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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os os capítulos de 사랑한다고 말해줘: Capítulo 411 - Capítulo 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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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1화

“당장 무릎 꿇어!”하준혁의 관자놀이에는 푸른 핏줄이 불거져 있었다. 손이 닿는 곳에는 배나무로 만든 회초리가 놓여 있었다.가느다란 그림자가 2층으로 완전히 사라진 걸 확인한 뒤에야 하도진은 겨우 숨을 돌렸다.그리고 아무 말 없이 하준혁의 발치에 무릎을 꿇었다.“좋아. 네가 하윤한테 책임을 떠넘기고 싶지 않다면 오늘은 네 할아버지 할머니 앞에서 내가 직접 묻겠다.”하준혁은 화가 치밀어 손까지 떨고 있었다.“너희 부부는 우리한테 숨기고 유산 수술을 한 거야?”처음 채선화에게서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하준혁은 선뜻 믿지 못했다.세상에 어느 부모가 그렇게까지 독할 수 있단 말인가.아이를 이런 집안에서 낳는 게 뭐가 문제라고 이 기쁜 일을 어른들에게 알리기는커녕 몰래 병원에 가서 아이를 지운단 말인가.그런데 지금 자신 앞에서 고집스럽게 무릎을 꿇고 있는 아들을 보자 하준혁은 모든 걸 단번에 알아버렸다.이 일은 정말 하준혁이 생각한 그대로였다.“말해. 내 말이 맞아? 아니야?”하도진은 턱을 살짝 들고 짧게 답했다.“맞아요.”그 말에 김옥자는 손까지 덜덜 떨었다.가슴을 쓸어내리며 급하게 청심환을 입에 털어 넣었다.“도진아, 대체 왜 그랬니? 그렇게 어렵게 찾아온 아이를 왜 지운 거야?”하도진은 입술만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무심하고 뻔뻔한 태도에 하준혁의 분노는 더 치솟았다.하준혁은 곧장 손에 있던 회초리를 들어 하도진 등의 한가운데로 내리쳤다.조금도 봐주는 기색이 없었고 집 안에는 매를 때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민하윤은 2층 복도 구석에 숨어 서서 아래층에서 하도진이 맞는 소리를 들었다. 손바닥을 꽉 쥔 채,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자기 잘못이라고 말할 것만 같았다.이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도진과는 상관없었고 모든 사람을 속인 건 민하윤이었다.그러나 하도진이 대신 매를 맞을 이유는 없었다.아이를 왜 끝내 지켜내지 못한 건, 아마도 운명이었을 것이다.채선화는 더는 못 보겠다는 듯 고개를 돌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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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2화

하도진이 그렇게라도 나서지 않으면 어른들은 아이가 태동이 멈춘 건지 외부 충격으로 유산한 건지 따질 생각조차 하지 않을 터였다. 결국 민하윤이 엄마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식으로 아이가 세상에 나오지 못한 모든 잘못을 민하윤에게 떠넘겼을 것이다.“준혁아, 회초리 이리 내놔.”하진석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어코 자기 손으로 직접 하도진을 때리겠다는 뜻이었다.회초리가 두 차례 더 날아오자 하도진은 통증에 무릎이 휘청거렸다. 기억을 더듬어 봐도 할아버지가 직접 손을 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네 잘못을 알기는 아느냐?”채선화와 김옥자는 동시에 일어나 하진석을 말렸다. 한편으로는 할아버지가 흥분하다가 무슨 일이라도 날까 걱정됐고 또 한편으로는 너무 세게 때려 정말 하도진을 크게 다치게 할까 두려웠다.하지만 하도진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대신 고개를 들어 2층을 한 번 올려다보더니 마음속으로만 대답했다.‘난 분명히 잘못했어. 하윤을 잃어버린 게 바로 내 잘못이었지.’분위기 좋은 생일잔치는 엉망이 되어 버렸다. 어른들은 때릴 만큼 때리고 욕을 퍼부을 만큼 퍼부었지만 하도진은 고집스럽게도 끝내 입을 열지 않았고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았다.