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담이 담담히 말했다.“오늘 저녁 일로 신세 졌네요. 제 딸이 선생님께 전화를 한 줄 몰랐어요. 사실, 제 딸 전화 한 통 때문에 굳이 오실 필요는 없었는데, 시간만 뺏은 것 같아요.”너무나도 형식적인 말투에 정하준이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어차피 시간은 이미 뺏겼습니다. 원래는 한 선배 댁에서 저녁을 먹으려고 했는데, 전화받고 바로 왔거든요.”서이담은 몇 초간 말문이 막혔다.“...미안합니다.”“오는 길에 단지 입구 근처에 분식집이 보이던데요.”정하준이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차는 단지 건물 바로 앞에 세워져 있었는데, 오늘 타고 온 차는 전혀 조용하지 않았다.마치 검은 맹수가 잠복해 있는 듯한 한눈에 고급임을 알아볼 수 있는 차였다.그는 평소 출근할 때는 이런 차를 타지 않았다.출근할 때는 평범한 비즈니스 차량을 이용했다.서이담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정하준이 담배를 비벼 끄고 옆 쓰레기통에 버린 뒤 몸을 돌렸다.빛과 그림자가 그의 키 큰 실루엣을 길게 늘였다.“사과는 듣고 싶지 않습니다. 차 타세요. 저녁 사세요.”서이담은 입술을 달싹였다.그의 깊고 검은 눈동자를 마주한 채, 숨을 한 번 고르고는 차에 올랐다.그저 밥 한 끼 사는 것뿐 일상적인 예의 범절이라고 생각했다.단지 입구에는 ‘아줌마 만두’라는 가게가 있었다.여러가지 메뉴를 팔았는데, 서이담도 자주 아침에 여기서 만두나 팥도넛을 사서 두유와 함께 먹곤 했다.가게 주인과도 잘 아는 사이였다.“어, 이담 씨 왔네.”주인이 반갑게 다가왔다가 그녀 맞은편에 앉아 있는 준수한 남자를 보고 잠시 멈칫했다.작은 가게 안에서 유독 돋보이는 외모와 분위기였다.서이담이 정하준을 바라봤다.“뭐 드실래요?”정하준은 턱짓으로 그녀에게 맡겼다.이미 만둣가게에 들어왔으니, 알아서 시키라는 뜻이었다.“만둣국 두 그릇이요. 하나는 대자, 하나는 소자. 그리고 한 그릇엔 김 가루만 넣어 주세요. 건새우는 빼고요.”주문을 하고 나서 서이담은 무심코 입술을 깨물었다.정
Baca selengkapny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