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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os os capítulos de 사랑한다고 말해줘: Capítulo 401 - Capítulo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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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1화

창가에 드리운 붉은 노을은 서서히 구름바다 뒤로 가라앉았고 짙푸른 하늘도 점점 어두워졌다. 민하윤은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한 손으로는 아랫배를 감싸고 다른 한 손으로는 침대 시트를 악착같이 움켜쥐었다. 입술을 깨물며 어깨를 들썩이던 민하윤은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열일곱 이후로 민하윤이 이렇게 목 놓아 운 건 처음이었다.스물일곱의 민하윤에게 하늘은 너무도 잔인한 장난을 쳤다. 뱃속에서 사람 형체를 갖춰 가던 아이를 빼앗아 가더니 그제야 다시 말 할 수 있게 해 준 것이었다.민하윤은 하얀 침대 시트를 움켜쥔 손에 핏줄이 불거질 만큼 힘을 줬다. 오장육부를 누가 산산이 찢어 놓는 것처럼 아팠다.유산 수술 내내 마취는 좀처럼 듣지 않았다. 민하윤은 의사가 자기 몸 아래에서 무언가를 조금씩 긁어내는 감각을 또렷하게 느꼈다. 그건 살을 한 겹씩 벗겨 내는 듯한 고통이었고 너무도 아파서 몸에 입은 환자복이 전부 땀에 젖어 버릴 정도였다.임형섭은 병실 문밖에 서서 안에서 들려오는 처절한 울음소리를 듣다가 절망스럽게 눈을 감았다. 임형섭 역시 처음으로 이토록 깊은 무력감이 들었다.밤이 깊어지고 나서야 임형섭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불도 켜지지 않은 캄캄한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하윤아, 뭐라도 좀 먹을래?”어둠 속에서 민하윤은 이불을 뒤집어쓴 채 몸을 둥글게 웅크리고 있었다. 너무 오래 운 탓에 눈은 퉁퉁 부어 제대로 뜨지도 못했고 목소리도 잔뜩 잠겨져 있었다. 민하윤은 힘겹게 낮은 목소리로 애원했다.“불 켜지 마세요.”그 소리에 임형섭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손에 들고 있던 좁쌀죽이 바닥에 떨어지며 사방으로 튀었다.임형섭은 입을 벌렸지만 너무 놀란 나머지 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자기가 잘못 들은 걸까? 하윤이가 방금 말을 한 거야?’민하윤은 말 할 수 있게 됐고 실어증이 거짓말처럼 나아 버렸다.임형섭은 민하윤을 놀라게 할까 봐 애써 감정을 눌렀지만 지친 얼굴 위로 약간의 기쁨이 번졌다.“알았어. 다 네 말대로 할게. 불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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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2화

임형섭은 당장이라도 경찰서로 달려가 그 자식들을 자기 손으로 찢어 죽이고 싶었다.배후에 있는 민희수도 마찬가지였다. 임형섭은 민희수가 뼛속까지 싫었다.민하윤은 이불 속에 웅크린 채 계속 고개를 저으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아이를 못 지킨 건 제 책임이에요. 제가 몸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어요. 애초에 태아가 멈췄잖아요. 다른 사람들이 없었어도 아이는 결국 못 살았을 거예요.”민하윤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임형섭은 손을 뻗었다가도 끝내 닿지 못한 채 허공에서 멈췄다.두 사람은 캄캄한 병실 안에서 말없이 마주 선 듯 버티고 있었다.민하윤은 천천히 눈을 감더니 손바닥 안에 꼭 쥐고 있던 4D 초음파 사진을 가슴 위에 얹었다....다른 한편, 하도진은 빈 술병들 사이에 몸을 묻은 채, 객실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를 멍하니 바라봤다.한때 그곳에서 민하윤과 함께 밤을 새우며 얽히고설켰다.둘은 같은 침대 위에서 극한의 쾌락도 맛봤고 말로 다 하지 못할 수많은 달콤한 순간도 나눴다.하도진은 갑자기 손을 들어 자기 뺨을 사정없이 후려쳤다.그러자 방 안에는 찰싹하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렸다.