채선화는 가슴이 답답해져 일찌감치 방으로 들어가 쉬었다.한 상 가득 차려진 음식에는 아무도 젓가락을 대지 않았고 어른들은 하나같이 한숨만 쉬다가 자리를 떴다.누구도 하도진을 이해할 수 없었다.분명 집안에 경사였던 일이 어쩌다 이렇게까지 망가진 걸까.날이 저물 무렵 하도진은 자기 방에 들어가 깨끗한 셔츠 한 장을 꺼내 갈아입었다. 피가 밴 셔츠는 그대로 버렸다.그런 꼴로 방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하도진은 민하윤이 놀랄까 봐 두려웠다..방 안은 캄캄했다.민하윤은 침대 한쪽에 웅크린 채 누워 있었다. 불도 켜지 않은 채 등을 돌리고 있어서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하윤아, 너랑 좀 얘기하고 싶어.”하지만 돌아오는 건 여전히 죽은 듯한 정적뿐이었다.하도진은 비틀린 입꼬리로 허탈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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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3화

이혼 절차는 생각보다 빠르게 끝났다. 하도진이 손을 써 둔 덕분에 두 사람이 서류를 들고 작은 사무실에 들어간 뒤 각자 빨간 이혼 증명서를 손에 쥐고 갈라서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10분 남짓이었다.8월 날씨는 변덕스러웠다. 조금 전까지 멀쩡하던 하늘이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거리에는 사나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길가의 버드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며 요란한 소리를 냈고 행인들도 발걸음을 재촉했다.멀리 하늘 끝에는 먹구름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누가 봐도 폭풍우가 몰려오기 직전의 날씨였다.민하윤은 처마 밑에 선 채 일부러 하도진과 거리를 벌렸다.“비가 오네. 어디 가는데? 돌아가는 길이라면 내가 데려다줄게.”하도진이 먼저 말을 걸었다.하도진의 너무도 자연스러운 태도 때문에 민하윤은 순간 마치 두 사람이 아직 완전히 끝난 게 아닌 것처럼 착각할 뻔했다.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후텁지근하던 하늘에서 콩알만 한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했고 바람도 점점 거세졌다.가끔 묵직한 천둥소리까지 뒤섞여 들려왔다.민하윤은 고개를 저었다.그리고 예의 바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수어를 했다.[괜찮아요. 번거롭게 안 하셔도 돼요.]순간 말문이 막힌 하도진은 가슴 한가운데 솜뭉치라도 얹힌 것처럼 답답했다.무엇보다 하도진은 민하윤이 저런 식으로 차갑게 선을 긋는 걸 가장 싫어했다.“왜? 민하윤 씨는 벌써 나랑 완전히 남이 되고 싶어졌나 봐? 어젯밤에는 날 하 대표님이라고 부르더니 오늘은 같은 차에 타는 것도 싫은 거야?”하도진은 속이 뒤집힌 탓에 내뱉는 말이 더더욱 독해졌다.민하윤은 눈을 내리깔았다.하도진의 말 안에 담긴 비꼼과 가시 따위는 전혀 못 들은 척했다.민하윤은 지키고 싶은 선이 있었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분명한 경계선이 필요하다고 믿었다.정상적인 관계와 친밀한 관계는 전혀 다른 영역이었다.민하윤은 자신이 불같이 사랑하고 불같이 정리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전 남편을 아무렇지 않게 대할 만큼 대범한 사람도 아니었다.그러니 서로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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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4화

