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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사랑한다고 말해줘: Chapter 431 - Chapter 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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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1화

남자의 손은 뼈마디가 선명했다. 차갑고 하얀 피부 아래로 푸른 핏줄이 희미하게 비쳤고 문을 밀어붙일 때는 손등의 힘줄까지 불거졌다. 묘하게 숨이 막히는 긴장감이 넘쳤다.민하윤은 홱 돌아섰다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왜 여기 있어요? 설마 저를 따라온 거예요?”“나 여기 살아.”남자의 목소리는 낮고 무거웠고 한마디 한마디가 바닥에 꽂히듯 또렷했다.“왜 여기 살아야 하는데요? 설마 옆집에 새로 들어온 사람이 당신이었어요?”민하윤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자기 귀를 의심했다.“내가 왜 여기 살면 안 돼? 항도시에는 내가 있을 곳이 없어.”하도진은 너무도 담담하게 말했다.“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요. 항도시에는 5성급 호텔이 널렸는데 묵을 데가 없어서 제 맞은편 집을 따로 빌렸다고요? 도진 씨, 도대체 무슨 생각이에요?”민하윤은 화가 치밀어 올랐고 가슴속에서 분노가 천천히 불붙기 시작했다.하도진은 늘 그렇듯이 민하윤의 마음을 아주 쉽게 흔들고 뒤집어 놓았다.민하윤은 이를 악물고 힘을 줬지만 문을 버티고 선 하도진을 밀어낼 수가 없었다.“별 뜻은 없어. 호텔은 좀 불편해서 못 지내겠고 우연히 네가 사는 단지에 집을 구했을 뿐이야. 그게 더 우연하게도 네 맞은편이었고.”“도진 씨, 그런 말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항도시 금융 포럼도 모레면 끝나요. 호텔이 불편하다고 수백만 원을 들여 집을 따로 빌리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하도진은 입술을 꾹 다문 채 깊은 눈으로 민하윤을 바라봤다.“나 돈 많아. 그 정도는 낼 수 있어.”민하윤은 순간 할 말을 잃었고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지금 내가 말이 돈 얘기였어? 돈 많으면 다냐고!’“방금 속으로 나 욕했지?”“네?”미간을 찌푸린 민하윤은 더는 이런 유치한 실랑이에 힘을 빼고 싶지 않았다.“제가 무슨 욕을 해요?”하도진은 눈빛이 바로 어두워졌다.표정은 음울하고 위태로워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읽히지 않았다.민하윤은 더는 하도진과 얽히고 싶지 않았고 눈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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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2화

“나랑 얘기 좀 하자.”하도진의 몸 안에서는 불덩이 같은 뜨거운 무언가가 마구 날뛰고 있었다.사실 하도진은 아직도 포기하지 못했다.오랫동안 억눌러 왔던 몸은 메마른 땅에 단비라도 내린 듯 단숨에 달아올랐고 욕망에 완전히 불이 붙은 상태였다.“무슨 얘기를 하는 거예요! 이제 와서 더 무슨 할 말이 있다고 그래요? 미쳤어요? 우리는 이미 이혼했잖아요. 제발 좀 놔줘요!”민하윤은 울분이 치밀어 자기 쇄골 쪽에 얼굴을 묻고 있는 하도진을 있는 힘껏 밀어냈다.하도진은 혀끝이 얼얼했고 아직 희미한 통증도 남아 있었다.하도진은 고개를 들고 차갑게 민하윤을 바라보더니 너무도 뻔뻔하게 말했다.“난 동의한 적 없어. 이혼 같은 거 애초에 동의한 적 없다고.”“이혼 증명서까지 다 받았는데 무슨 소리예요? 그럼 그때 저랑 같이 가서 그걸 받아 온 사람은 누구였는데요?”“개가 갔겠지. 난 동의 안 했어.”하도진은 자기 몸에 걸친 니트를 벗어 던지면서 민하윤을 한 걸음씩 더 몰아붙였다.“하도진, 진짜 이 개자식아!”민하윤은 완전히 이성을 잃은 듯 주먹으로 하도진의 가슴을 마구 때렸다.“마음껏 욕해. 계속해도 돼.”이런 상황인데도 하도진의 마음 한구석에는 이상한 기쁨이 스쳤다.하도진은 민하윤이 저렇게 다급한 순간에 자기 이름을 부르는 게 좋았다.심지어 더 욕해 보라고 부추길 만큼 비틀려 있었다.“싫어요! 도진 씨, 제발 저한테 그러지 마세요.”