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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사랑한다고 말해줘: Chapter 341 - Chapter 350

363 Chapters

제341화

고은율의 손이 휴대폰 화면 위에서 잠시 멈췄다.하지만 끝내 번호를 누르지는 못했다.카메라는 고은율을 정면으로 비추고 있었다.아름다운 긴 머리는 아름다운 폭포처럼 가슴 앞으로 흘러내렸고 오프숄더의 새하얀 드레스 아래로 드러난 여린 어깨는 티 없는 옥처럼 하얬다.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이상할 만큼 긴장한 채, 고은율이 다음에 무슨 행동을 할지 숨죽여 지켜봤다.고은율은 무명지에 끼워진 손가락에 잘 맞지도 않는 반지를 한참 내려다봤다.그러다가 마침내 마음을 굳힌 듯 번호 하나를 눌렀다.통화 연결음이 스피커폰으로 스튜디오 전체에 울려 퍼졌다.라이브 화면 위로는 댓글이 미친 듯이 쏟아졌다.거의 백만 명에 가까운 시청자들이 휴대폰을 붙잡고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모니터 앞에 선 감독은 긴장한 듯 침을 삼키며 인터콤에 대고 말했다.“카메라 더 붙여! 반지 한 번 더 잡아.”멀리 주해시에 있던 하도진은 다리를 길게 포갠 채 앉아 있었다.정장 안주머니 속 휴대폰이 계속 진동하고 있었지만 하도진은 아무 말도 없이 화면만 바라봤다.검은 눈동자 속으로 무슨 생각이 스쳐 가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형, 전화 안 받을 거야?”주민혁이 못된 웃음을 지었다.주민혁은 몸을 숙여 테이블 위 잔을 집어 들고 위스키를 한 모금 넘겼다.얼음이 이 사이에서 잘게 부서졌고 주민혁의 목울대가 천천히 움직였다.“아니면 고은율이 형한테 그 정도로 중요한 사람은 아닌 거야? 그냥 예쁘니까 곁에 데리고 있는 거야?”하도진은 눈을 가늘게 떴다.밝아진 휴대폰 화면에는 고은율이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떠 있었다.하도진은 왼손을 들어 미간을 한 번 눌렀다.그러더니 목소리를 약간 낮춘 채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스태프들 뒤에 서 있던 민하윤은 스튜디오를 가득 채운 스피커로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었다.낮고, 살짝 쉰 듯한 그 목소리는 분명히 하도진일 터였다.“응... 지금 통화 괜찮아?”고은율은 휴대폰을 꽉 쥔 채 물었다.“지금 촬영 중인데 전화를 받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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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2화

“91, 55, 80.”하도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거의 반사적으로 답을 내뱉었다.동시에 고은율이 미리 적어 둔 수치도 대형 화면에 그대로 떠올랐다.민하윤은 걸음을 멈췄고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민하윤은 끝내 뒤돌아보지 않았지만 사회자의 달콤한 목소리는 또렷하게 귀에 꽂혔다.“정답과 완전히 일치하네요.”그 순간, 민하윤은 아랫배가 뒤틀리듯 아팠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민하윤은 본능적으로 옆에 있던 문을 짚고 천천히 주저앉았다. 한참을 버티다가 통증이 눈앞을 까맣게 덮치는 순간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의식이 끊기기 직전, 민하윤의 시선에 임형섭이 들어왔다.임형섭은 얼굴을 굳힌 채 다급하게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었고 입은 계속 민하윤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하도진은 전화를 끊고 맞은편에서 이 상황을 흥미롭게 구경하던 주민혁을 차갑게 노려봤다.“고은율이 나한테 전화할 거라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주민혁은 느긋하게 웃었다.“고은율은 몸매가 진짜 좋더라. 얼굴은 또 그렇게 청순하게 생겨서 더 의외였어.”하도진은 순간 말을 멈췄다.그러다가 무언가 번쩍 스치듯 떠오르자 벌떡 일어섰다.“아니야. 이건 처음부터 전부 네가 짠 판이었구나. 이성 친구한테 전화하는 것도 무슨 질문이 나갈지도 다 미리 정해 둔 거지.”주민혁은 어깨를 으쓱했다.“그래도 고은율이 헛수고하게 만들지는 않았네.”하도진은 피가 머리끝까지 치솟는 기분이었다.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에야 간신히 멘탈을 잡았다.하도진은 그대로 문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나섰다.하도진이 따지듯 고은율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촬영장에서는 종방 기념 뒤풀이가 한창이었다.고은율은 얇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매니저가 급히 숄을 둘러 줬다.고은율은 잠깐 망설이다가 사람들 틈을 피해 바람 부는 쪽으로 걸어 나가 전화를 받았다.“도진아, 오늘 고마웠어.”“고은율, 프로그램 진행 방식을 미리 알고 있었던 거야?”하도진은 전화가 연결되자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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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3화

