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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사랑한다고 말해줘: Chapter 461 - Chapter 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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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1화

민하윤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삼색이를 안고 결국 뒷좌석에 올라탔다.조수석 문에 손을 짚고 서 있던 하도진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고 눈빛도 어두워졌다.‘괜찮아. 조급해할 필요는 없어. 앞으로 시간은 많아. 하윤이가 한 걸음만 내디디면 돼. 그러면 나머지 아흔아홉 걸음은 내가 걸으면 되지.’삼색이를 데려간 동물병원은 번화한 시내 한복판에 있었다.민하윤은 주변을 둘러봤다. 상권과 오피스빌딩이 빼곡했고 동물병원은 땅값 비싼 자리에 남의 매장 두 칸을 합친 듯한 큰 규모였다. 옆 주차장에 세워진 차들도 하나같이 비싸 보이는 고급차였다.“왜 안 들어와?”하도진이 걸음을 멈추고 제자리에 선 민하윤을 의아하게 돌아보며 물었다.“도진 씨는 가서 일 보세요. 회의 있다면서요?”하도진이 입꼬리를 비틀더니 아주 태연하게 거짓말했다.“갑자기 취소됐어. 오늘은 일정이 비었어.”하지만 민하윤은 굳이 하도진의 말을 꼬집지 않고 품 안에서 축 늘어진 삼색이를 안고 그대로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어머, 삼색이가 왔네요.”연분홍색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눈을 반짝이며 반갑게 다가왔다.“이번에는 예쁜 언니가 데리고 왔네요. 또 목욕하고 수영하러 온 거예요?”그 말에 민하윤도 조금 놀랐다.민하윤은 이곳이 단순한 의미의 동물병원만은 아니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반려동물 케어까지 종합적으로 해 주는 곳이었고 직원들도 삼색이를 익숙하게 알아봤다. 하도진이 삼색이를 데리고 한두 번 온 게 아니었다.하도진은 자연스럽게 민하윤의 품에서 삼색이를 넘겨받으면서 직원에게 말했다.“삼색이의 상태가 많이 안 좋습니다. 허 원장님 진료로 접수해 주세요. 검사도 같이요.”하도진은 이곳이 너무 익숙해 보였다.민하윤은 시큰거리는 손목을 가볍게 돌리고 하도진의 뒤를 따라 걸었다.계단 벽면에는 기다란 유리 진열장이 줄지어 있었고 그 안에는 외국어 포장이 붙은 고양이 사료며 간식이며 생선포, 털 달린 장난감까지 빼곡히 들어 있었다.민하윤은 지나가다 가격표를 흘끗 보고 눈을 크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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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2화

민하윤은 아무 말 없이 1층 수납 창구 앞 줄에 섰다. 품에 안긴 삼색이는 부드러운 머리로 민하윤의 턱을 슬쩍 비볐다.“알았어. 내 잘못이야. 진작 별장 단지의 수컷 고양이들부터 중성화시켜야 했는데...”하도진은 민하윤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도 못한 채 말했다. 심장은 점점 더 빠르게 뛰었고 머릿속은 아직도 멍했다.하도진의 말이 떨어지자 앞에 줄 서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뒤를 돌아봤다. 다들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훑었다.민하윤은 속이 뒤집힐 만큼 창피하고 짜증이 나서 이를 악물고 낮게 하도진을 쏘아붙였다.“진짜 미쳤어요?”하도진은 변명할 말이 없었고 깊게 숨만 들이켰다.삼색이는 원래도 워낙 활발했다. 봄만 되면 유난히 들떠서 자꾸만 하도진의 바짓단을 물고 밖으로 끌어내려 했다.하도진은 삼색이를 데리고 산책하는 걸 딱히 싫어하지 않았다. 호숫가의 벤치에 앉아 담배 한 대 피우고 있으면 삼색이는 잔디밭에서 데굴데굴 구르고 털실 공을 쫓아 정신없이 뛰놀았다.한참 놀다 지치면 다시 하도진의 바짓단을 물었고 하도진과 삼색이는 그렇게 천천히 별장까지 걸어 돌아오고는 했다.하도진은 관자놀이를 꾹 눌렀고 그 순간, 묘한 무력감이 밀려왔다.