눈물은 저절로 뺨을 타고 흘러내렸고 맞은 자리만 화끈거렸다.하도진의 마음은 이미 다 닳아 무뎌져 있었다.눈은 텅 빈 채, 예전에 민하윤이 머물던 그 방만 뚫어지게 바라봤다.하도진은 그제야 민하윤이 자기를 이렇게까지 증오했는지 알게 되었다.‘우리 아이조차 받아들이지 못할 만큼 깊게 미워하고 있었네.’하도진은 고개를 젖혀 다시 술을 입안으로 들이부었다.진한 술이 입가를 타고 흘러내리자 목울대가 거칠게 위아래로 움직였다.눈끝은 벌겋게 물들었고 시야도 서서히 흐려졌다.하도진은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그리고 거의 습관처럼 저장 이름조차 없는 번호 하나를 눌렀다.수화기 너머로는 연결되지 않는다는 통화음만 길게 이어졌다.그 속에는 잡음 같은 전류 소리까지 섞여 있었다.하지만 하도진은 포기하지 않았다.계속해서 휴대폰을 귀에서 떼었다 다시 붙이고 같은 번호로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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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3화

서명인의 얼굴은 말 그대로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르네 별장 문을 계속 두드리던 서명인은 하도진의 전화를 받은 뒤 밤새 한숨도 못 자고 사건의 전말을 캐냈다.서명인은 끝내 하도진이 문을 열어 주길 기다리지 못했다.대신 르네 별장 관리사무소에서 보낸 강제적으로 문을 여는 기사님만 기다렸다.기사들은 몇 번 만지작거리더니 금세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풀어냈다.서명인은 곧장 2층으로 뛰어 올라가 안방 문부터 열었다.하지만 안은 텅 비어 있었다.그러다가 무언가 떠오른 듯, 서명인은 서류봉투를 움켜쥐고 곧장 사모님 방으로 방향을 틀었다.문을 열자마자 진한 술 냄새가 훅 끼쳐 왔다.하도진은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침대 위에는 빈 술병이 가득 굴러다녔고 전원이 꺼진 휴대폰이 하도진의 손에 꽉 쥐여 있었다.서명인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그러더니 돌아서서 욕실로 들어가 찬물을 대충 받아 왔다.그 물을 망설임 없이 하도진의 얼굴에 그대로 끼얹었다.하도진은 본능적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번쩍 떴다.하도진의 어두운 눈빛은 사람을 죽일 듯만큼 음산했다.하도진은 손으로 얼굴을 한번 쓸어내리고 앞에 선 사람을 노려봤다.“죽고 싶어?”그러자 서명인은 꼬마처럼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그러더니 두툼한 서류봉투를 재빨리 꺼내 두 손으로 내밀었다.“대표님께서 알아보라고 하신 일입니다...”하도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시선을 어둡게 내렸다.하지만 하도진은 손을 뻗으려다 말고 갑자기 생각을 바꾼 듯 손을 허공에서 멈췄다.“진실은 더 사람만 아프게 해. 됐어. 민하윤은 나를 사랑하지 않았고 아이를 지운 것도 결국 시간문제였겠지. 굳이 왜 임신 5개월이나 돼서 유산을 했는지까지 내가 알아서 뭐 해?”서명인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밤을 꼬박 새우며 온갖 인맥을 동원해 겨우 민하윤이 유산의 진실을 알아냈다.‘그런데도 대표님은 진실이 더 아프니까 안 보겠다니...’서명인은 속으로 거의 욕이 튀어나왔다.억울하고 분해서 오히려 민하윤의 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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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4화

하도진은 눈앞이 흐려졌다.서명인이 너무 놀라 다급하게 소리쳤지만 하도진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대신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장면들만 멋대로 머릿속을 파고들었다.민하윤은 수술실에서 나왔고 마취도 제대로 듣지 않은 채 정신이 멀쩡한 상태로 의사가 뱃속에서 죽은 태아를 꺼내는 걸 전부 견뎌 냈다.그런데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 채, 막 아이를 잃은 민하윤에게 독한 말만 퍼부었다.심지어 민하윤을 살인자라고 하면서 두 사람 아이를 죽인 게 민하윤이라고 몰아붙였다.