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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사랑한다고 말해줘: Chapter 391 - Chapter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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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1화

민하윤은 갑자기 손을 들어 하도진을 향해 소리 없는 수어를 쏟아 냈다.[설명이라고요? 도진 씨, 당신이 말하는 설명이라는 건 결국 거짓말뿐이잖아요.][저를 바보처럼 가지고 노는 게 그렇게 재밌어요? 고은율은 서북에서 두 달이 넘게 촬영했죠. 당신은 5월에 서북으로 갔고 정부랑 협력 프로젝트를 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실제로는요? 매일 고은율 곁에 있었잖아요.][저랑은 영상통화를 하면서 고은율의 호텔에는 또 따로 갔죠. 둘이서 뭘 했는지 내가 굳이 입 밖에 꺼내야 해요? 우정이 얼마나 순수하면 산부인과까지 같이 가는 거예요?]민하윤은 미친 듯이 주먹으로 하도진의 가슴을 내리쳤고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민하윤의 주먹은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빗방울처럼 가볍고 연약했지만 그 주먹은 쉴 새 없이 하도진의 몸과 가슴 위로 떨어졌다.“그럼 너는? 서북에 가면서 왜 나한테 말도 안 했어? 고은율이 약 때문에 호르몬이 엉망이 돼서 내분비 검사를 받으러 산부인과에 간 거라고 하면 믿을 거야?”하도진은 민하윤의 주먹을 그대로 받아 내다가 결국 손목을 붙잡았다.목소리는 낮아졌고 숨은 거칠었지만 하도진은 어떻게든 참아 내고 있었다.“넌 한밤중에 남자 동료랑 같이 산부인과에 간 건 또 무슨 뜻인데? 어디가 아팠어?”하도진은 싸우고 싶지 않았다.그런데 주민혁이 했던 말이 자꾸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가슴속에서는 불덩이 하나가 계속 타오르고 있었다.민하윤은 싸늘하게 웃으며 다시 손을 들어 수어를 했다.[저요? 저도 호르몬 이상이었으니까요.]“하윤아, 그런 식으로 막말하지 마. 괜히 고집부리지 말고 있는 일만 놓고 얘기하자. 응?”하도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깊고 어두운 시선으로 민하윤의 얼굴을 바라봤다. 겨우 2주 못 본 것뿐인데도 민하윤은 낯설 만큼 멀어져 있었다.[그래요. 당신은 첫사랑 여자 친구랑 산부인과에서 내분비 검사받아도 되고 남자 동료가 저를 산부인과 데려가서 내분비 검사 받게 해 주는 건 말도 안 된다는 거예요?]하도진은 얼굴이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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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2화

“정말 끝까지 이혼하겠다는 거야?”포기하지 못한 하도진이 다시 물었다. 민하윤의 마음을 한 번만 더 확인하고 싶었다.‘혹시라도... 혹시 이게 순간 충동적인 오기였다면...’하지만 민하윤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민하윤은 여전히 하도진의 발치에 무릎 꿇은 채, 체면도 자존심도 전혀 남지 않은 모습이었다. 하도진에게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민하윤은 자기 모든 걸 전부 내려놓은 상태였다.하도진은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렸다.눈가에 맺힌 물기가 진짜 눈물이 되어 떨어질까 봐서였다.하도진은 민하윤을 발치에서 끌어올리듯 안아 세우고 이를 악문 채 말했다.“민하윤, 지금 네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 네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아냐고?”하도진은 멍한 표정으로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그러다가 하도진은 갑자기 웃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렸다.“그래. 어차피 우리 사이 자체가 원래부터 사고였지. 아니, 사고도 아니고 재난이었나. 끔찍하기 짝이 없는 재난 말이야.”민하윤은 눈을 한 번 깜빡였다.