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맨스 / 사랑한다고 말해줘 / Chapter 241 - Chapter 250

All Chapters of 사랑한다고 말해줘: Chapter 241 - Chapter 250

365 Chapters

제241화

진호영은 번개처럼 입을 다물더니, 앞에 놓인 죽을 가리키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두 손을 쫙 펼쳐 보였다.“나 줘. 은율이가 또 안 마시면 이번에는 억지로라도 먹이겠어. 물도 밥도 끊겠다는 걸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잖아.”구준오는 속이 뒤집힌 표정으로 꼭 닫혀 있던 방문을 밀어젖혔다.구준오가 캄캄한 방 안으로 들어가자 공기가 확 가라앉았다. 복도에서 새어 들어오는 희미한 빛에 의지해 겨우 발밑을 확인하며 몇 걸음 옮기는데 어둠 속 침묵은 지나치게 깊었다. 구준오는 이유도 모르게 등줄기가 서늘해졌다.진호영은 아직 사태를 실감하지 못한 채 죽 그릇을 들고 구준오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은율아!”구준오가 갑자기 앞으로 달려들며 다급하게 외쳤다.“지금 당장 구급차 불러! 누구라도 좀 와 봐. 빨리! 고은율, 제발... 날 겁주지 마!”그제야 진호영은 뭔가를 감지한 듯, 손을 덜덜 떨며 스위치를 눌렀다.불이 켜지는 순간, 시야가 새빨갛게 물들었다. 바닥을 뒤덮은 선연한 피, 그 한가운데에 고은율이 잠겨 있었다. 피부는 종잇장처럼 창백했고 검은 롱드레스는 피에 젖어 무겁게 달라붙어 있었다.진호영의 손에서 힘이 풀렸다.도자기 그릇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났고, 잡곡죽이 사방으로 튀어 바닥을 더럽혔다.“누구라도... 제발, 살려 줘..”구준오는 고은율을 끌어안았다. 피가 넓게 번지며 구준오의 하얀 셔츠를 순식간에 물들였지만 구준오는 그런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사람처럼 정신없이 고은율을 붙잡고 있었다. 가슴 속으로 끝없는 절망이 밀려들어,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웠다.진호영이 정신을 차리고 미친 듯이 거실로 뛰어나갔다. 손이 떨려 휴대폰 잠금 해제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구급 번호는 고작 네 자리인데, 공포 때문에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아 몇 번이고 눌렀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젠장!”진호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욕을 내뱉고서야, 결국 전화를 걸었다.명원 국제 공항.탑승 대기 구역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민하윤은 눈에 띄지 않는 구석으로 몸
Read more

제242화

옆에는 송해정이 온몸에 보석을 두른 채 앉아 있었다. 평생 찬물 한 번 제대로 만져 본 적 없을 것 같은 손으로도 그 사람은 기꺼이 제 손으로 보물 같은 딸의 새우를 까 주고 있었다. 카메라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시선도 마음도 전부 민희수에게만 향해 있었다. 그 얼굴에는 그저 세월이 고요하다는 말이 어울릴 만큼 부드러운 온기만 남아 있었고, 예전의 가시 돋친 독설은 흔적도 없었다.민희수가 올린 글은 놀랄 만큼 단출했다.[새해 최고의 선물은 이미 뱃속에 있어요. 우리의 첫 번째 가족사진.]저렇게 아름다운 인생은 원래부터 민하윤의 것이 아니었다.민하윤은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사진 한 장이 심장을 칼끝처럼 찔렀다.스피커에서는 승객들에게 짐을 서둘러 위탁하고, 해당 창구에서 체크인을 진행하라는 안내가 반복됐다. 민하윤은 눈물이 멋대로 떨어지는 게 두려워서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렸다. 다리가 저릿해 겨우 몸을 일으켜, 캐리어를 끌고 위탁 수속을 밟으려는 순간, 앞길이 갑자기 막혔다.시야에 먼저 들어온 건 번쩍이는 구두, 그 위로 빳빳한 정장 바지, 구김이 살짝 잡힌 흰 셔츠,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검은 캐시미어 코트가 보였다.그리고 마침내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남자는 눈에 핏발이 잔뜩 서 있었다. 피로가 그대로 내려앉은 표정에는 예전의 의기양양함도 도도함도 없었다. 하도진은 곧장 민하윤을 바라봤다.민하윤은 본능적으로 캐리어 손잡이를 꽉 쥐었다. 돌아서서 지나치려는 찰나, 하도진이 거칠게 팔을 붙잡아 끌어당겼다.하도진의 손이 상처 난 부위를 건드렸다. 민하윤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얘졌다. 눈을 크게 뜬 채, 공포와 통증에 밀려 뒤로 물러섰다.하도진은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자마자 홱 손을 놓았다.“왜 외근 파견을 자원했어? 그렇게까지 도망치고 싶어?”민하윤은 그 말이 우스웠지만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말만 할 수 있었더라면 정말 피도 눈물도 없이 쏟아붓게 욕을 퍼부었을 것이다.하지만 민하윤은 이미 마음도 몸도 만신창이였다.
Read more