민하윤의 눈가에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민하윤은 황급히 고개를 돌려 하도진이 하려는 입맞춤을 피하려 했다.다급한 와중에 민하윤은 하도진의 입가를 깨물었다. 그러자 피 냄새가 입안에서 퍼졌다.민하윤은 하도진의 피를 맛봤다.짰고 쓰고 비릿한 느낌이 들었다.하도진의 순간 마음이 그대로 철렁 내려앉았다.이미 욕망은 손쓸 수 없을 만큼 치닫고 있었지만 하도진은 당황한 채 억지로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눈꼬리는 붉게 달아오른 하도진은 손끝으로 민하윤의 눈물을 닦아 주려 했다.“꺼져요. 제 집에서 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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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3화

현관문은 반쯤 열린 채, 하도진은 떠나버렸다.민하윤은 흘러내린 드레스 끈을 끌어 올리고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민하윤은 하도진과 질척이면서 다시 얽히고 싶지 않았다.민하윤의 사랑은 한 번 끝나면 거기까지였다. 지나간 건 지나간 거고 헤어졌으면 그대로 영영 남이 되어야 했다.그런데도 하도진이 그런 말을 할 때, 민하윤은 심장이 제멋대로 찌르듯 아팠다.방 안에는 조금 전까지 뒤엉켰던 뜨거운 기운이 아직도 어지럽게 남아 있었다. 하도진은 민하윤의 몸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끝까지 가지도 않았는데 민하윤은 벌써 힘을 다 빼앗겨 버린 느낌이 들었다.민하윤은 사실 많이 두려웠다.조금만 더 하도진의 뜻대로 흘러갔다면 결국 자신도 참지 못하고 또다시 하도진과 선을 넘어 버렸을 것 같았다.‘난 왜 그럴까...’분명 민하윤은 짐을 다 싸 들고 머나먼 명원시를 떠나 혼자 항도시까지 와서 악착같이 버티며 살아가고 있었다.‘그런데 도진 씨는 왜 실패한 결혼을 아직도 놓지 못하는 걸까? 왜 이렇게까지 뻔뻔하게 다시 쫓아오는 걸까?’민하윤은 피가 머리끝까지 치솟는 듯했다.진하고도 무력한 느낌이 천천히 몸 안을 잠식해 가는 느낌이 들었다.가쁜 숨을 내쉬는 입안에는 아직도 하도진의 비릿하고도 달큰한 피 맛이 희미하게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하도진은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구겨진 셔츠와 헐거워진 옷깃, 그리고 깨물려 터진 뒤에 딱지가 앉은 입가의 상처까지 선명하게 보였다.바닥에 쓰러진 채 정신없이 잠든 하도진의 꼴은 얼마나 엉망인 어젯밤을 보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그때 초인종이 질릴 만큼 끈질기게 울렸다.하도진은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표정을 굳히더니 비틀거리며 장식장을 짚고 겨우 현관문을 열었다.문밖에는 진호영 일행이 아침거리를 들고 서 있었다.문이 느닷없이 열리자 눈치가 더딘 구준오는 손을 아직도 초인종 위에 올린 채 그대로 서 있었다.구준오는 하도진의 엉망인 몰골을 보는 순간 본능적으로 고은율 쪽을 힐끗 쳐다봤다.역시나 고은율의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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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4화

하도진은 눈을 내리깔더니 고은율을 차갑게 한번 내려다봤다.“내가 문 닫으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굳이 손을 갖다 댄 거잖아.”“너 방금 뭐라고 했어?”“만 번을 더 말해도 똑같아. 방금도 자기가 스스로 손을 문에 갖다 댄 거라고...”당장이라도 둘이 붙을 듯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진호영이 죽을힘을 다해 말렸다. 구주오와 하도진은 모두 혼자서는 감당이 안 됐다. 진호영은 하도진의 등을 떠밀며 밖으로 끌고 나가면서도 필사적으로 싸움을 말렸다.“아래 보니까 약국 있던데. 가서 은율 누나의 약 좀 사 와. 형도 입가에 상처 약 바르고.”하도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진호영에게 떠밀리듯 엘리베이터 앞까지 나갔다.