. 괜찮아요.][좋아. 내가 한번 보고 이 박사님께도 넘겨서 검토받을게. 이상 없으면 곧 게재 진행할 거야.][네. 알겠습니다.]밤 아홉 시쯤, 양희순에게서 전화가 왔다
Read more

제46화

소예지는 순간 숨이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이한은 이미 셔츠 단추를 풀어 상체를 드러낸 채 서 있었다.희미한 불빛 아래에서도 또렷이 드러나는 단단한 어깨와 잘록한 허리, 완벽한 몸매가 더욱 도드라졌다.소예지의 머릿속에는 온갖 도망칠 방법만 맴돌았다.하지만 그가 저렇게 문 앞을 지키고 있으니 도망쳐봤자 결국 다시 침대로 끌려올 뿐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지금 소예지에게 이 남자는 오직 증오의 대상이었고 사랑은 이미 오래전에 식어버렸다.“오늘은 몸이 안 좋아. 네 방으로 가.”소예지가 차갑게 대답하자 순간 어둠 속에서 고이한이 성큼 다가왔다.짙은 향수 냄새가 훅 스며들었고 소예지는 그를 밀쳐내며 소리쳤다.“고이한, 비켜. 손 떼라고!”하지만 그녀의 힘은 턱없이 부족했고 곧 고이한의 손에 양팔이 머리 위로 고정됐고 소예지는 결국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나쁜 놈아... 그만해. 정말 싫어. 건들지 마. 제발 건들지 마...”그 순간 소예지는 정말로 그가 미워 견딜 수 없었다.고이한의 숨결이 잠시 거칠어지더니 이내 그녀를 놓아주었고 그는 소예지의 양옆에 팔을 괴고 몸을 숙여 한참을 바라봤다.공포에 질려 몸을 잔뜩 웅크린 소예지는 마치 사나운 짐승에게 쫓긴 새끼 동물처럼 온몸을 떨고 있었다.어둠 속에 고이한의 차갑던 눈동자에는 잠시 불안이 스쳤고 그는 마치 모든 감정을 꼭꼭 숨기는 사냥꾼처럼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이윽고 그는 방을 나서며 문을 닫았다.잠시 후, 방 밖에서 벽을 세게 내리치는 소리가 났고 그 소리는 방문을 사이에 두고도 크게 울렸다.소예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눈물을 훔쳤고 이렇게 또 한 번 겨우겨우 피했다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이런 불안에 떠는 나날들은... 더는 못 견디겠어. 반드시 이혼해야 해...’주말이 되자 소예지는 고씨 저택에서 고하슬과 함께 시간을 보냈고 고이한은 주말 내내 보이지 않았다.저녁이 되어 진가영이 전화를 했을 때도 고이한은 고객 미팅 중이라며 자리를 피했다.주말이 끝날
Read more

제47화

“자신 있어.”소예지는 단호하게 대답했고 그녀의 눈빛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해.”강준석이 부드럽게 덧붙였다.복도를 돌아가자 안채린 옆에서는 이도현이 들떠서 따라붙었다.“채린아, 기분 풀어. 소예지는 너랑 경쟁할 실력이 전혀 없어. 난 무조건 네 연구가 더 믿음이 가.”이도현은 대학 때부터 안채린을 좋아했지만 워낙 그녀가 도도하게 선을 긋다 보니 늘 그림자처럼 쫓아다녔다. 이번에 실험실에 들어온 것도 결국엔 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였다.안채린은 발걸음을 멈추고 이도현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그래. 그럼 네가 내 실험을 도와줘. 이번에는 꼭 소예지한테 실력이 뭔지 보여줄 거야.”...소예지는 실험실에 들어서자마자 마스크를 쓴 채로 저온실에서 샘플을 꺼냈다.곁에서는 보조연구원 박진우가 서둘러 뒤를 받쳐주었다.소예지는 능숙하게 장비를 다루며 꼼꼼히 모든 데이터를 기록해 나갔다.박진우는 처음에는 자신이 왜 소예지 팀에 왔을까 걱정했지만 곁에서 보는 동안 그녀의 빠르고 정확한 손놀림과 바이러스 샘플을 다루는 신중함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오후 네 시가 다 되어갈 즈음에 소예지는 실험 샘플 분석을 끝냈다.“진우 씨, 내일 오전 열 시까지 뿌리째 딴 패란초 10근만 꼭 준비해 줘요.”“네. 지금 바로 연락해 볼게요.”박진우가 고개를 끄덕였고 소예지는 시간을 한 번 더 확인하고는 흰 가운을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난 오늘 먼저 퇴근할게요. 진우 씨도 다 끝나면 다섯 시 전에 퇴근해요.”“네. 알겠습니다.”4시 반쯤 소예지는 약간 숨을 고르며 고하슬이 있는 학교로 달려갔다.교문 앞에는 윤하준이 이미 고하슬과 조카 이안이와 함께 있었다.소예지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다가가 고마움을 전했다.“윤하준 씨, 오늘도 하슬이를 봐주셔서 감사합니다.”“요즘은 수경 씨가 데려가던데요?”“오늘은 제가 데리러 왔어요.”소예지는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아이들은 다섯 시가 되도록 신나게 놀았고 두 어른도 함께 시간을
Read more