요염하고도 예쁜 얼굴에는 아무 감정도 읽히지 않았다.“이혼 합의서는 내가 서명할게. 네가 지금 어디에서 지내든 신경 안 써. 비서를 통해서 서명한 서류를 네가 가장 믿는 그 선배한테 보내 줄 테니까.”민하윤의 긴 속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하지만 그런 작은 변화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하도진이 드디어 물러섰다.정말 이혼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민하윤은 드디어 자유를 되찾는 셈이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민하윤은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이제 만족해?”하도진은 손으로 민하윤의 턱을 들어 올린 채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눈매도 곧고 예쁜 콧대도 탱탱하고 촉촉한 입술이 보였다.하도진은 민하윤의 얼굴을 전부 자기 머릿속에 새겨 넣고 싶었다.민하윤은 귓불을 깨무는 걸 좋아했고 쇄골에 입 맞추는 것도 좋아했다.그뿐이 아니었다.하도진은 민하윤이라는 여자를 좋아하는 이유가 너무 많았다.민하윤은 묘하게 사람을 홀리는 얼굴이 있었다.요염하지만 가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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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3화

민하윤은 무거운 걸음으로 길가까지 나가 택시를 잡았다.휴대폰에 목적지를 찍어 기사에게 보여 줬다.지벤 산부인과 전문병원.기사는 미터기를 켜고 요금을 올리기 시작했다.그러다 백미러 너머로 민하윤을 의미심장하게 한 번 바라봤다.민하윤은 얼굴빛이 살짝 변했다.살짝 불러온 아랫배 위에 손을 얹은 채, 반쯤 내려간 차창에 기대었다.여름바람은 시원하기는커녕 뜨겁기만 했고 민하윤의 이마 앞머리는 사방으로 흩날렸다.“여긴 차 세우면 안 됩니다. 앞에서 내리세요.”기사는 미터기를 끄며 말했다.민하윤은 계기판 요금을 한 번 확인한 뒤 지갑에서 지폐 두 장을 꺼내 기사에게 건넸다.그리고 혼자 뙤약볕 아래를 거의 1킬로미터나 걸어 병원 로비로 들어섰다.차가운 냉기와 소독약 냄새가 한꺼번에 얼굴을 덮쳤다.지벤 전문병원은 상류 인사들만 드나드는 사립 병원이었다.민하윤이 처음 이곳에 산모 등록을 해 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공립 병원처럼 혼인관계증명서 같은 서류를 엄격하게 요구하지 않았고 사립 병원 특유의 융통성이 있었다.민하윤은 접수창구로 가 유 의사의 진료를 예약했다.그런데 거액의 접수비를 보는 순간 갑자기 기운이 빠졌다.이제는 직장도 없고 하도진과도 완전히 끊겼으니 앞으로 나가는 돈은 전부 자기 비상금에서 해결해야 한다.손에 쥔 돈만 까먹으면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는가.민하윤은 영수증을 챙기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진료실로 올라갔다.민하윤은 휴대폰에 글자를 입력해 배가 단단하게 뭉치고 가끔 쥐어짜듯 아픈 증상을 의사에게 설명했다.“이런 증상이 얼마나 됐어요?”의사는 미간을 좁히며 커튼을 젖히고 민하윤더러 침대에 눕도록 했다.그러고는 손으로 배를 눌러 보며 위치를 옮겨 가며 몇 번 더 살폈다.그러다가 갑자기 표정이 굳더니 소독제를 짜서 손을 닦으며 말했다.“일단 기본 검사 몇 가지부터 하겠습니다. 아마 입원해서 지켜봐야 할 수도 있어요.”순식간에 긴장한 민하윤은 옷자락을 다급히 정리하고 벌떡 몸을 일으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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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4화

