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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다시 너의 세계로: Chapter 51 - Chapter 60

100 Chapters

제51화

하지만 보지 않아도 상대방이 자신을 훑어보는 눈빛은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서이담은 택시 기사의 현재 머릿속 같은 건 알 수 없었다. 그저 40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에 무사히 집 앞에 도착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뿐이었다.서이담은 시선을 계속 옆으로 돌린 채로 있다가 택시 기사가 자신이 알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들어서면 잔뜩 긴장한 얼굴로 손을 꽉 말아쥐었다.운전기사는 여전히 이따금 그녀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녀를 어떻게 해보려는 음침한 심산을 감추려고도 하지 않은 채 말이다.“아가씨는 피부가 어쩜 그렇게 희고 좋아? 남편이 좋아하겠어요.”“아가씨, 안 더워요? 더우면 나 신경 쓰지 말고 그냥 겉옷 벗어요.”“남편이 의사였구나. 그럼 돈이 많겠네. 하긴, 그래야 이렇게 예쁜 와이프를 두지.”20분 정도 지났을 때, 서이담의 휴대폰이 울렸다.정하준인 걸 확인한 그녀는 빠르게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나 지금 단지 앞이에요.”짧은 한마디였지만 서이담은 매우 고마웠다.“나는 지금 서해 북로 근처예요. 20분 정도 더 있으면 도착할 것 같아요.”서이담은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자신의 위치를 공유했다.차량이 익숙한 거리에 들어섰을 때 그녀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서이담은 차량이 단지 앞에 멈춰 서자마자 악의 소굴에서 탈출이라도 하듯 재빨리 차 문을 열고 횡당보도를 건넜다.고개도 들지 않은 채 걷다 보니 어느 순간 단단한 가슴팍에 머리를 부딪쳤다. 은은한 남자의 향수가 코에 스치자마자 그녀는 중심을 잃었고 몸이 뒤로 넘어갔다.정하준은 넘어지려는 그녀의 허리를 와락 감싼 후 자신의 가슴 쪽으로 힘껏 당겼다.서이담의 말랑한 몸이 다시금 정하준의 가슴에 부딪혔다.정하준은 서이담을 무사히 낚아챈 뒤에도 손을 풀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세게 그녀의 등을 옭아매 자신의 품으로 짓눌렀다.단단하고 뜨거운 남자의 체온 때문일까, 서이담은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안정감이 들었다.조금씩 떨리던 그녀의 몸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하지만 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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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화

만둣가게.이곳은 사장님이 늦은 시간까지 영업하는 곳이라 늦게 퇴근하는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다.서이담은 만둣국이 나오자마자 숟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만두를 먹었다.많이 배고팠던 탓에 만두가 쉴 틈 없이 입안으로 들어갔다. 조금 쌀쌀한 저녁, 뜨끈한 만둣국을 한입 마시니 경직됐던 몸이 다 풀리는 것 같았다.매운맛을 즐기지 않는 그녀였지만 오늘은 특별히 매운 김치만두를 주문했다. 입안이 뜨거워서인지 얼굴과 몸에 열이 피어오르는 듯했다.서이담은 상냥한 얼굴의 사장님과 낯익은 주민들, 그리고 바로 앞에 있는 무뚝뚝한 얼굴의 남자를 차례대로 번갈아 보고는 다시 고개를 숙여 국물을 한입 떠먹었다.정하준은 잘 먹는 그녀와 달리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만두 안에 있는 새우를 하나하나 걸러냈다. 그가 주문한 건 모둠 만두였다.“오늘은 정말 고마웠어요.”“네.”그는 말을 마친 후 만두를 한입 베어 물었다. 그런데 씹자마자 미처 걸러내지 못했던 새우가 느껴져 금방 접시에 뱉어버렸다.다 걸러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새우가 군데군데 숨어있었다. 새우 특유의 통통 튀는 식감과 해산물 냄새에 정하준의 미간은 금세 다시 찌푸려졌다.