삼색이는 아주 작정하고 연기라도 하듯 축 처진 몸으로 민하윤의 품에 안겨 있었고 가끔 몸을 웅크리더니 헛구역질까지 했다. 그런 안쓰러운 꼴에 민하윤의 마음은 더 쿡쿡 찔렸고 입술을 꾹 다문 얼굴도 점점 굳어 갔다.“정 안 되면 안 낳게 하면 되잖아.”하도진은 생각도 거치지 않고 내뱉었다.민하윤은 눈을 홱 치켜뜨고 하도진을 노려봤다. 그리고 삼색이의 귀를 두 손으로 가려 주며 고개를 숙여 털북숭이 머리에 자기 얼굴을 살짝 붙였다.약을 받아 나오고 돌아가는 길 내내 차 안은 조용했다. 하도진은 몇 번이고 룸미러로 민하윤을 힐끗거렸지만 민하윤의 얼굴은 차갑기만 했고 기쁨도 슬픔도 읽히지 않았다.“이번 일은 내 잘못이 맞아. 삼색이를 제대로 못 챙겼어. 난 그냥 삼색이가 장염인가 싶었고 사료가 안 맞나 싶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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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3화

하도진은 민하윤을 아파트 아래까지 데려다줬다.삼색이는 민하윤의 무릎 위에 엎드린 채 세상모르게 자고 있었다. 수염 끝이 살짝살짝 떨렸고 우렁차게 코를 고는 소리가 차 안을 가득 메웠다.하도진은 시동을 끄고 안전벨트를 풀었다.그러더니 자세를 조금 고쳐 앉아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하윤아, 너랑 좀 얘기하고 싶은데 괜찮아? 대답 안 하면 허락한 걸로 알겠어.”하도진은 깊게 숨을 들이켠 뒤 최대한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난 네 마음속에 박힌 가시를 뽑아 주고 싶어. 그날 서북 산부인과에서 마주쳤던 밤 말이야. 그때 고은율은 우울증이 심하게 왔었어. 베개 밑에 날이 선 과도까지 숨겨 놨더라. 길이만 해도 십몇 센티는 되는 칼이었어. 내가 걔가 무슨 짓이라도 할까 봐 의사한테 상태를 봐 달라고 했고 의사가 호르몬 불균형 영향이 큰 것 같다고 해서 산부인과 검사를 받게 한 거야.”“맹세할게. 우리 둘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었어.”하도진은 오랫동안 가슴속에 묻어 둔 말을 한꺼번에 꺼냈다.“그때 고은율은 정말 많이 아팠어. 그리고 나는 걔가 마지막으로 붙잡고 있던 줄 같은 존재였고. 그 시기는 나한테도 정말 지옥 같았어. 모래바람만 불던 서북에서 나는 네가 너무 보고 싶었어. 미칠 만큼 말이야. 사실 속으로는 악마 같은 생각도 했어. 죽고 싶으면 죽으라지... 그냥 모르는 척하고 고은율을 내버려둘까? 그런 생각 말이야.”하도진은 코끝이 먹먹해진 목소리로 처참하게 웃었다.그러다가 룸미러 너머로 민하윤의 눈과 잠시 마주쳤다.민하윤은 가슴은 쓰리게 뛰었다.하도진 말대로 그 일은 여전히 민하윤의 마음속에 박힌 가시였다. 겉으로는 이미 상처가 아문 것처럼 보여도 조금만 건드리면 뼛속까지 저릿하게 아팠다. 그래서 민하윤은 그날을 그냥 지나간 일로 흘려보낼 수가 없었다.“내가 진짜 쓰레기 같다고 생각했지?”하도진은 낮게 말했다.“그래도 그렇게 멀쩡한 목숨 하나가 내 눈앞에서 사라지는 건 못 보겠더라. 적어도 내가 외면해서 그렇게 되는 건 안 된다고 생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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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4화

하도진은 한숨을 내쉬며 손끝으로 민하윤의 얼굴에 남은 눈물 자국을 닦아냈다.“하윤아, 네 대답을 기다릴게.”“뭐를요?”민하윤은 코끝이 먹먹한 목소리로 되물었다.민하윤은 늘 그랬듯이 본능적으로 도망치고 싶었다.현실을 마주하기가 두려웠고 다시는 예전처럼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하도진은 눈을 내리깔고 민하윤을 바라봤다.“모르는 척하지 마. 내가 무슨 말 하는지는 너도 알잖아.”“저한테 시간을 좀 주세요.”민하윤은 눈을 내리깔았다.길고 진한 속눈썹 끝에 투명한 눈물이 매달려 있었다.민하윤은 바닥만 보며 서 있었고 마음속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복잡했다.하도진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더니 두 손으로 민하윤의 어깨를 붙잡았다.