임형섭은 입술을 꾹 다문 채 민하윤의 손끝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이는 걸 봤다. 그러자 임형섭은 순식간에 온몸이 굳었다.임형섭은 조심스럽게 민하윤을 불렀다.“하윤아.”차가운 수액이 핏줄을 타고 민하윤의 몸속으로 흘러들자, 왼팔에는 묘하게 설명하기 힘든 통증이 느껴졌다.민하윤은 입술을 살짝 달싹이며 힘겹게 눈을 떴다. 그리고 임형섭의 긴장과 걱정이 가득한 시선과 마주쳤다.“하윤아, 어디 불편한 데 또 있어?”임형섭은 벌떡 일어나 민하윤의 손을 덥석 잡았다. 얼굴에는 초조함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민하윤은 새하얀 병실 안을 천천히 둘러봤다. 그러고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시선이 자연스럽게 맞잡힌 두 사람의 손으로 내려갔다. 민하윤은 아무렇지 않은 척 손을 천천히 빼냈다.임형섭은 숨을 깊게 들이켠 뒤 재빨리 고개를 돌려 눈가를 손끝으로 훔쳤다.‘왜 쓰러진 걸까? 단순한 저혈당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최근 민하윤에게는 감기나 몸살 같은 증상은 전혀 없었다. 굳이 몸이 불편했던 걸 꼽자면 생리 날짜가 다가오면서 아랫배가 찌르듯 아팠고 그때마다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는 것뿐이었다.그런데 임형섭의 반응은 유난히 심상치 않았다. 설마 자신이 큰 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불길한 생각까지 들었다.민하윤은 미간을 찌푸리며 힘겹게 손을 들어 수어를 했다.[제가 왜 병원에 있는 건 가요?]임형섭은 주먹을 천천히 말아 쥐었다. 그러고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꺼냈다.“하윤아, 축하해. 네가 엄마가 될 거래.”민하윤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민하윤은 고운 눈썹을 찌푸린 채 입술을 달싹였지만 역시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진짜야. 지금 3주 됐어.”임형섭은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주먹을 꽉 쥔 손등에는 핏줄이 선명하게 불거져 있었다. 얼굴도 핏기 없이 창백했다.“의사 말로는 네가 감정 기복이 너무 컸고 오랫동안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아서 실신한 거래. 그리고... 유산 조짐도 조금 보인다고 했어.”유산 조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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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4화