그때 고은율이 갑자기 몸을 돌려 성큼성큼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나도 같이 가면 안 돼?”말과 동시에 고은율은 하도진의 손을 붙잡았다.“놔.”하도진은 곁눈질하며 차갑게 말했다.그러자 고은율은 쓴웃음을 지으며 입술을 깨물고는 손을 놓았다.두 사람은 선후로 엘리베이터에 탔다. 숫자가 1층까지 내려가는 동안 하도진은 한 손을 주머니에 꽂은 채 맨 앞에 서 있었다.아래층에는 편의점과 24시간 영업하는 약국이 있었다. 하도진은 약국의 문을 밀고 들어갔지만 화단 옆 좁은 길에서 걸어 나오는 민하윤을 미처 보지 못했다.민하윤은 그대로 걸음을 멈췄고 삐끗한 발목의 통증조차 순간 잊어버렸다.오늘 아침 출근하려고 집을 나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하이힐이 돌바닥 틈에 끼어 버렸다. 발목은 심하게 접질렸고 민하윤은 그대로 바닥에 세게 넘어졌다.출근은 애초에 불가능했기에 민하윤은 절뚝이며 작은 길로 되돌아왔다. 원래는 약국에서 타박상용 스프레이와 연고라도 사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민하윤은 하도진과 고은율이 앞뒤로 주택에서 나오는 장면을 보게 됐다.약국 직원은 찰과상용 연고와 포비돈 면봉과 외상용 약 몇 가지를 챙겨 줬다. 하도진은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그것들을 고은율에게 내밀었다.그런데 고은율은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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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5화

하도진은 풀숲 쪽에서 희미한 인기척을 들은 것 같아서 고개를 들었다.하지만 시야가 잘 닿지 않는 좁은 길은 텅 비어 있었다.‘아마 고양이겠지.’하도진은 싸늘한 얼굴로 시선을 거두고 고은율의 퉁퉁 부은 손등을 바라보며 복잡한 심경에 잠겼다.두 사람은 나란히 다시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민하윤은 한참 뒤에야 천천히 몸을 일으켰고 가슴 한구석이 묘하게 답답했다.무슨 감정인지 딱 잘라 설명할 수 없었고 굳이 깊이 파고들고 싶지도 않았다.민하윤은 일주일 동안 집에서 재택근무를 했다.가끔 현관문 렌즈로 밖을 내다봤지만 맞은편 집 문은 내내 굳게 닫혀 있었다.그날 밤 완전히 얼굴을 붉힌 뒤로 하도진은 정말 더 이상 민하윤을 찾아오지도 않았다.‘아마 명원시로 돌아갔겠지.’항도시 경제 포럼도 이미 끝났으니까 하도진은 더 이상 이곳에 머물 이유도 명분도 없었다.민하윤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그때 임형섭에게서 메시지가 하나 도착했다.[하윤아, 나 내일 명원시로 돌아가. 오늘 밤에 잠깐 볼까?]민하윤은 턱을 괴고 잠시 생각하다가 답장을 보냈다.[좋아요.]삐끗했던 발목은 붓기가 많이 가라앉아 있었고 민하윤은 절뚝이며 욕실로 가서 씻고 나왔다.막 머리를 감고 나온 참이라 드라이어로 말리지도 못했는데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민하윤은 당연히 임형섭이 데리러 온 줄 알았다.민하윤은 수건으로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의 물기를 닦으며 문을 열었다.하지만 문밖에는 한 손을 주머니에 꽂은 채 검은 상의와 검은 바지를 입은 하도진이 서 있었다.흑갈색 머리카락이 하도진의 검은 눈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들어가도 돼?”“안 돼요.”민하윤은 생각할 것도 없이 문을 닫으려 했다.하지만 하도진의 손이 조금 빨랐다.큰 손이 문을 막아섰다.“내일 여기 떠나. 집에 좀 일이 생겼어. 가기 전에 너랑 한 번만 더 얘기하고 싶어.”하도진 태도는 그야말로 완강했다.조금만 늦었으면 하도진의 손이 문틈에 그대로 끼었을 정도였다.민하윤은 하도진을 한 번 노려보더니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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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6화