민하윤은 모든 검사를 마친 뒤, 무인 발급기에서 검사 결과를 전부 뽑아 들었다.민하윤은 맨 위에 놓인 검사지를 빠르게 훑어내렸다.그런데 가장 첫 장, 초음파 소견란에 적힌 한 줄을 보는 순간 심장이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자궁 내 임신, 태아 발달 정지.민하윤은 자신이 어떻게 다시 진료실까지 돌아왔는지도 알지 못했다.의사는 두툼한 검사 결과지를 한 장씩 넘겨 보더니, 마치 이미 짐작하고 있던 사실을 확인한 사람처럼 민하윤을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연민이 서려 있었다.“민하윤 씨, 정말 안타깝지만...”의사는 몇 초쯤 말을 멈췄다가 서류를 정리해 파일에 꽂으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아기가 멈췄습니다. 시간 괜찮으실 때 최대한 빨리 관련 절차 진행하시고 소파 수술 받으셔야 해요.”민하윤은 멍한 눈빛으로 의사를 바라봤다.그러다 다급하게 가방을 뒤져 아까 받은 아홉 칸짜리 4D 초음파 사진을 꺼냈다.민하윤은 손이 떨릴 정도로 필사적으로 수어를 쏟아 냈다.[거짓말이죠?][아까도 웃고 있었잖아요?][어떻게 멈출 수가 있어요? 2주 전에 서북 병원에서는 아기가 잘 자라고 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왜 갑자기 없어진 거예요?]의사는 민하윤이 쏟아 내는 수어를 알아보지 못했다.다만 손에 들린 4D 사진을 한번 바라봤다.22주밖에 안 된 아기인데도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예뻤다.정말 태어났다면 얼마나 예뻤을까 싶을 정도였다.“민하윤 씨, 마음은 충분히 이해해요. 너무 흥분하시면 안 됩니다.”의사는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증상 없이 태아가 멈추는 경우는 생각보다 흔합니다. 이런 사례가 적지 않아요. 공립 병원으로 가셔서 소파 수술 받으세요. 이곳의 산모 기록은 제가 정리해 드릴게요.”민하윤은 결국 두 손을 힘없이 내렸다.바람 빠진 풍선처럼 마음 한가운데가 텅 빈 느낌이었다.무슨 감정인지조차 설명할 수 없었다.민하윤은 다시 그 4D 사진을 조심스럽게 가방 안에 넣었다.그리고 아주 천천히 진료실을 빠져나왔다.민하윤은 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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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5화

민하윤은 혼자 택시를 타고 자신이 세 들어 사는 아파트 단지로 돌아왔다.정신이 반쯤 나간 채 4층까지 올라갔는데 집 앞에는 웃통을 벗은 남자들이 떼로 몰려 있었다.민하윤은 놀라서 가방을 꼭 움켜쥐었다.한편으로는 떨리는 손으로 임형섭에게 메시지를 보내 도움을 청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계단의 사각지대에 몸을 숨겼다.임형섭은 거의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하윤아, 일단 숨어 있어. 내가 경찰에 신고했어. 겁먹지 마. 지금 바로 갈게.]남자 두세 명이 계단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그중 하나가 지방 사투리를 섞어 민하윤이 다 알아듣지 못할 말투로 다른 남자를 짜증스럽게 탓했다.“야 이 자식아, 그년한테 돈을 좀 더 뜯어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우리 몇 명이 고작 1,000만 원을 나눠 먹자고 경찰서 들락날락할 위험까지 감수하는 게 말이 돼?”“그년도 이제 돈이 없대. 그 전에 다른 놈들한테 가방 두 개나 뜯겼다더라. 이거 한탕 끝내고 술이나 마시러 가자.”“형님, 이따가 그년이 돌아오면 진짜 반 죽여 놓을 겁니까?”한 남자가 담배를 바닥에 내던지더니 그 말을 한 놈 머리를 후려쳤다.“너도 진짜 병신이네. 내가 그 푼돈 때문에 인생 반 토막 내겠어? 그냥 겁만 좀 주면 돼. 아가씨가 말했잖아. 자기 언니는 말도 못 하는 벙어리라고... 좀 있다가 들어오면 문 열라고 협박하고 안으로 들어가서 가구 몇 개 부숴. 그리고 사진 찍어서 그 성이 민씨 아가씨한테 보내면 끝이야. 어차피 그년도 제정신 아닌 것 같더군... 친언니한테까지 이런 짓을 하라고 시키는 거 보면 말이야. 남의 집안 사정인데 내가 왜 끼어들겠어? 그냥 돈만 벌면 돼.”“형님, 이렇게 오래 기다렸는데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죠?”민하윤은 입을 틀어막았다.그런데 자신도 모르게 가방이 계단 난간에 부딪히면서 소리가 났다.그 소리에 놈들 시선이 한꺼번에 이쪽으로 쏠렸다.“누구야? 일곱째야, 네가 가서 한 번 봐.”민하윤은 본능적으로 도망쳤다.하지만 몇 걸음 떼기도 전에 뒤에서 고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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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6화