제243화

공항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소음이 요란했다. 그 순간, 하도진의 얼굴빛이 확 바뀌었다. 민하윤은 아무런 반응도 없이 하도진이 전화를 끊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곧이어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승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 국제항공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드린으로 출발하는 CA169편은 1시간 후 이륙 예정입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서둘러 체크인 후 탑승 게이트로 이동해 주시기를 바랍니다.”하도진은 굳은 표정으로 민하윤을 바라보면서도 정작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둘 사이 거리가 너무 가까운 탓에 방금 통화 내용이 한 글자도 빠짐없이 민하윤의 귀에 들어갔을 테니까 말이다.고은율은 아직 너무 어렸다. 이런 식으로 이렇게 끝나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민하윤은 더는 의미 없는 실랑이를 하고 싶지 않았다. 캐리어 손잡이를 잡고 자리를 뜨려는데 하도진이 먼저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커다란 손이 민하윤의 캐리어 손잡이를 덮어 막았다.민하윤은 하도진을 올려다보며 문득 가슴 한쪽이 서늘하게 꺼져 내리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손을 들어 수어를 또박또박 이어 갔다.[지금이라도 항공권 다시 끊으면 늦지 않아요. 저랑 아드린으로 갈래요?]하도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수어를 읽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손을 놓았다. 그런 행동이 이미 분명한 대답이었다.지금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둘은 알고 있었다.그 순간에도 고은율은 수술대 위에서, 생사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설령 헤어진 사이라 해도, 하도진은 마음속에서 고은율을 여전히 가장 중요한 자리에 둔다는 사실을 민하윤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고은율이 연예계에 발을 들이겠다고 하면 하도진은 가장 유명한 팀과 가장 유능한 매니저를 붙여 주었고, 온 세상을 덮을 듯한 홍보도, 국제적으로 이름난 감독의 작품도 손이 모자랄 만큼 쏟아지는 광고 계약도... 전부 하도진이 만들어 준 길이었다.고은율의 어머니가 위독했을 때, 하도진은 병원을 떠나지 않았다. 가장 권위 있는 전문가들을 불러 모아 회진을 돌게 했고 고은율이 병
Read more