민하윤은 고개를 저으며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하윤아, 난 다른 뜻 없어.”하도진은 정말 민하윤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민하윤은 달래도 안 되고 밀어붙여도 안 통했다.민하윤은 경계 어린 눈빛으로 하도진을 바라봤다.한때 하도진의 마음을 수도 없이 흔들어 놓았던 아름다운 얼굴에는 이제 웃음기라고는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수술도 했잖아. 할머니도 몸 잘 추슬러야 한다고 하셨어. 산후조리처럼 푹 쉬면서 몸부터 챙겨야 해.”하도진은 이유도 모르게 잠깐 울컥했다.아직 체온이 남아 있는 외투를 내밀었지만 민하윤은 받으려 하지 않았다.하도진이 직접 걸쳐 주려고 다가가자 민하윤은 그것마저 싫다는 듯 계속 몸을 피했다.‘이게 몸을 잘 추슬러서 무슨 소용이 있겠어...’민하윤은 앞으로 인생에서 다시 다른 남자를 만나 아이를 낳을 생각 따위 없었다.하도진이 몰고 온 검은 벤틀리는 길가에 그대로 서 있었다.그런데도 하도진은 굳이 입구에 남아 민하윤과 함께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렸다.하지만 이미 늦었다.민하윤 마음속의 비는 아직도 그치지 않고 있었다.지금에 와서 보니 모든 게 이미 너무 늦어 버렸다.“하윤아, 진짜 나랑 선을 딱 긋고 완전히 끝내겠다는 거야? 우리 사이가 그렇게까지 괴로웠어? 죽을 때까지 안 보고 살아도 될 만큼... 너는 그렇게까지 내가 싫었던 거야?”하도진은 외투를 거둬들이며 차갑게 웃었다.예전의 민하윤은 말만 못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수어로조차 자신과 대화하기를 거부하고 있었다.하지만 민하윤은 마치 하도진이라는 사람 자체를 완전히 지워 버린 것처럼 조용히 빗줄기만 바라봤다.그때 비상등을 켠 검은 랜드로버 한 대가 천천히 다가왔다.억수같이 쏟아지는 빗물에 앞 유리가 휩쓸려 와이퍼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하도진은 운전석에 누가 앉아 있는지 제대로 볼 수 없었다.차는 곧 민하윤 옆에 멈춰 섰다.운전석 문이 열리고 긴 검은 우산 하나가 펼쳐졌다.임형섭은 물이 고인 바닥을 밟고 빠르게 걸어왔다. 한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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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5화

“15개월이나 있어야 해. 정말 결정한 거야?”임형섭은 고개를 돌려 민하윤을 바라보았고 뼈마디가 도드라진 그의 손가락은 핸들을 가볍게 두드리고 있었다.“네. 저한테도 시간이 좀 필요해요. 스스로를 추슬러야 하니까요. 명원시를 떠나는 건 결국에 나쁘지 않은 선택 같아요.”“그렇다면 가. 아버님은 내가 잘 모실게. 연수 행장 끝나면 그때 다시 명원시에서 보자.”민하윤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고맙다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끝내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민하윤은 이미 임형섭에게 너무 많은 빚을 진 기분이 들었다.“괜히 울컥하는 말은 됐어. 가고 싶은 도시는 있어? 나라면 하성시나 선주시를 추천할 텐데... 성장 가능성도 좋고 지점 실적 평가도 훌륭해서 네가 가면 문제도 별로 많지 않을 거야...”임형섭은 늘 그랬다.언제나 맨 먼저 가장 정확하고 가장 좋은 조언을 건네줬다.민하윤의 시선은 표 맨 아래쪽에 멈췄다.“저는 항도시 지점에 가고 싶어요.”민하윤의 양어머니는 항도시의 사람이었다.어릴 적부터 물안개 자욱한 항도시에서 자라난 여자였다. 사람 자체가 항도시 여자 특유의 온화함을 닮아 있었고 눈매는 늘 촉촉하고 다정했다.민하윤의 희미한 기억 속에서 양부모는 재래시장에서 생선을 팔았다.그때 민하윤은 아직 어렸다.민하윤이 졸리다고 칭얼대기만 하면 엄마는 고무장갑과 앞치마를 벗고 손을 깨끗이 씻은 뒤 아직 어린 민하윤을 품에 안고 재웠다.모녀는 깨끗한 비료 포대 두 장을 깔고 거기 꼭 붙어 누워 있었다. 시장은 늘 시끄러웠고 사방에서 흥정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강수경은 민하윤을 살살 흔들어 재우며 이름도 모르는 노래를 낮게 흥얼거리고는 했다.항도시의 여자답게 강수경은 늘 부드럽고 단정했다.비싼 화장품 하나 써 본 적 없었지만 피부는 물기 머금은 것처럼 맑고 하얘서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가장 예쁜 여자였다.민하윤의 가장 행복했던 유년 시절 대부분은 그 시끌벅적한 재래시장에서 흘러갔다.양부모에게 민하윤은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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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6화

