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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사랑한다고 말해줘: Chapter 321 - Chapter 330

363 Chapters

제321화

민하윤은 집에서 꼬박 일주일을 쉬었다.그 사이 연애 예능 촬영도 막바지로 접어들었고 프로그램 협업 제안 메일이 민하윤의 받은 편지함에 수북이 쌓였다.민하윤은 아직도 정체불명의 음흉한 남자가 떠오를 때마다 등골이 서늘했다.나지혜가 정성껏 보살핀 덕분에 삐끗했던 발목도 말끔히 가라앉아 이제는 걸어 다닐 수 있었다.그런데 아무리 집안을 뒤져도 임형섭이 선물해 준 그 팔찌는 나오지 않았다.민하윤은 멍하니 카펫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혹시 취한 뒤 기억이 엉킨 건 아닌지 자신을 의심했다.민하윤은 드레스룸에서 포장도 뜯지 않은 흰색 민소매 원피스를 꺼내 갈아입고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몸을 돌려 봤다.그러다 시선이 무심코 마른 쇄골로 떨어졌다.딱지로 굳어 있는 이빨 자국이 유난히도 눈에 밟혔다.민하윤은 다시 드레스룸으로 돌아가 액세서리 서랍을 뒤적였다.그리고 한 명품 실크 스카프를 골라 목에 가볍게 묶었다.그러자 상처가 딱 가려졌다.민하윤은 그 위로 베이지색 롱 트렌치코트를 걸쳤다.그러다 문득 익숙한 쇼핑백 더미가 눈에 들어왔다.순식간에 불쾌한 기억이 치고 올라왔다.나지혜는 하도진이 사다 준 옷과 신발을 습관처럼 분류해 드레스룸에 정리해 두고는 했다.그런 야한 속옷들까지도 나지혜는 깔끔하게 접어 따로 넣어 둔 상태였다.민하윤은 화장을 꼼꼼히 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발목에는 아직도 잔통이 조금 남아 있었다.주방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나지혜가 허둥지둥 뛰어나왔다.“사모님, 누워서 쉬셔야죠. 발목을 다치면 오래 가요.”민하윤의 단정한 차림을 보자 나지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어머, 사모님, 밖에 나가세요?”민하윤은 웃는 얼굴로 수어를 했다.[네. 피할 수 없는 일이 있어서 잠깐 나가야 해요. 저녁은 준비하지 마세요. 아주머니도 일찍 쉬어요.]민하윤은 나지혜가 마음에 들었다.요리도, 청소도, 손길이 야무졌고 선을 넘지 않았다.무엇보다 민하윤의 수어를 알아듣는다는 점이 고마웠다.그러자 나지혜가 입술을 달싹이더니 난처한 표정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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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2화

민하윤이 자신의 말을 귀담아듣자, 나지혜는 마음속의 긴장과 어색함이 순식간에 풀렸다. 나지혜는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면 반찬을 좀 더 해둘게요. 사모님, 나가실 때 조심하시고요.”민하윤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신발을 갈아 신고 집을 나섰다.호출한 택시는 촬영장 출입증이 없어서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민하윤은 어쩔 수 없이 길가에서 내렸다. 발목은 아직도 은근히 욱신거렸다. 민하윤은 길가에 서서 임형섭에게 메시지를 보냈다.하지만 10분이 지나도 답장이 없었다.임형섭이 촬영 중이라 그런가 싶었다. 민하윤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민하윤은 백누리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관찰실 세트장은 촬영 별장 옆에 붙어 있으니 금방 받을 줄 알았다. 하지만 전화는 몇 번 울리다가 그대로 끊겼다.민하윤은 고개를 숙이고 메시지 창을 닫고 메일함을 열었다. 그리고 초대장에 적힌 담당자 연락처로 문자를 작성해 보냈다.그러자 곧바로 담당자한테서 답장이 왔다.[민하윤 씨, 잠시만요. 바로 갈게요.]민하윤은 그제야 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지난번의 그 어두운 그림자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민하윤은 또다시 그 음흉한 남자와 마주칠까 봐 겁이 났다.그 음흉한 남자는 민하윤에게 더럽고 상스러운 말을 쏟아냈고 심지어 손까지 함부로 댔다. 민하윤은 그 일을 하도진에게 말할지 한참을 망설였다.하지만 하도진의 차가운 얼굴과 무심한 눈빛이 떠오르자, 민하윤은 입을 다물고 싶어졌다.‘말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하도진은 또 비웃기만 할지도 몰랐다. 민하윤에게 교활하다느니, 남자를 유혹했다느니, 그런 딱지를 씌울지도 몰랐다.민하윤은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안경을 쓴 부감독이 숨을 헐떡이며 민하윤 앞에 나타나서야 정신이 돌아왔다.“민하윤 씨, 죄송합니다. 오늘은 날이 좋아서 외부 촬영을 더 뽑아야 해서 다들 밖에서 정신이 없네요. 오래 기다리셨죠?”[괜찮습니다.]민하윤은 휴대폰에 문자를 입력한 후, 화면을 뒤집어 부감독에게 보여 줬다.부감독은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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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3화