제48화

“소예지, 내가 한마디 충고할게. 여긴 사람을 살리고 병을 고치는 곳이지 네가 집안 자랑하라고 온 자리가 아니야. 난 네 아버지를 존경하지만 넌 네 아버지처럼 될 순 없어.”안채린은 붉은 입술을 살짝 올리며 차가운 미소를 짓자 소예지도 잠시 미소를 지었다.“충고 고마워.”“그럼 두고 보자. 이번에 누가 더 빨리 신약을 개발하는지... 내가 이기나 네가 이기나.”안채린은 고개를 곧게 들고 실험실을 나갔고 소예지는 곧장 실험실로 들어가 온 신경을 연구에 집중했다.오늘 아침에 도착한 뿌리째 딴 패란초를 손에 들고 추출 작업에 들어갔다.2년 전, 소예지는 연구실에서 직접 샘플을 배양하며 실험을 이어왔고 결국 패란초 뿌리에서 황원소를 추출했다. 이 성분은 구형 바이러스를 빠르고 효과적으로 죽일 수 있으면서도 부작용이 극히 적어 현재로선 가장 이상적인 치료제였다.지금 이 바이러스가 국내에 퍼지기 시작했을 땐 아직 제한적이었지만 워낙 변이가 빨라 빠른 대처가 없으면 걷잡을 수 없는 확산으로 이어질 게 뻔했다.소예지는 이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게 절실했다.며칠이라는 시간은 순식간에 흘렀고 소예지는 매일 시간을 쪼개 고하슬을 데리러 가는 일도 놓치지 않았고 연구에도 끈질기게 몰두했다.그리고 네 번째 날 아침이 되자 소예지는 정제된 약물을 현미경 아래에서 바이러스 샘플에 떨어뜨렸다.단 10여 초 만에 바이러스 군락이 전멸했다.소예지는 조용히 안도의 숨을 내쉬고 박진우에게 말했다.“진우 씨, 강준석 박사님을 모셔 와 줘요.”곧 강준석이 달려왔고 결과를 확인한 그는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예지야, 넌 진짜 타고난 천재야.”소예지는 미소를 지었다.“이제 제 연구는 여기까지예요. 그다음은 선배가 맡아주세요.”“좋아. 바로 제약회사에 연락해서 임상 단계까지 최대한 빨리 진행할 수 있도록 할게.”그날 오후 회의실에서 강준석이 연구 결과를 공식적으로 발표했고 그 순간 안채린의 얼굴은 굳어졌다.그녀는 분을 참지 못하고 책상을 내리쳤다.“말도 안 돼! 약효
Read more