그러더니 몸을 숙여 사람 홀릴 듯 아름다운 민하윤의 눈가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민하윤은 깜짝 놀라 몸을 피하려 했지만 하도진이 어깨를 붙잡고 있어 움직일 수 없었다.하도진은 민하윤에게 홀린 듯 입술을 한 번 핥았다.그제야 민하윤의 눈물 맛이 혀끝에 닿았다.좀 짭짤했고 떫었다.“시간을 줄게. 대신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는 마. 알겠지?”하도진의 목소리는 낮고 진지했다.“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어. 하윤아, 나 올해 서른넷이야. 아직 젊을 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랑 평범하지만 행복한 일들을 아주 많이 하고 싶어.”하도진은 속이 간질거렸다.민하윤을 붙잡아 그녀의 몸 구석구석에 입 맞추고 싶었고 그동안 눌러 두었던 고통과 인내도 모조리 터뜨리고 싶었다.하도진은 손을 들어 민하윤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나 다음 주에 지벤으로 출장 가. 도저히 뺄 수 없는 회의가 있어. 그동안 다시 생각해 봐. 나랑 어떤 관계를 새로 시작할지 말이야. 연인이든, 부부든... 난 다 받아들일게.”민하윤은 하도진의 말을 곱씹으며 잠깐 생각했다.그러더니 순진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물었다.“제가 말하면 진짜 뭐든 다 받아줄 거예요?”“네가 뭘 원하는지 말해 봐.”민하윤은 자기가 얼마나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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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5화

하도진은 긴 다리를 꼰 채 퍼스트클래스 라운지에 앉아 있었다.하도진은 기분이 아주 좋아 보였다. 입술은 살짝 다물고 있었지만 입꼬리는 은근하게 올라가 있었다.서명인은 자꾸만 하도진을 힐끔거렸지만 속으로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얼마 전만 해도 지벤 법인 투자 설명회에 꼭 참석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크게 한 번 화를 냈는데 지금은 또 뭐가 그렇게 좋은 건지 도무지 몰랐다.줄곧 눈치를 보던 서명인은 하도진에게 딱 걸렸다.“뭘 그렇게 보는 거야?”그러자 서명인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아무것도 안 봤습니다.”“나 이사할 거야. 괜찮은 집 하나 알아봐. 바로 매입하게.”“네? 갑자기 왜 이사를 하시려는 겁니까?”서명인은 도무지 감을 잡지 못했다.땅값만 해도 어마어마하고 시가만 수백억인 별장에 살면서 대체 뭐가 불편하다는 건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하도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가까이 살아야 뭐든 편하지. 지금은 너무 멀어.”말은 그렇게 했지만 머릿속에는 전날 밤에 얼굴이 새빨개진 채 입술을 꾹 다물고 도망치듯 아파트로 들어가던 민하윤의 얼굴만 떠올랐다.“어디가 멀다는 겁니까?”서명인의 미간은 점점 더 구겨졌다.별장에서 에스티 그룹 본사까지 거리를 계산해 봤지만 하도진의 출퇴근 시간은 20분도 안 걸렸다.서명인은 숨이 막혀 왔지만 겨우 참아 내며 물었다.“그럼 조건이라도 말씀해 주시죠. 평수라든지... 구조나 위치라든지.”“우통 인터내셔널 하버 A8동. 가능하면 3층...”하도진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원하는 아파트를 정확히 찍어 말했다.서명인은 머릿속으로 명원시의 유명한 고급 주거 단지를 죄다 떠올려 봤지만 하도진이 말한 우통 인터내셔널 하버라는 이름은 아무리 생각해도 감이 오지 않았다.하도진은 속이 다 시원한 얼굴로 손가락을 딱 튕겼다.마침 라운지 안에 탑승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하도진은 휴대폰을 꺼내 민하윤에게 메시지 하나를 보냈다....민하윤은 회의를 마치고 별생각 없이 엘리베이터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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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6화