민하윤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렸다. 남자와 여자라는 힘의 차이가 너무 컸다. 민하윤이 필사적으로 뒤로 빠지려는 순간, 부감독이 거칠게 끌어당겨 민하윤을 품에 가뒀다.아까까지만 해도 점잖아 보이던 부감독은 딴사람처럼 변해 있었다. 부감독은 민하윤의 손목을 사납게 움켜쥐고 놓지 않았다. 안경 너머로 날카로운 눈빛이 번뜩였다. 부감독은 민하윤의 목덜미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고, 숨을 들이켜듯 민하윤의 몸에 코를 가져다 대면서 향수 냄새를 맡았다.민하윤은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민하윤은 입을 열어 보려 했지만 목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부감독은 민하윤의 반응을 보더니 비웃듯 웃었다.“말 못 하는 사람이면 아무리 소리 질러도 소용없지. 다만 넌 이런 곳과 어울리지는 않네. 이렇게 예쁜데 무슨 예능을 찍겠다고 그래? 내 말만 잘 들으면 널 드라마 팀에 추천할게.”부감독은 민하윤을 벽으로 몰아붙이면서 다른 한 손으로 벨트를 풀기 시작했다.머릿속이 하얘진 민하윤은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저 애원하는 눈빛으로 3층 계단 쪽을 바라보면서 누군가가 와서 자신을 구해주기를 간절히 바랐다.부감독은 숨을 거칠게 내쉬었고 입에서 풍기는 냄새가 지독했다. 부감독은 민하윤의 목에 두른 스카프를 확 잡아당겼다.스카프가 풀리자 민하윤의 쇄골 아래로 감춘 이빨 자국이 드러났다. 부감독의 눈빛이 순간 어두워졌다. 부감독은 본능적으로 경계심이 올라온 듯 낮게 물었다.“남자 친구 있어?”민하윤은 마지막 동아줄이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누군데?”부감독은 표정이 굳었다. 욕망에 취했던 표정이 조금 가라앉았고,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돌아가기 시작했다.‘하긴... 이렇게 예쁜데 어떻게 솔로겠어? 젠장... 이 년은 말을 못 하잖아.’부감독의 표정은 정말 말이 아니게 흉측했다. 반쯤 내려간 바지는 벗지도 다시 입지도 못했다.“젠장, 내가 묻잖아! 네 남자가 누구냐고!”하지만 민하윤은 고개를 저었고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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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4화