누군가 성장하는 와중에는 반드시 귀인이 필요했다.민하윤이 신용대출부에서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건 허민영의 세심한 가르침 덕분이었다. 온갖 대출 사례와 회사의 대출 프로젝트를 빠르게 익히고 태유 은행 안에서 확실히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도 다 허민영의 덕이었다.“살이 너무 빠졌어요. 항도시에 가면 생활용품부터 제대로 갖춰 놓고 밥도 잘 챙겨 먹고 일찍 자야 해요.”엄마 같은 다정한 잔소리에 민하윤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임형섭은 신용대출 부서 앞에서 민하윤을 기다리고 있었다.마치 대학 시절처럼 자연스럽게 민하윤의 가방을 받아서 들었고 민하윤의 7년을 고스란히 담은 상자까지 품에 안았다.밖에 숨어 있던 이남주는 괜히 분위기를 울컥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고 민하윤 앞에서 울어 버려 괜히 민하윤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그런데 막상 민하윤의 얼굴을 보자 눈가가 금세 붉어진 이남주는 입을 틀어막은 채 그대로 민하윤의 품으로 와락 안겼다.“진짜 바보스럽네요. 명원시에서 잘 다니고 있었으면서 꼭 거기까지 가야 해요?”이남주는 말하면서 코끝을 훔쳤다.좋은 상사를 만나는 건 직장인에게 정말 큰 복이었다.민하윤은 아마 이남주가 평생 본 사람 중 가장 감정 기복이 없는 사람이었다.정말 단 한 명도 떠오르지 않을 만큼 침착했다.한 번도 부하 직원 앞에서 표정을 굳힌 적이 없었고 누구한테 날카롭게 몰아붙인 적도 없었고 책임을 떠넘기거나 압박을 준 적도 없었다.민하윤은 늘 누구에게나 예의 바르고 차분했다.이남주가 인턴이었을 때 그녀의 상사도 바로 민하윤이었다.그때 이남주는 다른 은행에서 태유 은행으로 이직해 온 상태였다.최상위 프라이빗뱅크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전혀 몰랐고 시장 대응 업무에서도 실수를 연발했다.민하윤은 말할 수가 없었지만 누구보다 섬세했다.이남주가 화장실에서 눈가가 붉어진 채 나오는 걸 보고도 모르는 척하지 않았다.그리고 다음 날, 민하윤은 이남주에게 핵심만 정리한 두툼한 종이 자료 한 뭉치를 건넸다.민하윤은 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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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7화

명원시를 떠나기 하루 전, 민하윤은 훠궈 재료와 맥주가 가득 든 주머니를 들고 백누리가 촬영 중인 현장으로 찾아갔다.혼자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캠핑카 안에 냄비를 올리고 재료를 가지런히 펼쳐 놓고 잔도 두 개 꺼내 씻었다. 사 온 맥주와 작은 매실주도 한쪽에 보기 좋게 늘어놓았다.민하윤은 미리 백누리의 매니저에게 연락해 야간 촬영 스케쥴을 확인했고 일부러 오늘을 골라 찾아온 거였다.그때 머리에 온갖 비녀와 장식을 꽂고 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팬들과 인사를 마친 백누리가 차에 올라탔다.백누리는 기분이 꽤 좋아 보였다.아마 밤샘 촬영이 없는 날이라서 그런 모양이었다.백누리는 심지어 입에 막대사탕까지 물고 있었다.민하윤을 보자마자 백누리의 눈이 반짝였다.“오늘 무슨 바람이 불었길래 네가 여기까지 온 거야?”민하윤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냄비 뚜껑을 열자 얼얼한 마라 훠궈 향이 순식간에 차 안을 가득 메웠다.백누리는 순간 멍해졌다가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들이마시더니 그대로 민하윤을 와락 끌어안았다.백누리는 손을 크게 휘둘러 매니저에게 돈을 두둑이 보내 주면서 매니저더러 가서 맛있는 걸 먹고 오라고 했다.그렇게 되어 민하윤과 백누리는 맥주를 마시며 훠궈를 먹었다.백누리는 촬영 세트장에 바비큐까지 배달시켜 놓았다.그러다 보니 어느새 두 사람은 어느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백누리는 턱을 괸 채 눈 끝까지 붉어진 얼굴로 앉아 있다가 갑자기 특유의 까칠한 성격이 튀어나온 듯 탁자를 세게 치며 벌떡 일어섰다.