그 뒤로 임형섭은 해외로 유학을 떠났고 두 사람은 계속 메일을 주고받으며 연락이 끊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새해나 생일 같은 특별한 날이면 바다를 건너온 선물도 종종 도착했다.두 사람은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끝내 그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디디지 않았다.민하윤은 임형섭이 뭘 망설이는지 알 수 없었지만 자신이 뭘 두려워하는지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사람의 마음이란 한순간에 변할 수 있고 그러다가 결국에 서로 친구로도 남지 못할까 봐 겁이 났다.임형섭의 소중하고 솔직한 마음을 민하윤은 다 알고 있었다.그래서 나중에는 자신이 하도진과 비밀 결혼 중이라는 사실도 먼저 임형섭에게 털어놓았다.그냥 임형섭이 그쯤에서 마음을 접고 편해지길 바랐기 때문이다.하지만 민하윤은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고 자신과 하도진이 사랑이 깨지고 이혼하고 이제는 다시 얽히고설키는 지금까지도 임형섭이 여전히 한결같이 자기 곁을 지키며 가장 아픈 순간들을 함께 건너왔다는 걸 몰랐다.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열렸고 임형섭은 민하윤이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바라봤다.“선배.”민하윤이 갑자기 임형섭을 불렀다.“응. 왜?”“아니에요. 그냥... 고마워요.”“뭘?”임형섭이 의아한 듯 미간을 좁혔지만 민하윤은 웃기만 할 뿐 끝내 말을 잇지 않았고 눈빛 한구석에는 옅은 슬픔이 일렁였다.“정말 이것저것... 다 고마워요.”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닫히자 민하윤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리고... 미안해요.”...비행기가 지벤에 도착했다.하도진은 공항을 빠져나오자마자 밤공기 섞인 서늘하고도 쾌적한 바람을 정면으로 맞았다.지벤에는 실처럼 가는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하도진은 조용한 휴대폰을 쥔 채 차창에 맺힌 흐릿한 빗방울을 바라봤다.그 위로 찬란한 네온사인의 색이 겹겹이 비쳤다.차가 사람들로 붐비는 도로를 가로질러 달리는 동안 하도진은 빗물에 젖은 밤과 현란한 불빛을 배경 삼아 항구의 사진을 SNS에 올렸다.항구는 성대한 야경 속에 잠겨 있었고 멀리 보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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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7화

그 순간, 민하윤의 얼굴이 점점 달아올랐다.폭발한 댓글 창을 보고 있자니 머릿속이 다 복잡해지는 기분이었다.진호영이 남긴 댓글이 보였다.[와 젠장... 내가 뭘 놓친 거지?][누가 살아생전에 다시 우리 도진이 형이랑 잔다는 거야? 형이 누구랑 재결합하는 건데? 나만 혼자 날뛰고 있었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민하윤은 순간 멍해졌다.가장 먼저 든 생각은 백누리가 왜 진호영이랑 카톡 친구냐는 거였다.민하윤은 미간을 찌푸린 채 달아오른 얼굴을 손으로 만졌다.그리고 이를 악물고 하도진과의 개인 채팅창을 열었다.[올린 게시물을 좀 내려 줄래요?]몇 초를 기다렸지만 하도진은 답이 없었다.그러자 민하윤은 한 발 물러섰다.[아니면 누리의 댓글만 지워도 돼요. 괜한 말 나오고 오해 생기는 거 싫어요.]그러자 하도진이 답장했다.[왜? 내가 왜 그래야 하는 거지?]민하윤은 순간 멍해졌고 가슴속에서 분노가 확 치밀어 올랐다.‘흥! 안 지우면 안 지우는 거지. 내가 왜 여기서 저 인간이랑 실랑이를 벌이고 있지? 누리한테 직접 지우라고 하면 끝날 일인데...’민하윤은 테라스에 서서 밤바람을 느끼고 있었다.밤의 풍경은 별장 통유리창 앞에서 내려다보던 도시 야경만큼 화려하진 않았지만 고개만 들면 온통 별이 가득했다.지벤의 항구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명원시는 그와 달리 별이 총총 떠 있었다.그때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한참 잠잠하던 하도진이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하도진은 흰 셔츠를 입은 채 침대 머리맡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있었다.