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아이를 잃은 날, 남편은 다른 여자 촛불 앞에: Bab 381 - Bab 390

390 Bab

제381화

그런데 예상했던 따귀가 날아오지 않았다. 누군가 주초원의 손목을 잡았는데 당사자인 강루인이 아니라 서재에서 나온 주영도였다.주영도를 보자마자 주초원의 분노 어린 표정이 억울함으로 바뀌었다. 주초원이 얼굴의 따귀 자국을 보여주며 울먹였다.“오빠, 강루인이 날 때렸어요.”주영도가 손을 놓으며 물었다.“여긴 왜 왔어?”오빠가 편을 들어줄 줄 알았는데 뜻밖의 태도에 주초원이 미간을 찌푸렸다.“오빠, 나 강루인한테 뺨을 맞았다니까요?”주영도는 흔적 하나 없는 그녀의 얼굴을 힐끗 보고는 대답 대신 되물었다.“네가 먼저 루인이를 건드렸지?”“고양이가 날 먼저 할퀴었어요.”주초원이 상처 난 손등을 내밀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런데 주영도의 대답에 그녀는 또다시 실망했다.“우리 집 고양이 성격이 얼마나 온순한데. 먼저 건드리지 않으면 절대 사람 공격 안 해.”주초원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의 말은 주초원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는 뜻이었다.“오빠!”주초원이 발끈하며 소리치자 주영도는 못 들은 척하며 자기 할 말만 했다.“볼일 없으면 돌아가.”그녀는 물러서지 않고 이렇게 물었다.“쟤 왜 아직도 여기 있어요?”‘쟤’는 당연히 강루인을 가리켰다.주영도가 말했다.“네 새언니가 집에 있지 않으면 어디 있어야 하는데?”‘새언니?’화들짝 놀란 주초원이 소리쳤다.“두 사람 이혼했잖아요.”“누가 그래?”‘뉴스까지 났는데?’“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루인이는 네 새언니야.”주영도가 경고했다.“앞으로 또 새언니한테 버릇없이 굴었다간 용돈을 끊어버릴 거야.”주초원은 말을 잇지 못했다.이건 그녀의 목숨줄을 쥐고 흔들겠다는 말과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화가 치밀었지만 꾹 참고 마지못해 대답했다.“알았어요.”강루인을 힐끗 쳐다보던 그 순간 주초원의 두 눈이 반짝였다.“오빠, 나 아정이 언니랑 같이 있고 싶어요. 보내지 않으면 안 돼요?”아무 반응이 없는 강루인과 달리 주영도의 눈빛이 순식간에 가라앉더니 무표정하게 그녀를 보며 물었다.“아정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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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2화

강루인은 나가고 싶지도 않았고 나갈 힘도 없었다.링거를 맞아 목숨이 붙어 있긴 했지만 밥을 먹지 않으니 여전히 몹시 허약했다.주영도가 침실 문을 열고 들어와 그녀의 앞에 섰다. 빛을 등지고 서 있어 모든 빛을 가려버렸다.강루인은 눈을 뜨고 그를 힐끗 쳐다봤다가 다시 덤덤하게 눈을 감았다. 그를 완전히 공기 취급했다.그는 양손으로 안락의자 팔걸이를 짚고 몸을 숙여 그녀를 내려다보았다.“대체 뭐가 불만이라서 이러는 거야? 말해. 다 고칠게.”강루인이 눈을 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주영도가 말을 이었다.“아정이 때문에 우리 부부 사이가 틀어진다고 생각한다면 이젠 신경 쓰지 않을게. 그리고 원래 살던 곳으로 돌려보낼 거야. 앞으로 우리 생활에 아정이가 나타나는 일은 절대 없어. 이 집에 너랑 나, 그리고 앞으로 생길 우리 아이만 있을 거야. 그래도 안 돼?”길게 말해도 돌아오는 건 침묵뿐이었다.주영도가 그녀의 아래턱을 잡아 들었다.“말해. 내가 어떻게 해야 만족할 건데?”그 말에 강루인이 천천히 눈을 떴고 두 사람의 눈이 서로 마주쳤다. 그녀의 두 눈에 따뜻함이라곤 전혀 없었고 차갑고 잔인한 말을 내뱉었다.“네가 죽어버렸으면 좋겠어.”주영도가 그녀의 턱을 더 세게 잡았다. 아플 법도 한데 강루인은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듯 미간도 찌푸리지 않았다.“내가 그렇게 미워?”강루인의 눈빛이 차갑기만 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이 모든 걸 말해 주었다.미워하지 않는다면 죽으라고 말할 리도 없었다.주영도가 손을 내려놓더니 부드럽게 어루만지면서 차분하게 말했다.“마음껏 미워해. 미워한다는 건 아직 마음속에 내가 있다는 뜻이니까. 그거면 됐어.”강루인이 속으로 생각했다.‘미쳐도 단단히 미쳤어, 아주.”...구아정이 주초원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박정금이 주초원을 막 진정시킨 참이었다.아들이 이혼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딸에게서 듣고서야 알게 되었다. 하지만 박정금은 주초원보다 훨씬 이성적이었다.이 지경이 됐는데도 강루인을 곁에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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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3화