민하윤은 진통제 펌프를 단 채 병상에 웅크리고 있었지만 그런 초췌하고 창백한 얼굴을 마주하고도 정작 하도진은 가장 모진 말만 골라 쏟아냈다.그런 장면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하도진의 머릿속에서 되풀이됐다.하도진은 이를 악문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하늘도 정말 무심하네... 난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민하윤은 침대에 누운 채 조용히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보이는 끝도 없이 맑은 날씨였다.밤새 몰아치던 비바람은 마침내 그쳤다.“하윤아, 수술 끝나고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 이러면 안 돼. 뭐라도 좀 먹자. 응?”민하윤은 임형섭의 초췌하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바라보다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얼굴이 순간 환해진 임형섭은 정성껏 좁쌀죽을 후후 불어 식힌 뒤 민하윤의 입가로 가져갔다. 혹시 민하윤이 또 마음을 바꿀까 봐 몇 숟갈을 연달아 먹였다.그런데 순식간에 민하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민하윤은 눈을 내리깔고 속눈썹을 떨더니 입을 억지로 다문 채 참고 참다가 갑자기 침대 난간을 붙잡고 방금 먹은 죽을 전부 토해 냈다.그러자 임형섭이 벌떡 일어나면서 말했다.“괜찮아. 내가 치울게. 걱정하지 마. 괜찮아.”말을 마치자마자 임형섭은 정말 망설이지 않고 바닥에 쪼그려 앉아 비싼 옷이 더러워지는 것도 신경 쓰지 않은 채 물티슈로 민하윤의 토사물을 하나하나 닦아 냈다.“괜찮아, 하윤아. 아마 입에 안 맞아서 그런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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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5화

“도진아, 병원에서 뭐 해?”채선화는 미간을 찌푸리며 걸음을 멈췄다. 그러고는 뒤돌아 몇몇 학교 관계자들에게 짧게 말을 건네더니 또각또각 울리는 하이힐 소리를 내며 이쪽으로 다가왔다.하도진은 입을 열었다가 본능적으로 채선화 앞을 막아섰다.“엄마는 병원에 웬일이에요?”하도진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화제를 돌렸다.“별일 아니야. 학교 쪽 분들이랑 같이 원로 교수님 문병 왔어. 너는 왜 병원에 있는데?”채선화는 안경 너머로 하도진을 날카롭게 훑어봤다.“셔츠도 안 다렸고 수염도 안 밀었네. 무슨 일이 있었어?”하도진은 너무 평소 같지 않았다.채선화는 자기 아들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결벽증에 가까울 만큼 완벽주의적인 하도진이 셔츠가 구겨진 채 눈 밑이 퀭하고 수염 자국까지 그대로 드러낸 모습으로 사람을 만난다는 건 무슨 일이 생겼다는 뜻이었다.“별일 없어요. 친구 병문안 왔어요.”하도진은 속이 뒤집히는 와중에도 대충 핑계를 둘러대며 채선화를 상대해야 했다.채선화는 안경을 한번 밀어 올리고 하도진의 뒤쪽 병실 번호를 힐끗 올려다봤다.“누구인데? 네 친구는 나도 다 알아.”“아무도 아니에요. 엄마는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하도진은 두 팔을 살짝 벌려 채선화가 앞으로 가지 못하게 막아섰다. 더 이상 들어가지 말라는 뜻이 너무 선명했다.채선화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하도진을 한번 쳐다봤다. 그러면서도 병실 호수는 속으로 똑똑히 기억해 두었다.“그래. 난 학교에 일이 있어서 먼저 갈게. 다음 주말이 할아버지의 생신인 걸 잊지 마. 올해는 두 분께서 생일상을 크게 벌이고 싶지 않다고 하셨어. 가족끼리 밥만 먹으면 돼.”하도진은 마음이 전부 얼굴에 드러난 채 고개를 끄덕였다.채선화는 갑자기 뭔가 떠올린 듯 덧붙였다.“걔한테도 미리 말해 둬. 일 있으면 알아서 조정하라고 해. 하씨 집안의 며느리가 됐으면 너무 제멋대로 굴면 안 되지.”하도진은 미간을 좁혔다.채선화가 말하는 ‘걔’가 누군지 모를 리 없었다.“장담은 못 해요. 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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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6화

