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저물 무렵, 민하윤은 서정아와 아버지께 드릴 옷과 보양식을 들고 요양원으로 갔다.서동민은 연세가 들수록 몸 상태가 더 나빠지고 있었다. 예전처럼 바나나를 먹으며 애니메이션을 보지도 않았고 얼굴빛도 잿빛으로 변한 채 조용히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민하윤은 서동민의 손을 꼭 잡고 아빠라고 불렀지만 아무런 반응도 돌아오지 않았다.돌아가기 전에 민하윤은 몰래 찬장 안에 봉투 하나를 넣어 두고 병원 건물을 나선 뒤에야 서정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민하윤은 서정아가 받지 않을까 봐 걱정했고 그렇게라도 해야만 감사한 마음을 전할 수 있었다.큰길가에는 검은 마이바흐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하도진은 조수석 쪽 차체에 기대선 채 손끝에 담배를 하나 끼우고 있었다. 하얀 연기가 피어올라 차갑고 엷은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민하윤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그쪽으로 걸어갔다. 하도진과 스쳐 지나가려는 순간, 몸이 갑자기 휘청했다. 하도진은 민하윤의 손목을 붙잡아 자기 품으로 세게 끌어당겼다.하도진은 피우던 담배를 바닥에 버리더니 윤기가 나는 구두로 붉은 불씨를 짓이겨 껐다. 하도진의 손은 차가웠고 품 안에서는 바람이 가득 찬 것처럼 싸늘한 기운이 밀려왔다.“언제 돌아왔어? 민하윤, 너 임형섭이랑 결혼했어?”민하윤은 입을 다문 채 얼굴을 돌렸다. 누런 가로등 불빛 아래 두 사람의 길고 가는 그림자가 얽혀 있었다.하도진은 자조하듯 웃었다.“그래. 너는 나랑 할 말이 없겠지. 그럼 내가 말할게. 그 여자애는 집에서 붙인 맞선 상대였어. 내가 새로 사귄 여자 친구도 아니고 더더욱 사모님도 아니야.”“네. 알아요.”민하윤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요염한 눈빛이 소리 없이 하도진의 얼굴 위에 내려앉았다.하도진은 어색하게 목울대를 굴리더니 무의식중에 민하윤을 자기 품으로 더 끌어당겼다. 매서운 북풍이 두 사람 사이를 휘감았다.“너 결혼했지? 임형섭이랑...”“하 대표님, 그거 말고 또 하실 말씀 있나요?”민하윤은 하도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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