두 고집불통이 맞붙은 꼴이었다. 한쪽이 완전히 이기거나 아니면 다른 쪽이 물러서야 끝나는 싸움이었다.주영도는 강루인을 곁에 묶어두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긴 건 아니었다. 강루인도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은 바람에 마주하기만 하면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겉으로는 모든 패를 쥔 듯한 주영도조차 사실 강루인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그가 원하는 건 그녀라는 ‘사람’이지, 반응 없는 껍데기나 쓸모없는 시체가 아니었다.강루인은 나흘째 물 한 모금, 밥 한 숟갈도 입에 대지 않았다. 주영도도 처음엔 언제까지 버티나 두고 볼 생각이었는데 이제는 점점 초조해졌다.그가 그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어떻게 해야 밥을 먹을래?”강루인은 눈을 감은 채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그는 가정의를 불러 차분한 목소리로 지시했다.“턱을 확 빼버려요.”그 말에 가정의가 화들짝 놀랐다. 주영도의 뜻을 이해했지만 이렇게까지 해도 되는지 가정의도 갈피를 잡지 못했다.주영도의 뜻을 알아차린 강루인이 저항하려던 그때 주영도가 그녀의 팔다리를 꽉 누르고 가정의에게 재촉했다.몸이 멀쩡할 때도 그의 힘을 당해내지 못했는데 지금은 오죽하겠는가? 순식간에 제압당하고 말았다.강루인이 아파할까 봐 의사는 재빨리 입을 벌리게 했다.주영도는 몸으로 그녀를 가두고 억지로 죽을 입에 밀어 넣었다.“내가 허락하지 않으면 굶어 죽는 것도 불가능해.”음식 절반이 식도를 타고 위로 들어갔고 절반은 강루인이 기침하면서 뱉어버렸다. 두 사람의 옷과 침대가 엉망이 돼버렸다.옆에 서 있던 의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이 정도면 됐습니다. 며칠째 아무것도 드시지 않아서 한 번에 너무 많이 드시면 안 돼요.”그 말에 주영도가 손을 멈췄다.강루인의 창백하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주영도가 그 모습을 보면서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아픈 게 무섭지 않다면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먹여줄게.”“턱 다시 맞춰요.”의사에게 한 말이었다.의사가 그녀의 턱을 맞추고 나간 후 주영도는 직접 옷을 갈아입혔다.강루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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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4화