제244화

하도진은 그제야 숨을 길게 내쉬고 의사의 어깨 너머로 수술실 쪽을 바라봤다.“보호자는 환자의 감정 상태를 수시로 살펴 주세요. 가능한 한 혼자 있게 두지 마시고요.”의사가 통상적인 당부를 덧붙였다.그 말이 하도진의 심장을 정면으로 찔렀다. 하도진은 순식간에 구준오의 멱살을 움켜쥐어 끌어당겼다. 눈빛은 날카로웠고 목소리는 쉰 듯했지만 한 마디 한 마디가 바닥에 박히듯 무거웠다.“나 대신 고은율을 잘 돌봐주겠다고 약속했지? 내가 분명히 말했잖아. 은율이는 충격 못 버틴다고, 혼자 두지 말라고! 이상한 생각 할까 봐, 멍청한 짓 할까 봐... 그런데 왜 은율이가 뭐 하는지 못 본 거야? 왜! 말해!”구준오는 고개를 숙인 채, 거의 중얼거리듯 말했다.“내 잘못이야. 내가 못 봤어.”가장 먼저 고은율의 손목을 본 사람도 구준오였다. 하지만 구준오는 사람을 끌어안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가느다란 손목에서 터져 나온 피가 구준오의 하얀 셔츠를 순식간에 물들였던 장면이 아직도 몸에서 떠나지 않았다.분위기가 위험해지자 진호영과 송지훈이 곧장 달려들어 두 사람을 떼어 놓았다.“형, 이건 나도 책임 있어.”진호영이 이를 악물고 구준오 앞을 막아섰다.“속이 너무 답답하면 날 때려. 절대 한 대도 안 막을게.”송지훈은 의사였다. 손목을 그어 대동맥을 건드렸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구준오의 피로 젖은 셔츠만 봐도 등골이 서늘해졌다.한 시간 반 넘게 이어진 응급 처치는 단순히 상처를 꿰매는 게 아니라 고은율의 생체 징후를 되살리는 싸움에 가까웠다.고은율은 쇼가 아니었다. 정말로 살고 싶지 않았던 거였다.평생을 함께한 형제들이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는 모습에 송지훈은 속이 무너졌다. 송지훈은 하도진의 어깨를 힘겹게 붙잡고 낮게 달랬다.“진정해. 얘네도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내가 왔을 때 둘 다 넋이 나가 있었어. 고은율은... 지금은 무사하잖아.”하도진은 비웃듯 숨을 뱉고 송지훈을 똑바로 노려봤다.“지금은 목숨 붙어 있지.
Read more

제245화

진호영은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못 느낀 채 과일 바구니를 뒤적이며 툴툴댔다.“내가 무슨 사고를 쳐? 근데 왜 은율 누나가 좋아하는 망고는 안 사 왔어?”송지훈은 하얗고 긴 손으로 과도를 쥔 채, 사과 껍질을 매끈하게 한 줄로 이어 벗겨냈다. 그러자 한 번도 끊기지 않은 껍질이 길게 늘어졌다.“망고 알레르기가 있어.”송지훈은 한숨 섞어 말하자 진호영은 그대로 굳었다.“말도 안 돼. 그럼 누나가 본인이 알레르기인 거 알면서 간병인한테 망고 사 오라 한 건...”뒤늦게 숨긴 뜻을 알아차린 진호영은 입을 틀어막고 얼굴이 새파래졌다.“내가 조금만 더 늦었으면 네가 잠들고... 망고는 필요도 없었지.”송지훈은 사과를 단숨에 씨만 빼고 썰어 접시에 담더니 고은율의 앞에 놓아 줬다. 그리고 안경 너머로 고은율을 곧장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은율아, 아까 내가 한 말도 들었지? 넌 제일 멍청한 방식을 선택했어. 게다가 하마터면 성공할 뻔했고.”검은 눈동자가 서늘하게 가라앉았고 누구나 고은율의 마음을 읽기 어려웠다.진호영은 온몸에 피가 거꾸로 도는 기분이었고 손끝이 얼음처럼 차가워졌다.“망고 말고도 은율이는 해산물 알레르기도 있어.”송지훈이 안경을 올리며 덧붙였다.“그러니까 더 조심해야 해.”고은율은 입술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물도 밥도 거부한 채, 다시 죽으려고 온갖 방법을 떠올리던 얼굴이었다. 그런데 송지훈이 와버렸다. 그리고 고은율은 평소 존재감이 희미하던 송지훈을 너무 얕봤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도진이가 미리 말해 줬나 보네.”고은율이 힘없이 중얼거리자 송지훈은 고개를 저었다.“누가 말해 준 건 맞아. 근데 도진이는 아니야.”송지훈은 무슨 말을 더 하려다 말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눈빛은 의미심장하게 고은율에게 머물렀다가 결국 하려던 말을 접었다.“밥부터 먹어. 그게 제일 중요해.”송지훈은 자신이 가져온 죽을 고은율의 앞 테이블에 올려두었다.고은율은 사과 한 접시와 하얀 죽을 한참 바라보다가 옆에서 잔뜩 겁먹은 얼
Read more