간호사가 민하윤 팔에 꽂힌 주삿바늘을 빼 주다가 무심코 한마디를 덧붙였다.“남편분이 7일 내내 복도 대기 의자에 앉아 계셨어요. 저랑 다른 간호사들도 야간 근무 서다가 몇 번이나 봤거든요. 왜 병실 안에는 안 들어오시냐고 물었더니 환자분이 쉬는 데 방해하고 싶지 않다고만 하시더라고요.”민하윤은 입술을 다문 채 미간을 살짝 좁혔다.‘남편이라고?’임형섭은 퇴원 수속을 마치고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마침 나가던 간호사와 딱 마주친 간호사는 웃으며 농담하듯 말했다.“이제야 복도 긴 의자에서 밤새는 일은 안 하셔도 되겠네요.”그제야 임형섭이 계속 곁에 있었다는 걸 알게 된 민하윤은 고개를 숙인 채 손등에 붙은 테이프만 천천히 쓸어내렸다.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은 민하윤은 깊은 생각이 잠겼다.간호사가 나가자 병실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임형섭은 조금 난처한 얼굴로 돌아서서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간호사가 한 말 때문에 그대로 들켜 버렸기 때문이었다.임형섭은 민하윤에게 괜한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앞으로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임형섭이 문득 민하윤에게 물었다.“네가 냈던 사직서는 내가 아직 서명하지 않았어.”민하윤은 깜짝 놀라 임형섭을 올려다봤다.태유 은행 퇴직 절차는 먼저 부서에 사직서를 올리고 부장의 결재를 받아 시스템에 등록한 뒤, 다시 행정부로 넘어가 세 명의 부행장의 서명을 받아야 했다. 마지막으로 인사팀이 퇴직 처리를 마무리하면서 개인 사회보험과 퇴직 보상 업무까지 정리하는 구조였다.민하윤은 사직 메일을 곧장 인사팀으로 보냈다. 애초에 절차부터 맞지 않았다. 설령 마지막에 세 명의 부행장에게 올라갔다고 해도 그중 한 명인 임형섭이 결재하지 않으면 퇴직은 성립되지 않았다.“하윤아, 홧김에 그러지 마. 몸부터 잘 추슬러. 앞으로 살아갈 날이 길어. 너한테는 이 일이 필요해.”민하윤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임형섭이 민하윤을 휠체어에 태워 주는 동안 민하윤은 가만히 몸을 맡겼다.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2층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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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7화

“내려.”하도진은 민하윤을 한 번 안아 보고 싶었지만 차마 손을 뻗지 못했다. 민하윤 앞에서 하도진은 늘 자신의 비겁함을 무뚝뚝함과 냉담함으로 감추고는 했다.하도진은 몇 번이고 사랑을 위해 손을 내밀었다가도 또다시 거둘 수밖에 없었다. 하도진은 손바닥을 세게 움켜쥔 채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가까스로 눌렀다. 그리고 차 문을 붙든 채 안에 앉아 있는 민하윤을 바라봤다.두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잘 알면서도 모르는 사이였다.수없이 많은 밤 동안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고 잠들었다. 서로 끌어안으면서 입을 맞췄고 몸을 섞은 적도 있었다.서로의 몸은 너무도 잘 알았지만 그 친밀한 관계 안에서 정작 서로의 영혼에 닿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민하윤은 차 안에 굳은 듯 앉아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두 손만 계속 꼬아 쥐며 하도진과 말없이 맞섰다.“할 얘기가 있어. 이혼 합의서에는 서명할게. 일단 나랑 같이 가자.”민하윤은 입술을 달싹이다가 거의 소리를 낼 뻔했다. 그러다 무언가를 떠올린 듯 황급히 입을 다물고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임형섭은 조금 떨어진 곳에 묵묵히 서 있었다. 마치 완전히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임형섭은 언제나 민하윤의 선택에 개입하지 않았다. 민하윤이 내린 선택이 자신 바람과 정반대일 때조차도 여전했다.하도진은 습관처럼 손으로 차 문의 윗부분을 가려 주었다. 민하윤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임형섭과 눈을 한번 마주친 뒤 몸을 돌려 검은 벤틀리에 올라탔다.