다정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던 아까와는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서이담은 그 모습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조금 빨간 것들은 전부 다 새우가 들어간 만두예요. 늦은 시간에는 항상 팔고 남은 만두들을 모둠 만두에 넣거든요. 그래서 종류별로 개수가 똑같지는 않을 거예요.”그녀는 정하준이 해산물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과거의 강보람도 알고 있고 현재의 서이담도 알고 있다.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더 이상 뚱뚱했던 시절처럼 정하준의 취향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맞춰주려고 하지 않았다.예전의 그녀는 중증이다 싶을 정도로 정하준을 좋아했다. 그래서 지금의 서이담이 있기까지 그녀는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었다.“저녁에는 웬만하면 멀리 가지 마세요.”정하준이 새우를 걸러내며 고개를 슬쩍 들었다. 시선이 멈춘 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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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테이블로 돌아온 서이담은 다시 자리에 앉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며칠 전에 내린 비 때문에 잔뜩 얼룩진 가게 창문 너머로 잘생긴 얼굴 하나가 보였다.정하준은 회색 니트에 슬랙스를 입고 있었다. 키도 크고 등판도 넓은 것이 모델 몸매가 따로 없었다.그는 선들선들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긴 채 하얀 담배를 내뿜으며 어두운 밤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서이담은 그 모습을 보며 자신이 변한 만큼 정하준도 많이 변했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의 그는 밥을 다 먹은 후 곧바로 담배를 찾을 만큼의 골초가 아니었으니까.다만 외적으로는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7년이나 시간이 흘렀으면 세월의 흔적이 보일 법도 한데 정하준은 지금도 여전히 지나치게 잘생긴 얼굴을 하고 있었다.서이담은 문득 이대로 그와 서이담으로서 친구가 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만나 일상적인 얘기를 하며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친구 말이다.서이담은 계속해서 정하준을 바라보고 있었고 정하준은 그 시각 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담뱃재를 툭툭 털며 무표정한 얼굴로 뭐라 얘기하는 것이 매우 차가워 보였다.“방금 문자로 차량 번호 보냈으니까 한번 조회해 봐. 혼자 탄 여성들을 상대로 추행을 시도한 전적이 있는 상습범일 테니까.”“알았어. 참, 다음 주 토요일에 있는 경준이 결혼식 말이야. 경준이가 그러는데 신랑 쪽 들러리는 네가 해줬으면 좋겠대.”정하준과 안경준, 그리고 기태용과 하승찬은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사이고 커서는 비즈니스적으로도 좋은 관계로 엮여 있는 사이다.정하준은 친구들 중에서 발언권이 제일 센 사람이었다.“안 해. 경준이한테는 내가 따로 얘기할게.”하승찬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나도 경준이한테 얘기했어. 너를 들러리로 세웠다가는 하객들의 시선이 전부 다 신랑이 아닌 하준이 너한테로 가게 될 거라고. 그런데 경준이 여자 친구가 자기 들러리로 백서연을 세우겠다고 했나 봐. 내가 볼 때 이번 기회에 너랑 백서연을 이어주려는...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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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그런데 왜 남편이 아니라 나한테 연락했습니까? 아까 그 택시 기사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서이담 씨를 따라 집 안까지 따라갈 생각이었다고요. 서이담 씨는 늦은 시간에 여자 혼자 택시 타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몰라요?”