별장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감시 화면에서 민하윤이 마지막으로 포착된 곳은 2층 계단 입구였다.3층에는 CCTV가 없었다. 그런 생각에 주민혁은 미간을 찌푸렸고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지팡이를 짚고 3층으로 올라가던 주민혁은 마침 그 말을 들었다.“일단 조금 만지기만 할 게. 들어가지는... 않을게. 네 남자한테 차이고 싶지 않으면 우리 일을 비밀로 하는 게 좋을 거야.”그 순간, 주민혁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주민혁은 부감독을 반드시 자기 손으로 직접 죽일 생각이었다. 주민혁은 남이 자신의 사냥감을 탐내는걸, 세상에서 제일 싫어했다.부감독은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도 못했고, 민하윤의 치마 지퍼는 아직 반쯤 열린 상태였다.부감독은 키가 2미터에 가까운 거대한 남자에게 붙잡혀 그대로 공중에 들렸다. 발이 바닥에서 떨어진 채, 얼음처럼 차가운 얼굴의 남자 앞으로 끌려갔다.“너희는 누구야...”남자의 목소리가 떨렸다. 조금 전까지 불붙었던 욕망은 순식간에 죽어 버렸다.“너희... 뭘 하려는 건데!”“어떡하지? 나도 아직 민하윤한테 손도 못 댔는데...”주민혁은 천천히 다가가며 코와 입을 가리며 차갑게 내뱉었다.“어떻게 죽여줄까? 무기징역? 아니면...”주민혁은 손가락으로 총 모양을 만들더니 검지로 부감독의 미간에 가져다 댔다. 주민혁의 입술이 느리게 열렸다.“빵! 후...”주민혁은 차갑게 남자를 내려다보면서 손을 거뒀고, 세운 검지에 바람을 불었다.“이렇게 널 죽이면... 그건 너무 싸지.”주민혁의 말에 부감독은 다리가 확 늘어지며 힘이 풀렸다. 회색 속바지가 순식간에 젖었고 오줌이 똑똑 바닥에 고였다.주민혁은 얼굴을 찌푸렸고 역겹다는 듯 반걸음 물러섰다.부감독은 바로 비명을 질렀다. 건장한 경호원은 병아리처럼 부감독을 들어 올렸다. 부감독의 얼굴은 핏기 없이 하얘졌다.경호원은 계단 앞에서 멈췄고 팔을 뻗더니 일부러 손을 놓았다. 그러자 부감독은 바로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졌다.부감독은 2층 계단 입구까지 기어 올라왔다. 얼굴이 피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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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5화

누가 신고했는지 알 수 없었다. 잠시 뒤, 빨간색과 파란색 불빛이 번쩍이며 경찰차 두세 대가 사이렌을 울리며 별장 아래에 멈춰 섰다.키가 크고 체격 좋은 제복 차림 경찰들이 별장 일대를 봉쇄했다.감독은 사람들 틈을 헤집고 들어오다가 반쯤 벗은 부감독 장민현을 보자마자 욕부터 튀어나왔다.“장민현, 너 X발 지금 뭐 하는 짓이야!”“경찰은 또 왜 온 거야?”수염이 듬성듬성 난 감독은 검은 공사용 조끼를 걸친 채, 말투부터 거칠었다.감독의 시선이 장민현의 하체로 떨어졌다. 장민현은 회색 타이트한 속바지 하나만 걸치고 있었고, 가랑이 쪽은 오줌에 흠뻑 젖어 얼룩이 크게 번져 있었다.“신고는 누가한 거야!”장민현은 이미 트라우마에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장민현은 민하윤을 건드리려 했던 일을 입 밖에 꺼내지 못했다. 손발로 바닥을 기어다니다가 선두에 선 경찰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렸다.“살려 주세요. 저놈들이 저를 죽이려고 해요.”그 말에 현장이 얼어붙었다.사람들은 상황도 파악하지 못한 채 장민현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계단 입구에 어느새 젊은 남녀 한 쌍이 서 있었다.사람들은 예쁜 여자를 단번에 알아봤다. 게스트로 합류해 촬영을 시작한다는 그 여자였다. 백누리의 친구라는 소문도 돌았다.하지만 사람들은 민하윤이 왜 여기 있는지, 장민현이 두 사람을 보고 왜 저렇게 겁에 질린 건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임형섭은 가장 마지막에 별장으로 들어왔다.촬영이 끝난 뒤에야 임형섭은 미처 확인하지 못한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를 보고 나무 그늘에 혼자 서서 민하윤에게 답장과 전화를 남겼다.하지만 민하윤은 전화를 받지도 않았고 문자도 답장하지 않았다.임형섭은 입구에 세워진 경찰차 두세 대를 보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 별장 안에서 들려오는 수상한 애원과 비명 때문에 임형섭의 마음속에는 불길한 예감이 차올랐다.임형섭은 걸음을 재촉해 안으로 들어갔다.마침 경찰이 진술을 받는 중이었다.경찰은 펜을 쥔 채, 주민혁을 노골적으로 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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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6화