그러고는 손가락으로 민하윤의 이마를 톡 건드렸다.“너 진짜 의리 없네. 비밀 결혼에 유산까지... 대체 나한테 얼마나 더 숨긴 거야? 네가 이렇게까지 대단한 줄 알았으면 진작 우리 대표님이랑 자라고 부추겼지. 사모님까지 됐으면 내가 고은율보다 더 으스댔을 거라고...”민하윤은 그 말에 결국 웃음을 터뜨렸고 입술을 삐죽 내밀고 눈을 깜빡이더니 이혼증명서를 탁자 위에 툭 내려놨다.“안됐네. 네 꿈은 산산조각 났어. 난 그 사람이랑 이미 끝났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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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8화

민하윤은 술기운이 확 깬 얼굴로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그리고 백누리에게 마지막으로 한 가지 부탁했다.“내가 다시 말을 하게 됐다는 건 아무한테도 알리고 싶지 않아.”백누리는 순진하고 여린 타입이 아니었다.이런 진흙탕 같은 연예계에서 버텨 낸 건 단지 예쁜 얼굴 하나 덕분만은 아니었다.민하윤이 아무한테 말하지 말라는 대상이 누구를 뜻하는지 백누리는 바로 알아들었다.이혼한 전남편 하도진 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근데 후회는 안 되냐? 진짜 솔직히 말해서 성격이랑 인성 빼면 하도진은 진짜 미쳤잖아. 몸매, 분위기, 얼굴, 집안... 하나씩 떼어 놔도 전부 끝판왕이야. 진짜 돌아버릴 정도로 좋지. 그래서 다들 누구로 다시 태어나는 것도 기술이라고 하나 봐. 연예계에 하도진의 침대로 기어들어 가고 싶어 하는 여자들이 널렸어. 나도 예전에 머리에 물이 찼었나 봐. 네 앞에서 하 대표랑 첫사랑 여자 얘기나 떠들고 말이야. 너희 이혼한 데 나도 지분 좀 있는 것 같아서 괜히 찔리네.”백누리의 얼굴에는 잠깐 미안한 기색이 스쳤다.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고 곧바로 본색이 튀어나왔다.“그런데 나 진짜 궁금한 건 따로 있어. 하도진이 진짜 소문처럼 그 방면에서 별로야? 아니 그렇게 잘생기고 그렇게 끝내주는 남자인데 잠자리가 별로라면 그건 그냥 겉모습만 좋은 거잖아.”술까지 들어가자 백누리는 더 대담해졌고 두 사람이 나누는 화제도 점점 부끄러운 쪽으로 흘렀다.민하윤의 얼굴에 수상할 정도로 붉은 기운이 확 돌았다.민하윤은 시선을 내리깔고 물었다.“도진 씨가 그 방면에서 별로라는 얘기는 어디서 나온 거야?”백누리는 혀를 차며 이미 다 안다는 표정을 지었다.“다들 그렇게 말해. 그런 급의 남자는 연예계에서도 거의 희귀종 취급이잖아. 감히 범접도 못 할 사람이야. 그런데 그 방면에서 약하고, 조루, 발기부전이라는 소문이 돌고 나서 여자 중에 열에 여덟은 환상이 깨졌어. 입으로는 그런 남자랑 한 번만 사귀어도 여한 없다고 하지만 정작 그쪽이 문제 있으면 다들 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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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9화

민하윤이 명원시를 떠나던 날은 유난히 하늘이 끝없이 맑고 높을 정도로 날씨가 좋았다.민하윤은 혼자 두 개의 캐리어를 부치고 선글라스를 쓴 채 탑승 대기실에 앉아 안내 방송을 들었다. 민하윤은 임형섭과 백누리가 배웅하겠다는 걸 정중히 사양했다. 이별의 순간만큼은 혼자 감당하고 싶었다.비행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떠오르자 젊고 예쁜 승무원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승객들에게 휴대폰을 비행 모드로 전환해 달라고 안내했다.민하윤은 귓불에 꽂은 귀걸이를 빼 급하게 핀처럼 썼다.그리고 휴대폰 안의 유심을 꺼내 손가락 끝으로 조용히 반으로 부러뜨렸다.거의 동시에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굉음이 귀를 울리자 민하윤의 가슴도 순간 먹먹하게 아파져 왔다.민하윤은 창가 아래를 내려다봤다.둥실둥실 뭉친 새하얀 구름 사이로 예전 명원시에서 올려다보던 화려하고 높은 빌딩들이 지금은 개미처럼 작게 보였다.“안녕, 명원시.”민하윤은 눈을 감자 이명과 어지럼증이 한꺼번에 밀려왔다....