정하준이 차가운 얼굴로 그녀를 꾸짖었다.“만약 내가 오늘 이곳으로 오지 않았다면 서이담 씨는 어떻게 됐을 것 같습니까?”서이담은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시선을 내렸다가 한참 뒤에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오늘은 그냥... 재수가 조금 없었을 뿐이에요. 앞으로는 조심할게요.”“서이담 씨 남편, M 국에서 연봉으로 2억 원 정도 받고 있는 거로 아는데 왜 자기 와이프가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걸 가만히 두고만 보고 있는 겁니까? 그뿐만이 아니죠. 어머니와 딸이 아픈데도 여태 돌아오지도 않고 있죠.”정하준의 차가운 시선이 말쑥한 서이담의 얼굴을 뚫어질 듯 바라보았다. 그는 겁먹은 토끼 같은 얼굴로 자신의 품에 안겨있던 그녀가 아직도 눈에 선했다.박순자가 입원해 있을 때도, 서하율이 병원으로 와 검진을 받을 때도 보호자는 늘 서이담 뿐이었다.정하준은 입원 병동의 간호사로부터 박순자의 아들이 현재 미국에서 얼마나 잘나가고 있는지 전부 다 전해 들었다.“서이담 씨는 서이담 씨 남편의 아내가 맞긴 합니까? 서이담 씨 남편이 무료로 채용한 도우미가 아니고?”정하준이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며 물었다.조금 전, 하승찬이 조회해 본 결과 서이담이 탔던 택시 기사는 상습범이 맞았다. 심지어 성범죄로 감옥에 한 번 들어갔다 온 전과도 있는 사람이었다.서이담은 갑자기 가까워진 거리에 손을 꽉 말아쥐었다.“선생님의 질문에 대답할 필요성을 못 느끼겠네요. 남편의 소득과 별개로 저도 일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요. 오늘 일은 아까도 말했다시피 그저 재수가 없었던 것뿐이에요. 그리고 선생님한테 전화를 한 건 순간적으로 너무 무서워서 그랬어요. 폐를 끼치게 된 건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요.”순식간에 거리를 둬버리는 매우 딱딱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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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서이담은 공장에 관해 물어볼 것이 있어서 전화를 건 것일 뿐이었다며 별일 아니었다는 듯 전화를 끊었다.어른들의 세계는 원래 이런 법이었으니까. 친하지 않은 이성에게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상대가 자신의 처지를 공감해 주길 바라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엄마, 토요일에 야외 수업이 있는데 엄마도 같이 갈 거예요?”아침을 다 먹은 서하율이 야외 수업 참가 여부에 관한 유인물을 서이담에게 건넸다. 아이들의 시야를 넓혀주기 위해 다양한 곳을 참관할 거라는 내용이었다.서이담의 속마음은 서하율을 보내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불안하고 걱정된다고 멋대로 결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하율이는 어때? 가고 싶어?”“네, 준서랑 약속했어요. 준서네는 부모님 두 분 다 참가할 거래요.”서하율이 눈을 반짝이며 서이담의 손을 잡았다.“엄마도 갈 거죠?”서이담은 아이의 눈빛에 결국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갈게.”딸을 등교시킨 후 서이담은 라움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자리에 앉아 물을 마시고 있던 그때, 휴대폰에 알림음이 울렸다. 구준서였다.[아줌마, 아줌마도 토요일에 하율이랑 같이 야외 수업에 참가할 거예요?][응. 준서는 부모님이 두 분 다 오시는 거야?][네! 엄마는 엄청 바쁜데도 참가해 주겠대요.][잘됐네.]서이담은 미소를 짓는 고양이의 이모티콘을 보낸 후 빠르게 대화를 끝냈다.금요일 저녁.정하준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들리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준서야, 할머니가 엄마한테 전화해 볼게. 그러니까 이만 뚝 해.”최명희가 화장실 문을 두드리며 아이를 달랬다.“걔네 둘은 뭐가 그렇게 바빠서 토요일 하루도 시간을 못 내? 쯧.”정윤범이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로 혀를 찼다. 그러고는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최명희에게서 휴대폰을 빼앗아 들고는 딸을 향해 명령하듯 말했다.“예진이 너, 토요일에 일정 싹 다 비워놓고 준서네 학교로 가.”정예진은 그 말에 난감한 듯한 목소리로 얘기했다.“안돼요.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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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화