하도진은 민하윤을 바라봤다.하지만 민하윤은 하도진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전부 어떻게든 고은율과 선을 긋겠다는 변명처럼 들렸다.그래서 민하윤은 정말 기가 막혔다.그토록 오만하고 제멋대로인 하도진이 자기한테 이렇게까지 고개를 숙이며 변명하고 있다니 말이다.“그만해요. 듣고 싶지도 않으니까요.”민하윤은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얼굴을 홱 돌려 버렸다.하도진은 헛웃음을 흘리더니 뜨거운 시선으로 민하윤을 빤히 바라봤다.“네 발은 피아노 안 치잖아. 그래도 다치면 안 돼. 그리고 다른 사람 손이 피아노를 치든 말든 다치든 말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이제 알아듣겠어?”“하윤아, 머리에서 물 떨어져.”하도진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저 걱정하는 평범한 한마디였는데도 민하윤의 얼굴은 순식간에 확 달아올랐다.민하윤은 하도진을 한 번 노려보고 하도진의 시선을 따라 아래를 내려다봤다.잠옷에 뭐가 문제라도 있나 싶었는데 그제야 아주 난감한 사실을 알아차렸다.민하윤은 속옷을 안 입고 있었고 젖은 머리끝에서 떨어진 물이 가슴 쪽 흰 잠옷을 축축하게 적시고 있었다.“도진 씨, 진짜 미쳤어요? 대체 어디를 보는 거예요!”민하윤은 두 팔로 가슴을 감싸안으며 소리쳤다.그래도 분이 안 풀려 옆에 있던 쿠션을 집어 하도진에게 던지고는 씩씩거리며 노려봤다.“이제 더 할 말 있어요? 없으면 그냥 가요.”하지만 하도진은 피하지도 않았고 쿠션이 몸에 맞아도 가만히 받아냈다.하도진은 시선을 거두고 본론을 꺼냈다.“할머니가 입원하셨어. 연세도 있으시고 심장 쪽이 좀 안 좋으셔서 명원시로 돌아가야 해.”그 순간, 민하윤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고 답답한 목소리로 짧게 말했다.“아...”“같이 갈래?”하도진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결국 묻고 말았다.민하윤은 고개를 숙인 채 손가락만 꼬물거렸다.그러다가 하도진의 말 속에서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물었다.“할머니께서 많이 위중하신 거예요?”“응. 심근경색이야. 스텐트 넣어야 해서 수술도 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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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7화

아이는 끝내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지만 두 사람에게는 똑같이 남은 상처였다.하도진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마음이 무너지기 직전까지 몰린 민하윤은 바로 울분이 치밀었고 결국 눈물이 소리 없이 떨어졌다.하도진은 민하윤의 앞까지 다가가 쪼그려 앉아 손으로 눈물을 닦아 줬다.그리고 그대로 민하윤을 품에 안았다.민하윤의 얼굴이 하도진의 가슴팍에 닿자 민하윤은 입술을 꽉 깨물고 감정을 억누르려 했지만 좀처럼 뜻대로 되지 않았다.오히려 울음은 더 거세졌고 앙상한 두 어깨는 계속 떨렸다.하도진은 속이 쓰렸다.품 안에서 소리 없이 우는 민하윤을 안고 있으니 심장이 산산조각 나는 것 같았다.잃어버린 아이가 어찌 하도진의 마음속 상처가 아니었겠는가.그건 이미 딱지가 앉은 흉터처럼 건드릴 수도 없고 스치기만 해도 안에서 피가 다시 배어 나오는 상처였다.다만 하도진은 이제야 아이를 잃은 일이 민하윤에게 이렇게까지 큰 타격이었는지 알게 되었다.민하윤은 마취도 없는 상태에서 또렷이 의식을 유지한 채 수술의 고통을 견뎌야 했다.이미 사람 형체를 갖춘 작은 생명이 몸 안에서 조금씩 피가 되어 빠져나가는 상황을 맨정신으로 느껴야 했다.수술을 마친 뒤 민하윤은 너무 차분했다.아니, 차분하다 못해 마비된 사람처럼 보였다.감정이 잠잠한 게 아니라 무서울 정도로 아무 반응이 없었다.그래서 하도진도 민하윤이 아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고 착각했었다.민하윤은 임신과 유산 사실도 끝까지 숨겼으니까 말이다.하도진은 자기가 우연히 들이닥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아이가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평생 몰랐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민하윤의 눈물 때문에 하도진의 셔츠가 축축해졌다.민하윤이 한참을 울다가 겨우 몸을 빼내려 하자 하도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휴지를 건넸다.