민하윤이 바라던 건 그런 삶이었다.복잡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평범한 행복을 원했다. 아이가 자라는 걸 지켜보고,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도 함께 천천히 나이 들어 가는 삶이 전부였다.그런데 운명은 엉뚱하게 흘러 민하윤을 하도진과 결혼하게 했다.민하윤이 그리던 미래와는 달라도 너무도 달랐다.부부가 되었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사랑이 없었고 하도진도 다정한 사람이 아니었다. 말투는 독했고 성격은 차갑고 무심했다. 심지어 짜증도 많았고 집착도 심했다. 민하윤이 꿈꾸던 온화하고 인내심 많은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다.비록 200평짜리 저택에 살고 지하 주차장에는 고급차가 줄지어 서 있으며 세 끼 식사도 민하윤이 손 하나 까딱할 필요 없이 차려졌지만 민하윤은 단 한 번도 행복하다고 느껴 본 적이 없었다.행복이라는 말은 민하윤에게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물론 열일곱 살 이전까지는 분명히 있었다.양부모중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한 사람은 크게 다친 뒤부터 모든 게 무너졌다.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친부모, 제 욕심밖에 모르는 양여동생에 정 하나 없는 약혼자, 그런 상황에서 민하윤에게 생긴 아이는 세상에 단 하나 남은 혈육이었다.민하윤과 피를 나눈 사람이었다.민하윤은 천천히 고개를 숙였고 손이 저도 모르게 아랫배 위에 올라갔다. 눈가에는 금세 눈물이 차올랐지만 민하윤은 가까스로 울음을 삼켰다.‘그런데 아가야, 너는 참 늦지 않게도 일찍 왔구나... 네 아빠는 엄마를 사랑하지 않아. 엄마는 너한테 행복한 가정을 줄 수가 없어.’민하윤은 누구보다도 엄마의 사랑을 갈망하며 자랐다. 그래서 언젠가 자신이 엄마가 되는 날이 오면 가진 걸 전부 다 바쳐서라도 아이를 사랑하겠다고 남몰래 다짐했었다.민하윤이 겪은 아픔과 상처와 눈물만큼은 절대 자신의 아이에게 물려주지 않겠다고 맹세했다.“하윤아...”임형섭은 끝내 말을 다 잇지 못했다.축하한다는 말은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그렇다고 민하윤이 조금이라도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있기도 힘들었다.민하윤은 급히 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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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5화

하도진은 아침부터 도 시장이 묵고 있는 호텔 앞을 지키고 있었다.아침 일곱 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 도 시장의 비서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나오다가 하도진과 마주쳤다. 비서는 예상 못 했다는 듯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하 대표님, 여기서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하도진은 곧장 본론을 꺼냈다.“전해 주십시오. 회의 시작 전에 도 시장님의 시간을 딱 15분만 쓰고 싶습니다.”비서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객실 쪽을 한 번 흘끗 봤다.“하 대표님, 오늘은 타이밍이 적합하지 않습니다. 도 시장님께서 지금은 뵙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말씀은 분명히 전해 드리겠습니다. 회의 끝난 뒤로 미루시면 어떨까요?”하도진의 손에는 두툼한 서류봉투가 들려 있었다.하도진의 차갑게 굳은 얼굴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하도진은 입술만 가볍게 다문 채, 눈길도 피하지 않고 그 자리에 버티듯 서 있었다.두 사람은 그렇게 잠시 대치했다.난처해진 비서는 결국 멀찍이 물러나 전화를 걸었다.잠시 뒤 돌아온 비서는 목소리를 한층 낮췄다.“하 대표님, 잠깐만 말씀 좀 나누시죠.”하도진은 비서의 얼굴을 똑바로 보며 되물었다.“도 시장님이 저를 안 보려는 겁니까? 아니면 지금은 못 보는 겁니까?”그러더니 하도진은 객실 번호를 의미심장하게 한 번 훑었다.“방 안에 귀한 손님이라도 있나 보죠?”하도진이 하 마지막 말에는 유독 힘이 실렸다.비서는 순간 식은땀을 훔치며 답을 망설였다.하도진은 더 이상 돌리지 않았다.“저도 도 시장님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서북 프로젝트 조건은 에스티 그룹 산하 화성 테크가 전부 충족합니다. 주해 회의는 결국 정부와 기업이 서로 연결되는 자리에 불과합니다. 화성 뒤에는 에스티 그룹의 자금력과 기술력이 있습니다.”하도진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저는 이 프로젝트를 원합니다. 더 이상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습니다.”비서는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휴대폰을 귀에 댔다.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전화를 끊었다.그제야 하도진은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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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6화