하도진은 통유리창 앞에 서 있다가 어디선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에 습관적으로 고개를 들었다.한낮의 햇살은 눈이 부실 만큼 강했다.그때 누군가가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서명인은 하도진에게 10분 뒤에 열릴 주주총회에 맞춰 참석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올해는 예전과 많이 달랐다.하도진은 회의실에 마지막으로 입장했다.느긋하게 정장 재킷 단추를 풀고 긴 다리를 꼰 채 가장 편한 자세로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하도진의 태도는 느슨했지만 분위기는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고 오히려 타고난 리더의 기운이 자연스럽게 풍겼다.“다들 앉으시죠. 지난주, 아버지께서 보유하고 계시던 지분 전부를 제게 넘기셨습니다. 이제는 쉬실 나이가 되셨으니까요. 여러 어르신과 임원진 여러분, 오늘부터 저는 정식으로 에스티 그룹 대표직을 맡게 됩니다. 임명장은 회의가 끝난 뒤 각자 사내 메일로 발송될 겁니다. 이견 있으신 분은 따로 저를 찾아오셔서 말씀하시죠.”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전부 산전수전 다 겪은 여우 같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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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0화

“그래서요? 태유 은행이랑 협업하는 그 프로젝트를 중단하자는 겁니까?”하도진은 손가락 사이로 볼펜을 천천히 돌리며 눈을 내리깔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읽히지 않는 표정이었다.하도진은 비웃듯 짧게 웃더니 이내 말했다.“저는 오히려 외부 은행과 협업하는 게 득이 더 크다고 보는데요?”“꼭 중단하자는 뜻은 아닙니다. 종합적으로 다시 평가한 뒤 결정하자는 취지입니다.”보고하던 부대표는 그제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채고는 곧바로 말을 고쳐 잡으며 조심스럽게 하도진의 말에 맞췄다.“협업 프로젝트가 전혀 장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결국 핵심 판단 기준은 협업 은행의 업무 역량이니까요.”“맞는 말이네요. 그룹의 이익을 생각하면 태유 은행의 업무 역량은 다시 평가해 볼 필요가 있죠.”하도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명인을 불렀다.“서 비서, 그 프로젝트 담당인 신용대출부 팀장한테 연락해서 나랑 따로 만날 스케쥴을 잡아.”하도진도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했다.그래도 오늘 헛수고는 아니었고 뜻밖의 수확이 있었다.민하윤을 다시 만날 명분이 생겼으니까 말이다.목적을 이뤘으니 하도진은 더는 이 자리에 앉아 여우 같은 인간들과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하도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다시 정장 단추를 채웠다.“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죠.”하도진은 사무실로 돌아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앉았다.책상 위에 놓인 휴대폰만 가만히 바라보다가 몇 번이고 조급하게 손목시계를 확인했다.그사이 진호영에게서 전화가 한 통 걸려 왔다.하도진은 거의 반사적으로 바로 받았다.귀에 대자마자 진호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형, 뭘 그렇게 전화를 빨리 받아? 누구 전화라도 기다리고 있었어?”하도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전화를 끊어 버렸다.거의 동시에 대화창에 물음표 하나가 떴다.[?][무슨 뜻이야? 들으니까 형이 다시 돌싱이 됐다며? 좀 아깝긴 하네. 전에 형수님은 꽤 괜찮았는데...]연달아 뜨는 진호영의 메시지를 보다 못한 하도진은 결국 인내심이 끊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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