통유리 너머 불빛이 흔들렸고 셔츠 단추는 두세 개쯤 풀려 있었다.벌어진 깃 사이로 반듯한 쇄골과 보기 좋게 잡힌 가슴 근육이 드러났다.민하윤은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직감했다.‘이 인간이 절대 좋은 뜻으로 보낸 게 아니야. 밤중에 맨몸으로 날 유혹하겠다는 심산이 뻔하잖아.’민하윤은 입술을 비틀며 핸드폰을 두드렸고 보낸 말은 독이 오른 것처럼 매웠다.[됐어요. 저한테 이제는 이런 몸매가 안 먹혀요. 차라리 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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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8화

그 순간, 차갑게 웃던 하도진의 얼굴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술집이니 클럽이니 돌아다니면서 결국 프로젝트는 남자 호스트의 복근 위에서 따내야 했다는 거네.”민하윤은 순간 얼어붙었다.수화기 너머로 하도진의 말투가 완전히 뒤틀렸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진지하게 생각해 봤다.“꼭 그런 데만 간 건 아니에요. 가끔은 거래처 언니들이 추천한 마사지나 받는 데도 가고 온천 같은 곳도 갔어요.”거짓말은 아니었다.여자 고객들이 평소에는 아무리 점잖고 냉철하게 굴어도 그런 곳만 가면 늘 붙어 다니는 어린 남자 둘쯤은 곁에 두고 기분을 풀었다.언니들의 비위만 잘 맞춰 주면 프로젝트도 거의 다 순조롭게 굴러갔기에 민하윤도 정말 몇 번 따라간 적이 있었다.그때 거래처 언니가 잘생기고 몸매가 좋은 남자들을 한 줄로 세워 놓고는 손을 한 번 휙 저으며 마음에 드는 사람을 아무나 고르라고 했었다.민하윤은 그때 항도시에서 정말 별걸 다 봤다.잘생긴 남자들은 정말 많았고 스타일도 여러 가지였다.온몸이 근육으로 꽉 찬 우락부락한 스타일도 있었고 연하 특유의 수줍음을 무기로 내세우는 남자도 있었고 해맑고 잘생긴 어린 남자애도 있었고 금테 안경에 슈트까지 차려입은 연상 스타일도 있었다.“하윤아, 그럼 너 진짜 그런 놈들의 몸을 만져 본 거 맞네?”하도진은 관자놀이가 지끈거렸고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다가 붉어졌다가 다시 새파랗게 질려 갔다.민하윤은 입을 다물었다.그런 반응이 하도진한테는 차라리 칼로 찌르는 것보다 더 괴로웠다.하도진은 민하윤이 어떤 사람인지 너무 잘 알았다.차라리 입을 꾹 다물지 거짓말로 둘러대는 사람은 아니었다.“몇 명을 건드린 거야?”하도진은 한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어두운 얼굴로 통유리창 앞에 서 있었다.밤의 빅토리아항은 안개가 자욱했고 알록달록한 네온사인이 번쩍였다.호텔 최고층 스위트룸에 서 있는 하도진의 눈빛은 사람 하나쯤 쉽게 죽일 정도로 날카로웠다.“민하윤, 말해 봐.”“저 진짜 그냥 만져 보기만 했어요. 아무것도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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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9화

두 사람은 말없이 나란히 걸었다.룸 문을 열기도 전에 안에서 수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애들린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옆의 유모차 안에서 수키는 목이 터지라 울고 있었고 눈물은 끊어진 구슬처럼 하얗고 통통한 볼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민하윤은 얼른 수키를 유모차에서 안아 올리고 낮은 목소리로 달랬다.“왜 그래? 왜 이렇게 서럽게 우는 거야?”애들린은 구세주라도 본 듯 눈을 반짝였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분유도 방금 먹였고 기저귀도 새 걸로 갈아 줬어요. 졸려서 보채는 것 같아요. 그런데 안고 달래도 안 되고 유모차에 눕혀서 왔다 갔다 밀어도 소용이 없어요. 진짜 방법이 없네요. 그냥 울다가 지치면 잘까 싶네요.”