그제야 민하윤은 조금 전까지 하도진이 자기 앞에 반쯤 무릎을 꿇다시피 앉아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좀 괜찮아졌어?”하도진이 한참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하윤아, 아이를 끝내 지키지 못한 건 나도 똑같이 아파. 네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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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8화

고작 6개월이었지만 그 짧은 시간 사이 하도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달라진 민하윤을 보고 있었다. 명원시에서 늘 몸을 사리고 조심스럽고 수줍기만 하던 민하윤과 지금 눈앞의 여자가 정말 같은 사람인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였다.하도진은 그런 민하윤의 성장과 변화를 진심으로 기뻐했다.민하윤이 항도시에서 자기 힘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안도했고 또 흐뭇했다.하지만 하도진은 겉으로는 그렇게 강해 보이는 민하윤의 마음속에 그렇게 깊고도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을 줄은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다.민하윤은 아이가 떠난 고통과 죄책감을 견디면서도 동시에 스스로를 사랑받을 자격도 행복할 자격도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다.그런 생각에 하도진은 고개를 살짝 젖히면서 눈가에 맺힌 눈물을 어떻게든 눌러 삼키려 애썼다.“하윤아, 내가 그런 말을 한 건 어른들이 널 탓할까 봐서였어. 아이가 그렇게 된 건 우리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그런데 내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면 집안의 어른들은 아이를 잃은 책임을 전부 네 탓으로 돌렸을 거야. 난 네가 더 힘들게 되는 걸 보고 싶지 않았어. 너한테 짊어질 필요도 없는 죄책감이랑 압박까지 떠안게 하고 싶지도 않았어. 그래서 내가 어른들 앞에서 아이는 내가 지우라고 했다고 말했어. 하윤아, 왜 너는 늘 내가 하는 말을 절반만 듣고 내 마음까지 네 마음대로 단정하는 거야?”하도진은 목울대를 힘겹게 굴렸다.눈물도 억울함도 전부 혼자 삼켜 내느라 눈가가 젖어 들었고 목소리는 점점 낮아졌다.하도진은 끝내 울음이 섞인 채 물었다.“하윤아, 너는 대체 무슨 자격으로 내가 널 사랑하지 않았다고, 네 뱃속의 아이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건데?”민하윤은 그대로 얼어붙었고 마치 누가 몸의 힘을 모조리 빼 가 버린 사람처럼 멍해졌다.민하윤은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터져 버린 듯했고 심장이 점점 밑으로 가라앉았다.하도진이 지금 말하는 건 민하윤이 한 번도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진실이었다.하도진은 이내 돌아서더니 다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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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9화

하도진은 사진을 잘라낸 한 조각을 챙겨 떠나려다가 곧 다시 돌아왔다.그러더니 민하윤의 요염하면서도 맑은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넌 번호도 바꾸고 내 연락처도 전부 차단하고 지웠어. 내가 널 연락할 방법 하나 정도는 알려줘.”하지만 민하윤은 제자리에 선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할머니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내가 너한테 연락을 못 하잖아.”하도진은 마치 자신이 한 말에 사적인 마음은 전혀 섞여 있지 않은 것처럼 담담하게 민하윤을 바라봤다.민하윤은 손을 펼치더니 하도진의 휴대폰을 받아 들고 번호를 입력했다.하도진은 그 번호를 머릿속에 깊이 새긴 뒤 돌아섰다.