[지난 일에 더는 매달리지 않기로 했다. 지금까지 겪어 온 모든 일은 결국 운명이 건넨 선물이었다. 그리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을 받았다.]‘선물?’하도진은 그 문장을 보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민하윤이 또 무슨 선물을 받았다는 건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지난번 술에 잔뜩 취해 들어왔을 때도 그랬다.원래 장신구라면 거의 하지 않던 민하윤 손목에 어느 명품 팔찌 하나가 채워져 있었다. 잔잔한 다이아가 박힌 별 두 개가 크고 작게 나란히 달려 있었고 끝에는 이니셜 장식까지 달려 있었다.그런 팔찌 하나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1,200만 원은 들었다. 완전한 개인 맞춤 제작품이었다.민하윤이 하도진의 돈으로 그런 팔찌를 샀을 리는 없었다.결론은 하나뿐이었다.어떤 늑대 같은 자식이 민하윤에게 선물했다는 뜻이었다.하도진은 머리를 굴려도 이니셜이 무슨 뜻인지 도저히 알아내지 못했다.결국 화풀이하듯 민하윤을 단단히 혼내고 그 팔찌도 그대로 압수해 버렸다.지난번엔 팔찌였다.‘그럼 이번에는 또 뭘 받았다는 걸까?’민하윤은 담요를 두른 채 창가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었다.2층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민하윤이 처음으로 봄을 실감하게 할 만큼 눈부셨다. 끝도 없이 펼쳐진 초록색의 나무와 풀들은 명원시 습지 공원 못지않게 빽빽했고 마당 화단에는 튤립이 가득 심겨 있었다. 벚나무 가지에도 아직 자잘한 꽃잎들이 다 떨어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민하윤은 손을 들어 아랫배를 살며시 감쌌고 아래를 내려다보는 눈빛은 봄물처럼 부드럽고 잔잔했다.그때 창틀 위에 올려 둔 휴대폰이 갑자기 진동했다.민하윤은 잠금을 풀고 화면을 봤다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설명해 봐. 무슨 선물인데? 어느 늑대 같은 놈이 또 뭘 줬어?]하도진은 캡처 화면 하나를 같이 보냈다.민하윤은 무심코 눌렀다가 그대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입을 틀어막지 않았으면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다.화면에는 익숙한 아이디의 계정 홈이 떠 있었다.‘하도진이 어떻게 이 계정을 알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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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7화

하도진은 답장 하나 없는 대화창을 내려다보다가 차갑게 얼굴을 굳힌 채 운전석의 서명인을 힐끗 봤다.“민하윤은 예능 촬영하러 갔어?”그러자 서명인은 순간 멈칫했다.“그 예능은 이미 촬영 끝난 거 아닙니까? 제작진이 벌써 시즌2 준비에 들어갔다고 들었습니다. 출연진도 전부 교체된 것 같고요.”서명인은 잠깐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요 며칠 내내 주해에서 하도진과 함께 있었고 그룹 업무도 원격으로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서명인은 예능 프로젝트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하도진은 말없이 휴대폰만 만지작거렸다.하도진의 머릿속은 복잡했다.그렇다고 하도진은 민하윤이 바람을 피웠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자신을 배신할 짓도 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그런 믿음은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깊어서 생긴 건 아니었다.다만 민하윤은 민하윤 나름의 자존심과 품위를 끝까지 지키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일주일은 일 년처럼 길게 느껴졌다.하도진은 거울 앞에 서서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몸에 꼭 맞는 수제 정장은 긴 다리와 잘록한 허리, 넓은 어깨를 더욱 또렷하게 살려 주고 있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패션 잡지에서 막 튀어나온 남자 모델 같았다.서명인은 얼음을 띄운 아메리카노를 건네고 짐도 직접 트렁크에 실었다.“대표님 지시대로 명원시로 돌아가는 가장 빠른 항공편 예약해 뒀습니다. 오늘 밤 9시 탑승이고, 도착은 새벽쯤 될 겁니다.”하도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주민혁은?”“아직 주해에 있습니다. 다만 언제 명원시로 돌아가는지는 확인이 안 됐습니다.”하도진이 묵는 호텔은 정부 청사와 멀지 않았다. 차는 분수 광장 앞에 매끄럽게 멈춰 서자 뒷좌석에서 눈을 감고 있던 하도진이 천천히 눈을 떴다. 검고 깊은 눈빛은 날이 서 있었다.서북 프로젝트는 에스티 그룹 입장에서는 있으면 좋고 없어도 상관없는 정도였다.못 따낸다고 해서 손해를 보는 건 아니었다.솔직히 따낸다고 해도 정부 협력 사업이라는 게 원래 큰돈이 되는 판은 아니었다.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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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8화