제246화

매니저는 바닥부터 굴러 올라온 사람답게 눈치가 빨랐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하도진의 친구가 건네준 생수를 받으며 능청스럽게 웃었다.“이 분은 좀 특이해요. 학벌도 좋고, 얼굴도 요즘 뜨는 아이돌 못지않아요. 생물학 박사래요.”말이 길어질수록 구준오의 얼굴은 점점 굳어 갔다. 매니저는 재빨리 핵심만 찍어 말했다.“다만... 아쉬운 건 선천적으로 청각 언어 장애가 있다는 점이죠.”“내가 밀던 게임팀 선수들은 예능에 못 올리게 하더니, 결국 화제성 제대로 탈 사람을 골랐네.”구준오는 자료를 내려다보며 몸을 조금 숙였다. 너무 집중한 탓에 고은율과 거리가 가까워졌고, 각도 때문에 마치 구준오가 고은율을 품에 안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그때 병실 문이 벌컥 열리며 정장 차림의 하도진이 안으로 들어왔다.고은율은 순간적으로 구준오를 밀어냈다. 얼굴이 발그레해진 채 하도진을 보며 손에 든 자료를 흔들었다.“이 예능... 네가 나한테 잡아 준 거야?”하도진은 잠깐 생각하다가 고은율이 말하는 게 연애 예능이라는 걸 알아챘다. 그는 서 비서에게 과일과 제비집을 옆에 내려두라고 눈짓한 뒤, 지친 얼굴로 낮게 말했다.“강요하는 게 아니야. 몸을 더 추슬러도 돼.”고은율은 하도진의 피곤한 기색을 놓치지 않았고 고개를 저으며 진지하게 말했다.“나갈 거야. 연예계는 자리 금방 비어. 내가 더 쉬면... 진짜 아무도 날 기억 못 해.”“그럼 그만하면 되지.”구준오가 확실히 기분이 상한 얼굴로 툭 내뱉었다. 말이 빠르게 튀어나온 건, 아마 본심이었을 것이다.“내가 널 먹여 살리면 되잖아.”“웃기지 마.”고은율은 여전히 구준오가 학생 때처럼 장난치는 줄 알고, 눈을 한번 굴리더니 단호하게 잘랐다.“날 동정해서 그러는 거면 더 싫어. 나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어.”병실 공기가 순간 얼어붙었다. 매니저와 막내 스태프가 동시에 구준오를 바라봤다가, 아차 싶은지 허둥지둥 시선을 피했다.하도진은 더 수척해 보였다. 예전처럼 번듯한 기세는 사라지고 얼굴에 피로가 붙
Read more

제247화

명원시 국제 공항.탑승교 출구는 사람으로 미어터졌다. 민하윤은 흰 셔츠에 청바지, 그 위로 검은 트렌치코트를 걸친 채 가방에서 선글라스를 꺼냈다. 옅게 번진 다크서클을 어떻게든 가리려는 몸부림이었다.해외 자금 프로젝트는 고작 일주일 만에 정리됐다. 현지 회사 법무팀이 자료를 죄다 정리해 한 장의 소장을 만들어, 오염된 원료를 납품한 해외 업체를 법정에 세웠다. 협력 은행 직원인 민하윤 일행도 당연히 따라붙어 야근했다. 시차도 못 풀고 회의실에 모여 과일이니 간식이니 음료니 다 갖춰 놓은 채, 몇 날 며칠을 밤새웠다.예정보다 일찍 파견 업무를 끝내고 나니, 아드린에서 휴가를 즐길 마음 같은 건 싹 사라졌다. 다들 최대한 빨리 귀국하자는 걸로 의견이 모였다.사람들은 캐리어를 밀며 웃고 떠들면서 출구로 빠져나갔다. 민하윤은 멀찍이 맨 뒤에서 따라갔다. 쉼 없이 돌린 일정 탓에 머리가 핑 돌았, 당장 공항만 벗어나 호텔방 하나 잡아 쓰러지듯 잠들고 싶었다.다른 부서 직원들이 떠들썩하게 걷던 그때, 출국장 쪽에서 임형섭이 보였다....서 비서는 짐을 부치고 막 비즈니스석 티켓 두 장을 받는 참이었다. 그때 세리 엔터 운영관리부 책임자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서 비서님, 하 대표님이 연초에 투자한 그 연애 예능 있잖아요. 남자 출연자 한 명이 갑자기 계약이 파기했대요. 제작진이 전화 와서 이걸 어떻게 처리하냐고 묻는데요.”서 비서는 서비스 데스크에서 티켓을 받아 들며 짧게 답했다.“하 대표님께 보고드리고 30분 안에 답 드릴게요.”그 옆, 하도진은 다리를 길게 꼬고 앉아 아이패드를 손끝으로 넘기고 있었다. 그가 들어간 건 유일하게 팔로우해 둔 계정이었다. 새로 올라온 사진 몇 장이 화면을 채웠다. 아드린의 노을, 그리고 해돋이 사진이 보였다.서 비서가 커피를 내밀며 업무 보고를 시작하려던 순간이었다.“하 대표님, 연애 예능 제작진 쪽에서 남자 출연자가 갑자기 위약을...”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 비서의 눈이 커졌다. 그는 옆 출구를 보고 얼어붙은
Read more