최명희가 같이 가준다는 말에 구준서는 그제야 문을 열고 얼굴을 드러냈다. 하지만 울음은 아직도 그치지 않은 상태였다.“치킨 어디 있어요?”최명희는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며 서둘러 품에 끌어안았다.“부엌에 있어. 준서가 좋아하는 머스타드 소스도 잔뜩 있으니까 이제 그만 뚝 하자. 알겠지?”정씨 가문에는 두 명의 아이가 있다.한 명은 정예진의 아들인 구준서고 나머지 한 명은 정도현의 딸인 정소연이다. 하지만 정도현은 최명희의 친한 친구의 아들이고 그 딸인 정소연도 어릴 때부터 정씨 가문에서 크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입양된 아이였다.정도현과 주다빈은 결혼한 후 줄곧 아이를 가지지 않았고 그러다 보육원에서 정소연을 입양해 왔다.작은 아들인 정하준은 여태 여자라고는 집에 소개해 준 적이 없었다.그래서 최명희는 평소 구준서라면 끔찍이 여겼고 자신의 모든 사랑을 전부 다 아이에게 쏟아냈다.다음 날 아침.최명희는 손주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침 일찍 편한 옷으로 입고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계단을 내려가다 그만 발을 삐끗해 버렸고 그걸 본 도우미가 급하게 다가와 그녀를 부축해 주었다.“사모님, 괜찮으세요?”학교로 갈 생각에 잔뜩 들떠 있던 구준서는 가방을 멘 채 1층으로 내려왔다가 걱정이 가득 어린 도우미의 말을 듣고는 빠르게 소파로 다가갔다.“할머니, 괜찮아요?”“응, 괜찮아. 아야...”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던 최명희였지만 한 발 앞으로 내디디자마자 발목으로부터 찌릿한 통증이 전해져 고통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안 되겠어요. 일단 제가 약을 가지고 올게요.”도우미가 약을 가지고 온다며 급히 다용도실로 뛰어갔다.“쯧쯧, 그러게 조심 좀 하지. 왜 아침부터 흥분해서는. 많이 아파? 병원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서재에서 나온 정윤범이 혀를 차며 다가왔다.구준서의 환했던 얼굴이 금세 어둡게 가라앉아버렸다.“할머니, 오늘 나랑 같이 못 가는 거예요...?”최명희는 바람 빠진 풍선 같은 아이의 얼굴을 보며 얼른 입을 열었다.“당연히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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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화

‘누가 부자 아니랄까 봐, 말을 해도 꼭!’최명희가 눈을 부릅뜨며 아들을 째려보았다.“네 누나는 일이 있어서 안 되고 나는 보다시피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됐어. 그러니까 네가 준서 보호자로 같이 갔다 와. 너도 평소에 일만 했으니까 이럴 때 마음 편히 놀고 오면 좋잖아.”“안 돼요. 오늘 경준이네 만나기로 했어요.”“그러고 보니 경준이 곧 결혼한다고 했지? 그래도 애가 가정을 꾸릴 생각도 하고, 철들었네. 태용이도 황씨 가문의 딸이랑 잘 되어간다던데, 태용이도 곧 결혼하는 거 아니니?”“할머니.”구준서가 최명희의 팔을 잡아 흔들며 그만 말하라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최명희는 그 눈빛에 얼른 다시 정하준을 노려보며 명령하듯 말했다.“아무튼 오늘은 네가 준서 데리고 같이 갔다 와. 알겠어?”“네, 그럴게요.”구준서는 잔뜩 흥분한 얼굴로 방방 뛰었다. 그러다 정하준이 말을 번복할까 봐 얼른 밖으로 뛰어나가 정하준의 차량에 올라탔다.정하준은 가볍게 샤워를 마친 후 얇은 니트에 검은색 가죽 재킷을 입고 다시 거실로 내려왔다.최명희에게 얼음찜질을 해주던 도우미는 그 모습을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어머, 저렇게 입으시니까 꼭 대학생 같아요. 도련님은 회장님이랑 사모님의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아서 그런지 하루도 잘생기지 않는 날이 없네요. 여자들이 좋아하겠어요.”