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진은 침대에 누운 채로 말을 이어 가다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고 결국 그대로 잠들었다.민하윤은 방 한구석에 웅크린 채 혼자 남아 하도진을 조용히 바라봤다. 살이 조금 빠진 듯했고, 턱엔 푸르스름한 수염이 올라와 있었으며, 눈 밑에는 옅은 그늘이 내려앉아 있었다.민하윤은 이불을 끌어올려 하도진에게 덮어 준 뒤 말없이 짐을 챙겼다.하도진이 한숨 자고 눈을 떴을 땐 이미 바깥이 어스름했다.사방이 컴컴한 방 안에는 텅 빈 공기만 떠돌았고, 민하윤이 여기서 지냈다는 흔적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여행 가방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침대 머리맡에 쪽지 한 장이 놓여 있었고 하도진은 미간을 찌푸린 채 숨을 크게 들이켰다. 눈빛이 잠깐 허공을 헤맸다.[은행에서 그루이 긴급 출장 건이 생겨서 제가 직접 지원해서 한 자리를 받았어요. 대략 2주 정도 비울 것 같아요. 그동안은 서로 조금만 냉정해져요. 당분간 연락하지 말아요.]하도진은 급히 훑어 읽다가, 쪽지를 쥔 손마디가 하얗게 질릴 만큼 힘이 들어갔다.‘민하윤, 그렇게까지 나를 싫어해? 내 곁에 1초도 있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까지 도망치고 싶어? 그래도 난 네 뜻대로 안 놔줘. 그루이...’세상 어디든지 끝까지 찾아내겠다는 생각이 먼저 치밀었다.하도진의 얼굴이 서늘하게 굳었다. 그는 쪽지를 구겨 버리듯 쥐었다가, 그대로 뭉쳐 손아귀에 욱여넣고 전화를 걸었다.한편, 서 비서는 맞은편에 앉은 여자를 보며 억지로 웃었다. 소개팅 자체가 싫어서 진작부터 거부해 왔지만 집안에서 밀어붙이는 바람에 결국 빠져나가지 못했고, 오늘도 대충 예의만 지키고 끝낼 생각이었다.그런데 상대는 생각보다 조건이 너무 좋았다. 명원시 교육청 소속 고등학교 영어 교사였고, 외모도 단정하고 깔끔했다. 하얀 피부에 큰 눈, 또렷한 쌍꺼풀, 갸름한 얼굴선, 말투까지 조용하고 부드러워서 딱 물가에서 자란 사람처럼 촉촉하고 우아한 분위기가 났다.서 비서는 순간 자세를 고쳐 앉았다. 반찬도 챙겨 주고 물도 따라 주며 괜히 더 살갑게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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