주영도의 ‘효과적인’ 길들이기 덕에 강루인은 마침내 단식을 그만두었다. 그는 이 결과가 꽤 만족스러웠다.다시 살을 찌우려고 매일 갖은 방법으로 그녀에게 음식을 먹였다.하지만 그 만족감은 오래가지 못했고 그의 미간이 다시 찌푸려지기 시작했다.강루인은 점점 더 말이 없어졌다.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하루 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말을 걸어도 고개만 끄덕이거나 짧게 대답할 뿐이었다. 언어 기능 자체를 상실한 사람처럼.그것만 해도 문제였는데 더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그날 주영도가 밤늦게까지 서재에서 일하는데 선샤인 빌리지 밖에 있던 경호원이 올라와 보고했다.“대표님, 사모님께서 나가시려 합니다.”주영도가 시계를 확인해보니 새벽 1시였다.‘이 시간에 어디를 간다는 거지?’“돌아가서 자라고 해.”경호원이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직접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사모님 상태가 좀 이상해 보이십니다.”그 말에 주영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초여름의 안북시 밤은 아직 서늘했다.강루인이 하얀 잠옷 차림으로 가로등 아래에 서 있었다. 검은 긴 머리가 어깨 위로 흘러내렸고 밤바람이 스치자 옷자락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솔직히 꽤 섬뜩한 모습이었다.그녀는 주영도와 등을 돌린 채 꼼짝도 하지 않고 대문 앞에 서 있었다. 경호원 두 명이 앞을 막고 있었지만 섣불리 손을 대지 못했다.주영도가 다가가 물었다.“한밤중에 잠은 안 자고 여기서 뭐 해?”‘밖을 지키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 텐데. 밤이라 경계가 느슨해질 거라고 생각했나?’가까이 다가가자 강루인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집에... 집에 갈 거야...”주영도의 눈빛이 가라앉았다.“집이 여긴데 어디 가려고? 들어가서 자.”강루인이 초점 잃은 두 눈으로 중얼거렸다.“집에 가야 해...”그녀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주영도는 놀란 나머지 그대로 굳어버렸다.경호원이 낮게 속삭였다.“몽유병인 것 같은데요?”주영도도 알아챘다. 침을 꿀꺽 삼키고 나지막하게 불렀다.“루인아...”강루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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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5화

아침을 먹은 뒤 주영도는 회사로 출근해야 했다. 강루인은 또 졸음이 쏟아졌지만 자지 않고 서재로 들어갔다.고요한 선샤인 빌리지에 갑자기 강루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아주머니, 아주머니, 이리 와 봐요.”진경자가 소리를 듣고 올라왔다.“사모님, 무슨 일이세요?”강루인이 물었다.“서랍장 안에 있던 책 누가 건드렸어요?”“무슨 책이요?”“[세계 건축가 백과사전]이라는 책이에요. 분명 책상 위에 올려놨었는데 누가 가져간 거예요?”진경자가 청소할 때 그 책을 본 적이 있었다. 청소 전에 어디에 있었으면 청소 후에도 그 자리에 그대로 놓았다.“아무도 안 건드렸어요.”강루인이 미간을 찌푸렸다.“여기 없는데요? 아무리 찾아도 없어요.”진경자도 들어와 함께 찾았다. 정말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다 문득 강루인의 손을 보고는 멈칫했다.“사모님 지금 들고 계세요.”그 말에 강루인이 고개를 숙였다. 책을 들고 있는 걸 본 순간 눈동자에 혼란이 스쳤다.‘언제부터 이 책을 들고 있었지?’“찾았네요. 이만 나가봐요.”강루인이 다시 책상 앞에 앉은 후 진경자가 조심스럽게 말했다.“또 필요하시면 부르세요.”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날 저녁 주영도가 회식이 있어 강루인이 혼자 저녁을 먹었다.요즘 강루인은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들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바로 방으로 돌아갔다.밤 10시, 주영도가 술 냄새를 풍기며 집에 들어왔다.그가 올 때까지 기다린 진경자에게 이렇게 물었다.“루인이 오늘 하루 어땠나요?”진경자는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고 솔직하게 보고했다. 그러자 주영도가 고개를 끄덕였다.강루인이 깰까 봐 게스트룸에서 샤워하고 침실로 들어갔다.그녀가 얇은 이불을 덮은 채 몸을 웅크리고 침대에 누워있었다. 주영도는 그녀의 옆에 누워 자연스럽게 품에 끌어안았다.같은 바디 워시를 쓰는데도 강루인에게서 나는 향기가 유독 좋았다. 주영도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그녀의 목에 파묻고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술까지 마신 상황에서 따뜻하고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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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6화