사내들은 민하윤을 붙잡아 집 안으로 밀어 넣었다. 민하윤은 제대로 서 보지도 못한 채, 우두머리처럼 보이는 남자에게 뺨을 세게 얻어맞았다.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 민하윤은 두 손으로 배를 감싸안았다.“얌전히 협조하면 상처 몇 군데만 내고 영상 찍어서 일 끝낼 거야. 근데 말 안 들으면 우리도 힘 조절이 안 될 수 있거든.”“이년이랑 쓸데없는 말은 왜 해? 너희는 일단 물건을 다 부숴. TV든 냉장고든 값나가는 건 전부 다 부숴버려. 민씨 아가씨가 그랬잖아. 부순 만큼 두 배로 쳐서 돈 준다고.”남자는 고개를 숙여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 깊게 빨았다. 한 손으로는 휴대폰을 들어 민하윤을 찍었고 다른 손으로는 담뱃불을 민하윤의 종아리에 그대로 눌러 비벼 버렸다.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숨을 들이켜던 민하윤은 입을 벌렸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어디 하나만 아픈 게 아니라 온몸이 다 아팠다.주변에서는 남자들이 물건을 부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 남자는 담배꽁초를 휙 버리더니 민하윤의 머리채를 거칠게 움켜잡고 욕실 쪽으로 끌고 갔다.“욕조에 물 받아.”욕조에는 뜨거운 물이 가득 차오르자 민하윤은 온몸을 떨었다. 우두머리 남자는 휴대폰을 옆에 있던 부하에게 던지며 말했다.“똑바로 찍어.”그러고는 민하윤의 머리카락을 더 세게 움켜쥔 채, 억지로 욕조 쪽으로 밀어 넣으려 했다.“형님, 이 물 온도면 큰일 납니다.”“X발, 멍청한 새끼야. 누가 이렇게 뜨거운 물 틀래. 이제 와서 어쩌겠어? 기껏해야 좀 데이는 거야... 무슨 큰일이 나겠어?”그때 아래층에서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물건을 부수던 놈들이 하나둘 욕실 앞에 몰려들며 다급한 얼굴로 물었다.“형님, 경찰 왔는데 튈까요?”“이년이 감히 신고한 거야? 오늘은 진짜 네년을 죽여 놓고 내가 감방 가는 날이야.”우두머리 남자는 눈이 뒤집힌 채 민하윤을 욕조 안으로 밀어 넣으려 했다.민하윤은 본능적으로 욕조 가장자리를 짚었다. 끓는 듯 뜨거운 물이 손을 타고 올라왔고 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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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7화

구준오는 보온병을 든 채 고은율의 병실 문을 밀고 들어갔다. 그런데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스친 구준오는 곧장 몸을 돌려 간호사 스테이션으로 향했다.“9호 병실의 고은율 씨는요?”검지로 카운터를 가볍게 두드리며 묻는 구준오의 얼굴에는 복잡한 감정이 뒤엉켜 있었고 어두운 눈빛은 한층 더 가라앉아 있었다.“병실에 안 계세요?”당직 간호사가 다급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 남자의 안색이 점점 더 싸늘해지는 걸 보고 덩달아 긴장했다.구준오는 낮게 욕설을 내뱉고 휴대폰을 꺼내 하도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되자마자 바로 본론을 꺼냈다.“고은율이 없어졌어.”“알아.”하도진은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은 채 가장 가까운 대학 병원 쪽으로 차를 꺾었다. 그러고는 조수석에 앉은 여자를 한번 흘끗 보며 구준오를 안심시켰다.“지금 내 옆에 있어. 발목이 좀 삐어서 병원에서 먼저 처치만 하려고 해. 늦게라도 다시 데려다줄게.”“어떻게 다친 건데? 너희 지금 어느 병원이야? 주소 보내.”구준오는 간신히 숨을 돌렸지만 여전히 다급하게 캐물었다.“대학 병원.”하도진은 전화를 끊고 병원 건물 앞 임시 주차구역에 차를 세웠다. 안전벨트를 풀려던 순간 누군가 손목을 잡았다. 돌아보니 고은율의 눈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촉촉했다.“도진아, 날 준오한테 넘기지 않으면 안 돼?”그때 멀리서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하도진은 차갑게 고은율의 손을 떼어 내며 한숨을 내쉬었다.“은율아,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데? 죽겠다고 굴지 않나, 자해하지 않나... 피아노 치던 너의 두 손이 지금 무슨 꼴이 됐는지 좀 봐봐.”고은율은 고개를 숙이고 손목을 내려다봤다. 연분홍빛 흉터가 옅고 짙게 뒤엉켜 있었다. 울퉁불퉁하게 이어진 상처 자국은 너무도 흉했다.“일단 발목부터 처치하고 준오를 따라가.”차 문을 밀며 담담하게 말하는 하도진의 목소리는 유난히 싸늘했다.“나 바빠. 너 하나 붙잡고 있을 시간도 체력도 없어.”고은율은 억울한 듯 눈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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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8화