현장은 너무 살벌했다. 자칫 사람 하나 죽을까 봐 겁이 난 누군가가 몰래 신고한 모양이었다.“몇 대만 쳤다면서요? 그런데 왜 온몸이 이 모양입니까?”경찰은 대놓고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경고했다.키가 훤칠한 경호원은 억울하다는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형사님, 저를 억울하게 몰지 마세요. 장민현은 자기 혼자 계단에서 굴러떨어졌습니다.”경호원이 자수는 했지만 장민현이 어떻게 3층에서 떨어졌는지는 일부러 입을 다물었다.별장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목격자들이 있어도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계단 쪽에 서 있던 낯선 남자는 차가운 독사처럼 한 손을 주머니에 꽂은 채 사람들을 천천히 훑어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도 그 시선만으로 입을 다물라고 경고하는 것 같았다.경찰이 차갑게 물었다.“왜 사람을 때렸습니까?”하지만 경호원은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어차피 직접 때렸다고 해도 최대 열다섯 날 구속하는 게 전부였다.그때 주민혁이 앞으로 나섰다. 주민혁의 눈빛은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고 시선은 장민현을 꿰뚫고 있었다.“여자를 성희롱했잖아요. 그러니 맞아도 싸죠.”성희롱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사람들의 얼굴빛이 확 바뀌었다.사람들은 거의 동시에 구석에 조용히 서 있던 민하윤을 바라봤고, 무슨 일이었는지 눈치챈 듯 서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그래서 속옷만 입고 있었던 거네.”“그렇다면... 이미 당한 거야?”“아마 그랬겠지. 말도 못 하니까 소리도 못 지르고...”“쯧쯧... 얼굴도 몸매도 저렇게 눈에 띄는데, 옷까지 저렇게 입고 다니면...”“목에 자국 좀 봐. 누가 문 자국 같은데?”사람들은 목소리를 낮출 생각도 없었다. 가장 더러운 상상으로 민하윤을 재단하며 멋대로 떠들어댔다.그중 남자 스태프 한 명이 툭 던지듯 말했다.“저는 못 믿겠는데요? 하윤 씨가 뜨려고 먼저 감독님을 꼬신 거 아닙니까? 일이 잘 안 풀리니까 죄를 뒤집어씌운 거고요. 부감독님은 평소에도 여자 출연자나 여자 스태프한테 매너가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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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7화

주민혁은 옆으로 고개를 틀어 민하윤을 한 번 봤다.민하윤은 너무 놀란 탓에 아직도 몸을 가늘게 떨고 있었고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새하얬다.별장 안에서는 아직도 수군거림이 끊이지 않았고, 모두 민하윤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그런데도 민하윤은 등을 곧게 세운 채, 임형섭의 뒤에 조용히 서 있었다. 겉으로는 차분하고 단단해 보였지만, 꽉 쥔 주먹이 민하윤의 상태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그 순간, 주민혁의 심장이 이상하게도 아주 짧고 몇 초쯤 아렸다.그러고는 묵직한 통증과 함께 저릿한 감각이 온몸으로 번졌다.주민혁은 미간을 찌푸렸다.자기 몸이 보이는 반응이 자신도 낯설었다.임형섭은 민하윤을 감싸안듯 지키며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갔다.그 악의적인 시선과 수군거림은 민하윤을 두 번 찌르는 칼과 다를 바 없었다.피해자를 향한 여론은 늘 두 번째 상처가 된다.주민혁은 맨 뒤에서 느긋하게 따라가다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그리고 민하윤을 향해 악의적으로 떠들던 남자 스태프 앞에 멈춰 섰다.“뭐 하려고요?”남자 스태프는 분명 두려웠으면서도 애써 태연한 척 뒤통수를 긁적였다.주민혁은 갑자기 피식 웃었다.주민혁은 지팡이를 뒤에 서 있던 거구의 경호원에게 넘기고, 얇은 셔츠 소매를 느긋하게 걷어 올렸다. 그러더니 목에 걸린 출입증을 움켜쥔 채 남자 스태프를 단번에 끌어당겼다.아까 그 남자가 내뱉은 말이 주민혁 머릿속에서 계속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저는 못 믿겠는데요? 하윤 씨가 뜨려고 먼저 감독님을 꼬신 거 아닙니까? 일이 잘 안 풀리니까 죄를 뒤집어씌운 거고요. 부감독님은 평소에도 여자 출연자나 여자 스태프한테 매너가 좋았어요.”‘매너는 무슨 개소리야.’주민혁은 마른 체형이었지만 그의 주먹은 망설임이 없었다.한순간에 바람을 가르듯 날아간 주먹이 그 입이 더러운 남자 스태프의 얼굴에 그대로 꽂혔다.남자 스태프는 비틀거리며 두 걸음 뒤로 밀려났다.몸이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가는 와중에도 코에서 터져 나온 피를 손으로 막으려 했다.주민혁의 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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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8화