제49화

학교 앞에 도착했을 땐 이미 약속 시간에서 10분이나 늦어버렸다.서둘러 달려온 소예지는 윤하준이 두 아이와 함께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급히 다가가 미안한 얼굴로 인사했다.“죄송해요. 윤하준 씨, 제가 또 늦었네요.”윤하준은 부드럽게 묻는다.“요즘 많이 바쁘신가 봐요?”“네. 의대 수업이 있어서요.”소예지가 대답하자 윤하준이 물었다.“이안이가 내일 소예지 씨 집에서 반나절 놀고 싶다는데 괜찮을까요?”소예지는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물론 괜찮아요. 내일 하루 종일 집에 있으니까 일찍 데려다주셔도 돼요. 잘 챙길게요.”윤하준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정말 감사합니다.”“아니에요. 별말씀을요.”소예지는 미소로 답했다.다음 날 오전 11시쯤, 윤하준은 이안이를 데려다주고 바로 돌아갔다.아이 둘은 2층 놀이방에서 신나게 놀았고 소예지는 옆에서 아이들을 지켜보며 한가롭게 시간을 보냈다.비슷한 또래라 그런지 둘은 금세 친구가 되어 오후 4시까지도 떨어질 줄 몰랐다.윤하준이 이안이를 데리러 왔을 때 고하슬은 이안이의 손을 꼭 붙잡고 놓지 않으려 했다.“이안아, 가지 마. 더 놀고 싶단 말이야...”두 아이가 서로를 꼭 껴안은 채 헤어지기 아쉬워했고 윤하준과 소예지가 아이들을 한 명씩 안아주며 달랬다.그때 소예지의 머리카락 한 올이 살짝 얼굴을 스치자 윤하준은 문득 그녀의 선명한 이목구비와 청순한 분위기에 시선이 잠깐 머물렀다.고운 흑발과 또렷한 이목구비, 은은한 미소가 어쩐지 고풍스럽고 부드럽게 느껴졌다.결국 윤하준이 내일 장난감을 사주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두 아이가 아쉬움을 달래며 헤어졌다.고하슬은 눈물까지 글썽이며 이안이를 배웅한 뒤, 한참이나 소예지 품에 안겨 떨어질 줄 몰랐다.주말이 되자 최현숙한테서 전화가 와서 소예지는 고하슬을 데리고 점심을 먹으러 다녀왔다.고수경은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떠나 집에 없었다.월요일이 되자 강준석에게서 메일이 도착했다.전국적으로 병세가 심각해진 탓에 소예지가 개발한 신약의 임상 실험도
Read more

제50화

저녁 시간.소예지는 집에서 고하슬과 함께 TV를 보고 있었고 일곱 시쯤이 되자 현관문이 열리고 고이한이 들어섰다.“아빠, 아빠!”고하슬이 기쁘게 달려가 아빠의 다리를 꽉 껴안았다.“아이고, 우리 딸.”고이한은 무릎을 꿇고 마치 오래도록 그리워했던 사람을 만난 것처럼 고하슬을 품에 안아 머리를 꼭 쓰다듬었다.“아빠, 왜 이렇게 오래 있었어요? 저 아빠 보고 싶었단 말이에요.”고하슬이 볼을 부풀리며 투정을 부렸다.“아빠가 중요한 일이 있어서 그랬단다.”고이한은 딸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또다시 고하슬의 머리에 입을 맞췄다.“아빠, 이렇게 오래 집에 없었으니까 엄마도 안아줘야지.”고하슬이 장난스럽게 말했다.고하슬은 아마 엄마도 자기처럼 아빠를 많이 그리워했을 거라 생각했고 아빠가 엄마를 안아주면 엄마가 분명히 기뻐할 거라고 믿은 듯했다.소예지는 고하슬의 귀여운 제안에 곧바로 소파에서 일어나 말했다.“하슬아, 엄마가 과일 씻어줄게.”그녀의 이런 회피에 고이한의 시선이 잠시 식었다.소예지는 과일을 씻어 나오며 고하슬이 고이한에게 선물 사달라고 조르며 달라붙는 모습을 보고 조용히 2층으로 올라갔다.요즘 그녀는 각국에서 유행하는 RT 303 구형 바이러스 관련 소식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실험실에서 진행한 바이러스 논문은 이미 국제 저명 학술지에 실린 상태였다.밤 10시, 소예지는 고이한의 방문을 열고 안에서 아직 놀고 있는 고하슬을 바라보며 말했다.“하슬아, 이제 잘 시간이야.”“엄마, 오늘 아빠랑 같이 자면 안 돼요?”고하슬이 물었다.“아빠가 출장 다녀오느라 많이 피곤할 거야. 오늘은 아빠 좀 쉬게 해 드리자. 응?”소예지는 부드럽게 타이르듯 말했다.최근 들어 고하슬은 전보다 한층 더 이해심이 깊어졌고 소예지가 이렇게 설명하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어요.”소예지는 고하슬의 손을 잡고 방을 나섰고 방 안에 홀로 남겨진 고이한은 잠시 답답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고 그를 감도는 냉랭한 분위기가 방안에 퍼졌다.소예지가
Read more
PREV
1
...
34567
...
10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