정윤범은 그 말에 현관문을 나서다 말고 정하준을 한번 쳐다보았다. 확실히 번듯한 것이 자신과 최명희의 좋은 점만 쏙 빼닮아 있었다.“여보, 나 낚시하러 가.”“그래요.”최명희는 짧게 대꾸한 후 고개를 돌려 도우미를 바라보았다.“하준이 쟤는 어릴 때부터 예뻤어요. 지금이야 맨날 무뚝뚝한 얼굴이지 어릴 때는 예쁜 리본도 머리에 달고 공주 옷까지 입었어요. 활발하기는 또 얼마나 활발한지. 잘생긴 거로 따지면 하성이가 더...”최명희의 표정이 한순간에 어두워졌다.그녀도 잘 알고 있다. 정하준의 일련의 변화는 전부 정하성의 죽음으로부터 기인 되었다는 것을.정하준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정하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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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화

송명 초등학교 앞.서이담과 서하율은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차례대로 학교 버스에 올라탔다.선생님은 자리에 앉은 학부모들과 아이들을 보며 출석 체크한 후 주의 사항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선생님이 설명을 마치자마자 늦게 도착한 정하준과 구준서가 버스에 올라탔다.야외수업에 불참한 아이들도 있었기에 현재 버스 안은 군데군데 빈자리가 나 있었다.정하준은 구준서를 데리고 곧장 서이담의 뒷자리로 가 앉았다.“아줌마!”구준서가 활짝 웃으며 앞에 앉은 서이담에게 인사를 건넸다.“하율아, 나 너랑 같이 놀려고 장난감 가지고 왔는데 나랑 같이 앉을래?”아이의 말에 서하율의 시선이 서이담의 얼굴로 향했다.“엄마, 나 준서랑 같이 앉아도 돼요?”서이담은 잠시 망설이다가 딸의 반짝이는 눈빛에 결국 알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정하준도 다리를 거두어들이며 구준서가 앞으로 가기 편하게 해주었다.서이담은 구준서에게 자리를 내준 후 정하준의 옆자리가 아닌 뒤쪽으로 가서 앉았다. 굳이 옆에 앉을 필요는 없었으니까.하지만 앉고 난 후 이러는 게 오히려 더 의식하는 것 같아 보여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버스는 8시에 출발해 9시 30분쯤 송명 파크 앞에 도착했다.구준서는 아이들을 따라 버스에서 내리려다가 자신의 뒷자리가 아닌 다른 곳에서 일어서는 서이담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아줌마, 왜 삼촌이랑 같이 안 앉았어요?”서이담의 몸이 살짝 굳었다.“응? 그게...”서이담은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미소를 지으며 아무렇게나 답했다.“준서 외삼촌이 비켜주지 않으셔서 그냥 다른 자리로 갔어.”말이 끝나자마자 뒤쪽에서 코웃음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서이담은 민망함을 느끼며 눈을 질끈 감았다.“삼촌, 왜 아줌마한테 자리 양보 안 해줬어요?”구준서가 정하준을 바라보며 물었다.서이담은 아이의 입을 두 손으로 막아버리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른 채 주머니에서 사탕 하나를 꺼내 구준서에게 건네주었다.구준서는 사탕을 맛있게 받아먹고는 곧바로 서하율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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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화

“괜찮아요. 하율이 어머니 때문에 곤란했다는 뜻은 아니었어요.”정하준은 미소를 지은 채 말을 건네고는 맞닿아 있는 서이담의 손을 덥석 잡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서이담은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하마터면 그대로 품에 안겨버릴 뻔했다.“먼저 지나갈게요.”뒤쪽에서 아이의 손을 잡은 학부모 한 명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두 사람 쪽으로 다가왔다.해당 학부모는 입학식 때 서이담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던 여자였다.“하율이 어머니, 안녕하세요. 이렇게 또 뵙네요.”여자가 먼저 서이담을 향해 인사를 나눴다.“옆에 분은 혹시 준서 아버님이신가요? 두 사람 엄청 친한 사이인가 봐요.”여자의 시선이 꼭 맞잡고 있는 서이담과 정하준의 손으로 향했다. 