“도진아, 왜 그래?”하도진은 고개를 저었고 입술을 꾹 다문 얼굴은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방금 스쳐 지나간 그 남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민하윤의 선배 임형섭 같았다.그런데 또 아닌 것 같기도 했다.무엇보다 하도진은 그 남자의 뒷모습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다.하도진은 고은율을 데리고 3층으로 올라갔다.엑스레이를 찍고 골절 여부부터 확인한 뒤에야 단순 염좌라는 진단이 나왔다.하도진은 타박상과 삔 데 바르는 외용약까지 처방받아 챙겼다....같은 시각, 산부인과 16층 수술실.수술복을 입은 의사가 임형섭에게 두툼한 서류 뭉치를 내밀었다.“환자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사산된 태아를 최대한 빨리 꺼내고 소파 수술을 진행해야 해요. 이건 수술 위험 설명서입니다. 보호자께서 서명하셔야 합니다.”펜을 든 임형섭의 손은 멈추지 않고 떨렸다.하얀 종이 위 검은 글자들이 전부 흐릿하게 번져 보였다.눈을 세게 감았다가 다시 뜨고 몇 번이고 정신을 붙잡아 보려 했지만 수술 중 발생 가능한 위험 조항은 끝내 제대로 읽히지 않았다.의사는 떨리는 임형섭의 손을 한 번 보더니 복도 전광판에 뜬 시간을 초조하게 확인했다.“빨리 서명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저희가 수술에 들어가서 환자를 살릴 수 있어요.”임형섭은 마지막 희망이라도 붙잡으려는 사람처럼 의사를 바라봤다.“하윤이는 괜찮겠죠? 절대 무슨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의사는 정해진 문장처럼 단정하고 조심스럽게 답했다.“어떤 수술이든 위험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의료진 전원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임형섭은 손을 떨면서도 결국 펜을 들었다.수술 위험 설명서와 인공 유산 동의서 등 각종 서류의 보호자란에 알아보기 힘들 만큼 흐트러진 글씨로 자기 이름을 적어 넣었다.곧이어 수술실 위의 붉은 등이 켜졌다.임형섭은 두 손을 맞잡고 복도 벽 쪽에 쪼그려 앉아서 붉은 수술등만 멍하니 바라봤다.경찰 몇 명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연락처를 하나 남겼다.“민하윤 씨가 수술 끝나고 몸이 조금 회복되면 이 번호로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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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9화

의사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하도진의 손에 들린 설명서를 홱 빼앗아 그대로 수술실 안으로 들어갔다.수술 중이라는 붉은 불빛은 유난히 눈을 찔렀다.하도진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 순간, 주위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오직 심장 뛰는 소리만 거칠게 울리는 것 같았고 온몸의 피가 전부 얼어붙은 듯했다.하도진은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다가 몇 걸음 뒤로 비틀거렸다.간신히 중심을 잡은 하도진의 눈에는 사나운 분노가 치솟고 있었다.입술은 일자로 굳었고 그대로 두 걸음 앞으로 내딛더니 임형섭의 얼굴에 주먹을 내질렀다.하도진은 곧장 임형섭의 멱살을 움켜잡았다.온몸의 아드레날린이 다 끓어오르는 듯했다. 날카롭고 사나운 얼굴이 스쳐 지나가듯 가까워졌고, 음산한 눈빛은 임형섭에게 꽂혔다.눈 밑에는 숨길 수 없는 위험한 빛이 번뜩였다.“누가 네 마음대로 사인하랬어!”