하도진이 고개를 들어 대형 스크린을 바라보자 에스티 그룹의 이름은 분명히 올라가 있었다.서북 프로젝트는 정말 하도진의 손에 들어왔다.그런데 주민혁 쪽에도 함께 돌아갔다.역시 도 시장은 관가에서 오래 굴러온 사람이었다.머지않아 명원시로 자리를 옮길 사람답게 에스티 그룹도 주원 그룹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도 시장은 결국 누구 편도 들지 않고 누구도 적으로 돌리지 않는 쪽을 선택한 셈이었다.서북 프로젝트는 결국 에스티 그룹과 주원 그룹, 두 곳에 나뉘어 가졌다.하도진은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회의장 입구 쪽, 조명이 닿지 않는 그늘에 키 큰 남자가 비스듬히 서 있었다.다름 아닌 주민혁이었다.주민혁은 이 결과가 전혀 뜻밖이 아니라는 듯, 눈썹을 치켜올리고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두 손을 펼쳐 보였다. 마치 먼저 들어가 보라는 듯한 몸짓이었다.짙은 남색 정장을 입은 여자 사회자가 다시 차분하게 순서를 이어 갔다.선정된 기업 대표들과 관계자들이 차례로 무대에 올라 협약서에 서명해 달라는 안내였다.하도진은 숨을 길게 들이마신 뒤 직인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러자 주민혁도 한 발 뒤에서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하도진은 억지로 웃음을 걸치고 관계자들과 악수했다.수많은 카메라 플래시와 취재진의 시선이 쏟아지는 가운데 하도진은 서북 프로젝트 의향 계약서에 서명했다.두 사람은 앞뒤로 무대에서 내려왔다.그 순간 주민혁이 하도진의 귓가에 입술을 바짝 붙이며 낮게 말했다.“형, 내가 진작 말했잖아. 형이 원하는 건 전부 내가 가로챈다고... 이번에는 형이 운 좋았던 거야. 형이 도 시장의 약점을 잡았잖아. 그게 아니었으면 서북 프로젝트를 형한테 절반이나 떼어 줄 일은 없었거든.”하도진은 차갑게 웃었다.“서북 프로젝트 따내면 뭐가 달라져? 주원 그룹 안에서 네가 발언권이 생길 것 같아?”그러자 주민혁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어둠 속에서 하얀 이가 드러났다.“그 말 못 하는 여자 말이야. 예전에 약혼자 하나 있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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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9화