주영도는 먹구름이 가득한 얼굴로 정신없이 토하는 강루인을 지켜봤다.그녀가 이 정도로 그를 거부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모습에 끓어올랐던 흥미가 완전히 식어버렸다.주영도는 진경자를 불러 치우라고 하고는 화난 얼굴로 게스트룸으로 들어갔다. 그가 나간 걸 보고서야 강루인은 한숨을 내쉬며 몸의 긴장을 풀었다.한밤중, 막 잠들었던 주영도가 경호원의 목소리에 깨어났다. 어제와 똑같은 상황이었던 것이었다. 몽유병으로 인해 여기저기 걸어 다니는 강루인을 본 순간 잠들기 전에 쌓였던 원망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집에 가야 해...”강루인이 현관 앞에 서서 몇 마디 중얼거리더니 다시 조용히 방으로 돌아갔다.주영도는 그런 그녀가 점점 걱정되었다.아니나 다를까 강루인은 몽유병 증상을 보였다는 사실을 이번에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문득 어머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넌 신이 아니야. 이렇게 가두면 쟤 몸이 버틴다고 해도 멘탈이 무너질 거야. 정신질환이 더 무서운 거 몰라?”인정하고 싶진 않았지만 주영도 역시 강루인의 정신 상태가 안정적이지 않다는 걸 알아챘다.문제가 있으면 해결하는 게 주영도의 방식이었다. 그는 한시라도 지체할세라 바로 강루인에게 정신과 의사를 찾아줬다.정신과 의사가 소개를 마친 후 강루인이 직설적으로 말했다.“저 멀쩡하니까 가세요.”여의사 유진이 다정하게 말했다.“그냥 친구처럼 얘기 좀 해요, 우리.”강루인은 진짜 상담을 받아야 할 사람은 주영도지, 본인은 지극히 정상이라 생각했다.그렇게 첫 상담은 허무하게 끝이 났다. 치료도 무턱대고 하는 게 아니라 환자의 협조가 있어야 가능했다.유진이 미소를 잃지 않고 차분하게 말했다.“방해해서 미안해요. 오늘은 이만 가볼게요.”강루인은 창밖만 내다볼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방을 나온 유진은 곧장 주영도를 찾아갔다.“어때요?”유진이 솔직하게 대답했다.“사모님께서 협조적이지 않으세요. 그런데 우울증이 있는 건 확실해요. 요즘 생긴 게 아니라 오래전부터 앓아왔고 현재는 증상이 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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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7화

입이 무거운 유진이 정중한 태도로 말했다.“죄송하지만 환자의 상황을 함부로 말씀드릴 수 없어요.”주초원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나도 딱히 알고 싶지 않아.’주영도가 아픈 게 아니라는 소리에 주초원도 더는 알고 싶지 않았다.선샤인 빌리지에 들어가자마자 곧장 주영도를 찾아갔다. 서재 문을 연 순간 방 안 가득한 담배 냄새에 주초원이 연신 기침했다.“콜록콜록...”주영도가 고개를 돌렸다.“여긴 왜 왔어?”주초원이 입을 삐죽거렸다.“일이 없으면 오면 안 돼요? 오빠, 요즘 나한테 점점 차가워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오빠한테 가장 소중한 동생이 맞긴 해요?”그 말에 주영도의 날카롭던 눈빛이 눈에 띄게 다정해졌다.“말해봐. 무슨 일이야?”주초원이 오빠와 닮은 커다란 눈을 굴리며 말했다.“곧 내 생일인 거 잊지 않았죠?”그녀가 말하지 않았다면 정말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뭐 갖고 싶어?”주초원이 한정판 명품 몇 가지를 줄줄 읊자 주영도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그녀가 말을 이었다.“17살 생일은 성인이 되기 전의 가장 중요한 생일이잖아요. 친구들 불러서 함께 보내고 싶은데 내가 원하는 대로 해줄 수 있어요?”“응.”주영도의 머릿속에 온통 강루인뿐이라 제대로 듣지도 않고 건성으로 대답했다.“그럼 아정이 언니도 남아서 내 생일 같이 보내도 된다는 말이죠?”구아정의 이름을 듣고서야 주영도는 정신을 번쩍 차렸다. 그가 입을 열기 전에 주초원이 이어 말했다.“원하는 대로 해주겠다고 약속했으니까 번복하면 안 돼요. 이건 내 생일 선물이에요.”몇 초간 침묵이 흐른 후 주영도가 입을 열었다.“네 생일이 지나면 바로 떠나라고 할 거야.”주초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일까지 아직 보름이나 남았으니 일단 버티다가 생일이 지난 후에 떠날지 말지 생각하면 되었다.일이 성사되자 주초원이 만족한 얼굴로 서재를 나왔다. 이 기쁜 소식을 얼른 구아정에게 전해야 했다.침실 앞을 지날 때 주초원은 무심코 안을 들여다봤다. 조용히 앉아 있는 강루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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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8화