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도진은 임형섭을 벽으로 거칠게 밀어붙이고 그대로 배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하도진은 완전히 이성을 잃은 상태였고 힘도 전혀 조절되지 않았다.“민하윤이 무슨 자격으로 내 허락도 없이 아이를 멋대로 지워?”하도진의 눈빛에는 사람을 찢어 죽일 듯한 살기가 스쳤다.음침하게 가라앉은 눈은 차갑게 번뜩였다. 하도진은 사람 전체가 순식간에 잔인무도하게 변해 버린 듯했다.“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하도진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졌다.그러더니 매서운 주먹이 또 한 번 날아들었다.임형섭은 본능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귓가에는 거센 바람 가르는 소리가 스쳤고 곧이어 쾅 하는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그러자 세상이 오히려 조용해진 것만 같았다.“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하도진은 여전히 같은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싸늘한 하도진의 눈빛 때문에 임형섭은 저도 모르게 소름이 오싹 돋았다.임형섭이 고개를 돌려 보니 하도진이 방금 날린 주먹은 자기 얼굴이 아니라 병원 벽에 꽂혀 있었다.희고 마른 손마디에서는 뼈가 삐걱거리는 듯한 소리가 났고 손등을 타고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임형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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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0화

하도진은 더는 생각을 이어 갈 수가 없었다.두 사람 사이에서 아이 하나가 사라졌다. 다섯 달이나 자란 태아는 이미 사람 형체를 거의 갖추고 있었을 테고 작고 귀여운 손과 발도 생겼을 테고 조그만 얼굴은 누구를 닮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하도진은 아직 아이의 얼굴조차 본 적이 없었다. 민하윤의 배 너머로 아기에게 인사 한번 건네 보지 못했다.임형섭이 병실 문을 아주 조금 열고 밖으로 나왔다. 두 사람만 들을 수 있을 만큼 낮은 목소리였다.“하윤이가 깼어요. 사실은 하 대표님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닙니다. 하윤이를 원망하지 마세요. 더는 탓하지도 말고요.”“꺼져.”하도진은 싸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지금 너랑 여기서 실랑이할 기분 아니야. 이건 나랑 하윤 사이의 일이야.”하도진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려는 순간, 임형섭이 하도진의 팔뚝을 세게 붙잡았다.임형섭은 고개를 숙인 채, 거의 애원하듯 말했다.“하윤이는 마취도 제대로 안 된 상태로 그 아이를 꺼냈어요. 지금의 하윤이는 누구보다 더 아플 거예요. 하도진 씨, 정말 아직 양심이 남아 있다면 제발... 더는 하윤이를 또 상처 주지 마세요.”‘지금 민하윤보다 더 아픈 사람은 없다고? 그러면 끝까지 아무것도 모른 채 속아 온 나는 도대체 뭐야...’하도진은 임형섭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민하윤은 이미 깨어 있었다. 눈은 새빨갛게 충혈돼 있었고 초점 없는 시선으로 천장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마 앞머리는 땀에 젖어 몇 가닥씩 축 늘어져 붙어 있었고 손등에는 정맥주사 바늘이 두 개나 꽂혀 있었다. 팔에는 진통제 펌프까지 연결돼 있었다.손끝에는 여러 기계 선이 얽혀 있었고 침대 머리맡 심전도 모니터는 간헐적으로 경고음을 울렸다.하도진은 축 처진 몸으로 의자에 앉아서 민하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지금 저런 처참하고 초라한 모습마저도 어쩐지 너무 거짓 같네.’그러다가 하도진은 갑자기 웃음이 새어 나왔다.“이제 와서 이런 꼴을 누구한테 보여 주려고 그러는 거야?”민하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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