민하윤은 멀어지는 하도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하도진의 뒤에 복슬복슬한 꼬리가 하나 달린 것 같은 이상한 착각까지 들었다....하도진이 명원시에 도착한 다음 날 새벽 3시쯤, 하도진은 민하윤에게 문자 한 통을 보냈다.[할머니가 수술실에 들어가셨어.]민하윤이 하도진의 문자를 확인한 건 4시간쯤 지난 뒤였다.민하윤은 칫솔을 문 채 입안 가득 거품을 물고 세면대 앞에서 하도진에게 답장을 보냈다.[지금은 상태가 어때요?][수술은 잘됐어요?][도진 씨, 무슨 일이든 꼭 알려 줘요. 저 정말 많이 걱정돼요.]병실 안에는 과일 바구니와 꽃다발이 산처럼 쌓여 있었고 간호사들도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채선화와 하준혁도 일을 모두 접고 병실로 와서 곁을 지켰다.하진석은 밤을 거의 꼬박 새웠다.주변에서 아무리 집에 가서 쉬라고 해도 고집을 꺾지 않았다.억지로 정신을 붙들며 아직 마취에서 깨지 못한 김옥자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두 사람은 반평생을 함께 버텨 왔다.평소에는 티격태격할 때가 많아도 정말 중요한 순간이 오면 결국 서로 없이는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하도진은 입술을 꾹 다문 채 민하윤이 보낸 답장을 내려다봤다.민하윤이 할머니를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에 하도진은 마음이 저릿했다.하도진은 답장을 썼다가 지우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다가 결국 딱 한 줄만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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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0화

제누오 남자는 아쉬운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그랬군요. 손에 반지가 없어서 이렇게 예쁜 여자분은 당연히 싱글인 줄 알았어요.”민하윤은 난감하게 웃으며 없는 잔머리라도 넘기듯 손을 들어 올렸다.“원래 결혼반지는 잘 안 껴요. 일할 때는 좀 불편해서요.”“제 아버지는 제누오인이고 어머니는 진후칸인이에요. 그래서인지 언젠가는 당신처럼 아름다운 여자와 결혼해서 진후칸에 정착하고 싶다는 생각도 해요.”그 순간 민하윤은 문득 모든 퍼즐이 맞아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그래서였구나. 항도시의 지점 최상위 VIP 고객이 굳이 날 콕 집어 이 행사에 붙여 놓은 이유가 결국 날 럭셔리 브랜드 총괄에게 잘 보이게 하려는 선물처럼 내민 셈이네.’제누오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한 걸음 더 다가왔다.그러더니 와인잔을 잡고 있던 민하윤의 손을 덥석 감쌌다.짙은 푸른빛이 도는 눈동자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가득 차 있었다.“민하윤 씨, 남편은 하윤 씨를 많이 사랑하나요? 나는 하윤 씨 남편보다 돈도 많아요. 어쩌면 하윤 씨는 다시 생각해 볼 수도 있겠죠. 그 남자를 떠나고 저랑 만나요. 저라면 하윤 씨에게 훨씬 더 좋은 삶을 줄 수 있어요.”민하윤의 미소는 그대로 굳어 버렸고 손을 빼야 한다는 생각조차 순간 잊고 말았다.남자가 몸을 숙이면서 입술이 민하윤의 손등에 닿기 직전이었다.그러자 민하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민하윤은 급히 손을 빼내며 태연한 얼굴로 한 발 뒤로 물러섰다.그때 가방 안 휴대폰이 계속 진동했다.민하윤은 액정을 흘끗 보니 명원시의 낯선 번호였다.심장이 순간 세게 조여 온 민하윤은 급히 핑계를 대고 자리를 떴다.너무 긴장한 나머지 전화를 받는 손가락이 몇 번이나 미끄러졌다.민하윤은 손끝마저 떨리고 있었다.“여보세요.”민하윤의 목소리는 엄청나게 떨렸고 심장은 아직도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하도진은 미간을 찌푸렸다.직감적으로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휴대폰을 귀에서 살짝 떼어 냈다.하도진은 병원 복도 끝까지 걸어 나가 섰다.하도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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