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채린은 소예지의 것을 훔치고 싶어서 훔친 건 아니었다.하지만 그녀도 알고 있었다. 지금 진실을 밝히면 부모의 눈에 그녀는 다시 ‘실망스러운 딸’로 보일 테고 안채린은 그걸 절대 감당할 수 없었다.어릴 적부터 안채린은 집안 어른들에게 늘 딸이라서 아쉽다는 시선을 받아왔고 아버지 안영수 역시 그녀에게 늘 무심했다.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발버둥 쳤는지 그녀 자신만 안다.“소예지, 내가 뺏은 게 아니야. 네가 내게 준 거야.”안채린은 그렇게 자신을 다독이고 나서 화장실 문을 열고 나왔다.식탁 앞에서 웃음이 가득했고 안영수는 이제 몇 번째인지 모르게 반복해서 안채린의 칭찬을 늘어놓고 있었으며 심유빈도 그녀와 사이좋은 자매인 척 두어 마디 거들며 안채린을 띄워줬다.장인화는 말할 것도 없었다.“아들이 없어도 뭐 어때요? 우리 채린이면 충분하죠!”그녀의 표정만 봐도 뿌듯함이 넘쳐나는 게 알렸다.“유빈아, 다음에 고 대표한테 식사 한 번 대접해야겠어. 이번 일을 제대로 감사 인사드려야지.”안영수가 말했다.“네, 아빠. 제가 얘기해 볼게요.”심유빈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안영수는 고이한과 큰딸 심유빈이 어떤 인연으로 엮였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어쨌든 지금 흐름만 보면 자신의 집안이 이 정도 인맥도 있다는 게 너무 만족스러웠다.잘만 하면 언젠가 고씨 가문과 사돈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안영수의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같은 시각, 소예지는 윤하준의 연락을 받고 고하슬을 데리러 가지 않았다.[이한이가 직접 데리러 간다고 하네요.]오후 네 시쯤, 현관에서 고하슬의 발소리와 반려견 젤리가 짖는 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소예지는 3층에서 내려오며 그들을 맞이했고 젤리는 반가워 꼬리를 흔들며 달려들었으며 고하슬도 잔뜩 신이 난 얼굴이었다. 고이한도 걸어 들어오며 말했다.“하슬아, 손 씻으러 가자.”“네, 아빠가 도와주세요.”고하슬은 평소처럼 그의 손을 꼭 잡았다.저녁을 먹고 난 뒤, 소예지는 그림책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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