제248화

이 예능은 캐스팅부터 대본 확정, 촬영지 선정까지 하도진이 전부 촘촘히 챙겼다.“각 플랫폼에 티저 영상은 올렸어?”하도진이 잠깐 생각하더니 굳어 있던 미간이 조금 풀렸다.“대표님 지시대로 출연진의 신비감을 위해 실제 얼굴 대신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린 만화 버전 캐릭터로 대체했고, 티저는 이미 주요 플랫폼에 전부 업로드됐습니다. 반응도 좋고, 사전 예열 효과가 확실합니다.”서 비서는 눈치를 읽고 조심스럽게 떠봤다.“대표님 뜻은...”“티저가 남자 5명, 여자 4명이었지? 그 구성을 그대로 가. 계약 깨고 빠진 남자 출연자 자리만 새 일반인으로 채워. 후반은 여론 반응이랑 화제성 보고 흐름을 다시 쓰면 돼.”하도진이 입꼬리를 아주 살짝 올렸다. 그러고는 서 비서를 느릿하게 바라보며 되물었다.“고지능 금융 엘리트 남자, 그런 캐릭터는 어때?”고개를 크게 끄덕이던 서 비서는 눈빛이 번쩍했다.“좋습니다. 저희 프로그램 콘셉트가 어른들의 연애라서요. 직업도 다양하고, 다들 안정적인 직업에 수입도 탄탄한 설정인데... 지금 라인업이 의사, 생물학 박사, 화보 모델, 1인 미디어 운영자, 대학 신임 교원... 이런 식이라 금융 쪽 인물이 비어 있긴 했습니다.”그런데 서 비서의 표정이 곧 난감하게 굳었다. 말도 자연스레 끊겼다.“다만... 다음 주면 바로 촬영이라... 지금 일반인 중에서 조건에 맞는 사람을, 게다가 외모도 괜찮고 분위기도 좋은 사람으로 급히 찾는 건... 솔직히 좀... 어렵습니다.”하도진이 낮게 웃었다.“찾긴 뭘 찾아. 방금 네가 다 봤잖아.”서 비서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대표님, 설마... 임형섭 팀장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 사람이 예능을... 하겠습니까?”하도진은 대답 대신 시선을 멀리 두었다. 공항 출구를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낮게 지시했다.“이번 일정 끝나면 태유 은행 이 회장님이랑 식사 자리 한번 잡아.”서 비서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네. 바로 조율하겠습니다.”...3일 후.검은색 부가티 슈퍼카가 스
Read more