주민혁은 미간을 찌푸리며 속으로 낮게 욕설을 뱉었다.민하윤의 손이 가늘게 떨리자 임형섭은 차가운 시선으로 경찰을 바라봤다.“질문을 바꿔 주실 수 있을까요?”경찰은 곤란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죄송합니다. 민하윤 씨, 심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래도 절차상 확인해야 하는 부분이라 규정대로 진술을 받아야 합니다.”민하윤은 깊게 숨을 들이켠 뒤, 펜을 종이 위에 내리꽂듯 움직였다.임형섭은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었다. 뜨거운 물이 손등에 쏟아지는 줄도 모르고 일회용 종이컵을 세게 구겨 쥐었다.임형섭의 관자놀이가 미세하게 뛰었다. 겉으로는 간신히 침착한 얼굴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속에서는 짙고 어두운 충동이 걷잡을 수 없이 자라나고 있었다.세상에 완벽한 성인군자는 없었다.임형섭은 늘 말끔한 수트 차림에 단정하고 점잖은 얼굴로 사람을 대했다. 부드럽고 예의 바른 태도도 어디까지나 남이 선을 넘지 않을 때만 가능한 일이었다.지금 임형섭의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뿐이었다.장민현을 죽이고 싶었다.민하윤이 그 순간 얼마나 무서웠을지 얼마나 절망했을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민하윤이 도움을 청하지도 못한 채 버텼을 시간을 떠올리자 임형섭은 숨이 턱 막혔다.‘주민혁이 조금만 늦었더라면...’임형섭은 민하윤을 너무 잘 알았다.‘하윤의 성격이라면...’임형섭은 그 뒤를 끝까지 생각하지 못한 채 숨을 길게 들이켰다.그리고 본래 형태도 알아볼 수 없게 찌그러진 종이컵을 조용히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경찰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는 주민혁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이제 주민혁 씨 차례입니다. 말리다가 주먹이 나간 건 이해하더라도 왜 사람을 시켜 폭행하게 했습니까?”주민혁은 느슨한 태도를 유지한 채 경찰 질문에도 태연하게 대응했다.“제 경호원이 사람을 때린 건 잘못이죠. 그런데 그런 말씀 하실 거면 증거부터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주민혁은 피식 웃었다.“직접 물어보시죠. 제가 시켜서 때렸다고 했습니까? 그리고 표현이 너무 거칠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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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9화