유진은 매일 한두 시간씩 강루인과 얘기를 나눴다. 강루인은 주영도를 대하는 것처럼 유진을 공기 취급했다.환자에게 무시당하는 게 익숙한 일이라 그녀는 여전히 다정한 말투로 말했다.“오늘 날씨가 참 좋아요. 나가서 산책이라도 할까요?”강루인이 덤덤하게 대꾸했다.“내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영도 씨가 허락했을 때 그때 다시 보죠.”“제가 가서 말씀드려 볼게요.”주영도가 허락할 리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던 강루인은 그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녀는 아직 ‘합격’한 아내가 아니었으니까.매번 대화할 때마다 유진이 대부분 말했고 강루인은 거의 입도 벌리지 않았다.떠나기 전 유진이 가져온 치자꽃을 강루인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루인 씨 주려고 가져왔어요.”강루인이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고개를 들어 힐끗 쳐다봤다.“정원에 꽃이 많더라고요. 대부분 사모님이 키운 거라면서요? 정말 대단하세요. 저도 꽃 키우는 걸 좋아하는데 제 손에서는 다 죽어버리는 거 있죠? 그래도 치자꽃은 살아남더라고요.”“꽃 키우는 분이 그러셨어요. 치자꽃이 추위도 잘 견디고 가뭄도 잘 견뎌서 제일 강인한 꽃이라고. 꽃봉오리를 따서 물에 담가도 죽지 않고 다음 날이면 다시 생기를 찾아 피어난대요.”강루인이 차분하게 말했다.“피어나면 뭐해요. 어차피 죽을 텐데.”“죽음은 누구나 맞이하는 결말이에요. 예외도 없고 막을 수도 없고요. 하지만 살아가는 건 우리 몫이에요. 슬프게 살아가나 행복하게 살아가나 똑같이 하루를 보내는 건데 굳이 고통스럽게 살아야 할까요? 스스로를 괴롭혀서 남을 기쁘게 하기보다는 차라리 고통 속에서도 즐거움을 찾는 게 낫죠. 그러면 적어도 덜 아프니까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방 안이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고 강루인도 다시 침묵에 잠겼다.살아있는 것과 버티는 것의 차이를 강루인은 명확히 구분할 수 있었다.죽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주영도와 맞서는 것도, 그에게 길들여지는 것도 싫었다. 하여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서로의 삶을 망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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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9화