민하윤의 얼굴이 한순간 새하얗게 질렸다. 가라앉아 있던 기억이 하나둘 다시 떠올랐다.새해 첫날이었다. 민하윤은 직접 지방 출장을 지원했고 공항에서 탑승을 기다리다가 오랜만에 SNS를 들여다봤다.그러다 우연히 민희수의 게시물을 보게 됐다. 민씨 가문의 부모와 민희수 부부, 네 사람이 식탁에 둘러앉아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었다. 민희수는 거기에 문장까지 덧붙여 놨다.[새해 최고의 선물은 이미 뱃속에 있어요. 우리 가족의 첫 번째 가족사진.]4월의 명원시에는 꽃이 한창이었다. 목련도 피고 온갖 색의 튤립도 만개했고 분홍빛 벚꽃도 거리와 공원을 가득 채웠다.민희수는 그 뒤로도 한 번 더 사진을 올렸다. 셀카 속의 민희수는 유난히 지쳐 보였고 민하윤은 그때만 해도 임신 초기라 컨디션이 안 좋은 줄로만 알았다.그제야 민하윤은 전부 떠올렸다.민하윤은 눈빛에 비친 놀라움을 거두고 차가운 표정으로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러고는 본능적으로 올려뒀던 손을 아랫배에서 슬며시 떼어 냈다. 민희수가 눈치챌까 봐서였다.“언니, 제발 도와줘. 나 진짜 잘못했어. 그때 언니한테 그렇게 못되게 굴면 안 됐어. 언니는 내 언니잖아. 설마 엄마 아빠랑 나를 모르는 척할 거야?”민희수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눈물범벅이 되어 울부짖었다. 입술에는 핏기 하나 없었다.“진서우 그 개자식이 날 때렸어.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그래서 내 아이도 없어졌어.”[언니? 이제 와서 내가 민씨 가문 사람으로 보이는 거야?]민하윤은 싸늘하게 웃으며 손짓했다.[우리 생일은 하루 차이였어. 그런데 내가 민씨 가문에서 생일상 한 번 받아 본 적 있었어?]그러자 민희수는 표정이 확 굳어졌다. 목까지 올라온 말이 막힌 듯 한동안 입만 달싹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그럼 엄마 아빠도 그냥 버릴 거야? 진서우 때문에 지금 집안이 완전히 망하게 생겼어. 처음에는 자금이 잠깐만 필요하다면서 아빠한테 60억을 빌려 갔는데 그 인간이 뒤에서 우리 집 장부에 있던 돈을 전부 빼돌렸어.”민희수는 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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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0화

민희수는 민하윤의 물기가 어릴 정도로 하얗고 부드러운 피부를 악착같이 노려봤다.‘이렇게 땅값 비싼 고급 저택에 살면서 명원시 상류층 여자들도 감히 넘볼 수 없는 남자와 결혼하다니. 민하윤이 대체 뭐라고... 말도 못 하는 주제에 왜 이렇게 편하게 잘살고 있는 건데? 오히려 민하윤이 진서우한테 시집가야 했어. 겉보기만 번지르르한 그 짐승 같은 놈한테 맞고 또 맞아서 온몸이 멍투성이가 되고 아이까지 잃어야 했다고! 원래 그 결혼은 민하윤의 몫이었잖아...’그런데 왜 자기가 이 고통을 다 떠안아야 하고 민하윤은 이렇게 편하게 살아야 하느냐는 생각에 민희수는 머릿속에 질투가 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 올랐다.민희수는 눈이 시뻘게진 채 성큼성큼 현관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민하윤의 코앞에 손가락을 들이대며 이제는 아예 가면도 벗어 던졌다.“언니, 병원에 누워 있는 그 늙은것들이 언니의 친부모지 나랑 무슨 상관인데? 끝까지 모르는 척하겠다는 거야? 그 인간들은 진작 유언장 써 놨어. 민씨 가문의 부동산도, 회사 지분도, 돈도, 차도 다 나한테 준다고...”민희수는 이를 악물며 내뱉었다.“나는 그 인간들이 당장 죽어 버리기만 기다리고 있었어. 그래야 재산 정리해서 해외로 튈 거 아니야. 진서우 그 쓰레기가 진 빚을 왜 내가 갚아야 해?”민하윤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민희수가 그저 제멋대로 자라 버린 줄만 알았지 짐승만도 못한 인간일 줄은 몰랐다.민성현과 송해정은 피 한 방울 안 섞인 입양한 딸을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큼 끔찍이 아꼈다. 민희수가 하늘의 별이라도 갖고 싶다고 하면, 별이라도 따서 바칠 사람들이었다.민하윤은 이 모든 게 너무도 비참하게 느껴졌다.민성현과 송해정이 그렇게 금이야 옥이야 키운 딸이 자기들을 늙은것들이라고 욕하고 빨리 죽어서 유산이나 남기라고 저주하는 걸 들으면 무슨 생각이 들겠는가.민하윤은 숨을 길게 들이켰다.병원에 누워 있다는 부모님이 오히려 조금은 가엾게 느껴졌다. 지금 당장 여기 와서 자기들이 어떻게 딸을 키워 냈는지 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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