붉은 테일램프를 번쩍이던 롤스로이스는 이내 사거리 너머로 사라졌다.민하윤은 등을 돌린 채 바람 속에 서 있었다.머리끝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명원시의 4월은 제법 날이 풀렸지만 밤공기는 여전히 차가웠고, 쌀쌀한 바람은 어둠 속에서 낮고 쉰 숨소리처럼 휑한 벌판을 훑고 지나갔다.임형섭은 한동안 가늘고 여린 민하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끝내 손을 뻗어 민하윤의 어깨를 붙잡았다.“집까지 데려다줄게.”상의하는 말투가 아니었다.임형섭은 곧바로 조수석 문을 열고, 민하윤의 어깨를 가볍게 눌러 차에 태웠다.민하윤은 입술만 꾹 다물었다.민하윤은 임형섭이 이렇게까지 싸늘한 표정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차는 어두운 도로 위를 묵묵히 달렸다.앞에서 끼어들려는 차 한 대가 불쑥 들어왔다.임형섭은 표정을 굳은 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상대가 급히 핸들을 왼쪽으로 꺾는 바람에 두 차는 거의 스치듯 지나갔다.“미친 거 아냐? 한 번 끼워 주면 죽기라도 하는 거야?”끼어들던 차 운전자가 반쯤 내린 창문 너머로 욕설을 퍼부었다.임형섭은 차갑게 한 번 쳐다보더니, 입술만 달싹이면서 욕을 돌려줬다.민하윤은 놀란 얼굴로 고개를 돌려 임형섭을 봤다.임형섭은 속에 응어리가 잔뜩 맺혀 있었다.속도계 바늘도 어느새 제한속도 바로 아래까지 올라가 있었다.민하윤은 점점 더 불편해졌다.차 안은 너무 조용했지만 그 침묵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하윤아.”임형섭이 갑자기 길가에 차를 세웠다.임형섭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마치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 같았다.“아무도 생각하지 말고 정말 네 마음만 생각해서 대답해 줘.”임형섭은 한 손목을 핸들에 걸친 채 몸을 틀어 민하윤을 똑바로 바라봤다.“명원시를 떠나는 건 어때? 해외로 나가서 살 생각은 없어?”‘명원시를 떠난다고... 해외로 간다고?’“누구 눈치도 보지 말고, 돈 걱정도 하지 마.임형섭은 오래 품고 있던 말을 한꺼번에 꺼냈다.“지금 너에게는 기회가 있어. 너만 원하면 렉스톤에 있는 은행으로 옮길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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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0화

임형섭은 코트 주머니를 한 번 더 더듬었다. 담배 한 개비라도 꺼내 물고 싶었다. 사실 임형섭은 담배가 타는 냄새를 질색하는 사람이었다. 남이 피우는 담배 냄새조차 싫어하는 사람이었다.차는 다시 빗속으로 들어갔고, 두 사람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르네 별장 앞까지 왔다.와이퍼가 미친 듯이 흔들렸고 폭포처럼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던 민하윤은 입술을 깨물며 조용히 문손잡이에 손을 올렸다.“하윤아, 우산...”임형섭이 민하윤을 불러 세우더니 우산을 건네며 애써 입꼬리를 올린 채 말했다.“여기까지만 데려다줄게. 밖에 바람도 세고 비도 많이 와. 조심해서 들어가.”어른이 된 뒤로는 어떤 말은 끝까지 꺼내지 않아도 다 알아듣게 된다.민하윤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차 안의 희미한 조명이 민하윤의 얼굴에 내려앉자, 민하윤은 유난히 더 예뻐 보였다.임형섭은 딱 한 번만 민하윤을 더 바라보고는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정면만 똑바로 바라봤다. 창밖의 거센 빗줄기를 핑계 삼아 더는 보지 않겠다는 듯한 얼굴이었다.민하윤이 문을 여는 순간, 바람을 타고 퍼붓는 빗방울이 비스듬히 들이치며 민하윤이 걸친 코트까지 단번에 적셔 버렸다.민하윤은 잠깐 멈칫하더니, 몸에 걸친 임형섭의 코트를 벗으려 했다.임형섭 목울대가 한 번 크게 움직이더니 끝내 못 참고 말했다.“그냥 입고 가. 하윤아, 비가 너무 많이 와. 천천히 들어가고...”민하윤은 오른손을 들어 엄지를 아래로 한 번 접었다.[고마워요.]임형섭은 민하윤이 우산을 펼치는 순간, 더는 숨기지 않고 말했다.“하윤아, 난 늘 여기 있을 거야. 너만 원한다면, 네가 손가락 한 번만 움직이면 난 다시 네 곁으로 갈 수 있어. 네가 하도진을 사랑하든 아니든, 난 상관없어.”민하윤은 빗속에 선 채, 차 안의 임형섭을 내려다봤다.비가 종아리를 적셨고 발밑 물웅덩이는 가느다란 발목까지 차오를 만큼 빗물을 머금고 있었다.민하윤은 고개를 끄덕이지도 그렇다고 받아들이지도 않았다.임형섭이 먼저 시선을 거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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