둘 사이를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듯한 눈빛이었다.서이담은 재빠르게 손을 빼고는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하나도 안 친해요.”등 뒤에서 또다시 시선이 느껴졌다.정하준은 상당히 당황한 듯한 서이담의 뒷모습을 빤히 보더니 대뜸 고개를 숙여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나한테 여보라고 부를 때는 언제고 오늘은 아까부터 모르는 사이처럼 행동하네.”서이담의 몸이 한순간에 경직됐다.여자는 다 안다는 듯 두 사람을 보며 호호 웃었다.“아빠 아니에요. 외삼촌이에요.”구준서가 눈을 깜빡이며 정정해 주었다.“아줌마, 우리 삼촌이랑 화해했어요?”구준서는 잊지도 않고 또다시 화해 얘기를 꺼냈다. 아이가 이렇게까지 화해에 집착하는 건 그만큼 서이담이 마음에 들어서였다.자신은 서이담이 엄청 마음에 드는데 가족인 정하준이 그녀를 싫어하면 앞으로 여러모로 불편해질 테니까.구준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정하준과 서이담이 잘 지냈으면 했다.서이담은 아이의 진지한 눈빛에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응, 화해했어.”“다행이다. 우리 얼른 가요!”버스에서 내린 후 서이담은 서하율과 함께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파크 안에 들어섰다.제일 먼저 참관한 곳은 채소 박물관이었다.서이담은 이곳에 와본 적이 없었다.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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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화

구준서는 어릴 때부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왔었기에 자기밖에 모르는 성격이 아닌 베풀 줄 아는 성격으로 자랐다.그래서 지금도 정하준이 사진을 찍어줬으니 당연히 자신도 사진을 찍어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아줌마는 괜찮...”서이담이 고개를 저으며 거절하려는데 정하준이 아무 말 없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구준서는 손을 내밀며 서이담의 곁에 있는 서하율을 불렀다.“하율아, 내 옆으로 와. 이따 너랑 삼촌도 찍어줄게.”“응.”서하율이 미소를 지으며 구준서의 곁으로 달려갔다.서이담은 설마 정하준과 함께 사진을 찍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정하준은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고는 카메라 쪽을 가만히 응시했다. 반대편 손이 자리를 잡으며 서이담의 손과 아주 잠깐 스쳤다.서이담은 찰나의 스킨십인데도 움찔하며 몸을 잔뜩 긴장시켰다.구준서가 최대한 휴대폰을 높게 들어 올리며 말했다.“삼촌, 좀 웃어봐요.”정하준이 요구대로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렸다.“아줌마도 웃어요.”서이담 역시 아이의 말에 어색하게나마 미소를 지었다.정하준과 서이담은 불과 10c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래서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더라도 상대방의 얼굴이 어느 정도 보였다.구준서는 두 사람의 사진을 찍어준 후 이번에는 정하준과 서하율이 함께 서 있는 사진도 찍어야겠다고 했다.정하준은 꽤 협조적이었고 무릎을 구부린 채 서하율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었다. 그런데 예상했던 것보다 촉감이 더 부드러워 그는 저도 모르게 몇 번을 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서하율은 얼굴도 예쁘고 눈동자도 반짝반짝 빛이 났다. 다만 또래 아이들에 비해 체구가 왜소한 편이었다.“몸은 좀 어때? 불편하거나 하면 언제든지 아저씨한테 얘기해.”정하준은 자기가 말하고도 깜짝 놀랐다. 서이담처럼 말끝을 길게 늘어트리며 매우 부드럽게 말했기 때문이다.정하준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눈앞에 있는 이 아이를 많이 예뻐하고 있었다.이건 꽤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하준은 특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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