민하윤은 아이가 우는 걸 자주 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민하윤은 보채는 수키를 살살 달래며 다정하게 초보 엄마인 애들린까지 안심시켰다.“괜찮아요. 제가 한번 해 볼게요. 이렇게 안고 조금 달래면 잠들 것 같아요.”그때 주문한 음식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고 민하윤의 품에 안겨 있던 수키도 어느새 울음을 멈춘 채 손가락을 빨며 새근새근 잠들었다.수키의 얼굴에는 아직 축축한 눈물 자국이 남아 있었다.애들린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감탄했다.“이 녀석이 사람 가려서 괴롭히는 거 아니에요? 왜 제가 안으면 안 자고 하윤 씨가 안으면 바로 자는 거예요?”“아마도 울 만큼 다 울어서 그런 거예요. 지금은 누가 안아도 잘 거예요.”민하윤은 조심스럽게 수키를 다시 유모차에 눕혔고 옆에서는 임형섭이 손을 보태 주고 있었다.두 사람 모두 얼굴이 굳은 채, 혹시라도 수키가 다시 깰까 봐 조심에 조심을 더했다.마치 폭탄이라도 옮기는 사람들처럼 긴장한 모습이었다.애들린은 직접 와인을 따서 민하윤과 임형섭의 잔에 따라 주었다.“차라리 수키가 두 분을 대부 대모로 삼게 할까요? 그러면 제가 애 봐 달라고 해도 좀 더 당당해지잖아요.”‘대부 대모라...’참 자연스럽고도 묘하게 가까운 호칭이었다.마치 두 사람이 당연히 한 쌍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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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0화

임형섭은 입술을 꾹 다문 채, 민하윤이 술에 취해 정신이 몽롱한 틈을 타 다시 물었다.“왜 안 되는 건데?”“저랑 선배는 순수한 전우애예요. 누구도 우리 사이를 더럽히면 안 돼요. 그게 저라도 안 돼요.”민하윤은 정말 취한 모양이었다.턱을 괸 채 속눈썹을 늘어뜨리고 있었고 긴 속눈썹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임형섭의 마음은 천천히 바닥으로 가라앉았다.끝내 임형섭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임형섭은 직원을 불러 계산을 마치고 유모차를 좀 밀어 달라고 부탁한 뒤, 애들린을 먼저 차에 태워 보냈다.도착한 대리기사가 유모차를 트렁크에 실었다.“괜찮아?”임형섭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민하윤에게 물었다.민하윤도 이미 많이 취한 상태였기에 임형섭도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다.애들린은 고개를 끄덕였다.“난 몇 잔 안 마셨어. 이모한테도 이미 연락해 뒀어. 수키가 집에 가면 이모가 잘 돌봐 주실 거야. 돌아가는 데 20분도 안 걸려. 날 신경 쓰지 마.”차창에 몸을 기대고 있는 애들린의 얼굴은 살짝 붉었지만 아직 완전히 정신줄을 놓은 상태는 아니었다.임형섭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뒤쪽 카시트에 앉아 있는 수키를 한번 바라봤다.“그럼 집에 도착하면 꼭 문자 보내 줘.”“응. 잔소리 좀 그만하고 얼른 올라가서 하윤 씨나 챙겨.”애들린은 그러다 문득 말을 멈췄고 미간을 좁히더니 낮게 말했다.“하윤 씨의 마음은 돌덩이 같아. 진짜 데우기 어렵네. 형섭아, 이제 포기해. 너 자신도 좀 놔두고...”그 말에 임형섭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고 그저 지갑에서 지폐 몇 장을 꺼내 대리기사에게 건네며 말했다.“두 사람을 집까지 잘 부탁드립니다.”임형섭은 제자리에 선 채 차가 점점 멀어지는 걸 바라봤다.그리고 끝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그대로 서 있었다.다시 룸으로 돌아온 임형섭은 민하윤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렸다.“하윤아, 괜찮아? 내가 데려다줄게.”그러자 민하윤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볼은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그대로 임형섭이 허리를 감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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