차 안에는 여전히 민하윤이 익숙하게 기억하는 향기가 은은하게 남아 있었다. 끝 향이 완전히 날아가고 나면 결국 옅은 꽃향기만 희미하게 남는 그 냄새였다.차 안에는 냉기가 가득했고 민하윤은 저도 모르게 가볍게 몸을 떨었다.“창문 조금 열고 에어컨 꺼.”서명인은 숨도 크게 못 쉬고 곧바로 하도진이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러고는 눈치 빠르게 조수석 수납함에서 새 담요를 꺼내 하도진에게 건넸다.하도진은 포장을 뜯어서 직접 민하윤의 어깨에 담요를 둘러 주었다.두 사람은 내내 아무 말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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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8화

[집에서 더 챙겨 갈 건 없어?]하도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시선은 욕심스럽게 민하윤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친밀했던 관계 안에서 두 사람은 너무 지쳐 버렸다.서른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도 사랑 앞에서는 여전히 서툴고 거칠었다. 미숙한 남녀처럼 서로의 진심을 조심스럽게 보듬을 줄 몰랐고 결국 이 결혼을 엉망으로 망쳐 버렸다.민하윤은 고개를 저었고 입가에는 씁쓸한 웃음이 번졌다.“가방들... 옷이랑 보석도 난 이제 다 필요 없어.”하도진은 평생 누구 앞에서도 먼저 고개를 숙여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야 겨우 고개를 숙일 줄 알게 되었지만 정작 방법은 완전히 틀려 있었다.민하윤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민하윤은 하도진을 한번 가만히 훑어보더니 세상이 뒤집힐 일처럼 문득 웃었다.하도진은 잠깐 멍해졌다.그 웃음 속에는 억지스러움과 비웃음이 섞여 있다는 걸 알아차린 순간 표정이 굳었다.“난 그런 뜻이 아니야. 그건 원래 다 너 주려고 산 거니까 네가 가져가면…..”민하윤은 고개를 저으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일부러 하도진과 거리를 벌렸다.[무슨 뜻인데요? 도진 씨?][그 물건들로 저한테 보상이라도 하겠다는 거예요? 돈으로라도 위자료를 주겠다는 거예요? 뭘 보상하겠다는 거죠? 뭘 보상할 수 있는데요? 아니면 그저 당신 양심이라도 좀 편해지려고요?][혼전계약서에 분명히 적혀 있잖아요. 도진 씨 명의의 돈은 한 푼도 제 것이 아니라고요. 제가 나갈 때 제 물건은 이미 다 챙겨 갔어요. 그런데 도진 씨는 제가 뭘 더 가져가길 바라는 거예요?]민하윤은 점점 화가 치밀었다.하도진은 늘 그렇듯 너무 쉽게 민하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하도진이 굳이 입 밖으로 다 꺼내지 않아도 오만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태도만으로도 민하윤은 쉽게 자극받았다.“하윤아, 난 그런 뜻이 아니었어.”하도진은 손을 들어 미간을 눌렀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고 목소리도 저절로 낮아졌다.“네 마음대로 생각해. 안 가져가면 결국 다른 사람 좋은 일만 시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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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9화

민하윤은 아무렇지 않은 척 몸을 살짝 비켜 하도진과 거리를 벌렸다.[그래서요? 아직 이혼 안 했으면 어쩌려고요? 말 친구라도 해 달라고요? 아니면 또 잠자리라도 원해요?]그러던 민하윤이 갑자기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그건 평소와는 전혀 다른 웃음이었다. 눈이 시릴 만큼 차갑고 비웃는 듯한 미소에 하도진의 마음은 서서히 바닥으로 가라앉았다.하도진은 한참 동안 민하윤만 바라봤다.“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민하윤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민하윤은 하도진을 너무 잘 알았다. 지금 이렇게 자신을 붙잡고 질질 끌며 선뜻 놓지 못하는 건 죄책감 때문일 수도 있었고 어쩌면 그 외의 다른 감정 때문일 수도 있었다.