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진은 마침내 채선화가 바라던 모습대로 자라 있었다.하도진은 책임감 있고 믿음직한 어른 같은 남자이자 차분하고도 강인한 사람이었다. 다만 딱 하나 좋지 않은 점이 있다면 하도진은 너무 차가웠다.그야말로 얼음덩이처럼 식어 있었다.말을 못 하던 민하윤과 이혼한 뒤로 하도진은 살아도 산 사람 같지가 않았다.예전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과도 거의 연락을 끊었고 오직 일에만 매달렸다.회사는 점점 더 잘나갔지만 하도진은 점점 더 말라 갔다.얼굴빛은 유난히 창백하고 담담했고 늘 서늘하고 무심했다.하도진은 마치 그 어떤 사람에게도, 세상일에도 더는 아무런 흥미가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았다.채선화는 가끔 속으로 후회했다.그때 자기가 그렇게까지 막아서지만 않았더라면 그렇게 끝까지 훼방만 놓지 않았더라면 아이는 무사히 태어났을지도 몰랐다.그리고 이렇게 차갑고 조용한 하씨 가문에도 조금쯤은 온기와 웃음이 스며들었을 것이다.하도진이 항도시에 도착한 건 마침 섣달그믐날이었다.하도진은 아래 편의점에서 맥주 몇 캔을 사서 혼자 긴 나무 벤치에 앉아 마셨다.곧이어 하도진의 발치에는 빈 맥주캔들이 이리저리 나뒹굴었다.하도진은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단지 안 가로수 너머 하늘을 올려다봤다.찬란한 불꽃놀이가 유난히도 아름다웠고 멀리서는 폭죽이 터지는 소리도 몇 번 들려왔다.하도진은 마지막 맥주 한 캔까지 비우고 벌떡 일어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22층에 멈췄다.민하윤은 막 씻고 나온 참이었다.냄비 안에서는 만두가 끓고 있었고 TV에서는 설 특집 생방송이 한창이었다.민하윤은 휴대폰을 꺼내 백누리와 임형섭, 그리고 서정아에게 차례로 명절 인사를 보냈다.백누리는 대박 난 드라마로 단숨에 인지도를 끌어올렸다.스물여덟이 되던 해, 결국 톱스타 반열에 올라 몸값이 훌쩍 뛰었고 스케줄은 쉴 틈이 없었다.민하윤의 새해 메시지를 받은 건 백누리가 설 특집 방송 백스테이지에서 막 분장을 받던 때였다.백누리는 씩 웃더니 손가락을 바삐 움직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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