제249화

임형섭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유 모를 불안이 가슴 한쪽을 콕 찔렀다. 그는 이준호 회장의 뒤를 따라가며 표정을 단단히 굳혔다.서빙 직원이 룸 문을 열어젖히고는 옆으로 비켜 길을 내줬다.이준호는 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얼굴에 웃음을 잔뜩 걸었다. 멀찍이 손을 내밀며 자리에 앉아 있던 하도준에게 공손히 인사를 건넸다.“하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오늘 이렇게 뵈니 정말... 젊고 유능하시네요.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과찬입니다. 이 회장님.”하도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타고난 상위자의 기세가 자연스레 흘렀다.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매끄럽고도 선을 긋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악수를 받았다.그 순간, 임형섭의 머릿속 퍼즐이 한꺼번에 맞춰졌다.‘그래서였구나. 평소에 좀처럼 얼굴도 비치지 않던 이 회장님이 이토록 적극적으로 자리를 만들고... 굳이 나랑 함께 오자고 불렀던 이유가...’“신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태유 은행이 지난해 에스티 그룹 자금관리 프로젝트를 운 좋게 수주했지요. 제게는 더없는 영광이었습니다. 게다가... 대표님께서 은행 지분을 일부 매입하셨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혹시...”이준호는 역시 굴러먹을 대로 굴러먹은 노련한 사람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본론을 찔러 왔다. 대놓고 묻진 않되, 옆구리를 톡톡 찌르는 식으로 오늘 밥자리의 의도를 떠보는 것이었다.하도진은 느긋하게 웃으며 대답했다.“이 회장님, 안심하셔도 됩니다. 저는 태유 은행을 통째로 먹을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니 마음을 편히 두세요. 오늘은 그냥 식사 자리예요. 업계 선배님을 뵙고, 사업하는 법 좀 배우려고요.”“하 대표님, 무슨 그런 말씀을요. 제가 뭘 배울 만한 사람이겠습니까. 운이 좀 따랐을 뿐이지요. 업계 선배라니요. 과합니다.”이준호는 말을 풀어 놓자마자 재빨리 화제를 바꿨다.진호영은 과일을 집어 먹으며 흥미진진하게 구경했다.‘나이 든 여우 한 명에 젊은 여우 한 명이네.’서로 칭찬을 주고받는데, 속마
Read more

제250화

임형섭은 얼굴을 잔뜩 굳힌 채 하도진을 똑바로 바라봤다. 오늘 이 자리가 왜 만들어졌는지, 그 속내를 하도진의 미세한 표정 하나라도 잡아내 알아내고 싶었다.하지만 하도진은 끝까지 웃고만 있었다. 웃음이 환할수록 속은 더 읽히지 않았다.“네. 이 회장님.”임형섭은 마지못해 대답했다. 목소리는 차갑고 담담했다.“저는 미혼입니다. 그리고... 제 집안 형편이야 여기 계신 분들과 비교할 수준도 못 됩니다. 평범한 집안이에요. 다만... 두 분께서는 제 사적인 일에 꽤 관심이 많으신 것 같군요.”하도진이 진호영에게 눈빛을 한 번 던졌다.진호영은 기다렸다는 듯 바로 받아쳤다. 능청스러운 웃음을 걸고 분위기를 툭 풀어버린다.“에이, 그렇게 딱딱하게 굴지 말아요. 그냥 얘기하는 거잖아요? 임 팀장님도 궁금하시다면 저한테 물으셔도 돼요. 누가 이 테이블에 앉았다고 무조건 비즈니스 얘기만 해야 한댔어요? 우리는 그냥 친구 하려고 만난 거죠.”진호영의 능청스러운 말투는 정말 가관이었다. 몇 마디만으로도 방금의 날 선 문제를 흐릿하게 만들어 버렸다.그는 곧장 화제를 그럴듯한 이유로 갈아탔다.“근데 조건 그렇게 좋은데, 계속 혼자인 거 아깝지 않아요? 하 대표님이 가진 엔터 쪽에서 다음 주부터 12부작 연애 예능을 찍거든요. 흐름은... 뭐, 어느 정도 각본이 있긴 해도, 출연자들이 진짜 빵빵해요. 남자 출연자들도 다 임 대표님처럼 훈훈하고, 여자 출연자들은... 몸매나 얼굴이나, 웬만한 여배우 못지않고요.”진호영은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가 일부러 한숨까지 얹었다.“근데 하필 남자 출연자 한 명이 갑자기 계약 깨고 튀었지 뭐예요. 다음 주 촬영인데 대체할 사람이 안 잡혀서 난리예요. 그러다 제가 예전에 한 번 봤던 임 팀장님이 떠올랐죠. 임 팀장님만큼 딱 맞는 사람이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좀 염치없지만 하 대표님한테 부탁해서 오늘 이렇게 자리를 만든 겁니다. 정식으로 초대하려고요.”임형섭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 차분하게, 논리만 쥐고 들어왔다.
Read more
PREV
1
...
2324252627
...
37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