유진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저한테요? 무슨 일이시죠?”‘진료가 아니면 무슨 일로 찾아왔지?’구아정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말했다.“강루인 씨한테 심리 상담해주고 있다고 들었어요.”유진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는 걸 본 구아정이 계속해서 물었다.“무슨 병인가요?”유진이 대답했다.“죄송하지만 말씀드릴 수 없어요.”의사라면 환자의 병력을 누설해서는 안 되었다.“저 일해야 하니까 이만 나가 주세요.”하지만 구아정은 꼼짝도 하지 않고 발밑에 내려놓았던 가방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유진은 검은색 가방과 구아정을 번갈아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구아정이 가방 지퍼를 열자 지폐 뭉치가 드러났다. 그 순간 유진은 그대로 얼어붙었다.“무슨 뜻이죠?”갑자기 나타난 낯선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 돈을 내밀다니... 절대 좋은 일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유진이 말했다.“전 당신이 누군지 모르니까 당장 이 돈 들고 나가세요.”구아정이 돈 가방을 유진에게 밀었다.“이건 계약금이에요. 제 부탁만 들어주신다면 나중에 더 드릴게요.”딱 봐도 함정인 제안을 유진이 받아들일 리 없었다.“이보세요. 전 당신이 누군지, 무슨 부탁인지도 모르겠고 알고 싶지도 않으니까 지금 당장 제 진료실에서 나가 주세요.”구아정은 나갈 생각이 전혀 없는 듯 태연하게 말했다.“선생님 남동생이 강간범이라던데... 부모님도 공범이고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진의 눈빛이 날카로워지더니 구아정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구아정이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자신을 치료해주는 정신과 의사가 강간범의 가족인 걸 환자들이 알면 어떻게 생각할까요? 과연 선생님을 계속 믿을까요? 그런 형편없는 부모한테서 멀쩡한 자식이 나올 수 있을까요? 그리고 선생님이 다니는 이 병원에서도 이런 불안 요소를 떠안으려 할까요?”유진의 숨이 살짝 거칠어졌다.“원하는 게 대체 뭐예요?”‘뭔가 계획을 가지고 날 찾아온 게 틀림없어. 그런데 날 노린 게 아니라 목표는 강루인 씨 같아.’구아정이 다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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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0화

유진은 심호흡하고 목청을 가다듬은 뒤 전화를 받았다.“대표님.”휴대폰 너머로 주영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와이프랑 어디 좀 다녀올 생각인데 선생님도 같이 가시죠.”유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알겠습니다.”전화를 끊은 후에야 유진은 등이 식은땀으로 흥건해졌다는 걸 알아챘다. 시선이 책상 위의 돈다발로 향한 그때 눈빛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주영도가 강루인을 데리고 나온 순간부터 강루인은 주도권을 잃었다.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출장 당일, 그녀는 짐과 함께 차에 태워졌다.그들을 데리러 온 노윤환은 강루인도 함께인 걸 보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은 채 속으로 생각했다.‘한시라도 떨어지기 싫어서 사모님도 데리고 오신 거야? 아니면 감시하려고?’‘황제’의 속내까지 꿰뚫어 보던 유능한 ‘간신’조차도 지금 이 상황이 가늠이 되지 않았다.남녀 문제에 있어서 예측 불가한 주영도라 노윤환 역시 속수무책이었다.공항.이미 도착한 유진을 보고도 강루인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일행은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몇 시간 후 해울 공항에 착륙했다.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주영도는 일정 때문에 나가야 했다. 강루인과 점심을 같이 먹을 시간조차 없었다.주영도가 강루인의 목을 감싸 안더니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일 끝나면 제대로 구경시켜줄게.”그가 돌아선 순간 강루인은 싫은 티를 팍팍 내며 얼굴을 거칠게 닦아내고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방으로 걸어갔다.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노윤환이 이 장면을 모두 목격했다. 주영도의 표정을 조심스럽게 살폈는데 놀랍게도 화난 기색이라곤 전혀 없었고 오히려 익숙하다는 듯 태연했다.노윤환은 겉으로는 무표정했지만 속으로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소용돌이쳤다.‘대표님 이젠 이런 걸 즐기시나?’주영도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유진이 강루인을 찾아왔다.“사모님, 대표님께서 저더러 사모님이랑 같이 점심 식사하라고 하셨어요.”비행기에서 식사를 거른 터라 배가 고팠던 강루인은 유진을 거절하지 않았다. 거절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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