하지만 그런 다른 감정이 대체 뭔지는 이제 민하윤도 더는 따지고 싶지 않았다.민하윤은 이제 많이 지쳤고 하도진과 이런 식으로 계속 얽히고설키는 것도 이제는 지겨웠다.“야옹!”그때 집 안쪽에서 살이 포동포동 오른 삼색 고양이 한 마리가 재빠르게 뛰어나왔다.민하윤의 눈에 순간 놀라움이 스쳤다.‘정말 예전에 이도 제대로 안 난 채 작고 보송보송하던 그 새끼 고양이 맞나? 아주머니가 대체 뭘 어떻게 먹였길래 이렇게까지 통통해진 거지?’민하윤은 저도 모르게 쪼그려 앉아 고양이를 품에 안았다.그러고는 부드럽고 윤기 나는 털을 조심스럽게 쓸어내렸다.그런데 하도진이 뜬금없이 말했다.“내 고양이야. 그건 못 데려가.”민하윤은 갑자기 울고 싶어졌다.이 집 안에서는 어떤 것도 자기 것이 아니었다.오직 이 고양이만 길가 화단에서 직접 주워 온 유일한 존재였다.임신한 뒤 의사는 태아가 불안정하니 반려동물은 당분간 피하는 게 좋다고 했다. 특히 고양이는 톡소플라스마를 옮길 수 있어서 산모와 태아 모두에게 좋지 않다고 했다.민하윤은 아무리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나지혜에게 조금만 고양이를 더 돌봐 달라고 부탁했었다.그리고 언젠가는 꼭 이 아이를 다시 데려오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민하윤은 아무것도 필요 없었고 오직 이 고양이만 데려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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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0화

임형섭은 조용히 차를 몰았다.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어둡고 복잡한 생각들은 민하윤 앞에 조금도 드러내지 않았다.어쩌면 민하윤에게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몰랐다. 불쾌한 사람들과 아픈 기억을 잊고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미래를 다시 받아들일 준비를 할 시간 말이다.진정한 이별은 대개 소리 없이 찾아온다. 사람은 나름대로 모든 준비를 마치고 마지막만큼은 품위 있게 끝내고 싶어 하지만 세상일은 좀처럼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안색이 몹시 창백한 민하윤은 차에서 내리기 직전, 조수석의 거울을 보며 입술에 립스틱을 덧발랐다.아무리 화장해도 유산 수술이 몸에 남긴 상처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민하윤은 단정한 투피스를 입고 연한 누드톤 하이힐을 신었다.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정성스럽게 꾸몄다.아마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몰랐다. 앞으로 다시는 이 집 대문을 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분명 좋은 집안에 시집온 뒤로 민하윤의 삶은 달라졌다.하지만 누구나 부러워하는 하씨 가문 며느리라는 자리는 민하윤에게 한 번도 행복한 자리가 아니었다.민하윤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오늘 어르신의 생신 회식에서 짧고도 황당했던 두 사람의 결혼에 스스로 마침표를 찍기로 했다.다른 이유는 딱히 없었고 민하윤은 그저 자기 자신에게만큼은 분명한 결말을 남기고 싶었다.무엇보다 하도진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한때 진심으로 민하윤을 대해 준 사람들이었으니 민하윤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섣달그믐날 밤, 하도진은 병원에서 첫사랑 고은율의 곁을 떠나지 않았고 민하윤은 혼자 불편한 마음으로 본가에서 설을 보내며 어른들이 건넨 새해 축하 세뱃돈을 받았다.마지막으로 세뱃돈을 받았던 때가 언제였는지조차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았다.민하윤은 다시 한번 숨을 골랐다.그리고 결심을 내린 듯한 얼굴로 차 문을 밀어 열었다.바람이 살짝 스치고 지나가자 하도진은 민하윤의 몸에 남아 있던 향기를 느꼈다.그 순간 하도진은 문득 후회했다.‘젠장, 무슨 이혼이야.’처음부터 끝까지 하도진은 민하윤이 자기 곁을 떠나는 일 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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